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68호] 골프 문화의 혁신과 변화

dreaming marionette 2024. 5. 1. 15:24

최우열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

 

 

[출처 : freepik]

 

  사람들이 언제부터 골프를 치기 시작했는지 그 기원은 불분명하다. 오늘날 골프의 발상지로 인정받고 있는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의 올드코스에서는 대략 1400년경부터 사람들이 골프를 쳤다고 전한다. 영국의 골프사학자 바트 심슨경이 주장한 골프의 창세기에 따르면 스코틀랜드 북쪽 해변에는 원래 링크스라고 불리는 기복과 경사가 심한 모래 둔덕이 있었다. 염도가 높아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잡초와 잡목이 무성한 버려진 땅으로, 공유지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양 떼가 이곳을 지나가며 풀을 뜯거나 밟아서 마치 넓은 길처럼 평탄해졌고 사람들은 이것을 페어웨이라 불렀다. 계속 이동하며 풀을 뜯던 양 떼와 달리 야생 토끼들은 굴을 파고 한곳에 오래 머물며 주변의 풀을 뜯어 먹으며 살았는데 주변보다 훨씬 풀이 짧았다. 이곳에서 양 떼를 몰던 목동들은 심심파적 삼아 나무 작대기로 돌멩이를 쳐 토끼 굴에 집어넣는 놀이를 하곤 했는데 이것이 바로 골프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골프의 경기 방법과 규칙은 매우 단순하다. 클럽이라고 부르는 막대기 비슷한 장비로 골프공을 쳐서 가장 적은 횟수로 지름 4.25인치(108mm) 크기의 구멍에 집어넣는 사람이 이기는 경기다. 단순한 만큼 쉽고 재미도 있어서 많은 사람이 골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지금은 한 나라가 됐지만, 과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13세기부터 약 400년 동안 국경을 맞대고 크고 작은 전쟁을 거듭하던 앙숙지간이었다.

  1457년 스코틀랜드의 국왕 제임스 2세는 숙적 잉글랜드와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에서 많은 국민이 활쏘기 연습 대신 골프에 빠져 훈련을 게을리하자, 골프금지령을 내린다. 당시 골프금지령을 위반한 사람은 감옥에 갇히거나 무거운 벌금까지 물어야 했다. 하지만 골프금지령은 그다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왕은 이후에도 2차례나 더 금지령을 내려야 했다. 결국 스코틀랜드군은 1513년 플로든필드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에게 대패한다. 왕이었던 제임스 4세를 포함, 무려 1만 명 이상이 전사했다. 골프의 치명적인 매력과 중독성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이런 골프가 처음 한국에 들어온 것은 일제 강점기 때다. 1921년 당시 남만주철도국(구 조선 철도국)이 직영하던 소공동 조선호텔의 투숙객 서비스와 외국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지금의 용산 효창공원 부지에 9홀 규모의 골프장을 건설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던 골프가 본격적으로 전 국민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8년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 이후부터다. 박세리의 맨발 투혼과 극적인 승리는 당시 IMF 외환위기로 실의에 빠져있던 많은 국민에게 큰 위안을 주었고, 잃었던 용기를 되찾는 해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박세리의 우승으로 그때까지 골프를 몰랐던 많은 사람이 골프라는 스포츠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골프에 관한 관심도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이듬해 당시 김대중 정부는 골프대중화 선언을 통해 정부 차원에서 골프 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면서 한국의 골프장 건설 붐이 일게 된다. 1995년 말 전국에 96개에 불과하던 골프장 수는 2022년 말 현재 514개에 이른다. 골프장을 찾아 골프를 즐기는 사람도 연인원 1995800만 명에서 연평균 7% 이상 성장해 2021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5천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프로축구 K리그 연간 관중 수가 301만 명, 프로야구 KBO리그 연간 관중 수가 810만 명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골프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다. 한국갤럽이 2022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만 18세 이상 한국인 중 34%가 골프를 칠 줄 안다고 응답했다. 무려 성인 세 사람 중 한 명꼴이다. 골프를 칠 줄 모른다고 응답한 사람 중에서도 약 32%는 앞으로 사정이 허락된다면 골프를 배우겠다고 한다. 같은 해 문화관광체육부 국민생활체육조사에서 향후 금전적 여유가 있다면 하고 싶은 운동으로 전체 응답자의 16.5%가 골프를 꼽아 1위에 올랐다. 한국인의 이런 골프 사랑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유난하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골프데이터텍의 보고서에 따르면 골프장비 및 골프의류 산업에서 한국은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시장으로 1인당 지출액만 따지면 세계 최고다.

  한국인들이 이처럼 골프에 열광하는 데는 어두운 사회문화적 배경도 있다. 세계 어느 곳보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 분위기가 골프의 인기에 한몫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나 능력에 대한 정확한 자기평가를 위해 남들과 곧잘 비교한다. 그런데 유독 한국인들이 이런 성향이 강하다. 어릴 때부터 경험한 살인적인 입시 경쟁의 영향 탓이다. 많은 한국인이 모든 것을 서열화하고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 비교 중독증에 빠져있다. 도로에 유달리 수입차나 대형차가 넘쳐나는 것도 남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귀족 스포츠의 지위를 누려온 골프는 한국 사회에서 남들에게 우월감을 드러내는 자기 과시의 수단이자 신분 상승의 상징으로 기능했다. 최근 들어 골프에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동인은 신기술과 전염병이다. 미국과 한국에서는 골프에 첨단 IT기술이 접목된 탑골프(Topgolf)와 스크린골프가 전통적으로 골프 무관심 계층이었던 젊은 세대와 여성을 골프로 이끌고 있다. ‘탑골프는 골프를 주제로 한 이색 놀이공간이다. 2,000평가량의 넓은 대지에 3층 규모로 골프 타석 등 골프 관련 시설과 바, 레스토랑, 각종 소모임을 위한 공간들이 마련돼 있다. ‘탑골프각 층은 골프 스윙을 할 수 있는, 70100타석이 설치된 독립 공간으로 나눠져 있으며 부스마다 최대 6명이 이용할 수 있다. 정면 바닥에는 20야드에서 250야드까지 다양한 거리별로 다트의 과녁처럼 생긴 10개의 목표가 설치돼 있다. 마이크로칩이 내장된 골프공을 쳐 얼마나 가까이 목표에 붙이느냐에 따라 자동으로 점수가 계산된다. 마치 볼링처럼 부스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자신의 샷 결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목표의 거리와 정확도에 따라 다양하게 설정된 점수로 승부를 가린다.

  1인당 이용요금도 골프장 이용료의 1/5 수준으로 저렴하다. 시설 안의 바나 레스토랑에서는 술이나 음료는 물론 간단한 식사까지 주문할 수 있다. 미국에서 여가 활동으로 인기를 누리는 볼링, 파티처럼 골프를 술과 음식을 즐기며 친구, 가족과 함께하는 오락거리로 새롭게 재창조한 것이다. 미국에서 탑골프처럼 골프장 밖에서 골프를 즐기는 인구는 2014540만 명에서 20221,850만 명으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의 스크린골프는 2002년 그 역사가 시작됐다. 초기에는 조잡한 화면과 기능으로 골퍼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2007년부터 성능이 대폭 향상되고 이용자 간 온라인 네트워크를 활용한 골프대회가 인기를 끌면서 새로운 골프 문화로 자리 잡았다. 스크린골프와 탑골프는 스포츠에 첨단 정보기술(IT)을 결합하고 다양한 오락적 요소를 가미해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과 재미를 제공하는 스포테인먼트(sportainment)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그동안 골프는 돈이 많이 들고 나이 든 사람이나 하는 지루하고 따분한 운동이라는 이미지 탓에 젊은 세대로부터 외면받았다. 미국의 탑골프와 한국의 스크린골프는 이러한 인식을 바꿔 젊은이들을 골프로 끌어들이고 있다.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직장동료, 친구, 가족과 함께 골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19 역시 골프 문화 변화에 한몫했다. 유럽의 흑사병이 노동력의 급격한 감소를 초래해 중세 봉건사회의 붕괴를 앞당겼듯이 전염병이 사회를 바꾸는 것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집 밖 활동은 제한되었지만, 골프장은 비교적 안전지대라는 생각에 주로 젊은 사람이 골프장으로 몰렸다. 한국의 경우, 코로나19 기간에만 연간 900만 명 가까운 사람이 더 골프장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도 코로나19 기간에 한 해 6,100만 명 이상이 골프장을 더 찾았다.

젊고 새로운 사람들이 대거 골프장에 등장하자 골프장의 분위기가 큰 폭으로 바뀌었다. 기존의 진지함과 엄숙주의 대신 발랄함과 자유분방함이 자리를 차지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드레스코드에서 나타났다. 세미 정장 내지 점잖은 캐주얼차림이 당연한 에티켓이었는데, 느닷없이 후드티와 조거팬츠가 등장했다. 초기에는 일부의 반발과 저항이 있었으나, 대세에 밀려 금세 진압되었다. 신기술의 전파와 전염병의 창궐로 한때 그들만의 놀이였던 골프가 누구나 즐기는 대중 스포츠로서의 면모를 점차 갖추어 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