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10. 16. 09:00

석사과정 이 가 효 (LI JIAYI)

 

코로나19가 우리의 생활 패턴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올해 초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수많은 바이러스 중 특히 코로나19 와 같이 생존에 관련된 충격적인 경험에 의해 굵은 전용신경 회로가 구축되면 그 비극성으로 전체성이 형성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안과 우울, 무기력, 스트레스에 중독된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이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이 많다. 하지만 바이러스보다 우리의 삶을 더욱 해치는 것들은 눈으로 보이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며 한 가을의 밤 영화 <밀양> 다시 찾아보았다.

 

  일상생활에 널리 사용되면서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가 다소 가벼워졌다고 볼 수 있으나, 사실 트라우마는 정신 건강의학과의 진료 항목에 해당하는 질병으로 일상에서 평범하게 사용할 만한 단어는 아니다. 사람들은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9·11테러, 대구지하철 참사 등 대형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함께 듣게 된다. 소설, 영화 등 스토리가 있는 문예물에서 트라우마는 ‘주인공의 극복 대상’으로 자주 사용된다. 영화 <밀양> (2007, 이창동 감독) 역시 주인공 신애(전도연 분)가 겪는 트라우마와 그에 대한 대응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원작이 라고 할 수 있는 이청준의 소설 <벌레이야기>가 있기 때문인지 영화에 대한 기존 연구나 보도에는 소설과 영화라는 형태 변화에 따른 서사 변용에 대한 인식, 교육 측면에서의 깨달음이 담겨 있다. 영화가 개봉한 지 10년 이상 지난 만큼 다방면에서 많은 연구가 누적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영화 <밀양>은 주인공 신애의 트라우마 극복 시도 이야기로 읽힐 가능성이 존재 한다. 이에 본 글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바탕으로 주인공 신애가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어떤 트라우마들을 마주하고, 이에 대해 어떠한 대응을 보이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트라우마로부터의 회피

 

영화는 차창 너머의 맑은 하늘을 담으며 시작하지만, 그 하늘을 바라보는 주인공 신애의 마음은 편치 않다. 기혼자라면 절대 겪고 싶지 않을 두 가지 사건-배우자의 외도와 그 배우자의 사망-을 겪은 후 아들 준을 데리고 서울에서 밀양으로 이동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밀양으로의 이동은 여행이 아닌 이사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제까지 삶의 터전이었던 서울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애의 이사는 배 우자의 외도와 배우자의 사망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회피’이다. 배우자의 외도와 사망은 하나만이라도 개인에게 충분히 충격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두 개의 사건을 연달아 겪은 신애에 게 기존의 거주지는 더 이상 안락한 보금자리가 될 수 없다. 기존 의 거주지에서 그녀는 ‘평범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였지만 이 제 그녀의 위치는 ‘바람핀 남편을 둔 아내’이자 ‘그 바람난 남편이 죽은 아내’로 변화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의 변화한 시선을 인지 할 때마다 그녀는 절대 떠올리고 싶지 않은 두 개의 사건 ‘배우자 의 외도’와 ‘배우자의 사망’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신애는 이사를 통해 이 두 가지 사건이 자신의 의식 차원으로 올라오는 계기 즉, 주위의 시선과 마주치는 빈도를 줄인다. 그리고 이는 신애가 두 사건을 자신의 무의식 단계에 머물도록 효과적 으로 ‘억압’하도록 만든다. 물론 타 지역으로의 이동이 그녀가 겪은 사건들을 없는 일로 만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 이동을 통해 신애는 ‘배우자의 외도’와 ‘배우자의 사망’ 중 전자에 대한 부담감을 줄인다. 실제로 밀양에 도착한 신애가 연기한 것은 ‘서울에서 온 돈 많은 과부’였으며, 이 과정에서 그녀의 남편이 ‘외도하고 사망한 사실’은 감춰진 정보가 되고 밀양은 ‘외도하고 죽은 남편의 고향’이 아닌 ‘죽은 남편의 고향’이 된다. 물론 밀양 사람들 중에도 왜 하필 죽은 남편의 고향으로 온 것인지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신애가 말만 하지 않는다면 죽은 남편의 ‘외도’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정보가 되는 것이다. 자신을 찾아온 남동생에게 “난 서울이 싫어. 여기가 좋아. 여기가 왜 좋은지 아니?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 나 여기서 새로 시작할거야.”라는 신애의 말은 그녀가 서울에서 느꼈던 부담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새 공간에 진입하는 그 순간 신애의 가족은 아들인 준뿐이기에 신애는 그저 ‘아들과 사는 엄마’의 위치를 획득할 수 있고, 이것은 그녀 가 바라는 새로운 시작의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그런데 신애가 선택한 밀양이라는 공간은 바로 그녀에게 상처를 준 남편의 고향이다. 그녀가 거주지를 옮기는 중요한 선택을 하면서 자신의 부모에게조차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점, 밀양 사람 중에도 그녀가 왜 하필 죽은 남편의 고향으로 왔는지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는 점 등은, 자신을 배신한 배 우자의 고향으로 가서 새출발을 하는 그녀의 행동이 상식선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임을 드러낸다. 그 이유는 신애가 자신을 찾 아온 남동생과 피아노 학원에서 나누는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신애는 남동생과 싸우는 과정에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라는 남동생에게 “너 가! 그런 소리하려면 지금 당장 서울 올라가!”라고 외친다. 죽은 남편의 외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신애의 대사 에서 죽은 남편은 ‘그 인간’이기도 했다가 ‘준이아빠’이기도 하고, 보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고, 가족만 사랑했던 존재이기도 하다. 신애에게 죽은 남편은 부정적인 감정과 그리움이 섞인 대상인 것 이다. 즉 신애가 밀양으로 이사하는 것은 친정 가족을 포함하여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과의 연계를 최소화함으로써 배우자의 외도를 부정하고, 배우자가 자신에게 준 충격을 억압한 채 새롭 게 출발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카페 (https://cafe.naver.com/moviejaryo/5532)

 

두 번째 트라우마의 승화 실패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새롭게 출발하고 싶었 던 신애의 바람과는 달리 밀양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이사와 함께 ‘바람났던 남편이 죽었다’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덮어 둘 수 있었으나, 어찌 되었건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서울에서 온 과부’ 로 인식한다. 외지에서 온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고자 그녀가 선택한 것은 서울에서 온 ‘돈 많은’ 과부를 연기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거주할 공간과 피아노 학원 문제를 해결한 후, 실제로 땅을 살 것은 아니지만 땅을 보러 다닌다. 그녀는 지역 사람들과 모인 자리에서 부동산 의 전화를 받는 모습을 연출하는 한편,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동네 아주머니들과 노래방에서 놀기도 한다. 어느 날, 노래 방에 들렀다가 늦게 귀가한 신애는 집에 아들 준이 없음을 알게 된다. 신애가 부유하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돈을 노리고 준을 납치한 것이다. 신애는 돈이 많은 ‘척’ 했던 것이지 실제로 부유 했던 것은 아니기에 납치범이 요구한 금액을 전부 마련할 수 없 었다. 납치범의 요구에는 못 미치는 금액을 약속된 장소에 가져다 놓지만 준은 사망한다.

 

  새로운 시작의 장소가 하필 밀양이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 하는 친정 가족들의 반발과 관계 단절, 외지인을 쉽사리 받아들 이지 않는 지역 사람들의 텃세조차도 감내할 정도로 당시의 신애 에게는 삶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아들의 납치와 사망이 라는 사건을 겪으며 신애는 삶을 지탱하고 있던 것들을 모두 상 실한다. 밀양에서 살아가기 위해 만들고 있던 동네 사람들과의 유대관계는 치명타를 입었고, 그녀가 결혼과 출산을 통해 만들 었던 자신의 ‘가족’은 이제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평소 신애는 동네 약사의 교회 전도를 흘려들었지만 극심한 절망에 빠져 고통스러 워하던 중 스스로 교회를 찾고, 예배에 참여해 울부짖고 통곡함 으로써 아들의 죽음 앞에서 억압해 두었던 감정을 분출한다. 이 후 신애는 교회 활동에 매우 열심히 참여하게 되고, 교회에 다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 살해범의 얼굴을 직접 보고 그를 용서 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큰 결심을 하고 아들 살해범 면회를 가지 만 그녀가 마주한 살해범은 자신은 이미 하나님에게 용서받아 마음이 편안하니 당신(신애)도 편안해지라고 말한다. 이에 신애는 ‘유가족인 내가 아직 범인을 용서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범인을 용서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며 큰 충격을 받고 살해범을 용서 하지 못하고, 자신이 믿었던 신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만약 신애가 아들 살해범을 용서하는데 성공했다면 신애는 자신이 억압해두고 조금씩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슬픔, 분노 등 의 감정을 모두 초월하여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승화의 단계에 도 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살해범의 용서와 내적인 승화에 실패했기 때문에 이후 그녀는 자신이 의지하고 믿었던 것 들에 대해 반항한다. 교회 부흥회에서 <거짓말이야>라는 노래를 틀어 예배를 망치고, 미수에 그치기는 하지만 기혼자이고 독실 한 기독교 신자를 유혹하여 정사를 나누려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의 반항은 사과를 깎던 칼로 자신의 손목을 긋는 자살시도로 까지 이어지게 된다. 아들 살해범을 용서하겠다는 결심을 통해 승화 단계 직전까지 이르렀지만 결국 용서에 실패함으로써 그녀는 승화에 실패하고, 신애의 트라우마 역시 해소되기는커녕 반항과 자살시도라는 가장 극단적인 반동행동으로 표출된다.

 

트라우마 대응와 나의 생각

 

결론적으로 영화 ‘밀양’은 신애가 두 번째 트라우마 승화에 실패 하고 반발, 반항, 퇴행 등의 행동을 보인 끝에 자살시도라는 극 단적인 선택에 이른다는 점에서, 트라우마 극복에 실패한 인간 이 겪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럼에도 신애가 집에서라도 자신의 손으로 머리카락 자르기를 시도했다는 점, 그리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신애의 곁에서 종찬이 거울을 들어주 고 있다는 점에서 신애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영화는 연이어 큰 사건을 겪는 여성이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여줌 으로써 트라우마 극복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의지를 갖고 트라우마 극복에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10. 16. 09:00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호 규 현

 

[코로나의 초대 : 미디어 속으로]

 

인간에게는 다양한 욕구가 있다. 식욕, 성욕, 수면욕과 같은 생리적인 것들과 명예, 재물, 지식과 같은 특정 대상을 향하는 것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있다. 매슬로우(Maslow. A. H.)는 이러한 인간의 욕구가 5가지 범주를 갖고 우선순위가 있다고 보았다.(Maslow. A. H. 1943)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애정 및 소속의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충족시키고 다루는 방법에 대해 개인은 사회화를 통해 학습하고 내재화한다. 각자만의 ‘욕구 충족 메커니즘’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 나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위기는 이 안정적인 기제가 발동하는 것을 방해하고 때로는 아예 무너뜨리기도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후 코로나19)은 앞서 말한 거대한 위기에 해당한다. 그것은 우리들의 기존 행동 양식을 변화하도록 강요했다. 건강에 대해 집중하게 하고, 만나서 식사하는 것을 지양케 했으며, 교육마저 접촉하지 않은 채 이뤄지도록 바꿨다.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제약하는 것은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 3단계에 해당하는 ‘애정 및 소속의 욕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양한 욕구를 다루기 위해, 미디어 의 이용이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부분의 욕구 충족 은 타인 없이 이루기 어려웠으며, 미디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미 공유를 돕는 도구”(나은영,2010)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는 우리를 어떻게 미디어로 초대했는지,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떠한 변화 를 겪고 있는지 알아보자.

사례 1 : 뉴스

평소에 하루 동안 몇 번이나 뉴스를 확인하는가? 필자는 코로 나19가 심각해진 올해 1월 이후로는 하루에 적어도 5번 이상 은 뉴스를 찾아봤던 것 같다. 뉴스는 코로나19의 소식을 알려주는 가장 공신력 있는 정보원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유행 초기 에는 수많은 정보가 연일 쏟아져 나왔고, 많은 이들이 보도를 접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방송통신심의위원회,2020.06.02.) 그렇지만, 코로나19는 우리 모두가 처음이었고 이는 뉴스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의 정보 자체가 많은 변수를 지님에 따라, 때때로 어제 전달한 내용이 다음날 수정되기도 하고, 지금 상황을 악용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뉴스이용자는 ‘정확한 정보’를 접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했다. 즉, 수용자의 주체성 있는 정보선별이 이전보다 더 강하게 강요된 것이다. 이에 발맞춰 학계와 언론사에서는 허위사실을 검증하고 올바른 정보를 얻을 수 있게끔 ‘팩트체크’코너를 더욱 활성화하기도 했다.

  한편, 뉴스의 특성상 보며 즐거움을 느끼기란 쉽지 않겠으나, 더욱 현실이 암담하게 느껴지는 소식이 많았다. N번방 사건, 자연재해, 의료진 파업 등 부정적인 정서를 일으키는 일들은 이용자들에게 정서적인 피로감을 더욱 가중했다. 뉴스로부터 누적되는 부정적인 정서를 상쇄하기 위해 사람들은 때때로 걱정 없이 즐길만한 다른 콘텐츠를 더 찾기도 했다

 

사례 2 : OTT서비스1) 및 동영상 플랫폼

바깥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증가함에 따라 개인은 안전한 공간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냈고, 이는 ‘여가’에도 큰 영향을 미 쳤다.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에 대한 사용이 증가했고, 특히 OTT서비스 및 동영상 플랫폼의 이용량은 크게 증가했다. OTT서비스의 경우 시장이 꾸준히 크고 있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스마트폰 등의 미디어 이용 시간의 증가와 영화관 폐쇄 등 여러 조건이 맞물려 호황을 이루게 됐다. 특히, <감기,2013>과 같은 재난 영화들에 대한 이용도 급증했는데(허민녕,2020,02.28), 이는 비슷한 위기상황에서 희망적인 결말이 주는 잉여현실로부터의 만족감을 추구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에 대한 이용도 세계 각지에서 증가했는데, 큰 변화는 이들이 즐김의 장 (filed)에 더불어 다양한 정보 공유의 장으로서 입지를 견고히 다졌다는 점이다. 특히 이들은 급변한 생활양식에 적응하기 위한 유용한 학습 도구로 사용됐다. 예를 들어, 대면 행동이 제약된 시기에 맞춰 홈트레이닝, 요리, 자격증 시험 등에 대한 트래픽이 급격히 증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동영상 플랫폼이 검색 도구로써 더욱 활용되고 있으며, 앞으로 인터넷 상의 정보 접촉 양상에도 차이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례 3 : SNS

SNS는 타인과 연결에 대한 어포던스를 지닌다.(나은영,2010) 어포던스는 환경이 개인에게 어떠한 기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의미한다. 즉, SNS는 본인과 다른 사람 사이의 연결에 대한 기능을 제공하리라는 기대를 준다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사람들 간의 집적 연결을 방해하며, 대안인 미디어의 이용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그 결과 각종 메신저와 더불어 SNS의 이용량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권상희, 2020,03.27) 원인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코로나19에 관해 정제되지 않은 정보를 빠르게 얻 을 수 있다는 기대에 의한 것이다. 정제되지 않은 정보는 경험적이고, 언론이나 정부 발표에서는 알 수 없는 부분까지 알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국내에서는 최초 확진자가 등장했을 때와 31번 확진자 이후 확산이 증가한 시기에 트위터 버즈량2)이 매우 높게 증가했다.(닐슨코리아, 2020) 이는 발 빠르게 정보를 얻음과 동시에, 확진자 동선 같은 정보를 리트윗함으로써 서로 주의하고자 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다. 트위터나 네 이버카페, 커뮤니티 웹페이지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 이유는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코로나19로 인한 여러 사건은 다양한 가치판단을 내리게 한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기준에 관해 판단을 내릴 때 다른 사람과 본인을 비교하려 하며,(Leon Festinger, 1954) SNS는 탁월한 도구가 된다. 지인이나 유명인이 어떻게 지내는지 보거나, 인터넷 공론장에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본인의 의견을 비교한다. 또한, 코로나19 이전에 타인과 직접 교류가 활발했던 사람의 경우엔 사회적 관계에 대한 관성이 클 것이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게시하거나, 과거에 즐거웠던 순간을 담은 사진을 다시 공유하기도 한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밴드, 카카오스토리 등이 해당한다.

 

[미디어 밖에 사람이 있다.]

 

앞서 3가지 사례를 통해 코로나19사태 이후의 미디어 이용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위기와 혼란 앞에서 미디어를 더욱 찾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고, 때로는 혼란으로부터 빠져나와 즐길 거리를 찾는다. 오히려 만날 수 없어서 더욱 간접적으로 타인과 연결하기 위해 붙든다. 이러한 이용양상은 가중되거나 변화가 있었을 뿐, 사실 특별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쉽게 지각하지 못할 만큼 미디어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글을 쓰고자 했던 의도를 밝히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인간은 소중하다. 나는 세상에 유일무이한 스토리의 주인공이며, 당신도 그러하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미디어 안에 존재할 때에는 그 소중함과 가치에 대한 지각이 쉽게 낮아진다. 코로나19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제약하고, 미디어로 초대함으로써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강화했다. 문제는 분노와 혐오의 대상이 있을 때 극명히 나타난다. 대상이 응당 비판 받을 만하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해서는 안 될 표현이 너무 나도 쉽게 오간다. 미디어는 아무리 우리 몸에 깊숙이 달라붙더라도 어디까지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 미디어 밖에 ‘존재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 있다.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디어 밖의 사람을 강조하며, 미디어 속에서 글을 쓰고 있는 호규현(27세)의 모습이다

            

참고자료

 

권상희, (2020,03,27.) 왓츠앱, 코로나19로 사용량 40% 증가, zdnet.co.kr/view/?no=20200327100942

나은영(2010),미디어 심리학.(pp. 33) 한나래출판사

닐슨코리아. (2020) 코로나19 관련 소셜 미디어 빅데이터 분석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자료(2020,06,02.), 「방통위, 코로나19에 따른 스마트폰ㆍPC 방송프로그램 이용행태 조사 결과 공개」

허민녕, (2020,02,28.) ‘컨테이젼’ ‘감기’, 압낭에서 터진 반갑지 않은 인기,msn.com/ko-kr/entertainment/movies/커네이젼감기-안방에서-터진-반갑지않은-인기/ar-BB10vnOu

Festinger, L. (1954). A theory of social comparison processes. Human relations, 7(2), 117-140.

Maslow, A. H. (1943). A theory of human motivation. Psychological Review, 50(4), 370?396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10. 16. 09:00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 김 진 호 목사 

 

 

 

출처: 김성민 

 

전광훈, 제대로 일냈다

 

사랑 제일교회는 장위 뉴타운 10구역 조합 측과의 명도소송에서  소했다. 교회가 받을  있는 보상금 평가액인 82억 원의 7배나  구한 탓이다. 이제 법적으로는 강제철거만 남았다. 이에 교인들  당수가 교회에서 철야를 했다. 한데 이는 집단감염이 일어나기  좋은 상황이다. 아마도 그때 돌았던 듯하다. 그러다 전광훈이 주도하고 교인들 대다수가 참석한 8.15 광화문 집회가 열렸다.  교회뿐 아니라 전국의 고위험군에 속하는 교회들의 신자 상당수가 참여했다.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제2차 대감염이 발발했다. 물론  주요 원인은 사랑 제일교회와 8.15 광화문 집회였다. 정부는 8월 30일, 수도권 지역에 대한  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적용을 선포했다. 하반기 경기회복을 기대했던 사회는 급락했다. 위험한 극우주의자 전광훈이 제대로 사고를 쳤다.

 

 

 

변두리 목사, 세상의 중심이 되다

 

그는 이미 1990년대 후반, 막말로 유명한 개신교계 목사사회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수위 높은 발언을 남발했다. 하지만 그를 주 목한 이는 거의 없었다. 2003년 개신교3.1절 구국기도회 때, 두 차례나 정권을 빼앗긴 우파 세력의 선거연합이 바닥까지 흔들리 던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지 보름도 안 되었는데, 무려 20 만의 반정부를 외치는 인파가 모였다. 전광훈은 그때 혁혁한 공로 를 세웠다. 하지만 여전히 그를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한국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개신교의 선거연합이 만들 어졌던 2008년 대선국면에서 전광훈은, 그의 이름이 미미하나마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그에게 이렇다 할 떡고 물도 나눠주지 않았다.

  이후 그는 네 번의 기독교정당 창당을 주도했다. 점점 제법 많 은 목사, 장로를 엮어냈지만, 그들의 교회 신자들은 그 당에 표를 주지 않았다.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붕괴되고,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던 때, 특히 2017년과 2018년 3.1절 구극기도회가 밑바탕이 된 이른바 ‘태극기 애국시민’이 오백만 명이 될 거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최대인파가 몇만 명을 넘지 못했다. 이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손잡고 정 당을 통해 현 정부의 붕괴를 도모했으나 2020년 4.15총선에서 처 참한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그가 애써 모은 지지자들의 수가 증가 한 것보다 반대하는 이들의 수가 훨씬 더 많이 늘었던 것이다.

  2014년에는 ‘한국교회선교은행’을 만들었고, 몇 년 후 선교카드 5종이 발행되었다. 하지만 이 ‘은행’은 사실상 페이퍼컴퍼니였다. 그리고 5장의 카드는 기존 카드사가 발행한 것이었다. 전광훈과 그의 추종자들은 일종의 카드용역업체를 운영한 셈이다. 그것으로 거대 한 기금을 만들려 했다. 만약 성공했다면 대형 금융사기 사건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나 같이 제대로만 되었다면 꽤 위험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 파급효과는 미미했다. 한데 그가 벌인 일은 아닌데, 뜻 밖에도 대대적인 감염증 사태의 주역이 되었다. 그렇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는데, 이제야 그는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실패 이유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위험한 극우주의자로 알려졌음에도 그는 왜 자신이 의도했던 일들에서 번번이 좌절해야 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와 그의 주요 대중이 사회적 자원을 활용할 능력이 매우 빈약했기 때문이다. 우선 전광훈을 주목해보자.

 

한국개신교의 중심부 엘리트가 되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미국교회와의 연줄망이다. 긴 얘기가 필요하지만 여기선 간략히 결론만 말하겠다. 미국보수파 정치세력과 미국교회와의 연결망에 엮이는 것이, 미국의 영향이 절대적인 한국사회에서는 교회 차원을 넘어서 사회 형성에까지 절대적 의미를 지녔다. 하여 그 연줄망에 엮이는 것이 한국교회의 엘리트가 되는 데 있어 가장 결정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려면 몇몇 주요 교단에 속해야 한다. 한데 전광훈은 그런 교단 출신이 아니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교회의 규모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실제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는 전형적인 변두리 지도자였지만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 개신교 지도자의 한 사람이다. 한편 최근에는 규모 뿐 아니라 교회가 입지한 지역도 중요하다. 적어도 강남권(강남, 강 동, 분당)에 속한 대형교회여야 그 교회 담임목사가 개신교 내에서 말 발이 먹힌다. 한데 알다시피 전광훈은 대형교회 목사도 아니고, 강남권 교회의 목사도 아니다.

 

한편 흥미로운 또 하나의 조건이 있다. 개신교 목사들이 학력 에서 뛰어난 엘리트들이 아님에도, 목사사회에서 학력은 굉장히 중요하다. 교단 신학교들 중 어느 학교 출신인가, 그 학위가 문교부인가 학위인가 교단인가 학위인가 등 깨알 비교가 작용한다. 그리 고 이른바 ‘더 성공한’ 이들은 위조된 박사라도 받아야만 다른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위치에 있게 된다. 전광훈은 그런 학력 서열에서 제일 하층에 속한다.

 

  하여 그가 개신교 엘리트들의 지지를 받기란 기적과 같은 일이다. 그럼에도 개신교 연합단체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기관인 한 기총 회장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몰랐던 사실은, 그가 회장이 될 당시 이 기관은 거의 폐가에 가까운 주인 없는 저택 같은 상태 였다. 이것은 한기총 회장으로서 그가 무엇을 하려고 해도 그것을 뒷받침할 자원을 모으기가 여의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 해서 그는 일찍부터 ‘선교카드’라는 이름의 독창적인 자원 모델을 찾아내야 했고, 한기총이 이단으로 지목했던 종파의 지도자를, 이단 해체와 함께 한기총 공동회장으로 추대하기까지 했다. 이 종파가 꽤나 부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를 더욱 개신교 주류가 되는 길을 막았다.

 

광신도 현상

 

그를 추종하는 대중은 어떤가? 여기서 전광훈이 벌인 종교운동의 성격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넓게 보면 그는 종교적 열광주의 운동의 지도자다. 흔히 이런 지도자를 한국개신교에서는 ‘부흥사’라고 부른다. 한데 종교적 열광주의 현상은 종종 반사회적 성향을 지닌다. 그런 성향의 종교인들을 흔히 ‘광신도’라고 부른다. 한데 최근 한국에서 광신도 현상이 광범위하게 일어난 시기는 1990년대 후반부다. 시기상으로 보면 이른바 ‘IMF대란’이라고 부르는 외환위기가 일어난 그 즈음이다. 이때 두드러진 현상은 사회 양극화가 극적으로 심화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때 개신교 내에선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교회의 지배적 인 흐름이 귀족주의로 이동하였다. 이런 귀족화 현상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는데 ‘졸부형 귀족주의’와 ‘웰빙형 귀족주의’가 그것이다. 한데 전자는 그 이전에도 있었던 현상이기에 특이한 것이 아닌 반면, 후자는 한국 교회나 사회에서 매우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 것을 간단히 요약하면, “예수라면 이것(자신의 풍요)을 어떻게 할까”에 관한 문제의식이다.

 

문제는 이런 폼나는 귀족주의를 따라 할 수 없는 이들이 교회에 적지 않았던 데 있다. 교회의 제도나 담론은 웰빙형 귀족주의를 선망하면서 재구축되었다. 그러자 교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대대 적으로 교회를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크게 보면 이탈한 자들이 재정착한 곳은 두 범주로 나뉜다. ‘비정치적 광신도 집단’과 ‘정치적 광신도 집단’이다. 전자를 대표하는 종단이 신천지였다면 후자는 이른바 극우개신교의 아스팔트신자들이 되었다. 후자의 경우, 2018년 이후 전광훈이 그 중심에 우뚝 섰다. 편의상 이들을 ‘전광훈 현상’이라고 부르자.

 

전광훈 현상의 모든 대중이 광신도인 것은 아니다. 또 그 대중 이 외환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사회에서 실패자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현상에 속한 이들의 계층적 속성과 종교적 속성이 대체로 그렇다는 얘기다.

 

하여 전광훈의 대중은 대체로 자원이 빈약하다. 또 그들이 자원을 동원할 능력도 부족하다. 여기에는 다른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도 포함된다. 하여 광신도 현상은,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 의의 기원》에서 다룬 것 같은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가령 사회를 통합할 만한 국가의 능력을 초과하는 엄청난 난민이 발생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시끄럽지만 극한적 위험으로 우리를 몰아가지는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코로나19다

 

문제는 ‘코로나19’다. 실제로 전광훈은, 그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그의 능력에 의한 것도 아닌데, 사회를 위험에 빠뜨렸고 일약 스타가 되었다. 물론 전광훈이 위험한 세상의 주역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기에 등장할 위험한 존재를 부르는 재앙의 예언자가 될 가능성은 농후하다. 하여 우리는 그가 거짓 예언자임을 증거해야 한다. 또한 그를 추종하는 이들이 그와 같은 이의 말에 왜 현혹되는지를 묻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10. 16. 09:00

원양해

 

출처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h4/event/pandemic/)

 

 

‘포스트’라는 접두사는 단순히 무엇의 이후라는 의미에서 나아가 무엇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음을 함의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이 처음 발발하여 전 세계로 확산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매체의 곳곳에서 발견되던 ‘포스트-코로나’라는 단어에 의문이 들었던 것은 바로 이 ‘포스트’라는 단어에 내포된 의미 때문이었다. 패딩과 코트를 입어야 했던 그때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이 바이러스가 다시 패딩이나 코트를 입어야 할 계절이 돌아오고 있는 이 시점까지 지속되리라고 믿지 않았으며,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몇몇의 예측이 분명 과장된 괴담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편을 가르고 싸운다. 어쩌면 그것은 모두의 이해관계가 같을 수 없다는 당연하고도 씁쓸한 진리로 인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일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이후 코로나)는 분명 그 필연적인 일을 보다 더 가시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데에 적절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 간의 갈등부터 시작해서 사회의 가장 큰 단위인 국가 간의 불화까지, 코로나의 등장 이후 여러 사람들은 서로의 바운더리를 보다 공고하게 형성하고 그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서로 간의 경계가 보다 단단해지는 시대, 21세기는 너무나도 역설적인 길을 걷고 있다.

 

  21세기의 아이러니는 전 세계가 지구화와 탈경계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한편으로는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이전과는 구분되는 포스트-코로나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구화와 개인화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21세기 사회가 개인화에 가까운 길을 걷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타인과의 접촉이 가능한 장소에서 반지름 2m의 공간을 만드는 미시적인 개인화와 최대한 집에 머무르며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디지털네트워크를 통해 대체하는 거시적인 개인화를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경계를 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워지면서 국가의 경계를 허물고 세계화를 향해 나아가던 움직임은 멈춰지게 되었다. 이는 모두 전염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한 일들이지만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이러한 지침들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어떤 이는 디지털 매체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가상 현실의 모습을 보면 어색하다고 느껴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우리는 변화한 사회적 규범에 물들여진 것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에 이질적인 환경에 놓이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신체를 그 상황에 맞게 적응시켜 나가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우리는 변화한 사회와 때로는 마찰을 일으키고 때로는 변화한 것들을 수용하며 차차 익숙해졌지만, 코로나 사태 발발 이후 8개월이 지난 현재, 이 사태의 순간성을 믿었던 사람들마저도 과연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조금씩은 품게 되었을 것이다. 코로나의 종식을 기원하며 일상생활을 유예하거나 중단했던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살 수만은 없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코로나와 함께 살아갈 지, 코로나와 공존하며 생활을 지속해갈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때가 된 것이다.

 

  김초엽의 「최후의 라이오니」는 팬데믹으로 인해 멸망한 행성을 탐험하게 된 유품 정리사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로몬’이라는 종족에 속하는 개체로, 로몬은 “보편의 인간 종보다 훨씬 담대하고 강인하며 용감”하다는 특성을 가지는 데에 반해 주인공은 다른 로몬들의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연약한 개체이며 종족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로몬들은 멸망의 현장에 남겨진 유품과 자원을 정리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주인공은 일반적인 로몬들보다 약하고 모자란 존재이기에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 3420ED라는 행성에 홀로 파견을 가게 되고, 자신의 결함에 대한 근원을 찾기 위해 그는 그곳으로 떠난다. 폐허가 된 행성에서 주인공은 그 곳에 남겨진 기계들에게 붙잡히고, 기계들의 대장인 셀은 주인공을 ‘라이오니’라는 사람으로 오인한다. 셀을 제외한 나머지의 기계들은 주인공이 라이오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는 기계들로부터 행성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듣게 된다.

 

  “행성계의 세 번째 궤도에 홀로 떠 있던” 행성이라는 점에서 3420ED는 태양계의 세 번째 궤도에 위치한 지구를 연상시킨다. 지 구와 닮은 구석이 있는 그곳은 불멸의 세계였다. 죽지 않는 인간이 되는 법 을 터득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로장생을 유지하기 위해 기계를 만들었다. 인접 문명들은 불멸을 위해 건강한 신체와 자의식, 기억을 복제하는 기술을 혐오하였고 복제된 개체의 진실성을 증명하라고 요구 했지만 3420ED의 사람들은 요구에 응하는 대신 자신들의 벽을 단단 하게 쌓아올렸다. 고립된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그들은 행복했고, 그 것이 완전하다고 믿었지만 어느 날 전염병D가 발발하고 만 것이다. 불멸을 당연한 전제로 여기고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갑작스레 죽음의 개념이 도입되었고 공포가 학습되었다. 속절없이 퍼져가는 전염병으로 인해 사람들은 서로를 해쳤고 결국 3420ED는 멸망하고 말았다.

 

  라이오니는 불멸인의 복제 과정에서 탄생한 결함 있는 개체였다. 선천적인 결함으로 인해 죽음의 공포를 이해하는 유일한 개체였던 라이오니는 집단으로 폐기처분될 위기에 놓인 기계들을 구해 그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고자 했다. 그러나 전염병으로 인해 조성된 공포적인 분위기 속에서 불멸인들의 폭동으로 인해 세계는 멸망을 향해 달려갔고 살아남은 불멸인들은 폐허가 된 고향을 버리고 우주로 떠났다. 라이오니는 셀을 포함한 기계들과 살아가고자 했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망가진 세상을 복구할 수 없었다. 행성은 더 이상 라이오니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고 결국 그는 돌아오겠다는 약 속을 한 뒤 3420ED를 떠났지만 돌아오지 못했다. 셀은 라이오니를 기다리며 행성을 살 수 있는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라이 오니를 닮은 주인공은 이제 셀의 곁에서 라이오니를 연기하며 행성의 완전한 멸망을 맞이한다. 주인공은 로몬들의 구조선 덕분에 무사히 귀환하지만 그는 눈을 감으면 여전히 라이오니와 셀이 서로의 손을 잡고 불행하지 않게 행성의 멸망을 맞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3420ED는 지구에서 착안한 가상의 행성일 것이지만, 지구와의 가장 큰 차이는 사람들이 불멸하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불멸을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했던 것, 그것에 의문을 제기 하는 이들과의 교류를 차단한 것. 그러나 이는 현재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3420ED의 불멸인들에게 불멸이 지극히도 당연한 노멀이었다면, 지구의 우리에게도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지는 노멀들이 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믿음이나 세계의 기준이 절대적인 것이 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 이 세계에 완전한 절대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것이나 머리를 잘라서는 안 된다고 여겼던 것은 모두 그 시대의 당연한 노멀이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비상식적인 것들로 판단된다. 불멸인들의 불멸이라는 노멀 또한 마찬가지이며, 21세기 우리의 상식적 기준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진리를 당연하고 절대적인 것이라고 여기며, 그것에 대한 증명을 요구하거나 그것을 불신하는 이들을 경계하고 때로는 혐오한다.

 

  팬데믹의 힘이 공포로 다가오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절대적인 노멀들을 부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화, 세계화, 다문화사회와 같은 21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노멀은 코로나의 힘으로 인해 파편화의 길을 걷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사람들과 물리적인 접촉이 동반된 교류를 하는 지극히도 당연한 일상들이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제까지 믿어왔던 세계에 대한 신뢰성을 잃도록 만든다. 절대성에 대한 신뢰가 약해질 때 우리는 공포를 경험하고, 감각 된 공포는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어 급기야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등지게 하고 만다.

 

  소설은 삶의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 즉 주체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러한 소설이 사람들에게 각광받는 이유는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체로서 가지고 있던 노멀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 우리의 주체성은 흔들리고 만다. “어떤 죽음은 다른 삶을 지탱하는 것”인 만큼 살아있는 주체로서의 뚜렷한 감각은 타자의 생산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팬데믹으로 인해 주체성의 위협을 느낀 사람들은 다른 주체들을 의심하고 그들을 타자의 자리로 아득바득 끌어내리려 한다. 그 과정에서 “폭력은 감염병 보다 빠르게 전파”되고, 이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는 혐오를 기반으로 한 비윤리적인 행위들이 발생하고 마는 것이다.

 

  코로나의 향방은 전문가들조차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종잡을 수 없는 형태를 띠고 있다. 최악을 가정하는 습관은 결코 좋은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생존을 위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따라서 우리는 새롭게 도래할 지도 모르는 포스트-코로나의 시대에서 주체의 자리를 견지하기 위해, 뿐만 아니라 주체로서 또 다른 주체들과 공존하기 위해 새로운 노멀을 찾아야만 한다. 코로나가 21세기의 방향성을 개인화의 방향으로 트는 데에 기여했다고 해서 우리가 이제까지 추구해왔던 탈경계의 윤리를 곧바로 폐기할 수는 없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며, 그로 인해 서로와 공생해야만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그 숙명을 안고 있는 현시대의 우리는 원치 않았던 감염병의 확산을 최소화해야 함과 동시에 그보다 발빠른 전파력을 가진 폭력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팬데믹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윤리와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인 것이다. 연결과 분리, 주체와 타자, 공존과 자립을 포괄할 수 있는 뉴노멀에 대해. 분명 한 가지의 작은 힌트는 자신의 결함을 받아들이고 다른 개체들과의 공존을 위해 온 힘을 다했던 ‘최후의 라이오니’에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10. 16. 09:00

시민건강연구소 김새롬  

공공의대와 의대정원확대 등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 행동이 9월 7일, 대한전공의협의회의 파업중단결정으로 일단락되었다. 의과대학 본과 4학년 학생들은 국시거부투쟁(?)을 철회하지 않았고, 의과대학 교수들 역시 단체행동으로 인해 제자들이 불이익을 받게 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2020년 의사들의 집단 행동이 완전히 종료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의대생, 전공의, 의사를 대표하는 조직 각각이 기존의 대표를 탄핵하거나 새로운 대표를 뽑기 위해 분주한 상황임을 생각해보면,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당장 다시 시작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해도 무방해 보인다.

 

  비교적 코로나19 방역에 성공적이었던 한국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관심과 신뢰가 높아진 상황에서 발생한 전국적인 의사들의 집단 행동은 시민들을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필수인력을 남기거나, 협상을 전제로 파업 기간을 미리 정해놓고 병원을 떠난 것이 아니라 중환자실과 응급실을 포함하는 전체 전공의의 무기한 업무 중단이 선언되자 정부 역시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후 정부와 협상 과정에서 특정 문구를 고집하며 내부 의견수렴을 이유로 합의를 번복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정책안에 대한 루머를 확대재생산하며 가짜뉴스를 생산·공유하는 모습은 사태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민들을 더욱 황당하게 했다.

 

  의사집단 내부에 공유되고 있었던 정책비판과 풍자를 담아 만들었을 의료정책연구소의 “의사파업에 반대하시는 분들만 풀어보세요” 라는 제목의 카드뉴스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에서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고 있었던 시민들조차 이들의 저의를 의심하게 했다. 시민들은 전교 1등과 공공의대 입학생, 수도권의 큰 병원과 지역의 공공병원, 값 비싼 면역항암제가 필요한 남성 폐암 환자와 생리통으로 한약을 처방받으려는 여성을 비교하는 시험지를 받아들고 각자의 불편했던 경험을 회상하며 질문하게 되었다. 수능성적이 좋은 순서대로 의사를 뽑는 현재의 입시 제도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할까? 환자가 몰리는 대학병원이 없는 지방에서는 위급한 수술을 받아야 할 때 어떤 의사를 찾아가야 할까?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생리통에 대해 내가 찾아간 의사들이 큰 관심이 없었던 이유는 생리통이 생명에 위독한 질환이 아니기 때문일까?

 

자료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페이스북 (현재는 삭제된 상태임)  

  “의사는 공공재가 아닙니다”라는 의사들의 구호 역시 보건복지부 관료의 발언에 대한 반발을 넘어, 우리 사회가 답해야 할 질문으로 전개되고 있다. 국방, 교통, 교육 등과 더불어 보건의료는 근대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국 외로 눈을 돌려보면 의료기관 운영에서 의료인력 고용과 훈련까지 모두를 국가가 책임지는 영국의 국가보건의료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가 유명하고, 가장 시장화된 의료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미국 역시 전체 의료기관 중 국가나 지방정부가 직접 운영 하는 공공이 차지하는 병상이 20%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한국의 경우 전국민건강보험제도를 통해 재정을 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체 병상 중 공공으로 분류되는 병상은 계속해서 줄어들어 현재 9%가 채 되지 않고, 공공 영역에서 일하는 의사 인력의 비율도 10.7%에 불과하다.1) 국민들이 보건의료에 대해 느끼는 심정적인 거리 역시 영국과는 크게 다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의 개막식에는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동병원인 그레이트 오먼드 스트리트 병원(Great Ormond Street Hospital) 에 대한 공연이 포함되었다. 한국의 의료 수준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의료인 당사자가 아니라면 이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기는 어려운 것을 생각하면 국가마다 보건의료의 위치나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NHS에 대한 공연, Source: http://dailym.ai/3kuEUHJ

  이런 점에서 의사 직종을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자원 취급하는 발언이 집단적 분노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료의 공공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의료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회 곳곳에서 의료는 공공재여야 하고, 국가가 더욱 적극 적으로 공공의료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공공의료강화에 대한 기존의 주장은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의료 기관과 직접 고용하는 의료인력을 더 늘려야 하는 공적 소유의 문제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지만, 보건의료의 공공성(publicness)은 이와 같은 논의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다.

 

  공공성은 주로 교육과 사회복지, 보건의료 등 사회적 권리와 관련된 영역에서 공공정책과 관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나 제도의 형태를 논의하는 데에 활용되는 개념이다. 좁은 의미에서 공공성은 국가의 소유를 지칭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공공성은 사회적·정치적 권위의 영향을 받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공적 가치(public value)에 부합 하는지에 대한 규범적 의미를 포괄한다.2) 이런 점에서 의료의 공공성은 단지 공공병상이 전체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지가 아니라, 보건 의료가 시민들의 요구와 국가적 필요에 부응할 수 있는 구조와 과정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 된다

 

  물론 공적 소유의 문제는 중요하다. 코로나19 유행 대응 과정에서도 의료기관의 공공성은 공적 소유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많은 공공병원이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기존의 계획을 포기하고 정부의 방역 정책에 따랐다. 일부 공공병원의 경우 1월 말부터 음압격리병동 운영을 위해 사전대비훈련을 하고, 자동문을 설치해 동선을 분리하고, 선별진료소를 설치해 코로나19 의심환자를 받았다. 이에 비해 대부분의 중환자실을 보유한 민간병원들은 코로나19 환자를 보지 않는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받아 기존의 진료를 지속했다. 물론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다른 심각한 질병으로 아픈 사람들을 치 료하는 병원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고, 민간의료기관이 국가적 재난 대응에 할애할 수 있는 자원과 인센티브가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가 군대와 자원봉사자 등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해 코로나19 대응에 나서던 시기에도 민간의료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고, 팬데믹 상황에서도 시장의 이해관계에 더 강하게 묶여있는 민간의료기관의 모습은 한국의 보건의료에 대한 공적 통제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의견을 반영하고, 공적 가치를 주장할 방법이 요원한 거대한 시장에 가깝다. 어떤 병원이 어디에 더 필요한지, 우리 지역 병원에서 어떤 진료과목을 늘이고 줄이는 것이 좋을지, 적자가 지속되는 병원을 더 잘 운영하기 위해 어떻게 병원을 변화시키면 좋을지 우리는 보통 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 공공병원조차도 개별 진료에 대한 고객의 소리가 아니라 시민들의 집합적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이니, 보건의료에 대한 시민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위한 제도를 운영하는 여러 나라와 달리 한국 에서는 의료기관의 운영과 보건의료정책이 사회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조차 힘들다.

 

  어쩌면 2020년의 의사파업은 한국의 시민들이 어떤 의사와 보건의료체계를 기대하는지에 대한 커다란 질문을 남겼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지, 아파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의사와 어떤 관계를 맺기를 기대하는지, 주당 88시간이라는 살인적인 근무시간을 버티는 전공의들의 억울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어 느 것 하나 시민들의 동의와 정치적 결정 없이는 해결되기 어렵다. 의사파업이 보여준 또 하나의 교훈은 의사나 정부가 보건의료 정책을 독점하는 상황에서는 가장 약한 사람들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는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명백해진 이상, 가장 절실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묶어내는 시민들의 정치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1) 건치신문(2020.09.18.) “병상 수 기준 공공의료 비중 매년 감소”. https://bit.ly/3cbxbvl

2) 김선, 김창엽, 이태진. (2015). 공공성 개념에 기초한 의약품 생산·공급 체제의 유형화. 비판사회정책, (48), 91-145.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7. 2. 22:26

출처: 쇼노트

 

서강대학교 국제인문학부 미국문화학과 오유민

 

 

0. 폴 리버로 가는 길

얼마 전,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리지>를 관람했다. 코로나 사태로 많은 극들이 조기 폐막, 혹은 개막 취소가 되고 있어 우울하던 중 오랜만에 도착한 혜화역 1번 출구에서 낯선 정겨움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군다나 보러 가는 공연이 무대 위 4명의 배우가 모두 여자인 록 뮤지컬이라니. 설레는 마음으로 문진표를 제출하고 마스크를 코에 꾹 눌러쓴 채 들어간 극장에는 쇠창살들로 이루어진 숨막히는 2층 무대가 서늘한 파랑 빛 조명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그 어느 미친 더위의 여름날로 관객들을 데려가기 위해 두 팔 벌려 기다리는 것처럼. 

 

1. 보든 가의 집

1892 8 4, 미국 매사추세츠주 폴 리버에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부유한 사업가 앤드류 보든과 아내 애비 보든이 도끼로 잔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는데,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 사람이 바로 그들의 둘째 딸 리지 보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어 그녀는 무혐의로 풀려나고 아직까지도 미제로 남아있는 이 사건은 1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연극, TV 시리즈,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예술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뮤지컬<리지>는 이 미궁 속 이야기를 리지, 리지의 언니 엠마, 옆집 친구 앨리스, 그리고 보든 가의 하녀 브리짓이 네 명의 인물로 풀어나간다. 

 

2. 마흔 번의 도끼질 

오랜 시간 동안 텍스트 속, 특히 공연 예술에 있어서의 여성 캐릭터들은 소비적이었다. 성녀와 창녀(악녀)의 이분법적 개념 하에 존재했던 그들의 서사는 오직 누군가의 성장을 위해 존재했고, 욕망을 가진 여성들은 악한 존재로 낙인 되었다. 그러나 흐름은 점점 바뀌고 있고, <리지> 또한 극 중 네 여성들의 욕망과 선택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해방의 상징, 록 음악을 통해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 욕망과 선택을 소유하기 위해서 존재했어야만 하는 상황들에서 드러났다. 리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며, 언니 엠마와 함께 거의 집 안에 갇혀 살다시피 지내왔다. 그녀가 온 정성을 다해 키우는 비둘기들은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모두 죽임을 당하고 유일한 안식처였던 앨리스와의 만남은 금지된다. 이렇게 자신을 옥죄어 오던 모든 것들에 대한 리지의 강렬한 저항은 통쾌했지만 동시에 씁쓸하다. 폭력과 빼앗김 속에서만 욕망과 저항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특히,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는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남성 스태프가 무대 위에 등장해 쇼파, 혹은 침대로 사용되는 가구를 인(in) 시키고 리지의 옷을 헝클어트리는 연출은 주인공의 참담한 현실과 고통을 극대화시켜야만 관객들이 그녀의 선택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하는 것만 같았다. 마치 이 사건이 120년 전 미국에서 자극적 가십거리로만 소모된 것처럼, 오늘 날에도 그들의 이야기는 소비할만한 가치가 있어야지만 들릴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 날 불편하게 했다.

 

3. 섀터케인과 벨벳 그래스

뮤지컬 <리지>의 네 여성들은 그들의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연대라는 방법을 택한다. 이는 특히 2막의 의상 변화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이성을 잃고 아버지와 계모를 죽음에 이르게 한 리지는 2막 시작부터 이전까지 입고 있던 19세기의 드레스를 대신 검정색 가죽의 록커 의상과 헤어 브릿지를 한 상태로 등장한다. 취조와 재판이 진행되며 엠마, 브리짓, 그리고 마지막 앨리스까지 스스로를 억압하던 옷을 벗어 던지고 (그도 꽤 편해 보이진 않았지만) 승리와 자유를 얻기 위한 연합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여정을 전달하는 수단이 바로 록 음악이라는 점은 더더욱 눈여겨볼만하다. 지금까지의 뮤지컬 역사 속 록 음악의 활용은 수없이 시도되어왔지만, 19세기 말의 극도로 가부장적인 사회의 여성들의 서사를그것도 남성 위주의 표출적이고, 때로는 파괴적인 록 음악으로 노래함은 이례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뮤지컬에서 가장 직관적으로 관객에게 인물에 대한 이미지를 투영하는 요소는 바로 공연의 넘버(노래)이기 때문에. 대표적인 록 뮤지컬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마리아에게 허락된 음악이 오직 부드러운 기타 멜로디였음을 되짚으며 나는 <리지>의 음악이 가지는 의의를 체감했다. 쇠창살 뒤로 보이는 6인조 밴드와 호흡하며 무대 위 네 배우들의 벨팅이 겹겹이 쌓아 올려지는 모습을 되짚자면 아직도 온 몸에 전율이 흐른다. 

 

4. 톤튼에서의 13        

앞서 말했듯이, <리지>는 캐릭터들의 연대를 강조한다. 여성들끼리 힘을 합쳐 권력 혹은 악에 저항하는 모습은 연극. 뮤지컬뿐만 아니라 TV와 영화 등 미디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어벤져스와 같은 히어로 무비에서 빠지지 않는, 여성 캐릭터들이 등을 맞대고 악당을 물리치는 장면은 모두에게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리지>라는 작품에서 연대를 통한 저항이 가장 적합한 주제의식이었을까에 대해서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극은 리지와 엠마에 비해 브리짓과 앨리스의 선택의 동기를 제대로 제시해 주지 않는다. 브리짓은 오직 돈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앨리스는? 각 인물들은 자신만의 동기와 욕망이 있었을 것이고, 이를 이루는 과정에서 서로를 돕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라는 결정 속 암묵적인 서포트가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모든 캐릭터성을 연대라는 비교적으로 간단한 키워드로 뭉뚱그려놓은 작품은, 약자로서 뭉쳐야지만 억압을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훨씬 더 욕심 부려도, 대담해도,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5. 뉴 베드퍼드의 재판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지>라는 공연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의는 매우 유효하다. <리지>라는 공연이 올라가기 전, 제작자들은 여자 배우들만 나와서 표가 잘 안 팔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멈출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8년 초연 당시 전석 매진과 엄청난 호평으로 한국 공연계의 역사적인 기록을 세운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에 이은 <리지>, 그리고 많은 젠더프리 캐스팅 공연들의 성공은 이를 단숨에 반증한다. 이제 우리는 올 여성 극,’ ‘여자 배우 원탑 극의 마케팅, 그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 여성 배우의 수()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텍스트와 캐릭터의 필요성과 수요를.

관객들은 답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이제는 공연이 다시 대답할 차례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7. 2. 17:43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김기혜

 

올해로 한국에서 생활한지 8년차가 되었다. 당장 지난 까지도 직장을 다니던 나는 서울에서 구정을 보내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코로나 기간동안 서울에서의 생활은 크게 불편하지 않았지만 외국인, 특히 중국인으로써 느끼게 되었던 불편한 시선들은 어찌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식당에서 있었던 .

 

한국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나타나고 중국인 입국금지의 여론이 심해지고 있을 밖에서 다닐 때는 가능한한 중국어를 쓰지도 중국어로 페이지를 핸드폰에 띄우지도 않았다. 왠지 불이익을 당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2월중순쯤 친구가 한국에 들어온다고 연락이 왔고 같이 저녁을 먹자는 얘기에 거절하고 싶었지만 별 수 없이 그러자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친구가 만나자고 하니 나도 싫은 것을 한국인들은 오죽하겠냐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약속 날 내가 다니던 직장 근처의 식당가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있는데 옆테이블에 직장인 커플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친구와는 오랫만에 만난지라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옆테이블의 남자가 계속 힐끔힐끔 우릴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시선이 불편하긴 했지만 중국어를 해서 그런가 보다,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직원을 부르더니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시선에서 나는 확실한 혐오를 느낄 있었다. 사실 사람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자기가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타난 자기방어적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단순이 중국인이라고 해서 그런 눈총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억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고양이.

 

작년 2 충동으로 중국의 캐터리에서 고양이를 한마리 분양받기로 했다. 8월에 태어난 아이는 접종을 맞고 중성화를 해야 데려올 있었기에 당분간은 기다려야 했다.  그러던 올해 1 코로나의 발생으로 내가 중국에 수도 아이가 한국에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러면서 시간은 흘러 2월이 지나고 3월이 되었다. 상황을 봐서 내가 가서 데려와야 겠다는 계획은 3 중국민항총국의 항공기 제한 운항정책의 발표와 함께 물 건너 갔고 4월이 되어서야 겨우 화물기에 자리를 예약할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운항이 취소되었고 4월말에 다시 화물기를 예약하게 되었지만 운항 며칠 전 수출한 가금류가 한국 검역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당분간 생체는 어려울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러는 과정에서 그냥 데려오지 말까하는 생각도 들었었지만 그래도 한번 키우기로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라는 생각에 일단은 조금만 기다려보자, 괜찮아지겠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5월이 되었고 이번달에는 데려올 수 있으려나,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급작스럽게 캐터리로부터 항공기 예약이 가능해졌다는 연락을 받았고 몇 개월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고양이는 번개불에 콩 구워 먹듯이 이틀만에 한국에 오게 되었다. 

 

요즘에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저녁에는 고양이랑 놀아주고 털을 빗어주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매일매일 밥은 제대로 먹는지 어디 아프진 않는지 서른도 안된 나이에 애를 키우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기 하지만 코로나때문에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고 집과 학교사이를 왕복하는 무미건조한 일상에 할 일이 하나 생겼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왼쪽은 사진으로 받아봤던 아기 고양이의 모습, 결국 한국에는 오른쪽처럼 근엄하게 자란 고양이가 되어 왔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7. 2. 17:38

춤추는 대학원생 Marisa Luckie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Marisa Luckie

 

 

나는 춤을 추는 대학원생이다. 프로페셔널 댄서라는 뜻은 절대 아니며 솔직히 3 전까지만 해도 아예 새파란 몸치였다.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춤은 나의 인생에 아주 중요한 자리를 잡게  줄은 상상도 했지만 이런 글을 쓰게  것을 보니까 그렇게 되었다. 

 

고등학교  <스텝 > 영화들을 눈을 반짝거리면서 봤는데 사람이 몸을 그렇게 움직일  있는 것이 나에겐 무슨 마법 같았다. 케이팝의 화려한 퍼포먼스에 빠지게 되었을  춤에 더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도 언젠간 보기만 하지 않고 춤을 직접 배우겠다고 결심했는데대학교  공부로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고 졸업한 다음에 근처에 댄스학원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었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걸렸는데 드디어 서울에 와서 어학원을 다니게  계기로 나의 댄스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어학원에서 케이팝 댄스 특별 수업을 열었는데 한번 용기를 내서등록하며 시스타의 <SHAKE IT> 나의 운명적인  번째 안무였다. 그때부터 마치 언덕 아래 굴리는 눈덩이처럼 멈출  없었다. 특별 수업은 제대로  동아리로 변하면서 멤버수는  상승했다. 제일 오래된멤버였던 나는 댄스 동아리 회장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댄스 학원을 따로 다니기 시작하며  학원의 공연반 안에들어가서 커버 영상 촬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깜빡할 사이에 댄스는 나의 인생이 되어버리며 춤을 조금이라도 추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때 춤을 추기 시작하지 않았으면 나의 한국 생활이 많이 달랐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나의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를 이루어지는것도 좋았지만 댄스 덕분에 그것보다 훨씬 많은 축복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유학 생활은 아주 재밌으면서 아주 외로울 수도 있다. 따로 취미 생활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은 이상 수업 밖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기회가 많지 않음으로 한국에 살고 있는데도  여행자처럼 사는 느낌이   있다. 나도 바깥쪽에서 안을 보는 느낌이 들었을 때가 많았다. 춤을 추기 시작한 이후부터 한국에서  삶은 조금씩 존재하기 시작했던  같다. 댄스 동아리에 가면 나의 역할이 있으며 나와 같은취미를 가진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신나게   있었다. 댄스 학원에 들어가자마자 나의 이름을 반갑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말에 혼자서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연습실에 가서 친구들과 동선을 맞출   많았다 (물론 혼자서 드라마를  때도 많았지만). 이런 것이 사소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당시에 나에게  의미였다.  모든 것들이  소속감의 신호들이었다. 보너스 혜택으로 많은 사람과 소통을 하면서 한국어 말하기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고 솔직히 말하면 근육이 생긴 것도...나쁘지 않았다.

 

다른 유학생들에게 조언  마디를 해줄  있다면 공부만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춤이 아니어도 세상 밖으로 나갈  있게 해주는 활동에 참여하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취미를 찾으면 외로운 순간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없다. 다른 문화 속에서 살면서가끔 그런 순간이 어쩔  없이 생긴다. 다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재밌는 취미 생활에 잠여하면 한국에 있는 동안 훨씬 많고 다양하고 뜻깊은 추억을 만들  있다.

 

요즘은 석사 과정을 하다 보니 예전만큼은 춤에 투자할 시간이 없다. 최근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학원은 휴원을 아주 길게 하며 거의   동안 춤을 하나도  췄다. 처음에는 괜찮을  알았는데 휴원을 연장할수록 몸이 근질근질해지면서 대리만족으로 안무 영상을 없이 찾아보았다. 일주일에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흘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다시 깨달았다. 이젠 학원에 가면 회원의 안전을 위해 바로  체크를 하며 수업을 듣는 동안 답답해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함에도, 춤을   있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하다. 

 

석사 과정은 얼마  남으며 졸업해서 취직하게 되면 춤을 얼마나 자주   있을지 아직 모른다. 슬픈 얘기지만 예측할  없는 일에 집착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음으로 일단,  순간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공부하는 동안 학원을 꾸준히 다니며 친구들과 재밌게 놀며안무를 열심히 배울 것이다. 나는 지금 춤을 추는 대학원생으로 사는 것이  좋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6. 1. 22:31

(사진=드라마'킹덤'포스터/넷플리스)

(사진=예술의전당 삭온스크린/예술의전당)

 

(사진=검진을 받고 있는 콜센터 빌딩 거주자들/한겨레)

김아영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코로나 19라는 비상 재난사태는 예술과 일상을 모두 바꿔나가고 있다.

 

1.

우연한 사고이자 불운의 시기다. 그 누구도 앞날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수준의 세계적인 재난 상황은 현실 세계를 극도의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 영화관은 문을 연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텅 비었고, 상반기 공연을 준비 중이었던 연극, 뮤지컬도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됐다. 상당수의 미술관이 휴관을 선언한 가운데 본의 아니게 휴업 상태를 맞이하게 된 수십만 프리랜서는 생계 걱정에 놓였다. 음식점, 숙박업을 비롯한 주요 서비스업이 상인들과 공장 가동이 멈춘 기업주들은 외환위기보다 더한 불황 같다고 입을 모은다. 예기치 못했던 돌발변수로 인해 노력한 만큼의 성취에 이르지 못하고, 일상적인 삶은 파괴됐다. 

2.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온라인 문화 소비가 생활표준으로 자리를 잡는 모습이다. 모든 것을 집에서 해결하는 ‘집콕족’이 되어 넷플릭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무한 반복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프라인 공연에 집중했던 국공립 공연장과 단체도 온라인 공연에 부쩍 힘을 쓰고 있다. 예술의전당의 공연예술 영상화 사업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 세종문화회관의 ‘내 손안의 극장’,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내 손안의 콘서트’, 국립극장의 창극 모두가 유튜브 채널에서 선보인다. 베를린 필하모닉 디지털콘서트홀은 기간을 한정해 웹사이트를 무료로 열었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빈 국립오페라단도 영상을 무료로 제공한다. 돋보일 것 없었던 ‘방구석’이라는 수식어는 유행이 됐다.

 

 

3.

넷플릭스 속 <킹덤>은 지금 우리의 현실에 위화감 없이 겹쳐진다.1) 의문의 역병이 퍼져 나라 전체를 위협하는 조선시대 풍경에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신음하는 오늘이 담겨 있다. 특히 주목하는 장면은 좀비와 맞닥뜨려 공포에 휩싸인 관리들이 "상것들이 양반을 공격한다"라고 외치는 부분이다. 역병은 병들고 가난한 백성을 가장 먼저 덮친다. 백성들은 굶주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감염된 인육을 먹고 좀비가 되어 양반들을 공격한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도망갈 방도만 찾는 양반과 고위 관료들은 도망치는 와중에도 먹을 것을 가득히 챙겨 향연을 즐긴다. “사농공상의 계급이 확실한 시기의 사회 시대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은희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4.

재난은 평등한가? 영화 속 좀비가 오늘날의 취약계층과 오버랩될 때 질문은 고개를 든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벡(Beck, 1986/1997)2)은 원칙적으로 위험의 분배가 모두에게 공평하다고 주장했지만, 가장 큰 위험은 사회적 권력 관계에서 배재된 노동계급과 하층계급에 전가된다.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보험사 콜센터의 집단감염 사례는 안전한 재택근무가 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이야기일 뿐임을 상기시켜 준다. 학교가 휴교해도 매일 출근해야 하는 중소 하청기업의 파견직과 비정규직은 위험의 외주화를 떠안는다. 일주일에 마스크 한 장으로 버티는 요양보호사는 마스크를 사기 위해 몇 시간씩 줄 설 필요 없는 공직자나 정치인보다 위험에 취약하다.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에게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감염 예방법이 더 깊은 고립으로 시련을 가중시키고 나아가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회적 재난은 똑같이 발생하지만, 경험하는 위기의 경중은 계층에 따라 다르다. “좀비가 되고서야 비로소 양반과 상놈의 구분 없이 평등해진다는 신분제의 역설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는 <킹덤>이 정치물로서 지니는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든다. <킹덤>이 보여준 좀비 아포칼립스는 계급 특수적인 오늘날의 위험 사회를 보여주는 묵시록적 경고다.

 

5.

소비의 비대면화는 기대이자 공포다. 넷은 여전히 그 가능성에 기대를 걸게 만들지만, 동시에 누구보다도 그 위험성에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재난 상황에서 넷 소사이어티가 우리 삶의 가장 유력한 준거집단이 되고, 일상이 영위되는 주요한 생활근거일 수밖에 없다면, 그런 기대와 공포는 그 자체로 앞으로의 삶에 대한 전망과 직결된다. 우리는 지금 온라인을 통해 콘텐츠를 즐기고, 각종 공연 실황을 접하며, 미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지친 맘을 위로받는다. 사방에서 홈 엔터테인먼트의 급성장세를 예측하면서 위기로 인해 달라질 일상과 그 속에서 발견할 기회에 대한 이야기들이 도처에서 튀어나온다. 하지만 인터넷 소비만을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데 그쳐서는 곤란하다. 사이버-감상은 오프라인에 존재하는 리얼-감상이 뒷받침되었을 때 힘을 발휘한다. 물론 리얼-감상이 사이버-감상으로 옮겨졌다고 해서 아우라(Aura)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화예술의 아우라는 창작자와 관객이 리얼로 만나, 삶의 현장의 맥락에 재배치됐을 때 그 어느 때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연극이나 뮤지컬, 대중가수의 콘서트를 실황 중계로 보는 것과 현장에서 보는 것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행위예술은 어떤가. 창작자가 겸손한 자세로 나서면 관객이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관객이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 작품도 많다. 온라인 기반의 예술 활동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 할지라도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예산과, 시스템, 전문인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에게는 더는 예전과 같은 예술활동을 하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땀 흘려 준비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뒤따르리라는 인과율이 지켜져야 하는 것은 문화예술인들의 생존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사이버-감상이라는 지각변동을 가로막거나 거스를 수는 없을지라도 변화의 방향만큼은 분명하게 분별해내야 한다. 

 

6.

재난은 반복되고 불평등은 꼬리를 문다. 향후 팬데믹 재난 상황이 구조화된 계층불평등과 어떻게 교차하며 변형되고 심화되는지를 분석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그때의 극장과 공연장, 전시장 등의 운영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모두가 안전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 만한 객석 간격과 동선은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설정해야 하는가. 모든 외부활동이 차단되면 관객과 대면하며 활동했던 예술가들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 당장 무료로 풀리기 시작한 온라인 공연 중계는 언제까지 무료로 제공할 수 있는가. 여기에 돈을 매긴다면 합리적인 수준은 어느 정도일 것인가. 

7.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오면 이 모든 악몽이 끝날 것입니다.” <킹덤> 속 서비가 말한 희망의 대사는 결국 끝까지 서로의 곁에 남아 있던 이들의 몫이었다. 각자도생의 끝에서 타인과 접촉을 경계해야 하는 현 사태는 역으로 우리 자신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다른 사람과 연결된 존재인지를 드러낸다. “다른 이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다리를 끊어버리고 탈출한 이들은 몰살당한다. 반면 함께 힘 합쳐 출구를 모색하는 이들은 그만큼 오래 버틴다. 재난의 희망은 타인에게 굳게 문을 닫아버리는 단절적 소외가 아닌, 문을 열어 서로 구하려 드는 숭고한 헌신에서 다가온다.”3) 우연한 사고이자 불운의 시기를 이겨내는 방법은 여기에 있다.

 


 1) <킹덤>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넷플릭스의 첫 한국 오리지널 제작 드라마이자 사극 좀비물로 주목 받은 영화다. 지난 3월13일 새로운 시즌이 공개되자마자 한국뿐 아니라 태국, 싱가포르 등에서 ‘넷플릭스 오늘의 톱10 콘텐츠’ 1위를 기록했다.

 2) Beck, U. (1986). Risikogesellschaft :auf dem Weg in eine andere Moderne. 홍성태(역) (1997). ≪위험사회ᐨ새로운 근대(성)를 향하여≫. 새물결. 

 3) 김선영(2020. 3. 18). [톺아보기]역병이 드러낸 시대의 모순. <아시아경제>. URL: https://www.asiae.co.kr/article/2020031820114408716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20. 6. 1. 22:16

일상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적극적 노력, 대학원 성평등위원회

 

                                                                                                           

윤채영 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 

 

 

안녕하세요, 서강대학교 대학원 원우 여러분. 저희는 대학원 성평등위원회입니다. 

 

대학원은 짧고, 또 바쁜 만큼 우리에게 성평등위원회가 있다는 사실은 종종 잊혀지곤 합니다. 그러나 코로나 19 일깨워 준 것은 소중한 우리의 일상이 백신 개발과 전염병 사태에 대한 예방 및 방역 조치 등 일상적인 노력을 통해 지켜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대학원 성평등위원회 대학원 원우들의 안전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기 위해 원우들 스스로가 만든 조직입니다. 여러분을 직접 만나뵙기 힘든 지금, 서강대학원신문의 기고글을 통해 성평등한 공동체를 위한 성평등위원회의 활동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대학원 성평등위원회는 대학원 내에 성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세워진 총학회 회칙상의 기구로, 회원들의 성적 자율권 확보와 사건 발생시 적극적인 해결과 피해자 보호,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성폭력과 성차별 예방을 목표로 합니다. 또한, 이를 위해 성평등 실현과 성적소수자 보호를 위한 대학원 내의 활동을 할 권한과 성평등을 해치거나 성적소수자를 차별하는 행위를 한 회원과 준회원을 조정할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요컨대, 대학원 성평등위원회는 일상적인 성평등 활동과 사건 발생시 이를 해결할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조직입니다. 이를 위해 대학원 성평등위원회가 하는 활동을 총 세 가지 파트로 나눠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대학원 성평등위원회는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일상적 노력의 일환으로 성평등 교육을 엽니다. 성차별 및 성폭력 사건은 일단 발생하게 되면 피해자에게,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큰 상처를 남기게 되므로 최대한 예방을 위한 노력을 통해 이를 방지해야 합니다. 2008년 제정된 <서강대학교 대학원총학생회 성평등과 성적자율권 보장을 위한 시행세칙>에 따르면, “각 과의 대표(학생회장 및 조교장)와 본회의 성평등위원회 위원은 한 학기에 1회 이상 성평등과 관련된 주제의 강연회 등을 개최하고, 본회의 회원은 이에 참여한다라고 그 의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아니었다면 2월 말 대학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성평등 교육이 이뤄졌을텐데, 성평등위원회는 거기서 대학원생들의 성평등과 관련한 권리와 의무를 소개해드립니다. 그 자리를 대신하여 여기 지면을 빌려 여러분에게 이를 안내해드리고자 합니다.

성평등 교육에는 어떠한 내용이 들어갈까요? 일단은 성차별과 성폭력이 젠더권력 상 약자인 여성과 성적소수자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러한 성차별과 성폭력에 해당하는 말과 행동의 예는 어떤 것들이 있고, 왜 그것이 위협이 되는지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위협과 폭력으로부터 피해자와 공동체를 지킬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 그를 위해 우리가 어떤 원칙을 세우고 행동을 할 수 있는지를 이해합니다. 이러한 의무는 총학생회, 성평등위원회, 각 과의 대표 뿐만 아니라 모든 원우(회원)에게 있으므로 성평등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고 또한 일상 속에서도 이에 대해 성찰하고 고민해보는 것을 제안드립니다. 

둘째, 학생회 차원에 성폭력 피해 신고가 접수될 시, 이에 대응할 권한과 의무가 있습니다. 대응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요, 우선 성평등위원회는 피해자가 갖는 권리와 취할 수 있는 대응의 방법을 안내합니다. 사건의 심각성과 피해자의 요구사항을 두고 함께 판단하여 (1) 학생회 차원의 대책위를 열어 조정절차를 시도하거나 (2) 성평등센터에 사건을 이관하여 상담 및 조정 절차에 도움을 받고, 나아가 (3) 학교 본부 차원의 대책위나 징계위 절차를 요구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학생회 차원의 조치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를 입은 원우분들은 학생회 차원에 신고하는 대신 성평등센터에 사건을 접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강대학교 성평등센터는 피해상담부터 진술서 작성, 조정과 이후 대책위 절차까지 도움을 드리고 있기 때문에, 피해를 겪으실 경우 두려움 없이 도움을 청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학교 본부 차원의 대책위가 열리는 경우, 성평등위원들은 학생위원으로서 이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서강대학교 대학원총학생회 성평등과 성적자율권 보장을 위한 시행세칙(이하 시행세칙)>의 일독을 권하고자 합니다. 대학원 총학생회 회칙상 성평등위원회에 관련한 조항과 그에 딸린 <시행세칙>은 우리 구성원들의 동의에 따라 의결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폭력 및 성차별 사건에 대처하고 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데에는 원우들 차원의 민주적 합의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짚으며, <시행세칙> 중 일부 조항을 안내해드립니다. 

<시행세칙> 2 [성평등 및 성폭력의 개념]은 성폭력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인 언사와 행동, 신체적 접촉, 추행, 강간 등 성적 자율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뜻하는 협의의 성적인 폭력(Sexual Violence)뿐 아니라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불균형한 젠더 권력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성별화된 폭력(Gender Violence)를 포괄합니다. 이에는 타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부터 성차별을 조장하는 행위, 2차 가해(피해자 및 사건관련인에게 불리하거나 적대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행위)가 포함됩니다. <시행세칙> 3 [의무]는 사건 발생시와 평상시에 가해자 및 구성원이 지켜야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구성원 모두는 반성평등적이거나 성폭력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으며, 사건 발생시 공동체에는 해결 및 재발 방지를 위해 의무가 있습니다. 한편, <시행세칙> 2 [권리 및 원칙]은 사건 발생시 피해자가 누릴 수 있는 권리와 함께 사건 발생시 대책위가 지켜야 할 비공개 원칙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사건 발생시 피해자는 사건을 신고한 이후 사건을 비공개로 유지하거나, 반복적인 진술을 요구받지 않거나, 가해자로부터의 접근을 제한하는 조치, 별도의 행정상의 조치 등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책위는 이를 위해 최대한 성실히 활동할 의무가 있습니다. 

 

             부족하나마 지면을 빌어 성평등위원회의 활동을 소개해 보았습니다. 성평등한 서강대학교 대학원을 위해 저희 성평등위원회 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의 참여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새로운 거리두기의 비일상을 보내고 있는 지금이 여러분에게 일상적 성평등의 가치를 생각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성평등 위원회에 묻는다: 질의응답

 

1. 현재 성평등위원회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짤막한 소개와 성평등위원장은 현재 어떤 분이 맡고 있으며, 선출과정에 대해서 말씀 나눠주시면감사하겠습니다. 이와 함께 성평등 위원들을 모집하는 과정에 대한 소개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재 성평등위원회는 남궁미 위원장(심리학과 박사과정), 윤채영 위원(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 정의진 위원(여성학과 석사과정)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번 성평위에서는 내부 호선을 통해 위원장을 선출했습니다. 성평등위원회의 모집  구성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행세칙상 성평등위원회는/박사과정을 구분하지 않고 성평등 의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할 의지가 있는 정회원  2으로 구성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성평등위원에게는성인지감수성이 요구되므로 모집 공고를 통해 지원서를 모집한 , 성인지감수성  관련 활동 경력을 심사하여 면접을 거친  선발하였습니다. 그런 다음현임 성평등위원회 내에서 남궁미 위원(전임 성평등위원) 위원장으로 선출하였습니다

             

2. 원고를 써주신 원생께서는 어떤 이유로 성평등위원회에서 일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소견을 나누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성평등위원회에서의 포부나 이를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사견을 담아내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원 총학생회 정책국장이자 성평등위원을 함께 맡고 있는 윤채영입니다. 정책국 업무에 지원을 했던 이유는 개인적인 소신과함께 그것을  수행할  있는 관련 경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학원 총학생회가 인권  성평등을 주요 정책사항으로 두었으며 회세칙 개정 등을 통해 조직과 업무의 기틀을 다시 다지고자 하였기에 정책국장직에 지원하였고, 현재 성평등위원도 함께 맡고 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폭력과 착취로부터안전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또한 공동체가  권리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러한 의무에는 자칫 침해당하기 쉬운 인권들, 가령여성과 성적소수자의 인권과 함께 상하의 권력관계가 확실한 회사나 대학원 같은 공간에서의  인권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노력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원생들에게  권리가 보장되게   있도록 행동할  있는 권한이 학생회에 있다고 생각하였고,  때문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학부 대학이라는 공간 내에서 여학생협의회장  총교양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성폭력 사건 대책위원회와 성평등교육과 인권교육을 포함한 OR 교양교육 업무를 일임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일의 어려움이나 필요성을  알고 있고  사업을 진행하는 데에도 도움이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성지순례' 영상이 되고 있는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빌게이츠 TED 강연 영상을 아시나요 에볼라 바이러스(2014) 이후인류에 다가올  있는 판데믹에 미리 대처하자는 내용의 강연으로, 우리가 핵미사일 시나리오에는 막대한 자원을 들여 대처하고 있는 반면 그보다 다가올가능성이 높은 전염병 사태에는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며 관심과 자원의 투입을 촉구하였습니다.  강연이 2015 3월에 업로드 되었으니, 5이내에  예측이 실현된 것이죠. 성폭력 사건의 경우 어떨까요? 좁은 대학원 사회의 특성상 저희 성평등위원회는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언급조차 하지않지만, 학교 본부 차원의 대책위원회를 포함하면  학기에   이상은 사건 처리를 하게 됩니다. (저희에게 인지되지 않는 사건을 포함하면  많은사건이 발생하고 있을 겁니다.) 바쁜 와중에 성평등교육을 위한 시간을 따로 내는 것이 당장은 귀찮은 일일  있지만, 이것은 거의 반드시 발생하는 성폭력사건의 발생을 줄여줄  있고 나아가 사건 발생시 공동체가 바람직한 해결방법이 무엇인지 학습할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됩니다. 원우분들께서  일상을아끼고 보살피는 마음으로 성평등한 공동체를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3. 성평등위원회에서 사건을 접수했을  해당 사건에 대한 법률적 자문을 구하거나, 도움을 받을  있는 전문가가 준비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전문가가계시다면, 어떤 분이신지 보다 상세하게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재 성평등위원회에는 법률전문가가 없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분의 피해 호소  사건처리 과정에 법률 자문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건을처리하는 과정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명예훼손  무고로 고소할 가능성이 있기도 하고 피해가 인정되는 경우 가해자에게 취할  있는 조치 등을 판단하는데에 법률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인데요.  경우 최초 신고시에는 성평등위원이 아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답변을 드리되, 필요한 경우 이냐시오 성평등센터상담교수님들께 자문을 구할  있고 나아가 성평등센터의 법률자문가분들께 의견을 구할  있습니다. 현재 성평등위원들 모두 성인지감수성을 갖고활동하고 있고, 최소 1 이상은 대책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접수  처리를 결심하지 못하시더라도 저희에게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청하시면 저희가 최대한으로 도움 드릴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건 접수  문의 : 대학원 성평등위원회 sggradsa.gender@gmail.com)

 

4. 성평등위원회에서는 평균  해동안  건의 신고를 접수받고 대처하는지와 신고 접수 과정이나 대처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구체적인 어려움은 무엇이있는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가 사건을 인지하게 되는 경우는 2가지의 경로입니다. 첫째, 직접적으로 대학원 총학생회나 성평등위원회 측으로 사건이 신고되는 경우이고둘째, 성평등센터로 신고된 사건이 학교 본부 차원의 대책위원회가 열려 저희가 학생위원으로 참석하는 경우입니다. 학생회 차원의 대처에 대한 신뢰가 낮기때문인지 학생회 측으로 직접 사건을 신고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강대학교에는 성평등센터가 있고, 성평등센터에서는 상담  진술 절차를거치면서 피해자로 하여금 사건 처리 방식을 숙고한  결정할  있도록 돕기 때문에 성평등센터를 통한 신고 역시 권고드립니다. 현재 학칙상 학교 본부차원의 공식 차원의 절차(ex. 가해 학우에 대한 징계를 위한 징계위원회) 밟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평등센터를 거치도록 하고 있고,  이후 피해자가중재를 바라지 않거나 피신고인의 거부로 중재가 결렬되는 경우에 피해자의 동의를 거친  대책위원회  징계위원회가 열립니다. 대학원 원우분들의 경우성평등센터에 상담을 받으면서 사건을 접수하는 경우가 많고,   대책위원회까지 열리는 경우 거기에 저희 성평등위원들이 학생위원으로 참여하게되면서 사건을 인지하게 되는 경우가 (대학원 총학생회 차원의 사건접수보다)  많습니다

             대처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아무래도 심적 어려움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저희의 판단이 피해자나 피신고인(가해지목인)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고려 때문에 겪는 부담감이나 두려움과, 피해자 진술서를 읽으면서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는 수치심이나 두려움을 포함합니다. 사건을 겪은 피해자들은 대개피신고인(가해지목인)  장소에 있는 것이 두렵고 괴롭기 때문에 공식적 절차를 통한 조치를 요구합니다. 달리 말하면 사건의 정도가 중하여  기억이피해자에게 지속적인 괴로움을 주기 때문이며, 이런 사건들은 저희가 진술서를 읽는 것만으로도 두려움과 분노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성폭력 사건의경우, 피해자를 가해자의 추가적인 가해로부터 보호하고 심리적으로 안전한 상태에서 학업을 마칠  있도록 돕기 위해 공간분리 조치를 결정해야 하는경우가 많습니다. 대책위나 징계위의 판단이 가해자의 미래 계획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건을 판단하고 질의를 하는 과정에서마음을 무겁게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무거운 마음들이 나름의 균형을 갖고 사건을 대할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고, 학생위원의 입장에서 같은원우인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여 필요한 조치들을 요구하는  의견을 개진하려고 노력하도록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