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12. 23. 09:00

김 도 헌 (대중음악평론가, 웹진 IZM 편집장)

 

 

출처: 스브스뉴스

 

  ‘힙(Hip)’에 대한 정의부터 내릴 필요가 있겠다. 원래 ‘힙하다’, ‘힙스터’는 유행과 거리가 멀다. 영미권에서의 ‘힙’한 무언가는 개인의 기호와 정체성을 중심에 두고 트렌드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에 가깝다. 따라서 ‘힙한 음악’의 마니아들 역시 원래대로라면 대중음악 주류를 지배하는 팝스타들의 음악 대신 소규모 공연장에서 자본의 개입을 최소화한 상태로 노래하는 인디 아티스트들을 따르게 된다.


  한국에서의 ‘힙’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언제부터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힙하다’는 ‘핫하다’ 또는 ‘트렌디하다’와 비슷하게 통용된다. 여기저기서 많이 쓰니 익숙해졌지만 ‘요즘 힙한’이라는 단어는 아직까지 어색하다. 가장 거리가 멀어야 할 두 개념이 같은 뜻으로 묶인 격이다. 그런데 음악에 있어서 ‘힙’은 어느 정도 근거 있게 활용된다. 유튜브나 스트리밍 서비스에 ‘힙한 음악’을 검색했을 때 케이팝 아티스트,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완전한 언더그라운드, 반골, 인디 음악만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힙’이라는 단어가 적어도 음악에서는 익숙한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싶어 하는 음악 소비자들의 기호를 반영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2020년 한 해 록, 힙합, 알앤비, 발라드, 댄스 등 다양한 장르에서 수많은 곡들이 조명을 받았고 그중 주류 미디어의 수혜를 입거나 소문을 통해 인지도를 쌓은 곡들이 범대중적으로 ‘힙한 음악’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았다. 멜론, 지니, 벅스 등 오랜 시간 대중의 선호를 좌지우지해왔던 스트리밍 서비스의 주류 차트들이 ‘음원 사재기’ 논란으로 개편되고 유튜브와 SNS가 빠르게 감상의 주도권을 차지하며 음악에서의 ‘대중’은 ‘수많은 취향의 집합체’로 재구성되었다.

 

  그렇기에 ‘올해 인기 있었던 음악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겠다. 하나는 TV조선 <미스터트롯>, MBC <놀면 뭐하니?> 같은 미디어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인기를 얻은 트로트 가수들과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의 '다시 여기 바닷가’, 환불원정대의 ‘돈 터치 미(Don’t Touch Me)’ 등이다. 둘째로는 방탄소년단, 여자친구, NCT, 트와이스 등 케이팝 그룹들이다. 세 번째가 바로 ‘힙’에 해당하는 인기곡들이다. 전세대, 전 사회 계층이 즐기진 않았으나 각자의 영역에서 확고한 지지층을 끌어모아 2020년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음악이다. 그 기반에는 유튜브 등 뉴미디어 상의 선-유행이 있었고, 이를 캐치하여 적극적으로 확장 혹은 도입의 과정을 거친 노래들이 ‘힙’을 넘어 ‘주류’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출처: 블루바이닐

  백예린은 국내의 힙스터들이 고대하던 새로운 유형의 아이돌 스타다. JYP엔터테인먼트에서 오디션 프로그램 <KPOP스타> 출신의 박지민과 함께 알앤비 듀오 ‘피프틴엔드(15&)’로 활동했던 그는 2015년 솔로 데뷔 EP <프랭크(Frank)>를 통해 더 넓은 음악 세계를 꿈꿨다. 언젠가부터 TV 음악 프로그램이 아니라 국내 각지의 인디 록 페스티벌에 자주 얼굴을 비치던 그는 2017년 난지한강공원에서 자신의 미공개곡 ‘스퀘어(Square)’를 불렀는데 이것이 백예린 신드롬의 시작이었다. 비바람이 치는 페스티벌 현장과 달리 해맑은 표정으로 자유로이 노래 부르는 이 영상은 1,2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오래도록 정식 발매되지 않은 ‘비공식 히트곡’의 지위를 누렸다.

 

  자신감을 얻은 백예린은 2019년 JYP에서의 마지막 작품 <아워 러브 이즈 그레잇(Our Love Is Great)>을 발표하며 완벽한 음악 노선 전환을 선언한다. 밴드 베이스의 팝 록 보컬로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지켜줄게’, ‘내가 날 모르는 것처럼’을 소화하는 모습에 ‘피프틴엔드’ 시절부터 그를 기억한 팬들부터 인디 록, 알앤비를 사랑하는 ‘힙스터' 팬층까지 환호를 보냈다. 결정타는 2019년의 마지막 달 발표한 첫 정규 앨범 <에브리 레터 아이 센트 유(Every Letter I Sent You.)>였다. 지난 시간 백예린이 차곡차곡  쌓아둔 곡들을 모아둔 이 앨범에는 앞서 언급한 ‘스퀘어’가 정식 수록되어 있었다. ‘스퀘어’는 한국 스트리밍 차트 최초로 1위에 오른 영어 가사 곡이 됐고, 그 열풍은 2020년 초반부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출처: Youtube 온스테이지ONSTAGE

<놀면 뭐하니?>의 프로젝트 그룹 ‘환불원정대’ 에피소드를 통해 이름을 알린 박문치(본명 박보민)는 꾸준히 생명력을 유지하는 노스탤지어 흐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1996년생 박문치는 그가 태어나기 전 유행했던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중반까지의 댄스 음악을 선보이는 프로듀서다. 민수, 죠지 등 신예 싱어송라이터들의 곡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복고의 숨결을 불어넣은 그는 작년 인디 뮤지션 달라, 준구, 힙합 아티스트 기린이 참여한 ‘널 좋아하고 있어’로 주목받기 시작해, 올해 예능 프로그램 출연과 더불어 ‘박문치 유니버스’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박문치의 인기에는 2010년대 말부터 대중음악계의 주요한 축으로 자리한 ‘뉴트로’가 있다. 1970년대~8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AOR(Adult Oriented Rock) 스타일의 풍부한 스트링, 긍정적인 메시지와 선율, 고급스러운 코드 진행 음악이 다시 돌아오며 김현철, 윤수일, 장필순, 김완선 등 과거의 이름이 현재로 돌아왔는데 이것이 ‘시티팝 리바이벌’이다. 1990년대 음악 방송을 24시간 송출하는 방송사 유튜브 채널은 팬들에게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정겨운 별명을 얻었는데, 그 속에서 사라진 노래 ‘리베카’를 부른 무명 가수 양준일이 발굴되어 올해 초 복고의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이 레트로 흐름을 명민하게 포착한 프로그램이 <놀면 뭐하니>로, ‘깡’의 우스꽝스러움이 놀이 문화로 재발견된 가수 비와 과거의 스타 이효리를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로 엮어 1990년대 가요풍의 ‘다시 여기 바닷가’를 올해 여름 최고의 히트곡으로 만들었다. 후속 프로젝트 ‘환불원정대’ 역시 과거의 스타 이효리와 엄정화를 활용한 레트로 메이킹이 주요 문법이다.

 

출처: Youtube Imagine your Korea

 

  마지막으로 ‘범 내려온다’의 주인공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를 빼놓을 수 없다. 올해 5월 정규 앨범 <수궁가>를 발표한 이날치는 음악 감독 장영규를 주축으로 젊은 다섯 명의 소리꾼과 드러머 이철희, 베이스 정중엽이 2019년 결성한 팀이다. 네이버의 라이브 시리즈 ‘온스테이지 2.0’에 출연해 ‘범 내려온다’를 부른 영상이 조회수 800만 회 이상을 기록하며 주목을 끌더니, 한국관광공사의 유튜브 광고 시리즈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가 총 조회수 3억 회, 시쳇말로 ‘대박’이 나며 2020년 최고의 주목받는 곡에 등극했다.

 

  이날치의 감독 장영규는 이미 2015년 소리꾼 이희문, 추다혜, 신승태와 함께 밴드 씽씽(SsingSsing)을 꾸려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바 있다. 2016년부터 유럽 및 해외 지역에서 활발한 공연을 펼치던 씽씽은 전통 민요를 디스코와 펑크(Funk)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팀으로, 2017년 미 공영 라디오 채널 NPR의 인기 라이브 포맷 ‘엔피알 뮤직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NPR Music TIny Desk Concert)’에 한국인 최초로 출연하며 음악 팬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이날치는 씽씽 해체 이후 2018년부터 장영규가 세심하게 준비해온 프로젝트였으며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화려한 퍼포먼스는 흥행에 날개를 달았다. ‘범 내려온다’가 ‘힙’한 음악으로 통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들이 판소리 ‘수궁가’를 바탕으로 활동하면서도 국악의 요소를 과감히 내려놓은 채 춤추기 좋은 리듬과 댄스 음악을 고수하여 접근성을 높인 데 있다. 두 번째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활약이다. 전자를 통해 이날치는 전통문화에 대한 세간의 고정관념과 접근 난이도를 낮추는 데 성공했지만 후자에서 보이듯 그 성공이 음악 자체의 힘보다 영상 및 퍼포먼스에 집중되어있다는 불안 요소도 안고 있다. 물론 올해는 이날치와 더불어 씽씽 이후 이희문의 ‘오방신과’, 추다혜의 ‘추다혜차지스’ 등 다양한 국악 기반 밴드들이 양질의 앨범을 발표한 해였으나, 이것이 단발성 히트로 잊히지 않기 위해서는 꾸준한 활동이 요구된다.

 

  21세기 들어 한국 가요계는 주류 미디어, 거대 기획사의 자본과 영향력 없이 대중적 히트를 만들어내기 어려운 시장이 됐다.  2010년대 중반까지 ‘인기곡’은 구매력 강한 팬덤 기반의 케이팝 그룹들이 주도하거나 인기 가수들의 차지였다. 하지만 유튜브의 영향력 증대 및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보편화는 주류에 반감을 갖고 있던 불특정 다수를 일정하게 묶어 ‘힙’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영향력 집단으로 부상시켰다. 2020년의 백예린, 박문치, 이날치는 몇 년 전부터 산발적으로 보였던 그 조짐이 커다랗게 발현하여 ‘올해의 인기곡’으로 자리 잡은 경우다.

 

  다채로워지는 음악계의 모습은 분명 긍정적이다. 그러나 앞서 이날치의 경우에도 언급한 바 있듯, ‘힙’의 주류화는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면 흥미만이 남아 순간의 유행, 트렌디한 어떤 것으로 잊힐 위험을 내포한다. 고유의 개성이 규격화되었을 때 끊임없이 새로운 대안, 반골의 ‘힙’이 솟아 그 자리를 대체하는 환경이 건강한 토양이다. ‘힙’한 발걸음을 꿈꾸는 이들의 롱런을 결정짓는 것은 재미가 아니다. 2020년 한 해의 히트에 멈추는 대신, 2020년대를 돌아봤을 때도 의미가 있을 장기적 흐름을 기획할 거시적 시각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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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연과사람 2021.02.26 11:58  Addr  Edit/Del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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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12. 23. 09:00

 

정지경 북경수박사문화발전유한공사 프로젝트 디렉터

 

 

 

COVID-19 영향으로 전세계 영화 업계가 심각한 타격을 입은 가운데, 2020 중국 영화 흥행수입이 북미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지난 10 14, 중국 영화 흥행수입은 193000 달러(22117 ) 같은 기간 북미지역의 192500 달러(22060억원) 넘어섰다[1].

 

물론 팬데믹 상황의 영향이 컸지만 중국 영화계는 지난 2012년부터 매년 10% 이상의 성장률을 유지하며 미국시장을 바짝 추격하고 있었다. 2019 중국을 강타한 흥행작 <유랑지구(流浪地球)> <나타지마동강세(哪吒之魔童降世)> 내수 시장의 흥행만으로도 전세계 흥행 성적 TOP 20 이름을 올릴 정도로, 중국 영화 업계는 이미 막강한 인프라가 완성되어 있다.

 

SF 동양판타지처럼 제작비가 많이 투입되는 장르는 중국이 강세를 보일 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대작 영화들 사이에서 중국 청춘 영화가 꾸준한 성공이 눈에 띈다. 2019 10월에 개봉한 <소년시절의 (少年的你)> 15.59 위안을 벌어들이며 역대 중국 청춘 영화 흥행 수입 1위를 차지했다.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던 10 전만 해도 '중국 영화' 하면 몇몇 키워드로 설명이 끝났다. 장예모와 첸카이거로 대표되는 5세대 감독이나, 지아장커로 대표되는 6세대 감독들. 예술영화 혹은 고전 사극이나 무협영화.

하지만 최근에는 OTT플랫폼을 통해서 한국에서도 더욱 다양한 장르의 중국 영화를 손쉽게 접할 있게 되었다.  < 훗날 우리>, <소년시절의 > 등의 중국 청춘 영화들이 한국의 청년층들에게 잔잔한 반응을 얻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지난 6월에는 중국 청춘 영화 <안녕, 나의 소울 메이트(七月与安生)> 한국 리메이크 소식까지 들려왔다.

 

2013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们终将逝去的)> 성공 이후, 중국에서는 매년 20 이상의 청춘 영화가 만들어져 왔다. 여타 장르에 비해 선호 관객층이 명확하고, 개런티가 높은 유명 배우 대신 청춘의 이미지에 맞는 신인 배우를 써도 관객의 수용도가 높아, 제작비 대비 흥행 가능성이 높은 장르로 많은 제작사들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있다.

 

 

 

<2013-2019 역대 중국청춘영화 TOP10>

No

제목

상영일

감독

박스오피스

(RMB)

1

소년 시절의

2019.10.25

청궈샹

15.58

2

훗날 우리

2018.4.28

류뤄잉

13.61

3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2013.4.26

자오웨이

7.19

4

총총나년

2014.12.5

장이바이

5.86

5

소시대3

2014.7.17

궈징밍

5.26

6

소시대4

2015.7.9

궈징밍

4.89

7

좌이

2015.4.24

수요펑

4.85

8

소시대

2013.6.27

궈징밍

4.84

9

동탁적니

2014.4.25

궈판

4.55

10

치자화개

2015.7.10

허죵

3.79

 

 

인기 소설가 '궈징밍(郭敬明)' 브랜드 파워가 크게 작용한 소시대(小时代) 시리즈를 제외하고, 중국 청춘 영화의 흥행 상위권 영화들은 특정한 패턴을 보인다.

 

학기가 시작된다. 기숙사에 각지에서 개성 넘치는 친구들이 모인다. 동성 사이에 의리와 우정이, 이성 사이에 애정이 싹튼다. 밝고 싱그러운 과거와 어둡고 쓸쓸한 현재가 교차적으로 묘사된다. 어린 청춘의 끝자락에서 누군가는 낙태를 하고, 누군가는 죽는다. 어른이 주인공들은 물질을 추구하며 '현실을 깨달았을 '이라 자조하는 동시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후회와 그리움을 토로한다.

 

사실 '청춘'이란 단어와 '후회' '그리움' 뗄래야 없는 정서일 것이다. 다만, 중국 청춘 영화에서 정서가 낙태와 죽음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그려지는 부분을 주목할 만하다. 한국관객들의 꾸준한 지지를 받고 있는 대만의 청춘 영화의 건강함과 비교하면, 중국 청춘 영화가 가지는 어두운 정서는 더욱 명확해진다.

 

중국의 청춘 영화는 해피엔딩을 그리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겉으로는 성공했더라도 무언가를 상실했다. 아예 제목부터가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이고 총총 떠나버린 시절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항상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는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 훗날 우리>2008년으로 시작하는 과거는 컬러 화면으로, 10 재회한 현재는 흑백 화면으로 묘사한다. 너의 사랑을 잃는 순간, 세상은 색을 잃어버렸다는 대사를 통해 부가설명도 잊지 않는다. "이후, 우리는 모든 가졌지만, 우리를 잃었다 (后来, 我们什么都有了,却没了我们)" 포스터 카피까지, 노골적으로 상실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중국어로는 '()'. 잃다, 놓치다, 상실하다, 낙담하다, 실의에 빠지다, 목숨을 잃다는 뜻이다.

 

중국 청춘 영화의 상실의 정서는, 초고속 성장과 배급주의에 가려진 사회적 소외와 실패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더욱 짙어진다. 성공을 쫓아 사랑을 버리고 미국을 주인공이 시민권을 얻기 위해 서양인과 위장결혼 하지만 결국 이혼하고 다시 돌아온다거나(<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미국에서 멋진 삶을 사는 주인공의 몽타주로 시작하지만, 영화의 중반에서 몽타주가 모두 가짜임을 보여준다거나(<동탁적니(同桌的你)>). 북경 호구(户口)[2] 가진 남자라면 아무 조건 없이 사귄다거나(< 훗날 우리>), 지독한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살해를 저지른다거나(<소년시절의 >). 중국에서 사회 곳곳 시스템의 문제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장르는 청춘 영화가 유일하다.

 

과거 베이퍄오(北漂) [3]농민공의 삶을 다룬 왕샤오슈아이(王小) 감독의 2001 <북경자전거(十七岁的单车)> 올림픽 유치를 앞두고 있는 당시, 북경의 낙후한 골목풍경을 담았다는 이유로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 6세대 영화들이 중국 하층민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리면서 세계영화계에서 환영을 받자, 중국정부는 아예 상영허가증 없는 영화의 해외영화제 참가를 금지하며 6세대 영화를 검열했다.

 

이렇게 자국 사회의 부정적 단면을 보여주는 것에 특히 민감한 중국이, 청춘 영화에 한해서는 엄격한 심의 기준을 다소 느슨하게 풀고 있다. 폭력, 혼전임신, 낙태, 원조교제, 죽음. 중국의 청춘 영화의 과격한 키워드들은 이미 6세대 영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던 것들이었다. 리얼리즘에 천착했던 중국 6세대의 전통이 시장의 산업화와 함께 장르의 표피를 통해 청춘 영화에 일부 계승되었다. 기실 6세대 영화가 담았던 상실의 정서를 청춘 영화에서도 동일하게 담고 있음에도 후자는 문제 없이 상영되고, 또한 흥행한다. 심의? 상관없다. 어차피 겉으로는 실패한 첫사랑의 이야기일 뿐이지 않는가?

 

재미있는 점은 최근 년간 성공한 중국 청춘 영화를 순서대로 열거하면, 자체로 하나의 연대기를 완성한다는 점이다. 70후를 그린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80후를 다룬 <동탁적니> , <총총나년>, 뒤를 90후를 그린 <좌이> 이었고, 급기야 00후의 <소년시절의 > 개봉하여 성공을 거뒀다. 영화들은 앞서 언급한 청춘 영화의 패턴을 계승하면서도 시대 배경에 따라 각각의 영화들이 주인공들이 가지는 고민의 디테일에 차별점을 두고 있다.

 

< 훗날 우리> 동안의 청춘 영화가 다루지 않았던 주인공들의 졸업 후부터 어른이 후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전의 청춘 영화라면 의례 등장하던 낙태나 죽음도 없다. 사스나 올림픽 역사적인 사건 묘사를 통해 시대적 향수를 자극하는 대신, 매년 춘절을 기점으로 서사를 전개하며 변화하는 사회구조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리는 점도 새롭다. 2008, 마을 사람들이 도란도란 모여 설음식을 나눠먹던 풍경에서 점점 사람이 줄더니, 이제는 아버지 혼자 춘절을 보내고 있는 모습은 쓸쓸하기 그지 없다. 이렇게 < 훗날 우리> 중국 청춘 영화 특유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다른 영화들이 그리지 않았던 공백을 메운다. 중국의 청춘 영화는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진화하고 있다.

 

한국 영화 역시 청년층의 고충을 다방면으로 다루고 있다. <엑시트> 재난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쉬지 않고 달리는 주인공으로 현재 한국 청년층의 상황을 비유했고, <리틀 포레스트> 에서는 심신이 지친 청춘들에게 치유의 노하우를 알려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영화가 장르의 안에서 캐릭터를 통해 간접적으로 청춘의 고충을 이야기한다면, 중국의 방식은 직접적이고 과격하다.

 

중국 청춘 영화에 보내는 한국 청년들의 공감과 지지는, 한국 영화에서 그저 가볍게 덮어두었던 내면의 깊은 상처를 알아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1]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20101702109931054001&ref=naver

[2] 중국의 호적 개념. 도시를 기반으로 주어져, 해당 도시의 호구를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많다. 부동산 구입, 자동차 구입 교육에서 혜택을 받을 있는 북경 호적인 비싼 값에 거래된다.

[3] 일거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 북경에서 생활하는 외지인. 북경에서 생활하지만 북경 호적을 갖지 못한 사람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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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12. 23. 09:00

-교수님, 어떤 책을 읽을까요?

 

 

조재희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출처: 교보문고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당연시되는 말과 행동 그리고 태도를 통해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을 수 있음에 대해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지금까지 본인이 무심코 남들에게 보여줬던 비의도적인 차별적인모습을 돌아보면서, 선량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나 차별할 수 있음에 대해 숙고할 기회를 갖는다. 책을 읽은 후, 나는 덩치 큰 사내가 마주 오는 여인을 보고는, 길의 한편으로 비켜서서 걷고 시선을 가로수 잎으로 돌리는 장면을 떠올려 본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

 

 

 

출처: 교보문고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에서 독자는 과거를 회상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톱사슴벌레는 미루나무를 좋아하는데 다리가 약해. 그래서 미루나무를 세게 차면 사슴벌레가 뚝 떨어진다!”라는 동네 형들의 얘기에 냇가를 따라서 늘어서 있던 미루나무를 발로 차고 다녔던 기억이 났다. 나무가 굵어서 어린 아이의 발차기로는 꿈쩍도 하지 않고 발만 아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 이상 우리 아이들과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마음을 아리게 한다. 리처드 루브는 아이들에게 있어서의 자연의 중요성을 절절히 서술한다.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 - 리처드 루브 -

 

 

 

세상은 단 한 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으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항상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모스크바의 신사]의 주인공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은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호텔의 다락방에서 기거하면서 호텔에 격리된 삶을 살고 있고, 이전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 속에서 살게 된다. 호텔로 한정된 지극히 좁은 세상은 자유롭고 풍유롭게만 살아온 백작에게는 지옥 일진데, 기품과 유머를 잃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이 오히려 유쾌하다. 로스토프 백작은 디지털화로 인해 무한의 공간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삶을 사는 우리에게 중심을 잡고 남을 배려하는 삶이 주는 따스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모스크바의 신사] - 에이모 토울스 -

 

 

 

원용진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문화연구(Cultural Studies)가 꿈꾸었던 연구의 전형이었지 않았을까. 이 이후의 문화연구 작업들은 이로부터 미끌어져간 연속이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문화연구와는 너무 큰 간극을 가진 저술이다. 현실 정치가 이뤄지는 방식을 자신들의 정치 철학, 혹은 정치 이론을 숨긴 채 그러나 꼼꼼히 적용해가며 만든 책이다. 이후 대처리즘 논쟁을 촉발시키는 전초 역할을 한 이 저작을 부산대의 실력있는 임영호 교수가 번역 중이라 하니 기다려진다. 40년이 자니서 번역본이 나오는 셈이니 이를 계기로 한국의 문화연구가 제 몸을 추스르는 계기도 되었으면 한다.

 

 

 

 

 

 

Policing the Crisis: Mugging, the State, and Law and Order

Stuart Hall, Chas Critcher , Tony Jefferson , John Clarke, Brian Roberts

 

 

 

 

 

 

텔레비전의 내용과 형식이 분석될 수 있으며 그 분석이 세상사는 사람 꼴과 연결됨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누구든 텔레비전을 해석해 비평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살짝 눌러주고 텔레비전 비평도 전문 비평 영역이 될 수 있다는 힌트를 전해주었다. 과도하게 문학이론을 빌려와 비평하지 않으면서도 문학이론을 텔레비전만큼이나 대중화시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피스크를 세계적인 대중문화비평가, 이론가로 이름을 떨치게 한 책이다. 텔레비전의 인기 프로그램의 비결이 이 책 행간에 숨겨져 있는데 아마 이 책도 그 비결에 기대고 있지 않나 싶다.

 

 

 

 

텔레비전 문화(Television Culture) -존 피스크-

 

 

 

 

 

 

나의 박사 논문 (The Making of National Culture) 이후의 저서나 논문은 대체로 전통의 발명, 민족주의, 국가주의, 권력 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중매체가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어떤 내용과 형식을 동원하여 대중 주체를 만드는지를 논의하였다. 기억해보면 홉스봄은 나에게는 숨겨진 가정교사 같은 존재였다. 이 저서와의 만남을 통해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를 꾀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고 모든 자연스러움에 대해 의구심을 던져보는 자세를 갖추게 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 펼쳐진 온갖 연행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한 나의 박사논문에는 홉스봄에 빚진 바를 적지 못했다. 괜찮다면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이 자투리를 빌어서라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이 책에 다시 방점을 찍으며 존경을 전하고 싶다.

 

만들어진 전통 -에릭 홉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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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12. 23. 09:00

넷플릭스 따라잡기 : 소설의 드라마화 구상 포인트

- 보건교사 안은영 REMAKE -

 

오유선 기자

 

출처: 네이버쇼핑

 

 

 

최근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무심히 역내 스크린을 바라봤을 때, 지하철에 타서 유튜브의 영상을 클릭했을 때, 지하철에서 내려서 버스로 환승했을 때 계속해서 눈에 띄는 광고가 있었다. 바로 2020925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광고였다. 평소였으면 별생각 없이 또 광고군하며 지나쳤겠지만 이 드라마, 어딘가 심상치 않다. 분명히 직업이 보건교사로 나와 있는 주인공이 스타워즈 광선검을 연상시키는 장난감 칼과 어쩐지 고급지게 생긴 비비탄 총으로 학교에 나타나는 괴물들을 퇴치하고 있다. 게다가 학교에 나타나는 괴물들은 누가 봐도 최종 보스같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말랑말랑하고 귀여운 느낌마저 들었다.

 

결국 호기심에 굴복해서 보건교사 안은영을 검색해보았다. 포털 사이트에 나오는 로그라인은 평범한 이름과 달리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보건교사 안은영이 새로 부임한 고등학교에서 심상치 않은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한문교사 홍인표와 함께 이를 해결해가는 명랑 판타지 시리즈. 광고를 보면서도 예상했지만 과연 넷플릭스에서 제공할 만한 소재였다.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나가려는 순간 드라마의 기본 정보 밑에 원작 소설링크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드라마의 호흡은 견디기 어렵지만 원작 소설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책을 주문하고 앉은 자리에서 바로 다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점점 확실해지는 생각은 넷플릭스가 이 책을 드라마화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하나의 콘텐츠를 영화, 게임, 책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하여 판매하는 전략OSMU(one source multi use)는 현재 수많은 작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OSMU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주로 소설, 웹툰, 웹소설 등의 원작을 드라마, 영화, 공연 등의 장르로 실사화의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소설 혹은 만화로 감상하던 이야기를 실제 배우의 연기로 보는 건 마치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지닌다. 하지만 원작을 바탕으로 누가, 무엇을, 어떻게 구현하였느냐에 극찬을 받기도 하고, 어쩌면 상상으로 남는 편이 나았을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처럼 원작을 다른 장르로 변환하는 데에는 각 장르에 맞는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본 글에서는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 소설만 읽은 시점에서 드라마화에 대한 나름대로의 구상점을 생각해보았다. 구제적으로 초등학교부터 수능까지 계속해서 들어왔던 이야기의 3가지 요소인 인물’, ‘사건’, 그리고 배경의 차원에서 고려해보고자 한다.

 

 

 

※ (본 글에는 보건교사 안은영원작 소설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물 : 중심인물의 전사, 명확한 적대 세력, 조연급의 학생들과 교직원들

 

우선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 소설을 읽고 드라마화를 생각했을 때, 중심인물들의 전사를 보여주는 장면이 들어간다면 좋을 것 같았다. 원작 소설의 경우 3인칭 시점으로 전개가 되면서 각 인물들의 심정과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그때그때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소설을 읽을 때는 안은영의 어린 시절이나 홍인표의 가족 관련 이야기들이 단편적으로 제시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따라가거나 인물의 심정에 이입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드라마를 감상할 때에는 사건이 진행되는 도중 인물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반복해서 보여주기는 어렵다. 인물들의 심정을 매번 독백으로 보여주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안은영의 특별한 능력으로 과거에 일어났던 일, 학교를 중심으로 얽혀있는 홍인표의 가족사 등을 보다 깊게 보여주는 부분을 만들어준다면 해당 장면으로 인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건 물론,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에서 각 인물의 행동이나 생각 또한 공감하기 쉬워질 것이다.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는 악역이라 부를 존재가 크게 세 부류로 나온다. 하나는 물론 안은영이 학교에서 퇴치해 나가는, 학생들에게 해를 입히는 악한 젤리들이다. 또 다른 악역은 소설의 네 번째 에피소드에 나온 원어민 교사 매켄지로, 홍인표의 기운을 노리고 접근하면서 학생들에게 해를 입히는 등 소설 중 가장 중요한 악역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악역은 마지막 에피소드에 나오는 홍인표의 소개팅 상대였던 신지영으로, 인표를 통해 학교에 접근해서 봉인되어 있던 용을 깨우며 학교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이를 드라마화할 때에는 세 부류의 악역의 역할을 보다 명확하게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우선 젤리들의 경우는 안은영이 퇴치해야 하는 대상으로, 각 에피소드의 원인이 되는 핵심적인 존재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보며 드라마에는 개별적인 에피소드가 아닌 전체적으로 주인공 측과 대립하는 조직 혹은 세력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특히 지하실의 비밀을 알고 이를 이용하려는 세력이 극 전반을 통해 전반적으로 등장하며, 후반부의 회차에서 본격적인 대립과 클라이맥스를 형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러한 역할은 소설 상에서는 마지막 에피소드에 등장한 신지영의 서사를 각색할 경우 배후의 존재를 통해 대립 세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의 초중반에 위기감을 주었던 매켄지의 경우 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악역의 역할이 가능할 것 같았다. 초반에는 주인공과 대립하는 사건을 겪지만 주인공과 싸우면서 일종의 정이 들게 되고, 후반부에는 은근한 조력자의 역할도 하는 인물로 설정하는 방향을 구상해 보았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의 일상에 등장하는 조연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원작 소설의 경우 에피소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각 에피소드별로 사연을 지니고 나오는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주로 학생 혹은 다른 선생님인데, 소설은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에피소드가 끝나면 대부분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드라마의 경우 학교의 모습과 그 안의 선생님, 학생들의 실제 모습이 계속해서 나와야 한다. 중반 에피소드의 사연자가 되는 학생이라도 초반부터 학교의 일원으로 얼굴은 등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드라마의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여, 본인의 에피소드가 끝난 후에도 소소한 역할을 갖게 되는 조연급 학생 및 교직원들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건 : 에피소드의 선택과 각 사건들의 연결점

 

 

앞서 말했듯 원작 소설은 총 10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각 에피소드가 동일한 분량, 동일한 비중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드라마화를 진행할 때에는 기계적으로 각 에피소드를 한 회로 만드는 것보다는 적절한 선택과 배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첫 에피소드인 사랑해 젤리피시의 경우에는 주요 인물의 소개와 더불어 안은영과 홍인표의 첫 만남, ‘젤리로 인해 학생들이 집단 자살 소동을 일으키는 사건의 스케일 등 드라마의 첫문을 열고 한 회를 온전히 할애하기에 충분하다. 반면 바로 다음 에피소드인 토요일의 데이트메이트의 경우에는 안은영과 홍인표가 놀토에 만나면서 점차 가까워지는 내용으로 다소 분위기가 가벼우면서 짧은 느낌이 있다. 이처럼 원작의 에피소드의 성격에 따라 비중의 확대, 축소 및 두 에피소드의 결합 등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에피소드를 선택하고 배열했으면, 각 사건들을 연결해줄 지점 또한 필요하다. 소설의 경우 개별적인 에피소드들이 모여 있으므로 각 사건의 시점 혹은 상황의 연결고리가 없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인물 부분에서 언급했던 바와 유사하게 드라마에서는 연속되는 시간 속에서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한 에피소드에서 다른 에피소드로 넘어갈 때의 연결점 역할을 하는 요소가 필요하다. 모든 에피소드에서 이러한 지점이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개별 사건들의 분절적인 모습을 자연스럽게 이어줄 수 있다면 드라마의 긴 호흡을 따라가는 이용자들이 훨씬 유기적이고 통일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배경 : 현실 세계와 안은영이 보는 세계의 간극과 조화

 

 

보건교사 안은영의 주인공 안은영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모습의 세계를 볼 수 있다. 소설 혹은 드라마를 검색하면 바로 나오는 표지 및 포스터 이미지의 젤리가 대표적으로 안은영의 눈에만 보이는 존재이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실사화가 됐을 때 가장 궁금했던 점이 바로 안은영의 눈에 보이는 세계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였다. 원작 소설은 3인칭으로 전개가 되면서 안은영 시점에서 서술되는 배경 묘사와 그때 안은영의 심정, 그리고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는 배경 묘사와 그들의 심정을 명확히 구분해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의 경우 한 번에 한 가지의 모습밖에 볼 수 없으므로, 안은영의 시점과 다른 사람들의 시점 중 하나를 택해서 보여줘야 한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는 주인공에 대한 작품은 많이 있고, 각각의 작품이 이를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독특한 방식들이 있다. 안은영의 경우에는 이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상상을 하며 배경적인 측면에 대해 고려해보았다.

 

 

소설 등의 문학작품에서 즐길 수 있는 활자 기반의 장르, 웹툰과 만화와 같은 이미지 기반의 장르, 영화, 드라마 등의 영상 기반의 장르, 그리고 공연과 같이 현장성을 기반으로 하는 장르까지 각각의 장르는 고유의 특징을 최대한 살릴 수 있을 때 그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 소설은 그 자체로 매우 재밌고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이와 동시에 판타지적인 설정, 각각의 매력 있는 사연들, 개성 있는 인물 등 드라마로 구현될 때의 강점 또한 분명했다. 드라마로 변환할 경우 이에 대한 특징을 고려할수록 더욱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 거라는 생각을 하며 원작 소설만 읽은 상태에서 나름의 구상을 해보는 기회를 가져 보았다. 여유가 생기기를 희망하는 연말에 직접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구상한 점들을 비교해볼 것을 계획해보며 이번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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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12. 23. 09:00

정 나 영 (뮤지컬 작곡가)

 

  (사진 출처 : https://likejp.com/3379)

  우리는 일상 곳곳에서 음악을 쉽게 만난다. 그러다 다시 듣고 싶거나 소위 괜찮은 노래는 수집하고, 플레이리스트를 만든다. 그 중에서 BGM처럼 깔리며 스쳐 지나가는 음악도 있겠으나, 뮤지컬 넘버처럼 극적으로 부각되어 인생의 테마음악이 되고, 여전히 곁에 있는 음악도 있다. 

 

  그렇게 하나둘, 차곡차곡 쌓인 플레이리스트는 나의 서사와 기록을 담고, 역사가 된다. 그래서 어느 계절에 만났던 음악을 같은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듣는다거나,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 ‘그 음악’이 떠오른다거나 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계절, 날씨, 시간대에 따른, 혹은 스트레칭, 산책, 소풍, 청소, 이동, 작업, 독서 등등의 생활패턴과 내 감성에 꼭 들어맞는 플레이리스트들이 있다. 마침 계절은 바뀌었고, 그래서 올해도 어김없이 꺼내든 나의 보물이자 유물 같은 겨울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한다. 

 

  어느 겨울날, 아침부터 고요한 새벽까지 함께할 수 있는 방구석 플레이리스트. 당신에겐 조금 낯선, 혹은 반가운 순간이 되길 바라며.

 

#아침 #침대 밖은 위험하니까 #음악으로 세계여행 
•Keren Ann - Les Mercenaires 
•Asgeir - In the Silence (Dyrð i dauðaþogn)

: 겨울을 싫어하는 내가 겨울의 매력을 알게 된 순간이 있다.  창문을 오래 열어두어 차가운 공기가 가득한 방안에서, 오직 몸만은 뜨듯한 장판과 극세사 이불로 보호된 채로 침대에 누워있을 때, 그리고 이른 겨울 아침, 제주도 여행에서 아우스게 일(Asgeir)의 음악을 만났을 때이다. 아이슬란드 가수인 아우스게일의 ‘In the Silence’는 ‘Dyrð i dauðaþogn’라는 제목의 아이슬란드어 버전으로 먼저 발매가 되었다. 발매 직후 아이슬란드 국민 열 명 중 한 명이 소장할 정도로 인기가 많아져 영어로 번안된 앨범을 내게 됐다. 하나의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추운 나라의 뮤지션들은 기가 막히게 찬 공기에 어울리는 사운드를 잘 만든다. 어쿠스틱 사운드 바탕에 공간감 있는 우아한 보컬이 아이슬란드 풍경을 담은 가사와 어우러져 차분하고 투명한 겨울 아침이랑 잘 어울린다. 

#정오 #맛점 #오늘의 추천요리 
•염신혜, 선우정아 - Blossom 
•이소라 - Rendez-Vous


: 겨울 볕이 방안에 차오르는 점심시간, 그저 한 끼 때우기 위한 음식을 먹을 수도 있지만, 잘 차려진 밥상을 나에게 대접 
하는 것도 중요한 일. 그리고 그럴 땐 부드럽고 다정한 느낌의 재즈 음악을 찾아 듣는다.

이소라의 랑데부(Redez-Vous)는 가볍게 들을 수 있는 보사노바로, 그녀의 4집 앨범인 ‘꽃’에 수록된 곡이다. 이소라의 목소리는 어떤 곡이냐에 따라 온도를 달리하는데, 이 곡에 들리는 따듯하고 담백한 그녀의 목소리와 보사노바가 겨울 오후에 오밀조밀 잘 녹아든다. 

#오후 #햇살이 창문을 넘을 때 #차 한잔 
•Hekuto Pascal - Fish in the pool / 花屋敷 (애니메이션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 OST)   
•Jazztronik - Room 204


: 차 한잔하며 멍 때리기 딱 좋은 시간. 이럴 땐 가사 없는 음악을 선호한다. 따스한 방안, 깊게 들어온 볕, 찻잔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그리고 이 공간을 완성하는 음악인 ‘Fish in the pool / 花屋敷’. Hekuto Pascal의 Fish in the pool / 花屋敷’은 일본영화 <러브레터>, <4월 이야기> 등을 만든 이와이 슌지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에 나오는 곡으로, 가사 버전으로도 들을 수 있다. 감독 특유의 아련한 감성이 담긴 영상에 음악이 고스란히 녹아들 수 있었던 이유는, 감독인 이와이 슌지를 필두로 만든 3인조 유닛 밴드 ‘헥토 파스칼’이 음악을 담당했기 때문인데, 현재는 6인조로 재편성하여 활동하고 있다. 

#함박눈이_나린다. 
•Various Artists - Dream Scenery II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OST) 
•이문세 - 옛사랑 
#해질녘 #단지 오늘의 해가 넘어가는 것뿐인데 
#낯선 감정 
•테시마 아오이&칸노 요코 - Because 
•김윤아 - 길 (드라마 ‘시그널’ OST)
: 일찍 지는 해가 아쉬워서일까? 겨울 하루 중 이 시간대에 유난히 형언할 수 없는 온갖 감정으로 마음이 일렁인다. 그리고, 그래서 김윤아의 길을 찾게 된다.  드라마 ‘시그널’에서 김혜수의 메인 테마곡으로 사랑받았던 김윤아의 ‘길’은 전반적으로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도브로>라는 어쿠스틱 기타의 보틀넥 주법을 활용해 마치 황야, 사막을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질감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 위에 김윤아 특유의 호소력 짙은 보컬이 매력을 더하며, 낯설지만 익숙하기도 한 감정들이 흘러갈 수 있게 도와준다. 

#저녁 #춥지만 따뜻하니까 #겨울답다 
•Honne - Warm on a cold night 
•Toki Asako - Black Savanna 
  
•에피톤 프로젝트 - 플레어 (Vacal. Azin) 
: 긴 겨울밤의 시작, 조명이 방을 밝히는 저녁에는 분 위기, 상황에 따라 듣고 싶은 음악도 달라진다. 저녁 식사와 함께 가 
볍게 한잔할 수도, 랜선 파티를 하며 도란도란 수다를 떨 수도, 집중해서 과제를 하거나, 작업을 할 수도, 캔들이나 워머의 은한 불빛 아래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도. 이렇듯 각자의 겨울밤은 다르겠지만, ‘Honne’의 ‘Warm  on a cold night’로 시작하는 밤은 꽤 근사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밤 #온기가 필요해 
•양희은 -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말 
•이소라 -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자이언티 - 눈 (feat.이문세) 
  
: 겨울엔 ‘춥다’ 하나로 온기를 갈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생존에 직결되는 온기부터, 소소하게 즐기는 따스함까지. 당연히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줄 음악도 필요하다.  자이언티가 작사, 작곡한 ‘눈’은 자이언티와 이문세가 함께 부른 곡이다. 어렸을 때 눈이 오길 바랐던 기억에서 시작된 노래라고 하는데, 둘의 음색의 조합이 묘하게 뭉클하다.  
눈이라고 썼지만, 희망이라고 읽어도 된다는 자이언티의 마음이 느껴지는 눈을 들으면 노래가 흘러가는 동안만 일지라도 포근한 온기가 채워지는 것 같다.

#새벽 #어둠은 문밖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자우림 - 샤이닝 
•Asgeir - Heimfrin
: 이따금 쉬이 잠 못 드는 밤이 찾아오면 그대로 새벽까지 내 달린다. 그런 새벽을 채워주는 건 자우림의 ‘샤이닝’이다.  
 ‘꼭 필요한 부분만 채워 놓은 연주의 소박한 분위기, 슬픈 진실을 이야기하는 존재에 대한 노래.’ 자우림 6집 타이틀곡을 고민할 당시, 김윤아가 ‘샤이닝’에 대해 언급한 듯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그녀의 말처럼 꼭 필요한 부분만 채웠기에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공감과 위로를 준다. 가사 그대로를 따라가다 보면 깊게 공감하며 위로를 받고, 어느새 괜찮아져 잠이 들기도, 혹은 조금 울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연말에도 #신나게 #놀기도 하며 살아가세 
•넬 - 사는게 니나노 (넬 ver.) 
•Otto know - Dying for you


: 몇 년 전, 페이코에서 국악 ‘태평가’를 여러 아티스트가 자신의 스타일대로 작업해 보여주는 광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중, 12월에 발표된 넬의 ‘사는게 니나노’는 밝은 정서인 태평가가 넬을 만나 모던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특유의 멜랑꼴리하지만, 공간감이 풍부한 사운드로 12월 겨울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이 시국이라는 말이 언제부턴가 유행한, 유독 허탈하고 허망했던 2020년도 한 달 남짓 남았다. 그렇다고 2019.5년으로 만들지도 못하니 다소 억울하고 어정쩡한 한 해일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절실하게 느낀 한 해이기도 했다.  부디 안전하고 평온한 연말이길. 코로나가 없는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길. 그런 바람을 담아 오늘도 내 방구석에서만큼은 니나노 니나노 늴리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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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12. 23. 09:00

새로운 News가 필요해?

<뉴닉>, <추척단 불꽃> 새로운 저널리즘 View

 

양아라 기자

 

 

  우리는 뉴스가 필요하다. 우리는 뉴스를 종이신문과 텔레비전이라는 전통매체의 시간에 뉴스를 보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신문의 지면과 TV 뉴스프로그램은 한 언론사가 선별하고 구성한 뉴스의 서사를 보여주는 뉴스 스토리텔링이며, 우리에게 중요한 뉴스 창구로서 기능하고 있다. 시민들은 포털과 SNS, 유튜브 등을 통해서 뉴스를 접하고 있고, 뉴스 미디어 이용의 중심축은 피씨(PC)에서 모바일로 옮겨가고 있다. 뉴스 미디어의 사사화가 이뤄졌고, 시민들의 미디어 이용 행태는 변화하고 있다. 뉴스의 창구의 다양해지고 있지만, 기성 언론 불신과 가짜 뉴스라고 불리는 허위·미확인 정보의 범람 등 저널리즘의 위기라고 말한다. 뉴스는 차고 넘치는 데, 볼만한 뉴스가 없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반면 내 입맛에 맞는 뉴스만을 골라보는 독자들은 필터버블 (filter bubble)에 갇히거나,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 로 확증편향에 빠지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새로운 언론과 독자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언론 대 독자의 이항대립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론은 내부적으로 전문/비전문, 주류/대안 언론이라는 저널리즘의 오랜 이분법적인 틀에서 탈피해야 한다. 언론과 독자 모두에게 어떠한 뉴스를 어떤 방법으로 보도할 것인가라는 뉴스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미래의 저널리즘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미디어 스타트업 <뉴닉>N번방의 최초 보도자인 <추척단 불꽃>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저널리즘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자.

 

 

뉴닉(NEWNEEK), 바쁘지만 세상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뉴스

[사진 출처: 뉴닉 홈페이지 화면(www.newneek.co/)]  

 

  "우리가 시간이 없지, 세상이 안 궁금하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등장한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인 <뉴닉>. 이들은 우리 세대가 볼 뉴스가 없다는 문제의식에 출발해, 2018년 겨울 20-30대 친구들을 대상으로 꼭 알아야 하는 이슈를 쉽고 재밌게 전달하는 이메일 뉴스레터를 전송하기 시작했다. “모든 세대는 각 세대만의 저널리즘을 창조한다라는 말처럼, 뉴닉은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를 주 독자층으로 삼고 있다. 뉴스 독자들의 뉴스 이용 형태가 변화함에 따라 뉴스 미디어와 뉴스 형식도 변화해야 했다. 독자들은 일상에서 어디에서든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손안에서 뉴스를 볼 수 있어야 했다. 이들은 주 3, ··금 아침마다 메일로 뉴스레터를 전송하고 있다. 세대와 상관없이 뉴닉의 뉴스 이용 패턴에 맞는 구독자들은 뉴닉을 자신의 뉴스 매체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뉴닉은 독자들의 틈새 시간을 공략했고, 일상생활의 접점에서 뉴스를 전달하고 있다. 새로운(NEW) 괴상한 멍청이(NEEK: nerd 멍청이+geek 괴짜)를 뜻하는 뉴닉은 ’, ‘재미’, ‘진정성을 추구한다. 뉴닉은 현재 약 25만명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뉴닉은 구독자에게 뉴닉커라는 별칭을 붙이며 소통하고 있다. ‘뉴닉 송이라는 주제가를 만들며 홍보하며 미디어와 구독자 간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있다.

 

 

  이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기성 언론과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그들만의 문법이 있다는 것이다. 역피라미드형의 스트레이트 뉴스 보도 형식과 달리 새로운 기사 작성 방법을 선보인다. 특히 뉴닉의 캐릭터인 고슴이가 뉴스 콘텐츠를 전달한다는 점도 레거시 매체와 다른 점이다. 고슴이는 구독자에게 시각적인 흥미를 유발하며, 뉴닉의 탄생과 과정에 함께하고 있다는 점에서 뉴닉의 상징이자,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존재로서 작용하고 있다. 고슴이는 이슈의 핵심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하는데 이는 뉴스의 의문/대화형형식을 보여준다. 구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정보를 짧고 쉽게 전달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뉴닉은 구독자가 뉴스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개념을 쉽게 설명하고, 중요한 뉴스 사안들을 흥미롭게 그들의 삶과 관련 있는 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전달하며,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뉴스 이해관계자들의 입장과 반응을 정리해서 해설하고 있다. 뉴닉은 ‘5분 뉴닉’, ‘국내정치’, ‘국제·외교’, ‘경제’, ‘노동·’, ‘인권’, ‘테크’, ‘문화’, ‘환경 ·에너지’, ‘코로나19’ 등 이슈 키워드를 중심으로 비교적 다양한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 뉴닉은 시사 이메일 뉴스레터를 넘어, 자체 플랫폼을 구축하며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그들의 취재력, 경쟁력이 될 것이다.

 

 

 

‘N번방최초 보도자 추적단 불꽃’,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뉴스 스토리텔링에서 필수적인 요소는 이야기(story)이다. 기사 한 줄로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기사의 파급력은 크다. 한 가지 이슈에 쏠려있는 획일적인 보도 속에서 심층적인 탐사보도라는 날카로운 질문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저널리즘 정신을 일깨운다.

 

 

  20199월 디지털 성범죄 'N번방'의 최초 보도자인 동시에 최초 신고자는 두 명의 대학생이다. '추척단 불꽃'이다. 기자를 꿈꾸던 두 명의 대학생들은 공모전을 준비하다, 불법촬영물 관련 취재를 시작했고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처음 발견해 가시화했다. 이후 이들은 1년 넘게 지인 능욕방’, ‘딥페이크방’, ‘박시방등 불법촬영물이 유포되는 100개의 대화방에서 잠입 취재했고, 디지털 성범죄의 실상을 세상에 밝혀냈다. 두 명의 여성은 언론인으로서 탐사보도를 통해 권력을 감시하고 목소리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제공했다.

 

[사진 출처: 불꽃추적단,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책 표지]  

 

  이들의 취재현장은 미성년자들에게 잔혹한 디지털 성범죄가 일어나고, 이 범죄에 가담한 가해자들이 우글거리는 텔레그램방이었다. 추적단 불꽃은 취재하면서, 성착취 사진과 영상에 장기간 노출돼 정신적인 충격을 받으며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기성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이 사건을 취재하고 방대한 정보를 꼼꼼하게 기록했고 <성착취 가해자들의 연대기>라는 기사를 작성했다.

 

 

  추적단 불꽃은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라는 책에서 기사 하나 쓰자고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신고를 해야 했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잔혹한 범죄 앞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것은 방관에 가깝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들은 더이상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가해자들을 추적했고, 경찰에 자신들의 취재 내용을 제공하며 수사에 협조했다. 또한 추적단 불꽃은 한겨레, 국민일보, MBC, SBS에도 제보하며, 언론에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리며, 기꺼이 그들의 취재원이 되기도 했다. ‘단독보도를 선점하기보다는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들은 제보 과정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유발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의 취재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들은 취재를 통한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기자는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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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12. 23. 09:00

하태현 기자

 

 

리그오브레전드 케이팝 걸그룹 K/DA (출처: 라이엇게임즈)

 

 

K/DA가 누구야?

 

  2018년 여성 4인조 가수로 데뷔한 K/DA1는 라이엇게임즈가 제작한 리그오브레전드(LoL, 롤)의 캐릭터 아리, 이블린, 아칼리, 카이사로 구성된 가상 케이팝 걸그룹이다. K/DA는 ‘2018년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 개최지인 한국에서 최초로 데뷔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K/DA의 데뷔곡 ‘POP/STARS’는 공개 열흘 만에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 수가 5,000만을 넘었고, 현재(2020년 12월 1일 기준) 조회 수가 4억 회를 돌파했다. 이어 아이튠즈와 빌보드 차트에서 각각 1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이들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물론, K/DA의 데뷔와 활동이 처음부터 팬들의 환호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롤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가상 아이돌이 된다는 사실은 궁금증을 유발하면서도 동시에 기이한 일로 여겨졌다.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가 엄연히 구분되어 있으며, K/DA는 롤의 세계관 속에서 활동하던 가상 걸그룹으로서 ‘컨셉’에 불과한 그룹인데 이를 현실 세계로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유저들의 우려를 환호로 바꿔놓은 것은 단연 양질의 퀄리티를 보여주는 퍼포먼스와 탄탄한 음악 구성이었다. 
기존의 캐릭터를 재해석하고, 예상을 뛰어넘는 뮤직비디오나 음악은 ‘외국 게임 회사가 만드는 케이팝이라니 좋아봤자 얼마나 좋겠냐’는 우려를 단숨에 수그러들게 했다. 

 

  K/DA의 두 번째 공식 활동은 2년이 지난 뒤에 중국 상하이의 ‘2020년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었다. K/DA는 새로운 타이틀곡 ‘MORE’를 공개했다. 2년 전과 비교해 K/DA의 구성에는 변화가 있었다. 중국인 국적의 려위위(Lexie Liu)가 신규 캐릭터 세라핀을 맡으며 5인조 케이팝 그룹이 된 것이다. 세라핀의 합류에 유저들의 반응은 의외로 차가웠다. 케이팝을 콘셉트로 잡은 K/DA ‘MORE’의 브릿지에 중국어 노랫말이 몇 소절 나온다는 사실은 단연 화제거리였다. 

 

  네티즌들은 케이팝 가수가 중국어로 케이팝을 부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케이팝은 한국어로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라이엇게임즈가 케이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심지어 2020년 K/DA 공연에서 중국인 캐릭터인 세라핀은 한국인 캐릭터를 제치고 센터 자리를 차지했는데,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세라핀 불매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안그래도 케이팝 그룹에 중국인이 등장해 중국어를 하는 것도 불편한데, 중국인이 한국의 것(케
이팝)과 한국인의 자리를 뺏고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급기야 케이팝에 중국인 멤버를 추가한 것을 두고, 중국의 동북공정의 또 다른 외양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러한 양상을 두고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대체 케이팝이 뭐길래? 

 

 

 

케이팝이란 뭘까?


  케이팝(K-POP)은 한국 대중음악을 다른 음악과 구분하기 위해 산업적으로 만든 단어이다. 한류라는 용어가 중국에서 붐을 일으킨 한국 대중문화를 가리키는 용어라면, 케이팝은 일본에서 유래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보아(BOA)와 비, 장나라 등이 일본과의 협업 및 현지화를 시도하면서 케이팝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됐기 때문이다. 즉, 한국에서 ‘가요’로 분류되는 음악이 해외에서 수용되면서 케이팝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신현준(2005)
은 케이팝을 “한국 음악산업을 통해 생산되고 동아시아권에서 소비되는 대중음악 및 그와 연관된 문화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국제적 고유명사”라고 정의한다. 2000년대까지도 한국의 음악은 주로 ‘가요’ 라고 불렸는데, 한국 밖의 다른 나라에서 한국의 가요를 케이팝으로 부르면서 지금과 같이 굳어졌다는 사실을 볼 때, 케이팝이라는 용어는 ‘한국이 아닌 나라들을 위해 한국에서 만들어진 대중음악(신현준, 2013, 31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케이팝은 ‘한국스러운’ 혹은 ‘한국다움’을 지니고 있는 지역적 음악 장르로 이해되곤 한다. 실제로 음악의 장르를 규정하는 데 있어 국적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때도 있다. 음악이 만들어진 지역이 어디인지, 그로 인해 구성된 음악적 스타일은 어떠한지에 따라 다른 음악과 구분되는 독립적인 장르로 인정되기도 하는 것이다. 팝에 국적이 붙어서 생성된 음악적 갈래의 위치를 보면,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케이팝(K-POP)은 다양한 국가들의 팝 예컨대, 제이팝(J-POP), 라틴팝(Latin-Pop), 스웨디시 팝(Swedish Pop), 칸토팝(Canto-POP), 만다린팝(Mandarin-POP)과 구분되는 지점에서 한국의 대중음악을 지칭한다. 특정 장르에 대한 지칭이 아닌 국가를 기준으로 한 분류인 것이다. 

 

  라이엇게임즈가 만든 K/DA가 케이팝 걸그룹으로 불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네 명의 캐릭터(아리, 이블린, 아칼리, 카이사)가 각각 메인보컬, 리드보컬, 리드댄서, 래퍼 등을 맡고 있으며, 뮤직비디오에서도 케이팝의 문법을 따랐던 것이다. 여느 케이팝 걸그룹이 그렇듯, K/DA에도 한국인 멤버가 포함되어 있었다. 메인보컬 아리는 한국 아이돌 그룹 (여자)아이들의 ‘미연’이 맡았고, 리드보컬 이블린은 ‘매디슨 비어(Madison Beer)’가, 래퍼 아칼리는 (여자)아이들의 ‘소연’이, 그리고 메인 댄서 카이사는 ‘자이라 번스(Jaira Burns)’가 맡았다. 이렇게 두 명의 한국 가수와 두 명의 미국 가수는 라이엇게임즈의 걸그룹으로 결성되었고, 영어 가사와 한국어 가사를 혼용한 노래인 ‘POP/STARS’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2000년대와 달리 전지구화 흐름에 따라 지역과 지역 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 가운데 케이팝을 여전히 ‘한국을 통한’ 대중음악으로만 볼 수 있을까? 이는 케이팝의 소비 과정이 한국에 한정지어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받아들이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음악도 케이팝이라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이다. EXP EDITION의 사례는 케이팝이 국적을 벗어난 장르가 될 수 있는지 묻는다. EXP EDITION은 2015년 뉴욕에서 데뷔한 뒤 2년이 지나고서 한국에서 데뷔한 K-POP 그룹이다. EXP EDITION은 한국인이 없이 구성된 케이팝 아이돌 그룹인데, 이들은 뮤직비디오에서 한국 아이돌이 했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한다. 심지어 스스로의 음악 장르를 케이팝으로 정의하지만, 한국어로 된 가사는 전체 가사의 10%도 안 된다. 한국어가 거의 들리지 않는 K-POP인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유럽 최초의 K-POP 걸그룹 가치(KAACHI)가 있다. 걸그룹 가치는 영국에서 시작한 케이팝 걸그룹으로서, ‘케이팝 스탠더드’에 맞추고자 노력한다. 가치에는 한국인 멤버가 있으며 이들을 기획한 사장도 한국인이지만,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이 케이팝 걸그룹의 
음악을 K-POP으로 부를 수 있을까? 만약 부를 수 있다면, 지금 이 시대의 K-POP은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K-POP(케이팝)의 K=KOREA를 넘어서

 

  다양한 음악이 케이팝이 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케이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음악은 엄연히 존재한다. 한국의 록(Rock)음악이나, 힙합, 인디(indie)음악은 케이팝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듯이, 그 경계는 모호하지만 구분점은 있는 듯 하다. 분명한 점은 국내외 케이팝 수용자들은 케이팝을 한국과 분리된 장르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케이팝은 한국 문화의 일부로 사고된다. 그렇기에 케이팝에 한국적인 특징이 배어있지 않은 케이팝은 어색하다고 받아들여지거나, 다른  장르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가 인종적이고 민족적인 요소와 맞닿아있다는 사실은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마주하게 한다.

 

  K-POP의 ‘K’는 코리아(KOREA)의 K를 의미한다. 한편, 이를 한국인만의 K로 사유하는 인식은 케이팝의 생산과 수용 과정에 끼어드는 다양한 주체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국인’이 아닌 다른 인종과 민족, 그 중에서도 특정한 민족을 향해서 ‘너는 케이팝에 끼어들 수 없다’는 식의 발화에는 모종의 우월감과 폭력이 묻어있다. 사실 국내에는 이미 트와이스와 같이 국내에는 이미 트와이스와 같이 9명의 멤버 중 4명이 외국 국적을 갖고 있는 그룹도 있으며, 나아가 JYP는 일본인으로만 구성된 케이팝 걸그룹 니쥬(NiziU)를 데뷔시킨 바 있다. 이미 다양한 국적의 가수들은 케이팝을 전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K/DA에 중국인 가수가 합류한 것을 두고 케이팝의 진정성을 묻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유달리 ‘중국’을 향해서 강조되는 케이팝의 진정성에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중국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다양한 맥락과 배경에 대한 고려 없이 쉽게 분석될 수는 없다. 그러나 케이팝에 등장하는 한국(한국어)과 중국(중국어)을 대립적으로 사유하면서 ‘우리의 케이팝에 들어올 수 있는 외국인’과 그렇지 않은 타자를 선별하는 행위에 
담긴 폭력성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과 같은 혼종성의 시대에 우리만의 고유 것이 없기에 케이팝을 한국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할 순 없다. 다만, 케이팝을 한국인의 것으로 인식하고 부르면서 과도하게 타자를 밀어내고 있다면 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케이팝의 진정성을 한국인과 한국어라는 민족 중심적 특징이 아닌, K-POP(케이팝)의 K=KOREA를 넘어서는 작업을 모색할 때다.

 

 

참고문헌 

신현준 (2013). <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 너머: 한국 대중음악을 읽는 문화적 프리즘>. 서울: 돌베개

 

 

2020년 K/DA 두번째 타이틀곡 'MORE' (출처: 유튜브 RARE 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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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12. 23. 09:00

 

안보민

 

1. 방 안에 갇히다

 

 

올해 초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아직 코로나가 본격화되기 전이라 새로운 바이러스가 도는데, 메르스 같은 건가? 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리고 게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되면 으레 머릿속에 좀비 게임 몇 가지를 떠올린다. 다잉 라이트의 하란 바이러스, 바이오하자드의 T바이러스 등. 웃으며 이러다가 진짜 좀비 아포칼립스 열리는 거 아냐?’하고 농담을 던진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아포칼립스는 반쯤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큰 변화를 하나 꼽자면 사람을 못 만나게 됐다. 사회적인 동물인 우리 인간들에게 덜컥 주어진 고독 앞에서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사는 거라는 말은 공허하기만 하다. 코로나가 2020년을 어둠 속에 다 묻기도 전에 우리는 벌써 외롭다. 작은 방이 갑갑하다. 카페에서 친구와 공부를 하는 둥 수다를 떠는 둥 하던 일상이, 술집에서 소맥을 한가득 말아 건배하던 시절이 그립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 고독을 더 견뎌야 한다. 백신 접종이 곧 시작될 거라는 소식에도 웃을 수가 없다. 미국 백악관 코로나 TF 수장인 앤서니 파우치 NIAID 소장은 세계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건 2021년 말 이후에나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달가량 남은 2020년도 어떻게 버텨야 할지 모를 판에 1년은 더 버텨야 하는 셈이다.

만약 당신이 이미 영화, 드라마, 유튜브에 물릴 만큼 시간을 쏟았다면 당신에게 게임을 해보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이미 게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올해 상반기에 모바일 게임앱 설치 건수가 전년보다 2배쯤 늘었다고 하니 말이다. 다른 수많은 재밌는 게임이 있지만, 만약 시간이 남는다면, 그리고 약간 배짱이 있다면 Subnautica를 플레이해 볼 것을 권한다.

 

 

2. 낯선 행성에 혼자

 

아니 인제 와서 2018년 초에 발매된 게임을? 굳이?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세계관과 스토리, 아름다운 그래픽,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지만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게임성, Subnautica에는 여러 장점이 있다. 하지만 수작이라 불리는 게임은 대부분 다 그렇다. 그런데도 지금 이 시기에 Subnautica를 추천하는 이유는 행성에 갇힌 플레이어 캐릭터의 상황이 방에 갇힌 우리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27세기, 우주를 개발하기 위해 떠난 우주선 오로라 호가 행성 4546B에 추락한다. 당신은 간신히 구명 포드를 타고 탈출하지만, 탈출 과정에서 머리를 다쳐 기절한다. 정신이 들었을 때 당신은 완전히 혼자다. 사방으로는 끝없이 파도가 철썩인다. 저 멀리서 당신을 태웠던 우주선이 불타고 있다. 어안이 벙벙한 당신에게 PDA는 담담하게 말한다.

‘Zero human life signs detected.’

당신은 이 광활한 바다에 혼자 남았다.

 

 

3.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처음에는 일단 헤매 봐야 한다. Subnautica가 자랑하는 바다를 봐야 하지 않겠는가. 햇빛이 비치는 얕은 바다를 숨이 간당간당할 때까지 헤엄치다가, 돌도 줍고 산호 구경도 하다가 정체 모를 괴물에게 습격도 받아보다 보면 대충 이 게임의 정체를 알게 된다. ‘이거, 오픈월드 생존제작 게임이구나!’

워낙에 인기 많은 장르인지라 게임을 좀 해본 사람 중엔 이 장르를 안 해본 사람보다 해본 사람이 많다. 많은 생존 게임은 가이드 없이 황야에 플레이어를 던져두고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고 말한다. Subnautica도 얼핏 보면 그런 게임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러나 행성 4546B에는 많은 이야기가 얽혀있고, Subnautica의 제작진들은 당신이 그 이야기를 알아내기를 바란다.

넓은 바다에서 당신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라디오를 준비했다. 제작진의 의도가 얼마나 투명한지 제대로 된 설비가 거의 없는 구명포드에도 고쳐 쓸 수 있는 라디오가 있다. 라디오의 신호를 부지런히 따라가 구명 포드를 찾아내기를 수없이 반복하겠지만, PDA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인간의 신호는 감지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자면 당신은 이 바다에 있는 유일한 살아있는 인간이다.

이 행성에 있다 보면 문득 생각이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순간들이 닥쳐온다. 특히 살아있었던 인간들이 남긴 기록들을 확인할 때면, 그래서 이 사람들은 어딨지? 난 언제까지 혼자서 이 바다를 헤매야 하지? 뭔가 열심히 하고 있긴 한데 언젠간 이 행성을 탈출할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온 거지? 얼마나 더 가야 하지? 바다는 이미 질릴 만큼 본 것 같은데 이 게임을 계속해야 하나? 온갖 상념이 찾아온다.

 

 

4. 그래도 멈출 수 없어

 

당신이 그럴 때마다 Subnautica 제작진들은 놀라운 경험들로 당신의 발목을 붙잡는다. 일단 스케일이 크다. 큰 것들은 그저 크다는 사실만으로 어떤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갖춘다.

행성의 바다에는 레비아탄으로 분류되는 거대 생물들이 있다. 처음에는 그 거대함에 기가 질려 다가가지도 못한다. 그 거대함 앞에서 플레이어는 얼마나 작고 연약한지 코즈믹 호러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런데도 뒤돌면 공포는 온데간데없고 그게 무엇이었을까 어른어른 생각이 난다. 다시 한번 보고 싶고, 가까이서 보고 싶고, 자세히 보고 싶다. 호기심이 공포를 이기는 순간이 오면 당신은 정체 모를 거대 생명체에게 목숨을 걸고 다가간다. 그들에게 무사히 접근해 스캔에 성공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하다.

또 제작진이 안배한 길을 굽이굽이 따라가며 알게 되는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행성 곳곳에 숨겨져 있지만, 주인공이 행성을 탈출하는데 핵심이 되는 이야기는 이 행성에 숨겨진 비밀이다. 이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 무엇을 말하던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굳이 한 마디 얹자면 이 행성은 극단적 자기격리의 행성이다. 어째서 행성이 코로나 시대의 미덕을 갖추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꼭 직접 플레이해보기를 권한다.

Subnautica는 크래프팅 게임으로서는 드물게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미덕을 갖췄다. 충실히 제작진이 의도한 길을 따라왔다면 행성을 떠날 때 당신은 이미 이 외로운 행성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된 후다. 한 점 의구심도 남기지 않고 웃으면서 행성이 보내는 작별 인사에 손을 흔들어 줄 수 있다. 쏘아 올려지는 로켓과,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보며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자. 크레딧은 꼭 마지막까지 보길 바란다. 영화의 쿠키 영상 같은 것이 있다.

엔딩의 여운을 즐기고 싶다면 Subnautica의 시네마틱 트레일러를 보는걸 추천한다. 트레일러를 왜 게임을 하기 전이 아니라 한 후에 보느냐고? 해보면 알게 된다. 트레일러의 모든 장면에서 , 저거!’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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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12. 22. 16:16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이 시국에 공연이 웬 말인가. 코로나 시대의 공연은 어떠한 의미일까. ‘위험’일까 아니면 ‘새로운 도전’일까 끊임없이 따라붙는 물음표였다.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이라는 무대 한복판을 차지하고 앉아있다. 우리의 삶이 코로나에 밀려나도, 일상의 주인공은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가운데 서강대는 올해 개교 60주년을 맞이했다. 11월 18일 오후 8시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서강대 60주년을 기념하는 콘서트가 열렸다. 

 

[사진 설명: 뮤지션 최고은 씨가 서강대학교 개교 6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노래하는 모습, 온라인 생중계 화면 (2020.11.18)]

 

  이 공연은 동문, 재학생, 신입생 등 서강인을 위한 헌정 공연으로 진행됐다. 온라인 사전신청을 통해 약 100명이 참석했다. 온라인 관객들은 카카오톡 TV를 통해 공연 생중계를 감상 할 수 있었다.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이한 동문 뮤지션 최고은(프랑스문화학 03학번)씨가 학교 무대에 섰다. 그는 세계적인 음악 축제인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에 2014년, 2015년, 2019년 세 차례 한국인 최초로 공식 초청됐던 뮤지션이다. 황현우(일렉기타& 베이스), 박상흠(일렉기타&베이스), 주소영(바이올린), 김다예(첼로), 민상용(드럼)과 함께 공연 무대에 올랐다.

 

끝나지 않는 코로나, 온라인 강의실서 
서강대 60주년 기념 공연의 ‘스토리텔링’ 시작 


서강대 60주년 기념 콘서트는 <미디어스토리텔링 연구> 강의를 진행하는 원용진 교수와 학생 21명이 지난 9월부터 약 2개월간 준비한 공연이다. 학생들은 기획, 연출, 중계팀 총 3팀으로 구성되어, 공연 주제와 아이디어를 모으고 의견을 나누며 공연을 경험했다. 학생들은 공연 포스터와 팸플릿을 직접 만들고, 직접 온라인에서 홍보하고 관객을 모았고, 콘티, 무대 배경 영상·소품 준비, 조명 디자인을 구성했다. 학교의 도움을 받아 카메라 촬영, 온라인 실시간 중계를 실시했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비대면 수업이 이루어졌고, 학생들은 주로 메신저를 통해 소통하며 각자가 맡은 업무를 진행했다.

 

서강인의 라디오 60Hz : 서강의 주파수를 맞추다
‘사랑’, ‘우정’ 그리고 우리들의 ‘일상’ 이야기

 

  콘서트는 최고은 씨의 <Listen to the radio> 곡으로 시작을 알렸다. 이 공연은 코로나로 인해 힘들어했던 서강인들을 위한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담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서강인의 라디오: 60Hz(헤르츠) : 서강의 주파수를 맞추다>라는 테마로 열린 공연은 관객들의 사연으로 구성했다. 1부의 사연은 ‘사랑’, ‘우정’, ‘일상’ 순으로 이어졌다. 첫 곡이 끝난 후 테이블에 마주한 사회자와 뮤지션의 첫 대화의 주제는 ‘사랑’이었다. 사회자인 이범승(서강대 15학번)가 첫 번째 사연 주인공의 닉네임을 읽자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회자는 “천국에서 온 천사의 편지”라고 말했다.

 

닉네임 <솔로천국 커플지옥>: 

 

  “저는 스물세살 모태솔로입니다. 저랑 친한 친구들이 요즘 다 연애 중인데 맨날 저한테 연애상담을 해요. 하... 그런데 제가 연애를 해봤어야 말이죠. 친구들이 저한테 연애상담을 할 때마다 저는 마치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가 된 기분입니다. 어쨌든 전 올해도 저의 짝을 만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 괜찮아요! 다른 사람들은 다 연애하는데 나는 연애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 희귀하다, 그런 느낌인 거죠. 남들과 다르다면 외롭다고 하잖아요. 유니크해지기 위해서 이 고독을 견뎌야죠 뭐.” 

 

  사회자는 사연 주인공에게 “아직 두 달이 남았다”라고 응원했다. 최고은 씨는 “제가 딱 스물세 살에 첫 연애를 시작했다. 솔로천국 커플지옥님이 마치 영화 <클래식>을 보면 주파수를 과거로 연결하는데 제가 저에게 보내는 이야기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고은 씨는 “노래의 많은 주제가 사랑이기 때문에 노래들을 부르면서 간접적으로 사랑을 경험했고, 그 뒤로 시련을 겪으면서 깊이 교감하면서 노래를 부르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연에 어울리는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와 <ain’t no sunshine>을 불렀다. 캄캄한 객석, 핀 조명만이 뮤지션을 비추는 순간, 관객들이 함께 뮤지션을 응시하고 그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러분들에게 ‘우정’은?
“언제든지 모일 수 있는 우리가 꿈꿔왔던 우정의 정원으로”

 

  두 번째 사연은 ‘우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신입생은 코로나19 때문에 동기들 얼굴도 못 보고 집에만 있게 됐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고은 씨는 “대학 시절의 8할이 광야(서강대 록 밴드 동아리)의 활동”이라며 “시간만 나면 동방에서 광합성 한다는 핑계로 앉아있고, 친구들과 선후배가 있으면 이야기하다가 자체 휴강을 많이 해서 공부를 우정 쌓기로 대학 시절을 보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친구에 관한 이야기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고 계획을 밝히며, SNS에 “여러분들에게 우정이란 무엇인가요”라는 글을 올리고 팬들이 보낸 글을 가사로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 ‘우정의 정원으로’(공동작사: 최고은, ‘보리차 끓이는 정원사들’)라는 곡을 소개했다.

 

  최고은 씨는 ‘우정의 정원으로’라는 부분을 함께 따라부르기를 제안했고, 마스크를 쓴 관객들은 조심스럽게 노래를 따라불렀다. “어제가 남긴 사소한 약속들은/ 하나둘씩 미뤄졌지만/언제든지 모일 수 있는/우리가 꿈꿔왔던 우정의 정원으로/ 우리가 가꿔가는 우정의 정원으로/만나서 안아 줄게 우정의 정원으로”라는 가사는 현재의 맥락과 맞닿아 있었다. 최고은 씨의 기타 연주에 맞춰 관객들은 배경 영상에 나오는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불렀다.

 

“네가 있는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
불편해진 일상, 만날 수 없는 상황 속 건넨 ‘위로’

 

  이날 마지막 세 번째 사연의 주제는 ‘일상’이었다. 사연의 주인공은 엄마와 손을 잡고 공연장을 찾았다. 사연자가 작년 한 해 해외 봉사로 한국을 떠나 있는 동안 갑자기 아버지께서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셨고, 그 이후 엄마는 간이침대에서 9개월 동안 병간호를 해야 했다고 전했다. 갑작스럽게도 불편해진 일상생활이 벅차기도 했지만, 엄마는 오히려 하루하루를 긍정적으로 살아가시며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해할 자신에게 ‘딸아, 네가 있는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야 한다’라고 따듯한 위로도 해주셨다며, 엄마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이야기했다. 최고은 씨는 사연에 공감하며, “엄마가 오늘 공연장에 오셨다”라고 말했다. 최고은 씨의 어머니는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딸의 공연을 감상했다. 최고은 씨는 사연자를 위한 곡으로 <Ordinary songs>와 <Limbo in limbo> 두 곡을 선정하며 열창했다. 

 

  2부에서는 최고은 씨는 <sunrise>, <monster>, <가야>, <사랑의 축가>, <no energy>, <storm>을 불렀다. 관객들은 공연장 로비에서 나눠준 야광봉을 흔들며 무대를 감상했다. 그의 마지막 곡인 <highlander>를 끝이 나자, 관객들은 앙코르를 외쳤다. 공연이 끝난 이후 최고은 씨는 “올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서로 만나길 원하는 뮤지션과 관객이 현장에서 만날 수 없는 상황이 자꾸 일어났다”라며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당연시되었던 풍경들의 소중함과 애틋함이 매우 커졌고, 이번 공연에서 관객들을 공연장에서 맞이했을 서로의 애틋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는 변수, 아니 이제는 우리 일상의 상수가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위험 부담을 안고 공연을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을지, 또 관객들은 이 시국에 공연을 보러 와 줄까 걱정이 앞섰다. 서강대 60주년 기념 콘서트가 개최되기 바로 전날인 17일 방역 1.5단계로 격상 발표가 보도됐다. 이후 11월 19일 0시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에서 1.5단계로 올라갔다. 객석 간 거리 두기를 시행했고, 관객들은 방역 수칙을 준수했다. 공연을 준비했던 박지영 씨는 “갑자기 확진자가 늘면서 공연을 하루 앞두고 공연을 연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공연 당일까지도 기대보다는 걱정이 많았지만, 실제 공연은 온라인으로 보는 것과 차원이 다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공연이 끝나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다음날인 19일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고 보도가 나왔고, 추가 감염에 대한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공연 이후에 코로나 감염은 발생하지 않았다.

 

  코로나 시대에 한 공간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공연자와 관객이 노래를 통해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공연을 보러 간다’는 말에 담긴 ‘장소’가 주는 의미가 있었고, 몸으로 체험하는 ‘현장감’이 있었다 코로나로 잃어버렸던 관객의 목소리는 체험의 표현으로서, 뮤지션과 함께 공연을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할 수 있었다. 뮤지션과 관객의 뮤지션과 관객의 상호작용 안에서 퍼포먼스가 발생하고, 사이에 존재했다. ‘코로나 시대, 공연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라고 줄곧 뒤 따라다녔던 물음표에 ‘느낌표(!)’를 찍는 경험이었다. 


  공연장에는 콘서트에 대한 설렘과 코로나19 감염이라는 불안이 공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뮤지션과 관객이 함께 공간을 채우는 일종의 소속감을 느꼈을 것이다. 무관중의 온라인 콘서트는 물론 공연자와 시청자가 상호작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고 입체적인 공간을 네모난 화면에 납작하게 눌러버린 느낌을 받았다. 온라인 공연과 오프라인 공연의 선호도는 사람과 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온라인 공연의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오프라인 공연을 선호할 수 있고,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공연의 방식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공연자도 관객도 오프라인 공연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한 쪽이 막혀있는 상황에서는 관성의 법칙처럼 반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코로나19 무대 막이 내리고, 내년 연말에는 새로운 공연의 막이 올라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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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10. 16. 09:00

김지은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

 

 

생전 이런 비는 처음 봐. 전에는 비도 알맞게 왔고, 눈도 알맞게 왔고, 뭐든 알맞게 왔어.” 54일이라는 역대 최장의 장마기간을 기록한 폭우로 올 여름 큰 침수 피해를 입은 남원 주민의 이야기이다. 10일 동안에 연달아 세 번의 태풍이 한국을 강타했고, 지난 겨울엔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다. 한국에서만 자라는 구상나무는 지리산과 한라산에서 집단 고사하고 있고, 제주의 산호도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1,200년을 살아온 아프리카의 바오밥 나무들도 돌연 쓰러졌다. 중국에선 두 달 넘게 지속된 폭우로 한국의 인구보다 많은 기후난민이 발생했고, 지구에서 가장 춥다는 시베리아는 관측사상 최고 기온인 38도를 기록하여 과학자들의 예측보다 80년 빠르게 기온이 변하고 있다. 호주의 대규모 산불은 7개월 동안 꺼지지 않았고, 시베리아 산불에 이어 계속된 미국 서부 해안의 산불은 남한 면적의 20%에 해당하는 면적을 불태우고 있다. 지구 최대의 습지인 브라질 판타나우는 1년 째 불타고 있다. 서유럽은 40도가 넘는 폭염에 시달렸고, 미국과 중동의 일부 지역은 50도가 넘는 기온을 기록했다. 영구히 녹지 않는다는 동토층이 녹아내리면서 이산화탄소 보다 온실효과가 30배 이상인 메탄가스가 방출되고 있고, 알래스카의 빙하는 예측보다 100배 빨리 녹고 있다. 불과 며칠 전에는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에 시달리던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지역이 하루 만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폭설이 내리는 믿지 못할 기상이변이 발생했다.

 

인간과 다른 생물종들이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뭐든 알맞게 오던 기후는 이제 인간과 다른 생물종들이 적응할 수 있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면서 점점 생존할 수 없는 조건으로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까지 겹쳐 전 세계는 다중의 재난 상황에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지구 온도 상승으로 인한 기후재난의 극히 일부분이며 시작에 불과하다. 지구 평균 온도가 단 1도 상승한 것만으로도 이미 수많은 생명들이 죽었고, 생태계는 연쇄적으로 급격히 붕괴되고 있으며 이 연쇄적인 고리의 끝은 인간을 향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100년 후에나 일어날 미래의 위험도, 먼 나라 북극곰만의 문제도 아니다. 인류와 다른 생물종들에게 현재 진행중인 재앙이다.

 

지난 9일 세계자연기금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50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전세계 야생동물의 개체수가 70% 가까이 급감했다. 화석기록을 보면 지난 6억년 동안 지구에는 총 다섯 번의 생물 대멸종이 있었다고 한다. 5번의 대멸종은 대규모 화산폭발, 소행성 충돌 등 모두 자연적인 현상에 기인하였다. 대멸종 시기에 생물종의 60% 이상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을 돌이켜본다면 과학자들이 우려하고 있듯, 우리는 지금 6번째 대멸종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자연적인 원인이 아니라 오롯이 인위적인 산업자본주의 체제가 원인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절멸 위기이다.

출처: https://www.jatinverma.org/what-is-the-ongoing-sixth-massextinction

흔히들 기후위기의 원인을 인간 활동과 탐욕이라 말하고, 코로나 감염병을 중국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코로나의 뿌리는 동일하다. 산업자본주의 체제에 의한 자연과 인간, 생물종에 대한 착취가 원인이다. 기후위기의 원인을 단순히 인간의 무한한 욕망 때문이라 말하고 코로나의 원흉을 중국이라고 말하는 순간 기후위기와 코로나가 가진 계급적·착취적 속성은 숨겨지고, 그 책임의 당사자와 해결 방안은 모호해지고 무의미해진다. 세 시간을 맨발로 걸어 학교에 가는 아프리카의 어린아이와 비싼 자동차를 소유하고, 비행기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북반구 부자어른은 기후위기에 같은 부채를 가진 동일한 부류의 인간이 아니다. 중국은 감염병의 발생지일 뿐이지, 감염병의 원인이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들여다볼 수 없다면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은 계속 등장할 수 밖에 없고, 기후위기로 인해 빙하와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인류가 대응할 수 없는 바이러스가 더 빈번하게 출현하게 될 것이다.

 

지구 온도를 상승시킨 주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지난 80만년 동안 300ppm 이하를 유지해왔는데 산업혁명 이후 단 100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 무려 100ppm 이상이 증가했다. 1만년 동안 지구 평균 온도는 약 5도가 올랐지만, 인류는 산업화로 불과 100년만에 지구 온도를 1도 가까이 상승시키고 말았다. 2018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총회에서 지구 온도 2도 상승도 위험하다며, 상승 제한폭을 1.5도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세계 각국은 올해 안에 유엔에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2050년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을 제출해야 한다. 2020년은 인류 문명과 지구 생물종의 운명에 결정적인 해이다. 세계 각국과 지방정부는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하기 시작했고,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구속력 있는 제도와 정책들을 마련하며 탈탄소 사회를 위한 전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물론 트럼프와 같이 여전히 기후위기를 부정하거나 새로운 이윤 창출 수단으로 악용하는 자본가와 기득계층 또한 득실하다.

 

출처: https://climate.nasa.gov/

과학자들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막지 못한다면 극한적인 기후 재난과 생물 대멸종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나아가 2도를 넘기게 된다면 인간이 모든 활동을 멈추고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후시스템은 회복력을 상실하여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IPCC2018년 특별보고서를 통해 66%의 확률로 지구 온도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억제하는데 남아있는 탄소배출총량(탄소예산)420기가톤으로 추정하였다. 이 남아있는 탄소예산을 기준으로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최소 45% 이산화탄소를 감소시키고, 2050년경에 넷제로에 도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추가적으로 배출될 탄소와 습지에서 배출될 메탄으로 배출할 탄소량은 100기가톤까지 줄어들고, 또한 이산화탄소 이외의 온실가스의 감축 수준에 따라 잔여탄소배출총량은 250기가톤까지 추정되었다. 2018년을 기준으로 남아있는 탄소예산을 250기가톤으로 추정한다면, 2020년 현재,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4년도 남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1.5도 이내로 제한할 가능성을 66%가 아닌 100%로 고려한다면 과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더군다나 IPCC의 권고 사항은 지구 스스로 온도 상승을 일으키게 되는 임계점에 대한 예측이 빠져있는 매우 보수적인 기준이다. 그린란드와 남극의 빙상 손실, 영구동토층에서의 탄소 방출, 열대우림과 산호초 서식지의 붕괴 등 예측 불가능한 수많은 기후 급변요소들을 고려한다면, 1.5도 상승은 IPCC의 예측처럼 몇 십년 후가 아니라 급격하게 일어날 가능성도 농후하다. 세계기상기구가 최근에 발표한 기후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전 지구적으로 향후 5년 동안 한 달 이상 산업화 이전보다 최소 1.5상승을 경험할 가능성이 70%에 달하는 것으로 예측됐고, 향후 5년 안에 1.5상승 확률이 20%에 이를것으로 예측됐다. 한 번 배출되면 수 백년에서 수 천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대기중에 머무르는 온실가스의 속성 때문에 그야말로 지금 당장 모든 온실가스 배출을 중단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긴급하고, 위중한 비상 사태이다. 심지어 2018년 극지연구소 북측해빙예측사업단의 책임연구원은 지금은 탄소 배출 제로만으로도 부족하고, 오히려 마이너스 배출로 대기중의 탄소를 땅속으로 포집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1.5도 상승은 생태계에 결코 안전한 목표가 아닌 것이다. 또한 과연 1.5도라는 온도가 우리가 목표로 삼고 수용해야 할 온도인지도 의문이다. 0.5도 온도가 상승되는 동안 희생될 생명들을 누가, 무슨 권리로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뜨거워진 지구 속에서 극한적인 기상현상과 기상이변은 더 빈번해지고 강해질 것이며 일상화 된 폭우와 폭염, 가뭄과 기근, 태풍, 산불의 연쇄 고리 속에 인간 뿐 아니라 수많은 생물종들이 생존기반과 목숨을 잃을 것이다. 곳곳에서 분쟁과 폭력, 전쟁이 이어질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한국 정부와 정치권, 기업들은 비상사태에 걸맞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과감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기후위기를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서 발표한 그린뉴딜에는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계획과 배출제로 목표설정이 빠져있다. 더군다나 기후 위기가 많은 사람들의 생존과 직결된 농업부문에서 가장 먼저 심각한 피해와 희생을 불러옴에도 불구하고, 농업부문의 대책이라는 것이 고작 디지털 인프라 구축작업에 태양광 설치, 공공와이파이 공급이 전부이다. 기후위기는 곧 농업의 위기이자, 먹을거리의 부족과 직결되는 생존의 위기이다. 한국은 OECD 34개국 중 식량자급률이 32위로 최하위에 속한다. 쌀을 제외한 식량자급률 8.9%, 사료를 포함한 곡물자급률이 3.1% 밖에 되지 않아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 부족에 가장 먼저 심각한 충격을 받을 국가 중 하나이다.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산업과 일자리를 어떻게 정의로웁게 전환시킬 것인지, 교통부문과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어떻게 감축할 것인지 고민도 제대로 된 계획도 없다. 공기업인 한전은 해외 석탄발전 투자를 강행하고 있다. 여전히 경제성장이 제일 중요한 목표인 그린뉴딜은 대기업과 기득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의롭지 못한 정책일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를 진짜 위기로 인식하지 않는 안일함과 절망만을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자연과 인간을 끊임없이 착취해 온 산업자본주의체제, 인간중심주의, 원자론적세계관, 성장중심주의, 개발주의, 우월주의이다. 문제의 원인에 대한 절실한 성찰과 전환 없이 에너지원을 재생에너지로 바꾸고, 내연차를 전기차로 바꾸는 등의 기술적인 수단만으로는 기후위기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기술적 처방은 또 다른 배제와 차별, 위험을 가져올 뿐이며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생산 규모와 소비 규모를 유지하는 걸 전제하고, 경제성장도 지속하면서 기후위기도 막을 수 있다고 말하는 건 기만이다. 그런 건 이제 불가능하다. 유한한 자연적 수용성 안에서 성장은 이제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윤리적인 한계에 이르렀다.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기후위기를 막으면서 불평등과 경제위기 등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그린뉴딜은 사기 정책이다. 이제 그만 성장할 수도, 성장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성장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자.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 역시 그저 마스크를 쓰고 방역을 철저히 하고, 지원금 몇 만원 등의 일시적인 대응 수단만으로 결코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를 불러오고 확산시킨 산업자본주의의 자연 착취, 야생동물의 거래와 서식지 침범, 자본주의 축산업, 세계화, 신자유주의 무역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기후위기로 인한 감염병은 더 빈번히 발생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에게 돌아가 희생과 불평등을 더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출처: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세계은행 (https://newsroom.posco.com/kr 2019년 11월 29일 포스코 에코 리포트에서 재인용)  

 

우리는 기후위기를 불러온 산업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용기를 내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계급차별, 종차별, 성차별, 세대차별, 지역차별을 넘어 더 좋은 세상을 요청한다. 생산수단과 자본을 독점한 자본가의 이윤증식을 위한 자연과 인간, 생물종에 대한 모든 착취와 지배를 끝내야 한다. 기후위기가 가진 계급적 속성을 외면하고, 성찰하지 않고, 벗어나지 않는다면 제일 약하고 가난한 생명들부터 희생당하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개발하지 않고, 성장하지 않고 지구상의 많은 생명들과 새로이 관계 맺으며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적극 찾아야 한다.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고 폐기하는 단절된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에너지 생산과 물질 생산이 남긴 쓰레기와 위험, 부담을 약자와 지역, 비인간 생물종, 미래 세대에게 끊임 없이 외부화시키고 전가하는 무책임한 구조를 바로 잡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규정하는 것처럼 무한한 욕망을 가진 탐욕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무한 경쟁과 욕망은 우리의 본성이 아니며 자본가가 필요로 하는 허상이다. 지구에는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결코 만물의 영장이 아니며, 우리에겐 어떤 생물종도 지배하고 착취할 권리가 없다.

 

석탄발전소와 핵발전소를 모두 멈추어야 한다. 제주도·새만금 신공항 사업, 대규모 간척사업,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 등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의 모든 국가 폭력과 개발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 전혀 정의롭지 못한 방식으로, 지역주민을 무시하고 대규모 생태계 파괴를 가져올 대규모 중앙집중식 에너지사업을 멈추어야 한다. 자동차 이용을 과감하게 줄일 수 있도록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할 대중교통 체계를 급직적으로 확대하고, 자동차 도로를 과감하게 줄여 누구나 안전하고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 길로 전환해야 한다. 전세계 모든 교통수단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온실가스가 축산업이라는 단일 산업에서 나오고 있다. 정부는 동물들을 가혹하게 착취하고 온실가스를 내뿜는 공장식 축산을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고기중독 한국의 식생활이 채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촉구해야 한다. 생산수단과 생산규모를 자본가와 권력가가 아닌 노동자와 농민,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이 민주적으로 조절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 산업과 일자리가 정의롭게 전환될 수 있도록 소규모 지역 공동체 안에서 필요한 만큼만 적당히 생산하고 나누며 자급하고 자족하고 순환될 수 있도록 농업과 물질 생산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구조를 창발해야 한다. 먹을거리, 주거, 의료, 에너지, 교통, 교육 등을 시장의 상품이 아닌 공공의 영역에서 평등하고 안전하게 보장되고 나눌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소비하기 위해 자본주의 이윤체제에 저당잡혀야 했던 우리의 노동과 존엄, 자연의 가치를 되살려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자본주의체제를 선택한 것이 아니며 이 체제는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면 바꿔야 하고, 우리는 다르게 살기로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이 생존을 위협하고, 더구나 잘못과 책임이 거의 없이 가난한 이들과 지역, 어린이, 청소년, 태어날 미래세대, 비인간 생물종들의 생존을 위협하며 부담과 희생을 전가하는 잘못된 체제라면 더더욱 바꿔야 한다. 그것은 단지 생존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넘어선 자본주의 체제에게 박탈당한 사랑과 공감의 복원이다.

 

끊임없는 성장과 개발, 발전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하는 사회가 아니라,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의 수용성 안에서 생명과 기쁨, 관계, 우애, 평화, 정의가 중심 가치가 되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 지구는 없다. 경제성장도 지속하면서 기후붕괴를 막을 수 있을 만큼 여유롭고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다. 기후위기에 중간은 없다. 자연은 타협하지 않다. 대기 과학자인 조천호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구에 의존적이지만, 지구는 우리에게 의존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제 우리는 대규모 생물종의 절멸위기를 가져온 기존의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엄청난 도전과 역사적인 기로에 서있다. 우리에겐 절망과 포기, 부정 대신 새로운 세상을 디딜 용기와 연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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