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6. 20:48
WHITE 꾸밈 없는 사랑, 그 순수의 절경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I
 순수, 그 영원한 기다림과 고요함

벙어리 청소부 남자, 그리고 그와 함께 다니는 여자.
어느 여름 남자는 서핑을 시작하고 여자는 항상 그를 곁에서 지켜본다.
엉성하기만 한 그는 동료의 놀림을 받으면서도 매번 바다를
향해 뛰어드는데.
여자가 바다를 찾은 어느 날 그가 보이지 않는다.     
가끔은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조용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조용한 사람들의 조용한 사랑.





그녀에게 I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4명의 남녀가 코마 상태가 된 여인을 돌보게 된다.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떠한 소통도 불가능한 그녀에게 점점 사랑에 빠진다.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지만 꿈을 꾸고 기다리며 갈등하고 아파하는 이들.  





 

렛미인 I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 갈게'

흡혈귀 소녀와 왕따 소년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
온 천지를 뒤덮은 순백의 눈 위에서
붉은 피와 흡혈귀의 도발적 행동이 난사되지만
스웨덴의 이국적 풍경이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영화.  

    





GREEN
 
지나간 시간들, 굳어진 마음들

스틸라이프 I 우리에게 과거는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가 존재하는 공간은 어떤 곳일까.

16년 전 떠나간 아내와 딸을 찾아가는 남자.
2년째 별거중인 남편을 찾아 떠나는 여자. 
각기 다르지만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여든다.
지나간 과거와 추억들과의 조우.
하지만 그들이 도착한 공간은 도시 개발로 인해 예전에 없었던 강이 흐르고 있는데...
평론가 이동진이 ‘이 영화는 완전하다’라고 평했던 지아 장 커의 2007년 작품.



굿,바이 I 
인간의 마지막 여행, 그 길 위에 서다.

작은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인 남자가 실직을 한다.
그는 아내를 위하는 마음에 보수가 가장 좋은 직장을 찾는데
그 일은 죽은 사람을 배웅하는 ‘납관’.
하지만 남자는 ‘납관’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배워가고 
자신과 멀어져 있던 가족들과의 사랑을 깨달아간다. 
 


 


솔로이스트 I
천재 장애우를 향한 관심. 과연 그는 그 손은 잡게 될까

대인기피증과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흑인 빈민가의 음악 천재. 
줄리어드 음대에 좋은 성적으로 진학했지만 결국 자퇴 하고 만다. 
우연히 한 기자가 그의 소식을 접하고 기자의 연재 칼럼을 통해 점차 사회의 관심을 받게 된다.  
하지만 오랜 기간 멸시를 받아왔던 그가 사회로 나오기는 쉽지 않다. 
LA타임즈 기자의 보도자료에 기초한 실화 작품.





BLUE 완성되지 않은 감정의 색채들, 사랑 후엔 이별

 

할람 포
I
어머니와 닮은 사람에 대한 로망, 오이디푸스의 또 다른 이름.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의 재혼을 준비하는 가족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소년은 집을 나선다. 
이리저리 방황하던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여자.  
그는 그녀에게서 어머니와 닮은 부분들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을 관음으로 해소하려 하는데 ....
영상과 함께 돋보이는 음악들.
‘빌리 엘리어트’의 아역 제이미 벨의 성인 로맨스 작품.



미치고 싶을 때 I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잃은 이들, 모두가 나처럼 이성을 잃을까?’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삶은 포기한 부랑자 남자.
부모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와 위장 결혼을 한 미래가 없는 젊은 여성.
그들은 서로 아무것도 간섭하지 말자는 계약을 하지만
둘은 점차 서로에 대한 사랑과 질투의 감정에 다다르게 된다. 
미칠 듯이 차오르는 사랑의 감정 앞에서 두 남녀의 삶은 묘하게 꼬여간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I 
노년 부부의 사랑, 그리고 떠나간 사람의 자리에 남겨진 것들.

남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아내는 
남편에게 여행을 가고 싶다며 마지막 추억을 준비한다.
하지만 여행 도중 아내는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장례식 이후 이미 각자의 생활에 바쁜 자식들은 아버지를 외면하고
결국 남편은 아내가 평소 가보고 싶었던 후지산을 향해 다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후지산 자락에서 부토 춤을 추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되는데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I 사랑하기에 그리워 하는가. 아니면 잊혀지는가.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 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유명한 영화.
블루의 스펙트럼 속에 희망과 사랑, 이별과 우울이 뒤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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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6. 20:24


우리 사회엔 자신의 열애를 위해 경계를 넘나드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숨고 도망치고 변신한다. 그리고 괴로워한다. 열외하지 않고서는 열애를 할 수 없는 딜레마에서 그들은 진실과 거짓,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경계를 만들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몰래 그어 놓은 선을 밟고 있을 뿐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화두로 성적 소수자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자.


송혜림(영화감독)


우리의 경계를, 이탈한 그들

푸른 새벽, 광활한 록키산맥을 배경으로 한 대의 트럭이 지나간다. 트럭은 어느 컨테이너 앞에 도착해 한 남자 (애니스)를 내려놓고 다시 길을 떠난다. 이제 막 소년티를 벗은 듯한 남자는 작은 보따리를 든 채 컨테이너 앞을 서성이고 잠시 후 좀 더 매끈하게 생긴 또 다른 남자(잭)가 도착한다. 두 사내는 한참동안 말 한마디 나누지 않지만 은근히 서로를 의식한다. 적극적인 시선을 보내는 쪽은 나중에 도착한 잭이고 어색한 듯 눈길을 피하는 쪽은 먼저 도착한 애니스다. 첫 만남에서 두 남자가 주고받은 그 시선의 방향은 이후 20년 동안 그들이 나누는 사랑의 방향과도 꼭 닮았다.

이안 감독의 2005년 작 <브로크백 마운틴>은 두 남자의 짧은 만남과 긴 그리움에 관한 영화다. 영화 속의 두 남자가 비밀스러운 관계를 20년 동안이나 유지하면서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일 년에 단 며칠, 오직 브로크백 산 속에서 뿐이다. 열애하면서도 철저히 열외 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비극에는 과연 정당한 경계가 존재할까. 영화는 그 경계를, 제도권과 그 밖의 상황들로 차분히 정리한다. 특히 애니스는 동성을 사랑하지만 스스로 정체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간다. 또한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놓지 못하며, 죄의식에 시달리고 주변의 시선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그의모습은 동성애가 진정으로 이해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대다수의 동성애자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모습이기도하다. 그 비애는 정당하지 않을지언정 어떤 현실 안에선 필연적인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초점은 동성애의 본질적 탐구가 아니라 두 연인의 힘겨운 사랑과 좌절이란 멜로드라마에 맞춰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단순하게 (남녀 간의 사랑과 마찬가지로)‘보편적 사랑’이란 틀에서 이해하는 게 곤란한 이유는, 동성애란 특수성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성애를 보편적 휴머니즘의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는 얼핏 관대해 보이지만 사실 너무나 단순하고 추상적인 발상 아닌가. 동성애는 취향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바로 그 특수함, 대다수의 이성애와 ‘차이’를 인정받으면서 존재해야지, 추상적 휴머니즘으로 타자의 영역 안에 억지로 포함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동성애의 이해는 (호의적이라 할 경우에도) 이처럼 어설프고 불분명하다.

흥미와 슬픔 사이의 외줄타기

2010년 한국의 상황은 영화의 배경인 1960~70년대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대체로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이며, 혐오와 경멸의 태도는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는 것이 비난 받는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성 정체성에 대한 반응은 너무도 자유분방하다. 세상이 변한만큼 동성애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많아졌지만 그런 태도에도 얼마간의 호사가적 호기심이나 인격적 자기만족을 느끼려는 의식이 깔려있는 게 사실이다. 사람들에게 동성애란 여전히 불편한 문제고 그저 자기 일이 아니라면 은폐하거나 외면하고 싶은 무언가일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동성애자들은 대다수의 이성애자들에게 동화된 척 하거나 아님 스스로 배척당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지금도 종교계를 비롯한 여러 집단과 세력이 동성애를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하고 부정한다. 하지만 동성애의 정당성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명백한 건 그것이 언제나 존재했고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공론의 장에서의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언제까지나 주변인들의 문제로만 방치할 순 없는 이유다.

그나마 최근 들어 동성애를 소재로 삼은 드라마와 영화 등이 심심찮게 등장하면서 공개적인 주목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방송국 시청자 게시판이 동성애에 대한 찬반 공방으로 뜨겁게 달궈지고 있고 일부 종교 단체에선 우려와 유감의 뜻을 담은 글을 발표하곤 한다. 사회는 여전히 분열된 양상을 보이지만 어쨌거나 공론의 장으로 진입한 것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이러한 미디어에도 우려할만한 점은 잔재한다. 이제까지의 매체들은 동성애를 직시하기보다 단순한 흥미, 혹은 유행코드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동성애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판타지를 양산하여 편견을 조장하는데 일선에 있었다. 실제로 다수의 일반인들은 미디어를 통해 동성애 혹은 동성애자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그러나 모든 동성애자가 <섹스 앤 더 시티>의 뉴요커처럼 세련되고 감각적이며 부유하진 않다. 또한 제목도 없는 포르노의 주인공처럼 변태적이지도 않다. 적어도 미디어를 통해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와 정확히 반대 지점에 서 있는 동성애자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그만큼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려는 미디어의 시도는 진정성 있는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다수의 너저분한 흥미들은 소수의 슬픔으로 남겨지게 될 뿐이다.

진실에 대한 아주 사소한 배려

소수자에 대한 이해심은 그 사회 인권의 척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정권이 등장한 마당에, 성적 소수자의 인권이 신장될 기미는 크지 않다. 더욱이 동성애에 대한 정당성 역시, 이성애자들 사이에서 판단하려는 작당도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다. 우선은 찬성이니 반대니 혹은 그 정당성을 판단하겠다는 태도가 문제다. 고작 그들이 판단한 범위는 생물학적 환원주의에 (생식의 본능) 매몰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정작 자신들이 생식 이외의 성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오로지 이 문제가 기호의 차이라면 정당성을 판단하는 행동에 오류가 생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믿고 있는 생물학은 이제 던져버려야 할 것이다. 그들은 현재 믿고 있는 것과 믿고 싶지 않은 것 사이에서 자가당착을 반복하는 중이다.

성에 대한 관념은 역사처럼 겹겹이 싸여진 벽 높은 문화에 속한다. 그만큼 변화하기가 쉽지 않다. 필연적으로 인내심이 요구된다. 하지만 망연히 세월을 기다리기엔 소수자들의 열애는 잔인한 열외를 지속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포용과 배척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향해 가야한다. 다만 관용이라는 미명하에 성적 소수자들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열외의 대상을 더욱 고착화 시키는 행위에 머물게 된다. 그들의 하염없는 주장도, 우리의 거짓말 같은 이해도 우리와 그들의 차이를 인정하는 아주 사소한 배려 이후에 필요한 것이다. 혹시 이정도의 배려도 가당치 않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사랑을 위해 산속으로 떠날 용기도 없는, 열애에서 열외 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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