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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55호] K-POP의 ‘K’와 K/DA

하태현 기자

 

 

리그오브레전드 케이팝 걸그룹 K/DA (출처: 라이엇게임즈)

 

 

K/DA가 누구야?

 

  2018년 여성 4인조 가수로 데뷔한 K/DA1는 라이엇게임즈가 제작한 리그오브레전드(LoL, 롤)의 캐릭터 아리, 이블린, 아칼리, 카이사로 구성된 가상 케이팝 걸그룹이다. K/DA는 ‘2018년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 개최지인 한국에서 최초로 데뷔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K/DA의 데뷔곡 ‘POP/STARS’는 공개 열흘 만에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 수가 5,000만을 넘었고, 현재(2020년 12월 1일 기준) 조회 수가 4억 회를 돌파했다. 이어 아이튠즈와 빌보드 차트에서 각각 1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이들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물론, K/DA의 데뷔와 활동이 처음부터 팬들의 환호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롤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가상 아이돌이 된다는 사실은 궁금증을 유발하면서도 동시에 기이한 일로 여겨졌다.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가 엄연히 구분되어 있으며, K/DA는 롤의 세계관 속에서 활동하던 가상 걸그룹으로서 ‘컨셉’에 불과한 그룹인데 이를 현실 세계로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유저들의 우려를 환호로 바꿔놓은 것은 단연 양질의 퀄리티를 보여주는 퍼포먼스와 탄탄한 음악 구성이었다. 
기존의 캐릭터를 재해석하고, 예상을 뛰어넘는 뮤직비디오나 음악은 ‘외국 게임 회사가 만드는 케이팝이라니 좋아봤자 얼마나 좋겠냐’는 우려를 단숨에 수그러들게 했다. 

 

  K/DA의 두 번째 공식 활동은 2년이 지난 뒤에 중국 상하이의 ‘2020년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었다. K/DA는 새로운 타이틀곡 ‘MORE’를 공개했다. 2년 전과 비교해 K/DA의 구성에는 변화가 있었다. 중국인 국적의 려위위(Lexie Liu)가 신규 캐릭터 세라핀을 맡으며 5인조 케이팝 그룹이 된 것이다. 세라핀의 합류에 유저들의 반응은 의외로 차가웠다. 케이팝을 콘셉트로 잡은 K/DA ‘MORE’의 브릿지에 중국어 노랫말이 몇 소절 나온다는 사실은 단연 화제거리였다. 

 

  네티즌들은 케이팝 가수가 중국어로 케이팝을 부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케이팝은 한국어로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라이엇게임즈가 케이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심지어 2020년 K/DA 공연에서 중국인 캐릭터인 세라핀은 한국인 캐릭터를 제치고 센터 자리를 차지했는데,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세라핀 불매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안그래도 케이팝 그룹에 중국인이 등장해 중국어를 하는 것도 불편한데, 중국인이 한국의 것(케
이팝)과 한국인의 자리를 뺏고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급기야 케이팝에 중국인 멤버를 추가한 것을 두고, 중국의 동북공정의 또 다른 외양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러한 양상을 두고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대체 케이팝이 뭐길래? 

 

 

 

케이팝이란 뭘까?


  케이팝(K-POP)은 한국 대중음악을 다른 음악과 구분하기 위해 산업적으로 만든 단어이다. 한류라는 용어가 중국에서 붐을 일으킨 한국 대중문화를 가리키는 용어라면, 케이팝은 일본에서 유래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보아(BOA)와 비, 장나라 등이 일본과의 협업 및 현지화를 시도하면서 케이팝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됐기 때문이다. 즉, 한국에서 ‘가요’로 분류되는 음악이 해외에서 수용되면서 케이팝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신현준(2005)
은 케이팝을 “한국 음악산업을 통해 생산되고 동아시아권에서 소비되는 대중음악 및 그와 연관된 문화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국제적 고유명사”라고 정의한다. 2000년대까지도 한국의 음악은 주로 ‘가요’ 라고 불렸는데, 한국 밖의 다른 나라에서 한국의 가요를 케이팝으로 부르면서 지금과 같이 굳어졌다는 사실을 볼 때, 케이팝이라는 용어는 ‘한국이 아닌 나라들을 위해 한국에서 만들어진 대중음악(신현준, 2013, 31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케이팝은 ‘한국스러운’ 혹은 ‘한국다움’을 지니고 있는 지역적 음악 장르로 이해되곤 한다. 실제로 음악의 장르를 규정하는 데 있어 국적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때도 있다. 음악이 만들어진 지역이 어디인지, 그로 인해 구성된 음악적 스타일은 어떠한지에 따라 다른 음악과 구분되는 독립적인 장르로 인정되기도 하는 것이다. 팝에 국적이 붙어서 생성된 음악적 갈래의 위치를 보면,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케이팝(K-POP)은 다양한 국가들의 팝 예컨대, 제이팝(J-POP), 라틴팝(Latin-Pop), 스웨디시 팝(Swedish Pop), 칸토팝(Canto-POP), 만다린팝(Mandarin-POP)과 구분되는 지점에서 한국의 대중음악을 지칭한다. 특정 장르에 대한 지칭이 아닌 국가를 기준으로 한 분류인 것이다. 

 

  라이엇게임즈가 만든 K/DA가 케이팝 걸그룹으로 불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네 명의 캐릭터(아리, 이블린, 아칼리, 카이사)가 각각 메인보컬, 리드보컬, 리드댄서, 래퍼 등을 맡고 있으며, 뮤직비디오에서도 케이팝의 문법을 따랐던 것이다. 여느 케이팝 걸그룹이 그렇듯, K/DA에도 한국인 멤버가 포함되어 있었다. 메인보컬 아리는 한국 아이돌 그룹 (여자)아이들의 ‘미연’이 맡았고, 리드보컬 이블린은 ‘매디슨 비어(Madison Beer)’가, 래퍼 아칼리는 (여자)아이들의 ‘소연’이, 그리고 메인 댄서 카이사는 ‘자이라 번스(Jaira Burns)’가 맡았다. 이렇게 두 명의 한국 가수와 두 명의 미국 가수는 라이엇게임즈의 걸그룹으로 결성되었고, 영어 가사와 한국어 가사를 혼용한 노래인 ‘POP/STARS’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2000년대와 달리 전지구화 흐름에 따라 지역과 지역 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 가운데 케이팝을 여전히 ‘한국을 통한’ 대중음악으로만 볼 수 있을까? 이는 케이팝의 소비 과정이 한국에 한정지어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받아들이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음악도 케이팝이라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이다. EXP EDITION의 사례는 케이팝이 국적을 벗어난 장르가 될 수 있는지 묻는다. EXP EDITION은 2015년 뉴욕에서 데뷔한 뒤 2년이 지나고서 한국에서 데뷔한 K-POP 그룹이다. EXP EDITION은 한국인이 없이 구성된 케이팝 아이돌 그룹인데, 이들은 뮤직비디오에서 한국 아이돌이 했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한다. 심지어 스스로의 음악 장르를 케이팝으로 정의하지만, 한국어로 된 가사는 전체 가사의 10%도 안 된다. 한국어가 거의 들리지 않는 K-POP인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유럽 최초의 K-POP 걸그룹 가치(KAACHI)가 있다. 걸그룹 가치는 영국에서 시작한 케이팝 걸그룹으로서, ‘케이팝 스탠더드’에 맞추고자 노력한다. 가치에는 한국인 멤버가 있으며 이들을 기획한 사장도 한국인이지만,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이 케이팝 걸그룹의 
음악을 K-POP으로 부를 수 있을까? 만약 부를 수 있다면, 지금 이 시대의 K-POP은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K-POP(케이팝)의 K=KOREA를 넘어서

 

  다양한 음악이 케이팝이 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케이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음악은 엄연히 존재한다. 한국의 록(Rock)음악이나, 힙합, 인디(indie)음악은 케이팝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듯이, 그 경계는 모호하지만 구분점은 있는 듯 하다. 분명한 점은 국내외 케이팝 수용자들은 케이팝을 한국과 분리된 장르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케이팝은 한국 문화의 일부로 사고된다. 그렇기에 케이팝에 한국적인 특징이 배어있지 않은 케이팝은 어색하다고 받아들여지거나, 다른  장르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가 인종적이고 민족적인 요소와 맞닿아있다는 사실은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마주하게 한다.

 

  K-POP의 ‘K’는 코리아(KOREA)의 K를 의미한다. 한편, 이를 한국인만의 K로 사유하는 인식은 케이팝의 생산과 수용 과정에 끼어드는 다양한 주체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국인’이 아닌 다른 인종과 민족, 그 중에서도 특정한 민족을 향해서 ‘너는 케이팝에 끼어들 수 없다’는 식의 발화에는 모종의 우월감과 폭력이 묻어있다. 사실 국내에는 이미 트와이스와 같이 국내에는 이미 트와이스와 같이 9명의 멤버 중 4명이 외국 국적을 갖고 있는 그룹도 있으며, 나아가 JYP는 일본인으로만 구성된 케이팝 걸그룹 니쥬(NiziU)를 데뷔시킨 바 있다. 이미 다양한 국적의 가수들은 케이팝을 전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K/DA에 중국인 가수가 합류한 것을 두고 케이팝의 진정성을 묻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유달리 ‘중국’을 향해서 강조되는 케이팝의 진정성에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중국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다양한 맥락과 배경에 대한 고려 없이 쉽게 분석될 수는 없다. 그러나 케이팝에 등장하는 한국(한국어)과 중국(중국어)을 대립적으로 사유하면서 ‘우리의 케이팝에 들어올 수 있는 외국인’과 그렇지 않은 타자를 선별하는 행위에 
담긴 폭력성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과 같은 혼종성의 시대에 우리만의 고유 것이 없기에 케이팝을 한국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할 순 없다. 다만, 케이팝을 한국인의 것으로 인식하고 부르면서 과도하게 타자를 밀어내고 있다면 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케이팝의 진정성을 한국인과 한국어라는 민족 중심적 특징이 아닌, K-POP(케이팝)의 K=KOREA를 넘어서는 작업을 모색할 때다.

 

 

참고문헌 

신현준 (2013). <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 너머: 한국 대중음악을 읽는 문화적 프리즘>. 서울: 돌베개

 

 

2020년 K/DA 두번째 타이틀곡 'MORE' (출처: 유튜브 RARE 3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