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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4호] 영화 <밀양>을 통해 본 트라우마와 인간의 대응

석사과정 이 가 효 (LI JIAYI)

 

코로나19가 우리의 생활 패턴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올해 초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수많은 바이러스 중 특히 코로나19 와 같이 생존에 관련된 충격적인 경험에 의해 굵은 전용신경 회로가 구축되면 그 비극성으로 전체성이 형성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안과 우울, 무기력, 스트레스에 중독된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이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이 많다. 하지만 바이러스보다 우리의 삶을 더욱 해치는 것들은 눈으로 보이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며 한 가을의 밤 영화 <밀양> 다시 찾아보았다.

 

  일상생활에 널리 사용되면서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가 다소 가벼워졌다고 볼 수 있으나, 사실 트라우마는 정신 건강의학과의 진료 항목에 해당하는 질병으로 일상에서 평범하게 사용할 만한 단어는 아니다. 사람들은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9·11테러, 대구지하철 참사 등 대형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함께 듣게 된다. 소설, 영화 등 스토리가 있는 문예물에서 트라우마는 ‘주인공의 극복 대상’으로 자주 사용된다. 영화 <밀양> (2007, 이창동 감독) 역시 주인공 신애(전도연 분)가 겪는 트라우마와 그에 대한 대응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원작이 라고 할 수 있는 이청준의 소설 <벌레이야기>가 있기 때문인지 영화에 대한 기존 연구나 보도에는 소설과 영화라는 형태 변화에 따른 서사 변용에 대한 인식, 교육 측면에서의 깨달음이 담겨 있다. 영화가 개봉한 지 10년 이상 지난 만큼 다방면에서 많은 연구가 누적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영화 <밀양>은 주인공 신애의 트라우마 극복 시도 이야기로 읽힐 가능성이 존재 한다. 이에 본 글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바탕으로 주인공 신애가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어떤 트라우마들을 마주하고, 이에 대해 어떠한 대응을 보이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트라우마로부터의 회피

 

영화는 차창 너머의 맑은 하늘을 담으며 시작하지만, 그 하늘을 바라보는 주인공 신애의 마음은 편치 않다. 기혼자라면 절대 겪고 싶지 않을 두 가지 사건-배우자의 외도와 그 배우자의 사망-을 겪은 후 아들 준을 데리고 서울에서 밀양으로 이동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밀양으로의 이동은 여행이 아닌 이사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제까지 삶의 터전이었던 서울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애의 이사는 배 우자의 외도와 배우자의 사망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회피’이다. 배우자의 외도와 사망은 하나만이라도 개인에게 충분히 충격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두 개의 사건을 연달아 겪은 신애에 게 기존의 거주지는 더 이상 안락한 보금자리가 될 수 없다. 기존 의 거주지에서 그녀는 ‘평범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였지만 이 제 그녀의 위치는 ‘바람핀 남편을 둔 아내’이자 ‘그 바람난 남편이 죽은 아내’로 변화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의 변화한 시선을 인지 할 때마다 그녀는 절대 떠올리고 싶지 않은 두 개의 사건 ‘배우자 의 외도’와 ‘배우자의 사망’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신애는 이사를 통해 이 두 가지 사건이 자신의 의식 차원으로 올라오는 계기 즉, 주위의 시선과 마주치는 빈도를 줄인다. 그리고 이는 신애가 두 사건을 자신의 무의식 단계에 머물도록 효과적 으로 ‘억압’하도록 만든다. 물론 타 지역으로의 이동이 그녀가 겪은 사건들을 없는 일로 만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 이동을 통해 신애는 ‘배우자의 외도’와 ‘배우자의 사망’ 중 전자에 대한 부담감을 줄인다. 실제로 밀양에 도착한 신애가 연기한 것은 ‘서울에서 온 돈 많은 과부’였으며, 이 과정에서 그녀의 남편이 ‘외도하고 사망한 사실’은 감춰진 정보가 되고 밀양은 ‘외도하고 죽은 남편의 고향’이 아닌 ‘죽은 남편의 고향’이 된다. 물론 밀양 사람들 중에도 왜 하필 죽은 남편의 고향으로 온 것인지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신애가 말만 하지 않는다면 죽은 남편의 ‘외도’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정보가 되는 것이다. 자신을 찾아온 남동생에게 “난 서울이 싫어. 여기가 좋아. 여기가 왜 좋은지 아니?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 나 여기서 새로 시작할거야.”라는 신애의 말은 그녀가 서울에서 느꼈던 부담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새 공간에 진입하는 그 순간 신애의 가족은 아들인 준뿐이기에 신애는 그저 ‘아들과 사는 엄마’의 위치를 획득할 수 있고, 이것은 그녀 가 바라는 새로운 시작의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그런데 신애가 선택한 밀양이라는 공간은 바로 그녀에게 상처를 준 남편의 고향이다. 그녀가 거주지를 옮기는 중요한 선택을 하면서 자신의 부모에게조차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점, 밀양 사람 중에도 그녀가 왜 하필 죽은 남편의 고향으로 왔는지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는 점 등은, 자신을 배신한 배 우자의 고향으로 가서 새출발을 하는 그녀의 행동이 상식선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임을 드러낸다. 그 이유는 신애가 자신을 찾 아온 남동생과 피아노 학원에서 나누는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신애는 남동생과 싸우는 과정에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라는 남동생에게 “너 가! 그런 소리하려면 지금 당장 서울 올라가!”라고 외친다. 죽은 남편의 외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신애의 대사 에서 죽은 남편은 ‘그 인간’이기도 했다가 ‘준이아빠’이기도 하고, 보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고, 가족만 사랑했던 존재이기도 하다. 신애에게 죽은 남편은 부정적인 감정과 그리움이 섞인 대상인 것 이다. 즉 신애가 밀양으로 이사하는 것은 친정 가족을 포함하여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과의 연계를 최소화함으로써 배우자의 외도를 부정하고, 배우자가 자신에게 준 충격을 억압한 채 새롭 게 출발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카페 (https://cafe.naver.com/moviejaryo/5532)

 

두 번째 트라우마의 승화 실패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새롭게 출발하고 싶었 던 신애의 바람과는 달리 밀양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이사와 함께 ‘바람났던 남편이 죽었다’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덮어 둘 수 있었으나, 어찌 되었건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서울에서 온 과부’ 로 인식한다. 외지에서 온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고자 그녀가 선택한 것은 서울에서 온 ‘돈 많은’ 과부를 연기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거주할 공간과 피아노 학원 문제를 해결한 후, 실제로 땅을 살 것은 아니지만 땅을 보러 다닌다. 그녀는 지역 사람들과 모인 자리에서 부동산 의 전화를 받는 모습을 연출하는 한편,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동네 아주머니들과 노래방에서 놀기도 한다. 어느 날, 노래 방에 들렀다가 늦게 귀가한 신애는 집에 아들 준이 없음을 알게 된다. 신애가 부유하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돈을 노리고 준을 납치한 것이다. 신애는 돈이 많은 ‘척’ 했던 것이지 실제로 부유 했던 것은 아니기에 납치범이 요구한 금액을 전부 마련할 수 없 었다. 납치범의 요구에는 못 미치는 금액을 약속된 장소에 가져다 놓지만 준은 사망한다.

 

  새로운 시작의 장소가 하필 밀양이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 하는 친정 가족들의 반발과 관계 단절, 외지인을 쉽사리 받아들 이지 않는 지역 사람들의 텃세조차도 감내할 정도로 당시의 신애 에게는 삶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아들의 납치와 사망이 라는 사건을 겪으며 신애는 삶을 지탱하고 있던 것들을 모두 상 실한다. 밀양에서 살아가기 위해 만들고 있던 동네 사람들과의 유대관계는 치명타를 입었고, 그녀가 결혼과 출산을 통해 만들 었던 자신의 ‘가족’은 이제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평소 신애는 동네 약사의 교회 전도를 흘려들었지만 극심한 절망에 빠져 고통스러 워하던 중 스스로 교회를 찾고, 예배에 참여해 울부짖고 통곡함 으로써 아들의 죽음 앞에서 억압해 두었던 감정을 분출한다. 이 후 신애는 교회 활동에 매우 열심히 참여하게 되고, 교회에 다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 살해범의 얼굴을 직접 보고 그를 용서 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큰 결심을 하고 아들 살해범 면회를 가지 만 그녀가 마주한 살해범은 자신은 이미 하나님에게 용서받아 마음이 편안하니 당신(신애)도 편안해지라고 말한다. 이에 신애는 ‘유가족인 내가 아직 범인을 용서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범인을 용서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며 큰 충격을 받고 살해범을 용서 하지 못하고, 자신이 믿었던 신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만약 신애가 아들 살해범을 용서하는데 성공했다면 신애는 자신이 억압해두고 조금씩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슬픔, 분노 등 의 감정을 모두 초월하여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승화의 단계에 도 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살해범의 용서와 내적인 승화에 실패했기 때문에 이후 그녀는 자신이 의지하고 믿었던 것 들에 대해 반항한다. 교회 부흥회에서 <거짓말이야>라는 노래를 틀어 예배를 망치고, 미수에 그치기는 하지만 기혼자이고 독실 한 기독교 신자를 유혹하여 정사를 나누려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의 반항은 사과를 깎던 칼로 자신의 손목을 긋는 자살시도로 까지 이어지게 된다. 아들 살해범을 용서하겠다는 결심을 통해 승화 단계 직전까지 이르렀지만 결국 용서에 실패함으로써 그녀는 승화에 실패하고, 신애의 트라우마 역시 해소되기는커녕 반항과 자살시도라는 가장 극단적인 반동행동으로 표출된다.

 

트라우마 대응와 나의 생각

 

결론적으로 영화 ‘밀양’은 신애가 두 번째 트라우마 승화에 실패 하고 반발, 반항, 퇴행 등의 행동을 보인 끝에 자살시도라는 극 단적인 선택에 이른다는 점에서, 트라우마 극복에 실패한 인간 이 겪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럼에도 신애가 집에서라도 자신의 손으로 머리카락 자르기를 시도했다는 점, 그리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신애의 곁에서 종찬이 거울을 들어주 고 있다는 점에서 신애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영화는 연이어 큰 사건을 겪는 여성이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여줌 으로써 트라우마 극복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의지를 갖고 트라우마 극복에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