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9.07.05 20:30

김진아, 일상 속 숨어있는 노동을 찾고 무기력감을 재해석하기

 

 

작가 김진아는 현 사회에 많은 문제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무기력과 무력감을 소재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작가는 반복된 일상 속 매일 밥을 입에 넣으며 살아가는 것에 의문을 느꼈을 즈음, 스스로 느낀 무기력감을 재해석하며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일상의 유지에 관한 것이며, 작가는 무기력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바라보려 한다. 누구나 한 번쯤 느끼는 감정인 만큼 전시를 통해 관객들이 일상의 유지를 여러 각도로 생각해보는 기회를 만들었다. 이번 호의 주제인 “되짚다”처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인지하지 못한 채로 지나가는 사소한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서 우리의 일상에 숨어있는 노동으로 인한 무기력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마련해보았다.

 

인터뷰 및 편집 박시은, 이승은, 전건웅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작가님이 해오신 작업을 보면 ‘노동’, ‘무기력’이란 키워드가 자주 보이는데요. 작가님의 관심사는 무엇이고, 이를 소재로 작업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김진아 작가(이하 김)> 제 개인사와 많이 연관되어있습니다. 저 또한 굉장히 내성적이고 무기력했던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완전 정반대로 바뀌게 되었는데요, 사람들이랑 얘기하게 된 의미를 찾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건을 겪고 나니깐, 저의 원래 외향성과 내향성, 이 둘이 마음 안에 있는 거예요. 제가 원래 가진 건 내향성인데, 사람들을 대할 때는 외향적으로 대할 수도 있고. 그런 부분들을 오랫동안 생각해왔습니다. 그 무기력한 것도 사실은 굉장히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죠. 씨앗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씨앗 같다고 한 것은 어떤 계기로 갑자기 팍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가능성이 저는 너무 좋았죠. 무기력한 태도는 바로 그런 부분에서 매력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무기력해도 그대로 있어도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단지 상황이 안 될 뿐이라면 그대로 있어도 됩니다. 한국인은 대체로 무기력한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침략, 전쟁 등을 거치면서 ‘한의 정서’와 더불어 비슷한 무기력한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서를 누구는 냄비근성이라고 부를지 모르겠지만, 폭발적으로 일어날 만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논문에도 ‘변곡점’을 제시하였는데, 저는 어떤 것이 매우 크게 흐름이 바뀌는 그 순간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무기력한 일상을 맞닥뜨렸을 때 작품으로 만들어냅니다. 무기력은 지나친 노동이 얽히고설켜서 만들어집니다. 그 바탕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노동이었을 때도 있었고, 경제 자본주의라든지 굉장히 여러 가지의 노동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제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숨어있는 노동입니다. 예를 들어 <오 이 소박한 전시>에서 보시면, 김치를 만들었고 타임테이블만 만들어놓았는데요, 관객들이 알아서 움직였습니다. 어떤 단계를 대놓고 보여줄 수도 있는 게 퍼포먼스지만, 저는 그것을 제가 짜지 않고 우리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퍼포먼스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연하게 학습 당했던 것들을 자동으로 겪게 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학습된 무기력 같은 것을 올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서강> 이러한 소재들을 가지고 다양한 창작물로 표현하실 때, 어떤 고민과 작업과정을 거치시나요? 작업 전반의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김> 일단 이론적으로 접근합니다. 감정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요. 남이 해준 밥이라는 전시를 처음 할 때는 굉장히 감정적으로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기혼자인데요, 평생 엄마가 집안일을 하시는 환경에서 자랐어요. 결혼하기 전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남편이 밥을 먹었나?’, ‘뭘 해줘야 하나?’, ‘밥을 같이 먹었다면 설거지는 누가하나?’, 그리고 밥을 다 먹고 그릇을 딱 놓으면 내가 해야 한다는 내 업무, 의무감을 가지게 됩니다. 한창 그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렇게 생각 안 할 순 없을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나오게 된 전시가 ‘남이 해준 밥’입니다. 전시장에서 ‘밥을 짓는 행위’가 내 일이 되었을 때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를 스스로 실험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마주한 노동을 다시 새롭게 마주하게 되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될 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서강> 작년 <출가외인: 무용의 레이어>를 포함해 전시 때 직접 농사를 하신 작물로 밥을 대접하는 퍼포먼스를 자주 하시는데요. 농사를 직접 하시게 된 계기와 관객들에게 밥을 제공하는 퍼포먼스는 어떻게 구상하시게 되었나요?

 

2018 남이 해준 밥 현장

 

김> 첫 번째 개인전을 준비할 때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하게 된 이유는 여성 인력 개발센터에서 하는 국비 지원 수업에 도시 농업 커뮤니티 가드너 자격증반이 있었는데요, 도시 농업 커뮤니티 가드너가 무엇인가 가장 먼저 궁금해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무렵에 식물 키우는 것에도 관심이 커졌어요. 식물을 키워주는 것을 알려 주는 건가 생각을 하면서 들어갔는데 면접을 봐야 한다고 해서 다음날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면접에서 이 수업을 끝까지 들을 수 있는지 테스트만 하였던 것 같아요. 한번 갈 때마다 5시간씩 걸리는 수업인데도, 수강생분들이 꼬박꼬박 잘 나오셨어요. 그걸 하면서 ‘이 사람들은 도대체 왜 하는 걸까?’, ‘본인들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으려고 하는 것인가?’ 등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죠.

제가 그 수업으로 농사를 짓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은, 마트에서 살 수 있는 것들을 보면 당근도 당근만 있고 토마토도 토마토만 있어요. 우리가 보는 형태는 그것의 본 모습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죠. 제가 마트에서 사는 것 말고도 아주 많은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들을 어떻게 보면 소화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통이나 경제적인 상황에 맞게끔 단순화 시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걸로 전시를 하게 되면서 사람 인생도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체계화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단순화되어 있는 거죠. 거기 안에 매우 많은 고민이 있어서 무기력해지는데 부분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것들 때문에 현실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서강> 올해 하신 개인전 <Ground, up, ready>의 관련된 자료를 홈페이지를 통해 보았습니다. 전시회 제목부터 작업까지 굉장히 흥미로웠는데요. 전시 제목을 <Ground, up, ready>로 지으신 이유와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 두 번째 개인전 <Ground, up, ready>에선 ‘땅’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할 때가 되었는데, 내가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하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내 것이 아무것도 없고 제 근간이 너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이동에 관한 경제체제에 관한 사유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경 작업 시스템도 인간이 관리하기 쉬운 실내로 이동하거나 바이오 식물도 많이 생겨나고 있죠. 오로지 우리의 편리를 위해서 생겨나는 겁니다. 나의 모든 것을 들고 다닐 수 없어졌고 제가 계속 움직이면서 살아야 하는데, 제 것이 없는 거죠.

그래서 들고 다닐 수 있는 밭을 만들어서 들고 다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떠나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이동하면서 풍요로울 수 있는 관점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풍요 - 풍년의 관점을 끌어들여서 작업했습니다.

 

땅, 땅, 땅_드로잉, 암면, 식물_<Ground, up, ready>

 

전시 제목의 뜻은 유전자 조작 식물을 나타냅니다. 라운드 업은 제초제 항상성을 가진 식물을 라운드 업과 라운드 업 레디라고 부릅니다. 농부들이 제초제를 쓰다 보면 계속 그것만 쓰게 될 수밖에 없고 그들의 굴레 안에 끼어버리는 것이죠. 제가 땅 위에서 이동하는데 항상 내 안에 발전(up) 욕망이 있고 항상 준비상태로 있어야 하는 거죠. 저는 항상 준비상태에 있고 항상 발전 과도를 달려왔죠. 그거를 유지 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내가 항상 준비상태로 있기 위해서는 계속 이동해야하는데 이것이 정말 내 의지인지. 이것에 대한 실험이었죠. 움직인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자의인가 타의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어디까지 벗어나고 싶은지를 생각해야합니다. 선택의 여지는 항상 가지고 살아갑니다. 조바심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메시지입니다.

 

서강> 관객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참여한 결과물을 다시 작가님의 작품으로 발전시키는 것에서도 작가님의 노동에 대한 사유가 엿보입니다. 기억에 남는 참여 전시와 이를 작품화한 사례를 소개해주세요.

 

김> ‘오 이 소박한 전시’가 제일 재밌었습니다. 오이소박이김치를 담그는 퍼포먼스가 기억에 남는데요. 제가 퍼포먼스를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궁금한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그다음, 김치를 담그고 예쁘게 포장해서 올려놓으면 여자분들은 바로 김치를 가져가셨는데, 남성분들은 타임 테이블을 찍고, 김치 사진도 찍고서 이걸 가져가도 되는 건지 쭈뼛쭈뼛하면서 고민하다 가셨어요. 여성분들은 김치를 만드는 데 들어간 시간 등 김치에 대한 가치를 이미 알고 있으니까 가방에 3개씩 챙겨서 가져가는데, 남성분들은 이 상황을 예술로 보는 것이죠. 이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참여 전시 중에 가장 재밌었습니다. 일상적인 일이 예술로 승화되는 것에 김치 만드는 데 같이 참여한 사람들도 감격했었어요. 숨어있는 노동에 조명을 켜준 거죠. 일상적인 행위가 예술로 넘어왔을 때, 가치 있게 되었던 것들을 좋아합니다.

 

<오 이 소박한 전시> 퍼포먼스 현장

 

 

서강> 앞으로 계획하시는 작업이 있나요? 다음 작업의 방향성이 궁금합니다.

 

김> 삶에서 부딪히는 무기력함이나 의무감들, 제 감정이 요동치는 사건들에 대한 생각을 틀어서 재밌게 해서 비꼬는 작업을 많이 해왔어요. 저는 미래 식량이라든지, ‘이 땅을 떠나서 우주에서 뭔가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많이 합니다. 풍족하게 먹고 사는 것이 다 해결되면 어떨까, 그런 상상을 하죠. 공상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저가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상상들을 전시로 옮기기도 하고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일상 속에 숨어있는 것들을 찾아내거나 제 감정을 건드렸던 것들을 전시를 통해 전환 시키는 작업도 할 것 같아요.

 

서강> 작가님의 작업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김> 전시 문화를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예술의 벽이 높다 느껴지는데, 예술은 어려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에게 예술이 그냥 편안하고 쉽게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굉장히 우울한 상태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도 괜찮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평생 아무것도 안 하진 않을 테니까. 자신을 좀 더 여유롭게 해줬으면 좋겠고, 여유를 주는 게 예술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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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9.04.30 00:33

이주노동자를 위한 챗봇을 개발한 ‘행복한 길찾기’ 프로젝트

서강대학교 아트&테크놀로지학과 김상용 교수님 인터뷰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다양한 분야로 나누는가,

저는 이 안에서 융합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행복한 길찾기’ 프로젝트는 한국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이주노동자 지원센터 김포 이웃살이의 현실적인 고충에서 비롯됐습니다. 지원센터의 인력에 비해 도움이 필요한 이주노동자가 너무 많고, 긴급한 상황에서 즉각적인 지원이 불가능한 현실에 주목한 김상용 교수님과 대학원 연구팀은 이주노동자들이 메신저를 통해 대화로 소통하며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인공지능 기반의 챗봇 개발을 기획했습니다. ‘행복한 길찾기’ 프로젝트를 지도한 지도교수이자, ‘따뜻한 기술’로 융합 분야에 접근하고 있는 김상용 교수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인터뷰 및 편집 박시은, 이승은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프로젝트의 이름은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방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 이름을 지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상용 교수(이하 김)> 처음엔 개인적인 체험에서 시작됐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하지만 예수회 사제예요. 가톨릭 사제이다 보니까 소외된 사람, 가난한 사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저희 사제들이 돌봐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가장 약자들이 누구인가 살펴봤을 때, 저 자신에게는 한 달에 두 번씩 찾아갔던 김포 지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외국인 노동자라 부르지 않고, 이주노동자라고 부릅니다. 3~4년 전에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이 주최한 레크리에이션 놀이를 함께 한 적이 있어요. 그분들이 퀴즈를 내서 상품을 줬었는데, 상품 이름 중에 최상의 상품의 이름이 ‘행복한 길찾기’였습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이주노동자들에게 비친 한국 땅에서의 삶이 ‘길’이라는 것이 제겐 상징적이고 메타포로 느껴졌습니다. 그 용어가 깊이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길찾기’라는 키워드가 거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서강> 이와 같은 프로젝트를 기획하신 구체적인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 구체적인 계기가 된 것은, 세계적인 사회학자이면서 시카고 대학에서 석좌교수를 하고 계신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이라는 교수님이 계시는데, 마사 누스바움 교수님이 새롭게 낸 책 가운데서 『Creating Capabilities(역량의 창조)』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대학원생들과 함께 나누기도 했죠. 이 책에서의 중요한 내용은, 내 안에 잠재된 역량이 내가 태어난 환경에 너무나 지배적으로 영향을 받는 나머지, 이 역량이 꽃피지 못하고 심지어는 내가 이러한 역량이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많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보고서예요. 그래서 전 제가 접촉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이 역량으로 발휘될 수 있겠는가?’에서 출발한 거예요. 이 이야기가 작년 9월 이야기입니다.

대학원생들과 함께 creative project라는 수업을 하면서 이 프로젝트를 제안해봤어요. 대학원생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줬었지만, 만약에 대학원생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면 학부생들과 하려 했습니다. 의외로 대학원생분들이 다섯 분이나 참여해주셔서 굉장히 재밌게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김포지역 박스포장업체  < 영화포장 > 에 방문하여 이주노동자와 인터뷰하는 모습

 

서강> 아직 이주노동자가 언론에 보도되는 형태가 차별적이고, 인권이 무시되면서 보도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 보신 이주노동자의 삶의 모습과 교수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 대학원생들과 공장도 방문했었는데, 우선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땅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임금체불입니다. 이 노동자들이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비자 단계들이 있는데, 김포지역의 노동자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고, 농촌에 있는 노동자들이 가장 힘듭니다. 임금체불은 좀 더 속사정이 있습니다. 우리 문화 안에는 아직 타자에 대해 배타적인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빈번하게 인권침해로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서, 숙련된 노동자들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업주 입장에서는 빨리 속도를 내야 하니까 애가 닳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욕을 하거나 일부러 임금체불 합니다. 이런 것들이 노동자들에겐 가장 힘든 겁니다. 생활 기반과 직결된 문제이니까요.

이주노동자분들이 가장 큰 고통 중에 두 번째는 생존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번 돈을 본국에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어떻게 은행 계좌를 만드는지, 자기 나라의 음식을 먹고 싶은데 마켓이 어디에 있는지도 찾기 힘듭니다. 임금체불도 상담하려면 노동센터에 가야 하는 데 어디에 있는지 등 이런 기본적인 것이 길이 없는 겁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이런 길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 행복한 길찾기 >  챗봇 카테고리 중 생활정보  Task Flow  자료 사진

 

서강>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은 앞서 말씀하신 기본적인 것들을 노동자분들에게 바탕으로 깔아주는 것이었군요. 결과물인 챗봇(Chatbot)의 카테고리를 보면 생활, 의료, 금융, 언어, 교통이 있는데, 이 데이터들은 어떻게 받으신 건가요?

 

김> ‘이웃살이’라는 이주노동자 지원센터가 있습니다. 이곳이 10년이 넘었어요. 이런 노동 상담과 관련되어 기록한 문서 데이터가 있었습니다. 그 데이터베이스를 10년 치를 다 보진 못하고 3년 치를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부터 봤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데이터베이스로 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되었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런칭하고, 대학원생들은 이주노동자들과 접촉면이 없었기 때문에 카테고리는 제가 만들어줬습니다.

 

 

서강> 결과물로 챗봇이 나오기 전에는 어떤 아이디어들이 있었나요?

 

김> 학부에서 처음 진행하려고 했을 때는 학부생들이 대학원생만큼 전문적인 코딩 지식이라든지 이 프로젝트에만 매진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테크놀로지 기반이 아닌 구체적인 책자 형태로 예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김포지역의 노동자들이 1500명 정도 되는데, 1000부 정도 찍으려고 예산까지 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생들이 참여하게 되어서 대학원생들을 기반으로 했을 때는 테크놀로지가 가능하니까 좀 더 실험적인 것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 대학원 성격에 맞게 런칭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서강> 프로젝트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데, 연구원들 안에서 챗봇을 만들 만한 코딩 기술을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학원 안에서 소화될 수 있을 줄 알고 기대했는데 그게 안 된다는 것을 대학원생들과 네 번째 만남에서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펀딩을 받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예산을 확보하여 개발자를 초대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힘들었습니다.

 

 

 

김포 이웃살이에 대학원 팀과 함께 방문하여 지원센터 신부님들과 인터뷰하는 모습

 

서강> 행복한 길찾기 안에서 융합의 과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 제게 어떤 면에서는 분명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융합이라는 말이 나온 지 7~8년 정도 됐습니다. 거기엔 ‘숨어있는 이데올로기’가 있습니다. 비판적인 의미인데요. 깊은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고 빨리 써먹을 수 있는, 이것이 제 불만입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저에게 행복한 길찾기의 융합은 나의 인생과 별 관계가 없었던 미얀마, 필리핀 등 하층 계급이라 표현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접촉면을 가져서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의 니즈를 경청하는 태도입니다. 이를 단순히 일상적인 대화라 보기보다는 굉장히 멀리 있었던 타자가 나에게 조우한 것입니다. 아트&테크놀로지 대학원생 입장에서는 내가 꿈을 꾸고 있는 청년으로서 아텍에 와서 인문, 예술, 디자인, 기술을 배우고 있는데,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융합은 삶의 융합입니다. 삶의 융합이라는 것은 지성인으로서 대학원생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지위, capital을 어떻게 나누는가, 어떤 다학제 간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보다 조금 반대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다양한 분야로 나누는가, 저는 이 안에서 융합이 일어난다고 반대의 관점으로 봅니다. 이는 윤리적인 실천영역과 함께 닿아있습니다. 내 삶 안에, 나의 인격체 안에 복잡하고 다양한 것이 완전히 타자에 의해 접촉면을 가지면서 나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고정불변한 면이 변해보는 것이 융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행복한 길찾기는 저한테 이렇게 의도되었고, 이 목적들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믿습니다.

 

 

서강> 행복한 길찾기 프로젝트처럼 앞으로도 이러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계시는가요?

 

김> 그러기 위해서 제가 아텍에 있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단발적인 프로젝트라면 저는 아마 학교에 남아있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관심 있는 것은 따뜻한 기술입니다. 아직 제가 연구하는 분야는 완전히 minority 해요. 한마디로 제 분야는 Moral Technology입니다. 어떻게 따뜻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이 분야는 여러 분야로 나뉠 수가 있는데, 개인의 창작품이 아닌 타자와 대화하는 Social Art가 있고, 또 하나는 Social Impact입니다. Social Art는 ‘어떻게 미학을 가지고 취약 계층들과 대화할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Social Impact는 ‘현대에 따뜻한 기술을 갖고 기능적으로, 실질적(Design, Application, Device)으로 어떻게 이 사람들에게 접근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그래서 행복한 길찾기는 제가 Social Impact처럼 고안한 것이고, 지금 기획하고 있는 것은 Social Art입니다.

 

 

서강> 왜 지금까지는 행복한 길찾기처럼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기술 지원 형태의 프로젝트가 없었는지 교수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김> 교육 현장에서 융합적인 사고로 교육받아 꿈을 키워가는 젊은이들을 만나면서 든 생각은, 서강대학교의 아트&테크놀로지학과는 융합을 연구하기 위해 모이는 일종의 플랫폼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서강에 온 지 4년이 되었는데, 여기서 느끼는 것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이러한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그 이유를 저도 고민해봤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지금 10대들은 멀리 있는 타자들에 대해서 접촉면을 갖지 못했거나 관심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육에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봅니다.

 

 

서강> 현재 행복한 길찾기는 어느 정도까지 진행이 되어있나요?

 

김> 챗봇 형태로는 완성이 됐습니다. 지금 이주노동자들의 비율을 보면 필리핀 노동자들이 다수이고, 그다음은 베트남입니다. 이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영어와 베트남어 번역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예산이 확보되면 그다음 그룹은 태국과 미얀마로 번역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처음에 영어전문가에게 맡겼다가 노동자의 언어로 번역이 되지 않아서, 겨울 방학 때 전면적으로 수정해서 노동자들과 같이 감수하는 방법으로 다시 했습니다.

 

 

서강> 혹시 기업과 협업하고 있나요?

 

김> 그렇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제가 하는 프로젝트가 Social Impact와 관련해서 런칭했잖아요? Social Impact라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떻게 이 사회의 근원적인 시스템에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종의 움직임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본의 영향을 받으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순수하게 기부 받는 형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은 것이 제 취지였어요. 행복한 길찾기도 그렇게 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서강>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앞으로의 융합 분야의 미래는 어떤가요?

 

김> 학문적으로 대답하고 싶은데요. 외국 저널들을 보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미래 비전이 AI로 집결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융합도 역시 세계적인 조류를 따라가는 거죠. 융합 분야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AI, 두 번째는 바이오(bio)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빠르게 생성되고 있는 분야인데요. 바이오에 관련되어서 특히 잠재적 시장이 크게 파악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이오 부문으로 융합이 굉장히 일어날 것 같고, 마지막 세 번째는 엔터테인먼트입니다. AI는 순수하게 생활기술이라고 하죠. 바이오는 삶의 질, 엔터테인먼트는 Enjoy 하는 것입니다. 제 바람이 있다면, 서강대학교는 선택과 집중을 했으면 합니다. 정부에서는 확실히 AI로 큰 기금을 가지고 지원하려고 합니다. AI 부문에 큰 파이가 있으니 다들 이쪽으로 쏠리게 됩니다. 우리 대학이 이 쏠림에 가면 오히려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야보다 우리가 지금까지 잘 해왔던, 서강의 깊이 있는 인문 중심으로 가서, 인문 중심의 새로운 융합들이 두 번째, 세 번째로 여겼던 바이오와 엔터테인먼트 이 안의 틈새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게 진짜 융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판단할 때 앞서 세 가지 제시했던 기술(AI), 생명공학(bio), 콘텐츠(Entertainment), 이 부문에서 우리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데, 큰 자본을 들이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해서 상층부 단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High-technology를 어떻게 기술을 잘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가. 저는 이를 서강이 잘할 수 있고 변별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교도부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것이 제가 기대하는 서강에서의 융합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성공회 대학교가 처음 시작할 때, 다른 사람들이 굉장히 낯설어했습니다. 왜냐면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NGO 학과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이 학과가 성공회 대학교의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그렇듯이 모든 사람이 High-technology를 가지고 효용에 온전히 경도되어 있을 때, 서강은 서강만이 할 수 있는 인문 중심의 융합에 집중해서 이 High-technology를 잘 나누고 전달했으면 좋겠습니다.

대중들의 인식도 함께 따라주어야 할 텐데요. 그래서 아까 제가 제시한 Moral Technology라 하는 큰 담론에서 제가 중점으로 두고 있는 Social Art, Social Impact에서 지금 청년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만큼 좋은 결과물들을 내야 합니다. 가치뿐 만이 아니고 이윤도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저한테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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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3:55

장애의 장벽을 없앤 영화를 만나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김수정 대표 인터뷰

 

일상에 안 보이던 것이 보일 수 있는 배리어프리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배리어프리 영화는 노약자나 장애인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로, 영상을 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도록 화면해설을 하고, 소리를 듣지 못해도 대사와 모든 사운드를 표기한 한글자막을 볼 수 있습니다. ‘장벽을 허물고 모두가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곳,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김수정 대표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인터뷰 및 정리

양계영 urstar2016@sogang.ac.kr

김명회 sggkmh@sogang.ac.kr

손윤선 baroomy@sogang.ac.kr

 

 

서강> 얼마 전 제7회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를 무사히 개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떠셨는지, 작년과 비교해서 달라진 점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김수정(이하 김)> 올해는 작년과 비교해서 자연스러웠지 않았나 해요. 그전에는 모실 수 있는 분을 찾아 영화제에 초대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올해는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를 보고 싶어서 푸시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작년보다 관객이 조금 더 늘었어요. ‘늘 하던 대로 하면 되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죠. 좀 단순하게 가면서, 앞으로 어떻게 10년을 바라볼까 고민을 하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패턴이 비슷했다면 내년에는 어떻게 할까?’의 고민도 있습니다.

 

 

사진1 | 2017119일부터 열린 제7회 서울 배리어프리영화제(사진 제공: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서강> 배리어프리영화를 언제 처음 만나셨나요?

>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이은경 전 대표님이 저랑 같이 동국대학교 대학원 영화과를 나온 선후배에요. 당시 저는 시네마디지털서울에서 실무적인 것들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그때가 마흔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는데, 앞으로 우리가 뭔가를 길게 할 수 있는 것들은 뭐가 있을까 고민했죠. 그러다 일본에서 열린 배리어프리영화제에 방문했는데, 왠지 그냥 해야 될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홍시를 생각하면 그 홍시 맛이 생각나는 것처럼 없는 거니까 우리가 해야 되는 거다라는 생각이 당연하게 들었던 것 같아요. 그 때 영화제에서 받았던 느낌이 되게 좋았나봐요.

 

서강>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배리어프리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셨군요.

> 화면해설과 한글자막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존의 한국영화들이나 시각장애인연합회, 농아인협회에서 만들었던 것들을 중심으로 찾아가서 물어보기 시작했죠.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하고 있는 사업들도 가서 물어보니, ‘배리어프리영화라는 개념에 대해서 기존의 틀들이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장애인 위주의 영화가 많았는데, 그렇게 하다보면 사실 틀이 커질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영화인들이 참여한 배리어프리영화를 그럼 우리가 만들지 뭐,’ 해서 저희가 개인 돈을 들여서 영화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에는 배리어프리영화제가 아니라 배리어프리포럼이라고 해서 행사를 통해 많이 알렸죠.

 

사진2 | 영화 <반짝반짝 두근두근>의 배리어프리영화 버전은 영화가 시작되면 화면해설이 나오고 한국어 자막이 뜬다.

(사진 제공: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서강> 화면해설에 있어서 배리어프리영화는 어떤 기준으로 제작되나요?

> 청각장애인들의 경우에는 굉장히 니즈가 다양해요. 물론 시각장애인들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만 하더라도 그 자막을 볼 때 번역자막이 온전히 모두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청각 장애인은 난청부터 완전 농인까지 매우 다양해요. 이때 농인들은 수화와 한글이 달라서 힘들어해요. 수화는 조사가 없고, 한글은 주어, 목적어, 서술어의 구조로 되어 있어서 그들이 사용하는 어순과 굉장히 다르죠. 그래서 복잡한 문장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결국 농인들을 위해서는 굉장히 단순화된 자막이 필요한데, 난청의 경우는 또 다르거든요. 이미 듣다가 난청이 되신 분들도 있고, 그 정도도 각각 달라서 심한 분들도 있고요. 그래서 또 이분들은 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자막들을 원하세요. 그래서 우리의 기준을 어떻게 잡아 가느냐가 중요하죠. 화면해설의 경우도 각자의 기준이 있어요. 넷플렉스 같은 경우에는 주관적인 단어나 사전 설명이 있으면 안되고, 타이밍도 다 맞아야 하고요.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인물 위주로 진행되고 미장셴도 다양하지 않은데, 영화는 다층적인 구조에다가 무엇을 설명해야 하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연출가와 같이 진행해요.

 

서강> 영화를 관람하는 환경에 따라 제작에 고민도 있으실 것 같아요.

> 방송과 영화는 퀄리티면에서 다른 부분이 있어요. 방송은 내가 직접 돈을 안내기 때문에 퀄리티가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불평을 안하지만, 영화는 내가 돈을 내고 만족스럽지 못할 때 환불이라는 제도가 있잖아요. 그 시스템을 통해서 컴플레인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 퀄리티가 굉장히 높아야 하는 거예요. 이러한 환경에서 영화의 자막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고민을 하게 되죠.

 

서강> 배리어프리영화를 보러 오시는 관객 분 중 기억에 남는 관객이 있었나요?

> 저희가 하는 영화들은 무료로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아무래도 어르신 분들이 많으시죠. 저희가 서울시에서 하고 있는 우리마을소극장이라는 사업이 있어요. 22곳에서 한 달에 한 번씩은 배리어프리영화를 상영하고 있어요. 그러면 한 달에 총 22번의 상영이 있는데, 한 지역에서 한 작품을 보고 다른 지역에서 상영할 때 또 보러 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배리어프리 영화들은 자주 볼 수 없기도 하고, 이런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으니까 이 스케줄을 따라 관람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거죠.

결국 배리어프리영화를 통해 그분의 삶에 들어갈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 거죠. 배리어프리영화 상영관이 좀 더 많아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와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거고요. 영화 보는 것 자체가 내 집에서 보는 게 아니라 어디 가서 같이 영화를 보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게 뭔가를 소통을 할 수 있는 거리가 생기는 거죠. 극장에 가서 본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서강> 우리나라 장애인 영화관의 환경은 어떤가요?

>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개인장비를 가지고 들어가서 원하는 시간에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이 많죠. 반면에 우리나라는 2007년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발표되었는데, 빠르게 관련 법안을 발표한 것에 비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많지는 않아요. 법을 만들었다고 해서 별도의 관심을 두지는 않는 거죠.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는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구체적으로 벌금을 물고 그런 것이 아니라, 상해법으로 소송을 걸 수가 있는 거예요. 상벌구조가 없는 거죠. 그 부분에 있어 장애인 분들이 지속적으로 시위를 하고 소송을 걸고 해야 뭔가 바뀌는 구조가 되죠. 그래서 강제하는 법량이 필요하다고 많이들 말씀하시죠.

 

서강> 그렇게 관심을 보일수록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 수도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요?

> 더 많아지겠죠. 지금은 그냥 소비자에게 던져주는 그런 구조잖아요. 장애인영화관람데이라고 해서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같은 영화관에 상영이 들어가게 되는데요. 지금 한 22~30개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해요. 2012년부터 두 달에 한 번씩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장애인 영화 관람 환경개선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해서 장애인차별철폐연대랑 농아인협회, 시각장애인연합회, CGV 그리고 저희가 모여요. 계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사업 중에 하나죠. 관련하여 저희가 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조만간 한국도 갖고 들어올 거예요. 지금은 그런 극장에서 정규적으로는 일주일에 3, 화목토 이런 식으로 상영하는데 사실은 너무 적은 횟수죠. 그것도 영화관에서 한 영화 정도로요. 그러면 영화를 고를 수가 없는 거잖아요. 만약 앞으로 상영관이 많아지게 된다면 고를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거죠.

 

 

서강> 배리어프리영화 제작 관련 천명의 기부자를 확보하는 캠페인을 진행하시던데, 이게 꾸준하게 기부를 할 수 있는 건가요?

> 사실 지원금이 없으면 영화를 많이 만들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사실 외화를 만드는 경우는 대략 실비가 2500만 원 정도 들어요. 저희가 사단법인이라 애초에 이윤을 만드는 데도 아니고, 영화를 만들고 보는 것은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약간 후순위잖아요.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우선이고, 기부에서 그런 것들이 더 우선시 되니까요. 영화제를 할 때나 행사를 할 때 홍보를 하고, 기부자 수도 조금 조금씩 늘고 있어요. 생소한 거니까 어쩔 수 없이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언젠가 천명의 기부자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에게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어요.

 

서강> 현 사회에서 배리어프리영화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 서울대 치대 학생회 선거 나온 사람 보셨죠? ‘우리는 장애 없습니다.’ 그거랑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요. 제가 아는 청각장애인 대학생 친구가 있는데, 난청이라서 강의실 앞에 앉아요. 뒤에 앉을 경우, 여러 소리가 많이 들려 힘들거든요. 그래서 앞에 앉으려고 해도 다른 친구들이 먼저 앞에 앉고 해서 만든 스티커가 있대요. ‘여기는 장애인 좌석이니까 앉지 말아주세요라는 의미의 스티커죠.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받아서 강의실에 붙였는데, 어느 날 봤더니 그게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더라는 거예요.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는 간혹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며 여러 장 줬는데, 진짜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으니까 얘가 상처를 많이 받은 거예요. 그런데 일단 그 스티커가 뭔지 아이들은 모를 수도 있죠. “, 이건 뭐지? 맡아놓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런 스티커나 장애인 친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배리어프리영화가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라는 것을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주변에 청각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이 있고, 같이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종로에 가면 맹학교랑 농학교가 두 개가 붙어 있어요. 그런데 교문에 학생들이 잘 찾아 올 수 있도록, 벨소리가 나게끔 되어 있대요. 벨소리가 나면 애들이 , 여기가 교문이구나!’하고 안지나치는 거죠. 그런데 그걸 주변의 주민들의 민원으로 벨이 없어져 버렸다는 거예요.

 

서강> 생활 속에 깊숙이 박혀있는 차별 중 하나네요. 학교 종소리는 이해하고 넘어가면서요.

> 그렇죠. 학교 측에서는 아이들한테 뭐가 중요한지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보다 없애버리는 게 더 편한 거죠. 그러니까 이런 것들에 대해서 좀 더 알리는 게 필요한데요. 우리의 영화를 보여주면서 설명하면 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배리어프리영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요?

 

서강> 편견이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배리어프리 영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시죠?

> , 사실 영화뿐만 아니라 보이는 게 너무나 많고, 해야 할 게 너무나 많은데요. 장애인분들이 우리의 관심에서 다 벗어나 있는 거예요. 대학원생 분들이 그들을 같은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고 같이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고, 개발 및 연구를 진행했을 때 적용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거죠.

얼마 전 MS(마이크로소프트)에서 솔루션 발표가 있다고 신청하라고 연락이 왔는데요. 신청서에 당신은 불편한 부분이 있느냐? 예를 들어 휠체어를 쓰느냐?’ 등 어떤 종류의 도움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게 거의 없잖아요. 관심을 많이 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포항에서 지진이 났는데, ‘과연 그곳에 만약 청각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들이 있었으면 잘 대피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고민들도 함께 있어야 된다는 거죠. 지체장애인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기본적으로 모든 정보에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이게 한, 두 번만 신경을 쓰게 되면, 몸에 익게 되는 거죠. 이거를 본다고 인생이 바뀌거나 그러는 건 아니지만, 안 보이던 것이 보일 수는 있을 거라는 거죠. 이 부분은 다분히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 다 포함되는 것 같아요.

 

 

사진3 | 배리어프리영화 야외 상영 모습.(사진 제공: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서강> 앞으로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의 계획을 알려 주세요.

> 2018년은 폐쇄시스템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시범서비스 정도까지는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폐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지속적으로 했기 때문에 그런 사업을 하는 순간이 오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지역에서 하는 배리어프리영화 관련 프로그램들이 아직까지 많지 않아요. 지역 상영들을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파트너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지만, 결국 누군가 계속 틀어줘야 되는 거거든요. 누군가가 돈을 벌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이런 사업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참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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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0.18 11:07

<프로파간다> 최지웅, 박동우, 이동형 인터뷰

 

훔치고 싶은 포스터를 만드는 것,

프로파간다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죠

 

 

영화에 대한 관심을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확장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프로파간다만의 감성으로 눈을 뗄 수 없는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들. 신사동 작업실에서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인터뷰 양계영(urstar2016@sogang.ac.kr), 정재원(agnes1026@sogang.ac.kr)

정리 김명회(sggkmh@sogang.ac.kr)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스튜디오 이름은 스튜디오가 지향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담고 있다 생각합니다. 본 이름을 지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지웅(이하 최)> 프로파간다 이름은 원래 공산 국가에서 사용하던 대중을 선동한다는 의미인데, 이 이름을 중학교 때 잡지에서 처음 듣고 어감이 좋아서 나중에 써먹으려고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회사를 오픈하면서 다시 떠올리고, 사용하기로 한 거죠. 프로파간다가 대중을 선동한다는 부정적 어감이 있지만, 우리는 영화 포스터로 대중을 설득한다는 좋은 의미로 사용하기로 했어요. ‘디자인으로 관객을 홀려서 극장으로 오게 만들자라는 뜻으로 긍정적인 의미의 프로파간다인 셈이죠.

 

서강> 프로파간다 안에서도 세 분의 전공에 따라 작업 방식이 나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박동우(이하 박)> 큰 상업 영화는 같이 아이디어를 준비하죠. 각자 시안을 짜 와서 같이 선택하고, 선택되는 시안을 메인으로 결정해요. 그럼 나머지 인원들은 서포트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 독립영화 같은 경우에는 각자 맡아서 하고요. 큰 상업 영화 같은 경우에는 촬영도 하고 시안도 짜고 할 일들이 많아서 다 같이 일을 하는 방식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희가 포스터 디자인만 하는 줄 알고 계시더라고요. 포스터 디자인만 하는 건 아니고, 시나리오를 받아서 읽고 기획부터 아이디어를 다 짜는 거예요. 배우들이 어떤 옷, 어떤 공간, 어떤 포즈, 표정을 할지 정확히 짜요. 그리고 그대로 찍는 거예요. 해당 장면의 촬영을 위해서 스텝들도 우리가 다 정해야 해요.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 포토그래퍼 등 섭외를 통해서 촬영을 하고요. 시나리오부터 포스터 광고 전단지까지 비주얼적인 부분은 다 한다고 보시면 돼요.

 

서강> 그럼 전체적인 컨셉을 잡기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독립영화 같은 경우에는 영화가 완성된 후에 작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작업을 하고, 큰 상업영화 같은 경우에는 촬영 전부터 일을 시작해요. 시나리오를 읽고 책 디자인을 해야 해요. 그게 저희가 제일 처음에 하는 일이에요. 그래픽 디자인도 여러 분야가 있잖아요. 제 생각에는 영화포스터가 그런 모든 디자인의 집합체인 것 같아요.

 

서강> <라우더 댄 밤즈(Louder than Bombs)> 포스터를 보고 홀려서 영화를 봤는데, 핵심 내용과 상관없어도 저렇게 만드시나요?

 

> 저희의 목적은 재미없는 영화도 재미있어 보이게 만들어서 대중들을 홀리는 것이에요. 어쨌든 홀리셨잖아요. (웃음) 잠깐 나온 컷이라도 매력으로 어필 할 수 있다면 활용하죠.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가 기획하기가 제일 힘들어요.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분위기에, 어떤 컨셉이다 이런 걸 짜놔야 스텝들과 공유도 되고 배우들도 이걸 보고 이렇게 연기를 해야겠다!” 하죠.

사진1 | 라우더 댄 밤즈(Louder than Bombs)포스터

 

사진2 | 영화 <해적> 포스터 촬영 시 콘티

 

영화 <해적> 같은 경우, 사전 미팅 당시 배우들의 얼굴이 포스터에 다 나와야 한데요. 이런 경우, 사전에 배우들의 포즈도 일일이 정해야 해요. 디자인하기 전에 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죠.

> 디자인만 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런 아이디어를 짜고 준비하고 그런 단계가 제일 어려운거죠. 그 때가 가장 스트레스를 받을 때죠.

 

서강> 영화 <족구왕>처럼 홍보물을 카드화하여 제작하시는 것을 보았어요. 이처럼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작업하신 것들을 소개해주세요.

 

> 정몽준이 족구를 하는 웃긴 사진이 있었어요. 영화 <족구왕>은 그 사진을 모며 영감을 얻은 거예요. 영화 <꿈보다 해몽>같은 경우 꿈과 현실을 나타낸 영화인데, 포스터에 그 특징을 연결되게 만든 작품이죠. 평소에 좋아하던 일러스트레이터나 포토그래퍼 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게 재미있어요. 학생 때는 그런 분들을 알고 지내고 싶다고 그러잖아요. 근데 이제는 그분들과 일하게 된 거죠.




사진3 | 영화 족구왕카드 포스터

 

이동형(이하 이)> 맞아요. 함께 작업하면서 또 다른 분들은 어떻게 작업하시는지 볼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재미있죠.

사진4 | 평소 좋아하던 윤예지 일러스트레이터와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영화 꿈보다 해몽포스터.

 

서강> 프로파간다를 검색해 보면, 흔히 프로파간다만의 색깔이 있다고 정의내리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러한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좋은 것 같은데, 너무 똑같다고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장르에 국한되어 있는 톤 같은 게 있기도 한데, 저희처럼 다양한 장르를 하는 회사는 많이 없다고 생각해요.

> 저희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죠. 어떤 분들은 자기 복제라고 욕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관심 있게 봐주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 <땐뽀걸즈> 포스터 작업 같은 경우, 거제도에 가서 땐뽀걸즈 팀원들을 직접 찍어왔어요. 포스터에 바다가 나왔으면 해서 서울과 제일 가까운 인천에서 찍고 싶었는데 이 친구들이 취업하고 알바를 하는 학생들이여서 직접 올라 올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거제도에 가서 예쁘게 찍었거든요. 작품을 보시고 어떤 분들은 핑크색 치마 입혔다고 성적 대상화한다고 욕하시는 분들도 있고.. 로리타 사진 같다고 싫다는 (반응도 있었죠.)

 

서강> 댓글을 통한 즉각적인 피드백이 활발하다 보니 신경 쓰이는 경우도 있으실 것 같아요.

 

> 저는 처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이제는 아예 SNS를 끊었어요. (웃음) 예를 들어 명절에 친척들이 한 곳에 다 모였어요. <부산행>처럼 잘된 영화에 대해서 다 같이 얘기 할 수 있는 그런 부분은 좋죠. 사람들이 다 알 수 있을 만한 작품들을 하는 것은 되게 좋지만 부담도 생기고 그래서 SNS를 끊었어요.

> 저는 다 찾아봐요. (웃음) 이게 재밌는 게 오늘 작업한 게 내일 대중들에게 공개되고 반응들이 바로 오니까 그게 재미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회사에서 디자인 작업을 하면 대중들에게 선보일 기회가 없는 경우도 많잖아요. 근데 우리는 대중들이 다 보는 거잖아요? 남녀노소, 전 국민이 다 보는 작업이라 재밌는 것 같아요. 트위터 검색해서 다 보는 데, 짜증나고 그렇진 않고 재밌어요. 좋은 반응은 기분이 좋고, 욕하는 글들이 있으면 상처도 받고 그래도 다 봐요.

> 저도 다 찾아보는데요. 열심히 작업했는데 반응이 없어서 상처에요. 나는 열심히 작업했는데 댓글들이 없으니까 언급이 없어서.. 짜증나요. (웃음)

> 작업 물에 대해 무플인 것들도 간혹 있어요. 나는 열심히 했는데 무플인 것을 보면 마음이 더 아프죠.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포스터 같은 경우는 막 좋아요1000개 되고 반응이 오는데, 어떤 작품들은 댓글이 없어요. 그런 건 이제 사람들이 관심 없는 거죠. 그래서 이런 좋아요개수 보면서 사람들의 취향을 파악하는 것 같아요. 반응이 딱딱 나뉘어져요.

 

서강> 작업 시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 전국 극장에 영화 현수막이 걸려 있잖아요. 포스터가 나오면 전국에 있는 걸 다 해야 해요. 사이즈도 다 다르게요. (그 작업을) 이틀 만에 다 해야 해요. 각각의 사이즈에 맞게 다르게 제작하는 게 좀 힘들어요. (규모가) 큰 상업영화는 100개 정도 하죠. 혼자서 할 수 있는 물량이 아니라서 큰 영화는 다 나눠서 같이 해야 할 수 있어요.

 

서강> 자체 프로젝트인 미니 아카이브 북 <필름 타이포그래피 Vol.1 레터링>, <필름 타이포그래피 Vol.2 캘리그래피>를 보면서 프로파간다가 한국 사회 안에서 특정 역할을 고민하는 소규모 공동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이 같은 작업을 기획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 클라이언트 잡(job)을 하다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잖아요. 그래서 수정도 필요 없는 우리만의 컨텐츠로 재밌는 거 해보자는 생각으로 출판업을 하게 된 거예요. 회사 이름은 프로파간다, 출판사 이름은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에요. 우리가 내는 책은 아카이브 종류의 책이 있고, 디자인 북이 있어요.

 

서강> 주 콘텐츠는 관심사에서 비롯된 내용들이 많겠어요.

 

> 그렇죠. 일본 같은 경우에는 아카이브 북이 굉장히 많은데 우리나라는 아카이브가 잘 안 돼 있어요. 그래서 하게 됐어요.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이런 책들이 작업물들이고, 포트폴리오인 셈이죠.

 

서강> 따로 판매도 하시는 건가요?

 

> 네 각종 서점에서도 많이 팔아요. 플립북 형태의 <PP(Propaganda Posters)> 제일 많이 팔렸어요.

 

서강> PP북이 반응이 가장 좋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 일단 작고 선물하기가 좋잖아요.

 

사진7 | 1970~1980년대 동네 문방구에서 팔던 딱지를 수집, 선별해 실은 아카이브 북 <딱지 도감>(2015)

 

사실 제가 어려서부터 수집을 많이 했어요. 딱지들만 모아서 만든 책이 <딱지 도감>(2015)이에요. 딱지만 보여주면 지루하니까, 서울에 있는 옛날 문방구들 찾아가서 화보 촬영도 했어요. <영화 선전 도감>(2016)은 제가 어려서부터 모은 영화 전단지들을 바탕으로 50~60년대 한국에 개봉했던 영화 전단과 함께 영화 도감 형식으로 제작한 아카이브 북이에요. 여기 보시면 <레베카>도 있죠? 지금 봐도 로고 타이틀 디자인이 굉장히 예쁘죠. 그래서 지금 우리가 작업하는 것도 옛날 작업들을 많이 참고해요. 옛날에 자주 쓰였던 철자법을 보는 것도 재밌어요.

 

사진8 | 1950~1960년대 국내 개봉한 외국 영화의 광고 선전물만 모아 아카이브 북으로 엮은 <영화 선전 도감>(2016) 중 일부.

 

서강> 앞으로도 기획하고 계시는 시리즈가 있나요?

 

> 올해는 서울올림픽과 관련한 자료들을 모아 책을 내려고 합니다.

 

서강> 주로 사라지는 것들의 역사성에 주목하시는 건가요?

 

> , 그런 거 좋아해요.

> 저는 육아에 관심이..(웃음)

> 저도 이것저것 사서 모으는 거 좋아해요. 슈프림에서 나온 빨간 벽돌도 샀어요. 신기하죠? 거기서 신기한 거 많이 만들어요.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사는 편이에요.

서강> 인터뷰를 통해서 봤는데, 의뢰가 들어와서 작업하시기도 하지만 먼저 연락을 드려 함께 하고 싶다고 제안하신 적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요?

 

> 저희가 부산국제영화제 때 매번 부산에 가거든요. 가서 한국 독립영화들을 미리 봐요. 보고, 좋은 거 있으면 먼저 연락을 하는 거죠. 뭔가 선점하려는 (심리도) 있어요. 부산영화제 같은 경우는 하나의 마켓이에요. 외국 바이어들한테 이런 영화가 있다라고 선보이는 자리니까 눈에 띄는 거 뭐라도 하나 만들어가고 싶죠.

>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해 준비하는 게 2가지에요. 영화제에 출품되는 영화들은 포스터가 필요하니까 영화사에서 미리 의뢰해서 만드는 경우가 있고요. AFM(Asian Film market)이 있어요. 주로 외국 바이어들을 상대로 1년 동안 만들었던 작품들을 모아 영문으로 만드는 거에요. 그리고 5월 달에는 칸 영화제가 있는데, 칸 마켓도 규모가 커요. 그래서 칸 영화제 나가는 한국 영화들을 영문으로 만드는 작업들을 해요. 그러다가 <악녀><부산행>처럼 우리가 디자인 한 영화가 영화제에 출품이 됐어요. 그러면 영문으로 해야 하는 보도 자료도 제작해야 하고, 홍보도 해야 하는 거고요. 좋은 영화나 비주얼적으로 재밌을 것 같은 영화들이 있다 하면 연락해서 먼저 하고 싶다고 제안을 하는 편이에요. 포스터 디자이너들이 좋은 작품 하고 싶잖아요. 그런데 기다린다고 그런 거 안 들어와요. 하고 싶은 거 찾아서 해야죠.

>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용순>을 봤거든요? 그게 너무 좋아서 (영화관에서) 나오자마자 실장님께 전화를 했어요. “실장님, 이거 딱 우리 영화에요. 너무 좋아요.” 그랬더니 실장님이 그거 하기로 했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작년에는 그랬고, 곧 다음 달에 부산 가니까 또 그런 작품이 생기겠죠.

 

서강> 프로파간다는 대중이 많이 접하는 시각 디자인물을 만들어 내고 있는 만큼 대중의 미감이나 안목을 높이는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관련하여 지향하시는 바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 저희는 한글 타이포 디자인을 새로 만들어서 꾸준히 소개하는 직업 중에 하나잖아요. 이게 되게 트렌디한 작업이거든요. 우리가 한글 타이포에 기여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서체의 패키지를 만들고 싶어요. 외국 같은 경우에는 알파벳 몇 십 개만 만들면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영화별로 전용 폰트도 있어요. 예를 들면 스타워즈 폰트’, ‘해리포터 폰트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한글은 모든 조합이 몇 만개에요. 영화 전용 서체를 만들기 어려운 환경이에요. 그래서 좀 아쉽기는 하죠.

 

서강> 최근에는 VR이나 모바일 등을 통해 포스터를 보지 않고 미리 영화를 접하는 수단도 많아졌는데요. 이러한 영화 산업 시장의 변화에 따라 작업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도 있으신가요?

 

> 환경이 바뀐다 하더라도 포스터는 안 없어질 것 같아요. 그 포스터가 종이에 인쇄가 안 될 경우가 있을 수는 있어도 포스터 자체는 없어지지 않겠죠. 잡지나 책들도 없어진다고 했는데 안 없어졌잖아요. 결국에는 어디에 실릴 때 가장 매력적인가? 의 문제인 것 같아요. 포스터도 종이에 나올 때가 가장 매력적이니까요. (웃음) 요즘 추세가 포스터 인쇄를 잘 안 해요. 디지털 액자를 통해서 틀어주잖아요. 본인들 입장에서는 인쇄비 아낀다고 하는데, 우리 같은 디자이너들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부분도 있죠.

> 나중에 멀티플렉스가 다 장악해버리면 없어질 수도 있죠. 그래도 인쇄가 없어지는 거지, 포스터 작업은 계속될 것 같아요. 디자이너들이 제일 안타까울 때가 본인이 디자인 한 것이 종이에 인쇄 될 수 없을 때, 그때가 가장 마음 아픈 거예요. 그러니까 데이터로만 있으면 언젠가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꼭 종이 위에 올라가야 해요. 그게 역사와 아카이브가 중요한 이유인 것 같아요.

> 근데 우리가 일하면서 되게 안타까운 건 우리는 멀리 내다보고 10, 20년 후에도 기억에 남는 포스터를 만들고 싶어 하는데, 클라이언트들은 그런 사람이 많이 없어요. 그냥 이 시즌에 흥행만 하면 되는 거예요. “겨울에 개봉 할 거니까 따뜻하게 해주세요.”라고 하죠. 이해는 해요. 그분들은 마케터고 장사를 하셔야 하는 분들이니까, 그런데 그게 너무 부딪힐 경우에는 포스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죠. 추석 때 개봉한다고 (배우들이) 한복 입은 거 찍고요.

 

서강> 다른 회사와의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고민해 보신 적도 있나요?

 

> 사석에서 플레인아카이브, 피그말리온과 전시회 한 번 해볼까?” 이런 말들은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사실 바빠서 못해요. 딱 누가 진행해서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죠. 그나마 미니 아카이북 같은 경우 unlimited edition이라는 마감일이 있어서 할 수 있었지, 마감일이 없으면 못 했어요. 그런데 이런 걸로 전시회를 열면 사람들이 많이 올까요?

 

서강> , 되게 예쁘잖아요.

 

> 봤던 건데도 그럴까요?

 

서강> 그럼요. 모나리자도 봤던 것이지만 또 보잖아요.

 

> 와 되게 적절한 비유네요.

 

서강> 포스터가 어떤 영화인지 정보를 알려주기도 하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프로파간다의 포스터 작업은 그 시대의 문화를 떠올리는 지표가 되는 것 같아요. 세 분이 생각하시는 좋은 영화 포스터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 무조건 예뻐야죠. 아니 예쁘다기보다는 매력적이여야 하죠. 그 영화가 보고 싶게끔 만들어줘야죠. 갖고 싶게 만들어야죠. 훔쳐가고 싶은, 그래서 방에 붙이고 싶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영화 포스터를 많이 모았어요. 초등학교 때도 맨날 극장가서 새벽에 포스터 뜯어 오고 그랬어요. 그래서 누군가가 우리가 만든 포스터 뜯어갔으면 좋겠어요.

> 두고 봐도 질리지 않는 포스터. 10년이 지나도 괜찮다라고 할 수 있는 포스터가 좋은 것 같아요. 근데 이게 장르마다 다른 것 같아요. 뜯어가고 싶은 포스터라 하면 모든 장르가 그렇지는 않잖아요. 예를 들어 누가 공포영화 포스터를 뜯어가지는 않잖아요. (웃음) 공포영화 포스터처럼 뜯어가고 싶지는 않아도, “, 이 포스터 되게 괜찮다!”라고 말 할 수 있는 포스터를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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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22

장애인 입장을 이해시키는 연구, 제가 할 일이죠

입는 로봇 기술 연구팀, 공경철 교수 인터뷰

 

 

 

 

무적의 슈트를 입고 악당을 물리치는 영화 아이언맨을 보셨나요? 하지만 영화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인간이 로봇처럼 옷을 입을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입는 로봇 워크온으로 사이배슬론대회에 출전하여 세계 3위로 팀을 이끈 기계공학과 공경철 교수를 만나보았습니다.

인터뷰 및 편집 양계영, 정재원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안녕하세요. 먼저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공경철(이하 공)> 서강대학교 2000학번입니다. 기계공학과로 입학해서 물리학과를 복수전공 했고요. 서강대학교에서 석사졸업 후 미국에 2006년에 유학을 가서 2009년에 박사 받고, 현재는 우리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로 있습니다. 분야는 제어전공을 했고, 응용 대상은 로봇입니다. 로봇공학은 융합 분야라서 로봇을 만들기 위해 기계 설계도 해야 하고, 제어도 해야 하고, 디자인도 해야 하고 여러 가지 할 게 많아요.

 

서강> 제어 쪽으로 전공을 확정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셨어요?

 

> 학부 3학년 때부터 유학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제 지도교수님의 권유로 본교에서 석사까지는 마치고 싶었습니다. 석사 전공분야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유학을 잘 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겠다는 교수님의 전공분야가 제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대학원에서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걸 하고 싶었어요. 대학원 갈 때 누구나 고민 많이 하잖아요. ‘대학원 가면 바로 취직해서 사회 생활하는 친구들에 비해 어떤 점이 나을 것인가하는 생각... 공부하는 기간 동안 받을 수 있는 회사월급 같은 기회비용도 생각이 나고요. 이런 여러 고민을 했을 때 제어분야가 제일 마음에 들더라고요.

 

서강> 교수님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교재를 직접 제작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많은 교수님들이 다른 사람이 쓴 책을 활용해서 강의를 하시잖아요? 저도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제 박사 지도교수님 강의를 듣는데, 직접 쓰신 교과서로만 강의를 하시더라고요. 이유를 여쭤봤더니 다른 사람이 쓴 책으로 강의하면 말투나 문제 푸는 방식이 달라서 학생들이 헷갈릴 수도 있다고 하시는데, 뭔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교수가 되면 반드시 직접 만든 교재로 강의해야지 하고 다짐을 했지요.

그런데 학교로 돌아와서 진짜 해 보니, 직접 만든 교재라는 게 학생들에게는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출판된 교과서를 쓰면 미리 읽어볼 수도 있고 연습문제도 풀 수 있고 한데요. 그렇지 못한 경우에 학생들이 오히려 힘들 수도 있기도 해요. 하지만 적어도 학생들이 제 열정을 알아주는지, 오타 가득한 교재라도 잘 따라와 줘서 즐겁게 강의하고 있습니다. 어설프더라도 매 강의마다 교재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벌써 9권을 만들었어요. 매년 똑같이 강의하는 과목은 매년 교정을 하니 어느새 내용과 질도 많이 좋아지고, 출판사에서 출판을 하자고 연락도 오는데 거절했어요. 굳이 그렇게 상업인 목적으로 쓰고 싶지는 않네요. 그냥 서강대에서 제 강의 듣는 친구들을 위한 특권으로 하고 싶어요.

 

 

[사진1]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의 보행을 돕는 웨어러블 로봇 엔젤렉스(Angelegs)

 

서강> 장애인을 위한 입는 로봇 엔젤렉스(Angelegs)와 워크온수트(Walk-ON Suit)에 대해 많이 궁금해 하실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셨는지 소개해주세요.

 

> 제가 석사 때부터 근력이 약화되어 걷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시는 노인을 도와드리기 위한 여러 기초 기술들을 연구했어요. 박사과정 중에도 계속 그쪽으로 연구를 했고요. 서강대 교수로 부임한 이후에는 연구실 셋업도 해야 하고, 학생들 지원해 주려면 연구과제도 따와야 하고, 여러 할 일이 많잖아요. 교재도 준비해야 하고. 2011년에 서강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늦어져서 보조로봇을 활발하게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가을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연구해왔던 기초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로봇이 바로 엔젤렉스(ANGELEGS)라고 하는 로봇입니다. 근력이 약화된 노인이나 경미한 마비환자를 돕기 위한 로봇이지요. 비슷한 대상자를 위해 만들어진 로봇으로 일본의 HAL이라는 것이 있는데, 엔젤렉스는 HAL과는 달리 몸에 붙이는 센서 없이도 훨씬 자연스럽게 보조할 수 있어요.

반면에 워크온수트는 완전히 마비가 된 장애인을 위한 로봇이에요. 마비가 되면 움직일 수 없지만, 느끼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의도를 어떻게 파악하는지, 그리고 균형을 잘 유지하게끔 하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등 좀 더 민감하게 설계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요.

제 생각에는 엔젤렉스가 훨씬 더 많은 분들을 도와드릴 수 있고 더 실용적인 로봇이라고 믿었는데요.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어차피 조금 걷는 사람이 입는 거니까, 그 사람이 걷는 건지 로봇이 도와주는 건지 감흥이 별로 없는 거에요. 연구자가 다른 사람 눈을 신경쓰면 안 되는데... 그래도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실제로 감흥이 좀 있으려면 완전마비 장애인이 로봇을 입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걸어 다니고 하면, “!” 하잖아요. 근데 엔젤렉스는 그런 게 없었던 게 문제였나봅니다. 그런 면에서는 워크온수트가 참 많은 감동을 가져다줬죠.

 

서강> 그 후 워크온 수트를 제작하여 2016 사이배슬론 대회에서 3위에 오르셨어요. 교수로서, 연구자로서 많은 보람을 느끼셨을 것 같아요.

 

> 우리 연구팀이 엔젤렉스를 만들면서 장애인을 다시 걷게 하는 기술은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좀 더 감동이 있는 것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감동이라는 게 문자 그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잖아요? 아직 장애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그들의 눈에 뭔가를 보여줘야 해요. 그래서 작년 10월에 사이배슬론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나가보자 마음먹었어요. 제 연구팀하고 세브란스 병원의 나동욱 선생님이 의기투합을 했죠. 그렇게 워크온수트(Walk-ON Suit)를 제작했습니다. 워크온수트(Walk-ON Suit)는 장애인 선수뿐만 아니라 저희에게도 참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죠. 일단 로봇 없으면 못 일어나는 분들이, 로봇을 입고 일어나서 걷고 계단도 오르고 할 수 있게 됐잖아요? 그런 기능적인 면도 좋지만, 저희가 가진 기술을 확실하게 홍보하고 각인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죠. 무엇보다 우리 서강대 학생들한테 세계 무대에 나가서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죠. “서강대학교에서 1등하면 세계에서 1등 할 수 있다이런 말을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데, 그래도 실제로 보여주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잖아요?

사실 객관적으로 서강대가 로봇으로 유명한 학교는 아니에요. 아무리 한두 번 좋은 성과가 나왔다 하더라도 대중의 인식은 순식간에 바뀌지 않습니다. 아직도 서강대에도 기계공학과가 있어?”, “서강대에서도 로봇을 해?”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교수로 부임하고 7년째 되니까 저도 괜히 자격지심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세계 최고의 대회에 도전을 했지요. 처음에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팀들, 예를 들어 NASA에서 후원받아 출전한 IHMC,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러시아 등과 경쟁하려니 얼마나 긴장을 했겠어요. 대회를 통해 큰 자신감을 회복했던 게 제일 큰 수확이었고요. 우리 연구팀 모두다 똑같이 느꼈다고 생각해요. 정말 영광스럽게도 이제 어디를 가든 저희 연구팀을 알아봐 주십니다. 정말 감사하지요. 우리 서강대학교 대학원의 모든 학생들에게도 작은 응원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왼쪽 가슴에 서강대학교 마크 떡하니 붙이고 세계무대에 다녀온 그 기분을 우리 서강대 대학원생들 모두와 나누고 싶습니다.

 

 

[사진2] '사이배슬론' 대회에 출전해 세계 3위에 오른 공경철 교수 연구팀

 

서강> 사이배슬론 대회 참가 전후로 바뀐 지점이 있을까요?

 

>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시고, 수많은 신문기사와 방송에서 다뤄지고, 전국에 안 다닌 곳 없을 정도로 활발한 강연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만 말씀드리면 다 좋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좀 더 연구에 대해 진지한 마음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대회 전에는 그저 지금까지 연구해온 기술을 실제 장애인에게 적용한다고 하는 순수한 학자로서의 마음으로 설레었다면, 지금은 보다 많은 분들에게 이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아직 로봇을 혼자 입을 수도 없고, 넘어지는 것에 대비해 누군가 항상 따라다녀야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걸을 수만 있다면 이게 무슨 문제일까 싶지만, 사실 장애인들은 단순히 걷고 싶어서 로봇을 입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주지 않고 스스로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 로봇을 찾는 것이거든요. 예전에는 좋은 기술 만들어서 논문만 많이 쓰면 좋았는데, 이제는 실제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좀 더 부담스럽지만 훨씬 더 영광스럽고 의미있는 방향으로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강> 인상 깊었던 게, 교수님이 입는 로봇을 잘 만들려면 사람을 연구해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셨더라고요.

 

> 사람 몸에 부착하는 로봇이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사람의 신체 근골격구조와 신경구조를 알아야 로봇을 제대로 설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몸을 제대로 알아야 꼭맞는 옷을 만들 수 있듯이, 웨어러블 로봇은 사람을 이해해야 제대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그런데 실제로 연구를 해 보면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공학연구팀이 책으로 혼자 공부하면 차라리 수월할 수도 있는데, 실제 연구는 의학연구팀과 치료사, 의지보조기기사분들과 다 같이 해야만 합니다. 문자 그대로 융합연구지요. 문제는 이분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에요.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참 다릅니다. 공학자들은 천 번의 실패 끝에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연구하는 사람들이고, 의사들은 천 번의 성공 중에 한 번의 실패를 막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문제를 같이 풀어나간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요.

 

서강> 일상생활과 더 긴밀하게 로봇을 도입시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인식 전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국제 기술 개발 지원에 있어서는 아쉬운 부분은 없나요?

 

> 지금까지 대부분의 연구과제들은 연구자의 입장에서 진행된 것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합니다. 아직 장애인들의 입장에서는 부족한 점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을 비장애인들이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실제 장애를 겪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미 로봇 잘 만들어서 잘 걷고, 계단도 올라가고, 이 정도면 이미 다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요. 기술의 내용을 잘 모르는 장애인들이 기술수요를 정확히 전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장애인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기술을 연구자들에게 잘 전달하고, 그에 맞는 지원을 끌어내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강> 이해를 시키면 지원문제는 따라온다는 건가요?

 

> 그렇죠. 저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지원제도가 상당히 선진화되었다고 느끼거든요. 진짜 필요한 연구가 있다고 하면 충분히 지원 받을 수 있는 길은 많다고 생각해요. 수요자와 공급자의 입장에서 진짜 필요한 게 뭔지 이해시키는 일이 중요하죠.

 

서강> 결과적으로 로봇공학은 단순히 연구의 대상이 아닌 로봇과 인간의 삶 사이의 이치를 파악하는데 힘쓰고 함께 나아가는 연구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앞으로 교수님의 연구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 지난 2월에 서강대학교 로봇시스템제어 연구실의 스핀오프(Spin-off) 스타트업 기업인 ()SG Robotics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LG전자와 세브란스 병원과 각각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LG전자로부터는 대규모의 투자도 받았고요. 이제 연구실뿐만 아니라 기업, 병원들이 모두 함께 장애인과 노인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재미와 보람, 동시에 사회적 책임도 굉장히 커진 상황이라 지금 당장의 이것저것 일을 벌리기 보다는 서강대학교 교수로서, 연구자로서, 그리고 이제 기업의 대표로서, 제게 받은 관심에 보답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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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4.08 18:16

 

 

진실탐사그룹 <셜록> 이명선 기자 인터뷰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

 

다음 스토리펀딩에 위와 같은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알았으니까 사직서 놓고 나가요

3년 세월을 정리하는 데 1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허망함에 헛웃음과 함께 눈물이 동시에 터져 나왔습니다. 기자 준비 3, 기자였던 3년이 그렇게 1분의 사직서로 막을 내렸습니다

 

 

뭘까. 종편과, 사직서. 두 단어에 시선을 빼앗긴 저는 빠른 속도로 글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막내 기자인 저는 꼭두각시에 불과했습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면 하라는 대로. ‘과연 기자란 어떤 존재일까감춰진 진실을 끝까지 추적해 밝히고, 자본과 권력을 감시하며,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대리인이 바로 기자입니다. 그렇게 배웠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단 한번도 기자였던 적이 없었습니다.

 

 

서강대학원신문에서는 종합편성채널(종편)에서의 자신이 겪은, 종편의 실체를 알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명선셜록기자를 만나보았습니다. 쉽지 않았을 듯한 선택의 순간들.

그때마다 스스로 어떤 의미를 추구해왔던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저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물음을 주는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를 만나

종편의 민낯과 삶의 의미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인터뷰 및 편집 신윤희, 정재원

 

 

 

 

. “저는 오늘 종편을 떠납니다.”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신문의 기획은 각자가 추구하는 의미가 사회의 의미들과 다를 때, 어떻게 해야 할까를 묻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자님께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더 기대되네요. 반갑습니다.

이명선(이하 이)> 기획에 대한 질문, ‘과연 인생을 살면서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 게 맞을까? 의미라는 게 뭘까?’를 듣고, 저는 아주 훌륭한 고민이라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그런 고민조차 안 하니까 (언론이) 이 지경이 된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들거든요. 사실 이런 고민을 (기자들이) 술자리 같은 데서는 되게 편하게 말해요. “이게 언론이냐?”이러면서. “우리가 사실 돈 벌려고 기자하는 거지, ‘까지 들을만한 일이냐이런 말을 하는데. 이렇게 제가 (회사를 나오고) 아예 노선을 정해서 말하기 시작하니까 (그랬던 기자들도) 저를 비난하는 거예요. 이렇게 자성의 목소리가 내부에 있는 건 맞지만, 표면에 드러나기까지는 본인의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데. 심지어 저를 지지하면서도 지지조차 대놓고 못하는 거예요.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해요. 개인의 사정은 다 있잖아요. 아이가 아픈 선배도 있고. 그러면 일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까. 또 생업이 달린 문제도 있고. 저처럼 경력이 단절될까 두려워하는 친구도 있고. 이해하려 하지만, (저를) 비난까지 하는 것은 화가 나더라고요. 이런 고민들은 계속 안고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특히, 언론인이라면 펜으로 사람 죽일 수 있는 (일이니까). 자기 성찰도 많이 하게 되고. 책이나 다른 사람 말에도 귀 기울여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고민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서강> 얼마 전 종편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스토리펀딩 글을 연재하기 시작하셨어요. 스토리펀딩[각주:1] 기사를 올린 후 주변이나, 인터넷의 반응은 어땠나요?

> 먼저, 인터넷 반응은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데, 초반에는 악플4-50%정도 됐던 것 같아요. “너는 왜 지금 와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느냐.”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첫 번째 연재글 자체를 제가 (채널A)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썼어요. 안에 있는 사람들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회사에 있는 것과 나오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러다보니까 피해자 코스프레 해서 뭐하려고 하느냐’, ‘ 돈 벌려고 하느냐이런 비난도 많았고. 나머지 반은 그런 저의 행간을 읽으셨는지지금이라도 이렇게 고백하는 게 참 고맙다는 차원에서 응원을 많이 해주세요. (펀딩 금액도) 거의 하루만에 40%가 모였고, 빠른 시간에 70%까지 찬 것 같아요. 삼일 안에? 그것도 의외였죠. 저는 1화는 무조건 비판 받을 줄 알았거든요. 4화까지는 가야 아 그래도 얘가 하고 싶은 말이 있나보다이렇게 생각하실 줄 알았는데, 초반부터 계획 의도를 알아주셨다는 점에서 감사했죠. (반면에) 저한테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욕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 사람들의 논리는 이거에요. 첫 번째는 왜 이걸(스토리펀딩)로 돈을 버냐’, 네가 고작 3년 일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냐’. 그리고 세 번째는 너도 3년 동안 같이 했으면서 왜 이제 와서 그러냐는 배신감? 그런 게 종합적으로 섞여있는 것 같아요. 그 모든 말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감당해야죠. 응원해주는 사람들은 어떤 구체적인 근거와 목적을 설정하고 저를 응원해주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무슨 연유로 저를 응원해주시는지 잘 몰라요. 아마 시원한 것도 있겠죠. ‘누가 그래도 이걸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는데, 네가 말하는구나.’ 사실 한국 언론 자체가 문제에요. 종편의 민낯인거죠.

서강> 스토리펀딩 연재하시기까지 굉장히 어려운 결정이셨을 것 같아요. ‘내부 고발이라는 시선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에 대한 시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그런데 제 글이 내부고발이라고 할 정도로 톤이 강한가요? 묻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100에서 10도 얘기 안했거든요. 지금 제가 쓰는 글은 제가 경험한 것만 쓰고 있어요. 타인이랑 엮여 있는 문제는 타인이 다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100에서 10도 못 쓰겠는 거예요. 그런데 방송은 팀워크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가 제 이야기만 할 수 없는 거예요. 답답하죠. 오프 더 레코드로 할 이야기는 이만큼 있는데, 대놓고 쓰자니 쓸 수는 없고. 그러다 보니 글이 빈약해지고. 그러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돌려봤는데도 맹점이 생기고. 저는 누군가 내부고발을 하면 일단 박수쳐주고 싶어요. 다만, 정말 대단한 결정이지만 정신 승리 방법을 강구하셔야 된다고 조언하고 싶어요. 당신의 선택에 지지하는 사람 못지않게, 비난하는 사람도 많을 거다. 왜냐하면 사람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좋고 싫음에 더 많이 휘둘리기 때문에. 그걸 외면하고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나갈 것이냐, 아니면 수용하고 그걸 긍정적인 방향으로 소화시킬 것이냐. 이건 개인의 역량차원의 문제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를 해줄 것 같아요. ‘내부고발 힘들고 필요하지만. 글쎄요. 보호받지 못할 거다, 절대로. 그걸 감당하셔야 된다.’ 어렵네요.

서강> 종편기자가 된 후, 취재 시 시민들의 안 좋은 시선 등 어려움이 많았다고 하셨어요. 그때의 기분은 어떠셨는지. 억울하기도 했을 것 같은데, 뭐가 제일 억울하셨나요?

> 맞아요. 왜냐하면 나는 열심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돌이켜보면 이런 거죠. (기사를 쓰는데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100% 선택할 수 있었다면, 저는 제가 썼던 그 기사 안 쓸 거예요. 그런데 너 이 아이템으로 기사 알아볼래?”라는 (현재) 방식에서는, 정해진 옵션 안에서의 선택을 100% 자기 자유의지로 착각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친구들이 지금 (회사에) 대다수 남아있게 되고. 저도 취재하고 방향은 이렇다는 이야기는 하지만, 사실 쓸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어요. 그런데 한정적인 범위 내에서 제 자율성은 보장되는 거죠. 1-2년 차에는 그 자율성만 보였던 거예요. 3년차가 되니까 큰 그림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이 기사는 내가 100% 주도해서 쓰는 게 아니라, 위에서 판을 만들어 놓고 자 이 안에서 이 일은 네가 맡아서 해라였던 건데, 제가 그걸 몰랐던 거죠. 그래서 처음에는 나는 열심히 하는데 시민들은 왜 몰라주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3년차 즈음에는 (시민들이 제게 물건을) 던지든 욕을 하든, ‘당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 장면을 머릿속에 넣어야겠다. 언젠가 이 순간을 기억해야 할 순간이 오겠구나.’ 생각했죠.

서강> 그런 상황에서 발견하신 종편 보도의 문제점은 무엇이었나요?

> 핵심은 시청률 지상주의’. 종편이 이미 과포화 된 언론시장, 즉 레드오션에 뛰어들다보니까 더 시청률, 특히 클릭유도처럼 [단독]을 막 붙인다거나, 시청률을 높이려고 어떤 방법이든 취하는 거죠. 종편 같은 경우는 시청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이 주시청자층이 좋아할만한 걸 계속 만들어내는 거예요. 시청 층을 넓혀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요만한 파이에서 계속 타 방송사가 하던 방식을 조금씩 뺐어오는 식이죠. 아이템 선정이든, 패널 선정이든 다 그런 식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고, 그게 핵심이에요. 그걸 경험해봤던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종편은 조직적으로 나쁜 보도만 하려고 해가 아니거든요.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하다 보니까 구멍이 생기는 거고. 윗사람들도 그 결정권을 여유 있게 가지고 있지 못해요. 빨리빨리 해야 하니까 그런 거예요. 인력이 없는데, 시청률은 높여야 하고, 돈도 시간도 없고. 그러니까 (방송을) 쉽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게 된 거죠. 보수냐, 진보이냐를 떠나서 그게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 생각합니다). 해외에서는 1년에 기사를 하나만 쓴다는 계획으로 만든 TFT도 있다면서요. 그만큼 기사 하나가 반향이 크고 사회를 바꿀 수 있다면 유의미하다는 생각으로 조직에서 도와주고 응원하는 거죠. 그러면 기자들이 일을 열심히 안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한국은) 그런 팀을 조직할 수가 없어요. 동료 기자들도 (자조적으로) “오늘 내가 인터넷 기사 몇 개 썼는지 알아?”, “내가 오늘 인터넷 기사 15분 만에 썼다이런 일이 너무 많아요. 실제로 (시간은 모자란데) 쏟아지는 보도 자료도 처리해야하고. 출입처도 문제인데다가. 그래서 더 공부를 해야죠. 현재 언론의 맹점에 대해서는 웬만한 언론인들 다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신문사 기자들은 바쁜 환경 속에서도 책 스터디도 하고 그런대요. 그런 바람은 확실히 있어요.

서강> 출입처 문제는 무엇인가요?

> 각 기자들이 나와바리[각주:2]라는 게 있어요. 예를 들어 사회부는 경찰 팀으로 쭉 지역을 나누고, 국회는 여당/야당으로, 산업부는 삼성과 LG 등 기업별로 출입처를 나눠요. 나와바리를 나눌 때, “너는 노동분야 가져”, “너는 여성문제 가져하면서 키워드별로 구분하지 않아요. 사실 여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정부분 복지도 있을 거고, ‘정치당연히 들어가야 되고, ‘문화센터도 아이템이 될 거에요. ‘시청도 출입해야하고 뭐 이런 건데. 이 모든 걸 기관으로만 나누다 보니까 (문제가 되고), 출입처 말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걸 깨는 언론사가 거의 없어요. 기관으로 나눠놨기 때문에 그 기관에서의 빈틈은 없지만, 권력자의 말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니까 계속 보수화되고. 예시가 있어요. 제가 (요즘) ‘간첩 사건을 취재하면서 유우성 사건을 다시 한 번 복기했어요. 이것도 결국 무죄 판결 났죠? 그런데 이분을 완벽하게 간첩으로 몬 게 종편이에요. 최근에 그걸 다시 보니까 기가 막힌 수준인 거예요. “(유우성이) 간첩인 건 분명하고, 연세대에 간 것도 다 계획 하에 꼼수를 부려서 간 거다.”이런 식인 거예요. 무죄 판결 났을 때, 그들이 이걸 사과했을까요? 아니에요. 이 사건도 국정원에서 나온 이야기를 받아 쓴 거예요. 기사를 보면 국정원 관계자에 따르면’, 그 관계자가 누군지 (알 수 없죠). 어떻게 기사를 이렇게 쓸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단독]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뿌려졌더라고요. 이게 문제죠. 국정원에 출입하는 사람이 거기로부터 나온 이야기를 마치 단독인거마냥 내보내고 있잖아요. 최소한 유우성씨한테 (간첩이냐고) 확인은 했어야 하잖아요. 경찰에서 누굴 잡아서 보도 자료를 만들고, ‘용의자이런 식으로 표현하잖아요. 그것도 알고 보면 범인이 아닌 경우도 많아요. 이미 얼굴이 (기사에) 다 나왔는데무죄추정의 원칙이 다 깨지고 있는 거죠. 경찰의 발표조차 100% 믿을 수 없는 상황인데, 그런 거에 대한 의심을 못해요. 이런 점에서 한국의 출입처 중심의 언론시스템은 문제가 많죠.

서강> 종편이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종편이 바뀔 수 있을까요?

> 종편이 당장 없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종편이) 바뀔 것이냐? 조직이 선의지를 가지기 위해서는 구조적으로 바뀌어야 해요. 국가 차원에서 언론법을 완전 타이트하게 바꾸지 않는 이상은 비관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최순실 사태때 지상파 보도가 한 달 가량 늦게 나왔잖아요. 채널AKBS, MBC. 그런데 그것에 대해 과연 (방송사가) 사과를 했느냐. KBS, SBS는 성명서를 냈지만, 채널AYTN은 안 냈어요. 그것부터 사과해야죠. 자성이 먼저죠. 자성이 안 되는데, 바뀔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회의적입니다.

 

 

. 진실탐사그룹 셜록

 

서강>‘셜록의 설립 과정은 어떠했나요? 어떻게 합류하게 되셨는지. 이런 대안언론을 생각하시고 종편을 나오신 건가요?

> 일단 절대로 기자 다시 안 하려고 했어요. 이렇게 부끄럽게 할 바에는. 막판에는이직도 아니다, 완전히 이 판에서 나오자.’그러다가 출판사에서 잠깐 일을 했어요. 그때도 끓어오르는 무언가는 계속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 이야기를 전 오마이뉴스 기자인 박상규 기자랑 개인적으로 알게 되면서, 그분한테 말했어요. “(저처럼) 이렇게 엎어진 청년이 도대체 몇 명일까.”당시에 박상규 기자가 스토리 펀딩에서 박준영 변호사랑 <재심프로젝트>[각주:3]를 하고 있었으니까, 이걸 아예 공적인 영역으로 그룹을 만들어서 싸움을 크게 해보자고 주변에서 제안을 많이 했나 봐요. “괜찮은 아이디어다.”그래서 멤버를 모집하던 와중에 제가 합류하게 된 거죠. 선배 입장에서는 방송 경험자도 필요했던 것 같고, 또 제가 봤던 보수언론 세계의 인사이트도 필요했겠죠. 이렇게 제가 했던 선택들이 누군가에는 하나의 메시지가 되었던 것 같아요. 제가 언론이 이렇게 돌아간다면 저는 안 할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니까. 그렇게 선택하는 사람이 많지 않잖아요. 그런 제 선택이 하나의 메시지가 되면서 박상규 기자도 이런 선택을 한 사람이라면 함께 해도 좋겠다.’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서강> 셜록은 정확하게 언론사는 아닌 것 같아요. 종편과 셜록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 차이점은 일단, ‘개입이죠. 완벽하게 개입하는 거죠. 언론인이 가지고 있는 언론 규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걸 보면 (언론인은) ‘관찰자로서만 있어야 한다고 하거든요. 그걸 깬 거예요. ‘욕해도 좋으니 우리는 깨겠다. 아닌 건 아니지 않은가?’ 뭐 이런 거죠. 물론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어디까지 개입할 것이냐. 아프리카에서 독수리가 아이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사진 기억나세요? 그거 찍은 기자가 자살한 거 아세요?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기자) 본인은 언론인 원칙을 지키려고 했던 거죠. 기록한다는 의미. 그런데 그때 만약 관찰자여야 한다는 언론인의 규정을 깨고 아사 직전의 아이를 구하는 선택을 했더라면, 그렇게 힘들어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차선, 언론이 개입해서 분명한 노선을 가지고 싸워보자. 그게 기존의 언론하고 (셜록이) 다른 부분이죠. 그래서 저도 제 소개를기자라 하지 말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기자라는 직함에 대해서는 정말 고민이 많아요. 왜냐하면 이게 한국에서 규정하는 기자가 아니에요. 그리고 셜록은 설립과정 자체가 (언론과) 달라요. 박상규 기자가 박준영 변호사랑 이와 같은 일을 2년을 했죠. <재심프로젝트>. ‘무죄판결을 받아야 하는 과거의 사건들을 언론인들이 같이 싸운 거잖아요. 이 과정을 박상규 기자가 전부다 기록했고, 그 기록에 호응하는 대중들이 돈을 펀딩해줬고, 그 돈으로 재판에 계속 성공했죠. 그래서 셜록에서 기자는 글을 쓰고 알리는 거고, 거기에 대중들이 동조를 해줘야 프로젝트가 완성이 돼요.[각주:4] 일단 공을 던지는 거예요.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받아주는 사람의 힘으로 사건 해결까지 개입해서 싸워보자그겁니다.

서강>‘개입이라고 말해주셨으니까. 어디까지 개입하나요?  “아닌 건 아니지 않냐라고 말씀하신 부분에서 아니라고하는 부분, ‘이 사건은 우리가 개입을 해야겠다는 부분도 어떻게 보면 일종의 판단인거잖아요. 그 판단 기준이 중요할 것 같은데, 기준이 있나요?

> 기준이라기보다대전제같은 건 있는 것 같아요. ‘과거사건이요. 과거에 해결이 됐었어야 할 문제를 관심 있게 본다는 거. “이건 다시 한 번 짚어볼 문젠데.” 하는 것들. 또 하나는 사람들의 인식을 깨는 문제에요. 예를 들어 어떤 청년이 막걸리를 훔쳤는데, 그 막걸리를 훔친 이유가 감옥에 가고 싶어서였어요. ‘이 청년은 왜 감옥에 가고 싶었을까.’그런 식으로 셜록 사람들 모두가 사회에서 드러나지 않은사회적 약자’, 그림자에 가려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이렇게 큰 틀에서는 계속재심사건을 할 건데. 재심이라는 것 자체가 되게 힘들어요. 사법부에서 판결까지 나온 걸 다시 뒤집으려면. 재심이 판결됐다는 자체로도 이슈가 돼요. 또 재심 판결은 한 번 했다가, 같은 이유로는 다시 재심 신청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박준영 변호사님도 재심사건을 준비하면 그 재심 신청서만 몇 개월을 써요. 그리고 그게 어느 정도 무죄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재판부에서 재심을 결정해요. 그런 사건은 어마하게 많아요. 그래서 누가 봐도 이건 다시 심사든 아니면 재평가든, 법적으로 봤을 때는 재심이 될 거고, 선거법 같은 경우에는, 헌법과 굉장히 대치되는 부분이 많을 경우에, ‘이걸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얼마나 비상식적인지, 어쨌든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결과물에 대해 다시 뭔가 논의할 수 있게끔 하는 거죠.

서강>‘셜록에서 꼭 지키겠다는 기자님만의 취재 원칙이 있다면?

>‘대리기자안 되겠다. 다시는 (종편에서의) 그런 일 없을 것 같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취재하고 기사 쓰고 끝내지도 않을 거예요. 제가 채널A 있었을 때, [단독]이라고 자기 기사를 자랑스럽게 내보내도, 그 이후에 취재를 안 해요. 그럴 시간도, 역량도 없고. 긴 호흡으로 기사를 다루면서, 그 후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지려고 하는 게 (기자의) 의무인 것 같아요. 안 그러면 저는 기존의 언론이랑 다를 바가 없는 거죠. 제가 아쉬웠던 건 광화문에 채널A가 있는데, 채널A 데스크가 광화문의 시민 이야기를 제일 몰라요. 제가 물통을 맞는지, 마이크에 붙어 있는 (회사) 로고를 떼지 않으면 취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원성을 듣는지 등을 잘 몰라요. 아일랜드인 거죠. 그래서 소통은 의무인 것 같아요. 괴롭더라도 제가 계속 악플을 읽는 이유가, 분위기를 알고, 거기에 끌려가지 않게 중심은 잡되, 그쪽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잘못하고 있으면 달게 받고, 잘하고 있으면 힘을 받고. 또 저는 출입처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재 저널리즘이 문제가 있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고. 그래서 출입처가 아닌, 사이드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심지어 언어가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자). 누군가에게는 언어가 없어요. 자기가 왜 억울한지조차도 말씀을 잘 못하세요. 그걸 한참동안 듣고 제 호흡으로 정리하는 거예요. 그런 작업을 누군가 해야 되는 건 맞잖아요. 그래서 언어가 없거나, 힘이 없거나, 아니면 자기가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커요. 그걸 계속 표면 위로 올려서 대중을 설득시키는 거죠.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대변하고 싶다는 것.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 의미와 무의미

 

서강> 스토리펀딩 글을 읽으면서 이런 구절이 와 닿았습니다. “나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냥움직이면 되는 존재인가.” 어떻게 보면 나라는 존재를 굉장히 무의미한 존재로 만드는 시간들이었을 것 같아요. 기자가 되기까지. 기자님은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나요? 그리고셜록의 기자가 된 지금은,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인가요?

> 우선 저란 사람이 이렇게 생겨먹어서 이렇게 된 거지, 대단한 결심과 계획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라는 거. 오히려 그걸 힘들어 하는 친구들한테 제 케이스로 용기를 주고 싶어요. 그래서 의무감은 있어요. 내가 잘해야겠다는. 나처럼 쉽게 선택한 사람들도 이렇게 성공할 수 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저와 비슷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한테, 나도 이런 노하우로 해왔다는 걸 전수해주고 싶어요. 그러려면 일단 제가 잘해야 해요. 그래야 무의미가 의미있겠죠? 제가 잠깐 출판사에서 일했는데, 저는 거기서도 미움 받았었거든요. 이해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시키지도 않은 일 왜 안했냐고 하면, “언제 시키셨죠?” 이러면 또 막 말대꾸한다고 막 그랬는데. 제가 거기서대리였어요. 대리라는 직함이 너무 싫더라고요. ‘도대체 나는 누구의 대리인인가. 대리기자가 싫어서 나왔는데’. 이 생각에 사로잡힌 거예요. 그래서 검색해봤어요. 대리 직함의 유래. 과장의 대리인이래요. 놀라운 건 뭐냐면, 과가 없는데 과장이 있어요. 그 출판사는 부만 나눠져 있거든요? 근데 과장님이라고 불러요. ‘과가 없는데, 왜 과장이라고 부르지?’과장이 없는데 내가 대리인거에요. ‘나는 도대체 누구의 대리인거지?’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직급체계? 그러니까 개인이 없는 거죠. ‘도대체 왜 이렇게 불려야 하는가라는 철학적 의미라고 해야 하나? 그런 회의가 들면서 힘이 쭉쭉 빠지더라고요. ‘내가 대리기자 싫어서 나온 건데, 나를 이명선 대리라고진짜 하하 너무 인생이 웃기다.’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는 기분 나쁠 수 있겠죠. 대리라는 게 누구한테는 기쁨일 수 있잖아요, ‘와 내가 이제 사원에서 대리가 됐다’. 그런데 그런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개인을 대하느냐의 문제인거죠. 거기서부터 계속 삐딱한 거예요. ‘직함마저 불편할 정도면 나는 어디 가서 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다양한 목소리라고 해야 하나?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도 옵션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서강> 그런 면에서 기자님께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미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분 같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세상의 관점에서)무의미한 것들을 추구하는 삶이 존중받으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 정치인가요?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조금씩 균열을 내야죠.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요즘 재밌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머리를 탈색해야겠다. 기자의 이미지를 다 깨버려야겠다.’ 그것도 하나의 균형을 깨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처음엔 욕하겠죠. 기자면 재킷 입고, 안경 동그란 거 쓰고, 지금의 제 모습처럼 생각하는데 그걸 완전 깨버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조금씩 균열을 내면 (세상도) 바뀌지 않을까요? 개인의 차원에서는, 새로운 상황에 자기를 놓는 연습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그게 무의미가 의미 있어지는 순간들이 계속 쌓이는 거잖아요? 제가 즐겨듣는 팟캐스트 중 하나가 <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인데, 거기서 김도인이라는 분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 했던 제안이 아주 인상적이에요. 예스맨이 되라. 영화 <예스맨>이 있대요. 어떤 상황에서도 예스를 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새로운 상황에 자기가 놓이게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예스맨으로 살아가면서, 비관적이었던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모습이 영화에 쭉 나와요. 그것처럼 모든 사람들한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지만, 이것도 구조적인 문제죠. 과연 청년들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서강> 어려운 것 같아요. 개인이 자신의 의미를 추구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그런 일이 엄청난 결단력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사회가 그런 걸 인정해주지 않아서 비롯된 것 같기도 하고요.

> 그런데 의미/무의미가 나눠지세요? 저는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너무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무의미하다’. 감히 우리가 이렇게 나눌 수 있을까요? 무의미가 의미를 가지려면, ‘의미가 없어져야 해요. 저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했지만, 누군가한테는 그게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잖아요. 무의미하다는 것이 또 의미가 되고. 의미를 가지려면, ‘존중인 것 같아요. 삶에 대한 존중. 어쨌든 저는 제 삶에 대해서 이렇게 규정을 내렸는데, 칭찬도 많이 받지만 비판도 받는 거죠. “시스템에 의한 거고, 그게 효율적이다.” 그 사람들은 그게 의미인거에요. 저는 그게 무의미하다 생각한 거고. 그러면 도대체 나는 왜 이걸 무의미하다고 여겼냐. 글쎄 이것도 어려운데, 제가 전자공학 전공을 때려 친 이유랑 똑같아요. 부품이 되기 싫었어요. 어느 순간 이렇게 살면 안 행복할 것 같은 거예요. 엄마아빠가 준 이름 이명선이라는 걸 활용할 수 있는, 온전한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을 해보고 싶다. 그 중 하나가 기자였고. ‘기자는 사람을 자주 만나고 글을 쓰니까, 성장이 될 거다.’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거죠. 다 소용 없었는데. 그래서 기자가 되기까지 (삶의) 의미는 란 사람으로 서는 거였어요. 온전한 나로 받아들여지는 것. 지금도 제가 생각하는 의미는 같아요. 나란 사람이 온전히 그냥 받아들여지고, 왜곡되지 않고, 복사되지 않고, 그냥 존재하는 거. 어쨌든 저는 계속 삶을 이 방향 저 방향 선택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큰 틀은 지식인이 되어야지이지만. 지식인이라는 말도 좀 웃기고, ‘저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물음을 주는 칼럼니스트. 그게 이제 제 꿈이에요.

  1. 이명선 기자는 지난 2월8일부터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라는 제목의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독자들은 전 종편 기자가 종편의 문제를‘내부고발’한다는 취지에 긍정적으로 호응했다. 이 프로젝트는 5,000,000원을 목표로 2017년 4 월 23일까지 75일간 진행된다. (편집자주). [본문으로]
  2. 1. 새끼줄을 쳐서 경계를 정함. 2. (폭력단 등의) 세력 범위; 세력권. 이라는 뜻으로, 각 기자들이 취재하는 주 활동구역을 뜻한다. (출처 : 네이버 사전, 편집자주). [본문으로]
  3. <재심프로젝트>. 박준영 변호사와 전 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가 스토리펀딩에서‘재심시리즈 3부작’으로 과거 사건의‘재심’을 이끌어냈다. 모아진 펀딩 금액은 박준영 변호사의 재심 변론 활동과 박상규 기자의 취재비로 쓰였다. 이 중‘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윤기호 감독의 스토리펀딩을 통해 영화 <재심> (2017)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편집자주). [본문으로]
  4. 셜록’의 목표는“기자는 알리고, 독자는 퍼트리고, 전문가는 해결한다”이다. 일단 기사를 취재하면 실제 변호사와 함께 법적인 절차까지 간다. 이를 두고‘시민단체’가 할 일과‘언론사’가 할 일, 그리고‘변호사 그룹’이 할 일들을 한꺼번에 합쳐서 하는 놀라운‘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말도 있다. (편집자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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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2.14 16:15

 

 

처음 학부에 입학했을 때부터, 대학원생이 되기까지. 내가 목도한 청년들의 삶은 해마다 무언가 하나씩 ‘더’ 포기할 것을 강요받는 ‘N포 세대’의 모습이었다. 캠퍼스 곳곳에 붙는‘시국선언문’이 늘어나다, 급기야 ‘고장’나버린 대의정치를 대면하게 된 지금. ‘공생’의 가치 회복을 외치는 한 학자를 만나 한국사회의 가능성과 대안에 대해 물어보았다. 현재의 시∙공간이 매우 중요한 지점임을 역설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그녀가 한 칼럼에서 이야기했던 아래의 대목을 통해 갈음하고자 한다.

우리가 매주 토요일 따뜻한 모자와 장갑을 준비하고 광장으로 나가는 것은 권력을 잘못 위탁하여 좀비와 흡혈귀처럼 될 것을 우려해서이며, 더불어 하는 시공간 속에서 스스로의 인간성을 회복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발명하기 위함이다. 급하게 가다 망하고 있는 나라는 이제 천천히 가는 것을 연습한다. 크리스마스와 설날을 거쳐 봄이 올 때까지.1)


인터뷰 및 편집 신윤희, 양계영

 

 

Ⅰ. 현 사회의 문제점 - 혼용무도(昏庸無道)2)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선생님께서는 은퇴까지 40여년을 강단에서 교편을 잡아오셨습니다. 그동안 청년세대의 변화를 직접 목도하셨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청년세대가 시기적으로 어떤 변화를 보여 왔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조한혜정(이하 조한)> (저는) 유학에서 돌아와 이른바‘386세대’인 79년부터 가르쳐왔는데요. 당시 대학은 사회를 위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데모를 안 하면 병신 취급을 당하던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나름 공공에 대한 분명한 사회의식이 있었죠. 또한 성장과정에서 동네도 있었고, 친척들 속에서도 살았고, 친구들도 많아서 사회적인 존재로 살아가고 때로 작당하면서 조직하는 훈련도 되어 있었죠. 그래서 학습하고‘우리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존재였어요. 이른바 하면 된다는‘hot한’세대였죠. 90년대 학번에 들어오면 경제가 좋아졌고, TV도 컬러로 보면서 자랐고 대중음악과 PC통신 등으로 개별적 문화를 즐기는‘개인’이 생기기 시작해요. 이들을‘신세대’라 불렀어요. 그 세대나 80년대 끝물의‘개별화’된 세대에서, 서태지가 나왔고 인터넷의 대중화 물결을 타고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탈의 창업자들도 나왔고요. 이들은 굉장히 개별화되어 있고 독보적이고자 한 문화의 시대인들이고‘선배들은 어떻게 한다더라’이런 개념이 별로 없어요. 자기만 있으면 되는 거고, 독창적일수록 좋은 거고, 튀고 싶고. 그래서 대부분 자기표현을 한다든가, 문화적인 것, 고상해 보이는 일을 하고 싶어 했어요. 윗세대가 정치적으로 그랬다면 이 세대는 문화적으로 기성세대를 거스르고 싶어 한 욕망의 세대라 할 수 있죠. 그 세대가 잘 성장하면 한국사회가 제대로 성숙해질 것이라 믿었는데, 1997년 IMF 금융위기를 심하게 겪으면서‘겁에 질린’사회는 오히려 개발독재 세대와 비슷한 생존경쟁의 세대를 형성한 것 같아요. 열심히 일해서 나 혼자, 내 가족만이라도 살아남자는‘(신)자유주의자’들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이른바 개인으로 살아남기 위한 스펙 쌓기에 골몰하는 신자유주의 세대의 출현인 것이죠. 생존이 힘들 거라는 공포 속에서, 중고등학교 때부터 필독서로‘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그 중에는 자기계발서를 중독자처럼 읽으면서 공부 했다는 학생들이 적지 않더라고요. 지금 대학원생들의 세대가 여기에 속하나? 2000년경부터 ‘세계화’에서 대학이 순위를 매기기 시작하고, 대학가서도 모두를 한 줄로 세우는 학점이 중요해지지요. ‘도태하면 죽는다’식의 승자독식, 초 경쟁 시대가 열린 거죠. 대학이라는 게 긴 시간성 안에서 길고 넉넉하게 보고 그 시공간에서 여유 있게 사유하고 토론하고 실험하는 곳인데, 스펙 쌓느라고 정신이 없고 살벌한 곳이 되죠. 이른바 더치페이 문화도 생기고요. 2000년대 중반부터 오찬호 씨의 저서 제목처럼‘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식으로, “나는 너무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안 한 애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대학에 들어오는 것은 부당하다”이런 식의 말을 공공연히 하는 이들도 생겨나죠. 엄마들이“놀러 다니지 마라. 몰려다니지 마라.”라면서 키웠다는데 사실 몰려다니는 것이‘사회’인 거거든요. 그렇게 해서 사회성이 전혀 없지만, 학교에서는 온순하고 고액과외 받으며, 엄마 시키는 대로 한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내고 대학 입시도 잘 하고. 인사도 잘 하고, 놀랄 정도로 고분고분한 세대가 나오는데, 그래서 우리가‘cool’한 세대에서, ‘warm’한 세대로 (바뀌었다고 부르죠). 따뜻한 세대라기보다 눈치를 아주 많이 보고 기성세대와도 마찰을 빚지 않는 미지근한 세대랄까.대략 이런 이념형으로 세대분화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최근 이 양상이 또 좀 변하고 있어요, <노오력의 배신> 책에서도 썼지만‘스펙세대’가“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구나”에 대한 자각이 생기는 것 같아요. 몸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 불안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랄까. 그런 것들이 광화문 집회와도 연결이 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광화문 시민 집회 시∙공간이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근대성’에 대한 공부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데 중요한 일들을 할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책 <노오력의 배신> 표지. (창비 제공)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조한혜정 선생은 “‘헬조선’사태에 일말의 책임을 느끼는 지식인으로, 이 연구에 가담했다”고 말했다. 또한 저자는 책에서“헬조선 담론은 망해가는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청년들의 고발이며, 이총체적 파국 상황을 해방적 파국으로 바꾸어내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시간과 자원, 그리고 자치적 삶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강>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은‘헬조선’담론, 수저계급론 등 부정적인 정서가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한국 사람들이 유달리 괴롭다고 하고, 분노와 혐오가 많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조한> 우리를‘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선망국’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어디가 먼저 망하냐. 사실은 세계 전체가, 인류 진화상으로 거의지구자체가, 망할 가능성이 높아졌잖아요. 기후변화도 모른 척 하고 있고. 그런데‘왜 한국이 유독 더 그러냐’고 이야기를 할 때는 우리가 신민지 근대성으로부터 시작했고, 굉장히 압축적으로 경제성장을 한 나라(라는 것이죠). 거기에‘기형성’이 있어요. 또 한편으로 기형성은‘불균형’일 텐데. 사람을 도구적으로 보는. 사람은 도구적인 존재이면서도, 존재 자체로 소통하는 존재인데. 소통하고 만나는 부분이 계속 무시되었던 거죠. 입시교육, 집, 가족까지도. 엄마와 아이가 눈 마주치면서 노는 것을 안 하잖아요. “너 공부했냐?”그런 식으로. 그것과 입시교육이 함께 가면서 굉장히 극단적인 상황이 온 거죠. 그러면서도 계속 우리는 ‘아파트 공화국’과‘입시 공화국’과‘보험 공화국’으로 산다고 이야기 했는데. 아파트로 돈 벌고,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고. 아파트가 계속 돈을 벌게 하는 식의, 토목, 토건 국가적인 발전을, 토건적 경제발전을 이명박 정부 끝까지 다 말아먹은 형편이고. 그러면서 ‘돌봄’이라든가, ‘상생’이라든가, ‘소통’이라는 영역은 싹 무시된 거죠.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서 (성공과 출세를 위해) 정신없이 굴러온 거예요. 그때는 국가권력자들 뿐만 아니라, ‘386 세대’3) 민주운동을 한 사람들조차도, 자식들을 일류대에 넣거나, 외국에 보내거나 이런 것에 몰입을 했죠.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온당성과 제대로 가는 발전에 대해서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예요. 다 주식투자하고 펀드 하고, 어쨌든 돈만 제대로 벌고, 아이들 입시만 제대로 하고 나면, 보험만 들어놓으면 모든 게 다 보장된다, 이렇게 착각을 했던 거고. 그런 게 ‘세월호’나‘가습기 사건’을 겪으면서‘보험 들어봤자 그냥 죽을 것 같다’는 새로운 자각을 (하게 된 거죠). “우리가 전혀 보호받지 못 하는구나. 우리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구나.”현실을 직시하는 흐름이 생긴 거라고 생각을 해요.


Ⅱ. 문제에 대한 해결 - 종신불퇴(終身􂸝退)4)


서강> 한 인터뷰에서“인간 삶의 핵심은 협동과 관계 맺기”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현 사회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관계의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조한> 학교부터 바뀌어야 되는 거죠. 학교부터 의논하고, 입시교육이 안 바뀌면 안 돼요. 그중에서도‘내신 성적’보지 말라고 해야죠. 내신 때문에 다 학교에 붙어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일단은 가족과 입시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은 협동을 할 수도, 배울 수도 없는 거고. 그런데 학교는 입시제도에 걸려 있고, 부모들은 입시제도에서 일류대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일류대에 온 친구들은 일류대에 와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지만 대기업이나 이런 곳에 가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죽어라 목매달고 있고. 또 대기업에 간 사람들은 가보니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이 순환의 고리가‘겁에 질려서’계속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입시교육을 전폭적으로 (바꿔야 하는데). 학교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들한테는‘바우쳐’를 줘야 해요. 그러면 그런 아이들의 부모들이 모여서 (대안의) 학교를 만드는 거예요. 그게 실제로 일정하게 산업화하고 난 단계에서‘대안학교’가 생긴 역사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안학교를 못 하게 하죠. 혁신 학교와 같은 조그마한 시도들을 하고 있지만 사교육 시장과 학교가 이상한 형태로 결탁을 하고 있고. 선행학습과 내신 성적을 가지고 가는 한은 이게 안 바뀔 거예요. 그러면 학교를 일정하게 붕괴∙해체시켜야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선생님들도 대안학교 쪽으로 영역이 열렸었어야 했는데, 우리나라가 지난 20년 간 그런 것들을 했었어야 됐는데, 기회를 놓친 거죠.

서강> 질문의 논의를‘청년 세대’로 좁혀보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노오력의 배신> 책에서 말씀하신‘청년 스스로 삶을 꾸려갈 시간, 자원, 삶의 공간’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조한> 제가 제시하는 것은 청년 자체가 스스로 너무 두려움에 가득 찬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이‘겁에 질린 주체’가 변화되는 데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러니까“내가 굶어죽지는 않을 거야”라든가. 겁에 질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 이런 게 필요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5) 이런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냥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청년들이 바뀌기는 힘들다는 거죠. 그래서 일단은 사회적으로 청년부터‘시민배당을’주자. 저는‘기본소득’을 다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같은 신자유주의에 의해서 다 빨려 먹혀버린 사회에서는 모두가 열심히 일했으니까 (사회가 보상해야죠). 그런 시민배당에 대한 논의가‘피터반스’6)라고 미국에서도 나오는데. 중산층이 이렇게 몰락한 사회에서는 답이 없다. 그러니까 기본소득은“정말 가난한 사람한테 주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중산층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결국“너무 가난하고 불쌍하고 앞이 캄캄한 사람이니까 돈 준다”이게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이 땅에 물과 공기와 자연을 가진 우리 모두의 권리이고, 어쨌든 태어나면 ‘1’을줘야하는 거지,‘ 0’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 그런 논리로 피터반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저는 그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 문제는 (이제) 청년들이 풀어야 하는 거잖아요. 청년들이 기후변화 문제도 풀어야하고, 청년 배당을 어떻게 계산할까도 경제학적으로 풀고. 20∙30∙40대가 새로운 논리와 계산법, 인터넷과 글로벌 정보를 통해서 해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돈을 일단은 다 줘서, 그들 중 1%만 일을 하면 되거든요? 이건 모든 사람이 다 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 중 1%가 계산을 하고, 10%가 농사를 짓고, 10%가 음악을 만들고, 그러면서 자살도 안 하고, 서로서로 돕다보면 세상이 완전히 바뀔 수 있는 거예요. 그거 외의 대안은 없는 거죠. 이것도 정치권에서는 포퓰리즘처럼 공약 걸고 할 텐데. 그러면 안 돼요. 이런 것일수록 시민사회에서 제대로 실험해야죠.

서강> 선생님께서는“‘권력자가 문제’라고 백날 이야기해봐야… 시민이 지혜로워져야 한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러나 최근 사건과 집회를 보면서‘시민의식은 높은데, 정치는 후진국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많이하곤 합니다. 이런 상황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조한> 권력자라는 게, 검사도 시민이자 권력자잖아요. 그러니까 시민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 검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 될 것 같아요. 모두가 전문가로서의 권력, 시민으로서의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실제로는‘국민국가’라는 차원의 시스템은 일정하게 붕괴를 한 거잖아요. 우리가 정치권만 보면 계속 자기네 정권만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국민 국가 시스템을 일정하게 낙후시킬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동안은 (그 시스템을) 가지고 가야하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개인 시민들도 똑똑하고, 제대로 된 전문가들이 많이 나와 줘야 해요. 그래서‘기본소득’을 주든지 해서 그들이 시민이자, 전문가로서 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일단 (시민에게) 선물을 줘야 한다. 군대 같은 것도 사회에 대한 경험을 전혀 못 하게 했으니까. 6개월 마음대로 여행을 갔다 오라고 500만 원을 주든지. 저는 당연히 배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입시 제도를 바꾸세요”라고 100번 이야기해도 안 하면 “그럼 돈 내놓으세요. 우리를 바보 같이 만든 것에 대해 배상 하세요”라고 청년들이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죠. 청년들이 그걸로 다 광화문에 나간다면 가능한 일이겠죠? 그러니까 시민들이 지혜롭다는 것은 서로 모여야 해요. 문제는 대학원 팀 모임을 해도 잘 모이지도 않잖아요(웃음). 모여서‘창의적 공공지대’를 만들어 보면 그게 얼마나 재미있고, 자기가 훌륭해지는지를 아는데, 그런 것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잘 못하는 거죠).


 

Ⅲ. 공생적 삶을 위한 제안 - 공존공영(共存共榮)7)


 

서강> 한 학회의 키노트 스피치에서 선생님께서는 “투표가 정치적 의사결정이 아닌, 사회적 자기표현 행위가 된다”고 하신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대의’가 되지 않는 세상일 터인데, ‘누군가를 대신하여 무언가를 의논한다’는‘대의’가 가능한 것일까요? 그런 ‘대의’가 불가능하다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할까요?


조한> 지금 ‘박근혜 퇴진’이런 것도 다들 잔머리 굴리고 있는 거잖아요. 권력 장기 집권 하려고. 계속 시민들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줘야죠). 모여서 지속적으로 책 읽고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책을 꼭 읽는다는 게 아니라, 어떤 괜찮은 텍스트를 같이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고, 그 사람들이 (함께) 시위에 나가는 거예요. 그렇게 자기 동료가 있는 사람 이외에는, 사실 다 겁에 질려서 살 수가 없거든요. 이들은 같이 공부하면서 나가고, 같이 밥 먹고, 애도 같이 키우고. 그런 튼튼한 집단이 있을 때 (가능하죠). 얼마나 신뢰도가 높으냐, 신뢰지수, 소통지수 이런 게 바로 그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거든요. 지금까지는 우리가 너무 개별화되어 있으니까 그럴 힘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서강> 결국 모여야 이야기도 듣고, 바뀌고, 이렇게 되는 건가요?

조한> 그런 거죠. 그런데 다 손해 보기 싫고, 그간에 만난 적이 없어서 그게 쉽지가 않아요. ‘우동사’8)라고 청년들이 모여서 70만원으로 살아요. 그 친구들은 같이 사는 게 너무 재밌으니까, 돈 쓸 일도 없고. 돈이 제일 많이 들어가는 게, 커피 값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랬더니 그 중 한 명이 또 커피 가는 기계를 만든 거예요. 그러니까 진짜 70만원이면 너무 재미있게 살고, 애기도 같이 키우고. 밥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밥하면 되는 거고, 청소 좋아하는 사람은 청소하고. 보통은 시장적으로“너 이만큼 했으니까 이만큼 이렇게 해”계산하며 살잖아요? 그런 걸 전혀 안하고 살다 보니까 삶이 완전히 달라져요.

 

서강> 방금 해주신 말씀이랑 연결이 될 것 같은데, 요즘 같이 개개인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정말‘연대’가 가능하냐는 질문도 받았거든요.

조한> 개개인이 중시되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개개인이 자기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연대는 내가 이렇게 접속을 했다가 싫으면 안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확실하게 있어야 되고, 내가 뭘 원하는지를 알아야 되고, 협상될 수 있어야 되는 거죠. 그래서 개인이 중심이 되는, 그야말로 개인의 욕구가 중심이 되는 게 ‘우동사’고.‘ 후기 근대적인 공동체’인 거죠. 옛날식의 공동체랑은 전혀 (달라요). 그래서‘공동체’라는 단어를 쓰지 말고, 이건 차라리‘사회’라든가. ‘마을’인거죠. 공동체라는 말은 조심해야 될 것 같아요. ‘우동사’도 그렇고 별로 공동체가 아니에요. 각자 살아요. 각자‘모여서’사는거죠. 어떤 학생이 자기는 (그 말이) 싫다고. 5명이 있는 집에 사는데, 2명씩 살거든요 한 방에. 자기는 누가 기분이 안 좋으면 (그 사람을 위해) 감정노동을 해야 되니까. 싫다는 거예요. ‘우동사’에서는 5명이기 때문에 카톡으로“요새 누가 무슨 문제로 기분이 안 좋다. 그런데 나는 오늘 야근을 한다든가, 여유가 없다, 누가 혹시 시간이 되냐?”그럼 누군가“내가 볼 수 있다”고 이렇게 share를 하는 거죠. 그래서 공동체가 아니고, 개별적으로 지혜롭게 의논하면서, 여기서 핵심은‘매주 의논하는 자리’죠. 누가“화장실에 머리카락을 안 치운다, 나는 그걸 해야 하는데 내 친구는 안 한다”든가 그러면 계속 토론을 하면서, 그게 정말 걸리는 사람이 버리고 그런 식으로 회의를 하는 거죠.


서강>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자공공>과도 연결해서 설명이 가능할까요?


조한> 그렇죠. 자기가 있어야 자기를 돕잖아요. 자기를 도우려고 보니까 같이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더불어서 같이 살다 보면 나라가 생기는 거죠. public이라는 건 다른 게 아니에요. 그게 국가일수도 있고. ‘국민국가’는 인류의 긴 역사에 길어봤자 5세기? 500년밖에 안 되는 건데. 마치 국가를 가장 영원했던 것처럼 생각하게 한 그 이데올로기는 뭐냐? 그것을 지금 우리가 보는 거잖아요? 국민국가 시대가 이제 저무는 거죠. 한국의 경우에는 식민지 때문에 더욱 더 열정적으로 나라를 원했고. 나라를 위해서 죽겠다고 생각했던 거고요.

책 <자공공> 표지. (또하나의문화 제공)
‘자공공’(自共公)은“스스로 돕고 서로를 도우면서 새로운 공공성을 만들어 가는”것을 뜻한다. 조한혜정 선생은 이 책에서 돈으로만 연결되고, 서로를 미워하는 적대적인 세상과의 결별을 주장하고, 그 대안으로‘창의적 공공 지대’∙‘우정과 환대의 마을살이’를 제안하고 있다.

 

서강> 문화인류학자로서, 선생님께서는‘다양성, 공존’을 말씀해오셨습니다. 왜‘다양성’이 중요한가요?

조한> 인류도 진화하는 시스템이잖아요. 사회도 진화를 하는 거고. 진화의 핵심은‘다양성’이에요. 환경은 항상 바뀌는데, 바뀌었을 때 어떤 다른 게 선택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게 없다. 그러면 그 시스템은 죽는 거죠. 한국의 이 획일성과 입시교육이라는 게 적응력 없는 사회이자, 변화된 상황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을 못 갖게 한 부분인 거예요. 사회가 계속 가려면 그‘가능성’이 계속해서 생겨야 되는 거죠. 그래서 다양성은 정말 중요해요. 그게 하나의 하위문화subculture를 만드는 거죠. 그래서 사회 환경이 바뀌면 옛날의 mainstream이 더 이상 작동을 안 하게 됐을 때, 메인이 아닌 쪽에서‘이렇게 가면 되는 구나’라는 시도를 하고, 그게 (새로운)main이 되는 거예요.

서강> 나중에 메인이 될 수 있는 그 어떤 개체들은 지금은 다 마이너인 거잖아요. 물론 이게 존중이 되어야 다 같이 공존하는 사회가 되겠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고 다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듯한 모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한> 80년대 90년대는 홍대 쪽에 인디∙언더문화가 굉장히 활발했죠. 그게 행복하고 건강한 거예요. 그냥 내버려둘 수 있어야 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내버려 두질 않잖아요. 그 존재 자체로 존중하고, 내버려둬야만 사회가 잘 가는데, 자기와 다른 걸 못 봐서 죽이고 싶다. 이거는 파시스트사회, 적응력이 전혀 없는 사회죠. 그 증오와 미움은 어디서 나오느냐? 자기가 열심히 살면 남 이사 뭘 하든 그게 뭐가 관련이 있겠어요? 그런데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기는 모든 걸 희생하고 공부를 했는데 억울한 거예요. 그래서 미운 거죠. 거기에다가 (사람들이)‘ 겁에 질려있다’면 그 사회는 이미 망한 거죠. 그래서 “‘천천히’, ‘겁에 질리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모여서 같이 놀고, 즐기고, 서로를 고마워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거죠.

서강> 방금 말씀해주신 부분과 연결되는 질문인 것 같은데요. 한 칼럼에서, 그런 문제적인 사회에서 우리 사회가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 변해야 한다”9)고 하셨는데 어떻게 천천히 가는 법을 배우고, 그 길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조한> 이게 굉장히 근본적인 전환이거든요? 천천히, 어중간하게 하면 안 되죠. ‘천천히’라고 이야기한 것은, 광화문에 나갔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빨리 끝장을 내자. 대통령을 몰아내자.”그런 것으로 (지금의 문제
들이)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거죠. 대통령이 하야를 하든, 쫓겨나든 하나의 사건일 뿐이고. 그 뒤에서 (누군가) 정치적으로 훈련이 안 되었음에도, 대통령을 만든 세력들이 있는 거고. 그런 것들을 우리가 다 알아가야 하니까, 천천히 가자고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일종의‘숨을 쉬자’는 거죠. 지금까지는 숨을 안 쉬고 달려왔기 때문에. 서로 듣고, 지금까지는 안 들으면서 왔잖아요. 결론 내리고, 토론 하면“너 결론이 뭔지 빨리 말해”“논지가 뭐야?”그런데 때로는 논지를 이야기 안 하고, 돌아가면서 모두 다 이야기를 하면 가장 좋은 답이 이미 나와 있어요. 급하게 빨리 논지를 이야기하니까,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도 없고. 결론도 이상한 걸로 나오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도 다 신경질이 나서‘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니까 차라리 혼자 앉아서 영화보고, 검색하고. 사실 그런 게 백번 낫잖아요. 사실 (그런 시간이) 전혀 아까운 시간이 아닌데, 대부분은 시간 아까우니까“빨리 컨펌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합시다.” 이런 식으로 굉장히 도구적인 지식을 빨리 내놓으라고 재촉하면서 아무것도 못 하는 거잖아요? 의논을 하면서 가야하는데, 그걸 생략한 이 토건국가의 모습에서 탈피를 해야 되는 거죠. 그리고‘즐겁게’가자는 것은 오래 가려면 분노와, 이상한 소문“애를 낳았다”느니 이런 가십들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 식으로 가면 안 된다는 거죠. 우리끼리 즐겁게 토론하면서 시대를 읽어가면서 가자는 거죠.

서강> 선생님께서는 페미니스트로서도‘성장’보다‘돌봄’에 강조점을 두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사회가 돌봄의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요?

조한> 이 ‘성장, 돌봄’은 좋은 질문인데요. 끊임없이 경제가 성장하고, 내가 성장한다는 것은 근대 신화죠. 지금은 그 근대가 몰락한지 꽤 오래 된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지속가능한 삶을 살 거냐? 내가 죽지 않고, 미치지 않고, 좀비가 되지 않고 살 곳은, 나를 자살하지 않게 만드는‘주변의 사람들’뿐이라는 거죠. 내‘비빌 언덕’이 어디냐? 성장이 아니고 지속가능성. 나를 돌봐주는, 그리고 내가 돌보는, 그 관계망. 그게 없으면 살 수가 없다는 거거든요. 결국에 인간사회에 비빌 언덕이 있느냐, 그게 핵심이죠. 그런‘환대, 비빌 언덕’이 없어졌기 때문에 지금 사람들이 광화문에 나가는 거고요.

서강> 요즘 저희에게 있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화두입니다. 노동현장에서, 집회현장에서, 연구공간에서 과연 올바르게 사는 삶이란 어떤 의미인지 선생님의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조한> 환대의 공간을 찾고, 청년들이 그걸 만들어야 되는 거죠. 우리 <또 하나의 문화>에서는 모임 하면서 텃밭 가꾸는 팀이 있고, 여성들 게스트하우스 하는 친구가 있고. 이렇게 느슨하게, 여차하면 공기 좋은데 가서 집단 이주를 할 수도 있고, 영화도 같이 보고 그런 소모임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 식의 모임들을 기웃거리다가 (참여하거나), 청년들이 원하는 것들도 만들기도 하고, ‘우동사’같은 데에도 기웃거리고. 그래서 저는 학생들한테“너희가 계속 두리번거리고 기웃거려야 한다. 좋은 데를 만나면 거기 계속 붙어 있어라”고 하죠. 우리가‘곁불을 쬔다’고 하는데 일정하게 곁불을 쬐고, 남의 신세를 지고 그래야 하는 건데. 지금은 신세를 지면 안 되고, 돈도 그때 딱 계산해야 되고 이러니까. 친구도 못 만들고, 곁불도 못 쬐고 그러는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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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조한혜정,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 한겨레, 2016.11.22. (편집자주).
주2)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덮인 것과 같이 온통 어둡고 혼란스럽다. (편집자주).
주3) [386세대]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를 일컫는 말. ‘386’이란 용어는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한 386컴퓨터에서 딴 것으로, ‘3’은 1990년대 당시 30대를, ‘8’은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닌 1980년대 학번을, ‘6’은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을 뜻한다. (출처: 두산백과) (편집자주).
주4) 옳고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된다면 몸이 꺾이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편집자주).

주5)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페미니즘,마르크스주의,반노동의 정치, 그리고 탈노동의 상상)>, 케이시 윅스 저, 제현주 역, 동녘, 2016.09. (편집자주).
주6) <우리의 당연한 권리, 시민배당 (기본소득으로 위기의 중산층을 구하다)>, 피터 반스 저, 하승수 편, 위대선 역, 갈마바람, 2016.07. (편집자주).
주7) 함께 살고 함께 번영함. 함께 잘 살아감. (편집자주).
주8)‘ 우동사’는‘우리동네사람들’의 줄임말로 2011년 여섯 명의 청년들이 실험한 주거실험 공동체이다. 현재 인원이 늘어, 인천 검암동에서 30여명의 친구들이‘우동사’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고 있다. (출처: 웹진 <지지봄봄> 19호,‘ 일상이 예술’인 공동체, <우리동네사람들>, 김진선) (편집자주).
주9) 조한혜정,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 한겨레, 2016.11.22.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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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2.14 14:21

 

KBS <유머1번지>, 변방의 북소리, 회장님 우리 회장님, 영구야 영구야, 탱자 가라사대, KBS <개그콘서트> 그리고 tvN <코미디빅리그>까지. 여기 한 시대의 정치풍자웃음을 책임져왔던 이가 있다. 직접 만나보니 그의 직업만큼이나 유쾌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분이었다.

웃음은 물과 공기다.” 돌아보니 그는, 그의 웃음 철학처럼, 우리 삶에 물과 공기를 선물하고 있었다. ‘웃을 일이 없는 세상에서 웃을 일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퍽퍽한 국민들 삶에 한 평생 웃음을 선물해 온 장덕균 코미디 작가를 만나, 그가 전하는 웃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 및 편집 신윤희

 

 

. 웃음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콘텐츠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은 무수히 많습니다. (게다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중 웃음이라는 방법을 선택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선생님께서 웃음에 매료되었던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장덕균(이하 장)> 제가 어렸을 때, 70년대 우리나라의 기본적 삶은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때는 사실 풍족하지 않은 시대였고. 모든 면에서 여유 있는 삶은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에 제가 행복했던 건, 코미디 프로를 보는 것이었어요. 코미디를 볼 때만큼은 저녁 반찬이 무엇이었든,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무엇이었든 상관없었고. 단칸방에 네 식구가 다 같이 살아도 상관이 없었어요. ‘웃음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삶에 유일한, 절대적인 행복감을 주는 존재였던 것 같아요. 그 어린 나이에 TV속 배삼룡 선배님이라든가, 코미디언들의 웃음을 보면서 저기서 일을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생각을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80년대 <유머1번지>라는 프로그램에서, 그 시절 국민을 가장 재밌게 해주는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웃음이라는 것이 제 삶의 직업적인 것이 됐죠.

서강> 코미디 혹은 웃음이 가지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저는 아마 코미디를 안했으면 삶에 의미가 없었을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상고를 진학했었어요. 우리 때는 실업계 학교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급이 되는 상고들은 졸업할 때 담임선생님 싸인 하나로 은행이나, 무역회사 같은 곳에 취업이 되고 그랬어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 소원이 상고 가서 은행 취직하면 얼마나 좋니?’ 그래서 일단 진학을 했어요. 그랬는데 갑자기 이게 내 길이 맞는 길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 판단으로 고등학교 등록을 안 한 거예요. 제가 스스로 인생을 바꾼 사람인거죠. 상고 갔으면 은행권에 취직이 되어서 어떤 삶을 살았겠지만, 전혀 다른 길을 온 거잖아요. 바꾸고 나서 앞으로 너 뭐할 거야?’ 고민을 하다 코미디 작가가 되어야겠다.’ 그래서 그 어린 나이에 코미디 원고를 써서, 아무 신분도 없이 MBC라는 방송국을 찾아가서 당시 피디한테 원고를 보여주고, 작가로 데뷔했어요. (그런 일이) 전무한 일인데. 아무튼 제겐 절대적인 힘을 보여 준거죠. 코미디가. 그때 이쪽으로 길을 바꾸면서 생각한 게,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그 다음에 유명해지고 싶다근데 지금 두 가지 다 이뤘어요. (웃음)

 

 

 

사진2 | <코미디빅리그> 포스터. (tvN 제공)

장덕균 작가가 현재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작품은 <코미디빅리그>이다. 그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자주 따라 붙는다. 17살이었던 장덕균 작가는 (그의 표현대로) 무모하리만치 직접 쓴 원고를 들고 MBC로 찾아갔다가 <청춘만세>라는 프로그램으로 데뷔한다. 후에 KBS <유머1번지>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으로 우리나라 최초로정치풍자 코미디를 시작한다. 정치풍자집 <YS는 못말려> 또한 최초의정치풍자 책이었다. 편집자주.

 

서강> 코미디/예능은 가장 트렌디하고 창의적인 분야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분야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일하셨다는 건 대단한 일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나름대로 유머감각(?)이나 아이디어를 얻으시는 특별한 방법이 있으시다면?

> 공부해야죠. 개그에 대한 아이디어, 새로운 표현들을 쉬지 않고 계속 창출하려 노력했어요. 코미디를 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정해진 시간에만 일하는 게 아니고, 일과 후에 친구랑 술을 먹든, 잠자다가 꿈을 꾸든 항상 웃음이라는 화두를 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뭔가 저기에 아이디어가 없을까. 저는 볼펜하고 메모지가 제 주머니에 꼭 있었어요. 영화를 보러 가서도. 영화관 실내가 어둡잖아요. 그래서 제대로 글씨가 안 써져도, 영화 보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일단 메모를 하는 거예요. 그런 작은 메모지를 모아놓은 것들이 나중에 보면 포대자루로 2,3포대 있고 그랬어요. 그 메모에서 <YS는 못말려> 책이, 또 수많은 코미디 아이디어들이 나왔던 것 같아요.

서강> 작가로서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이신가요?

> 웃음이라는 게 어느 정도 절제된 선을 잘 지켜가면서 시청자들을 웃겨야 된다.’ 두 번째로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담아야 된다.’ 이 두 가지가 제대로 전달되었을 때 희열이 있죠. 우리가 공개방송 녹화를 하지만, 그 현장에서 그분들이 많이 웃어줬을 때, 그건 뭐 진짜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이거든요. 그리고 또 방송이 나간 후에, 버스를 타고 출근할 때 사람들이 제가 만든 프로그램을 이야기를 할 때가 있어요. (웃음) 지금도 언론매체에 실리는 거보다는 전철이나 길거리에서 내가 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학생들이 이야기할 때, 따라하고 그러는 걸 봤을 때는, 정말 아 정말 이 맛에 하는 구나이런 생각을 (하죠).

서강> 작가로서 겪었던 슬럼프도 있으셨나요? 현재 하고 계시는 웃음에 대한 고민이 있으시다면?

> 이런 표현을 가끔 쓰는데 입맛이 없어서라는 표현은 있을 수 없어요. 다 즐겁게 먹으면 되는 거고. 제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좋아해요. 삶에 대해 누구나 고통이 있겠죠. 우리가 표면으로만 보면 저 사람은 아무 고민이 없다그렇더라도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가) 나보다 더한 고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걸 내재적으로 얼마나 잘 소화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장덕균씨는 얼마나 유복한 가정에서 살아서 맨날 재밌는 일만 하고 살아왔느냐고.” 사실 제가 실제로 이런 삶을 살았다고 말하면 놀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정말 저만 어렵게 산 건 아니겠지만, 네 식구가 단칸방에서 대학 초년생까지 살았으니까.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셨어요. 술만 마시면 집 다 때려 부수고. 어머니는 애들 교육시키려고 남의 집 가서 일도 하고 공장 다니면서. 그렇게 살았어요. 거기서 만약에 제가 내 환경은 왜 이럴까?’ 그랬으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못 줬겠죠. 이런 표현이 있더라고요. “이렇게 태어난 것은 네 잘못이 아닌데, 이렇게 사는 건 네 잘못일 수 있다.”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죠. 누구나 일을 하다 보면 자기 일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 때가 있겠죠. 그런데 거기에 빠져 있으면 결국엔 자기 손해가 아닌가. 더군다나 제가 우리 개그맨들한테도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즐겁게 일을 해야 된다. (괴로워하면서) 시청자에게 우리 것 보고 웃으세요.’ 하는 건 옳지 않다고 하면서, 최대한 저 자신뿐만 아니라 저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하고 항상 긍정적으로 즐겁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서강> 요즘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면, 전통 코미디보다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더 많은 추세인 것 같습니다. 코미디의 위기라고 볼 수 있을까요? ‘코미디의 위기라는 담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저는 몇 년 전부터 이걸 전혀 다른 시각으로 봤어요. (코미디) 편수가 줄었을 뿐이지, (리얼 버라이어티가) 던져놓은 상황에서 출연자들이 어떻게 대처하는가? ‘저들은 우스꽝스러운 짓을 할 것이다라는 것을 구성상에 넣는 게 리얼인데, 어떻게 보면 코미디라는 장르는 좀 줄었지만, 사실 코미디라는 원천소스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늘었다고 봐야죠. 어떻게 보면 버라이어티가 다 코미디화 되어서 그 숫자는 줄었을 수 있지만, 사실은 내제되어 있는 그 장르적 특성은 엄청 확대된 게 아닌가. 그래서 우리 코미디에서 활동하던 개그맨들이 리얼 버라이어티로 다 진출했잖아요. <12>김준호라든지, <무한도전>에 아직 정식 멤버는 아니더라도 오리지널 멤버로 활동하는 양세형이라든가 많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위기라 볼 필요는 없고. 맨날 위기라고만 보면, 숨통이 막히는 건데. 어떻게 보면 오히려 활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서강> 코미디나, 예능과 같은 웃음을 소재로 다루는 콘텐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또 이들의 사회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 우리가 어떤 조직에 있든 맡은 파트가 있잖습니까? 그걸 잘해줬을 때 그 조직이 융성해지고 발전할 수 있듯이 웃음이라는 부분도, 방송에 교양도 있고 다큐도 있고 다 있지만 코미디는 웃음을 주는, 즐거움을 주는 부분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서양 속담인데 얼굴이 안주다라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마찬가지로 예능에 나오는 사람들은, 술을 먹으며 친구와 유쾌한 이야기를 나누듯이 시청자들에게 안주가 되는, 술 맛나게 하는 그런 의미로 존재해야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웃을 일이 없는 세상

 

서강> 요즘 20,30대가 가장 많이 듣고, 또 하는 말이 헬조선이라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삶이 고단할수록 웃을 일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작금의 현실에서 웃음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직업이 코미디 작가라 웃음을 매개로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런 제 자신도 웃음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고통이 많이 따릅니다. 물론 즐겁게 일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 이외에도, 휴식을 취하거나, 개인적인 일을 볼 때, 또 사람들과 교류를 할 때도 역시 제가 쫓는 것은 웃음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웃음이라는 것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서 얻어지는 웃음 외에도, 일상생활에서 웃는 웃음, 결국 물과 공기와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만약에 웃음이 없다면 건조한 사막 같은 환경에서만 살아가야겠죠. 폭소를 터트리며 크게 웃는 것도 웃음이지만, 마음속의 어떤 조금의 기쁨이 일어나서 엷은 미소를 짓는 것도 웃음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 처해 있는 환경이 힘들어, 큰 폭소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삶에서 미소라도 지을 수 있는 그런 삶의 여유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 그러면 한 없이 건조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갇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서강> 웃음에 대한 형태가 다양하겠지만, 웃을 일이 없다고 할 때 흔히 정치를 많이 생각할 수 있잖아요. 정치가 국민에게 어려움을 준다. 이런 식으로요. 그런 의미에서 정치풍자가 특히 더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최초로, 그리고 꽤 다양한 정치 풍자 유머집을 발간하셨습니다. 정치 패러디(풍자 패러디)의 의미와 역할, 미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물론 이런 생각을 국민들이 다 하겠죠. ‘경제라든가 이런 부분이 어려워졌을 때, 팍팍한 삶의 숨통을 좀 트이게 하려면 위정자라든가, 정치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쟁(政爭)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삶을 개선시켜야 (되는 것이 아닌가).’ 말로만 일자리 창출이고 어쩌고 그러는 거는. 그냥 말에 그치고 있잖아요. 실제로 젊은 사람들이라든가, 또 나이 드신 분들의 재취업이라든가 이런 부분에 있어서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제가 <YS는 못말려> 책을 쓴 게 벌써 23년 전입니다. 그 당시에 이런 바람은 있었어요. 정치인들도 여유 있는 조크도 좀 하면서. 여야가 대치하고 싸우더라도. 좀 더 유머러스한 표현, 상대에 대한 배려를 (하면 좋지 않을까). 23년이 지난 작금의 현실을 볼 때, 아직도 여·야는 시대가 어느 시댄데, 세상이 이렇게 바뀐 상황에서도 이전보다 나아지지 않은 그런 대치와 막말을 서로 주고받고 있고. 사실 이런 모습들이 삶이 힘든 국민들을 더 짜증나게 할 수 있죠. 제가 이런 책들을 내면서 바람이 있었던 것은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었으면하는 바람이었죠. 항상 이야기하지만, 꼭 폭소만이 아니라. 그런데 지금 정치는 오히려 폭소를 주잖아요. 어이없는 웃음. ‘저 사람들이 정말 투표로 뽑힌 국회의원들인가?’ 생각이 드는, 수준 이하의 그런 것들을 하는 부분이 많은데. 그런 것들이 우리 국민들의 삶을 더 짜증나게 하는 것이겠죠. 우리도 경제가 컸다고는 하는데. 정치적인, 혹은 어떤 정치인들의 행태는 아직도 국민들 눈에 미흡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3 | <YS는 못말려> 표지. (미래미디어 제공)

이 책의 서문에서 장덕균 작가는 다수 대중의 삶에 대한 욕망과 (정치권력에 의한) 사회·정치적 욕망이 위배될 때, 하나의 욕구불만으로서 정치 패러디가 생산된다.”고 했다. 편집자주.

 

서강> 정치풍자 유머집을 으로 발간하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 대학교 1학년 때 친구들하고 술을 한 잔 먹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최고 권력층인 대통령을 가지고 정치풍자집을 내면 왠지 느낌이, 대박이 터질 것 같다.’ 생각하며 저 혼자 메모를 했어요. ‘나중에 써야지.’ 그런데 다음 날 술이 깨니까 그때가 5공화국, 전두환 대통령 집권 시절인데, ‘지금 내가 제목을 재미있게 지어서 가령 두환이는 골 때려이런 제목으로 책을 내면, 어디 끌려갔다가 두드려 맞고, 경부선 철로에 변사체로 발견되지 않았을까.’ 그때는 그런 의문의 죽음들이 많은 때였잖아요. 그래서 이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고, 취임 연설을 하시더라고요. “위대한 문민시대에~” 저는 그 위대한 문민시대라는 말에 이제 됐다. 적어도 이런 책을 내도 누가 잡아가고 그러진 않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책을 출간하겠다니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다 말리더라고요. ‘, 말이 그렇지 너 큰일 난다.’ 그래도 문민시대, 국민을 믿고. ‘국민들이 나를 보호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출간을 했죠. 그런데 기대했던 것에 10만 배 이상의 반향이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책이 나온 게 모든 일간지 1면 톱 기사였고, KBS 9시 뉴스에도, 외신에도 보도됐어요. 아마 당시에 국민들은 그 책을 보면서, ‘이야, 진짜 민주화가 됐구나! 말로만 민주화가 아니라. 이제는 이런 책을 쓴 작가가 안 잡혀가는구나.’ 그런 실증을 제가 보여준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강> 혹시 정치풍자를 하는 과정에서 외압같은 것을 겪기도 하셨나요?

> 없을 수가 없겠죠. 사실 권력자들의 주변과 그 밑에는 그들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항상 있을 거 아닙니까? 정치 풍자 내용이 나갔을 때, ‘권력자들이 얼마나 안 좋아할까그런 눈치를 보겠죠. 권력 당사자께서는 시대가 바뀌었으니, 내가 정치 풍자 대상이 되어도 좋다.’ 그렇게 말해도. 그 밑에 사람들은 아이고 또 그분 마음이 불편하시면 안 되는데하는 거죠. 가령 제가 많은 TV매체에서 그 시대의 정치 풍자를 할 때, TV 관리 책임자들이 넌지시 자기들 이야기는 안 다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경우나. 사실은 거론되는 거 자체를 싫어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5공화국때는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TV프로그램인데, 저희가 그 시대를 대놓고는 못 표현하니까 제1공화국 이승만 대통령 때 이야기를 빗대서, 그 시대 설정을 해놓고 요즘 정치를 풍자하려고 했었죠. 녹화 전날 리허설 리딩까지 다 하고, 녹화 당일 날 스튜디오로 갔더니 그 세트를 없애버렸더라고요. (웃음) 우리가 세트 뜯었다고 하는데, 밤새 세워놓은 세트를요. 결국은 마지막 단계에서 방송사 고위층이 이거 좀 안 했으면 좋겠다뭐 이런 것 때문에 (웃음) 세트가 없어졌더라고요. 녹화하지 말라는 이야기죠. 그래서 방송을 아예 못 냈던 적도 있었고. YS 정권 때도 당시에 YS의 차남 되는 김현철씨 문제가 언론에 불거졌을 때에요. 그런 문제를 풍자하는 걸 했는데. 당시에 사극 <용의 눈물>이라는 드라마가 히트를 치고 있어서. 고전 왕실을 무대로 옮겨서, 그곳을 무대로 현실 정치를 풍자해보자. 그래서 17분인가 녹화를 했는데, 방송은 고작 2분 나왔어요. (웃음) 위에 사람들이 편집 전에 녹화된 테이프를 보고 야 이거 빼라, 저거 빼라하고 나니까 2분 남더라 이거죠. (웃음) 그래서 제 친구는 야 너 새 코너 한다고 해서 내가 보려고 했는데, 화장실 갔다 온 사이에 끝났더라.” (웃음) 2분밖에 안 나갔으니까 화장실 갔다 오니 끝난 거죠. 그러다 결국에는 그 프로그램 자체가 없어졌어요. 그런 어려움들이 많았죠.

서강> 정치 풍자 패러디 코미디를 만드실 때, ‘풍자 유머(양보할 수 없는) 선생님만의 원칙이나 비결이 있으셨나요?

> 어떤 장르건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정치를 풍자한다는 것은 내가 어느 한 쪽의 입장을 대변하고 그런 것은 아니에요. 철저하게 국민적 시각에서. 국민이라는 게 생각이 다 다를 순 있겠죠. 그런데 중요한 건. 대다수의 국민이 가진 보편적 정서, 국민들이 정치를, 정치인들의 행태를 바라보는 바람, 그런 기준에서 씁니다. 그러니까 양쪽을 다 알아야죠. 한쪽에 편향되지 않게. , 풍자라는 게 장황하게 앉혀놓고 설명하면, 그건 풍자적 요소가 결여된 거잖아요. 풍자는 임팩트 있는 포인트를 잘 잡아서 던졌을 때 시청자들이 , 이거는 뭘 이야기하려는 거구나그리고 나도 이런 것에 대한 문제점을 생각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잘 집었다.’ (생각하게끔 하는 거죠). 누구나 사실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답답함에서 풍자를 접근하는 거거든요. 작가도 그렇고. 그것을 보고 공감하는 독자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고. 그런 포인트를 제대로 집어서 압축성 있게 전달해주는 것. 제가 하는 일은 코미디니까. 거기에 거칠고 상스럽지 않으면서 피식혹은 큰 웃음 터트리면, ‘이야 이거 제대로 집었다.’ 이런 걸 작가로서 창출해냈을 때 혹은 독자나 시청자들의 반응이 왔을 때, 희열을 느끼며 정치풍자를 하는 것이거든요. 물론 그 문제 저변에는 우리 정치가 조금 더 나아져야겠다. 국민들을 피곤하게 하지 않아야겠다.’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있죠.

서강> 요즘 정치 패러디가 많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치 풍자가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 TV라든가 어떤 매체로만 보면 옛날보다 사라진 게 사실인데, 사실은 요즘에 다른 매체들이 많이 생겼잖아요. 인터넷 포탈이라든가, SNS라든가 이런 것들이. 그래서 사실은 패러디가 많이 사라진 게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홍수를 이루고 있다고 봐야 해요. 하나로 집약되지 않은 것뿐이지. 지금은 풍자 전문 작가뿐만이 아니라, 일반인 중에도 대단한 풍자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재야의 많은 분들이 있어요. 옛날에는 사실 그들이 표출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냥 묻혀만 있었잖아요. 지금은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전문작가가 아니어도 그것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상황을)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기존 단일 매체 ‘TV’라든지 이런 곳에서 정치드라마라든가, 코미디들이 없어진 상황이 됐는데. 이건 뭐 결국은 정책 당국자의 의지죠. 그 사람이 이런 게 우리 시대에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느 시절엔 방송국 사장이 풍자를 왜 안 하냐며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던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풍자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설사 대통령이 나를 풍자삼아서 해라고 말했어도 다 필요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걸 실제로 표출할 수 있는, 매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보장해주지 않으면 사실은 어렵죠. 현실이 그래요.

 

. ‘웃음이라는 이름의 가능성, 혹은 대안

 

서강> 웃을 일이 없는 심각한 사회현실에서, 웃음이라는 이름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웃음이 가능성이나 대안이 될 수 있다면 그건 어떤 형태일까요?

> 사실 저는 웃을 일이 없어이건 결국 나아질 수 있는 방향이 없다고 생각해요. 무슨 이야기냐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웃으려고 노력해야 되는 거예요. 그 웃음 속에서 행복감이라는 걸 (느껴야 되죠). 폭소는 아니어도 옅은 미소라도 지을 수 있는 그런 것들은 남을 통해서, 재미있는 친구를 통해서, 저 코믹한 웹툰을 통해서라든가. 그리고 내 자신도 남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거든요. 내가 남을 도와주면, 그 사람이 좋아서 미소 지으면, 내가 그 사람에게 웃음을 준 것이고. 사실은 그런 운동을 범사회적으로는 못하더라도 개인적인 노력은 하면서 살아가야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에요.

서강> 이렇게 웃을 일이 없다는힘든 시기일수록 웃음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역할은 특히 더 무겁고 커지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웃음을 생산하는 이들의 사회적 역할이나 의무는 무엇인가요?

> 제가 외국에 나가보니까 현지에 있는 유학생들한테 저를 소개하면 코미디빅리그 너무 좋아합니다라면서 실시간 인터넷 채널을 연결해서 다 본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코미디빅리그> 출연자들이 지방 공연만 가도 전석이 다 매진되는데. ‘이민 가서 사시는 분들을 우리가 한번 찾아가보자.’ 그러려면 많은 경비들이 필요할 거잖아요. 그런 제 꿈을 이야기했더니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들이 도움의 길을 만들 테니 한번 추진해보자(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계획을 실제로 외국에 가서 하려고 하는데 보러 오실 거예요?’하면 다들 표가 매진되고, 난리가 날 것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웃음) 사실 상업적인 공연을 하려면 여러 번 공연을 하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 의미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웃음을 만드는 이들의 의무라고 생각을 하고, 역할이라 생각해요. 저희도 순도 높은좋은 웃음을 드리려고 끊임없이 일주일을 고민하고 하니까. 이것을 더 적극적으로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뭔가 찾아가는 서비스를, 웃음을 가지고 해보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서강> 순도 높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