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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4호] 의사파업과 보건의료의 공공성

시민건강연구소 김새롬  

공공의대와 의대정원확대 등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 행동이 9월 7일, 대한전공의협의회의 파업중단결정으로 일단락되었다. 의과대학 본과 4학년 학생들은 국시거부투쟁(?)을 철회하지 않았고, 의과대학 교수들 역시 단체행동으로 인해 제자들이 불이익을 받게 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2020년 의사들의 집단 행동이 완전히 종료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의대생, 전공의, 의사를 대표하는 조직 각각이 기존의 대표를 탄핵하거나 새로운 대표를 뽑기 위해 분주한 상황임을 생각해보면,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당장 다시 시작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해도 무방해 보인다.

 

  비교적 코로나19 방역에 성공적이었던 한국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관심과 신뢰가 높아진 상황에서 발생한 전국적인 의사들의 집단 행동은 시민들을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필수인력을 남기거나, 협상을 전제로 파업 기간을 미리 정해놓고 병원을 떠난 것이 아니라 중환자실과 응급실을 포함하는 전체 전공의의 무기한 업무 중단이 선언되자 정부 역시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후 정부와 협상 과정에서 특정 문구를 고집하며 내부 의견수렴을 이유로 합의를 번복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정책안에 대한 루머를 확대재생산하며 가짜뉴스를 생산·공유하는 모습은 사태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민들을 더욱 황당하게 했다.

 

  의사집단 내부에 공유되고 있었던 정책비판과 풍자를 담아 만들었을 의료정책연구소의 “의사파업에 반대하시는 분들만 풀어보세요” 라는 제목의 카드뉴스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에서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고 있었던 시민들조차 이들의 저의를 의심하게 했다. 시민들은 전교 1등과 공공의대 입학생, 수도권의 큰 병원과 지역의 공공병원, 값 비싼 면역항암제가 필요한 남성 폐암 환자와 생리통으로 한약을 처방받으려는 여성을 비교하는 시험지를 받아들고 각자의 불편했던 경험을 회상하며 질문하게 되었다. 수능성적이 좋은 순서대로 의사를 뽑는 현재의 입시 제도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할까? 환자가 몰리는 대학병원이 없는 지방에서는 위급한 수술을 받아야 할 때 어떤 의사를 찾아가야 할까?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생리통에 대해 내가 찾아간 의사들이 큰 관심이 없었던 이유는 생리통이 생명에 위독한 질환이 아니기 때문일까?

 

자료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페이스북 (현재는 삭제된 상태임)  

  “의사는 공공재가 아닙니다”라는 의사들의 구호 역시 보건복지부 관료의 발언에 대한 반발을 넘어, 우리 사회가 답해야 할 질문으로 전개되고 있다. 국방, 교통, 교육 등과 더불어 보건의료는 근대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국 외로 눈을 돌려보면 의료기관 운영에서 의료인력 고용과 훈련까지 모두를 국가가 책임지는 영국의 국가보건의료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가 유명하고, 가장 시장화된 의료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미국 역시 전체 의료기관 중 국가나 지방정부가 직접 운영 하는 공공이 차지하는 병상이 20%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한국의 경우 전국민건강보험제도를 통해 재정을 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체 병상 중 공공으로 분류되는 병상은 계속해서 줄어들어 현재 9%가 채 되지 않고, 공공 영역에서 일하는 의사 인력의 비율도 10.7%에 불과하다.1) 국민들이 보건의료에 대해 느끼는 심정적인 거리 역시 영국과는 크게 다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의 개막식에는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동병원인 그레이트 오먼드 스트리트 병원(Great Ormond Street Hospital) 에 대한 공연이 포함되었다. 한국의 의료 수준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의료인 당사자가 아니라면 이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기는 어려운 것을 생각하면 국가마다 보건의료의 위치나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NHS에 대한 공연, Source: http://dailym.ai/3kuEUHJ

  이런 점에서 의사 직종을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자원 취급하는 발언이 집단적 분노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료의 공공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의료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회 곳곳에서 의료는 공공재여야 하고, 국가가 더욱 적극 적으로 공공의료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공공의료강화에 대한 기존의 주장은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의료 기관과 직접 고용하는 의료인력을 더 늘려야 하는 공적 소유의 문제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지만, 보건의료의 공공성(publicness)은 이와 같은 논의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다.

 

  공공성은 주로 교육과 사회복지, 보건의료 등 사회적 권리와 관련된 영역에서 공공정책과 관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나 제도의 형태를 논의하는 데에 활용되는 개념이다. 좁은 의미에서 공공성은 국가의 소유를 지칭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공공성은 사회적·정치적 권위의 영향을 받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공적 가치(public value)에 부합 하는지에 대한 규범적 의미를 포괄한다.2) 이런 점에서 의료의 공공성은 단지 공공병상이 전체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지가 아니라, 보건 의료가 시민들의 요구와 국가적 필요에 부응할 수 있는 구조와 과정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 된다

 

  물론 공적 소유의 문제는 중요하다. 코로나19 유행 대응 과정에서도 의료기관의 공공성은 공적 소유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많은 공공병원이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기존의 계획을 포기하고 정부의 방역 정책에 따랐다. 일부 공공병원의 경우 1월 말부터 음압격리병동 운영을 위해 사전대비훈련을 하고, 자동문을 설치해 동선을 분리하고, 선별진료소를 설치해 코로나19 의심환자를 받았다. 이에 비해 대부분의 중환자실을 보유한 민간병원들은 코로나19 환자를 보지 않는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받아 기존의 진료를 지속했다. 물론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다른 심각한 질병으로 아픈 사람들을 치 료하는 병원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고, 민간의료기관이 국가적 재난 대응에 할애할 수 있는 자원과 인센티브가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가 군대와 자원봉사자 등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해 코로나19 대응에 나서던 시기에도 민간의료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고, 팬데믹 상황에서도 시장의 이해관계에 더 강하게 묶여있는 민간의료기관의 모습은 한국의 보건의료에 대한 공적 통제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의견을 반영하고, 공적 가치를 주장할 방법이 요원한 거대한 시장에 가깝다. 어떤 병원이 어디에 더 필요한지, 우리 지역 병원에서 어떤 진료과목을 늘이고 줄이는 것이 좋을지, 적자가 지속되는 병원을 더 잘 운영하기 위해 어떻게 병원을 변화시키면 좋을지 우리는 보통 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 공공병원조차도 개별 진료에 대한 고객의 소리가 아니라 시민들의 집합적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이니, 보건의료에 대한 시민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위한 제도를 운영하는 여러 나라와 달리 한국 에서는 의료기관의 운영과 보건의료정책이 사회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조차 힘들다.

 

  어쩌면 2020년의 의사파업은 한국의 시민들이 어떤 의사와 보건의료체계를 기대하는지에 대한 커다란 질문을 남겼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지, 아파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의사와 어떤 관계를 맺기를 기대하는지, 주당 88시간이라는 살인적인 근무시간을 버티는 전공의들의 억울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어 느 것 하나 시민들의 동의와 정치적 결정 없이는 해결되기 어렵다. 의사파업이 보여준 또 하나의 교훈은 의사나 정부가 보건의료 정책을 독점하는 상황에서는 가장 약한 사람들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는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명백해진 이상, 가장 절실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묶어내는 시민들의 정치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1) 건치신문(2020.09.18.) “병상 수 기준 공공의료 비중 매년 감소”. https://bit.ly/3cbxbvl

2) 김선, 김창엽, 이태진. (2015). 공공성 개념에 기초한 의약품 생산·공급 체제의 유형화. 비판사회정책, (48), 91-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