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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3호] 돌아온 것들, 돌아올 것들, 그리고 바뀐 것들

서강대학교 졸업생 오 유 민

 

2022년은 공연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해였다.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던 대면 공연이 본격적으로 전면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전처럼 설레는 발걸음으로 공연장을 찾고 마음껏 환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다시 품에 안게 된 우리들. 그 사이 공연계에는 어떠한 일들이 있었을까.

 

1. 다시 돌아온 ‘터치’

 

짧게는 한 시간 반, 길게는 세 시간 동안 눈에는 눈물을, 손에는 땀을 쥐게 한 짜릿한 공연의 끝에는 모두가 하나 되는 소중한 순간이 있다. 바로 커튼콜. 등장만 해도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악역도 주인공을 환한 미소로 맞아주고,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인사를 하는 광경을 직관할 수 있는 오묘한 순간. 관객들은 무대 위 잊지 못할 순간을 선물해준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무대 위 배우들은 공연의 마지막 조각이 되어준 관객들과 동료 스태프들을 위한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극장을 가득 채우던 환호성 소리는 마스크 아래 힘겹게 몸을 숨겨야만 했었다. 기립을 해보아도, 손을 펼 수 있는 만큼 가장 크게 펴서 아무리 세게 쳐보려고 해도 오직 박수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 벅차오름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지 못해 답답했던 적도 많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이 세태를 관객들과 공연 제작사들은 “오히려 좋아” 정신으로 풀어나갔다. 커튼콜 
떼창 대신 박수를 포함한 칼각 커튼콜 안무를, 그냥 박수는 심심하니 클래퍼(종이 혹은 플라스틱 한 쌍을 마주쳐 박수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소품)를 박자 맞춰 연주하기도 했다. 한 아이돌 콘서트에서는 자체 콘텐츠에서 나왔던 소고를 직접 응원 굿즈로 팔기도 하는 등 모두가 각자의 방법으로 난관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대 위 퍼포머들과 관객들은 그렇게 다시 천천히회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드디어 환호성이 관객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딱 그 시기에 맞춰 나는 올여름과 초가을을 뜨겁게 달군 뮤지 
컬 <킹키부츠>의 첫 공연 현장을 찾았다.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로비는 오프닝 위크에만 진행이 되는 앤젤들의 런웨이 로비 쇼로 후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된 공연. 주인공 롤라와 앤젤들의 첫 등장인 ‘Land of Lola’ 넘버가 끝나자마자 충무 아트센터 대극장은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가득했다. 현장에 있었던 나는 손이 닳을 듯한 박수와 마스크 위 초롱초롱한 눈만 가득했던 2020년 시즌과는 차원이 다른 벅차오름을 피부로 느꼈다. 관객들은 지난 2년 반 동안 못 지른 환호성의 몫까지 가득 담은 듯 모든 넘버가 끝날 때마다 진심을 가득 담아 호응했고, 배우들은 더욱 멋진 공연으로 보답했다.

 

그날, 관객들의 환호성은 단지 감탄의 의미만 담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무대 위 배우가 온몸으로 뿜어낸 그 에너지를 박수 
와 목소리를 통해 배로 돌려주며 말한다. 우리가 지금 여기 있다고. 언제나 그랬듯,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고.

 

2. 박제가 되어버린 넘버를 아시오?

 

그럼에도 지난 3년의 ‘코로나 시국’ 공연이 남긴 가장 고마운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수많은 공연 실황 영상-일명 ‘박제’ 일 것이다. 한때는 감질나게 끊은 프레스콜 영상만 주구장창 돌려보며 공연장에서의 행복했던 기억을 더듬다가, 이제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온라인 실황 중계 스케줄을 다이어리에 기록하고, 넘버 영상들의 업로드 알림들에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허우적대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 러버들에게 이토록 양적으로 풍족한 시대가 또 있었을까.


대면 공연이 전면 활성화가 된 요즘에도 온라인 실황 중계와 영상 박제는 오히려 더욱 활성화 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중에서 선두를 꼽자면 CJ ENM MUSICAL(일명 씨뮤)와 EMK, 이 두 제작사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뮤덕들 사이에서 “박제는 씨뮤처럼” 이라는 말이 공공연할 정도로 초고화질, 최고 음질에 전 캐스트를 고루 볼 수 있는 교차 편집까지 없는 것이 없다. 거기에 배우들의 가장 섬세한 표정 연기까지 볼 수 있는 영화관 버전 개봉까지. 코로나 이전 대부분의 실황 중계들이 기존에 촬영한 기록용 영상을 트는 데에 그쳤다면, 이제는 정말 ‘촬영을 위한 촬영’을 진행하여 현장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작품의 재미와 매력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나의 작은 욕심이 있다면 NT LIVE와 같이 해당 콘텐츠들을 모아보는 플랫폼이 생기는 것. 다양한 언어들의 자막도 제공이 된다면 한국 공연들이 더 많은 이들에게 환희와 감동을 선사해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본다.

 

다만 이로 인해 야기되는 영상 불법 유포 등의 저작권 관련 이슈들이 끊임없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것은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제도적, 장치적인 방안들로 이를 방지할 수는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연을 사랑하는 이들이 앞서서 성숙한 공연 문화 조성에 기여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3. 아직은 돌아오지 않은 것들

 

퐁당, 퐁퐁당 떨어져 있던 좌석들도 이제는 가득 채워져 있고, 박수만 가득했던 커튼콜에는 생기 넘치는 환호 소리가 돌아왔다. 이처럼 대부분의 공연 문화가 회복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은 한 문화가 있다. 바로 배우들의 퇴근길 문화이다. ‘퇴근길’ 문화는 공연이 끝나고 난 후, 팬들과 배우가 만나 (일대일, 다대일) 사인도 받고 짧은 대화와 질의응답을 나누는 시간이다. 영화로 치면 GV와 비슷한 개념인데, 배우 개인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부터 배우의 극과 캐릭터 해석에 관련된 질문들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다. 공연 별로 진행 시 배우 별 위치, 참여 규칙 등이 공유되어 꽤나 체계적으로 유지된 퇴근길이었지만, 종종 이슈들이 생겨 말들이 나오기도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퇴근길’ 문화는 팬들이 무대 위 배역이 아닌 배우와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배우들은 팬들의 사랑과 응원을 더욱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공연계의 특별한 문화로 오랜 기간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이렇게 2019년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진행되던 ‘퇴근길’은 2020년 코로나19와 함께 사라졌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소통의 시간에 팬들은 물론 많은 배우들도 아쉬움을 표했다. 그래서 일부 배우들은 현장 퇴근길 대신 인스타그램 라이브 
혹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기능 (일명 ‘무물’) 등을 통해 팬들과의 소통 시간을 갖기 시작했으며 이는 지금도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현장의 제약이라는 아쉬움을 가득 안은 채 선택한 차선책이긴 하지만, 관객들이 늦은 시간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빠르게 귀가하며 온라인으로 소통하고, 채널의 특성상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이 공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창구가 되기도 하는 등 예상치 못한 장점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공연계의 뜨거운 감자로 여겨지는 퇴근길 문화. 거리두기가 끝나고는 어떻게 될지,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4. 많이 기다리셨죠? 이제는 즐기세요.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머시브 공연’들의 귀환이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 2019-2020 겨울을 핫하게 뒤흔든 <위대한 개츠비>를 기억하는가. 그래뱅 뮤지엄이라는 공간의 기호성과 연말, 연초의 파티 분위기의 드레스 코드와 함께라면 그 누구든지? 평소에 공연을 많이 보지 않는 사람이라도 편하고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2020년 2월 조기 폐막하고 말았다. 모든 공연들이 그랬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이머시브 공연들은 가장 무력했다. 이머시브 공연의 대표 주자라고 불리는 뉴욕의 <슬립 노 모어>조차도 코로나로 인해 쓰디쓴 임시 폐막을 경험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머시브 공연들이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더욱 재밌고 흥미로운 모습으로. 공연과 식사가 결합된 <그레이트 엑스페디션> (블루스퀘어)은 관객들이 퍼포머들과 함께 열기구 모양을 한 좌석에 앉아 다섯 개의 도시들을 함께 여행한다. 각 정착지에서는 도시의 특성이 반영된 퍼포먼스와 음식을 오감으로 즐길 수 있다. 2019년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푸에르자 부르타 웨이라 인 서울>은 “현대인의 스트레스”라는 주제로 객석을 벗어나 직접 함께 뛰고, 환호하고, 땀 흘리는 경험을 선사한다. 관객들이 직접 설치된 무대 위에서 퍼포머들과 함께 움직이기도 하고, 그 모든 순간을 카메라로 기록할 수 있다. 영국의 이머시브 씨어터 그룹 다크필드의 3부작 <플라이트>, <고스트쉽>, <코마> (LG아트센터)는 관객들의 시각을 제한하고 다른 모든 감각과 소리에 집중하는 전례 없는 경험을 선사한다. 2020년부터 각자의 공간에서 핸드폰 앱을 통해 참여할 수 있는 세미 버전을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관객들이 입체음향과 특수효과 등이 가미된 오리지널 세트의 현장을 방문해 더욱 극대화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잠시 웅크려 있 던  이머시브 공연들은 더욱 흥미롭고, 경계와 제한이 사라진 모습들로 화려하게 귀환하고 있다.


5. 잠시 쉬어간 한 템포

 

이처럼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돌아오고, 변화한 공연의 지난 3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정말 길었을 이 시간은 우리가 사랑하고 지켜오던 공연의 많은 것들을 앗아 가기도 했지만, 많은 선물을 남기기도 했다. 잠시 한 템포 쉬어 가며 우리들은 더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들은 무엇인지, 무엇이 더 필요한지, 그리고 앞으로 공연이라는 예술이 펼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 너머엔 무엇이 있는지. 이제는 다시 스퍼트를 내 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