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68호] 현장감 있는 예술교육 : 호원대학교 K-pop그룹

dreaming marionette 2024. 5. 1. 15:31

호원대학교 예술대학장 신연아

 

 

2019년 호원대학교가 K-pop학과를 신설했다. 66개월 동안 실용음악학부장을 한 경험 때문인지, 신설학과를 맡게 되었다. 10대 때부터 연습생을 시작하는 K-pop시장의 흐름과는 달리 이미 20살이 된 학생들을 모아 무얼 하겠다는 거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 또한 K-pop학과 신설을 반대했었다. 하지만 책임을 맡은 이상,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K-pop은 산업 음악이다. 철저히 계산된 뮤직비지니스의 산물 인 것이다. 작곡, 작사, 안무, 스타일링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치밀한 협업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을, 잘 연습한 퍼포머들이 무대 위에서 실현하는 융합 산업물이다. 무대 위에 있는 퍼포머들만 보이니, 일반적인 시선으로 볼 때 대학에서의 K-pop전공 신설은 어리석어 보일 것이다. 그래서 퍼포머 양성에서 그치지 않고, K-pop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속한 모든 직업군에 대한 교육을 목표로 정했다.

 

1회 입학생을 만나보니, 기획사 오디션을 보기엔 이미 늦은 나이라는 패배감에 고개 숙인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물리적으로 20살은 너무나 어린 나이라는 것, 그 어떤 일도 시작할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걸그룹 제작을 결심했다. 음원 녹음 및 출시,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일단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2021, 1기생들로 구성된 대학 최초 걸그룹 Azer(아째르) 출시를 시작으로, 2022년 걸그룹 Azer Blossom(아째르 블라썸), 남성그룹 Kairos(카이로스), 2023A-Plus(아플러스), 2024년엔 혼성그룹 Z.peline(지플린)을 꾸준히 탄생시켰다.

 

 

 

일반적으로 K-pop그룹 제작은 많은 예산과 숙련된 노하우가 필요하다. 다행히 다년간의 K-pop 앨범 코러스 경험(5,000곡 참여)26년간 업계에 몸담고 있던 세월 덕에 K-pop이 제작되는 과정은 익히 알고 있었고 약간의 예산만 필요했다. 2020년 제작 당시 호원대학교는, 대학혁신 특성화 사업을 진행 중이었기에 그 예산을 받아 Azer를 제작했다. 일반 기획사에 비하면 1/100을 조금 넘는 정도의 예산이었기에(신인 아이돌그룹 최소 제작비 10) 내 노동력과 인맥을 동원했다. A&R(음원 기획과 녹음 스케줄 정리와 앨범 소개 글, 녹음파일 전달 등의 업무 담당자)역할과 매니저(헤어 메이크업 예약, 이동), 기획자(컨셉 결정, 선곡, 뮤직비디오 컨셉 논의), 노래 녹음 디렉터, 코러스 녹음까지 모든 역할을 했다. 보도자료도 직접 작성했다.

K-pop을 하기에는 20살도 늦었다는 편견과, 인형 같은 외모여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로 하니 대상은 외국인들이었다. 서양인들은 동양인의 나이를 잘 가늠하지 못한다. 아름다움의 기준도 좀 폭넓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로 다 읽을 수 있는 쉬운 단어 “Elegante”를 곡 제목으로 결정했고 팀명은 이집트어이다. 꼭 인형 같은 외모가 아니어도 K-pop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실제로 제작 과정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현장학습이란 교과를 새로 개설할 수 없는 시기였기에 (모든 교과과정은 전년도에 보고되어야 한다) 이미 개설된 교과목에 운영 방식을 설계하여 적용했다.

 

퍼포먼스 워크샵이란 수업 시간에 수강 학생 전원이 “Elegante” 곡에 안무를 창작하는 조별 과제를 내고, 그 창작물을 해당 과목 댄스 교수님이 정리하여 마무리했고, 그 곡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학생들을 추려서 각자 노래 테스트를 거쳐 파트를 결정했다. ’영상제작실습수업의 일환으로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외국인 인턴을 통해 3개 국어(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로 된 앨범 소개 글과 멤버 소개 글을 학과 유튜브 링크와 함께 SNS에 유포했다. 그 결과 105만을 넘는 조회수와 95백 여명의 팔로우를 이끌어냈다. SNS가 있었기에 가능한 홍보였다.

 

[출처: 호원대학교 k-pop학과 제공] '아째르'
[출처: 호원대학교 k-pop학과 제공] '아플러스'

 

 

이듬해, Azer BlossomKairos는 창업동아리 예산을 받아 제작했다. 예산 지출 명이 동아리 활동이다 보니, 아째르 때보다 5배 더 적은 돈으로 시도했다. Azer 때는 약간의 의상 보완과 안무에만 K-pop 학생들이 참여하는 수준이었으나, Azer BlossomKairos 때는 실용 음악학부생들이 음악을 만들었고, K-pop 학과생들이 안무를 창작하였으며, 기획과 학생들에게 공지하여 음원 출시와 뮤직비디오 출시 작업에 정산 업무를 맡아줄 스텝을 모집했다. 하나의 학부에서 타 학부와의 융합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또한 Azer선배들이 안무 창작과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에 참여하여, 아티스트의 역할이 아닌, 스타일리스트와 후배들을 가르치는 티칭 실습을 경험했다. 호원대학교 예술대 내에서 자체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또 한 번 향상된 작업방식을 터득한 것이다. 올해 출시된 지플린은, 학생들의 창의성을 더 발휘하도록 공모전을 통해 선발했다.

 

20231학기 말에 K-pop학부에서는 힙합 느낌의 혼성그룹 공모를 공지했다. 음악, 안무까지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타 학부생들과 협업 가능) 기획하고, 팀명이 명시된 기획안과 촬영한 안무 데모 영상을 제출하는 방식이다. 공모에 선발된 팀에게는 멘토링, 음원 출시, 뮤직비디오 출시의 기회가 주어진다. 방학이 끝나는 시점이 마감 기한이었기에 이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열정적인 방학을 보내게 될 것이란 교육적인 계산이었다. 내 예상대로 지플린 멤버들은 방학 내내 음악을 만들고 지우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하였고, 안무까지 스스로 만들어 내느라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고 한다. 공모전에 응한 팀은 단 한 팀이었고 그들의 음악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여기에 사운드를 보강할 편곡자를 붙이고 안무를 다듬는 게 필요하여, 실용음악학부 뮤직프로덕션전공 학생에게 편곡을 의뢰했고, 안무는 댄스 교수님께서 학생들의 창작 안무를 살려 마무리해 주셨다.

2학기 기말을 마치자마자 지플린 음원 녹음과 뮤직비디오 영상 기획 작업에 돌입했고 노래 녹음 디렉터는 내가 맡았다. 지플린 멤버들은 안무와 작사, 트랙 메이킹(편곡 사운드), 랩메이킹에 참여했고, 팀명뿐만 아니라 모든 제작 과정에 함께 아이디어를 냈다. 자기 주도 학습설계방식이 이루어진 것이다. 매 팀이 출시될 때마다 앞선 팀보다 더 향상된 실력에 놀라웠고, 내 의도대로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협업하여 예술대 내의 융합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에 뿌듯했다.

영상제작실습 수업을 하시는 교수님께 또 뮤직비디오를 부탁드렸고, 기존에 출시된 그룹들과는 다른 강렬한 사운드의 지플린 음악에 맞는 누와르 영화 컨셉으로 결정했다. 촬영감독,영상편집, 음악믹싱 마스터링, 스타일링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지만, 자켓 디자인과 A&R 업무는 기획과 학생들이 맡았다. 지플린 제작비는, 호원대학교가 예술 분야로 지원받은 지방대활성화 사업비에서 지출되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구축된 K-컬처엔터테인먼트사업단에서 호원엔터를 설립했고, 지플린이 1호 결과물이다.

 

공모전을 한 이유는, 학습 동기 유발이 목적이었다. 학교가 기업과 다른 점은, 결과물에만 의미를 두지 않고 교육적인 과정에도 큰 의미를 둔다는 점일 것이다. 또한 특정 교수가 선발한 팀으로 제작이 반복되면 특정 교수에게 권한이 주어져, 학생들은 해당 교수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제도적으로 공평하게, 또한 다 함께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교육적인 결정이라 판단했다.

 

순수학문일 경우, 대학에서는 연구만 해도 무방할지 모르나 예술교육은, 교실에서만 할 수는 없다. 현장으로 연결되지 않는 실기 교육은 생동감이 없다. 현장에서 직접 경험해야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기에 현장실습은 큰 의미를 갖는다. 실제 현장을 한 번이라도 경험 해 보면 학생들의 실력은 물론 가치관과 학습 태도가 달라진다. 마냥 동경만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판단하에 선택할 수 있는 당당함이 생긴다. 또한 대중예술 분야는 대학과 현장의 경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학생이어도 수준 높은 예술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그것이 시장으로 바로 연결될 수 있다. 반대로 졸업한다고 해서 모두 다 프로페셔널이 되어 현장에 바로 투입되지는 않는다.

 

대학이 해야 하는 교육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실력 좋은 학생들을 대할 때 더 고민이 많아지는 이유는, 학생의 실력향상에만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중 음악시장은 그리 크지 않다. K-pop의 성장은, 한국을 넘어 세계로 시장이 확장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많은 실력자들은 서로가 만들어 낸 경쟁률에 치여 자책하는 게 예술계의 현실이다. 실력을 펼칠 수 있게,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하게 하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 주고, 또 다른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하는 것까지 교육의 영역에 포함 시킨다면 피곤한 일이긴 하다.

대학에게 많은 역할을 요구하는 시대이다. 대학은, 재학생 충원율, 교원 확보율뿐만 아니라 취업률까지 고려해야 한다. 지방대학일수록 그 현실은 매섭다. 하지만, 위기가 기회를 낳는다는 말처럼, 위기에 놓인 지방대학의 현실은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배우게 한다. 교육의 목표는 인성을 갖춘, 독립적인 전문 인재 양성이라 생각한다. 냉정한 현실을 미리 경험하게 하여 면역력을 키워놓는 것 또한 포괄적인 교육의 영역에 포함시킨다면, 나는 지방대학의 교수로서 아주 치열하게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하겠다. 꿈을 꾸는 것은 나이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동화 같은 희망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