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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119호] 여러분이 욕망하는 것을 실제로 추구하기를 두려워 마십시오.

이 * 이 글은 2011108일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에서 지젝이 했던 연설을 번역한 것이다. 새로 번역하기보다는 다수의 국내 번역본을 참고해서 오역을 바로 잡고 글을 매끄럽게 하는 데 치중했음을 밝힌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

그들은 우리가 모두 패배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패배자들은 저 곳 월스트리트에 있습니다. 우리가 낸 돈으로 수십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받은 것은 그들 아닙니까? 그들은 우리가 사회주의자라고 말하지만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는 언제나 존재해 왔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사유재산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밤낮으로 몇 주 동안 사유재산을 파괴한다 해도, 2008년 금융위기로 파괴된 사유재산의 양에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피땀 흘려 이룬 그 사유재산 말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몽상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몽상가는 지금과 같은 방식이 무한히 계속될 수 있으리라 믿는 그들 자신입니다. 우리는 꿈을 꾸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악몽으로 변해가는 꿈을 깨우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파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스템이 스스로 파괴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는 목격자일 뿐입니다. 마치 만화에 흔히 나오는 장면과 흡사합니다. 고양이가 낭떠러지를 향해 다가갑니다. 끝을 지나서 디딜 땅이 없어졌는데도, 고양이는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계속 걷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그런 사실을 깨달았을 때, 고양이는 이미 추락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일을 하는 중입니다. 우리는 월스트리트 사람에게 “아래를 보라고!”라며 말하는 중입니다.

2011년 4월 중순에 중국 정부는 대안(alternate) 현실이나 시간여행을 포함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영화, 소설 등을 모두 금지시켰습니다. 이런 조치가 중국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여전히 대안을 꿈꾸고 있으므로 이런 꿈꾸기를 금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곳의 우리에게는 그런 금지조치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시스템은 우리가 꿈꿀 여지조차 주지 않고 우리를 옥죄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는 영화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이 종말로 향하는 스토리는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소행성이 지구에 부딪쳐 모든 생물이 멸종하게 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여러분들은 자본주의의 종말만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럼 우리가 여기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공산주의 시절에 나돌던 구닥다리지만 매력적인 농담이 하나 있습니다. 한 동독 인민이 시베리아에 파견되어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내는 우편물이 검열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 두었습니다. “암호를 정해 두세나. 만일 내가 파란색 잉크로 편지를 써 보낸다면, 그건 내가 쓴 내용이 사실
이라는 뜻일세. 만일 빨간색 잉크로 씌어 있다면, 편지 내용은 거짓일세.” 그가 떠난 지 한 달 뒤, 그의 친구는 시베리아에서 온 첫 편지를 받았습니다. 파란색으로만 쓰인 편지였습니다. 편지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굉장하다네. 상점은 질 좋은 음식으로 가득 차 있고, 극장에서는 서방에서 만든 유명한 영화가 상영되지. 아파트는 널찍하고 고급스럽다네. 여기서 구할 수 없는 것이라고는 빨간색 잉크뿐이라네.”

바로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빨간 잉크가 없습니다. 우리가 갖지 못한 자유를 드러내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도록 교육 받습니다. 이를테면 테러와의 전쟁에서 강조되는 자유라든가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자유의 개념을 왜곡시킨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빨간색 잉크를 만들어 내는 것.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은 바로 그것입니다.

조심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과 사랑에 빠지지 마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신나는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그러나 축제란 원래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축제가 끝난 다음 날입니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일상의 삶으로 돌아간 뒤가 문제입니다. 그 때 어떤 변화가 생기겠습니까? 시간이 지난 뒤 당신은 오늘을 이렇게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아, 우리는 젊었었고, 시위는 대단했지.” 나는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을 그런 식으로 기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대안을 생각할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 아닙니까?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여전히 실현 가능한 최선의 사회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긴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맞서야 할 문제들은 진정으로 어려운 것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회 체계가 자본주의를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따라야 하는 겁니까?

기억하십시오. 문제는 부패나 탐욕이 아닙니다. 문제는 시스템입니다. 당신을 부패하게 만드는 것은 시스템입니다. 또 적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에 물을 타려는 가짜 친구들에 대해서도 주의하십시오. 이들은 이 시위가 아무런 해가 없는 도덕적 항의에 그치도록 만들기 위해 애쓸 것입니다. 마치 카페인 없는 커피, 무알콜 맥주, 무지방 아이스크림처럼. 그들의 노력은 커피에서 카페인을 빼내려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모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깡통을 재활용하는 일, 자선 사업에 푼돈을 기부하는 일, 스타벅스에서 카푸치노를 사면서 그 돈의 1%가 제3세계 기아 아동을 돕는 데 쓰이도록 하는 일 등을 하면서 도덕적 만족감을 느끼기에는 이 세상의 문제가 너무 크다는 점을 인식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노동과 포로에 대한 고문마저 외부에 위탁하는 세상입니다. 결혼알선업체들은 우리의 사랑마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정치에 참여하는 것 또한 남에게 맡겨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를 되찾고 싶은 것입니다.

만일 공산주의란 말이 1990년에 무너진 시스템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당시의 공산주의자들이 오늘날 가장 효율적이고도 무자비한 자본주의자가 되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날 중국의 자본주의는 미국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지만,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 이게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당신이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 이를 반(反)민주주의적이라고 매도하는 협박에 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혼은 끝났습니다. 변화는 실현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실현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미디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기술적인 면과 성적인 면에서 모든 게 가능해 보입니다. 달로 여행할 수도 있게 됐고 유전자 공학 덕분에 영생을 누릴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동물을 비롯한 그 무엇과도 섹스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나 경제 분야를 보십시오. 이 분야에서는 거의 모든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부자들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약간 올리고 싶다고 해 봅시다. 그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경쟁력을 잃는다고도 주장 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의료 체제를 갖추기 위해 돈이 좀 더 필요하다고 해 봅시다. 그들은 “전체주의 국가가 되자는 말이냐. 불가능하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영생의 삶을 곧 누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면서도 당장의 의료혜택을 위해서는 약간의 추가 지출도 허용되지 않는 세상. 이런 세상은 무언가 잘못된 곳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높은 수준’의 생활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더 나은’ 수준의 생활을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공산주의자라고 한다면, 그 말이 맞는 단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공동의 것(the commons)을 고민한다는 점입니다. 자연에 대한 공동의 것. 지적 재산에 의해 사유화된 공동의 것. 유전공학에 대한 공동의 것. 우리는 이를 위하여, 그리고 오로지 이것만을 위하여 싸워야 합니다.

공산주의는 분명히 실패했지만, 공동의 것에 대한 문제는 남습니다. 그들은 여기 모인 우리가 미국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들을 진정한 미국인이라고 주장하는 보수 근본주의자들이 깨달아야 할 게 하나 있습니다. 기독교란 무엇입니까? 성령(the holy spirit)입니다. 성령이란 무엇입니까? 자유와 책임을 가진 신자들이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된 평등한 공동체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성령이 임한 곳은 바로 지금 이 곳입니다. 저 건너편 월스트리트에는 신성을 모독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이 있을 따름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심뿐입니다. 제가 염려하는 유일한 점은, 우리가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간 뒤, 1년에 한 번씩 만나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그 때 우리 정말 대단했지.” 하고 추억에 젖어 회상이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겠다고 여러분 자신에게 약속하십시오. 사람들은 종종 무언가를 욕망하면서도 실제로 그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욕망하는 것을 실제로 추구하기를 두려워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