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9.04.30 00:25

“이미 늦었어요.”라는 말이 싫지만 느려지고 싶은 당신에게

 

송혜현 _ 건국대 중국어학과 졸업

 

<1>

언젠가 지하철에서 봤다. 어느 지역의 슬로라이프 국제대회 광고. 이 대회에서 소개하는 슬로라이프는 ‘제 속도의 생활미학’이라고 한다. ‘슬로’는 느리고, 오래된 것, 특히 사라져가는 음식, 환경, 전통의 가치를 대변하지만 일상에서의 생활은 느림과 빠름이 공존하므로 슬로라이프는 그러한 일상을 직시하고 빠름과 느림의 공존을 지향하는 사회라며, 대립이 아닌 균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그들은 ‘슬로’에 해당하는 가치들로 분야를 나누어 대결을 펼친다. 누가 가장 슬로라이프에 적합한지 겨룬다. 아마 이런 것이 균형인가. 참된 공존?

괜한 이질감에 사로잡혔다. 내가 알던 슬로라이프는 과연 무엇이었길래 ‘슬로라이프’로 대회를 열어 경쟁을 한다는 것이 이토록 어색하게 다가온 걸까.

‘슬로라이프’와 ‘대회’가 양립가능한 개념이었던가? 대회라는 단어는 경쟁, 속도, 순위와 그것에 따른 물질적 보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슬로라이프는? 그 반대의 개념이 떠오른다. 일본의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 쓰지 신이치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1]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비판하며” 슬로라이프 운동을 주창하였다. 시간적 개념에 대한 느림을 선언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반발하고, 인간성을 회복하려 한다. 현대사회에서 느림과 빠름, 슬로라이프와 자본주의.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가?

 

<2>

이 공존을 짚어보기 위해 먼저 슬로라이프가 제어하고자 하는 시간을 살펴보기로 한다. 자본주의 시대에 도래하여 파생된 다양한 문제점들이 그 속도감에서 기인했으며, 슬로라이프는 이것에 중점을 맞추고, 현대의 시간 개념을 거스르려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시간은 금이다. 곧 시간은 돈인 것이다. 19세기 초 영국 소설가 리턴 남작의 <돈>에서 처음 언급된 이 말은, 당시 영국의 초기 산업자본주의를 반영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 일하느냐,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일하는가에 따라 노동자들이 손에 쥐는 돈의 양도 달라졌다.[2] 정보자본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현재, 시간은 그 영향력이 더욱 커져 자본시장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전제 조건이다. 이른바 표준시간 체제는 국제 금융 거래의 대부분이 데이터베이스화된 화폐로 처리되는 현실에서 상호 환산 불가능한 복수의 시간 체계가 이 시스템에 동시에 공존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자본은 초코드화된 거대한 단일 시간 체제를 유지한다.[3] 이러한 시간 체제 안에서 슬로라이프의 느림은 모순적일 수 밖에 없다.

슬로라이프를 대표하는 지역인 슬로시티는 하나의 관광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해당 지역은 관광수입으로 그 명맥을 이어간다. 끊임없이 관리 되어야만 하는 조경, 만들어진 도보여행 코스, 특정한 테마로 조성된 마을. 그리고 이런 것들을 체험하는 도중 휴대폰 어플로 길을 찾고, 신용카드로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결제하는 당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슬로시티에서 ‘느림’을 체험하고, 또 다른 체험을 위해 다시 돈벌이에 나선다. 결국 이곳의 ‘느림’은 외지에서 찾아올 관광객들을 위해 애써 조율된 느림이며, 오늘날의 시간을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자본이 허락한 속도와 리듬에 구속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느림이 슬로라이프가 추구하는 본연의 느림이 맞는지 의문이 남는다.

앞서 언급한 시간뿐 아니라 city, 즉 도시라는 공간도 자본주의와 뗄 수 없는 개념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의 생산에 바탕을 둔 도시 산업경제를 전제로 발달했다. 막스 베버의 설명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도시들이 있었지만, 중세 말기 서구의 도시가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발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이후 산업구조의 고도화 및 인구의 급속한 증가를 가능하게 하면서 자본주의 발전의 장 또는 자본 축적을 위한 건조환경을 제공했던 도시의 발달이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존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4] 따라서 슬로시티라는 개념은 애초에 형용모순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 개념을 받아들이려면, 슬로시티를 도시성이 완전히 관여하지 않는 공간이 아니라 도시이지만 다른 층위의 공간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공간이 과연 슬로라이프를 온전히 담아 낼 수 있는가? 또한 기존의 도시화라는 개념아래 도시와 도시가 아닌 곳으로 구분되던 공간이 슬로시티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은 물리적 거리나 행정 구획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정보자본주의의 그물망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것은 결국 슬로시티가 이러한 질서에 지배를 받고 있다는 뜻은 아닌가?

이러한 현대의 시공간 속에서 슬로라이프의 주창자 쓰지 신이치는 세가지 차원의 슬로무브먼트를 통해 슬로라이프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개인에서 시작해 공동체를 거쳐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되어 글로벌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시적, 제도적 차원에서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슬로무브먼트는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추구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동시에 일어날 ‘글로벌’한 변화를 위해서 오늘날의 인터넷과 기술로 인한 네트워크의 수혜를 받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결국 현대사회가 마련해두고 있는 여러 문명의 이기들, 즉 휴대폰이나 컴퓨터, 인터넷처럼 견제해야만 하는 문명의 장치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5] 슬로라이프가 거부해야 하는 것들을, 슬로라이프 유지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의 여성 인구학자인 도넬라 메도우즈는 쓰지 신이치에게 보낸 글에서 천천히 산다는 것(슬로라이프)은 최신 기술개발을 위해 쏟아 붓는 막대한 에너지나 원료 등을 소비하지 않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글로벌 네트워크 차원의 슬로라이프 운동을 하자면서 이러한 기술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가.

 물론 이윤과 성과, 그것에 따른 계층화의 모순도 발견할 수 있다. 슬로시티가 관광수입을 얻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목할 점은 슬로시티는 5년마다 진행되는 자격검증을 통해 슬로시티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박탈 당한다는 것이다. 슬로라이프는 평가 당하고 있으며, 자격 유지를 목적으로 해당 지역은 타지역과 ‘슬로라이프’ 경쟁을 하고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2018 국제 슬로시티 어워드>수상의 영광은 전주시에 돌아갔다. 올해 우리나라의 1등 슬로라이프 도시는 전주인 것이다.

 

<3>

이렇듯 자본주의 안에서 슬로라이프는 모순을 껴안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슬로라이프는 이미 현대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았으며, 이러한 이유로 그 자체가 가진 모순을 정당화할 수 있다. 슬로라이프를 문화산업의 일환으로 바라본다면 공존을 인정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1999년 시애틀 시위를 취재한 핼 헤밀턴은 말한다. “시장 교환의 논리에 [6]지배 받게 된 문화 속에서 모든 것은 상품화된다. 우리의 시간도, 지식도, 바라보는 경치도, 물과 음식물도 마찬가지다.”[7]

20세기 초중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 의해 ‘문화산업’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그들은 대중문화 생산자들이 그 수용자들을 기만해 문화산업의 지배 논리에 수동적으로 복종시키며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비판력을 상실하도록 유도한다고 주장하였다.[8] 아도르노는 문화 산업이라는 용어를 통해 오늘날의 문화가 철저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비즈니스가 되었음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9] 이때까지만 해도 문화와 산업이라는 모순적 상생을 비판하는 측면이 강했다.

문화와 산업, 문화산업이라는 단어 자체부터 모순적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문화는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그것을 구분하려는 것은 서양 중심적인 사고이며 야만적 사고라고 말했다. 결국 문화란 정신적 가치를 창조하는 인간의 총체적 활동의 결과이기에 동양의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반면, 산업은 우열을 가릴 수 있다. 문화라는 정신적 가치와 산업이라는 물질적 가치는 서로 조화하기보다는 대립적이고 분리된 기표로 인식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산업 구조가 고도화하고 대중의 소비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문화적 욕구는 확대되고, 문화를 경제활동의 대상으로 삼아 산업화되었다[10]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문화산업은 초기의 부정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상품성을 인정하는 측면이 강하다. 문화의 산업화가 예술과 문화자체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이냐, 그렇지 않느냐의 논의에서 벗어나 21세기 현재에는 문화 산업의 흐름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이동연 문화자본의 시대-한국 문화자본의 형성 원리에 따르면 “문화산업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정의했던 범주를 훨씬 넘어서 대중매체, 엔터테인먼트, 여가, 라이프스타일, 관광, 정보, 커뮤니케이션 분야로 확대” 되어 왔기에 문화산업 자체를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시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이렇게 문화 혹은 예술과 자본과의 관계는 21세기에 들어서서 다각도에서 고찰될 필요가 있다. [11]

슬로라이프는 이미 문화적 가치를 갖고 문화산업에 활용되는 문화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미디어의 발전으로 문화상품은 멀티미디어라는 기능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미디어에서는 다른 종류의 삶을 보여주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도록 돕는 비상탈출 버튼의 역할[12]을 하는 콘텐츠로 슬로라이프를 소개한다. 삶을 옥죄는 성장 압박과 과도한 속도 경쟁에 대한 일종의 반발심리로,[13] 각박한 삶에서 잠시나마 숨 돌릴 틈을 주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문화의 확장으로 등장한 슬로시티는 결국 슬로라이프라고 불리는 느림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생활문화가 실현될 수 있는 공간 중 하나이다. 고도 산업사회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도시 생활에 있어 새로운 창조적인 문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나타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도시 개념이 바로 슬로시티인 것이다[14]

슬로라이프의 개념 역시 이에 따라 재해석해봄직하다. 현재 대다수의 사람들이 중요시 하는 속도의 경제를 무시한 채 느림의 생활문화로 모든 것을 대체 하자는 것이 아니라 빠름과 느림, 농촌과 도시, 로컬과 글로벌, 아날로그와 디지털 간의 조화로운 삶의 리듬을 지키자는 의미[15]로서의 슬로라이프라면, 어느 정도의 아이러니 또한 좋지 아니한가? ‘슬로’라는 단어 자체의 원 의미에 매몰되기 보다는 ‘빠르다’는 이유로 생성되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조화롭게 상쇄하자는 의미로 확장시켜 생각해야 하며 ‘느리다’는 것은 ‘빠르다’의 반의어로써, 상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4>

 자본주의사회에서 목적과 속도를 잃어버리면 금세 도태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로라이프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조금 잃어도 되는 사람들, 조금 뒤쳐져도 되는 사람들, 즉 대개는 기득권자들이다. ‘느림’은 현대 문명에 대한 명백한 대안이라기보다는 배부른 자유주의자들의 자족적인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16]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슬로시티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73.7%가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들에게 슬로시티가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슬로시티에 가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될 것 같다는 의견도 55.7%로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전체 74.1%가 방문객이 많아지면, 결국 본래의 의미가 많이 변질 될 것이라고 응답했으며,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것 같아 우려된다(67%)는 지적과 40.5%는 결국 지역 홍보 및 마케팅 수단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도 가지고 있었다.[17] 슬로라이프를 원하는 사람들도 슬로라이프가 지속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 지를 걱정한다. 슬로라이프가 자본주의와 공존하는 방법은 이렇듯 기대와 우려를 낳는다.

그러나 쓰지 신이치는 말한다. “인생은 모순덩어리 아닙니까! 우리는 어차피 이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님이 좌선을 하며 깊은 성찰에 심취해 있는 동안에도 그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모순을 안고 있으면서도 이 세계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조그만 것이라도 발견해서 실천하려는 노력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릅니다.”[18]

 


 

[1] 이때 말하는 자본주의 논리는 자본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이를테면 경쟁, 성과, 경제, 계급, 이윤 등. 쓰지 신이치는 자신의 책에서 이것들과 대응하는 슬로라이프 운동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2] 변현단, <소박한 미래: 자급자족을 위한 農 철학 이야기>, 들녘, 2014,

[3] 임태훈, <검색되지 않을 자유>, 알마, 2014

[4] 최병두, 아시아 자본주의 발달과 도시, 2005

[5] EBS 지식채널, <지식e season5>, 북하우스, 2009

[6] 자본주의의 경제 논리

[7] 쓰지 신이치, <슬로 이즈 뷰티풀>, p65

[8] 이동연 외 공저, <누가 문화자본을 지배하는가? 한국 문화산업의 독점구조>, 문화과학사, 2015,

[9] 김평수, <문화산업의 기초이론>,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10] 9와 동일

[11] 9와 동일

[12] 김교석, [세상 속 컬처랜드]비상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 욜로를 로망하다, 경향신문, 2017.04.21.

[13] 장원석, 우리는 왜 삼시세끼에 열광했을까?, 중앙시사매거진, 2015.05.25.

[14] 손대현 장희정 <슬로 시티에 취하다>, 2012, 조선앤북

[15] 손대현 장희정, <슬로매니지먼트>, 2012, 조선매거진

[16] 8과 동일

[17] 트렌드모니터, 2014 슬로시티 관련 인식 조사

[18] 5와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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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9.04.30 00:19

협업을 통한 시각예술과 VR의 융합

- 작품 <VR - Liquid Nostalgia 5> -

 

Tiffany Lee (이승연) _ 시각예술가, 국민대 미술학과 회화전공 박사과정

 

연구자이자 작가인 본인은 2017년부터 디지털 매체를 이용하여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이후 이 작업을 선보이기 위한 개인전을 준비하며 협업 연구를 진행하였다. 오늘날 작가는 전통적인 작가들처럼 홀로 수행하듯 진행하는 작업방식을 넘어 다양한 장르 및 매체와 소통하며 작품과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글은 본인 작업의 주요 개념과 함께 VR 분야와의 협업 연구를 통해 제작된 <VR - Liquid Nostalgia 5>에 대해 설명하며, 장르 간 융합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 작업의 주요 개념

본인은 2012년부터 일상적 기호를 재전유re-appropriation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일상적 기호들을 퍼스의 기호학에 따라 도상, 지표, 상징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 이를 기존의 맥락에서 벗어나게 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다. 포스트 콜로니얼 문예 연구에서 중요한 문화비평 용어 중 하나인 재전유는 어떤 기호가 놓여 있는 맥락을 변경함으로써 그 기호를 다른 기호로 작용하게 하거나 다른 의미로 바뀌게 하는 행위를 수반하는 것을 뜻한다. 이 용어는 점차 문화연구 전반으로 확대 사용되고 있다. 본인은 재전유 개념을 시각예술에서의 방법론으로 적용하여 사유 확장을 위한 시공간의 틈을 생성하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본인 작업에서 ‘기호의 재전유’ 방식은 이미 고정된 의미작용이 이뤄지고 있는 기호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 의미가 가진 문맥 또는 맥락을 변화시켜 또 다른 의미의 관점을 제시하여 사유를 확장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최종적으로 아도르노(Theodor Adorno, 1903-1969)의 질문처럼 “물신화 현상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완전한 자유와 해방이 가능한가?”라는 광범위한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일부이다.

 

Tiffany Lee <Liquid Nostalgia 1> digital drawing, 2018

 

Tiffany Lee <Liquid Nostalgia 5> digital drawing, 2018

 

 

■ 리퀴드 노스탤지어 시리즈 Liquid Nostalgia Series

2018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리퀴드 노스탤지어> 시리즈 역시 기호(사진 지표)를 재전유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작업이다. 이 시리즈는 구글 지도Google Maps의 스트리트 뷰Street View 서비스가 제공하는 거리 사진에서 출발하였다. 2005년에 제작된 구글 지도는 스마트폰으로 길을 찾고 위치를 파악하는 데 있어 이미 표준처럼 자리 잡았다. 현대인에게 일상적 미디어가 된 셈이다. 일상적 미디어로서의 구글 스트리트 뷰는 실용, 추억, 호기심 등의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본인은 구글 스트리트 뷰가 제공하는 거리 풍경들을 사진 지표론에 따라 하나의 지표기호로 보고, 바르트의 사진론을 적용하여 이 사진들이 불러오는 감수성에 대해 고찰하였다.

구글 스트리트 뷰는 360도 카메라를 사용하여 실제 땅에 선 사람이 건물을 보는 각도로 거리를 촬영한 후, 이 사진들의 재조합을 통해 3D처럼 재현한다. 사용자는 이러한 디스플레이 시스템 안에서 방향 버튼의 클릭을 통해 이동할 수 있다. 세계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거리는 명백히 현재의 거리가 아닌, 과거 어느 시점에 찍힌 모습이다. 실제로 현재 그 거리의 풍경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보장하지 않는다. 과거의 모습들로 때로는 조악하게 조립된 이 거리에서 본인은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가 이야기한 사진의 우울 그리고 밋밋한 죽음을 느꼈다. 이는 이 지도에 사용된 사진들이 하나의 지표기호로서 그가 말한 사진의 노에마noema “그것은-존재-했음”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 지도 시스템의 거리 위에서 사용자는 공간을 이동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지만 실은 2D인 사진의 조합이므로 그곳에는 어떠한 실제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 지도의 거리에 “비현대적인(비시사적인) 수수께끼 같은 지점, 이상한 정지, 정지의 본질 자체 같은” 것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감정은 그 안을 돌아다니는 본인에게 노스탤지어로 다가왔다.

이후 스트리트뷰가 제공한 거리풍경들 위에 아이패드iPad와 애플팬슬Apple Pencil을 사용하여 디지털 드로잉 연작을 제작하였다. 디지털 드로잉 풍경은 구글 스트리트 뷰(기호)를 재전유하는 과정에서의 형태 왜곡, 색상 왜곡을 통해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보다 선명한 색 표현을 위해 디지털 드로잉을 RGB 방식으로 제작하고, 색감의 생생한 재현을 위해 모니터, 디지털 액자, TV, 프로젝터 등의 디스플레이 매체들을 사용하여 설치하였다. 이러한 과정으로 실제 명백히 ‘존재했었던’ 장소들은 그 본래의 지시대상과 목적성을 잃고 작가의 초현실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그리고 재전유된 공간에서 ‘일상적 미디어(구글 스트리트 뷰)는 우리가 현존하는 세계에 대해 얼마만큼 어떻게 진실한가?’라는 의심쩍은 물음을 던진다.

 

<VR - Liquid Nostalgia 5> 협업연구 과정

 

Tiffany Lee, <VR - Liquid Nostalgia 5>, VR 녹화 영상 캡처, 2018

 

 

■ 디지털 드로잉을 가상현실로 : 작품 <VR - Liquid Nostalgia 5>

작품 <VR - Liquid Nostalgia 5>는 2D로 제작된 디지털 드로잉 <Liquid Nostalgia 5>을 서강대학교 아트&테크놀로지학과 박시은 연구원과 함께 3D 가상현실 VR(Virtual Reality)로 구현한 작업이다. 정지된 이미지가 보다 직접적인 초현실적인 공간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시각예술 작가와 VR 테크놀로지 연구원이 협업한 것이다. 이 작업은 2018년 12월 후쿠오카 art space tetra에서 열린 전시 <Tiffany Lee Solo Show - Liquid Nostalgia>에서 녹화된 영상의 형태로 전시되었다.

이 작업의 특징은 부동의 디지털 이미지와는 다르게 감상자와 상호작용한다는 점이다. 감상자들은 기존의 회화적 감상법처럼 수동적으로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HMD(head mounted display)를 착용한 채 디바이스Device를 작동하여 보다 능동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가상현실에 단순히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작으로 움직임을 가하며 화면에 구현된 것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장비를 착용하고 작동하며 돌아다니는 동안 사물들과 마주치게 되는데, 이때 공간 안의 몇몇 사물들은 센서에 의해 소리나 빛으로 반응한다. 예를 들면 공간의 가운데에 위치한 빨간 공중전화 부스에 가까이 다가가면 센서등이 켜지는 것처럼 조명이 켜지며, 왼편에 위치한 나무 근처로 가면 나무 속에 숨어있던 까마귀가 놀란 듯 ‘까악까악’ 소리가 들린다. 또한 자동차 근처로 다가가면 비켜서라는 듯이 요란한 경음기 소리가 울린다. 이러한 반응 장치들은 감상자의 감각들을 다각도로 자극하며, 공간적-시간적 체험을 하게 한다.

이 작업의 또 다른 특징은 2D의 픽셀 풍경을 다시 3D로 만드는 과정에서 풍경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마치 종이처럼 납작하게 배치하였다는 것이다. 감상자는 평면에서 오려낸 납작한 사물들이 배치된 풍경 안을 돌아다닌다. 기본적으로 가상현실(VR)은 체험자의 몰입도를 최대화하기 위해 3D 사물들을 배치한다. 그러나 이 작업은 드로잉의 특징을 최대한 유지하며 사물들을 2D 그대로 배치해 연극 무대 같은 느낌을 준다. 납작한 사물들을 통해 체험자들은 실제 공간이 아님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으며, 재구성되고 조작된 세계를 돌아다닌다는 것을 전제로 두고 체험한다. 기존의 VR이 3D로 재현하며 실제 세계라고 “믿게끔 하는” 것이라면, 이 작업은 가상공간임을 전제로 두고 2D와 3D 사이의 공간을 제시한다. 이런 특수한 공간감은 디지털 드로잉이라는 평면적 회화 매체와 마땅히 3D로 재현되어야 할 VR 매체의 혼용을 통해 각각의 매체가 가진 고유의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그 영역을 확장한다.

또한 이 작업은 미디어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보다 친근한 미술로 다가갈 수 있다. VR이 기존에 지닌 게임적인 즐거움을 주면서 동시에 시각예술 작품에 대한 직접적 감상이 이루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HMD 착용 여부에 따라 감상자들은 현실과 상상 풍경의 경계를 자유롭게 드나든다. 눈에 착용하는 비교적 간단한 장치로 현실과 가상세계를 오고 가는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실재와 환영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게임적인 즐거움을 통한 재전유된 풍경의 직접 체험은 이러한 사고 과정으로 유도함으로써 구글 스트리트 뷰(미디어)가 제공하는 풍경 사진의 지시대상과 목적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고찰해보기를 권유한다.

작품 <VR - Liquid Nostalgia 5>는 게임과 교육 분야에서 가장 먼저 응용된 VR을 본인의 디지털 드로잉과 접목해 시각 예술 분야에서의 새로운 감상 경험으로 제시해보려는 협업 연구였다. 시각예술은 오랜 역사 동안 그리고 최근에는 더욱이 기술과 융합해왔다. 키네틱 아트, 비디오 아트, 뉴미디어 아트 등은 이미 미술사에서 하나의 견고한 장르가 되었으며, 동시대 미술에서는 최신기술을 적용한 작품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융합은 각각의 매체를 재해석하며 그 고유의 영역을 확장 시켜나간다. 본인 역시 최근 주목받는 VR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그동안의 평면과 설치 형식들을 넘어 보다 확장된 예술적 실험을 할 수 있었다. 디지털 회화와 VR이 융합된 이 작업은 성찰적 기능과 상상적 즐거움이 공존하는 효과적 실험이었다. 앞으로도 협업 연구를 지속해가며 작업을 통해 동시대 사회와 삶에 대한 보다 넓은 통찰을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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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9.04.29 23:59

라운드테이블

<각 전공분야에서 학계 간 융합을 바라보는 관점> 

 

진행 및 기록 : 박시은 서강대학교 대학원신문 편집장

토    론 : 안근영 미디어학과(05BOX 감독)

이찬주 신문방송학과

박지현 아트&테크놀로지학과

박연주 행정학과

이승은 서강대학교 대학원신문 편집위원

전건웅 서강대학교 대학원신문 수습편집위원

 

이번 라운드테이블은 서강대학원신문 148호의 주제 ‘융합’이란 키워드와 함께 기획된 ‘각 전공분야에서 학계 간 융합을 바라보는 관점’을 알아보며 진행해보고자 한다. ‘융합’이라는 단어 자체가 전공 분야에 따라 익숙하게 다가올 수도 있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학계간의 융합을 해야 한다고 배우며 공부하고 있지만, 기술 중심의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기술에 대해서만 융합을 강조하고 있다. ‘코딩(Coding) 교육’이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융합인재’를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코딩처럼 기술을 하나쯤은 배워야 한다는 생각, 부담감을 느낀 적이 있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전공자들의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었다. 융합이라는 용어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있는지 먼저 코딩에 대해서 운을 띄어보았다.

 

박시은(이하 신문사)> 융합을 각 전공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우선 ‘코딩’과 관련이 없는 비전공자 같은 경우, 기술에 대한 융합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코딩’을 배워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토론자분들께 코딩을 경험해 본적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박연주> 저는 코딩에 대해 전혀 생각도, 접해볼 경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행정학과가 사회과학계열, 문과 쪽에 가깝다 보니까 코딩을 배우지 않습니다. 이제 대학교 학부생 1, 2학년 같은 경우 코딩을 필수 과목으로 배워야한다고 하는데, 저까지만 해도 그런 제도가 없어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안근영> 코딩을 할 줄은 잘 모릅니다. 미디어아트 만들 때 기본적으로 프로세싱을 다뤄본 적은 있습니다. 그래서 코딩이 뭔지는 알지만 굳이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습니다. 코딩을 배우면 당연히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서 좋긴 하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작품을 만들거나 기획할 때 코딩을 잘하는 사람을 섭외합니다. 섭외할 때 이야기를 나누면서 실현이 가능한지 물어봅니다. 다시 말하자면, 코딩의 기본적인 것은 아는 상태에서 접근하는 거죠.

 

이승은> 우연한 기회에 과목을 수강하면서 코딩을 접했습니다. 1학기 때는 코딩의 중요성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듣다가, 수업을 들을수록 비전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배워두면 확실히 쓸모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능동적으로 코딩을 배우는 것에 임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빅데이터 자격증도 같이 준비하고, 스터디도 하게 됐습니다.

 

전건웅> 융합이라고 한다면, 제가 생각할 때는 어떤 분야든 합치면 융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에서나 학교에서는 기술적인 프로그래밍이라든지 기계를 다룰 줄 아는 기술적인 융합만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공부와는 맞지 않고, 저한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대학원에서는 전부 프로그램을 다루고, 빅데이터에서도 융합을 해야 한다는 게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이걸 꼭 해야 하나?’, ‘왜 해야 하지?’라는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신문사> 코딩을 주로 배우는 전공자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박지현> 컴퓨터공학과를 전공했지만, 처음에는 성적에 맞춰서 전공을 선택했기 때문에 코딩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학과에서는 C언어부터 가르치는데 어려웠지만 하다보니까 적응이 된 거죠. 대학원 올 때는 코딩 말고 다른 쪽을 하고 싶어서 선택한 게 아텍이였습니다. 그런데 아텍에서 코딩을 하면서 코딩이 저랑 잘 맞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부에서 코딩 교육을 내세우고 있는데, 저 학부 때 코딩 교육이 들어왔어요. 그때 제가 무용과 조교로 들어가서 코딩 교육을 했었습니다. 코딩 교육의 목적이 비전공자들에게 ‘컴퓨팅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건데, 지금 코딩을 무조건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문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융합이라는 것이 꼭 그 기술을 갖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면 되는 거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인문사회 쪽 소양이 없으니까 그러한 소양을 가지려 하는 것이고, 비전공자는 컴퓨팅적 사고를 가져서 어떠한 흐름으로 되는지, 이렇게 서로 이해하는 게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안근영> 컴퓨팅적 사고란 무엇인가요? 컴퓨팅적 사고가 컴퓨터를 다룰 때 언어 능력의 차원에서 얘기하는 건지 더 나아가서 다른 방식을 얘기하는 건가요?

 

박지현> 영어권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언어를 접하는 것처럼 코딩을 하는 이유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사건을 풀어나가는 구조나 문제를 접근하는 사고방식이 서로 다를 수 있는데, 컴퓨팅적 사고는 한마디로 알고리즘 사고라 보시면 돼요. 언어적인 측면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예를 들면, C언어만 배워도 다른 언어를 접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언어 체계, 흐름이 비슷하기 때문이죠. 알고리즘을 짰을 때 이것도 언어기 때문에 사고의 순서가 있습니다. 이를 이해할 줄 아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거죠.

 

신문사> 실제 삶에서 어떤 문제가 나에게 주어졌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죠?

 

박지현> 네. 저희 영역뿐 만 아니라 다 같이 무언가를 이야기 할 때, 서로 접근 방법이 다른 거죠. 저의 예를 들자면 지난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세 명이 있었는데 굳이 (분야를) 나누자면 문과, 이과, 예체능이었거든요. 문제 정의를 내리고 풀어나가는 진행 단계에서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찬주> 저는 정부나 대학에서 중점적으로 기술 위주의 융합을 강조하는 것에 비판적인 입장과는 다릅니다. 물론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무비판적으로 무용과 학생에게 코딩을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여기 와서 느낀 것은, 융합이라는 게 종류가 여러 가지잖아요. 어떤 지식과 지식의 융합이라든지, 사회학과 물리학의 융합 이런 식이죠. 이러한 융합은 두 영역의 도메인 지식을 다 알아야지만 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융합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기술을 이렇게 까지 강조하는 게, 인문사회 계열에서 시작할 수 있는 융합의 가장 기초가 그 전공자의 도메인 지식에 방법의 융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학부 때 R이 어려워서 포기를 했었습니다. 대학원와서 다시 R을 배우면서 텍스트 마이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데이터 마이닝도 할 수 있게 되고, 그러다 보니 그 전에는 회기 분석, 내용 분석 등 전통적인 방법으로 하던 것을 그런(코딩) 역량을 갖추니까 신방과에서 다룰 수 있는 연구주제가 훨씬 더 넓어졌습니다. ‘이래서 기술을 강조하나 보다.’, ‘이래서 이것(코딩)부터 시작하라고 하나보다.’라고 느꼈습니다. 물론 문제도 있겠지만 이런 목적들이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문사> 실제로 행정학과에서의 코딩을 배워야 하는 필요성은 어느 정도나 되나요?

 

박연주> 아직까지는 전혀 필요성은 없지만, 요즘에는 초등학생들한테 코딩을 가르치거든요. 초등학교 교과과정에 있어요. 저희가 예를 들어서 ‘인터넷’에 대해서 정확히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저희끼리 다 공유하고 있는 지식과 가치가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코딩이라는 게, ‘약 20년 후쯤 되면 자연스럽게 코딩도 전체적으로 공유하는 지식과 가치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자면 저희가 한글과컴퓨터, 파워포인트도 처음 사용할 때 배우지 않아도 그냥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것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제는 초등학생부터 가르치는 이유가 초등학생들에게 코딩에 대한 기본 지식과 가치를 주입을 시켜서 나중에 그들이 저희 정도 나이가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그것을 다른 영역에 적용시켜서 사용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보니까 저도 약간의 두려움이 있는 거죠. 아직까지 코딩에 대해서 개념도 모르고, 필요성도 못 느끼고 있지만, 지금 여러분이 하는 얘기를 제가 거의 못 알아듣고 있는 것처럼 10년 후에는 인터넷을 모르는 80대, 90대 할머니처럼 나만 코딩을 못 알아듣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이 있죠.

 

전건웅> 전 기술적인 것을 강조하는 것에 비판적입니다. 이는 이윤 창출, 기업에 친화적이라 생각합니다. 취직을 하기 위해 기업에 맞춰가는 느낌이 든다는 거죠. 그것이 이제 융합이라는 걸로 포장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코딩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계속 작용하는 거죠. 어떤 반항심마저 듭니다.

 

안근영> 저희 연구실이 기본적으로 융합하는 연구실이었습니다. 뉴미디어아트라는 용어가 처음 나왔을 때가 2000년대 초중반입니다. 제가 대학원을 처음 들어갔을 때 2011년도예요. 2011년도는 인터렉티브 미디어아트가 뜨기 시작했을 때입니다. 미디어아트가 궁금해서 배우고 싶었고, 원래 전공이 영화과이기 때문에 영화를 더 잘 찍기 위해서 대학원에 들어갔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서 느낀 것은 처음에 사람들이 ‘이게 대세다’라고 했지만, 실제로 10년이 넘고 나서(2010년 초중반) 미디어아트란 용어가 이제 흔한 용어가 됐습니다.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게 되고. 미디어아트가 처음에 나왔을 때는 예술과 테크놀로지, 미디어가 결합된 융합 학문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융합으로 새로운 아트워크(Artwork)를 만드는 장르였거든요. 지금은 융합이라는 자체가 전반적으로 다른 지향으로 가고 있죠.

정부에서 말하는 융합과 코딩 교육의 문제점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지점일 거예요. 이것이 취업의 목적이고, 이윤 창출을 할 수 있는 건데,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의무교육이 되는 것도 역시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국영수과 위주로 공부하라고 배웠습니다. 원래 그 전에는 학문이라는 게 통합적으로 배웠거든요. 사실 다 배워야 합니다. 이걸 다 배워야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대학이라는 곳에 가서 세분화 시켜서 공부하는 거죠.

이게 과연 ‘지금 사람들에게 코딩이 융합적인 사고를 키우는 것인가?’라고 했을 때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융합 분야에서 인터렉티브 아트를 강조했다가 지금은 그걸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거든요. 앱 개발이라든지 이런 쪽으로만 치중을 해요. 저의 학부 사람들을 보면, 초기에는 아트, 작품을 했던 사람들이 많았어요. 설치 작품이나 시각화 작품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 후배들을 보니까 졸업 작품으로 앱 개발을 하고, 즉 취업 위주로만 생각합니다.

융합이라는 것은 간학제적 학문에서 다학문(multidisciplinary)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고, 다양한 학문적인 접점을 찾아서 새로운 사고를 해보자는 지점을 찾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게 단순하게 코딩이 융합적인 사고를 키우는 데 있어서 좋다, 나쁘다, 이런 차원은 아닌 것 같아요. 당연히 코딩은 중요한 것이고, 하면 생각이 확장되는 게 맞죠. 사회 레벨에서 말하는 융합적인 사고와, 대학에서 말하는 융합적인 사고는 간극이 항상 있어요. 근데 정부나 사회, 기업에서 말하는 측면은 그 쪽이 맞을 거예요. 그래서 코딩 교육을 강조하는 거고, 코딩을 하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건데, 그렇게 따지면 코딩을 안배우면 불안하잖아요. 사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요. 코딩을 잘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과 의사소통만 된다고 하면, 즉 컴퓨팅적 사고력만 갖고 있다면 언제든지 그것을 구현할 수 있게 소통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돼요. 그런 것에 대해서 저에게는 부담을 가지거나 조급하다는 게 사실 와 닿지 않습니다.

 

신문사>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어느 정도가 될까요? 코딩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의사소통하려면 어쨌든 그 분야에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배워야 하는 당위성은 그대로 주어지지 않을까요?

 

안근영> 어느 정도 깊이에 따라 다르겠죠. 예를 들면 제가 여러분에게 영화 용어를 쓰면서 이야기하면 못 알아들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를 일반적인 레벨까지 낮춰주고 얘기해야 하는 것인데, 어느 정도 그 개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면 이야기할 때 설명 없이 쉽게 넘어가잖아요. 그런 것처럼 코딩에 대해 기본적인 것만 알아도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는 폭은 훨씬 넓어지는 거죠.

 

이승은> 저도 역시 코딩을 하면서도 거기(기업)에 끼워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언론사에서도 데이터 분석을 할 줄 아는, 코딩을 하는 능력을 갖추길 원합니다. 융합이 언론사까지 확장된 거죠. 하지만 막상 그 능력을 갖추고 가면 실제 전통적인 언론인들의 업무를 보는 것이 아닌 뉴미디어 팀으로 빠지게 됩니다. 기자의 타이틀을 가졌지만, 데이터를 하는 사람이 됩니다. 언론고시 준비와 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능력까지 갖춰서 왔지만 이러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노동 가치가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창조경제 때부터 융합이라는 단어가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가 압박감을 받고 있지만, 이를 저항할 수는 없는 것인가, 그게 가장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항하고 싶은 입장입니다. 코딩을 배워보니까 좋기는 하지만, 속내는 얘기 나누다보니까 융합인재라는 것에 저항하고 싶은 입장인 것 같더라고요. 딜레마라는 말이 무엇인지 와 닿았습니다.

 

이건웅> 요즘 문제가 많이 되는 게, 언론사에서 영상으로 뉴스를 전달하는 뉴미디어 팀을 뽑아요. 그런데 그 팀들은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언론사는 언론사 타이틀만 주고 유튜브에서 창출되는 수익금만 임금으로 줍니다. 오히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을 팀을 만들어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팀으로 만들고, 일을 많이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저항감이 생겼고, 배울 기회는 많았지만 코딩을 일부러 안배우고 있습니다. 그래도 굉장히 불안합니다. ‘나중에 다른 분야 사람들과 얘기 나눌 때 말이 안 통하면 어떡하지?’이런 생각도 드는 거겠죠.

 

안근영> 실제로 불안한가요?

 

박연주> 네, 솔직히 불안하죠. 행정학과에서 경제학을 배운 입장에서 설명하자면, 카르텔이 붕괴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용의자의 딜레마라고 하죠. 둘이 합쳐서 최악의 경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런데 이제 최적의 효율을 얻으려면 비전공자는 그것(코딩)에 대해 저항하고 전공자는 그 분야를 깊게 연구해서 발전시켜 나가고, 비전공자는 그것을 굳이 할 필요 없이 자신의 분야를 열심히 하는 거죠. 이게 아마 사회적으로 최적의 효율을 이끌어내는 방법일 거예요.

카르텔이 붕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저희도 이제 붕괴하게 되는 거죠. 비전공자는 코딩을 배우지 않으면 불안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배우게 되고, 이제 그것을 지켜보는 다른 비전공자들도 불안하니까 같이 배우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찬주> 저는 체제에 복종하는 입장입니다.(웃음) 큰 저항감도 없었습니다. 대학원 올 때는 학문의 울림이 클 것이라 생각했으나, 이제는 졸업을 빨리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어요. 저는 사실 융합과 관련된 정책이 나오는 걸 보면서 알았죠. 기업들에서 융합을 원하는 구나. 그래서 저는 철저하게 거기에 맞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융합 쪽으로 준비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생각보다 제 방향에서는 거부감 없이 좋았습니다. 의견들을 들으면서 공감이 됐던 것이, 학계수준의 융합과 기업과 산업수준의 융합이 질적으로 많이 다르다고 하셨잖아요. 학교에서 융합을 강조하는데, 제가 하면서도 ‘이정도가 융합이라고?’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신방과에 데이터를 적용하는 게 융합이야?’ 어이없기도 했습니다.

요즘 마지막 학기 다니면서 논문을 쓰면서 (취업)원서도 넣고 있어요. 원서 쓸 때 자기소개서에 ‘신방과 전공생이면서도 데이터를 잘 다룰 줄 안다’를 어필하는데, 합격률이 괜찮은 거예요. 산업 수준에서는 이쪽 방향을 원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습니다. ‘이 정도의 얕은 수준도 융합이라 하는 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학계수준에서 진정한 경계가 없어진 다학제간의 융합이 일어나려면 한참 멀었지만, 산업수준에서는 얕은 융합을 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안근영> 저는 그게 얕은 융합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아요. 융합이라는 것 자체가 얕고 깊은 게 어디 있겠어요. 두 가지 이상을 결합시킬 수 있는 중간 지점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융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융합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는 거죠. 과거에는 그것조차 생각하지 않았잖아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자체가 그전보단 우리가 발전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라 생각해요.

기업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시키는 일만 합니다. 그렇게 융합을 크게 할 필요도 없어요. 그런데 공학 분야 친구들은 7년 이상 일하다보면 시스템이 바뀌죠. 시스템이 바뀌면 새롭게 해야 돼요. 하지만 일만 하다보니까 새로운 것을 배울 시간도 없고, 일만 하다 끝납니다. 7년으로 인생이 끝날 수도 있죠. 항상 공부해야 해요. 영상 쪽도 마찬가지인데, 트랜드가 계속 바뀝니다. 사람이 기술을 못 따라가요. 어린 애들은 더 잘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안은 결국 사회가 조장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소모품으로 쓰는 거고. 공부를 오래한 사람들이 항상 얘기하는 것이 있어요. 본질을 어떻게 보고, 다루느냐의 문제거든요. 사실 본질은 비슷해요. 예를 들면 물리학자와 공학자, 철학자가 생각하는 지점이 언어와 의식이 다를 뿐, 생각은 비슷하거든요. 공통점이 다 있어요. 그 공통점 안에서 소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부분들을 최대한 연구하려고 노력하고, 그것에 대해서 세상 흐름이 어떻게 흐르는지만 알면 걱정 없는 삶을 살 수 있어요.

한정적으로 더 좋은 기업에 가야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면 더 큰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걸 선택하는지에 따라서, 이게 옳거나 그르다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선택의 문제죠. 좋은 직장가고 싶어서 거기에 맞춘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도 좋은 거 같아요. 명료하고 삶의 방향이 뚜렷하잖아요. 그런 것들을 찾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아까 코딩을 안 배워서 불안하시다고 했는데, 마음이 아팠어요. 저도 매순간 불안하니까, 어느 순간 어떻게든 되겠지란 마인드가 되더라고요. 세상에 안 불안한 사람이 없잖아요? 다 불안하니까 이러한 라운드테이블을 하는 거 아닌가요.

 

신문사> 그렇죠. 그러한 불안감에서 시작됐습니다. 시대에서 요구하는 것이 나와 적합하다 느꼈을 때, 그것을 열심히 가꿔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사회에서 무언가를 강조할 때 불안감이 있고, 뒤처진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게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인데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내세우는 가치들에 의해서 걱정해야 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승은> 사회적으로 힘 있는 사람이 이러한 얘기를 다뤄줬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엔 구조적인 문제가 부딪힐 수밖에 없잖아요. 신자본주의 형태에서 봤을 때는 유연한 노동 시장에서 한 사람에게 요구하는 역량이 계속 늘어 가는데, 그래서 정책을 다루는 사람이 이에 대해 얘기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거죠. 그렇다면 덜 불안해할 수 있고요.

 

안근영> 우리나라 정치인 중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정부는 국가의 삶의 방향성을 정해줘야 하기 때문에, 지금 융합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간 것이고요. 융합이라는 타이틀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4차 산업혁명과 연결돼서 나온 겁니다. 기본적인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거든요. 노동시장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미국 같은 경우도 외국의 싼 노동공장을 샀다가 다시 돌아오고 있잖아요. 그 이유는 글로벌 시대에서 다시 폐쇄적인 시대로 가고 있어요. 결국에는 생존의 문제인 것 같아요. 과거 글로벌 경제가 호황이었을 때는 상관이 없는데, 호황이려면 한쪽은 불행해야 돼요. 사실 미국은 군수산업으로 호황을 누렸었습니다. 이는 어떤 나라는 항상 전쟁을 해야 된다는 거죠.

전반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우리 정부에서도 융합을 강조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우리가 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아니고, 갖고 있는 것은 사람의 뇌밖에 없거든요.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고민했을 때는, 지금 노동인구도 계속 줄고 있잖아요.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로 갖고 있기 때문에 명확한 답이 있다곤 할 순 없는 것 같아요.

이것은 어떠한 삶을 어떻게 살지에 대한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 융합적인 사고도 결국 먹고 살려고, ‘융합적인 사고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문제가 나온 것이라 봅니다.

 

신문사> 마지막으로 앞으로 융합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각 전공분야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각 분야에서 어떻게 융합을 접하면 좋을까요?

 

박지현> 융합은 학문마다 영역이 다 다르잖아요. 서로 그것을 감수하고 의사소통할 때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내려놓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기술을 이미 배운 입장에서 융합을 접하는 거니까, 예를 들면 신문방송학과와 제가 같이 무언 갈 하고 싶으면 학문을 배워도 좋지만, 처음에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그 분야의 사람과 만나서 대화를 하고,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만 얘기해도 크게 와 닿거든요. 지금 제가 학원에서 가르치는 아이들만 봐도 대학에 가려면 생활기록부에 코딩교육을 배웠다는 것을 쓰고 안 쓰고의 차이가 큽니다. 이정도로 사회가 요구하고 있습니다. 서로 학문에 대해서 이해하고, 천천히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 너무 융합에 급하게 다가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전공자에게 코딩을 어디서 어떻게 배워야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는 먼저 그 사람과 대화를 해봅니다. 저도 아텍에서 느낀 게, 가끔 프로젝트를 할 때 대화가 안 될 때가 있거든요. ‘왜 저런 방식으로 다가가지?’등의 생각이 드는 거죠. 그 한 단계만 넘어서도 충분히 나중에 코딩을 실질적으로 배우거나 할 때, ‘이런 부분은 이렇게 할 수 있구나’에 대한 벽이 조금 낮아지니까요.

 

이찬주> 저는 ‘왜?’라는 질문이 이미 스스로 정립된 상태에서 문과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얘길 하고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엔 산업의 인재로서, 아니면 내 연구를 더 풍성하게 하겠다는 학문적인 목적이든 목적이 스스로 정립된 다음에, 아예 두려움이 큰 사람이 (코딩을) 시작하려면, 이걸 C‘언어’라 하잖아요. 처음에 코딩 공부가 어려워서 스터디를 시작했을 때, 제가 한 학기 먼저 코딩을 공부해봤다는 이유로 강의식으로 맡아서 하게 됐었어요. 책임감이 생기니 어쩔 수 없이 코드를 뜯어보게 됐는데, 정말 영어를 처음 공부할 때처럼 문법이라 생각하고 왜 여기 괄호가 붙고, 이러한 함수, 파라미터가 왜 쓰이는지 등 하나하나 샅샅이 분해했어요. 두려움을 가지던 문과생이었던 제가 언어라 생각하고 배우니 보이더라고요. 외국어 하나를 배운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첫 번째가 방법이었다면, 인문사회계열 학생이 배울 때 자신의 도메인 영역에 대한 중심을 잘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코딩이 주가 아니잖아요. 그 도메인 지식을 잃지 않아야 비로소 융합이 되고, 자신의 영역이 발휘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새로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이런 두 가지 팁을 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의견을 들으면서 융합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가장 기초적으로 시작하기 좋은 융합은 자신의 지식 영역을 제대로 구축한 다음에 방법을 끌어다 오는 것이라 생각해요.

 

박연주> 제가 가장 비전공자에 가깝다 생각하는데, 융합에 대한 최소한의 이야기를 하려면 코딩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융합이란 것도 기본적인 가치관과 지식을 공유를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코딩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딩이라는 주제를 말했을 때 다들 어느 정도 이해와 지식을 가지고 말씀을 하시는데, 저는 이해가 안 되다 보니까 그렇게 되다 보면 전 융합 자체가 안 되는 거잖아요. 의사소통을 위해서라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근영> 코딩이 기술적인 측면인데, 아까 말씀처럼 방법적으로 쓰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융합 학문에 대해 공부했던 입장에서 얘기 하자면, 결국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데, 본질을 찾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미디어아트가 처음 나왔을 때, 인터렉션이 되는 것 자체에 사람들이 신기해했습니다. 상호작용 하는 것 자체가 첫 번째의 기술적 가치였는데, 어느 순간 그게 반복되다 보니까 어떤 학회나 비엔날레 같은 곳에 가보면 결국에는 기술 시연장 밖에 안 됩니다. 사실 거기에서는 본질이 빠지는 거죠. 콘텐츠를 어떻게 하고, 기술을 거기에 집어넣어서 콘텐츠를 부각시키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가치를 더욱 끌어내야 하는데, 이젠 새로운 기술 시연장 밖에 되지 않는 것 때문에 점차 미디어아트에 대한 관심사가 줄어들고 외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를 무엇을 만들 것이고, 어떤 가치관에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건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본질에 대한 생각이 필요한 것 같아요. 무엇이든지 간에. 아까는 이유를 찾으셨고 어떤 방법에 대해서 말하셨잖아요. 다 맞는 얘기입니다. 저도 공부할 때 제가 다 했던 방법들입니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고, 이건 왜 그렇지?’에 대한 의문들이 많이 생겼고, 그로 인해 첫 번째로는 시선이 많이 확장되는 것 같아요.

두 번째는 내가 가지고 있는 영역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접목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엮어서 새로운 생각을 도출한다는 것 자체가 융합적인 사고입니다. 거기서 시작해야 합니다. 코딩도 마찬가지 일거고.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하셨고, 저도 얘기 나누면서 코딩 공부에 대해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이러한 장들이 많이 생겨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보면 더 좋은 방향으로 사고하도록 바뀔 것 같습니다.

 

이승은> 융합에 대해서 조금 찾아보다가, 러쉬(LUSH)가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어요. 왜 그랬을까 찾아보니 러쉬 측에서는 ‘더 이상 인스타그램으로 고객들과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우리는 직접적으로 고객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연구, 개발할 것이니 인스타그램을 그만 하겠다’라고 처음으로 대기업에서 인스타그램이란 마케팅 도구를 안 쓰겠다는 의사를 표했어요. 이러한 반응을 계속 관심 있게 살펴보면서 관련된 책을 찾아봤는데요. ‘콘텐츠의 미래’라는 책에서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어요. ‘연결이 중요하다. 콘텐츠를 어떻게 포장할 것인지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기업은 그것을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콘텐츠를 먼저 만들어 놓고 사람을 끌어오는 게 아닌, 사람을 먼저 모을 생각을 하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학계에서도 그러한 균형을 맞추기 위한 시도를 하는 걸 보면서, 저는 무작정 융합이라는 걸 봤을 때 아무 감흥이 없었고, 낭만주의적인 담론만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여기서 융합에 대한 구체적으로 많은 의견이 나눠지는 걸 보면서 학계에서도 그렇고 많은 전문가들이 진정한 융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발전시키려 하는 노력이 있으니 마냥 불안해하고 우울해 하지만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웅> 저도 막연하게 융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제가 공부하는 것에 이러한 것들(융합)이 필요하고 궁금한 것을 해결하는 데 코딩이라든지 프로그램이 필요하겠다 싶으면 얼마든지 재미있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융합이라는 단어가 던져졌고, 그에 이끌리는 게 아니라 내가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면 스스로의 연구나 삶의 질의 향상에 의미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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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4:11

30대를 마무리하며

-서강, 우리의 자랑이 되어주세요

 

30대 대학원 총학생회 회장 _ 김종혁

 

 

안녕하세요 제 30대 대학원 총학생회 회장 김종혁입니다. 제가 대학원에 들어 온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학생회 임원을 3학기나 했습니다. 그동안 서강대 대학원 원우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학교에 전달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했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 그러한 고민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최근 대학원생과 관련된 이슈가 미디어에서 자주 출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인터넷 게시글에 대학원생의 삶을 묘사하는 글도 많이 올라옵니다. 이는 19622094명에 불과하던 대학원생수가 2014년 기준으로 33872명으로 52년 만에 158배 급증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의 산업이 지식기반으로 변화하면서 전문인력 수요 증가와 청년 취업의 여파로 취업시장으로부터 잠시 도피하기 위한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대학원생의 증가로 인해 더 이상 한국사회에서 대학원생의 경험이 소수의 경험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런 요인들이 대학원의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하게 된 계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대학원생의 증가와 사회적 이슈만큼 대학원생의 처지가 그리 좋아지지는 못했습니다. 아직도 개선해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습니다. 현재 대학원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대학원생의 당연한 권리 인권

아무래도 가장 우선시해야 할 문제는 대학원생의 인권 문제입니다. 인권 문제는 원우분들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평소 학생회에서 진행하는 설문조사가 100명을 넘기 힘든데 비해서 <연구환경실태조사>200명 이상이 참여하는 것을 보면 원우분들의 인권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인권은 인간으로서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입니다. 그러나 대학원생의 인권은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지만 지면의 한계 상 짧게나마 우리가 쉽게 간과하고 넘어가는 대학원의 육아하는 원우들에 대해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원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그들이 육아를 병행하면서 공부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아이의 엄마나 아빠가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한명의 연구자입니다. 자신의 자녀로 인해서 그들의 정체성이 부정당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 아이를 집에 내팽개치고 학교를 왔냐라고 하기 전에 이들이 연구자로서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베이비존, 모유실과 같은 기반시설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렇게 육아를 병행하는 대학원생의 문제뿐만 아니라 조교의 인권 부당 침해 등 여러 고질적인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지난 6월에 학교에서 인권권리장전 선포식을 진행하고 학교와 권리장전을 체결했습니다. 최근 대학원사회에서 일어난 변화 중 큰 변화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최근 11월에 진행 중인 <연구환경실태조사>를 보면 많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전히 학교의 인권실태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인권권리장전 선포식과 함께 인권위원회는 만들어졌지만 문제를 제기할 인권센터의 설립은 아직도 멀어 보입니다. 만들어진다고 해도 학교에서는 인권센터의 역할을 단순히 문제 발생 후 해결하는 것에만 주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인권센터의 바른 방향은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인식을 개선하고 방지하는데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교는 예산을 문제로 이야기합니다. 이럴 때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그래도 얼마 전 현직 대학교 총장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검찰에 수사를 받게 된 사건은 한줄기의 빛처럼 여겨집니다.

 

대학원의 조교의 노동자성 그리고 장학금

대학원생의 <연구환경실태조사>를 보면 전업학생이 70% 이상을 차지합니다. 전업학생의 경우 등록금을 내고 생활비를 감당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원우분들이 대학원에서 조교를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2012년에 일반장학금 지급규정이 개정되면서 학과장 장학금이 폐지되었습니다. 그 후 TA장학금(조교 장학금)으로 전환되면서 조교의 수가 늘어났지만, 이전 장학금의 총액은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사실 장학금의 총액이 줄어든 것도 문제이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TA장학금이 교내 장학금의 비율을 0%로 만든 조치나 다름없다는 사실입니다. TA장학금은 대학원생들이 조교로 일한 대가로 받는 임금입니다. 대학본부는 이 돈을 장학금 예산으로 지급함으로써 마치 장학금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엄연히 TA장학금은 노동에 대한 대가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걱정하듯이 조교가 임금으로 변화면서 장학금이 다시 한 번 줄어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학교는 학업을 독려하기 위한 서강만의 장학금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연구환경실태조사>에서 많은 학생들이 요구하듯이 좋은 장학금 제도가 생긴다면 학생들의 연구 환경 또한 개선될 것입니다. 또한 조교의 임금과 노동자성의 인정을 통해서 그에 합당한 조교제도가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논문심사 역시 교육의 일환

대학원생들의 경제적 여건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한 명의 연구자로서 대학원의 진학하지만 내야 할 등록금은 4학기 동안 거의 2천만 원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등록금이 다가 아닙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기 위해 논문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사회과학이나 경영학의 경우 논문을 쓰기 위해서 설문조사 방법을 많이들 사용합니다. 설문조사를 할 때 설문대상자에게 답례품으로 선물을 제공하는데 적게는 몇 십만 원에서 많게는 백만 원 정도의 비용이 지출됩니다. 대부분이 전업 학생인 대학원생들에게 이러한 금액은 정말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논문심사를 받기 위해서는 논문 심사료를 납부해야 합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는 대부분 수업을 듣지 않고 논문을 씁니다. 이때 학생은 이미 등록금을 냈는데 또 논문 심사료를 내라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대학원에서 논문 심사료를 부과하는 것은 등록금을 낸 대학원생들에 이중부과나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에 경우 대학원생이 학교에 연구를 신청하면 연구비를 지원합니다. 산학협력과 연결된 수업에서 지원받을 수도 있지만 이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신청을 통해서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많은 대학원이 논문 심사료를 일련의 교육 과정으로서 등록금에 포함시키고 폐지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위 논문은 연구자 개인만 아니라 소속 학교의 재산이기도 합니다. 또한 논문의 수준이 대학의 수준과 직결됩니다. 학위논문을 없애는 것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서 연구의욕을 고취시켜야 합니다.

 

결국은 대학원 졸업이후 진로가 문제

대학원의 진학은 결국 자신의 진로를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대학원의 졸업이 취업을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연구환경실태조사>를 보면 많은 원우분들이 대학원생을 위한 취업시스템 혹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후 학교에 대학원생을 위한 취업교육이 있는지 확인한 결과, 이미 취업센터에서는 대학원생도 포함해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취업시장에서 석·박사생을 위한 취업의 자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고급 연구 인력이 가장 많이 취업할 수 있는 곳이 대학과 정부출연·기업 연구소인데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 교수로 취업할 기회는 점차 줄어들고 기업 상황도 여의치 않습니다. 특히 대학 등 연구기관에서 국내 석·박사보다 해외 유학생을 더 선호하는 상황입니다. 서강대 경우, 자대 출신의 교수님이 많지 않습니다. 지난 기획예산팀에 확인한 결과 몇 십 명이 넘지를 않았습니다. 대학원생의 진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 자체가 연구중심의 대학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포스트닥(박사 후 과정) 위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한 명의 교수 밑에 조교수, 부교수를 포함해 포닥이 많고 이를 통해 교수는 그들이 만든 연구 결과를 모아 방대한 논문을 쓴다고 합니다. 대학원생들도 연구자로서 생활비를 후원받으며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 학교에서 대학원 발전계획으로 세우고 있는 것은 신입생 모집 확대와 인권 개선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일이지 발전 방안은 아닙니다. 대학원생을 지속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생의 진로를 보장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식의 변화가 없다면 대학원생들은 계속 줄어들고, 해외로 나가려고 할 것입니다.

 

대학원생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결국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생의 목소리가 더욱 커져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원생들이 처해있는 환경, 그리고 학과별 상황이 아직도 학교에 잘 반영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학생자치가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서강대를 포함해서 많은 대학들의 학생 자치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지난 과거에서 학생회가 저지른 문제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외에도 학생들이 여유를 가지고 연대해서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대학원총학생회는 매 학기 초 과대표자회의를 통해 대학원생들과 개별학과의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의견을 교류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현재 과대표자는 각과의 조교장이 대부분 맡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교장은 과를 대표한다기보다 학과 행정업무 담당자 성격이 강합니다. 대학원생들의 자치권 회복을 위해서는 책임 있게 과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선출할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대학원 총학생회도 과대표자들이 운영하는 구조로 개편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대학원 총학생회가 학교를 대신해서 일하는 행정팀이 아니라 대학원생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는 자치기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장학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재 학생회 예산으로 이를 지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학교에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원우분들도 대학원 총학생회가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대학원의 수준은 대학원생들의 연구 의욕에서 시작됩니다. 대학원생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학교는 아낌없는 지원으로 연구 환경 조성을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서강의 자랑이 될 수 있게, 서강 우리의 자랑이 되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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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4:09

우리 학교에는 성평등위원회가 있습니다.

 

20171학기 성평등위원회 위원, 일반대학원 사회학과 석사과정 _ 한나현

 

 

아마 많은 서강대 대학원생들이 대학원 성평등위원회’(이하 성평등위)의 존재를 모를 것이다. 나 역시 총학생회 집행부로 일하면서 성평등위에 20171학기에 참여하기 전까지 성평등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소개를 위해 성평등위의 존재 이유가 적혀있는 시행세칙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서강대학교 대학원총학생회 성평등과 성적자율권 보장을 위한 시행세칙은 제 11조의 총칙에서 이 세칙이 서강대학교 대학원총학생회에서 성평등을 실현하고 특정 성별, 성정체성,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모든 구성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존중받는 생활공동체를 형성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밝힌다. 이를 위해 설치된 기구가 과대표자 회의의 인준을 거쳐 매 학기 새롭게 구성되는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산하의 성평등위원회이다.

 

이 시행세칙의 제정일이 무려 2008324일인데, 10여년의 역사가 무색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심지어 성평등위원으로 활동할 당시에도 이전의 성평등위가 어떤 이슈를 가지고 논의했고 또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그리고 했었는지에 대해 알 방법이 없었다. 더 이상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옛 문서와 사진들이 쓸쓸하게 나뒹굴고 있는 대학원 총학생회 싸이월드 클럽에서 , 성평등위는 몇 년 전 김조광수 씨를 초청한 행사를 했었구나-‘ 따위의 조각정보만을 알 수 있었을 따름이다. (학생사회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자료의 축적과 역사의 전승은 필수적인데, 특히 대학원 사회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그런 것에 무관심하다. 매번 다시 맨땅에 헤딩하기!)

 

그러나 이러쿵 저러쿵 불평해도 사실, 제정된 세칙을 찬찬히 읽다보면 2008년 당시 성평등과 성적 자율권의 보장을 위해 수많은 토의와 자료수집과 여러 절차를 거쳤을, 그때 당시사람들의 고민의 흔적들을 줍게 된다. 가령, 시행세칙 제 2조는 성평등 및 성폭력의 개념을 정의하는 조항인데, 정식화된 개념 2가지에 세부개념 7가지 그리고 거기에 더해 예시를 13가지 종류나 들면서 (세칙에 이런 구체적인 예시를 드는 경우가 있던가? 나는 처음 본다. 예를 들어, ‘ 술자리 벌칙의 일종인 러브샷을 강요하는 행위와 같은 예시들이 일일이 첨언되어 있다.) 무엇이 성폭력인지를 규명하고자 애쓴다. 이 조항들을 읽어 내려 가다보면, “ ‘원래 다 그런 거 아냐? 그게 뭐 어때서?’ 싶은 행동들도 성폭력이거든? 제발 좀 알아들어라!“ 하는 외침이 들린다. , 내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이런 외침을 듣게 되면 그 사람의 고민과 나의 고민이 이어지면서 우리가 함께 같은 목표를 위해서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른 시간에 있어도 서로 만나게 되는 영화 <너의 이름은.> 적인 경험.

 

하지만 물론 이들이 남겨준 유산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세칙이 처음 제정될 당시에 이것은 만든 이들의 최선이 담긴 결과물이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개념들은 보다 더 촘촘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구멍을 메우기 위해 개정작업을 했다. 20171학기 성평등 위원들이 머리를 맞대어서 1) 성 정체성, 성적 지향에 관한 내용을 추가 하고 2) 남성, 여성', '양성'''으로 수정하고 3) 성폭력의 개념을 성적인 폭력(sexual violence)’ 뿐 아니라 성별화된 폭력 (gender violence)’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해서 정의하는 것을 골자로 시행세칙을 고쳐 썼다. 기존의 세칙에 켜가 쌓이는 것을 보면서 다음에 올 성평등위원은 또 어떤 눈으로 이 개정된 세칙을 보게 될까? 또 어떤 개정작업이 이루어질까? 라는 기대를 품었다. 이렇게 과거로부터 전달받은 메시지를 지금에 맞게 읽고 생각하고 고쳐 쓰는 일이야말로 (대학원 신문의 이번 호의 주제인) ‘기억, 기록행위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이런 기억, 기록행위를 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그러나 이렇게 달콤한 기대에 부푼 마음과는 달리 개정은 과대표자 회의에서 아무런 지적 없이 간단히 통과했다. 분명히 부족한 것이 많을 텐데 아무도 토론을 걸어오지 않았다. .지적받고 싶다. 귀찮은 일이 줄어서 기뻤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방금은 마치 학생사회가 성평등에 대해 아주 무관심한 것처럼 묘사했지만, 사실 성평등위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성평등한 문화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와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에 처음 시행세칙과 성평등위를 만들자고 제안했던 사람이 그랬고, 성평등위의 활동이 기록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나에게 기고를 제안해준 대학원 신문사 편집위원이 그랬으며, 실태조사에서 자신의 피해경험을 자세히 기술해주었던 익명의 응답자가 그랬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서강대학교 대학원 사회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을 막고, 보다 평등한 관계맺음의 방식을 만들어 가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20171학기에 성평등위에서 실시한 <성평등 실태조사> 문항에 대한 사람들의 길고 긴 답변들은 서강대학교 대학원 사회가 폭력에 무방비하며, 피해자에게 희생을 감수하도록 함으로써 멀쩡한 척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러한 실상을 자세히 써 보내주는 마음에는 무언가 달라질 수 있고 달라져야만 한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나는 사실 이 답변들이 버거웠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고 혹은 내가 잘 할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사를 한 이상, 답변을 받은 이상, 이 무게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그래서 지난 학기 동안 실태조사 결과를 홍보하고, ‘인권권리장전에 조사결과를 반영하고, ‘인권위원회를 설치하는 데에 이를 근거자료로 사용했다. 뚜렷한 성과가 있었는가 물어보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첫 번째, 홍보가 잘 되었다면 문의가 많이 들어올 텐데 그것도 아니고, 두 번째, ‘인권권리장전은 애초에 규범적인 이어서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하고, 특히 세 번째, ‘인권위원회는 학교와 논의한 지 한참 되었지만 더디게 진전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인권위원회의 설치 구상이 얼마나 피해자를 고려한 것인지, 문화적인 측면은 간과하고 오로지 사건의 후처리만을 맡게 되는 것은 아닌지 등등 의문스러운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기억기록만 남는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가 각자의 몫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 서강대학교 대학원 사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일을 진행하고 있는지 서로 적극적으로 알리고 공유해서 많은 사람들이 학내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과정에 접근할 수 있고, 관심을 기울이고, 관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참고로, 이번 학기에 성평등위에서 주력으로 진행하고 있는 사업은 부모원생의 학업권과 육아권 보장 프로젝트(가제)’이다. 이 프로젝트의 주제 역시 지난 학기 실태조사에서의 요구를 반영하여 선정한 것이다. 학교 내에 육아에 필요한 서비스와 공간을 마련하고, 홍보하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 수유실 공간을 늘리고 환경 개선하기, 학내 혹은 학교와 연계된 보육시설 요구하기, 부모원생 커뮤니티 만들기 등등을 떠올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대학원생의 육아가 학업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대학원 사회가 함께 노력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일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마침 총학생회에서 <대학원생 연구환경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니 이를 통해서 상상력을 나누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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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4:07

기억을 나누는 기쁨

 

기억의책 편집자 _ 박범준

 

 

기억의책을 만들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다. 70여권 기억의책을 만드는 동안 꿈틀 직원 수는열 다섯을 넘었고, 바다 건너 대만에서도 첫 번째 기억의책이 인생서책(人生書冊)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처음 시작할 때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이 즐겁게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기억의책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아버지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단지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셨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철이 들면서부터 아버지와 불화를 거듭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제법 당당하고 어른스러운 나였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늘 위축됐다. 나를 철없고 답답한 막내아들로 보는 아버지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아버지 앞에 서면 긴장했다. 조리 있게 내 뜻을 설명하지 못했고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을 강변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회사일로 바빠 보이지 않다가 느닷없이 나타나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잔소리를 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도 아버지와의 관계는 내 마음 속에 깊은 상처였다. 늘 힘들었고, 자주 불화했고, 그 속에서 깊은 좌절과 수치심을 느꼈다. 막연하게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낄 무렵 내 생에 더 큰 시련이 찾아왔다. 10년 동안 함께 살아온 아내와의 결별이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제법 당당하고 어른스러웠다고 말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특히 아내와 감정싸움을 할 때면 마치 아버지와 관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철없고 답답한 사람으로 돌변했다. 그때마다 어렴풋이 아버지와의 관계가 내 삶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실수가 쌓이면서 아내와의 관계는 점점 나빠져 갔고, 마흔을 살짝 넘긴 나이에 아픈 이별을 맞이했다.

살다보면 잘 맞지 않아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리석고 성숙하지 못한 나는 너무나도 아프게 헤어져야 했다. 그 뒤에 찾아온 것은 깊은 좌절의 시간이었다. 다행히도 좌절을 딛고 일어서던 무렵에 나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반드시 회복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더 이상 유치하고 미성숙한 채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아버지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는 시도는 번번이 좌절했다. 너무나도 다른 세월을 살아오면서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아버지와 나는 사사건건 부딪혔다. 차라리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이 관계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의 어려움을 느끼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날 제사를 마치고 식사를 하다가 오랜만에 아버지가 말문을 여셨다.

요즘은 무슨 일을 하고 있냐?”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당시에 쓰기 시작한 책에 대해 설명을 드렸다. 아버지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너는 대체 언제 정신을 차릴 거냐? 그런 책을 쓰는 게 무슨 소용이 있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어디 취직할 생각을 하지 않고......”

나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철없는 짓이라고 비난하시는 것에 마음이 상한 나는 거친 숨을 가다듬어야 했다. 예전 같으면 욱하고 성질을 냈겠지만 차분하게 내 감정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아버지, 저 이제 나이가 마흔이 넘었어요. 아버지가 제 삶을 인정해주지 않으셔서 답답해요.”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아버지가 조금은 내 뜻을 이해해 주시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의 말을 듣고 불같이 화를 내셨고, 나는 다시 한번 좌절하면서 자리를 떠야 했다.

혼자 방에 누워서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대체 나의 삶을 인정해달라는 말이 뭐가 그렇게 화가 날 말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무서운 생각 하나가 내 머리를 스쳤다.

마흔이 넘은 아들의 삶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아버지에게 말하던 그 순간까지 내가 일흔을 넘긴 아버지의 삶을 인정한 적이 있었던가?’

철이 들면서 아버지의 삶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 그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적은 없었다. 마흔이 넘도록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들의 마음이 답답했다면, 일흔이 넘도록 아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제서야 아버지가 보인 분노를 이해하면서 혼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 무렵 한 책에서 아버지의 어린 시절에 대한 대화를 나누라는 조언을 들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가치관의 차이로 부딪히기 쉽지만, 아버지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버린 내 기억 속 아버지 모습이 아니라 천진난만하고 꿈이 많던 미래를 고민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년은 나처럼 생각이 많고 겁이 많았다. 미래는 불안했고 기댈 곳은 많지 않았다. 기억 속 나의 어린시절 혹은 내 주변 가까이 지내는 친구나 후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제서야 거짓말처럼 아버지의 모습이 편안하게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내 꿈 중에 하나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었다. 운 좋게도 나는 30대에 그 꿈을 이뤘지만, 혹시 아버지에게도 그런 꿈이 있지 않았을까? 굳이 많은 독자를 만날 수는 없어도 상관없다. 누구에게나 자신 삶의 이야기는 그 무엇보다 의미 있을테니 말이다. 적어도 아들, 딸과 손주들은 그 책을 읽고 자신의 뿌리를 떠올릴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모이면 사회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기록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생애를 담은 책이니 생애사라고 부를지, 자신의 삶을 기록한 책이니 자서전이라고 부를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기억의책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냈다. 대단할 것 없고 특별할 것 없어도 한 사람의 기억을 그대로 담은 책이다.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책을 만들자는 말씀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왜 또 쓸데없는 짓을 하냐고 꾸짖지 않을지..... 여전히 나에겐 아버지에 대한 불편함과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먼저 제주해녀 할머니의 기억의책을 만들었다. 경험 없이 의욕만 앞선 책이었지만 함께 참여한 동료들에게는 소중한 경험과 큰 용기를 준 책이다. 딸을 여섯 낳고 천신만고 끝에 아들을 얻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책이 한권 나오니 기억의책을 더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아버지도 흔쾌히 책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아버지 기억의책을 만들고 나서 아버지로부터 큰 선물을 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가 용기를 내주지 않으셨다면 사라져버렸을 이야기들이 빛바랜 사진과 함께 책으로 남았으니 말이다. 아버지 책을 만들어서 처음 보여드리는 날 무척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찬찬히 살펴보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오래 기다리셨죠? 이제야 막내아들이 아버지 삶을 그대로 인정해드려요.’

기억의책을 만들기 위해 꿈틀이라는 이름의 사회적기업을 만들었다. 꿈틀에 참여한 분들은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 실향민이신 아버지의 이야기가 궁금한 원성철 대표님, 어머니에게서 늘 너는 늘 남의 이야기만 쓰지 말고 네 엄마 이야기도 한번 써봐라. 엄마 이야기가 책 한권이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권민진 부편집장님, 젊어서 아버지를 잃은 강민수 부편집장님, 인류학 석사로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논문을 쓴 오주해 작가님, 홍보영상을 촬영해준 인연으로 시작해 회사에 들어온 영상담당 김동언씨, 일인창조기업으로 어르신들의 옛 사진을 모아 전시회를 여는 일을 했던 박미혜 이사님 등등. 이제는 열다섯 명이 넘은 꿈틀 식구들은 책을 가장 잘 만들거나, 글을 제일 잘 쓰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삶은 기록할 가치가 있습니다라는 믿음으로 삶의 의미를 가장 잘 존중하고 삶의 이야기를 제일 잘 경청하는사람들이다. 그 힘으로 우리는 세상에 없던 부모님의 삶을 책으로 엮어서 남기는 일을 만들어왔다.

20179월에는 대만에서 만든 첫 번째 기억의책이 세상에 나왔다. 여행 중에 만난 대만 젊은이들에게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면서 나도 우리 할아버지 책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 소개로 알게 된 대만의 젊은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들에게 꿈틀이 추구하는 가치와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하고 대만에서도 이런 일을 해보자고 설득한 지 1년여만의 일이었다. 한국에서도 첫 번째 기억의책이 나오면서 회사의 꼴을 갖추고 일이 시작되었다. 책을 만들 수 있는 팀이 짜여지고, 보여줄 수 있는 시제품이 나왔으니 대만에서도 곧 기억의책들이 하나 둘 세상에 나오리라 기대한다. 마침 11월에는 대만에서 첫 번째 기억의책 주문이 들어왔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가족의 기억의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장 한국적인 문화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일인데, 어쩌면 인류에게 가장 보편적인 욕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하나 뿐인 자신의 기억은 소중하다. 어르신들은 누군가 자신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귀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무척 행복해하신다. 한 나절 동안의 인터뷰에 지칠 법도 하지만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동안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열정을 보여주시는 경우가 많다. 그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오는 순간보다도 그렇게 누군가 앞에서 자신의 기억을 토로하는 순간 더 행복해하시는 듯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기억을 풀어놓는 동안 스스로 자기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많은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들은 한 뇌인지언어학자는 그렇게 오래된 경험을 더듬고 언어로 구성하여 표현하는 것이 가장 높은 수준의 뇌인지언어활동이며, 그런 활동이 어르신들의 치매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의견을 주셨다. 2018년에는 어르신들이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고 다른 사람과 나눔으로써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는 기억활동 교육프로그램을 산학협력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기억의책을 통해 가족들은 간접적으로나마 깊이 있는 삶의 경험을 공유하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것이 주는 긍정적인 영향은 나 스스로가 아버지와의 경험을 통해 확인한 바이다. 더 나아가서 장례식장에서 고인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고인의 기일에 가족들도 제사준비에 스트레스를 받기 보다는 고인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추모하는 가족문화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2017년 꿈틀은 제주도 서귀포서 남원읍 하례리의 어르신 열 분의 기억의책을 만들었다. 한 마을에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온 열 분 삶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라면 마을 이야기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기획한 프로젝트다. 2018년에는 제주도 4.3사건 70주년을 맞아 4.3 생존자 약 백 분의 어르신 기억의책을 제작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재일제주인등의 재외동포, 특정지역이나 직업의 경험을 공유하는 어르신들의 기억의책을 만드는 작업은 공동체의 역사를 개인 삶의 기억들로부터 구성하는 의미있는 작업이라 되리라 기대한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게임(The game of throne)를 보면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하나 있다.

아무도 너를 노래하지 않을 거야!”

중세 판타지라고 할 수 있는 이 드라마의 원작소설 제목은 불과 얼음의 노래(The song of ice and fire). 그 세계관 속에서 노래란 이야기고 역사이며 곧 기억이다.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않을 거야. 너는 어떤 역사에도 한 줄 이름을 남기지 못할 거야라는 말이 귀족에게 또 기사에게 커다란 저주 혹은 욕설처럼 쓰이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굳이 영웅이야기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기억 받고 싶어 한다. 혹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한다.

기억의책을 만들면서 자신의 기억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기록이 세상에 남는다 사실에 행복해하는 많은 평범한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뜻을 같이 하는 좋은 동료들과 더 큰 꿈을 꾸고 있는 꿈틀은 더 많은 행복한 기억들을 함께 쌓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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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4:07

기억과 불멸 사이 인공지능의 기억, 인간의 기억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저자,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사_ 김재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에는 자아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이 나온다.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은 상당히 철학적인 유명한 화두를 던진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위해 많은 부품이 필요하듯이, 자신이 자신답게 살려면 아주 많은 것이 필요하지. 타인을 대하는 얼굴, 자연스러운 목소리, 눈뜰 때 응시하는 손, 어린 시절 기억, 미래의 예감. 그것만이 아냐. 전뇌(電腦)가 접속할 정보와 네트워크. 그 모든 것이 나의 일부이며 나라는 의식을 낳고 동시에 계속해서나를 어떤 한계로 제약하지.” 나는 이 대사를 출발점으로 삼아 인공지능의 시대에서 기억의 자리를 살펴보려 한다. 이 글은 최근에 출간한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에서 다뤘던 주제 하나를 풀어 보완하고 확장한 것이다.

 

정체성 또는 동일성과 관련해서 테세우스의 역설이라는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 고대 영웅 테세우스가 탔던 배는 굉장히 오랜 기간 보존되었는데, 낡은 부분을 교체하다 보니 어느새 모든 부분이 교체된 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배는 동일성을 유지한 걸까 아닐까? 이 역설이 문제가 되는 건 우리의 몸을 이루는 기관들도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기 때문이다. 심장, , 눈을 이루는 세포를 제외하면, 가령 가장 오래 유지되는 뼈도 10년이면 완전히 바뀌는데, 나의 정체성은 어떻게 유지된다고 할 수 있을까? 아장아장 기어 다니던 나와 지금의 나가 과연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그 근거를 기억에서 찾곤 한다. 비록 몸은 바뀔지라도 기억의 동일성이 우리를 똑같은 존재로 보존해 준다는 것이다. 앞서 본 쿠사나기의 말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사실 기억은 둘로 구별해볼 수 있다. 하나는 나의 내적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 기억이다. 쿠사나기는 이 두 종류의 기억과 그 기억이 이루는 네트워크가 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기억의 문제는 정신 차리고 잘 살펴야 한다. 자신의 내적 기억만을 기억으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금세 난관에 봉착하게 되니 말이다. 인간의 기억은 부단히 망각되고 왜곡되고 편집되고 변형되고 갱신된다. 따라서 본성상 변하게 마련인 기억이 자기 정체성의 기초가 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주목할 것은 외부 기억일 것이다. 타인의 증언을 포함한 외부 기억과 관계가 나를 확인해주어야 나는 나일 수 있다. 내가 분명히 기억한다고 믿는 걸 남들 모두가 부정한다면, 나의 기억이 진짜인지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제 내적 기억과 외부 기억을 비교·검토해 보자. 나는 내적 기억이란 용어 대신 인간 기억이라는 말을, ‘외부 기억이라는 포괄적 용어 대신 컴퓨터 메모리 같은 걸 가리키기 위해 외장 기억이라는 말을 쓸 것이다. 외장 기억은 USBSD 메모리, 하드디스크, SSD 같은 유형을 말한다. 그런데 이때 외장 기억과 인간 기억은 과연 기억이라는 같은 유() 아래에 있는 걸까? 그 둘은 기억이라는 명칭만 공유할 뿐 본성은 전혀 다른 게 아닐까? 최소한 입력(코드화), 보존, 출력(해독)’이라는 과정만 보더라도 외장 기억과 인간 기억은 너무도 다르다.

 

아마도 외장 기억을 인간 기억의 유비로서 기억이라고 지칭한 것부터가 문제의 시작인 것 같다. 이미 2500년 전에 플라톤은 문자를 외장 기억으로 여기면서 비판한 바 있다. 외장기억이 인간의 기억 능력을 저하시킬 것이라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실은 인간 기억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것이 바로 외장 기억이다. 오히려 인간 기억은 변화무쌍하고 휘발성도 강하다. 인간 기억이 왜 이런 특성을 지니게 되었는지는 진화의 역사만이 알려줄 수 있으리라.

진화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억은 본성상 현재가 과거를 포함한다. 현재에 과거가 다 담겨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간 기억의 경우 과거가 현재에 끊임없이 삼투되면서 존속하는 반면, 외장 기억에서는 현재가 과거를 완전히 덮어쓰고 대체한다. 인간 기억은 회상이라는 심리 활동을 통해 현재로 소환되며, 이 과정에서 기억 내용이 변한다. 반면 외장 기억은 내용이 저장될 때 따른 규칙을 따라 역순으로 해독된다. 입력과 출력 사이의 내용은 똑같이 유지된다. 이는 마치 도서관과도 같다. 서가에 꽂아놓았던 책을 그대로 꺼내는 것이다. 물론 저장 매체가 훼손되면 내용이 손실된다. 망각은 외장 기억에서는 치명적이지만, 인간 기억에서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한편, 󰡔특이점이 온다󰡕(2005)의 저자이자 구글의 엔지니어링 이사인 레이 커즈와일은 2030년이면 인간의 의식을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2045년경이면 인간 뇌와 결합한 인공지능이 모든 인간의 지능을 합친 것보다 강력해질 것이란 구체적 예측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타고난 생물학적 사고 장치와 우리가 만들어낸 비생물학적 지능이 융합됨으로써 인간의 지능은 엄청나게 확장된다. 학습은 일단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겠으나, 뇌 자체를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게 되면 거추장스런 과정 없이 곧바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다운로드받게 될 것이다. (...) 지구 상의, 그리고 지구를 둘러싼 지능은 줄곧 기하급수적 확장을 거듭하여 결국에는 지능적 연산을 뒷받침할 물질과 에너지가 모자라는 순간에 다다를 것이다. 그렇게 우리 은하의 에너지를 모두 소모하고 나면 인간 문명의 지능은 이론적으로 가능한 최고의 속도로 더 먼 우주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413) 커즈와일의 이런 주장은 중요한 전제를 깔고 있다. 바로 인간의 기억과 컴퓨터의 기억이 같은 본성을 가졌다는 전제 말이다.

 

커즈와일의 주장은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괴델, 에셔, 바흐󰡕(1979)에서 뇌와 컴퓨터, 마음과 프로그램의 동일성을 주장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2015)에서 같은 주장을 했다. 이들의 공통된 논점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자연에 존재하는 다른 물질과 다를 바 없는 물리적 하드웨어다. 그 안에는 소프트웨어나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뭔가가 작동하고 있다. 그게 마음이다. 하드웨어가 똑같이 물리의 지배를 받는다면 그 성격에 관계없이 소프트웨어의 구현이 가능하다. 따라서 실리콘 기반인 컴퓨터를 통해 탄소 기반인 뇌 안에 든 마음의 구현도 가능하다.’ 이를 논거로 삼으면 인간을 닮은(human-like) 인공지능의 출현이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가능해진다.

 

이 주장은 논리적으로 흠잡을 데 없어 보이지만 큰 허점이 숨어 있다. 인간이 마음을 갖고 있다는 객관적인 사실은 확인 가능하다. 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마음이 생겨났는지 또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건 거의 없다. 그저 38~40억 년에 걸친 기나긴 생명의 진화 과정 중에서 생겨났다는 것만 알 뿐이다. 논리적으로 구현 가능하다는 것만 가지고, 생성 원리나 작동 프로세스를 모르면서 똑같이 만들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기술적, 공학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논리적으로 가능할지는 몰라도 실제 엄청난 시간이 걸릴 테니까. 박물관에 가면 아름다운 고려청자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고려청자를 만들지 못한다. 물론 언젠가는 똑같이 구현해낼지도 모른다. 가까운 시일에 그런 일이 일어날지 확신하지 못할 뿐. 인공지능의 경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아니, 사정이 훨씬 나쁘다고 해야 옳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닮은 지능을 갖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정확히 충족시킬 수 있는 논리 또는 알고리즘이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형 인공지능이 실현되려면 두 층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 정보의 입력과 출력을 통해 특정 활동 내지 기능이 이뤄지는 층과 그런 활동이 고장 났을 때 이를 스스로 자각하는 층이 그것이다. 마음의 특징은 이 2개의 서로 다른 층이 하나의 통일체로 작동한다는 데 있다. 생물 또는 마음은 자기가 고장 난 것을 스스로 고치는 자가수선(自家修繕)이 가능하다. 내가 보기에 그게 가능한 것은 생물뿐이고 컴퓨터는 불가능하다. 버그를 잡는 디버깅 프로그램의 예를 드는 사람이 있는데, 디버깅 프로그램도 버그에 걸리면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한 고칠 방도가 없다. 결국 가장 상층(meta-layer)에서는 인간이 개입해야만 한다.

 

생명체만이 가진 지능의 이런 특징은 진화의 산물이다. 문제가 발견됐을 때 스스로 문제를 자각해 빠르고 정확하게 보정(補整)하는 개체가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반면 개체군 차원에서는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자라는 지혜의 터득이 중요해진다. 최강이 되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는 다양성을 최대화하는 것이 진화에서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능은 그런 진화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생성되었다. 그래서 인공지능과 차별되는 마음의 능력이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내적 성찰 능력이라고도 요약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은 지금도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인간 몸과 마음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잘못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해는 이미 폐기됐다. 뇌과학 연구를 통해 컴퓨터와 뇌의 작동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알파고에 적용된 신경망 학습이니 심층학습이니 하는 것도 유비적 표현일 뿐, 인간의 신경망과 인공지능의 학습 방식은 전혀 다르다. 신경망 학습마저도 통계학적이며, 그 결과물인 인공지능은 결정론적 계산기이다. 무수한 사칙연산 과정에서 중간에 하나만 틀려도 답이 안 나오는 수학 문제를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컴퓨터의 메모리는 중간에 바뀌지 않아야 하며, 고정성과 안정성이 제일 중요하다.

 

반면 인간의 신경망은 손실과 추가의 과정이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의 기억은 계속 변한다. , 인간의 기억을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 순간부터 기억은 정지한다. 컴퓨터 메모리는 고정불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그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찍어놓은 것과 같다. 하지만 현실 속 인간의 기억은 늘 변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컴퓨터의 기억과 현실 속 나의 기억은 전혀 다른 게 될 수밖에 없다. 내 안에선 변하는데 저장된 그곳에선 멈춰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나는 늙어 가는데 사진 속 나는 예전 모습 그대로인 것과 같다.

이번엔 반대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 두 편에 나오는 것처럼, 인간의 신경망과 똑같이 작동하는 레플리컨트(복제인간) 제조 기술을 발명했다고 치자. 내 기억을 열 명의 레플리컨트에 이식하면 현실의 내가 지닌 기억과 레플리컨트들이 지닌 기억이 시간이 지난 뒤에도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나대로, 레플리컨트는 레플리컨트대로 열한 명 모두 기억이 바뀌어 갈 텐데?

 

인간과 컴퓨터에게 기억이라는 같은 낱말은 전혀 다른 뜻을 지닌다는 것을 확인했다. 본래 유비(analogy, 비유)는 알아듣기 쉽게 하려고 사용하는 수단이지만, 더 큰 오해로 이끌고 가는 경우가 많다. 유비는 ‘A : B = C : D’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방식이다. 가령 : 컴퓨터 = 마음 : 인공지능같은 식이다. 하지만 여러 측면에서 인간과 컴퓨터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채, 계속 유비적 용어를 쓴다면 오해는 커질 수밖에 없으리라. 잘못된 유비의 예로는 기계학습, 신경망 학습, 진화 알고리즘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기억, 학습, 진화, 알고리즘 각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다만 어렵다는 이유로 기피하기 때문에 유비에 빠지는 것일 뿐이다.

 

인간은 태곳적부터 불멸을 꿈꿔왔다. 하지만 실제로 바랐던 건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젊음과 건강이었으리라. 자기 기억이 화석처럼 기록되어 남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어차피 우리 삶의 끝에는 죽음이 있다. 다행인 건 우리가 죽으면 이미 아무 문제도 없고 살아있는 한 죽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삶의 순간마다 성실하게 임하는 방도 말고 다른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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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4:05

일본군위안부기억의 재현과 확장을 위한 기록물 관리기관의 운영

 

영남대 역사학과 강사 _ 남영주

 

1. 기록물 관리 실태와 기록관 운영

20151228일 한일 외교장관은 회담을 통해 한국과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문제를 항구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합의 사항을 발표하였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합의는 재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현실적으로 위안부 문제는 한일 정부 간의 정치적 문제로 다루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 이 문제는 민간차원에서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기에 일본군위안부관련 단체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특히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단체들이 수집한 위안부 관련 기록물은 위안부의 실체를 증언하는 결정적인 역사 자료이다. 위안부 기록물의 가치를 인식한 국가기록원은 일본군위안부관련 기록물을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일본군위안부기록물을 관리하는 공공기록물관리기관이 설치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공공기관이나 과거사청산위원회가 명문화된 법률이나 규정이 있는 것에 비해 위안부 관련 기록물 관리기관은 사립박물관으로 분류되어 규정의 적용이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일본군위안부기록물 기관으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활공간에 건립된 <나눔의 집 일본군위안부역사관>, 대구·경북지역의 사)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건립한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운동사의 현재를 담은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부산지역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이끈 김문숙 씨가 중심이 되어 건립한 <민족과 여성 역사관> 등이다.

<나눔의 집 일본군위안부역사관>1930년대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일본에 의하여 자행된 일본군 성노예제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1998년 개관하였는데, 일본군 성 노예제를 주제로 세계 최초로 세워진 역사관이다. 2015년 개관한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1997년 발족한 사)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일본군위안부역사관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다양한 방식의 범국민 모금 캠페인을 통해 형성된 기금을 기반으로 설립된 대표적인 커뮤니티 아카이브이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1994년 정대협이 사료관 건립준비위원회를 발족한 것을 계기로 2012년 개관하였다.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수집과 전시를 통해 위안부 교육과 문제해결,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전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기관과 연대하며 노력하는 행동하는 박물관이다. <민족과 여성 역사관>1990년 윤정옥 교수가 한겨레신문에 󰡒󰡐정신대󰡑원혼의 발자취 취재기󰡓를 연재하여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자, 󰡐부산여성의 전화󰡑의 운영위원장이었던 김문숙 씨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한 것이 오늘날 역사관을 설립하게 된 계기이다. 김씨는 1991년 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부산 정대협을 분리하고,󰡐정신대 전화󰡑를 개통하는 등 우리나라 최초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위안부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최초로 일본 정부로부터 위안부 배상 책임을 이끌어낸 시모노세키 재판을 주도하였다. 현재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모임의 한국대표를 맡고 있다. 앞서 언급한 기관들은 여러 단체들의 협력과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비해, 이 역사관은 김 관장의 私財를 기반으로 발족한 후 지금까지도 운영의 대부분을 김 관장이 담당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기록물은 범죄행위’, ‘피해사실’, ‘해결을 위한 노력으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위안부 관련단체들이 제공하고 있는 전시 콘텐츠는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구술 즉 피해사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본 역사관은 해결을 위한 노력과 관련된 기록물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데, 시모노세키 재판과 국민기금 반대운동 결과 생산된 기록물이 대표적이다. 시모노세키 재판에 참여한 2명의 위안부 할머니와 2명의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의 증언 기록과 재판에 관련된 모든 기록은 향후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한 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증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김 관장은 역사관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과와 배상이며, 이를 위해 역사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민족과 여성 역사관은>1이 운영하는 일본군위안부기록물 관리기관인데, 인력 부족으로 인해 기록물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 90세의 고령인 김 관장은 향후 역사관의 존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으며 본인의 여력이 다할 경우 기록물은 국가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하였다.(201612월 인터뷰)

 

2. 연대와 좌절

위와 같이 민간단체들이 설립한 위안부 기록물 관리기관은 이 문제를 피해 할머니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201741일 제1회 일본군위안부박물관 회의를 東京에서 개최하는 성과를 낳았다. 1회 일본군위안부박물관회의 실행위원회는 “201512월 한일 정부가 피해자의 의사를 묻지 않고 합의를 하면서 위안부 문제가 모두 해결된 듯 한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위안부 피해 실태와 역사를 전하는 박물관의 역할은 차세대평화와 인권 교육이라는 목적 뿐 아니라 피해여성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지극히 중요해졌다고 이번 회의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여기에는 전 세계 일본군위안부박물관 7개와 위안부 관련 기억 활동을 전개하는 4개의 NGO 단체가 참가하여, 위안부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기억을 계승하고 전쟁이 없고 여성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연대하여 활동해 나갈 것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201710월 말,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등 9개국이 공동으로 신청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보류되었다는 소식은 그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모든 단체와 관련자들을 절망하게 하였다. 위안부 기록물은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상세히 알려주는 피해자의 증언 기록을 비롯해 위안부 운영 사실을 증명할 사료 등 2744건으로 구성되었다.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서 발언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상 규명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자료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유네스코 분담금 납부 거부를 무기로 내세워 유네스코를 압박한 일본 정부의 저지를 이겨내지 못했다. 또한 일본군위안부피해자인 이기정 할머니가 1111일 별세하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총 33명으로 줄었다. 생존 피해 할머니들은 평균 85세 이상의 고령이며 언제 세상을 떠나지 알 수 없다. 우리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이제 우리는 위안부 문제의 증거로 활동하는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한 후 이 문제의 해결과 기억화를 어떠한 방향으로 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들이 역사증거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한 후에도 운영 가능한 역사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록관 운영방안에 대해 모색해보아야 하는 시점이다.

 

3. 기억의 재현과 확장을 위하여

무엇보다도 일본군위안부기록물 관리기관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 ·물적 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기록물 관리가 공공기록물관리기관 수준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위한 법 제정이 시급한 실정이다. 법률 제정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우선 <국가지정기록물>을 확대 지정할 필요가 있다. <국가기정기록물>에 대해서는 국가기록원에서 기록 관리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고 있다. 20179월 기준 총 12(15)<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되었는데, 그 중 일본군위안부관련 기록물이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된 사례는 3건이다. 8호 일본군위안부관련 기록물(2013, 나눔의 집, 3060), 8-1호 일본군위안부관련 기록물(2014,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940), 8-2호 일본군위안부관련 기록물(2014, 나눔의 집, 125) 뿐이다.

둘째, 소장기록물에 대한 목록화 작업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일부 일본군위안부기록물 관리기관의 경우 인적 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소장 기록물에 대한 목록화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서 소장 기록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록물의 소실이 우려되고 있다. 목록화 작업이 끝난 기록물에 대해서는 기록물 DB를 구축하여 이용자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나아가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여 모든 일본군위안부관련 기록물들을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일본군위안부기록물 중 범죄행위와 관련된 기록물을 수집하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기록물 관리기관이 수집하고 있는 기록물은 대부분 피해사실과 관련된 것이다. 일본이 위안부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범죄 행위와 관련된 기록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중국, 대만, 필리핀 등 국외 위안부 관련기관 특히 가해국 일본의 위안부 기록물 관리기관과의 협력을 통한 기록물 발굴과 확보가 필요하다.

넷째, 기록물 관리기관은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을 활용하여 일본군위안부의 기억을 확장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견학, 전시, 출판, 강좌, 강연, 세미나, 홍보(소식지) 등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소장기록물을 교육용 콘텐츠로 개발하여 역사교육에 활용할 수 있게 하여 후세대들이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국가기록원 및 전공자들과의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섯째, 일본군위안부기록물 관리기관의 활동을 기록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한 후에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한 기관의 활동 또한 중요한 역사기록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92년에 시작된 수요집회는 25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쉬지 않고 개최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생산된 기록물은 향후 위안부의 실체를 입증하는 중요한 기록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앞서 살펴본 일본군위안부기록물 관리기관은 각기 다른 설립 주체로 인해 기관마다 집중하고 있는 활동이 다르다. 따라서 각 기관의 특성이 반영된 기록물 또한 향후 일본군위안부의 역사를 구성하는 역사기록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사진|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 내 희움 스토어

 

여섯째,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한 후에도 위안부 기록물 관리기관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후원기관 및 후원자를 확보해야 한다.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의 경우 대구·경북지역에서 결성된 사)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중심이 되어 건립된 커뮤니티 아카이브이다. 시민모임은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기록물을 수집하고 각 종 행사를 개최하여 역사관을 홍보하고 있다. 또한 시민모임의 브랜드 희움’(희망을 모아 꽃 피움)의 물품 판매를 통한 수익금을 역사관 운영에 활용하고 있다. 이 역사관은 시민단체 활동과 비즈니스가 만나서 탄생한 결과물로써 시민의 힘으로 역사관을 운영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다. 시민모임의 활동은 지속가능한 역사관 운영을 모색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위와 같은 제안이 실행되어 피해 할머니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국가의 지원과 관심이 있어야 한다. 20171124일 국회에서는 매년 814일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간 이 문제를 위해 노력한 관계자들의 땀이 결실을 맺은 결과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이 문제를 미루기에는 우리에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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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4:02

사라짐의 과정을 지켜보는 일

 

<안녕,둔촌주공아파트> 발행인, <마을에숨어> 대표 _ 이인규

 

 

 

사라질 고향을 기록하기로 했다.

사회생활에 치이던 20, 힘들 때면 나는 늘 나의 고향, 둔촌주공아파트를 그리워했다. 이곳은 나에게 언제 와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앞으로 남은 인생길에서도 이렇게 흔들리는 일들은 많을 텐데, 재건축으로 이곳이 사라지면 나는 어디에서 위안을 얻어야 할까? 이곳을 떠나면 그리울 것이 분명한데 다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는 걸까? 이곳이 사라지고 나면 이렇게 아름다운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 믿지 않겠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던 나는 둔촌 주공아파트가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옮겨 담기로 했다.

 

아파트를 기록한다고 하면 건축물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내가 둔촌주공아파트의 건물 형태를 매우 좋아하는 것은 맞다. 아주 어릴 적에 잠시 있었던 낯선 외국 생활 이후에 내가 다시 아는 곳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 준 것이 바로 둔촌주공아파트의 새하얀 타워형 아파트 형태였다. 지금도 빛에 따라 달라지는 둔촌 주공아파트 건물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기록을 통해 남기고 싶었던 것은 단지 건축물에 대한 기록은 아니었다.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

기록을 통해 남기고 싶던 것은 내가 이곳에서 경험한 모든 환경과 모든 관계였다. 아파트 단지를 만들 때 원래 있던 작은 동산 두 개와 완만한 구릉 지형을 그대로 살려 만들었다. 그 덕에 미세한 오르막을 걸을 때 다리에 힘이 들어갔지만, 땅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매일 느꼈다. 아파트 동과 동이 연결된 관계, 그 사이에 놓인 작은 오솔길과 푸른 잔디밭, 놀이터와 쉬어갈 수 있는 정자의 배치 등 섬세한 고민과 배려로 만들어진 멋진 부분들이 단지 안에 가득했다. 많은 시설이 있었지만 불필요하고 인위적인 것은 거의 없었다. 꼭 있어야 하는 것들이 적절히 놓여 오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안에서 살면서 맺은 관계들도 모두 귀하다. 어릴 적에 동네를 오가면 아는 사람을 늘 만났다.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인사를 나눴고,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짧은 대화도 오갔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던 사람도 시간이 가고 자주 보면서 더 반가운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자율적이고 자유롭되 서로 피해를 주지 않고 배려하는 선을 지켰다. 9시 이후에는 청소기를 돌리거나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는 서로 지켜야 할 생활의 규칙이 있었고, 이러한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다 같이 모여 논의하던 협의 과정이 있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어르신들의 자원봉사를 많이 보며 자랐다.

우리에게 주어진 녹지와 나무가 넉넉했기에 단지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에게도 자리를 내어주는데 인색하지 않을 수 있었다. 베란다에 새가 둥지를 틀면 아기 새가 다 자랄 때까지 어미 새를 도와 먹이를 주기도 하고, 아이 어른 할 거 없이 오가는 고양이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키우다 너무 커버려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경비아저씨가 닭장을 만들어 돌봐주시기도 했다. 매일 아침 들리는 새 소리가 좋았고, 새를 위해 작은 집을 마련해주기도 하였다.

내가 말하는 고향이라는 것은 특정한 공간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의 삶의 방식, 특유의 정서에 가까운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배웠고 그렇게 믿고 살아왔던 삶의 가치관 같은 것 말이다. 이러한 일들이 둔촌 주공아파트를 떠나고부터 너무 많이 사라졌다. 더는 내 방 창문으로 푸른 나무를 볼 수 없었고, 집 밖을 나서서 거닐 수 있는 오솔길도 없었다. 이웃과 인사를 나눠본 적도 없었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이웃들만 늘어갔다. 둔촌 주공아파트에서 살면서 만들어진 나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고 싶었지만 환경적으로 그럴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둔촌으로 돌아갈 수 있길 계속 열망했다.

 

기록

<안녕,둔촌주공아파트>를 시작한 2년쯤 되던 지난 201412월에 다시 둔촌 주공아파트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꼭 한번 다시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나는 많이 아프고 지친 상태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곳에서 다시 치유되었고 힘을 얻었다. 하루 일과에는 짧은 산책과 창밖을 보며 잠시 쉬는 시간이 더해졌고, 이웃과 자연스러운 인사를 나누며 지냈다. 다시 내가 삶에서 소중하게 여기고 가치를 두고 싶은 것들을 지키며 살 수 있었다.

 

둔촌으로 다시 돌아와서 기뻤던 것은 내가 기억하는 그 삶이 '미화된 기억'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만들었던 과거의 기억이 거짓이 아니고, 아직도 이곳에는 실재한다는 안도감이 나를 다음 단계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동안 믿고 살아온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흔들릴 때 우리가 고향을 찾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나의 고향을 기록으로 담는 것도 미래로 나아갈 힘을 얻고, 새로운 생각과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기록의 힘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기록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기록은 단지 수장고에 잘 보관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가 되어야 한다.

 

사라짐의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지난여름부터 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매일매일 많은 것이 사라지고 있다. 사라짐은 현재 진행형이 되었다. 무너지는 모래성을 손으로 붙잡고 있는 기분이다. 그나마 모든 것이 온전했던 지난봄, 가장 반짝거리던 마지막 시간을 기록으로 남겨놓은 <안녕,둔촌X가정방문>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128일 나의 집 이사를 마지막으로 그 기록에 담긴 모든 집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 시절 각자의 이야기와 고민, 온기가 담겨진 집의 모습은 기록에 그대로 박제되어 기록에 참여한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원점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그로부터 얼마나 자신의 삶이 더 나아갔는지 다시 되돌아가 생각해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상실은 이미 시작되었다. 사라지는 과정을 기록하는 것은 겨우 견디고 있는 상실의 당사자인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너무 힘든 작업이다. 결국 사랑했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는 이 과정을 기록으로 옮기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 시점에서 내가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은 사라지는 과정을 기록하는 것 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하나라도 해결해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 애도하며 슬퍼하기 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해야 한다.

 

재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게 된 나와 같은 처지의 고양이, 나무들에 마음이 갔다. 둔촌 주공아파트에서 나고 자라다가 처음 낯선 환경에 도달했을 때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나를 떠올리며, 둔촌 주공아파트를 벗어나서는 살아본 적이 없을 존재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잘 적응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뜻이 맞는 분들과 모여 우리 동네에 함께 살던 동네 고양이들의 이사를 준비하는 모임 둔촌냥이의 활동에 함께 하고 있다. 3만 그루에 달하는 나무로 가득찬 둔촌 주공아파트에서 단 한 그루라도 더 살릴 수 있는 방법도 고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이 땅에 지어지게 될 새로운 아파트 단지에 둔촌 주공아파트의 기억을 심어두고 싶다. 완전히 다른 모습의 공간이 되겠지만, 다시 찾아와볼 사람들이 옛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작은 단서들을 새로운 공간에서도 발견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렇게 기억이 이어지고 지역과 공간에 대한 애정도 이어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다시 이 지역에서 새롭게 둥지를 틀 많은 사람이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기고 간 목소리를 통해 자연을 벗 삼고, 이웃 간 마음의 벽을 허물어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삶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우리의 둔촌 주공아파트는 비록 사라지지만, 이 터전을 사랑해온 사람들의 마음만은 다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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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0.18 11:18

AI, 예술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정준모_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미술비평

 

 

인공지능예술의 현재

최근 뉴욕의 사진전문갤러리 메트로픽처스에서 미국작가 트레버 파글렌(Trevor Paglen, 1974~ )의 전시회가 열렸다. 컴퓨터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스스로 학습하면서 새롭게 만들어내는 내는, 아니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이미지들의 보이지 않는 변화를 추적하는 전시다. 전시된 작품들은 인공지능이 스스로 공부하는(Deep Leaning) 과정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이미지들을 추적하고 연구한 결과물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 컴퓨터 과학자들이 수 년 동안 스탠포드대학의 레지던시에서 협업을 통해 얻은 성과물이다. 이 성과물들은 컴퓨터가 학습과정에서 급증하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들을 스스로 생성해내면서 예상할 수 없거나 감지할 수 없는 것들을 채록(?),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시에 출품된 작품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지들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되는데 우선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자주 사용되는 부분 프로그램들을 모은 이미지와 컴퓨터가 판독 가능한 풍경, 그리고 컴퓨터가 스스로 만든 이미지들로 구성되었다. 그중에서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이미지들은 독일의 예술가 히토 스테이얼(Hito Steyerl, 1966~ )의 이미지 백여 개를 가져다가 다양한 얼굴 인식 알고리즘을 적용시킨 이미지와 함께 나이, 성별, 감정 상태 및 기타 특징을 읽고 만들어낸 프로그램을 함께 전시했다. 또 한편에는 철학자이자 혁명가인 동시에 정신과 의사이기도한 프란츠 파농(Franz Fanon, 1925~1961)이나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Simone Weil, 1909~1943)의 사진을 읽기위해 안면인식프로그램을 사용했다. 파농의 얼굴에서 파생된 또 다른 다양한 파농의 얼굴 표정은 컴퓨터에 탑재된 생체 인식 소프트웨어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그 결과물들은 그 소프트웨어에 의해 결정된 고유의 특성을 보여준다. 같은 이미지에서 각각 대립되는 환각적인 형상들을 만들기 위해 파글렌은 이미지들을 전조와 관념, 괴물, 꿈 등으로 분류하고 다시 이를 인식해 조합하도록 인공지능을 훈련시켰다. 이렇게 교육을 받은 인공지능은 점점 더 자기 혼자 스스로 으스스하고 섬뜩하지만 아름다운 새로운 이미지들을 첫 번째 인공지능과 함께 협업을 통해 생산해냈다. 이 전시에 출품된 비디오 설치작업은 일반적인 컴퓨터 속의 인공지능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수 십 만개의 교육용 이미지들을 훈련을 통해 어떻게 사물과 얼굴, 표정과 행동을 익히는지 보여준다.

 

과학과 예술의 만남

늘 새로운 것에 목마른 예술가들에게 과학과 신기술은 충실한 동반자인 동시에 조력자였다. 사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1519)가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는 것도 실은 그가 새로운 과학적 기법과 원리를 그림에 도입해 인간의 눈에 보이는 모습을 가장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원근법 특히 선원근법과 명암원근법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또 해부학을 통해 인체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던 그는 피부만 그린 것이 아니라 뼈대를 세우고 근육을 더해 인체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9~1955)의 상대성이론은 현대미술의 판도를 바꾸어놓았다. 예를 들면 마그리트(René Magritte,1898~1967)<유리의 집>(1939)은 빛의 속도로 달리는 물체는 시간이 느리게 가고 길이가 짧아진다는 특수상대성의 원리에 의한 길이수축의 원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또 다른 초현실주의자 달리(Salvador Dalí, 1904~1989)의 작품 <기억의 지속>(1931)에는 움직임이 없는 쥐죽은 듯 고요한 해변에 시계가 나무에 늘어진 채 걸려 있다. 상대성이론의 정지된 시간의 개념이 보인다.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시간과 공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시공간이 일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입체파회화(Cubism)도 마찬가지이다. 백남준(1932~2006)의 작품도 과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의 비디오아트는 1969년 일본 공학자 슈야 야베(Shuya Abe, 1932~ )의 도움을 받아 비디오 합성기를 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야베와 함께 만든 비디오 신시사이저는 여러 비디오 영상 제작에 사용되었다. 비디오카메라나 다른 소스로 부터 최대 7개의 영상을 받아들여 실시간으로 편집이 가능했던 다재다능한 도구였다. 스캐닝, 색채변화, 녹화의 주요기능은 신시사이저의 건반처럼 빠르게 깜빡이는 화소단위 정보의 집합 영상을 전자적 메카니즘으로 직접 연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 업적은 이런 기술적인 발명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이를 통해 인간 삶의 근원적 문제인 시간에 대한 성찰을 가능하도록 비디오라는 매체, 형식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는다.

이후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과학을 이용해서 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이제 곧 인공지능이 많은 전문직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판사나 증권투자자들의 자리는 물론 의사들의 일자리까지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 많은 예술가들이 인공지능을 통해 새로운 예술을 시도하고 있다.

하긴 하나를 가르치면 스스로 열을 아는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까지 갖춘 인공지능이 못 할 것은 없을 것처럼 보인다. 영국의 화가 헤롤드 코헨(Harold Cohen, 1928~ )은 이미 1973년 소위 아론’(Aaron)이라는 그림 그리는 인공지능을 내 놓았다. 그 후 아론은 진화를 거듭해 1980년대에는 3D 공간에서 물체나 사람을 배치하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스스로 그림을 그릴 정도로 발전했다. 아론의 그림은 1986년 코헨의 영국 테이트미술관에 기증되어 어엿한 미술관 작품이 되었고 1995년에는 경매를 통해 소장되기도 했다. 벤자민 그로서(Benjamin Grosser)는 쌍방향 대화형 그림 그리는 도구로 작업을 한다. 그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해지도록 상호 작용적인 경험, 기계 및 시스템을 구성하여 소프트웨어가 우리의 행동을 규정하는 방식을 알려주어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그림에 영향을 주는 대화, 배경음악등 프로그램자체가 소리에 따라 반응하면서 캔버스위에 흔적을 남기도록 하고 있다.

음악에서도 작곡과 연주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했다. 야마하는 자동연주피아노 디스크라비에’(Disklavier)를 만들었고, 2012년에는 캐나다의 한 작곡가는 협업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 당시 관객들은 사람과 인공지능이 작곡한 음악을 구별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예일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하는 도냐 퀵(Donya Quick)쿨리타’(Kulitta)라는 작곡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운드 클라우드로 공개해 사람이 만든 음악과 인공지능이 만든 음악을 가려보라고 했다.

 

도구냐 예술이냐

인공지능이 인간이 만든 음악과 구분 할 수 없을 정도의 음악을 만들었다고 해도 이것을 과연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사실 작곡하는 인공지능 쿨리타의 경우 저장된 자료에서 규칙들을 분석하고 음계를 조합해 작곡을 하는데 이는 일종의 자기학습 방식으로 이 방식을 이용하면 클래식뿐만 아니라 여러 음악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기계시대 원본개념의 상실이 아니라 예술의 기본구조를 깨는 결과를 초래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컴퓨터 즉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한다고 하지만 이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음악이나 미술은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느끼고’, ‘이해해서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더 중요한 작업이다. 인공지능이 좋은 음악을 만들 수는 있을지는 모르지만 음악을 창조하기보다는 분석해서 조합하는 것이라는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따라서 젊은 새로운 음악가들은 쿨리타같은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아론같은 그림 그리는 인공지능도 사람이, 미술가가 애초에 만들고 창작해놓은 작품들로부터 학습이 시작되고 비롯된다는 점에서 현재의 시각으로는 예술이라기보다는 모방또는 복제의 하나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실 요즘 상업적인 영화나 음악의 경우 빅데이터를 분석해 이를 토대로 대중들이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소들을 매우 정교하게 배치해 흥행과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것과 어쩌면 닮아있다. 관객이나 청중들의 감상패턴이나 반응을 섬세하고 촘촘하게 분석해서 영화나 음악을 만드는 것은 이미 알려진 비밀이다. 넷플릭스의 성공작 하우스 오브 카드BBC 원작을 토대로 관객들이 원하는 감독과 배우를 기용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초단위로 분석해 흥행요소를 이어 붙인 것이다. 장면과 상황 즉 이야기를 엮었다. 소비자 성향 분석을 위해 기존 작품의 장면을 초단위로 분석할 정도로 치밀하다.

하지만 장르에 따라 다르지만 원칙적으로 음악의 경우 작곡 방식과 코드의 진행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라면 이 다른 장르상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이어붙이고 잘라 새로운 음악을 만들거나 편곡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창조가 가능하지만 컴퓨터와 프로그램은 다르다. 왜냐하면 사람은 비선형구조로 생각하지만, 프로그램은 선형구조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화가와 소설가, 음악가를 대체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지만 절대적으로 인간의 감성의 영역인 동시에 비선형적인 예술의 영역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는 미지수다. 사실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예술은 미적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이라고 정의할 때 인공지능이 창작해낸 예술품들이 과연 종래의 미학적 관점과 태도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인간의 경우, 삶의 주변과 자연 등 모든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또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등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그 과정과 과정마다 변화와 대응을 해나간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오직 완성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작동하거나 아니면 완성되었다는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판단을 하기 보다는 계속해서 학습을 해야 하는 과정이라면 결코 완성작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또 작업을 하는 중간에 나타날 수 있는 새로운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으며, 영감을 얻을 수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백남준에게 TVVCR 기술이 붓을 대신하는 도구였던 것처럼 인공지능은 예술의 도구 또는 조력자는 가능하겠지만 예술가를 대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간이 만든 예술작품과 외형이나 형식이 다를 바 없다고 하더라도 작품이라면 필히 갖추어야할 창조성과 예술성과 내면의 소리를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넉넉하게 봐서 현대미술에서 사용되는 오마주(Hommage), 패러디(Parody), 차용(Appropriation), 키치(Kitsch)등의 하나로 정의 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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