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7. 2. 17:28

전국 택배연대 노동조합 로고

“코로나 속 국가의 재발견, 그게 슈퍼여당 만들었다” 여당이 과반을 훌쩍 넘는 의석을 차지한 결과에 대해 모 일간지는 이렇게 평가했다.

전세계가 코로나로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K-방역”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정부는 대처를 잘해왔다. 그렇기에 여전히 확진자가 나오며 불안감이 있지만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총선을 치룰 수 있었고, 이에 국민들은 후한 점수를 준 것이다.

바야흐로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져 나가는 정부의 역할이 돋보이는 요즘이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김 진 일

자본의 횡포를 막아줄 보호막이 절실했던 택배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비용을 줄이려는 자본의 요구로 등장했다. 재벌들이 정규직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교체할 때 택배회사들은 더 악랄한 '꼼수'를 찾아냈으니, 바로 택배노동자를 '사장님'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택배회사 입장에서는 고정급 없이 배송하는 만큼 돈을 주고, 4대 보험 안 들어줘도 되고, 배송에 필요한 차량, 보험료, 유류비, 사고로 인한 비용 모두 택배노동자에게 떠넘겨도 되니 너무나 매력적인 '발명품'이었을 거다. 그러나 일 시킬 때는 직원처럼 부리다 책임질 일이 생기면 개인사업자라며 나몰라라하니 택배노동자에겐 '날벼락'과 같은 상황이었다. 

 

또한 택배회사는 택배노동자와의 직접계약을 함으로써 그나마 져야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중간에 위탁대리점을 끼어 넣었다(택배회사-위탁대리점-택배노동자). 일방적 계약해지(해고) 등 문제가 발생하면 대리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그 대신 위탁대리점장들의 수많은 갑질을 눈감아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택배노동자는 특수고용노동자면서 하청에 재하청 구조에 놓이게 되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정부도 '노동자가 아니다'는 이유로 자본의 횡포에 소극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니 어떤 개인사업자가 아프거나 다쳐도 쉬지 못하고, 상시적인 해고위협에 시달린다는 말인가...

매년 꼬박꼬박 부가세, 소득세를 내며 납세의 의무를 지는데 택배노동자는 어떤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니 분노스러울 뿐이다. 

 

그나마 문재인정부가 2017년 11월 3일 “노동자 스스로 노동조합을 통해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자”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여 설립필증을 발부함에 따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장시간 노동개선 등 택배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교섭을 요구했지만 택배시장 점유율이 과반에 육박하는 CJ대한통운은 2년이 넘도록 거부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와 중앙노동위원회에 이어 지난해 11월 사법부도 “택배기사는 노동자가 맞다”고 판결했지만, CJ대한통운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감염위협에 시달리며 넘치는 물량 때문에 결국 과로사까지

 

이렇게 교섭을 미루는 동안 택배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졌고, 군대에서 갓 제대한 청년노동자가 감전사하는 등 2018년 한해에만 CJ대한통운 허브물류센터에서 근무하던 세 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택배노동자 장시간노동이다. 

2017년 서울노동권익센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택배 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4시간이다. 5일제로 하루 8시간씩 근무하는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34시간 그러니까 4일 정도를 더 일하고, 수년째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우체국 집배원보다 매주 18시간이나 오래 근무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사태에 들어서며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온라인주문이 급증함에 따라 택배물량이 폭증함에 따라 택배노동자는 살인적 노동으로 고통 받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이 재택근무를 하며 코로나를 피해가고 있는데, 택배노동자는 감염위협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장시간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위협에도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5월 4일 광주에서 일하던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가 갑자기 쓰러진 후 결국 숨을 거두었다.

10년 택배일을 하며 처음으로 가족과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날, 사랑하는 어린 두 아이와 아내를 남겨 둔 채 마흔 한살 젊은 나이의 가장이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된 2월부터 4월 내내 1만개(하루 평균 400개)가 넘는 물량을 소화하며, 결국 과로사로 쓰러진 것이다. 지난 3월 쿠팡 배송노동자가 과로사로 사망한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출처: 한국경제 신문

배송물량을 줄이면 되는거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기가 맡은 구역에 떨어진 물량은 무조건 소화해야 하기에 택배노동자는 그럴 수 없다.

 

택배노동자는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하루 쉬는 것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결국 배송수수료의 두 배 가까운 금액을 주고 대신 배송할 사람을 구해야 하기에, 배송하다 다쳐서 깁스를 한 상태에서도 일을 쉴 수가 없다. 

그런데, 힘들다고 배송물량을 줄인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배송물량이 증가함에 따라 수입도 늘어나겠지만,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K-방역으로 국민의 안전을 보장한 것처럼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절실하다

 

그나마 지난 4월 13일 국토부가 “코로나19 대응 택배종사자 안전·처우 개선 보호조치”를 내놓았지만, 이는 재벌 택배회사들 눈치를 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조치였다. 이때 제대로 된 보호조치를 발표하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더라면, 고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너무나 원통할 따름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택배회사가 책임회피에 나서며 택배 현장이 죽음의 현장이 되지 않도록, 택배노동자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쓰러지지 않도록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세계적 흐름도 특수고용노동자를 보호하고 원청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먼저 미국은 이미 “공동사용자 개념”을 도입하여 하청노동자가 원청과 교섭을 통해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2015년 8월 27일 미국 연방노동관계위원회(한국으로 따지면 중앙노동위원회)가 하청업체로부터 노동자를 파견받아 창고관리를 시킨 브라우닝페리스에 대한 하청업체 노동자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하였다.

하청이 노무관리를 해도 원청이 작업과정에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했다면 원청도 ‘공동사용자’라고 판결한 것이다. 

 

또한 특수고용노동자의 법적 지위와 사회보장을 둘러싼 논의가 수년 전부터 활발히 진행되며, 어느 정도 진척이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이탈리아다. 지난해 5월 이탈리아 라치오주는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률’을 제정, 플랫폼 노동자들의 권리와 플랫폼 업체의 책임을 명시했다. 해당 법률은 △업무 관련 재해나 질병 발생 시 노동자 보호 △안전교육 강화 △플랫폼 업체가 책임 보험 및 운송수단 유지 비용 지불 △사회보장제도 적용 △단체협상을 통한 기본급과 성과급 산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노동절에 “노동이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노동존중 사회’는 우리 정부의 핵심 국정기조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말이 빈말이 되지 않도록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가 택배노동자를 비롯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리 증진에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 

 

코로나에 맞서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한 것처럼, 노동문제에서도 획기적 전환이 만들어지도록 적극적 역할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출처: 더스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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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7. 2. 16:28

연세대학교

코로나19 함께한 학기, 연세대

등록금 반환 요구에 침묵하는 학교본부에 묻는다

 

연세대학교 58 일반대학원 총학생회너울

 

코로나19 되새긴 우리의 일상

 

  코로나19 불러온 일상의 변화도 어느덧 익숙해졌다. 아침마다 마스크를 챙기고, 밖으로 나와 모두가 마스크를 지하철을 타는 일이 하루의 일과가 됐다. 재난지원금 카드로 물건을 결제하고, 학교가 아닌 집에서 비대면 강의를 듣는다. 생소한 일상에 적응해 나가는 사이, 우리가 새로이 알게 사실들이 있다.

 

  동네 가게들이 하나 문을 닫는 것을 보며 비로소자영업의 위기 실감했고, 확진자 98명이 나오며 한때 수도권 최대 집단감염지가 되었던 구로구의 콜센터를 통해서는사회적 거리두기조차 어렵게 만드는 열악한 노동환경의 실태를 알게 되었다. ‘재난 상황 닥치기 전부터 누군가의 일상은 이미 위기였던 것이다. 세계로 눈을 돌려봐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인종이 섞인 미국에서 흑인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고, 스웨덴의 '집단면역' 실험이 노인들의 희생을 불러왔던 것처럼. 생각해 보면 모두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던 것들이다. 동시에, 코로나19 아니었다면 대부분이 관심 갖지 않았을 이야기다.

 

  우리가 속한 대학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코로나19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대학사회 안에서 중요한 결정이 누구에 의해 이루어지며, 과정에서 학생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되는지. 학교본부가 교육의 질과 학생의 권익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그리고 코로나19 맞은 지금, 해묵은 문제들은 우리 눈앞에 더욱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그렇기에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는 것만큼이나 해결의 방식도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위기의극복 겉으로 드러난 문제를 어떻게든 모면하고 이전 모습으로회귀하는 것이어서는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명의 학생으로서, 또한 학생들을 대표하는 학생회의 일원으로서 학교본부에 묻는다. 코로나19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해결의 과정에서 학생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는다.

 

- 먼저, 비대면 강의로 인해 필연적으로 강의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 학교본부는 그에 대한 대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있는가? 

- 조교나 연구원과 같이 여전히 학교에나와야만 하는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역지침이 마련되었고, 공지되었는가? 비대면 강의로 인해 추가된 실무(강의 촬영, 편집, 업로드 ) 기존의 대면 업무가 비대면 업무로 바뀌면서 겪는 혼란에 대해 학교본부가 대책을 제공했는가, 아니면 모든 책임이 개인의 몫이 되었는가? 또한 업무량의 증가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졌는가? 

- 연구실, 행정실과 같이 대학원생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 대한 방역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일회적인가, 주기적인가? 방역이 장소는 어디이고, 그렇지 않은 장소는 어디인가? 연구실에 소독제와 같은 방역물품 구비 여부가 조사되고, 지급되었는가? 

- 마지막으로, 모든 사항에 대해 알아야 권리가 있는 학생들에게 적절한 시점에 정보를 제공했는가?

 

  학생은 이러한 모든 문제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제공받는 것은 물론, 이유와 배경에 대해 들을 권리가 있다. 동시에, 이는 대학의 운영주체로서 학교본부가 지켜야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 내내 연세대학교 본부가 납득할 있고 명쾌한 답을 내놓은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대학원 총학생회가 먼저 나서서 연구실 방역을 요청했고, 대학원 총학생회의 재정으로 연구실에 손소독제를 배부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지금이라도 학교본부는 운영주체로서 책임을 다하고, 학생들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

 

등록금 요구는 갑작스러운 불길이 아니다

 

  앞에서 가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최근 대학사회 바깥에서도 거세게 불고 있는등록금 반환 관한 요구이다. 지난 3월부터 여러 대학의 학생회를 비롯하여 코로나 대학생 119, 반값등록금국민운동본부 등의 단체에서 대학과 교육부를 대상으로 기자회견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후 잠시 잦아드는 듯했지만, 여러 기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꾸준히 국민 대다수가 등록금 반환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이에 등록금 반환은 교육부는 물론, 여야 국회의원들이 논의하는 의제로까지 확산되었다.

 

   사태를 지켜보는 학교본부는 어떤 심정일까. 어쩌면 학생들의 분노가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학교본부의 주장에 따르면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의 고정비용은 그대로 나간다고 하니 전에, 학교본부의 주장이 무엇인지모른다 점을 먼저 고백해야겠다. 개의 기사에서서울 소재 S대학 관계자 같은 익명의 발언을 읽은 전부다. 학교본부가 등록금 반환 요구에 번도 공식 입장을 발표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코로나19 관한 학교본부의 입장을 시원히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제 6월이 다가왔다. 아직까지 아무 입장이 없는 것을 보면, 학교는 사태가 어서 지나가기 만을 기다리는 듯하다. 학내에 이슈가 있을 때마다 학교가 보여 왔던 태도는 그러했다.

 

  학교본부는 이번 코로나19 인해 어떤 재정적 피해가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도 먼저 밝히지 않고 있다. 이는 학교본부가 등록금에 대해 보여 왔던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매년 대학정보공시센터에 공시되는등록금 산정근거자료에는 학생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명목과는 달리, 명확한 산출근거가 나타나 있지 않으며 항목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적은 것이 전부다. ·결산서의 지출내역 또한 구체적이지 않으며, 대학원과 학부의 구분조차 없이 작성되고 있다. 결국 등록금이 얼마인지는 말하면서, 그렇게 책정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 셈이다.

 

  가령시설유지보수를 위한 운영비 세부항목은긴축예산 편성에 따른 시설유지보수비 감소라는 설명이 전부이다. “관리 운영을 위한 운영비”, “홍보 교육을 위한 운영비에는 공통적으로사업심의를 통한 핵심사업 선택 방식으로 운영비 최소화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런 자료를 읽었다 해도, 어떤 정보를 얻을 있을까? 학생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납득 가능한 수치와 기준을 제시하라는 것이 지나친 요구인가?

 

  더욱 놀라운 점은, 아예 기준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학교본부의 입장이 그러하다. 최근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가 기획처 예산팀과 면담을 갖고등록금 산정근거자료에 누락된 정보의 제공을 요구했을 , 돌아온 것은구체적인 등록금 산정 기준을 공개하기 어렵다 답변이었다. 등록금을 정하는 별도의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정해진 등록금에 물가 상승률 등의 고려 요인을 반영하여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본부는 등록금이 지금의 금액으로 책정된 이유를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최근의 코로나19 사태를 맞아학교도 힘들다 말에 신뢰가 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애초에 등록금이 어떻게 책정되고,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구체적인 수치 없이등록금 반환은 불가하다 입장만 고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이 정말로 알아야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인 주장을 반복하는 것을대화라고 있을까. 그렇기에 학생의 신뢰를 잃은 것은 학교가 자초한 일이라고밖에 없다. 

 

  이번 학기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에서 진행한 건의 설문조사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지난 3 25일부터 4 3일까지 본교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1학기 등록금 반환 설문’( 2,051 참여) 결과, 응답자의 92% 등록금을 부분적으로 반환해야 한다 의견을 밝혔다. 이유로는 ①학내 시설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며(74%) ②온라인 강의 진행으로 인해 수업의 질이 현격히 낮아졌고(64%) ③학기가 16주에서 15주로 단축되었다는 (58%), ④실습수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27%) 등이 꼽혔다.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등록금 반환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응답한 비율 역시 94% 상당히 높았다.

 

  이는 지난 5 11일부터 5 22일까지 실시된 ‘2020-1 대학원생 실태조사’( 786 참여) 결과와 맞닿아있다. 설문 결과, 65% 현재 등록금 수준에 만족하지 못한다 응답했으며, 이유로는 ①등록금에 비해 개설된 수업이 적거나 만족도가 떨어진다(71%), ②등록금에 비해 연구 공간 시설이 불충분하다(65%), ③등록금에 비해 지도교수로부터 충분한 지도를 받지 못하고 있다(35%) 등을 꼽았다.

 

  아울러, 등록금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성이 있다 응답한 경우는 80%, 등록금 책정 근거와 실제 사용 내역이 학생들에게 공개되어야 필요성이 있다 응답한 학생은 91% 달했다. 자연히 대학원생의 경제적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장학금 확충(66%) 함께 등록금 인하(65%) 가장 높은 답변으로 나타났다. 

 

  서로 다른 설문조사에 나타난 응답에서 높은 일관성을 확인할 있다. 코로나19 인해 터져 나온 불만의 상당수는 대학원생들이 이미 학교생활을 통해 느끼고 있던 것들이라는 것이다. 짚어야 사실은, ‘2020-1 대학원생 실태조사 코로나19 무관하게 대학원 전반에 관해 물은 조사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학생들이 해결을 요구하는 지점은 코로나19 인한 일시적인 불편이 아니라, 학교가 학생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등록금이 책정되는 방식과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기존 대학사회의 구조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묵은 불만이 더욱 거세게 터져 나왔을 뿐이다. 만약 학교본부가 학생들의 요구를 단순히 ' 기회에 등록금을 환불해 달라' 것으로만 해석한다면, 그래서 요구가 잦아들기 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잘못된 판단이다. 

 

이제 모두가 알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문제를 바꿔 나갈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말을 많이들 한다. 말이 대학사회 바깥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학사회에서도 코로나19 이미 우리 곁에 있었던 문제를 돌아보고, 이제라도 바로잡는 계기가 있을까.

 

  코로나19 세계를 강타하기 전이었던 12, 대학원 총학생회 선거를 준비하며 문구를 정책 자료집에 적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았던 학내의 여러 문제를 이상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던 문제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사태는 한편으로 새로운 대학사회를 만들어 나갈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는 연세대학교 본부에 요구한다. 학생들의 등록금 반환 요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교육부와의 협의를 포함한 관련 대책을 적극적으로 강구할 것을 요구한다. 코로나19 변동된 지출 내역과, 기존의 등록금 책정 근거를 구체적으로 밝힐 것을 요구한다. 학생대표자를 포함한 등록금 재책정 논의 테이블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학생을 학사일정과 등록금을 통보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를 버리고, 등록금이 책정되는 방식과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대학사회의 구조를 학생과 함께 개혁해 나갈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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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7. 2. 16:18

서울대학교

 

코로나19와 함께한 한 학기, 서울대

대학원생 있는 코로나19 회의체

 

서울대학교 대학원 총학생회 전문위원 반주리

 

 귀 신문사의 원고 청탁을 받고 개강 직전에 겪은 사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저는 서울대학교 대학원 기숙사에서 살고 있는데, 2 28일 오전 사내 방송이 울렸어요.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여 밀접 접촉자를 파악할 때까지 기숙사를 폐쇄하겠다는 안내 방송이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는 말에 당장 오늘 가야 하는 아르바이트, 내일 가기로 한 특강을 취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이후 기숙사(관악학생생활관) 측의 신속한 대응 덕분에 격리는 세 시간 반 만에 해제되었지만, 당시에는 무척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이 이런 식으로 나의 일상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서울대학교 대학원의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3, 4월은 시작의 달이 아니라 기다림의 달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개강이 2주 밀리고 그다음에는 이번 학기를 전면 온라인 강의로 시행한다는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수업 계획서는 새로운 일정에 맞춰 수정되었고, 수업 외에도 입학시험, 논문제출자격시험, 졸업논문심사, 졸업시험, 학회 등 많은 일정이 지연·취소되고 있습니다. 

 

저희 대학원만 이런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닐 테지요. 다만 코로나19 이후 대학원이 맞이한 변화에 대해서는 학교 밖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네요. 서강대 대학원신문사의 이번 기획을 통해 코로나19 이후 대학원 생활을 공유하는 소통의 장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우선 저는 서울대에 대학원생이 참여하는 코로나19 회의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서울대 학생처 장학복지과가 주관하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관리위원회’(이하 코로나19 회의)는 지난 2 4일부터 매주 수요일 열립니다. 교육부총장이 위원장을, 학생처장이 부위원장을 맡아 진행하는 이 회의는 처장단 및 학내 주요 기관장, 학생대표가 모여 코로나와 관련된 안건을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지금부터는 매주 이 회의와 함께했던 2020학년도 1학기를 돌아보며, 서울대학교 대학원생들이 코로나19 이후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그리고 학교 측은 이 문제를 어떻게 인지하고 대응하는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기숙사 입주·퇴거를 둘러싼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번 학기 전면 온라인 수업이 확정되면서 기숙사에 살던 학생들이 더 이상 학교에 남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학원생의 경우 비대면 강의 기간에도 연구실로 출퇴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에 학부생만큼 이동하는 인원이 많지는 않았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많은 학생들이 유동적인 입주·퇴거를 원했습니다. 곧 기숙사 입주·퇴거와 관련된 안건이 코로나19 회의에서 다루어졌고, 기숙사는 2020학년도 1학기 입주 대상자 중 생활관 거주를 원하지 않는 이를 파악해 관리비를 환불 해주고, 학생 개인의 학사일정에 따라 재입주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최근 회의에서는 다시 한번 학생 주거 문제를 다뤘습니다. 기말고사 기간이 성큼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학부생은 기말고사 기간 일부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대형 강의 시험을 치기 위해, 대학원생은 그 강의 시험 감독을 들어가거나 채점 등 조교 업무를 하기 위해 학교 근처에 잠시 머물러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서울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서울 이외의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의 어려움이 예상되자 학교 측은 학생들이 기존에 객실과 레스토랑으로 운영하던 교내 시설(호암교수회관)을 학생들이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도록 <시험기간 특별 응원 패키지>를 만들어 기말 기간 통학이 불편한 이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졸업·입학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학사 일정이 최소 2주 이상 연기되면서 이번 학기 졸업과 입학을 앞둔 학생들이 남다른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지난 3, 4월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논문제출자격시험과 졸업논문심사 일정이 하염없이 미뤄져 지치고 힘들다는 글이 연이어 올라왔습니다. 여러 글에서 시험이 한 달가량 밀리는 바람에 다른 일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속상함이 묻어났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계속해서 연기되는 TEPS 시험에 답답함을 표하는 글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는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입학·졸업 시험과 별개로 대부분 TEPS 점수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연장되고,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규모 행사와 집회가 자제되는 상황에서 TEPS 시험은 줄줄이 취소되었고, 이에 마음을 졸이는 학생들이 늘어났습니다. 특히 이번 학기가 졸업 연한 마지막 학기인 학생들은 TEPS 점수를 제출하지 못해 졸업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저희 대학원생 총학생회로 연락을 취해왔고, 이는 바로 그 주 코로나19 회의에서 다뤄졌습니다. 

 

 회의에서는 TEPS 정기 시험을 시행하는 것이 계속 어려울 경우, 각 업무 소관 기관(교무처, 입학본부)에서 시험 시행 계획을 검토하고, TEPS관리위원회와 협의하여 학교 내부를 위한 특별 시험을 실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행히 4-5 TEPS 정기시험이 코로나 방역관리 대책을 철저히 반영하는 조건 하에서 시행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 추가 시험을 요구하는 학생이 없어서 학내 특별시험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회의에서 위 안건이 다뤄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대학원생의 목소리를 듣는 학내 회의체가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서울대 대학원이 코로나19 이후 맞은 변화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서울대는 대학원생의 고충을 듣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앞으로도 함께 논의해야 할 과제가 참 많습니다. 우선 이번 학기가 끝나면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여 온라인 수업에 미진한 점이 있다면 확인하고 보완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학기 학사 일정에 대한 신속한 공유가 필요합니다. 학생도 학교도 코로나는 처음이라 일정이 지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정해진 부분에 대해서는 빠르고 구체적인 공지가 필요합니다. 

 

 이 지면을 빌려 매주 ZOOM으로 뵙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관리위원회 홍기현 위원장님, 정효지 부위원장님을 비롯한 모든 위원님들, 장학복지과 선생님들, 언제나 대학원생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서울대 대학원 총학생회 전문위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기획 진행해 주신 서강대 대학원신문사께 감사드립니다. 모두 건강하고 안전하게 연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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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7. 2. 16:14

서강대학교

코로나19와 함께한 한 학기, 서강대

코로나19로 인한 학내 변화상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 장두용

 

저희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바람꽃은 코로나19로 인한 학내 변화사항과 관련하여 원우들의 의견을 듣고자 설문을 실시하였습니다(기간: 4 27~ 5 1, 응답자:  392). 설문내용은 비대면 수업, 등록 및 휴학, 입학금 및 등록금, 연구환경, 기타 건의사항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다음과 같은 결과를 종합하였습니다. 특히, 본 자료는 학교 측과 개선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작성하였으므로 주로 부정적인 의견들을 중점으로 정리하였습니다.

 

 1. 비대면 수업 관련(수업의 질 등)

먼저, 비대면 수업에 대한 만족도와 관련해서는 보통 이라고 응답하신 분이 36.5%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31.9%를 차지했습니다.  2가지에 응답하신 분들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질의응답이나 토론 등 상호작용의 어려움, 강의 질 저하, 과제/퀴즈로 대체, 집중도 저하 등이 수업 질의 저하 요인으로 주로 지적되었습니다. 

 

2. 등록 및 휴학 정책

등록 및 휴학 정책에서는 잘 모르겠다는 의견이 34.7%, “보통 33.2%로 대다수를 차지하였는데 이는 국가재난상황이라는 생소한 상황 속에서 이러한 정책 변화에 대한 정보가 부재하였고, 일반적으로 대학원 과정에서 휴학을 고려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과정이수를 위해 현존하는 정책을 따른다는 의견들이 반영된 결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수업의 질에 대비해서 동일한 등록금을 내는 것은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환불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국가재난상황에 대한 행정 대처가 부실했음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책과 대안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의견, 휴학 연한의 변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3. 입학금 및 등록금 정책

입학금 및 등록금 관련해서는 응답자의 56.1% 만족하지 않는다를 선택하셨고 만족한다라고 하신 분도 23%만큼 계셨습니다. 부정적인 응답자(“보통 이하)들의 주관식 응답을 살펴보면 주로 강의실, 도서관, 연구실 등의 시설 사용 제한에 대한 불만과 강의의 질 대비 등록금 비용이 불합리하다는 주장들이 많았고 이에 따라 등록금을 일부 환불하거나 비대면 체제에 맞는 등록금을 책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4.연구환경 정책(연구공간 등)

연구환경에 대해서는 만족하지 않는다(37.8%)” 보통(32.4%)”이라는 응답자가 대다수를 차지했고 특히, 연구실, 도서관 열람실, 실험실 폐쇄 등으로 연구공간을 보장받지 못했기 때문에 불만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했으며, 출입통제 이외의 대안이 부재하다는 의견도 꽤 있었습니다.

 

5. 기타 건의사항

이외의 건의내용들은 모두 주관식을 통해 받았는데 총 156분이 성심껏 의견을 주셨습니다. 내용을 종합해보면 R, AS 1, 남문 등의 출입로 제한 완화(48)를 요구하는 원우분들의 목소리가 많았고, 장학금 형태나 다음학기 감면 등을 통한 방법으로 등록금의 일부 환불을 요구하는 의견(22), 시설 사용제한을 단계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22)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면강의 재개 반대12), 외부인 출입통제 강화(5), 검역/방역 절차 강화(5)에 대한 의견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본 학생회는 5 19일 대학원 행정팀과 관련 사안들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으며, 논의된 내용들은 홈페이지,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이메일을 통해서 원우들에게 공유될 예정입니다. 

 

한편, 현재 학부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등록금 반환운동을 진행하고 있고,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에서도 등록금 관련 입장문을 발표하는 등 이에 대한 학생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희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역시, 이러한 상황을 주시하며 학교 측과의 논의를 확대하고 여러 단위와 연대하는 등의 노력을 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 과정에서 원우분들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설문조사 결과와 논의된 사항들은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의견이나 피드백이 있으시다면 본 학생회 메일(sggradsa@gmail.com)이나 전화(02-705-8269)로 언제든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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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6. 1. 22:08

이근화 일반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졸업생 (정치계 근무)

 

2020 1월 여야가 총선 100일을 앞두고 야심 차게 공약을 발표했다. 여당은 무료 와이파이 전국 확대를 강조하며 기술과 데이터 강국으로의 발전을 다짐했고, 야당은 군인 정년 연장과 현역 2 3일 외박 공약을 내세우며 청년복지에 힘쓸 것을 약속했다. 여느 때와 같은 총선일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후, 코로나19 그 이름만큼이나 이 기이한 질병이 우리를 덮쳤고, 정치와 제도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기본적인 질문들도 함께 던져졌다.

 

무엇을 해줄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지켜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는 이미 벌어진 일들을 수습하는 방법을 몰랐다. 위기를 관리하는 방식과 체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하는지 몰랐다. 덮고 지나가기 바빴다. 급하게 수습하느라 외면한 징후들은 곪아 터져 더 큰 참사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이제껏 정치는 국민들에게 무엇을 해주겠다고 약속해왔다. 뚝딱 무엇을 안겨줄 것 같은 희망 섞인 선언을 해왔다. 그러나 무엇을 지키고,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해선 답하지 않았다. 2020년의 질병은 우리에게 사람을 지키고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의 본질이자 사회의 기본적인 역할이 아닌지 되묻는다.

 

가장 일상적인 것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코로나19를 통해 인간이 배운 것이 있다면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지를 온몸으로 경험한 데 있다. 특히 더 빠르고, 편리하고, 세련되고 화려한 것을 쫓아온 현대의 시민들에게 코로나19  그저에 지나지 않았던 당연한 것들의 가치를 깨닫게 했다. 동시에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이 의식주의 불편을 경험하며 인간생활의 기본이 불안한 이들의 심정을 경험했다.  나아가 의식주의 자유로움이야 말로 아무리 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인간생활의 핵심 요소임을 다시금 인지하게 했다.

 

명도 좋고 실도 좋은 말로써 정치적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통용되어야 한다.  

한 정치인은 명은 좋으나 실이 없는 말 중에 하나가 진정성이라며 정치에서 진정성은 허망한 담론이라 한국사회에서의 정치를 비판한 바 있다. 무능한데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읍소,  얼마나 간절한 마음에 해당하는 개념이 한국 정치권에서 정치적 진정성으로 통용되어온 것이다. 일부 동의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이루고, 촛불로 정권을 교체한 이 사회의 국민들에게 정치적 진정성은 그저 알맹이 없는 감정적 호소 그 이상으로 인지한다. 정부의 시행착오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도 정부의 노력의 과정과 성과를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이들이다. 잘못된 언행에 대해선 과감하게 채찍을 들고 심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살아있다.

마스크를 끼고 무뚝뚝하게 걸어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대로변에 멈춰 선다. 유세차를 쳐다보고 후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들의 말과 눈빛을 예리하게 듣고 본다. 출근길 인사를 하는 후보를 향해 창문을 내리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다가와 두 손을 꼭 잡으며 눈을 맞춘다. 시장 한복판에서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를 추구하는 정치인들의 만남에 환호하고 열광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손실로 하늘길이 막히고 중소상공인의 삶은 더욱 녹록치 않은 현실이지만 여전히  우리의 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자 투표장으로 향한다.  

 

코로나19는 분명 우리사회가 겪은 크나큰 재앙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호흡질환의 일상의 모습들을 모두 바꿔 놓았고 삶의 규칙을 흔들어놓았다. 하지만 코로나 국면은 지금 이 시대가 원하는 정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가장 기본에 뿌리내린 형태여야 한다고 말한다.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는 것’, ‘자유롭고 기본적인 일상이 유지되는 것’, 그리고 허울뿐인 외침이 아니라 체감할 수 있는 국가의 운영이 가능케 하는 것. 코로나19 2020년의 정치에 던진 질문과 숙제를 정치권이 답을 해나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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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6. 1. 22:02

(출처: Instagram: @mango.closet.photos)

정재원 일반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방송계 근무)

 

2020. 시각적으로 뭔가 동글동글한 것이 귀엽지만, 동시에 공상 영화의 배경이 되었을 것만 같은 이질적 느낌을 주는 해.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나는 자라면서 수많은 조직에 속했다가 벗어났지만, 그중에서도 혁신적, 미래 지향적이고 싶어하는 조직에 속할 때마다 그 조직은 하나같이 ‘vision 2020’ 등의 구호로 2020년에는 모든 이상과 가치를 실현할 것처럼 선언했었다. 그래서 나는 2020년은 뭔가 이상적인 일만 일어날 것 같다고 착각 했었나 보다.  ‘2020에 역병이 돌고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끼는, 그야말로 SF영화에서만 보던 인류의 위기를 길거리 위에서 보게 될 줄이야.

 

마스크를 낀 채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근 몇 년간 SF영화의 단골 소재는 전염병이겠지?’ 하는 생각에, 코로나-19시대를 후에 영상 매체가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영상 매체를 제한적으로 접한 나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전염병 시대를 영상으로 구현했을 때, 시청자가 그 공포를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서는 보다 섬세한 연출이 필요하지 싶다. ‘지진이나 쓰나미 등의 자연 재해는 대자연의 섭리 앞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비현실적인 화면 구성을 통해 구현할 수 있다. 내가 평생 발 딛고 살아온 땅이 쩍 하고 갈라진 다거나,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파도가 인간을 덮치는 공포는 감각적인 시각 효과를 통해 구현할 수 있고, 짧은 시간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극도의 긴장감과 공포를 느끼게 할 수 있을 테니까. 

 

반면 전염병을 다룬 영상은 그 공포감이 보다 일상적이어야 할 것 같다. 조금 더 현실적이고 생활 밀착형 공포를 구현해야만 할 것 같달까? 모든 전염병이 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코로나-19 경우 비말을 통해 감염된다고 하던데 공기 중에 떠다니는 비말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오염된 비말을 접한다고 해도 즉각 증상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누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한 번에 알 수도 없고, 나 자신이 나도 모르는 새 감염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도 없으며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상황으로 인지된다. 또한 이 시기를 관통하는 정치, 사회, 경제적 변화는 말할 것도 없고. 다시 말해, 전염병은 지진이나 쓰나미처럼 삶을 한 번에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변화시킨다.

 

나의 일상에 한해서 내가 느낀 것들만을 이야기하자면 방송국에서 일하는 나는 방송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람들과 함께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이란 걸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시대에 들어서니 방송 일이 얼마나 사람과 밀착해야만 하는 일인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일단 회사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체온을 재고 손 소독을 해야지만 즉 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지만 동료들이 있는 사무실에 다다를 수 있다. 회의 중에 나오는 아이템 중 많은 것들이 코로나-19를 이유로 제외되었고, 앞으로도 제외될 예정이다또한, 계획되었던 많은 촬영들이 취소되었고여차여차 촬영하러 나가도 수많은 문제와 마주친다. 촬영 장소를 소독해야 한다든지, 촬영 장소에 모인 스태프들의 안전을 보다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든지 하는 문제들. 

 

특히 취재원의 마음에 다가가는 것은 안 그래도 어려운 일인데 너와 나 사이에 낀 두 개의 마스크는 안 그래도 어려운 소통을 더 어렵게 만든다. 일단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감염자일 수 있다는 공포(너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너를 나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 사회적 거리 두기 아니던가)가 기본적으로 깔려있고,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린 채 소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당신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고, 내 말도 제대로 다다르기 힘드니 결과적으로 의사소통 실패를 위한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진 느낌설상가상으로 촬영 후에도 문제는 계속된다. 작은 골방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는 후반 작업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제작 환경의 변화 외에도 내가 일하고 있는 이 직장 역시 지역 사회, 국가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변화 역시 존재한다. 근 몇 달간 나의 일상도 많이 변했고, 앞으로 이 변화가 얼마나 지속될 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 감염병의 공포를 한층 무겁게 만든다.

 

마치 일상에 마스크를 끼게 한 것처럼 습하고 따갑고 답답하고 숨이 찬 그런 공포.

 

뜬금없지만 그럴 때 나는, '1000번을 저어 만든 달고나 커피' 영상을 본다. 커피와 설탕을 1000번 저어볼 생각을 했다는 그 창의성에 놀라고달고나 커피를 마시겠다는 일념 하나로 어깻죽지가 빠지도록 숟가락을 1000번 휘두르는 그 집념과 열정을 보면서 존경심을 느낀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런 영상의 압권은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이다. 수 백 가지 드립이 난무하는 댓글 창은 마치 '너 거기 있니? 나도 여기 있어'라고 수신호를 보내는 듯하다. 각자 몸을 움츠리고 이 시기를 버티고 있지만, 마음속에서 서로의 안녕을 비는 모습인 것만 같아 사랑스럽다.

 

다시 마스크를 낀 채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다시 생각해본다

먼 훗날 내게 이 시기를 SF 영화로 찍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스크 낀 사람들이 1000번 저은 달고나 커피 영상을 보며 키득거리는 듯한 영화를 찍어야지.

 

일상적인 공포를 사랑스러운 일상으로 견뎌내는 영화를 찍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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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9. 7. 5. 20:53

플랫폼은 정말 사회적인 것일까.

기술의 세련됨에 포장된 자원 약탈자들의 모습

 

이승은 기자

 

[출처: 조선비즈]

 

전통 산업 조차 플랫폼 비즈니스 형태로 탈바꿈 하는 추세에서, 다양한 플랫폼 기업이 증식되고 있는데 예컨대 온라인 유통, 오투오, 노동서비스, 매칭 펀딩, 소셜 웹등이 있다. 모든 것을 데이터로 표준화하는 전략에는 알고리즘이 있는데, 이 알고리즘은 데이터 분석을 위한 고도정밀 기업 내부 프로그램 설계이다. 알고리즘은 이용자들의 활동 특성을 데이터로 등가환산해 패턴화하거나 패턴을 유추하여 분석, 명령 기능을 수행한다.

이 글에서 보려는 플랫폼 자본주의 체제는 ‘플랫폼’ 테크놀로지에 기대어 새로운 자본의 운동 방식과 가치생산에 대한 것이다. 이 지능적 매개장치에 기댄 ‘플랫폼 자본주의’는 가치화 과정에서 간과한, 여기저기 흩어지고 방기된 물질, 비물질 노동과 자원의 탄력적 배치를 꾀하는 경제 시스템이다. 이 새로운 체제는 시장 바깥의 노동과 자원의 범위와 연계를 늘리고 가상공간의 비물질 노동 영역을 광범위하게 흡수하는 새로운 유연화를 꾀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들의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새로운 질적 도약의 모색 과정에 있어서 알고리즘은 모든 노동을 데이터로 환산시킬 수 있는 것이다. 데이터 자원이 풍부해질수록 알고리즘의 정밀도는 정교하고 촘촘해지는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플랫폼 자본주의가 알고리즘이라는 자동기계로 기업 조직 안팎에 이것을 배치하여 사회적인 것(the social)을 생략하거나 오염시킨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것이란, 개별 주체를 넘어서서 타인과 함께 중요한 논제와 숙의 과정을 통해 공존하며 풀어가야 할 관심사나 의제이다. 상업적 알고리즘의 기계적 판단이 일상화되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견 교류나 갈등 상황에서 물리적 조정과정이 불필요해지고 논의로 가라앉게 된다. 결국 개별 심리적 판단에서 보편적 결정 기제가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판단과 결정을 알고리즘 기계가 대신하면 개인 간 혹은 집단 간 이뤄지는 중요한 숙의와 논쟁 과정이 생략되고 자동화되면서 실상 사회적인 것의 존재가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인 것이 오염되고 희미해지면 대중들은 사안의 진실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플랫폼의 구조는 이용자들이 맞춤형 콘텐츠만을 소비하도록 만들어져 있어 확증편향의 우려까지 가늠하게 되었고 이는 갈등 상황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라는 알고리즘으로 혼돈된 구성 아래서 성찰적 판단이 유보되고 사회적 편견 또한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 플랫폼 사업이 확장되면서 가짜뉴스와 거짓담론이 나오게 된 원인도 바로 이러한 문제 때문이다.

 

아랍의 봄에서 보았듯, 소셜 플랫폼을 중요한 소통의 매개체가 되었지만 한편으로 대중 여론이 생기는 플랫폼에서 호도의 장으로 되면서 양면성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인터넷은 자본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한 공간이 되었고 목적을 만드는 곳으로서 기능하며 긍정적인 정동만이 있다는 것은 나이브한 생각이 되었다.

 

참여 이용자들의 권리 또한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고 있는 실상이다. 기존의 기업은 unpaind labor을 만들어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의 최소한의 금전적 보상을 주기 시작하면서 더욱더 권리를 보호 받지 못하고 있다. 유튜브 같은 경우에 시간의 층위를 더 촘촘하게 갈라놓고 심지어 시간을 통째로 뺏어 넣었음에도 참여 노동자의 권리는 보호받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기업은 노동 통제를 위해 노동통제에 뛰어난 인공지능 기계들과의 결합도 늘리고 있는 추세다. 결국, 플랫폼 노동자들은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개별 사업자가 되어 모든 업무상 과실이나 비용 발생에 대한 부담을 지게 되며 불안정의 고용 없는 일자리가 일반화될 공산이 크다.

플랫폼 기업은 unpaind labor에서 이제는 어느 정도의 최소한의 금전적 보상을 주기 시작하면서 참여 노동자들은 더욱더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풍요로운 디지털 문화 속에서 자유의 플랫폼 문화를 어떻게 시장의 장치로 포획할 것인가에 대한 셈법까지도 계산하고 있으며 고도의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 은밀하게 노동력이 팔리고 있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이렇듯 대중 앞에서는 대중지성의 확산을 돕는 매개와 촉매 역할을 자처하지만 사실상 온, 오프라인의 사회문화적 자원과 지적 노동을 동원하고 포획하는 새로운 경제체제로 자리 잡고 있다. 오히려 우리는 노동의 불안정성과 취약성에 더욱 시달리고 있으며, 또 다른 자본의 승자독식 구조로 경제가 신음하고 있다. 플랫폼과 알고리즘의 기술 장치를 경유해 다른 무엇보다 노동과 고용관계의 질전 전환, 자본주의적 생산 조직의 외면 확장을 꾀하는 신흥 자본주의 시스템인 플랫폼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우리가 정말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사회적인’ 기능을 잘 이용하고 있는가를 상기시킨다.

 

이용자들의 데이터 활동이 플랫폼 자본주의에 포획되지 않고 사회적인 공통의 에너지로 전환되는 민주적 플랫폼 구상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향후 우리의 다양한 실천적 노력 여하에 따라 자원 약탈의 야만성이 기술의 세련됨으로 포장되어있는 껍데기를 벗겨내어 숙의적 소통과 데이터 권리가 가능한 소셜 플랫폼을 구축시켜내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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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9. 4. 30. 00:48

5년째 시간이 멈춰있는 그곳,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이하며.

다시 물어본다. 잊지 않겠다고 한 우리에게.

 

이승은 기자

 

 

또다시 봄이다. 꽃들은 자신이 질 줄을 알면서도 철없이 만개해버리고 마는데, 만개해버린 꽃들을 보면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여기 있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뒤 시간이 멈춰버렸다고 말한다. 돌이킬 수도 없고, 나아갈 수도 없어서 마치 다른 공간에서 혼자 있는 듯 보였다. 팽목항에도 어김없이 꽃이 피었고 작년 8월 진도 팽목항 분향소와 동거차도 초소 철거, 정리하면서 팽목항의 봄을 위해 잠시 들리는 분들도 줄어들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고 발길이 끊어지는 것은 이뿐만은 아니다. 5번의 봄을 지나며 두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던 유가족은 지금도 여전히 나아진 것은 없다고 말한다. 정권이 바뀌고 나니 사람들은 ‘해결 잘되겠지’하며 관심을 멈추고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어도 진상규명의 속도는 너무 더디어 유가족들은 답답함을 내비친다. 여전히 목소리를 높여서 계속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며 국가가 알아서 해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고 유가족들은 또 어김없이 정부를 향해 곤두세우며 목소리를 내비쳐야 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생기기도 한다. 2017년에는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 2기 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지난 2월 28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추모시설이 ‘4.16 안전공원’ 건립 계획이 확정됐다. 추모공원과 추모기념관, 추모비로 구성된 추모시설은 안산시 화랑유원지 인근 2만3천㎡ 넓이의 터에 건립된다. 내년에 디자인 공모와 설계를 걸쳐 2021년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여기서 진상규명만 제대로 하면 그 믿음에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선체조사위는 침몰 원인의 결론을 내지 못했고 사회적 참사 특별 조사위도 활동 성과가 아직 미미하다. 강제수사권이 없는 위원회가 갖는 한계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전면 재수사를 요청하는 국민 청원까지 올라왔으며 이에 해당하는 내용은 해경은 왜 선원만 구조하고 승객들을 구조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지, 세월호 급변침과 침몰의 진짜 원인은 무엇인지, 박근혜 정부는 왜 ‘7시간’ 기록을 봉인하고 집요하게 진상규명을 방해했는지를 요청하는 청원 글이다. 현재로서는 특조위가 자료 요청을 요구해도 정부 기관이 없다고 하면 받을 수 없다. 정부 문서의 보존 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책임자 처벌도 공소시효가 있는 상태에서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버린 현재 골든타임을 잡아 제대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4.16 기억저장소는 세월호 희생 학생 어머니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 민간영구기록물관리기관이다. 참사 관련 자료, 희생자 유품, 유가족 활동 기록, 시민들이 보낸 추모 메시지, 피해자 구술증언 등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안산에 있는 서고 5곳에 나누어 보관한다. 이렇게 모은 기록 하나하나가 기억 투쟁을 위한 연료 역할을 한다. 희생 학생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기억과 경험을 담은 4.16 구술 증언록 <그날을 말하다>가 100권의 책으로 나온다. 4.16 기억저장소에서 2015년 6월부터 “4.16 구술증언 수집사업”을 진행한 것을 바탕으로 책으로 엮는다. 구술증언은 당사자가 특정 사건에 대한 본인의 경험과 기억, 의견 등에 대해 증언한 내용을 육성 그대로 채록하는 기록의 한 방식이다. 이번 구술증언 수집으로 흩어져 있는 4.16 관련 기억을 소환하여 기록함으로써 이후 진상규명 및 역사기술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4.16의 이야기를 당사자들의 직접 증언한 구술증언을 통하여 많은 사람과 4.16 당사자들과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며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에 대해 더욱 정확하고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음을 기원하며 작업을 했다. 이현정 서울대 교수(인류학자)가 구술증언팀을 꾸렸고 피해자 가족 88명, 잠수사 4명, 동거차도 어민 2명, 유가족 공동체 단체 관련자 6명의 육성을 편집 없이 그대로 옮겼다. 구술 자는 약 2시간씩 3회에 걸쳐 참사 이전의 삶, 팽목항과 진도에서의 경험, 자녀에 대한 기억, 참사 이후 투쟁과 공동체 활동, 개인과 가족의 변화와 깨달음 등을 증언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술 내용을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이현정 교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서 세월호 인양, 그리고 촛불 혁명에 이르는 유가족들의 투쟁은 트라우마의 고통을 딛고 ‘기념비적 삶’을 살아간 자들의 저항 역사라며 세월호 참사를 좀 더 정확하고 다각적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말했다.

참사 이후 시간이 지나도 그리움은 더 깊어져만 간다. 이들이 깊어지는 그리움 때문에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 사이에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고통을 점점 더 진하게 익히고 있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금세 그 틈으로 세월호 참사 당시의 기억이 채워졌고 이들은 세월호라는 괴물을 없애지 못하고 우두커니 지켜보거나 곁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피해자들이 세월호를 마주하는 것은 고통일 뿐이지만 이 고통 속 시간은 계속 멈춰져 있다.

4.16 기억저장소는 세월호 희생 학생 어머니들이 한발 한발 해나가기 위해 만든 기간이다. 국가가 알아서 해주는 거는 하나도 없다고 느낀 이들이 결국 스스로 해나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믿고 의지하는 수밖에 없는, 이른바 ‘사회’로 통칭하는 국가, 기업, 전문가들이 체계적으로, 구조적으로 자신들을 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래서 믿을 것이란 아무것도 없고 그러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각자도생밖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더라도, 국가, 자본, 전문가에 의해 방치되는 대다수 약자의 삶은 그저 불안정한 우연에 달려있을 뿐이라는 것. 세월호 참사는 들켜서는 안 되는 은밀한 진실이 폭로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수습과정에서 관찰된 구조화되고 조직화한 무능과 무책임함을 보면서 한국사회에 대한 신화, 즉 암묵적인 전제와 가정이 산산이 조각났다.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선진화를 통해서 발전된 산업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이다. 유연한 노동시장, 규제 완화, 민영화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배를 운항하던 선장과 선원, 구조에 투입된 해경, 그리고 컨트롤타워로 작동해야 할 정부까지도 모두 무책임하고 비효율적이라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세월호 참사는 유연한 노동시장과 규제 완화를 통해 시장에서 효율성이 증진되고 공공기능을 민영화함으로써 유능하고 효율적인 작은 정부가 된다는 선진화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신화를 허물었으며 구조적 현실을 폭로했다. 벌거벗은 신자유주의 통치성을 보게 되었다.

잊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도록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과

잊게 만들려는 조직들에서 벗어나 감시하겠다는 뜻이 아닐까. 신자유주의적 지배질서가 계속되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모순과 위기의 징후들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결코 세월호 참사 그리고 그로 인해 희생된 이들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잔인하게도 다시 봄이다. 4.16 기억저장소에 후원자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고, 후원하기 시작했다. “기억은 희망을 만들고, 기억하고 행동하는 것은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기억저장소의 비전에 나온 문장을 발췌했다. 잊지 않겠다고 한 우리에게 다시 물어보고 있다.

 

 

[4.16 기억전시관 : 4.16기억저장소 홈페이지]

 


1) 지주형, 세월호 참사의 정치사회학

2) 4.16 기억저장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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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 12. 18. 13:50

[가장 소중한 그리고 가장 소중해야 하는 ”]

- 1인 가구 욕구 위계론-

 

김명회 기자 sggkmh@sogang.ac.kr

 

 

<그해 겨울 나무>

 

처음엔 혼자였다

 

모든 것이 풍족했던

푸르렀던 그때는

자연이 나와 함께했다

 

모두가 우러러보던

붉고 찬란했던 그때는

사람이 나와 함께했다

 

그렇게 함께했던

시간이 지나고

 

하얀 눈이 왔을 때

 

다시 자유롭고 고독한

혼자가 되었다

 

시가 갖는 일반적인 특징은 무연한 것들을 인연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위 시를 통해 나무와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전혀 무연한 관계가 인연이 되었다. 나무는 처음에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풍족한 자양분과 햇빛을 받으며 계절이 바뀜에 따라 초록색의 옷을 입게 된다. 이때 나무에 새도 찾아오고, 매미도 찾아오고 자연의 많은 것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계절이 변해 가을이 되면 나무는 울긋불긋한 색깔을 갖게 되고, 아름다운 자태에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리고 겨울이 되어 눈이 내리면 나무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런데 이 시기는 나무에게 자유의 시간이기도 하고 동시에 고독의 시간이기도 하다.

나무의 이런 모습이 지금 우리 시대의 1인 가구와 닮아있다. 지금 혼자인 것처럼 그들이 세상에 처음 왔을 때 역시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세상을 살아가며 나무처럼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최선을 다해 살아 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누군가는 너무 지쳐서 자발적으로 자유로운 혼자의 삶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현실의 어려운 문제들로 인해 비자발적으로 고독한 혼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1인 가구에 대한 이야기가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너무 익숙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쓰는 이유는 익숙함이 우리가 이들을 잊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1인 가구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던져야 할 명제가 있다. 바로 “1인 가구는 좋은 삶인가?”에 대한 것이다. 1인 가구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성별에 따라, 연령에 따라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20대에는 1인 가구의 삶이 자유와 독립으로 인한 동경의 대상일 수 있겠으나, 50대 이후의 남성들에게 1인 가구의 삶은 만족도가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1인 가구는 어느 한 시점에서의 만족도와 같은 것이 아니라 인생 주기 전체라는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해 누구도 쉽게 정답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 사회가 1인 가구가 좋은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이는 인간이 개인으로서 있어도 그 개인이 유일적(唯一的)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 하에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용어로서 개인은 사회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표사유피 인사류명 [豹死留皮 人死留名]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이 그토록 속하고 싶은 사회에서 인간이 가장 바라는 바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기억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1인 가구가 사회에서 기억되는 삶은 궁극적인 욕구이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들이 많다. 매슬로는 인간의 동기가 작용하는 양상을 설명하기 위해 동기를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 존중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 욕구 총 5단계로 동기이론을 제시했다. 매슬로에 따르면 각 욕구는 우성 계층(hierarchy of prepotency)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욕구 피라미드의 하단부에 위치한 욕구가 충족되어야만 상위 계층의 욕구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1인 가구가 더 나은 삶, 기억되는 삶을(존중 욕구, 자아실현 욕구) 추구할 수 있도록 우리는 이들의 삶에 대한 단계적이고 다각도적인 접근과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본 글에서는 매슬로의 5단계 욕구 이론을 1인 가구의 삶과 관련한 개념으로 연결시켜 재해석해보고자 한다.

 

 

잘 먹고 잘사는 1인 가구 <1인 가구 욕구 위계론>

<사진2> 매슬로 5단계 욕구 이론을 재해석한 1인 가구 욕구 위계론

 

지난 11월 평소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꿔왔던 한 여대생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대학교 졸업을 1년 앞두고 경력을 쌓기 위해 공연기획 인턴을 하는 친구는 지금 하는 일이 힘들지만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그러나 결혼에 긍정적이었던 친구가 혼자 사는 게 더 행복할 것 같다고 말하며, 결혼 및 육아를 병행할 시 겪어야 할 경력 단절에 관한 고민을 이야기했다.

이처럼 여성의 경제 활동 증가, 젊은 세대 결혼관 변화에 따른 비혼과 만혼의 증가, 또한 장년 세대가 잃어버린 각자의 삶을 찾기 위해 떠나는 졸혼, YOLO 족 증가 등 개인 선택에 의한 1인 가구의 증가 원인은 다양하다.

또한, 주거 문제, 가계 곤란, 기러기 가족, 이혼, 별거, 사별 등 가족해체, 고령화 등의 외부적인 증가 요인들도 다양하다. 이들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들도 해소하기 어려운 집단이기 때문에 보다 더 많은 관심과 정책들이 필요하다.

 

- 1단계: ‘Plate’ 충족 욕구 (생리적 욕구)

생리적 욕구는 음식, , , 수면, 항상성, 배설, 호흡 등과 같이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본능적인 신체적 기능에 대한 욕구이다. 이 단계를 Plate(하나의 접시에 나오는 요리) 정한 이유는 1인 가구를 위한 생리적 욕구에 대해 특별히 그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논의하기 위함이다. 1인 가구의 식문화는 자유로움과 간편함의 확대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자유로운 메뉴 및 시간 선택, 효율적인 시간 사용이라는 장점과 동시에 끼니 거르기, 영양 결핍 등의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한계점을 개선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자.

 

건강 챙기는 자유롭고 간편한 밥

1인 가구의 건강한 식사를 위해 시장과 정부의 노력이 부단하다. 편의점은 맛과 가격 그리고 영양까지 챙긴 다양한 도시락을 출시하고 있다. GS25 편의점의 경우, 1인 가구의 식사량을 고려하여 추가 증정 식품을 나만의 냉장고라는 애플리케이션에 담아 두었다가 원할 때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모바일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대형마트에서는 1인 가구를 위해 소량포장 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또한, 외식업체들은 1인 가구를 위한 좌석과 메뉴들을 확대하고 있으며, 식품 업체들은 1인 가구의 편의성을 고려하여 식재료를 손질한 채로 제공하는 반조리식품을 다양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혼자서라도 돈만 지불하면 무엇이든 합리적으로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이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혼밥의 일반화에 따른 영양 불균형을 해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2020년부터 편의점 도시락, 즉석밥에 나트륨 등 영양 성분 표시를 볼 수 있게 하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발표했다. 또한 시민건강관리센터에서는 영양 검사 및 상담 프로그램 제도를 도입하여 건강한 식사를 유도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지자체의 움직임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지난 1130일부터 괴산군 보건소는 '독거노인과 함께하는 집밥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집밥 프로젝트'는 지역 기관 및 단체들이 독거노인 가정을 주 1회 방문하여 도시락을 전달하고 그분들과 함께 식사하며 끼니도 제공하고 사회관계망을 형성을 통해 고독감을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이날 함께한 독거노인은 "평소에는 혼자라서 제대로 식사를 챙기지 못했는데 이렇게 여러 가지 반찬의 식사를 제공해주고 여러 사람과 함께 먹으니 매우 즐겁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 나은 밥을 위한 제언

 

<사진3> 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캐서롤 클럽프로젝트

 

유럽의 경우 우리보다 1인 가구 현상을 더 일찍 접했으며 증가 속도도 매우 빠르다. 벨기에의 경우 2000년에 전체 인구 비율 중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일 가장 높았으며 2060년이 되면 그 수가 절반이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영국에서는 2011년도부터 캐서롤 클럽(Casserole Club)’이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해오고 있다. 이는 요리를 좋아하는 이들과 스스로 요리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나이 많은 이들을 연결해주어 음식을 공유하고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가정에서 음식을 많이 했거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직접 요리한 음식을 공유하고 싶다면 온라인을 통해 요리를 등록하면 된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 기관, NGO와 긴밀히 협력해서 더 많은 지역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현재는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지역에 걸쳐 7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6년부터 빨간냄비 캠페인을 통해 한국판 캐서롤 클럽이 확산되고 있는데 앞으로 전국으로 지속 확대되길 기대한다.

1인 가구에 대해 정부랑 단체에서 관심을 기울여 해결하고 있다는 건 바람직하다. 지역별로 1인 가구 분포 유형이 상이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을 볼 때, 다양한 정책 대상을 고려한 보다 더 섬세한 정책이 요구된다.

 

- 2단계: ‘Economy & Real estate’ 충족 욕구 (안전 및 안정의 욕구)

안전과 안정의 욕구는 개인적인 안정, 재정적인 안정, 건강과 안녕, 사고나 병으로부터의 안전망에 대한 욕구이다. 1인 가구의 안전의 욕구에 대해 주거 및 경제를 중점으로 논의하기 위해 이 단계를 Economy & Real estate로 정했다.

 

거주할 수 있는 주거 주거 복지 로드맵

주거는 인간의 안정 및 안정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주거 문제는 1인 가구 급증의 직접적 원인이자 가장 큰 문제이다. 이런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지난 1129일 관계부처 합동으로사회통합형 주거 사다리 구축을 위한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했다. 이 로드맵을 통해 정부는 청년들에게 맞춤형 청년 주택 총 25만 실, 기숙사 5만 명을 입주시켜 총 30만 호를 공급할 예정이다. 무주택 청년층에게 도심 내 우수 입지를 저렴한 비용으로 임대하고, 일자리 연계, 셰어하우스 등 청년 맞춤형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입주자격도 완화해 소득 활동 여부도 입주기준에서 제외하고 소재지 기준도 완화시켜 19~39세 이하 광역권 청년 모두에게 입주기회를 준다. 본인이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의 80% 이하 이거나 본인 소득이 없는 경우 부모 소득이 평균소득 이하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또한 이는 기존의 주거 정책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대학원생 및 프리랜서 1인 가구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또한, 독거노인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 및 보유주택을 활용한 지원도 강화된다. 무장애 설계, 지역자원을 활용한 복지서비스 연계 등을 활용해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총 5만 호가 공급된다. 독거노인 거주용 주택에는 홀몸노인 안심 센터를 설치하고, 임대료가 저렴한 영구임대, 매입임대를 차상위 고령자에게 확대한다. 자가 점유율이 높은 점도 고려해 보유주택을 활용, 연금 형 매입임대 등 생활자금 마련을 지원하고, 주택 개보수도 지원한다.

화려한 싱글들을 위한 경제 지원 정책

통계청에 따르면 20174분기 연속 1인 가구 소득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1인 가구의 소득감소는 문제가 되고 있으며, 이는 가벼이 여길 문제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 9월 부산지역에서 열린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종합 대응전략 포럼에서 발표한 종합보고서의 1인 가구 경제 지원 정책은 그런 측면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201인 가구 옥탑방 청년의 특징은 취업 준비를 위해 열악한 주거 환경과 저소득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301인 가구는 오피스 싱글로 사회에 정착하고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면서 혼자 사는 삶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대출금 등 주거비 부담을 느끼고 있다. 종합보고서에서는 이들의 경제적 지원을 위해 긴급생활안정자금 우선 지원, 맞춤형 일자리 정보 제공, 주거 바우처제 등의 대책을 제시했다.

401인 가구 홀로 꽃중년은 경제적인 소득, 주거환경, 가족 및 친구 관계 등에서 원만한 생활을 유지하지만, 이웃과의 교류는 거의 없고 성인병 등 건강 걱정을 시작하는 시기다.

장년 돌싱으로 표현되는 501인 가구는 이혼으로 1인 가구가 되면서, 건강 걱정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동반하게 된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특히 남성은 친구 관계가 단절되고 건강이 나쁘며 주거환경이 열악하다고 했다. 중장년 1인 가구는 일자리 재생 사업과 근로자 직장프로그램 운영 등으로 경제적 문제를 지원하고 50+ 돌봄 매니저 배치, 중장년 상담소 등으로 생활 분야에서 안정을 얻도록 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601인 가구는 액티브 실버라 불리며, 사별로 혼자 살면서 주로 연금 생활을 하는 여성이 많다. 친척이나 자녀, 이웃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한다. 무엇보다 은퇴 이후에도 경제권을 쥐고 있어 구매력도 갖추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사별로 혼자 살게 된 70홀몸 노인은 생활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경제적으로 힘들다 보니 친척, 친구 관계가 위축되고 노후 주택으로 주거환경이 열악하다고 파악했다. 노년층 1인 가구에 대해서는 마을공동체 사업을 확대해 일자리를 우선 배치하고 공동실버주택 등 주거환경 개선사업과 일상생활 서비스 등을 중점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3단계: ‘Social family’ 충족 욕구 (애정과 공감의 욕구)

매슬로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규모가 크든 작든 사회 집단에 소속되어 수용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사람은 사랑하고 다른 이에게서 사랑받기를 원한다. 많은 사람은 사랑과 소속의 욕구가 결핍되었을 때 외로움이나 사회적 고통을 느끼며, 스트레스나 임상적인 우울증 등을 겪기도 한다. 따라서 1인 가구를 위한 애정과 공감의 욕구를 위한 제도가 필요한데 그들을 위한 제도가 바로 사회적 가족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회적 가족의 유형에는 소셜 다이닝, 셰어하우스, 소셜팸 등이 있다.

 

정서적 허기와 건강한 식사를 위한 사회적 가족 소셜 다이닝

소셜 다이닝이란 SNS를 통해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 식사를 즐기며 인간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1인 가구로서 가족과 함께 식사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나 혼자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던 사람들이 건강한 식생활라는 공통된 관심사로 뭉치는 것이다. 소셜 다이닝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집밥(zipbob.net)’이 바로 대표적인 소셜 다이닝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의 예이다. 집밥은 공통의 관심사를 두고 같이 식사할 수 있도록 중개 역할을 하고 있는데, 밥 친구가 필요한 사람이 같이 밥 먹을 사람 찾아요라는 글을 올리면 희망자들이 댓글을 다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SNS를 매개로 한 소셜 다이닝은 신세대들에게 맞춰져 있어 노년층에게는 진입장벽이 높다. 그러나 정부 기관 및 지자체의 노력들이 그러한 진입장벽을 낮춰 소셜 다이닝의 또 다른 동력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 강동구에서는 2015년부터 공유부엌이라는 1인 가구 식사 공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강동구의 공유촉진 사업 중 하나로 1인 가구가 모여 함께 음식을 만들고 식사를 하며 소통하도록 장려하는 지역 주민 네트워크 프로그램이다. 건강과 끼니를 때우기 위한 이유로 참석한 사람들도 이웃과의 소통을 통해 사회적 가족의 따뜻함을 경험하고 있다.

 

함께 사는 1인 가구 셰어 하우스

셰어하우스(share house)는 하나의 주거를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다. 주거 비용 부담 감소, 취미나 공통된 관심사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입주하여 외로움을 타파할 수 있다는 장점들이 있다. 벌써 민간에서는 우주, 허그 등 셰어하우스 사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지자체들도 셰어하우스 공급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서울에서는 동작구가 지난 8월 임대주택을 리모델링해 청년 1인 가구를 대상으로 셰어하우스를 공급하고 있다. 부산에서도 노인보유 가구를 청년에 공유해주는 셰어하우스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같은 집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거주자들이 서로에게 상당한 가족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1인 가구의 애정과 공감의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해줄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 셰어하우스는 아직 보편적인 문화가 아니다. 독립적인 생활을 선호하는 1인 가구들에게, 주거공간을 공유하는 방식이 아직 인기를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셰어하우스가 사회적 가족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반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안전, 복지, 문화 등 다양한 관점에서 현재 변화하는 주거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가족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가족 소셜 팸

소셜 팸은 시니어희망공동체가 운영하는 노인층 1인 가구 고독사 예방과 청소년들의 가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 정립을 위한 활동이다. 성년 후견 제도에 대한 법률자문과 공공후견을 지원하고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세대를 하나의 사회적 가족으로 묶어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소셜 팸은 대표적으로 농촌 독거어르신 웰다잉 봉사활동, 저소득 치매 독거노인을 위한 공공후견 지원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사회적 가족의 역할을 확실히 하고 있다. 그러나 소셜 팸 활동은 자원봉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다보니 단발성으로 끝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래서 소셜 팸의 지속성을 위한 우리 사회 전체의 후원과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더 나은 1인 가구의 미래를 바라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1인 가구 증가로 인해 다양한 사회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 미숙한 부분도 존재한다. 그래서 마지막 4, 5단계에서는 더 나은 1인 가구의 삶을 위해 나아갈 방향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번 단계들에서는 정책적인 부분들보다 정책에 근간이 될 수 있는 우리의 삶에 태도 기억하고 함께하는 삶에 대해 논하려 한다.

 

- 4, 5단계: “One another” & “Navigator” 충족 욕구

(존중, 존경 & 자아실현의 욕구)

존경의 욕구는 타인들로부터 존중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존중은 타인으로부터 수용되고자 하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전형적인 욕구를 나타낸다. 모든 제도가 갖추어지더라도 사회적 존중이 없다면 1인 가구는 또 다른 욕구 결핍과 마주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4단계는 서로를 의미하는 ‘One another’로 정했다. 그렇다면 사회적 존중은 무엇으로부터 나올까.

그 해답은 인간성에서 찾을 수 있겠다. 인간성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의 됨됨이이다. 인간의 됨됨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됨’, 즉 인간의 완성이라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를 인간으로 존중하는 인간의 됨, 이것으로부터 사회적 존중이 나올 것이다.

그다음에서야 우리는 5단계인 진정한 를 발견하는 자아실현을 위해 나아갈 수 있다. 드디어 모든 것이 갖춰졌고 우리는 우리 삶의 항해사 ‘Navigator’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무엇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저마다의 가치관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나아가는 삶의 방향이 또 다른 누군가가 자아실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덕()스러운 자아실현을 하는 1인 가구가 되기를 바란다.

1인 가구 욕구 위계론 표를 통해 눈치챘겠지만(이니셜을 조합하면 PERSON이 됨) 더 나은 1인 가구의 핵심은 결국 ‘PERSON’, 즉 사람이다. 1인 가구의 모든 정책도, 인간성도, 자아실현도 사람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더 나은 1인 가구를 위한 모든 것은 사람에 대한 생각 사람을 위한 마음에서 시작한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익숙함 때문에 잊히는 누군가가 있어서는 안 된다. 올겨울은 모두가 따뜻했으면 좋겠다. 당연한 사회 현상의 하나로서 1인 가구, 독거노인이 잊히는, 그래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외롭게 떠는 겨울이 아니라, 그들 손에 따뜻한 커피나 고구마가 쥐어져 있어 미래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겨울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이번 연말은 집에서 혼자 쉬는 것 대신, 1인 가구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언가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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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 10. 18. 11:01

정재원 기자 agnes1026@sogang.ac.kr

 

너희들은 다시 이 광장에 나오지 않길 바랐어.”

나는 지난겨울 광장에서 J의 어머니를 처음 만났다. J와 나는 오래전부터 같이 공부를 하던 사이다. 몇몇 친구들이 모여 난해한 철학책을 읽어보겠다고 덤볐고, 책을 사이에 둔 우리는 책보다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더 깊고 오랫동안 하게 됐다. 우리는 서로 지난 과거사, 가정사 등을 길게 펼쳐놓았고, J가 그녀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한 것도 그 무렵이다. 내가 J로부터 전해 들은 그녀의 어머니는 과거 5.18 광주민주항쟁 때 그 중심인 전남대에서 가장 열심히, 선두에서 서서 민주화 운동을 하시던 분이다.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그녀는 계속 최전방에서 그녀가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 운동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50대 중반, 약간은 희끗한 머리에 웃음 자욱이 옅게 남은 얼굴의 그녀는 광장을 채운 수많은 인파 속에서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나와 J, 그리고 우리의 친구들과 J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친구들.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우리는 광화문을 빼곡히 채운 인파를 겨우 헤치며 광장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말을 꺼냈다. 본인도 대학 다닐 때 함께 책 읽으며 공부했던 친구들과 지금까지 가장 친하다는 말, 너희들은 다시 이런 일을 겪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는 말, 그래서 과거에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이 그렇게 열심히 싸웠다는 말을 남겼다.





사진 1 | 201611월의 광화문 광장

너희들은 다시 이 광장에 나오지 않기 바랐어.”

그녀는 그녀 자신에 이어 자신의 자식들까지 불의와 싸우지 않길 바랐고, 그러기 위해 자신의 청춘을 민주화 운동에 바쳤다고 했다. 그녀의 말에 나는 이상한 생경함을 느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나에게 새로운 역사가 아니다. 이미 교과서를 통해, 수많은 책들을 통해, 그 시대를 다룬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통해 오랫동안 접해온, 친숙할 수밖에 없는 역사이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전해 듣는 과거 민주화 운동의 역사는 이상하리만치 생경했다. 과거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전혀 모르고 있는 내가 아닌데, 왜 유독 그날 그녀에게서 들은 그 과거는 그토록 새롭게 다가왔을까. 나는 이제까지 여성의 입으로 재현되는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들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과거 민주화 운동의 역사는 386 서울 명문대 남성들에 의해 쓰였고, 여전히 50대 남성들의 영역이다.

 

반쪽의 공감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활약은 눈부시다. 출간 7개월 만에 판매 부수 10만 부를 찍으며 상반기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 <82년생 김지영>‘82년에 태어나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육아 우울증을 겪고 있는김지영의 이야기이다. 동시에 요즘을 살고 있는 대다수 여성의 이야기이다. <82년생 김지영>의 선풍적 인기는 아마도 김지영의 삶에서 자신의 삶을 보는듯한 기시감을 느끼는 여성들에게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연극으로 각색되기도 하고, 영화화가 진행 중이기도 하며, <SBS 스페셜>에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SBS스페셜> “82년생 김지영-세상의 절반 이야기편은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지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의 삶을 모았다. 아마도 시청자들은 텔레비전 속에 모인 삶들 속에서 또다시 자신의 모습을 찾아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던 날, 나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우리 엄마처럼.

사진 2 | <SBS스페셜> “82년생 김지영 세상의 절반 이야기예고편 중

82년생 지영씨 중 한 명은 어린 남자아이를 키우며,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녀는 아이를 낳으며 하던 일을 잠시 그만뒀다가,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시간 맞춰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그녀는 회사에서부터 집까지 구두를 신고 전력 질주를 한다. 양손에는 서류와 노트북을 한 아름 안고, 신호에 걸려 횡단보도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을 때는 발을 구르며 시계를 확인한다. 62년생인 우리 엄마는 82년생 지영씨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자기 자신도 아이들 키울 때, 뛰어다니는 습관이 생겼다면서, 그때 구두를 신고 뛰다 넘어져 생긴 오래된 상처들을 되짚는다. 62년생 우리 엄마와 82년생 지영씨 사이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사실이 슬펐다. 두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20년의 세월 동안, 여성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는지, 아니 변화하긴 했는지 생각하니 조금은 아득해지기도 했다.

동시에 나는 나 자신이 <82년생 김지영>에 반쪽짜리 공감밖에 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서툰 공감의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오래 생각했다. 여성주의 학자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학생이든 아니든 젊은 여성들은 이 남성 지배적 사회에서 가장 대우받은 집단이다. 우리는 여성들을 급진화시키는 인생의 쓴맛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즉 임금노동자가 되어 여성이 어떻게 대우받는지를 알고, 결혼이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아이들을 키우며 혼자서 책임을 도맡고, 아직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욱 큰 짐으로 다가오는 노년의 세월을 겪어보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젊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반감을 갖는 현상을 지적한다. 나 역시 이런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는지, 소설 속 지영이 임신 상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것을 비꼬는 여대생의 모습이 내 안에도 존재하는 것이 아닐는지 의심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의 반쪽짜리 공감의 이유는 아마도, 내가 엄마라는 정체성을 겪어보지 못했으며 동시에 나 자신을 누군가의 아내, 엄마, 그리고 딸로 정체화하지도, 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누군가의 아내도 엄마도 아닌, 내 삶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공부하는 연구자로 정체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혁명가의 엄마, 아내 혹은 딸

 

여성주의 학자 전희경은 그의 저서 <오빠는 필요 없다>에서 876월 민주항쟁 이후, 90년대 사회운동에 참여한 여성의 역사를 복원한다. 전희경은 90학번에서 96학번, 열여섯 명의 여성 활동가를 심층 면접 방식으로 만나 사회운동에 대한 그들의 기억을 충실하게 기록한다.

전희경은 책의 도입부에서 여성 활동가들에게, 사회운동에 발을 담그게 된 계기를 묻는데 그 대답이 매우 인상적이다. 다수의 여성 활동가들이 그 이유를 재미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들은 집회에 나가는 것이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전희경은 이러한 동기에 주목하여 여성들이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의 의미를 짚어낸다. 전희경은 문승숙을 인용하며,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많은 시민이 집단적 열기가 넘치는 대규모 집회나 행진에 직접 참여하면서 이전까지 노동자, 주부, 회사원, 학생이던 개인들이 시민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 집회에 참여하는 경험은 국가의 동원 대상에서 권리를 지닌 주체로 변화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들의 사회운동 참여도 해석할 수 있는데, 집회의 참여는 여성들에게 그들이 사적인 장에 유폐된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공적 주체가 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여성들 자신이 어머니, 주부, 딸이라는 사적 영역에 속한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국가와 관계 맺는 시민이 된다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주체성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적과 동지를 구분할 수 없는 진흙탕 싸움

 

하지만 여성들의 사회운동 참여는 보다 다층적인 의미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전희경의 책에서 이어지듯, 여성들이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쟁취하기 위해 싸워야 했던 상대는 독재 정권, 혹은 비민주, 민족주의뿐만이 아니다. 여성들은 그것들에 더해 가부장제와도 싸워야만 했다. 더군다나 가부장제는 독재정권과 다르게 선명한 을 상정할 수 없게 한다. 가부장제는 여성으로 하여금 의 피아 구분이 불가능한 진흙탕 싸움, 더 무겁고 어려운 싸움으로 이끌었다. 남성적, 가부장적 사회운동 영역 안에서 인정받고자 했던 여성들의 인정욕구는 자신의 여성성을 본인 스스로 적극 부정하게 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여성 자신이 다른 여성의 적이 되게 하기도 했다. 또한, 모두가 존경하는 남성 선배가 다른 의미에서 나의 적이 될 수도 있다. 여성들은 인권, 민주주의, 인간해방 등의 대의를 말하는 사회운동의 영역에 속해 도리어 가부장제의 질서에 의해 억압되어 대의와 자신의 삶 사이의 괴리를 겪어야만 했다. 여성이 주류 사회 운동 속에서 정치적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 자체에 남성 권력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아주 깊게 개입했고, 그 권력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부장제 사회운동의 구도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혁명가, 투사들의 상처를 안아주거나, 옥바라지를 해주는 어머니, 아내의 역할에 국한되었다. 여성들은 혁명가의 자리에 서기보다는, 혁명가의 아내, 혁명의 보조자 역할에 가둬졌다. 전희경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별 분업은 단순한 역할 분담이 아니라고 말한다. 성별 분업은 공적 주체로서의 남성을 기준으로 하여 남성을 보조하고 지원하는 비가시화된 노동으로서 보살핌과 가사노동이라는 여성적 노동을 여성에게 부과하는 위계적 체제라는 것이다. 즉 여성의 노동은 남성이 존재할 때만 의미가 있게 되며, 여성은 노동하면 할수록 평가 절하되는 구조인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너라는 거울

 

전희경은 여성주의 문화연구나 방법론 연구에서 서사를 일련의 경험에 대한 선택과 배제를 통해 과거를 특정한 방식으로 배열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구성적이며 힘의 구조라는 것을 밝혀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과거의 구성은 현재 힘의 구조에 의해 이루어지고, 따라서 과거는 정치적 관심에 따라 계속해서 다시 쓰여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대건 현재를 살았던 여성들은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절반의 여성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은 최근 <영초언니>라는 자전적 에시이집을 발간했다. 서명숙은 대학 시절 함께 자취하던 천영초를 사회적 모순에 눈을 뜨게 해준 사회적 스승이었다고 회고한다. 서명숙에 따르면 천영초는 1970년대 고려대 운동권의 상징적 인물이며, 고려대 역사상 가장 큰 집회를 이끈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가장 앞장선 인물이고, 여성들의 학습운동조직을 이끈 인물이다. 서명숙은 지금 많은 남성 정치인들이 소위 운동권 팔이를 하며 먹고 살지만, 영초언니는 완벽하게 잊혔다는 것이 슬퍼 영초언니를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전한다.

사진 3 | 허정숙·주세죽·고명자(왼쪽부터) [한겨레출판 제공]

영초언니의 시간에서 조금 더 과거로 올라가면, 조선희 전 씨네 21 편집장이 최근 출간한 소설 <세 여자>의 주세숙, 허정숙, 고명자를 만날 수 있다. 소설 <세 여자>는 일제 강점기 공산주의 혁명가였던 세 여자의 삶을 다룬다. 주세숙은 남로당 총책 박헌영의 부인이었고, 허정숙은 나중에 북한 정권의 사법상과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을 지냈으며, 고명자는 박헌영의 동지인 공산주의 활동가 김단야의 연인이었다. 소설 <세 여자>는 철저한 고증과 상상력을 교차시켜, 세 여자가 역사를 통과하는 과정 그리고 역사 속에서 한 명의 인간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을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희는 1925년 고명자, 주세숙, 허정숙 세 여자가 단발머리를 하고 청계천으로 짐작되는 개울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진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전한다. 아마도 조선희는 단발머리에 맨발로 바로 선 신여성들을 보며 그들을 역사 속에서 복원해 당당히 위치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을는지도 모른다. 이 사진은 책 표지로 사용되었다.

역사 속에서 영웅적인 역할을 한 여성들의 삶을 복원한 <영초언니>, <세 여자>와 달리 여성주의학자 김은하는 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자괴감에 사로잡힌 활동가들이 자전적으로 적어낸 후일담 소설을 분석했다. 특히 김은하는 후일담 소설이 주로 남성 작가의 서사로 구성되었음을 지적하며,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여성 작가들의 자기 고백을 분석하고 그 존재를 복원하려고 노력한다. 김은하에 따르면 후일담 소설은 80년대 혁명 세대들의 치욕적 현존에 관한 자기 고백적 보고서로서, 90년대에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와 수적으로도 상당할 뿐 아니라, 장르문학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일정한 관습을 공유한다. 386세대의 후일담 소설이라 하면, 김영하, 김영현, 김소진 등 남성 작가들이 주로 언급되는데, 이는 386세대의 학생운동, 민주화 운동이 청년-남성 지식인 주도의 변혁운동으로 기억되어 왔다는 것을 방증한다. 김은하는 여성 386세대가 자전적으로 기록한 후일담 소설은 혁명이 좌절된 뒤 비로소 여성들이 자신들의 성별에 눈뜬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문제적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소환의 형식이 되면서 성별화된 기억의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 여성 386 세대는 고백적, 체험적인 젠더 서사를 보여줌으로써, 지난 날의 자신을 반추하며 현재의 좌절한 자기를 응시하는 후일담의 글쓰기가 여성의 젠더 체험과 어떤 관련성을 맺고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잊혀졌다.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대한 망각’, 바꿔 말하면 선택적 기억은 여성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여성들은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세상의 일과 의무의 절반을 수행했고, 역사에서 능동적인 동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인류 발전 과정에서 단지 주변적인공헌만을 한 존재들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보는 것은 남성 역사가들이 가부장적 가치들을 근거로 해서 내린 선택적 기억입니다. 여성들은 항상 역사 속에서 살았고, 역사 속에서 활동했으며,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여성사는 잃어버린 절반을 재구성하고 여성들을 능동적인 동인으로 사건의 중심부에 위치시키는 임무를 떠맡았습니다.

거다 러너(Gerda Lerner), <왜 여성사인가>, 149

거다 러너는 뒤이어 역사 속에서 소외되고, 지워진 소수자들이 여성 뿐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여성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 역사에서 지워진 소수자들의 역사를 복원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적었다. 왜 여성사인가를 묻는 질문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역사 속에서 세상의 절반을 복원하는 일이며 동시에 권력에 의해 기억하기를 선택받지 못한 소수자들의 역사 역시 복원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겨울 <문라이트>라는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아카데미 역사에 길이 남을 해프닝 이후 돌아간 상이기에, 그 해프닝이 수상 소감보다 더 주목 받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흑인이면서 성소수자인 주인공 샤이론의 삶을 고요하게 따라간 영화 <문라이트>의 감독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이크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을 비추는 거울 따위는 이 세상에 없다고 믿는 사람들, 우리는 당신을 우리를 더 많이 보여지도록 할거에요. 그런 의미에서 이 상은 당신을 위한 거에요.”

내가 나 자신으로 정체화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인이라는 거울이 필요하다. 미디어든 역사에서든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만나보지 못한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 당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렇기에 한 명의 시민이 되고 싶은 여성들에게도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필요하다. 그리고 역사의 분기점에서 한 명의 시민, 한 명의 혁명가 자리에 섰던 여성의 삶은 그들에게 거울이 되기도, 위로가 되기도 할 것이다.

62년생 우리 엄마와 82년생 지영씨 사이에 깊은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은 사실 슬픈 일이다. 강산이 두 번 변할 세월을 사이에 두고도 서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는 두 세대 사이에 슬픈 공감대 위에 문제의식이 생겨나고, 그 공감의 고리를 (긍정적인 의미에서) 끊기 위해 우리 사회가, 우리 모두가 공들여 노력해야 한다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상상력을 싹 틔울 수 있기 때문이다.

90년대에 태어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궁금하고, 내가 속한 사회가 더 나은 곳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세상을 공부하고 싶고, 또 그 속에서 내 두 발로 설 자리를 찾는 나는, 나의 거울을 찾아 켜켜이 먼지 덮인 역사 속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여성들을 찾았다. 그리고 나는 나 이전의 많은 여성들이 나와 같은 작업을 오랜 시간 해오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들을 거울삼아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2017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아이들은 이런 나에게 공감하지 않았으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들을 비추는 맑은 거울이 사방에 즐비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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