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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54호] 기후변화와 부상하는 위기담론_하태현

하태현 기자

 

출처: 기후위기 비상행동

 

올여름 예고된 폭염은 온데간데없었고, 그 대신 예상치 못한 폭우가 내렸다. 이례적인 장마는 54일 동안 지속되었고, 기록적인 강수량을 보였다. 장마는 취약계층뿐만 아니라 중부 지방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빼앗았다. 기후변화와 이상 고온 현상은 길었던 장마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라는 것이다. 곤충 개체 수의 증가의 문제도 여름 장마와 함께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이슈였다. 인천과 수도권 지역에선 깔따구 유충이 수돗물과 섞여 나왔던 것에서 시작해 부산에선 노래기 떼가 도심을 점령했고, 서울에선 대벌레가 숲을 뒤덮었다. 전문가와 언론은 전국적인 곤충 개체 수의 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꼽았다. 지난 713일 경향신문의 기후변화가 불러온 매미나방의 습격이나 728일 헬스조선의 이상기후 탓일까...‘벌레들의 심상치 않은 습격이라는 언론의 보도는 기후 위기로 인해 곤충이 늘어났다는 관점을 대변한다.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올여름 일련의 사건들을 두고 지구의 경고 메시지로 분석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유난히 길었던 장마나 곤충들의 급증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난날 동안 우리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환경 문제가 이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것에 불과하다. , 지금 우리는 기후 위기 속에 놓여있다는 결론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 93일 한겨레의 보도 <코로나19 폭우 겪으며 기후 위기 절감국민 60% “매우 그렇다”>에 따르면, 한국갤럽이 설문한 8월에 전국 1500명을 대상으로 기후 위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97.7%는 기후 위기가 매우 심각하거나(65.3%), 약간 심각하다(32.4%)고 답했다. 이들은 주로 최근 코로나19와 폭우와 같은 기상이변 때문에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되었다(매우 그렇다 59.6%, 약간 그렇다 36.2%)고 밝혔다. 심지어 코로나19가 기후 위기와 관련 있다는 주장에 2/366.7%가 동의했다. 이는 응답자 다수가 코로나19 사태가 기후 위기와 일련의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가리킨다. 시민들은 기후 위기 관련 정보를 언론 기사(42.5%)와 인터넷(40.6%)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기후 위기 대응의 책임은 정부(36.9%)에 있다거나 기업과 산업(28.5%)에 있다고 가리켰다. 다음과 같은 설문조사는 기후 위기에 대해 크게 세 가지의 시사점을 전달한다. 첫째, 한국의 시민 대다수가 기후변화 문제를 위기로 인식하며 이를 심각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둘째, 응답자 대다수가 기후 위기 관련 정보를 언론 기사나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셋째,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을 주로 정부와 기업, 그리고 산업에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기후 위기 문제는 언론이 지시하는 사건을 뛰어넘어 하나의 일반적인 상식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와 위기론

 

기후변화 문제는 인류가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는 한국 사회 어두운 단면들을 드러냈다. 한국 사회에는 지금 콜센터의 노동환경에서부터 고강도의 택배 노동, 그리고 고용 위기까지 이르는 노동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소외 문제와 코로나 블루 문제 등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기후변화 문제는 올여름 언론을 통해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헤드라인에는 기후변화라는 단어 대신 기후 위기라는 표현이 지속적으로 등장했고, 코로나19 상황 속 환경 문제는 또 다른 사회적 위기로 부상했다. 여기서 위기의 사전적 개념은 위험한 고비나 시기이다. 위기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특별한 관심사를 드러내지 않는다. 위기는 별도의 주어를 필요로 한다. 위기가 의미 값을 지니게 되는 경우는 특정 무엇의 위기를 지칭할 때이다. 한편, ‘위기라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특정한 국면에서 빈번히 사용되던 개념이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위기는 경제 위기’, ‘국가 위기’, ‘북핵 위기’, ‘외환 위기등으로 일정한 단어와 특정 국면에서의 위기를 지목하고 있다. 용례에서 알 수 있듯 위기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은 아니다. ‘위기를 말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고비나 위험을 적시하는 것을 넘어서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위험한 고비를 지칭하는 전략적 실천에 가깝다.

 

기후변화 문제를 기후 위기로 바꿔 부르는 시도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에 효과적이다. 어감의 차이뿐만 아니라 대중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며 위기의식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안의 심각성과 별개로 위기라는 표현은 특정 담론(Discourse)*을 형성하는 데 일조한다. 예컨대, 언론의 코로나19로 인해 경제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는 보도는 경제 위기 담론을 구성하는 데 기여한다. 담론 형성에는 단순 가설적 주장인지 인과관계가 입증된 주장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경제 위기 담론이 형성되면, 실체적인 위기와 별개로 사람들은 위기의식을 지니게 된다. 실체로서의 위기와 지금 우리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말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장진호 박사는 실체적 위기와 위기 담론 사이에 정치성이 있음을 지목한다. 코로나19 상황에 놓여있기에 경제 위기라고 말하는 진술은 단순 상황을 설명하는 재현이 아닌 위기의 객관적 상황에 개입해 위기 자체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실체적인 위기와 별개로 위기로 불리면서 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위기이기 때문에 위기를 주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위기를 이야기함으로써 위기가 초래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뒤따른다.

 

 

지배적인 매체로서 언론은 현재 기후변화 문제로 여름의 폭우와 곤충 개체 수의 증가 등을 지목하며 기후 위기를 논하고 있다. 기후 위기와 코로나19 문제는 공통으로 세계화와 도시화 그리고 이동(mobility)에 의해 발생했고, 현재 우리는 생명과 건강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골자다. 해결책으로 정부의 환경 정책 변화와 국회의 인식 전환을 요구한다. 구체적으로는 온실가스 감축이나 석탄 사용을 전환하자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기후 위기 담론에는 정치가 작용한다.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는 정부와 국회, 기업과 시민단체, 그리고 개인 등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기후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는 선언과 구체적 대책 마련 논의는 현재 상황에 대한 재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위기를 구성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위기 담론은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단 하나의 준거점으로 소급 적용해 사회를 읽는다. IMF 외환위기 때 한국은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이 제일 우선순위의 가치였으며, 북핵위기 때는 북한과의 전쟁 대비가 사회 전반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와 같이 위기 담론은 사회 전반에 놓여있는 다양한 가치와 행위를 무력화하며 본인의 논제를 우선순위로 올려놓는다. 최근 기후 문제와 관련한 환경운동에서는 정부나 국회 등에 사회적이며 공적인 실천과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일반적인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회 운동의 방향성이나 정당성과는 별개로 담론의 효과는 상존한다. 이는 기후변화 문제를 말하기에 앞서 다양한 조건과 맥락을 고려해야 할 이유가 된다.

 

기후변화에 대한 지배적 담론이 기후 위기론이었다면, 이와 다른 방식으로 현상을 설명하는 담론도 존재한다. 이강운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은 대벌레와 매미나방 개체 수의 증가를 작년 겨울 온도 때문만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수도권 정수장으로 서식지를 옮긴 깔따구 역시 기후변화 문제라기보단 관리 부실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겨레 보도를 통해 전국적으로 대략 5만 종에 이르는 모든 곤충 종들에 해당되어야 할 기후변화가 국지적으로 몇몇 종으로만 적용되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라며 기후변화로 인한 곤충 개체 수 증가라는 가설은 지금 현상에 적절하지 않은 분석이라고 답했다. 기후 위기 담론에서 언급된 장마에 대해 악셀 팀머만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 물리연구단장 연구진은 한반도 주변 지역의 국지적 대기 불안정을 원인으로 꼽았다. 연구팀은 한반도 강수량과 기후변화 간의 영향을 100년간 측정한 결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는 보이지 않았다며, 올해 기록적인 강수량은 기후변화보단 대기 내부의 불규칙적 운동에 더 크게 반응한 것으로 파악했다. 특히 이들은 이상 고온 현상이 모든 지역에서 장마와 연관성이 뚜렷하진 않았다며 온도가 꾸준히 오르고 있지만, 강수량과는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소수 의견은 언론에서 자주 노출되지 않았다. 기후위기론과 다른 시각의 보도가 중요한 정보로 논의되지 않는 것은 실제로 이 정보가 가치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언론사의 의도적인 편집과 견해를 거쳐 정보의 가치가 정해진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언론은 기후 위기 담론 생산에 가장 앞선 주체다. 환경 운동가와 전문가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매체이자,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전파자였으며 동시에 담론의 생산자였다.

 

위기담론을 넘어서

 

위기 담론에 대한 비판은 위기를 논하기 위해서 과학적 논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로 풀이되어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특정 문제에 대해 위기의식을 전달하는 시도 자체가 담론을 구성하는 것으로만 이해될 순 없다. 다만, 담론을 생산하는 데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는 주체가 언론이나 미디어라면 그들이 어떤 메시지를 누구로부터 받아 전달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메시지가 미칠 효과는 무엇인지에 대한 비판적 물음은 가능하다. 위기 담론은 위기란 무엇인지 명명하며 그 배경을 설명하는데서 출발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담론의 효과는 발화자의 권위와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데 있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린다는 의도도 언론을 거치며 위기 담론으로 구성될 때, 정치적 전략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언론은 위기 담론을 꺼내는 인물에게 마이크를 쥐어주는 대신 그로부터 화제가 될 만한 헤드라인과 논제를 얻고, 위기 담론을 주장하는 인물은 발언의 효과로서 명예나 지위 등의 상징 권력을 얻게 된다. 특정 발화자가 위기를 언급하는 행위는 듣는 이의 인식적 변화뿐만 아니라 일정한 행동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또한 정치적이다. 언론의 선택적 보도에 따라 생산된 기후 위기 담론은 정부에 대해 비판을 하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온실가스 배출을 두고 특정 기업을 비판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한편, 기후위기 담론은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한 논리에 사회 모든 재원을 동원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필요에 따라 기능하는 각 분야의 재원들을 두고 하나의 잣대로 옳고 그름의 문제를 정의할 수는 없는 법이다.

 

누구의 이해를 위해, 누가, 무엇으로, 필요를 정의하는가?”. 낸시 프레이저(Frazer, N.)필요 담론이 던지는 질문이다. 프레이저는 필요담론이 불평등한 자원을 가진 집단들이 사회적 필요에 대한 각자의 이해를 말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다투면서 생성된다고 말한다. 필요담론은 위기담론이 구성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가리킨다. 프레이저의 말에 따르면 기후 변화 문제를 두고 기후 위기가 실재하는 것인지 혹은 담론에 불과한 것인지를 묻는 것은 중요한 물음이 아닐 것이다. 이분법적 도식에서 벗어나 기후 위기가 누구의 이해를 위해 누가 무엇으로 필요를 제기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끔찍한 위험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 지금 당장 지구를 위한 실천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오류가 없다면, 위기론과의 거리두기가 필요해 보인다.

 


* 여기서 담론은 일상적이거나 사적인 수준의 대화나 공적인 성격의 문서, 사설, 평론과 영향력 있는 발언이나 연설문, 전문가의 진단이나 소견서 같이 다양한 형태의 의미화와 권력을 보여주는 것들을 일컫는다. 담론은 문자화되지 않아도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기호나 이미지, 음성적 효과를 포함한다. 담론은 개인과 집단에 의해 생성되지만, 사회 제도에 의해서도 형성된다(이기형, 2006).

· 참고문헌
이기형
(2006). 담론분석과 담론의 정치학. <언론과 사회>, 143, 106-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