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168호] 한국의 공동체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dreaming marionette 2024. 5. 1. 15:13

송효정 기자

 

 

한국에서는 디스토피아 장르를 찾기 어렵다. 모두가 해피엔딩을 바라기 때문인지 비교적 디스토피아 장르가 제작되지 않았는데, 최근 한국의 사회상을 잘 담은 디스토피아 영화가 공개되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국형 디스토피아 영화로 아파트 단지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과거에는 마을에서 살아가며 친구를 사귀고, 이웃 주민들과 함께 삶을 나누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마을의 개념이 희미해지고, 대신 아파트 단지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즘에는 마을에서 살아간다기보다는 아파트 단지 내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부속 시설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일부 10대들이 SNS 프로필에 아파트 이름을 적어두기도 한다니 아파트라는 공간이 한국인에게 큰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국 사회의 아파트 단지를 공동체라는 개념을 통해 흥미롭게 그려내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제공]

 

유토피아(utopia)는 ‘좋은 곳(eutopia)’과 ‘현실에 없는 곳(outopia)’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갖고 있다. 이상향을 의미하는 이 용어를 창조한 토마스 모어는 그의 저작에서 유토피아를 화폐, 사유재산, 범죄가 없는 장소로 묘사한다(조혜영, 2023). 반면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겉보기에는 평화롭지만 내부에는 통제할 수 없는 폐해가 존재하며, 자원 부족, 범죄, 박해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절망적인 미래상을 말한다(우즈위, 2019).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곳 사회는 모든 구성원이 노동을 하고 그 대가로 필요한 자원을 공급받는, 마치 유토피아적 사회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노동한 만큼의 혜택만 받고 공동체 유지를 위해 지나친 감시통제와 억압, 규칙이 존재하는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드러낸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제공]

 

영화의 주된 배경이자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은 ‘황궁아파트’는 생존자들이 모여드는 장소로 그려지며 이곳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강은 지진의 여파로 말라버리고 기온도 내려가 사람들이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그럼에도 ‘황궁아파트’는 무너지지 않았고, 이 소문을 듣고 외부에서 생존한 사람들이 황궁 아파트로 몰려들게 된다. 외부인들의 출입이 증가하면서 생긴 갈등과 피해로 아파트 주민들은 주민 대표 ‘영탁’을 중심으로 외부인을 내쫓는다.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바리게이트를 설치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한 후, 아파트 주민들은 단지 내에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한다.

 

‘공동체’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회 집단을 의미하는데, 한 공동체에 소속된 구성원들은 소속감을 느끼고 서로 협력하여 다른 구성원들을 돕는다. 이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집단 구성 형태이지만, 개인 중심의 사회와 대도시 위주의 생활 방식이 확산되면서 공동체는 이전과 같은 위치를 잃고 있다. 최근엔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 사회 형태로 여겨지기도 한다. 공동체는 가치가 개입된 개념으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는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넘어선 의미를 가진다. 개인보다 집단에 가치를 두고 영화에서도 개인의 생존보다 집단의 생존이 우선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다룬 SF 장르는 현실 세계에 대한 해석과 전망이 반영되는 특성을 갖는 만큼 해당 문화권에 잠재된 생각이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작품 속 형성되어 있는 공동체를 분석하면 해당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보여지는 공동체는 한국 사회에서의 공동체 의식을 대변하는 듯하다.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 의식은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이루어진다. 가족이라는 집단에 대한 소속감은 한국의 공동체주의의 근간을 이룬다. 영화 속 폐허가 된 마을에서 외부인을 배척하고 살아남은 유일한 시설인 '황금아파트'를 입주민들끼리 독점하려는 모습처럼 황금아파트에서 보여지는 입주민들의 행동은 가족 중심의 공동체 의식이 확장되어 때로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가족이기주의'로 나타나기도 한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1인 가구의 증가와 개인주의 성향의 증가로 전통적인 공동체 의식은  약화되는 듯 보인다. 우리가 생각하던 전통적인 모습의 공동체는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곤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여전히 ‘가족’이라는 범주 안에 머무르며, 특정 공동체에 소속되고자 하는 성향을 보인다. 이는 도시 환경에서도 명확하게 나타나는데 최근에는 아파트 단지가 새로운 공동체의 단위로서 기능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모습의 공동체 의식은 희석되고 있지만 가족을 사적 영역으로 여기는 의식은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한국의 공동체가 때로는 폐쇄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는 우리에게 가족은 사적 영역이라는 의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식은 한국 가족의 특징이기도 하다. 

한국 가족의 특징 중 하나는 가족 구성원 간의 심리적 경계를 확고히 하고, 경계 내부의 구성원들끼리는 결속하고 응집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최연실, 2013). 이러한 특징은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황금아파트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유사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캐릭터들의 공동체 유지의 목표가 강하게 드러나는 영화로 대재앙 이후 생존을 위해 형성된 '황금아파트'의 공동체는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목표를 위해 이야기 구성원 간 공동의 유대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유지한다.

 

영화 초반 ‘황금 아파트’로 외부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을 때, 입주민 ‘민성’과 ‘명화’의 집으로 외부인이 방문한다. 추운 밖을 피하기 위해 집에서 재워줄 수 있다는 외부인의 부탁에 ‘민성’은 거절하려고 하지만 ‘명화’가 이들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후에는 곧바로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민성’ 부부와 외부인들은 처음에는 잘 지내는 듯하지만, 점차 외부인들이 그들의 집에서 머물며 한정된 물품을 당연하게 사용하는 모습에 ‘민성’은 불만을 가지게 된다. 

이 부분은 한국 사회의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될 수 있는 갈등을 잘 보여준다. '민성'의 모습은 재앙 이후의 상황에서 개인의 사적 영역 공간과 공동체 내의 공동 영역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보여준다. '민성'이 처음에 외부인을 거부하려고 했던 것은 자기 가족과 사적 공간을 보호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명화'가 외부인들을 받아들인 것은 전통적인 한국의 공동체 의식과 인간적인 연민에서 비롯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외부인들이 '민성' 부부의 집에서 머물며 한정된 자원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하는 갈등은 '민성'의 개인의 사적 영역을 보호하고자 하는 심리적 경계를 높이는 반응이며 이는 곧 황금아파트 공동체 전체로 확장된다. 결국 외부인 퇴출과 관련된 주민 회의에서 진행된 투표 결과로 외부인들을 전부 내보내기로 결정되었을 때 민성은 이에 동조한다. 외부인 퇴출 활동에 참여한 민성은 이후 주민 대표 ‘영탁’의 제안을 받아들여 '황금아파트'의 방범대 반장을 맡게 되는데 이는 공동체 내의 응집력 강화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민성'은 개인적인 욕구로 시작하였지만, 이후에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 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제공]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아파트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한국에서는 ‘공간’에 큰 가치를 둔다. 아파트는 한국 사회에서 주거 공간을 넘어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로서 역할을 한다. 아파트의 상징적 의미를 반영하듯 '황금아파트'는 주요한 설정 중 하나이며, 외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드림팰리스'라는 다른 아파트와의 대비를 통해 계층 간의 차이를 강조한다. 재난 상황에서 ‘황금아파트’가 상징적으로 가지는 가치는 국회의원도, 20년을 근무한 경비원의 충성도(loyalty)도 의미 없다. 재앙을 기점으로 황금아파트와 드림팰리스 주민들의 위치가 전복되는 과정과 주민들의 '황금아파트'에 대한 집착은 사회적인 계층의 이동과 욕망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영화의 전개 과정에서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서로 유대를 가진 사회 집단으로 구성이 된다. 외부인들이 황금아파트의 기존 입주민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건 이후 내부의 사람들은 외부인들을 아파트 단지 밖으로 추방한다. 또한 이들은 밖으로 추방당한 사람들이 내부로 들어오기 위해 공격적으로 행동할 것을 우려하여 외부인들에 대한 배척이 이들을 막으려는 방어적 조치라고 믿는다. 문제는 아파트 단지 밖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이 시스템에 대해 공감한다는 점이다. 추방당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 또한 '내부'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부’와 ‘외부’를 경계 짓는 요소를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외부 사람들은 주민들 몰래 단지 안에서 기생하고 내부 사람들은 이들을 몰아내려고 하면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우리 사회의 복잡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라는 특정 공간을 통해 한국 사회의 복잡한 인간관계를 탐구한다. 이 영화는 아파트가 가지는 단순 거주 공간을 넘어선 상징적 의미와 사회적 지위를 통해 한국 사회의 공동체 의식과 가족 중심의 사회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흥미롭게 그려내었다. 특히, 공동체 내에서 응집력과 배타성이 어떻게 작동하고 강화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참고문헌]

조혜영. (2023). 디스토피아 속 유토피아는 가능한가: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 나>(2020)를 중심으로. 비교문화연구, 68(0), 69-96.

우즈위 and 최원호. (2019). 디스토피아 영화에 나타난 인물과 세계관에 관한 연구. 영상문화콘텐츠연구, 16, 249-264.

최연실 ( Youn Shil Choi ). "한국가족의 변화에 대한 일고찰: 변화 양상, 맥락 및 쟁점을 중심으로." 한국가족관계학회지 17.4 (2013): 4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