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호] 응원봉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석사 조소연
1.
12월 3일 밤이었다. 일하는 단체에서 진행 중이던 큰 프로젝트를 마치고 오랜만에 홀가분한 기분으로 애인과 함께 귀가하던 길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큰언니에게서 “비상계엄이래”라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와있었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가짜뉴스라고 생각했다. 나는 괜히 긴장해서 TV를 틀려고 했다. 문득 애인이 트위터 좀 빨리 켜보라고 했다. 이런 비상 시에 내가 좀 더 신뢰할 건 트위터 타임라인에 진을 친 친구들의 반응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트위터에 접속한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단번에 체감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미친 거 아냐?” “???”하는 반응부터 시작해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설명들이 타임라인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에스텔뉴스계정’에 올라오는 관련 속보가 신속하게 리트윗되고 있었다. 곧이어 김용현 국방부장관 직인이 찍힌 포고문이 올라왔다. 국회의원들이 담넘는 사진,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의 영상,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부수는 장면을 담은 트윗에 나도 열심히 ‘마음에 들어요’와 ‘리트윗’를 누르며 플로우에 동참했다. 시내에 출몰한 장갑차의 사진에 경악하며 빠르게 사진을 퍼나르도 했지만 현재 찍힌 사진이 아니라는 소식에 더해 이런 비상시국에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누군가의 엄중한 경고에 공감하며 리트윗을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안이 가결되고 나서도 해가 뜰 때까지 한동안 잠에 들지 못했다. 어젯밤 운좋게 일찍 잠든 친구들은 타임라인을 빼곡히 채운 어지러운 뉴스에 어리둥절했고, 나와 함께 밤을 지새운 친구들은 잠을 거의 못 잔 채로 출근을 해야 한다며 불평했다. 나는 트위터 속 친구들을 뒤로하고 막 잠에 드려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이 친구들은 내가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된 걸까? 우리는 어쩌다가 친구가 되었더라? 정확히는, 어쩌다가 긴박한 정국 속 서로의 정치 감각과 해석에 의지하며 함께 밤을 지새우게 되었을까? 가족에게 온 카카오톡 메시지는 가짜뉴스 취급하면서, 트위터 친구들의 반응을 신뢰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2.
잠깐 설명하자면, 나의 트위터 친구들은 적게는 10대 후반, 많게는 30대 후반의 나이로, 여성이고, 퀴어이거나, 아이돌 혹은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야구 팬이며, 많은 경우 이 속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당연히 나 또한 그렇다). 처음 내가 트위터를 시작하던 2016년 말, 2017년 초는 박근혜 퇴진 운동과 페미니즘 대중화와 같은 한국 사회의 커다란 정치적 변화가 추동되던 때였다. 동시에 아이돌 팬들의 주요 활동 플랫폼이 포털 사이트 카페나 홈페이지에서 트위터로 이동하고 있었다. 페미니스트이자 퀴어, ‘덕후’였던 나는 자연스럽게 각종 정치 뉴스, 페미니스트 집회나 행사 정보뿐만 아니라 아니라 ‘덕질’ 관련 콘텐츠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소비하기 위해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트친소’를 통해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을 사귀며 이곳의 소통 문법과 행동 양식을 익혀야 했다.
기존 엄격한 팬덤 규범에 염증을 느끼던 많은 페미니스트-팬들은 비슷한 감각을 지닌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페미바순허브’ 같은 네트워크를 만들어 타임라인을 조금씩 넓혀갔다. 이들은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케이팝 산업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여성혐오 발언이나 행동을 공론화했으며, 때로는 불매나 해시태그 운동 같은 사회운동 레퍼토리를 적극 활용했다. ‘페미니스트’와 ‘팬’이라는, 때로는 충돌하는 것처럼 보였던 두 개의 정체성은 팬덤을 정치적 공동체로 재구성함으로써 융화될 수 있었다. 페미니즘과 팬덤의 조우는 팬들이 그간 목격하거나 몸소 겪은 낙인, 혐오, 폭력을 해석하고 이에 대해 저항할 자리를 마련케 했다(조소연・이나영, 2023).
페미니스트-팬들은 단순히 ‘젠더 문제’만을 자기 이슈로 삼은 것이 아니었다. ‘온라인 상 아이돌 목격담은 이들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아이돌의 공항 사진은 노동자로서 아이돌의 노동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한국 아이돌의 드레드 헤어는 흑인 문화에 대한 문화 전유(cultural appropriation)가 아닌가?’와 같은 질문은 이들 사이에 끊임없이 논쟁 거리가 되었고, 그 자체로 토론장을 열어젖혔다. ‘공출목디사과졸¹’ 불매 선언은 그 결과물 중 하나였다. 자신이 대결하고자 하는 세계의 재생산에 자신이 결정적으로 공모하고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독특한 윤리 감각과 정치적 실천의 결정체였다.
그러나 페미니스트-팬들에게 꼭 산업이나 (남성)아이돌만이 저항의 대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가령 페미니즘 대중화에 따라 페미니즘의 언어에 익숙해진 2030여성들에게 ‘성폭력’이나 ‘성희롱’, ‘성적대상화’와 같은 표현들은 팬덤 내부 투쟁에 있어서 상대방을 공격하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활용되기도 했다(김수아, 2017). ‘소비 지양’이라는 공동체적 실천은 종종 ‘규칙’을 어기는 이들에 대한 비난의 기제로 동원되기도 했다. 요컨대 페미니스트-팬들의 새로운 정치적 실천과 윤리적 감각은 하나의 공고한 정치적 공동체를 산출하기보다는, 이슈에 따라 느슨히 연결되거나 해체되길 반복하며 팬덤을 하나의 정치적 장으로 변모시켰다.
3.
팬덤의 풍경은 초기 페미니즘 대중화 즈음에 비해서 많이 변했다. 당시 ‘페미바순허브’ 같은 페미니스트-팬들의 네트워크가 전체 팬덤에서 예외적 일부였다면, 특히 버닝썬게이트나 정준영 불법촬영 사건 등 케이팝 스타가 직접적으로 연루된 성범죄 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 ‘성착취’와 같은 문제는 일부 팬들의 문제의식에 머무를 수 없게 되었다. 팬덤은 더욱 젠더 정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간으로 변화했고, 이는 여성 팬들의 윤리적 감수성과 실천을 더욱 촉진시켰다. 팬덤은 페미니스트-팬들의 투쟁 공간이기도 했지만, 팬덤 활동을 통해 페미니스트가 되고 윤리적 감수성과 정치적 실천을 학습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여성 팬들에게 새로운 부담을 안기기도 했다. 반복되는 구조적 성차별・성폭력 문제와 지연된 젠더정의, 더욱 정교해진 플랫폼자본주의는 팬덤을 ‘피드백 루프’로 밀어 넣었고, 여성 팬들을 극심한 감정노동을 자처했다. “좋아하는 마음”과 “비판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공존하는 일상화된 양가감정(ambivalence) 속에서 ‘사과문 요구’는 이제 문제 발생 시 팬덤의 거의 자동화된 반응으로 자리잡았다(강은교, 2019).
동시에 케이팝 산업의 확장과 함께 그 위상 또한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다. 산업 규모가 확대되면서 각종 굿즈 판매를 통한 수익 모델이 강화되었고, 그중에서도 응원봉은 팬덤의 상징성을 집약한 대표적인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아시아경제, 2024). ‘빠순이’라는 명칭으로 압축되는, 과거 어린 여성 팬에 대한 멸시와 낙인은 점차 옅어졌다. 특히 방탄소년단 팬덤 ‘아미(ARMY)’의 사회운동 참여는 국내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조명되었다(시사인, 2022; 경향신문, 2023; 서울신문, 2020).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팬’이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4.
생각해보면, 집회에 참여하느냐 마느냐는 처음부터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선택지였다(다들 공감?). 내가 알고 싶었던 건 집회가 어디서 언제 열리는지(근처 맛집과 카페는 어디 있는지), 무엇을 들고 가야 하는지(수많은 ‘최애’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그리고 누가 나와 함께 갈 것인지, 혼자 가게 된다면 어느 깃발 아래 서있어야 할지 등이었다(맞다, 나는 대문자 J다).
‘광장’이 열린 후 왜 이렇게 많은 2030여성들이 퇴진 집회에 참여했는지 이미 많은 논자들이 앞다투어 이야기했다. 동시에,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은 언제나 광장에 있었다’고 응수했다. 하지만 언제나 여성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광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초창기부터 다수의 여성이 응원봉을 지참해 집회에 참여하고, 선결제나 나눔, 떼창과 같은 팬덤 문화가 광장에 퍼져나간 것은 분명 ‘새로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응원봉을 든 2030여성이 광장의 주역으로 언급되고, 그 광장이 ‘촛불혁명’이 아니라 ‘빛의 혁명’으로 불리는 것 또한 전에 없던 일이다. 응원봉을 든 여성들이 왜 이렇게까지 집단적으로 광장에 참여했는지, 이러한 모습은 광장의 풍경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이것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에 던지는 함의는 무엇인지, 끊이지 않는 질문과 풀어야 할 과제들이 연구자인 나의 어깨를 무겁게 만든다.
다만, 오랜 시간 동안 팬덤 내에서 학습해온 윤리적 감각과 정치적 실천이, 언론의 조명이나 학술적 해석을 거치지 않았을지라도 분명 존재해왔다. 때때로 ‘우리’를 상처 입히고, 고통스럽게 하고, 소진되게 했을지라도, 그 자체로 정치적 잠재력으로서 존재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 잠재력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것이 어떻게 광장과 연결될 수 있는지 해석하는 일이 연구자로서 나의 책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6월 3일 치러질 조기 대선을 앞두고, 비록 성평등 의제가 사라졌다고 비판 받고 있는 대선일지라도, 나는 광장을 ‘함께’ 거치며 되돌릴 수 없이 변화한 세계관, 그리고 그 안에서 ‘함께’ 확인한 서로의 힘을 기억하고 싶다. 성차별과 성폭력을 부수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철폐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마침내 이 사회를 ‘광장’으로 만들 힘이 우리에게 있다고, 낙관하고 싶다.
¹ 공항사진 출근길 목격담 디스패치 사생활 과거사진 졸업사진의 줄임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