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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27호] 서강대학교 모델하우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남북 공간의 투쟁

남북한의 경쟁은 공간' 간의 투쟁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애초에 국토를 건 싸움이었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이제는 불가침한 영역을 두고 누가 더 그 공간을 뛰어나게 만드는가?” 하는 의제가 2차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싸움에서 과거 북한의 경우는 동구권의 지원을 받아 평양의 공간을 사회주의 이상의 구현체로 실현하는데 매달린다. 170미터가 넘는 주체 사상탑, 연면적 45천 제곱미터를 넘는 만수대 의사당이나 105층에 이르는 류경호텔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안팎으로 밀려오는 북한 사회에 대한 위협과 내부적으로 점증되는 불안 요인들을 고려하면 보여줄 것이 그것 외에 없는 허약함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남한 사회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 집단적 안보 의식을 강조하던 시기 자유주의적 국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남쪽의 국토는 본래의 자연스러운 가치를 상실한다. 전통적이었던 농촌 공간은 개선을 요하는 공간으로 낙인되고, 풍성했던 전국의 산천은 미개발된 요지로 점지되면서 신속히 건설 회사들이 투입된다. 도시 공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감히 서울 수도 공간의 화려함을 위협할 수 있는 달동네나 빈민굴은 어떠한 합의도 없이 도시 정화 계획에 따라 재정비된다. 따라서 위협적인 북한의 존재에 대항해 남한의 당당하고 발전적 모습을 보여주려는 허약한 욕망은 또 한 번 공간적으로 물화(物化)되는 것이다.

이러한 체제 대치 구도는 1990년대 국제 정세의 변화로 북한이 일방적인 열세에 놓이게 되자 싱겁게 정리된다. 하지만 남한 사회는 그 이후로도 공간을 대상화하고 물신화하려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자본주의 경쟁이라는 더 살벌하고 냉엄한 도전 과제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이를 갈며 경쟁하는 모습은 오히려 날마다 커져가는 도시 공간에서 표출된다. 딱히 의지할 곳이 없는 경쟁 사회에서 하늘을 수놓는 고층 빌딩들의 스카이라인이나 최신식 건물의 도입은 최고의 안도감을 자랑한다. 게으르게 개발되지 못한 빈 공간이나 낡은 장소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불량 공간이 되고 만다.

 

 

대학 공간의 물신화

대학은 이러한 도시 공간의 물신화 과정을 따라 가려는 것일까? 체제 경쟁을 일삼듯 높고 화려한 건물을 대학 곳곳에 배치하고, 허약한 자신감을 보여주듯 낡고 쓸모없는 공간들은 빨리빨리 제거 해버리려는 것일까? 사실 대학은 상대적으로 물신화와 거리가 먼 곳이었다. 대학이라는 학문적 전통이 물신화된 흐름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행행하는 물신화를 끌어들여 대학 본연의 기능을 해제하고 분해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은 물신화를 피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가 대학을 나태하고 시대 역행적인 곳으로 보는 것은 반대로 잘못 주입된 의식일 수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 대학은 그런 흐름의 일선에서 시대를 규제하고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현실적인 기능들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의 외양은 첨단의 그것과 한 축에 속하지 않았다. 적어도 외양을 기준으로 경쟁하듯 견제하고 겨루는 일들을 자랑삼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보다 내적인 우월성과 유일성을 목표로 삼고 그것들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대학에서 공간은 주변 환경을 압도하기보다 사물들과 어울렸고, 내부를 감추기보다 안이나 밖에서든 투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적인 특성을 가졌다. 그것이 대학과 대학 공간을 정의하는 공간론적 설명일 것이다.

본교의 전통도 마찬가지였다. 19571, 당시 변두리에 불과했던 신수동 지역의 67,075평의 부지를 매입하고 한국 근대 건축가의 1세대인 김중업 건축가의 설계로 1959년 본관 건물이 완성되면서 2000년 즈음에 이르기까지 특별히 빼어난 공간 없이도 남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규모나 외양에 치중하지 않으면서도 내적인 철저함만큼은 양보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공간 속에 침투했기 때문이다. 공간에 대한 부족함이나 빈틈은 오히려 지적인 헌신성을 드러내는 방증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기준도 2000년 이후 달라진다. 첫째, 건축되는 건물 수의 변화다. 1960년 첫 개교 후 2000년까지 생겨난 건물을 세워보면 대략 12채에 이른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지어진 건물의 수도 사실상 12채다. 그러나 이것은 개교 후 40년 간 지어진 건물이 2000년대 들어 단 10여년 만에 지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속도로 따지면, 최고 네 배나 빨라진 속도로 옛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지었음을 뜻한다. 이것만이 다가 아니다. 현재 교내에서는 4개의 신축 공사가 예정 중이고, 규모를 알 수 없는 지방 캠퍼스 프로젝트까지 학교 밖에서 대기 중이다.

 

이러한 건물짓기는 국토를 공사장 소음으로 가득하게 했던 7, 80년대 밀어붙이기식 개발 계획을 연상케 한다. 공간이 갖고 있는 역사성이나 그 속에서 생활하는 개개인의 여론들은 무시한 성장 일변도의 결과처럼 보인다. 삼민광장과 삼민광장 너머로 보이는 남산 및 한강의 작은 경치는 사라졌고, 식당 옆 농구장의 한가함도 잃어버리게 됐다. 우리 주변에는 늘 무언가 쫓기듯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뿐이다. 그 이유가 위의 맥락과 전연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일어난 공간의 변화는 민자 건물의 등장으로 대별된다. 2005년 사회기반 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이 개정되면서 민간 자본의 힘을 빌려 학교 시설을 지을 수 있게 된다. 학교는 직접적인 재정 부담 없이 학교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됐지만, 수익을 기본으로 하는 민간 자본의 성격상 학생들을 기업의 볼모로 떠넘기는 처사이기도 했다. 그렇게 지어진 건물이 곤자가 국제학사와 곤자가 지하 캠퍼스다. 곤자가 기숙사는 높은 기숙사 비와 의무적 식권 구입, 장기 이용자 위주의 선발 등으로 민자 기숙사 폐해를 이미 많이 노출하고 있다. 또한 기숙사 건설과 운용 과정에서도 학교와 담당 기업인 산업은행자산운용지주회사(산은자산운영) 사이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20088, 산은자산운용과 학교가 기숙사 건축에 대한 계약을 맺으면서 연 8.45%의 이자를 10년간 납부, 나머지 10년은 원금 상환하기로 협약을 맺었는데, 상환을 조기 완료하려는 학교 측 제안을 산은자산운용 쪽이 이자수익을 목적으로 거절했던 것이다. 이 점은 당시 학교 총학생회를 통해 밝혀졌고 언론에 기사화 됐다(“기숙사비도 반값”...서강대 총학, 산은자산 제소, <머니투데이>, 2012323일자).

한편 곤자가 지하 캠퍼스는 수익을 노리는 자영업자들의 투자 요지로 지목되기도 한다(대학, 병원 등 공공시설 상가 불황 무풍지대’, <한국경제>, 2010721일자). 그 결과 본교는 서울 내 위치한 대학 중 입점한 상점의 숫자가 세 번째(18)에 드는 대학이 됐다. 학생 당 비율로 따지면 서울대 다음으로 2(0.0021)를 차지하는 것이다(“입점 상점 많은 대학 서울대한양대고려대서강대 순”, <시사저널>, 2013612). 이 뿐만이 아니다. 학교는 민간 업자들의 영리를 위해 운영되는 곤자가 캠퍼스를 학술 목적의 비영리 시설로 신고해 세금을 면제 받아오던 사실이 마포구청의 세무조사 결과 드러나기도 했다(비영리 가장 임대사업 상아탑의 꼼수’, 파이낸셜 뉴스, 2013522). 끝이 보이지 않는 민자 건물의 폐해는 수익만 노리는 민간 자본의 이기심과 이를 규제하고 감시해야 할 학교 측의 방만한 의지를 잘 보여주는 예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변화는 기업의 기부 건물 증가이다. 대학의 성장이 우선 목표가 되면서 대학 재정의 한계와 기업들의 사회적 책무를 요구하는 상황이 맞아 떨어지면서 최근 기업의 대학에 대한 기부는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그러한 기부는 과거의 장학금 중심으로 이뤄지던 저소득자 지원의 성격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대학의 성장과 그 열매를 나눠 먹을 수 있는 자에게만 유산되는 상속 구조에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능력이 없고 환경이 안 되는 사람들보다 누릴 수 있는 자에게만 혜택이 몰리는 구조인 셈이다. 포스코 프란치스코관(F), 아시아나 바오로 경영관(PA), 그리고 현재 건축 중인 우정관(신 학생회관 및 기술경영전문대학원)이 기업의 기부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밖에 경기도 남양주에 건축 예정인 제 2캠퍼스 건설 계획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기부금을 모집하고 있다. 남양주 캠퍼스의 홍보 책자 속에 드러난 비현실적인 청사진과 지정 금액에 따라 분양되는 네이밍 장소를 기록한 모습은 입주를 위해 보기 좋은 정보들만 모아놓은 청약 광고의 그것과 매우 유사해 보인다. 2003년 동문회관 건립 기부금 20여억 원을 학교측이 유용했던 사실(서강대, 동문회관 기부금 20억원 유용, <YTN>, 2003828)까지 알게 된 상태에서 이 모든 계획을 무비판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 공간의 전유 가능성

우리는 이런 대학 공간을 전유(專有)할 수 있을까? 과도한 물욕과 전시욕으로 대학 공간이 물신화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공간적 한계와 물질적 제약을 한계가 아닌, 더 높은 상상력을 위한 재제(再製)로 활용하는 역전이 가능할까? 그러한 전유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되돌리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린 것들을 재사유(思惟)해 자율적 공간의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누림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틀에 박힌 상상력을 넘지 못하고 상업화된 그것들을 모방하는 교내의 크고 작은 행사들 모두는 참신함을 잃었고, 자발성의 한계에까지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러한 전유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주어진 조건에 맞춰 사는 것이 익숙해진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1964122일 미국의 UC 버클리 대학에서는 대학의 상업화와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매카시즘 하의 대학과 정부를 비판하는 연설이 있었다. 당시 연설자였던 마리오 사비오(Mario Savio)는 자신의 연설을 통해 미국의 자유 연설 운동(Free speech movement)을 이끌어 냈다고 평가 받는다. 다음은 그의 연설 내용 중 일부이다.

 

   

이 연설은 미국사에서도 명연설로 손꼽히는 “Put Your Bodies Upon Gears’이다. 모두가 대학의 물신화에 몸을 던져 기계의 작동을 멈춰야 할 때라고만 주장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의 공간들이 물신화 되고, 우리의 자유를 점점 더 제한하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의 정신은 이를 되돌아볼 능력을 지녔는지 의문을 가져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공간의 물신화와 관련된 일련의 시도들이 이미 다 와버린 현실일지라도 주어진 대로의 삶이 아닌, 우리의 목적과 바람에 맞춰 변화될 수 있는 삶인지를 함께 숙고해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바로 이러한 숙고가 함께 이루어졌을 때 공간에 버금가는 정신을 소유하는 길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