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8. 18:45


임종진(사진작가)



올해를 넘기면 어느새 15주기를 맞이한다. 스스로 삶을 거두고 떠난 사람. 그가 없는 빈자리는 기억 저편의 아련함으로 가득 메워졌다. 쌓인 세월만큼 그리 깊어가는 것일까. 여전히 그가 그립다. 15년 전의 과거형으로 기억되지만 그대로 가슴 깊이 남아있는 사람. 김광석. 오늘도 광석이 형이 그립다. 지난 2005년 12월 초순 즈음 어느 늦은 밤. 먼지 냄새가 폴폴 묻어나는 필름을 꺼내 든 순간 예상했던 대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1996년 1월’ 이후 되도록 꺼내려하지 않았던, 일부러 살펴보려 하지도 않았던 그런 필름꾸러미였다. 사진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사진 작업물에 대한 애착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옛 기억이 상념에 허우적댈 것이 뻔했기에 ‘보는’ 것을 자제하려던 것이었다. 남들이 생각하기엔 유별나다고 웃을 수 도 있는 일이지만 내겐 그만큼 특별한 추억의 저장물이기도 했다. 그 필름 속 주인공이 바로 노래하는 사람 <김광석>이었기에.

말없이, 위로를 건네는 그런 사람

1992년 즈음, 대학생으로 전공인 공예와 디자인을 팽개치고는 한창 사진찍기 재미에 빠져가던 무렵인 그해에 난 완전히 김광석이라는 노래꾼에게 젖어 있었다. 집이든 어디든 그의 노래들을 틀어놓는 것은 물론 콘서트장 두루 찾아다니며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새로 나오는 음반은 그때마다 모두 구해 귀가 닳도록 들었다. 주변 친구들에게 무작정 들어보라고, 그러면 매달리게 된다고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일은 늘 떠벌이는 일상과도 같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현실에 대한 나른함 그리고 실패하는 사랑이 있었기에 누군가 나를 달래주는 이가 필요했다.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나도 그래’ 하면서 씩 웃어주는 이. 언성 높인 꾸중과 별것 아닌 것에 시간 낭비한다는 얄팍한 충고가 아닌, 말없이 옆자리에서 위로를 건네는 그런 사람이 더없이 필요했다. 가슴에서 울려 나오는 그의 목소리와 노랫말은 그런 나를 감싸주었다. 내게는 이미 투정 다 들어주는 동네 형처럼 너무나 친숙하게 되어버린 사람이었다.

어느 날 문득 광석이 형을 사진으로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음이 가는 것에 카메라가 향하기 마련 아닌가. 아직 어설픈 실력이긴 해도 한번 찍어보기로 했다. 들로 산으로만 다니던 초보 시절 처음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게 된 것이기도 했다. 그 후 콘서트를 찾아갈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갔다. 아직 노출 값이 무엇인지 좋은 앵글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그것을 큰 문제로 생각하진 않았다. 노래하는 모습, 잠깐 쉬면서 목을 축이는 모습, 도란도란 관객들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 그리고 한없이 맑기만 했던 그 웃는 모습까지 하나 둘 필름에 담았다. 달리 보면 필름의 컷과 컷 사이 담기지 않은 그의 몸짓과 숨결까지, 내 의식 속에 담겨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참을 지난 뒤의 일이기도 했다. 사실 그때는 지금처럼 상업적 이유를 앞세운 초상권 운운하며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경우가 없을 때였고 오히려 그렇게 한 가수의 공연모습을 사진에 담는 사람 자체가 없을 때였다. 공연장에 갈 때 마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그의 모습을 필름에 담을 수 있었다. 가끔은 한참 공연 중이던 광석이 형이 나와 눈을 마주치면서 ‘저 친구는 누구지?’ 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럴 땐 괜스레 쑥스럽기도 하고 얼굴이 벌게지기도 했다.

사막의 단비 같은 그의 음악, 그의 존재

아무튼 사각의 카메라 프레임을 통해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노래의 울림 그대로 감동적이었다. 그러다가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우연하게 스치는 인연들이 이어졌다. 한 카페에서 술기운에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는 형을 발견하고는 부끄러워하며 초콜릿을 전해주고는 화답으로 캔 맥주를 얻어먹기도 했다. 또는 길을 걷다가 기타 백을 들고 마주 오는 모습을, 또는 커피숍에서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런 인연들 언저리에 결국 용기를 내어 다시 얘기를 전했다. 몇 년 전부터 당신의 사진을 찍어왔다고. 그 사진들을 전해주고 싶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광석이 형은 예의 그 표정처럼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집 주소를 적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오긴 하지만 주소를 적은 쪽지를 들고 헤헤거리며 한걸음에 작업실로 달려갔다. 필름들을 꺼내 좋은 컷이 무엇일까 살피면서 들뜬 기분에 휘파람까지 불었던 기억이다. 며칠을 사진암실에서 밤을 새면서 현상액에 홀연히 드러나는 그의 형상들에 환호성이 났고 좋아해주실까 하는 기대감을 한 아름 품기도 했다. 시차를 두고 두 번에 걸쳐 보냈던 흑백사진들을 광석이 형은 무척 맘에 들어 했다. 콘서트장 대기실에서 만나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곧 작은 선물 하나 줄 테니 기다려달라는 말을 해주었고 1000회 콘서트 때 역시 무대 뒤에서 얼굴을 마주보며 얘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결국 필름 속에는 단순히 그의 이미지만 담긴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의 음악과 존재는 메마른 사막 같은 내 삶에 하나의 단비로 촉촉하게 다가왔다. 그 기운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커다란 위안의 여지로 남게 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광석이 형이 생을 멈춘 날인 1996년 1월 6일 이후, 난 그토록 소중히 아끼던 필름들을 소주잔의 힘을 빌어 모두 벽장 속에 넣어버렸다. 애써 돌아보지 않으려던 긴 시간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필름을 보면 그와 나누었던 나름의 교감과 기억들이 날것처럼 튀어나올 것이기에 일부러 안보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그의 노래는 계속 들을 수, 아니 들어야했지만 필름을 본다는 것은 그렇게 가슴 한쪽이 저며 올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꽤 긴 시간이 흘렀다. 10주기가 되는 2006년 1월을 앞둔 2005년 12월. 당시 몸담고 있던 한겨레신문에서 다시 그를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10년 동안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바라 본 필름들은 하나하나 감회가 새로웠다. 신문 문화면에 그의 10주기 특집기사를 준비하면서 벽장 속 낡은 필름들은 다시 빛을 받게 되었다. 그 10년이라는 시간의 축적이 주는 호기도 있었고 여전히 그립기만 한 김광석이라는 존재를 다시 세상 속으로 꺼내놓고 싶어졌기 때문일까.

소소한 일상의 가치, 그 행복을 일깨워준 가인(歌人)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필름은 자신의 존재를 회상이라는 방식으로 돌아보게 하는 듯 했다. 지난 시간들의 기억과 사진을 찍던 그 자리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여전히 형을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움에 낡은 LP판을 뒤지며 형을 추억하는 이들. 직접 공연을 보지는 못한 어린 나이에도 그저 형의 노래가 좋아 찾아 듣는 이들. 마찬가지로 그들과 같은 심정으로 여전히 맴도는 나 자신. 이 모든 생각들을 담아 한 권의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처음 사진을 배우던 오래전 어느 기억들이 그 생각을 더 들추어 보채기도 했다. 내게 광석이 형은 사람을 향하는 사진으로써 첫 모델이자 대상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저 좋아하는 감정 하나로 카메라를 들고 콘서트장을 돌던 그 시절은 마냥 신나는 날들이기도 했다. 그를 떠나보내고 난 뒤 시간이 흘러 이렇게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한 자리를 생각하게 될 줄 그때는 어찌 가늠이나 할 수 있었을까. 책을 내기까지 많은 사람들과 ‘김광석’이라는 한 ‘존재가치’를 바라보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들의 기억 속에 어떤 기운으로 남아 있는지. 왜 여전히 울림의 여지로 남아있는지. 서로 나누어 그를 기억하는 시간들은 입을 맞추듯 언제나 같은 결론, 즉 ‘위안’으로 이어졌다. 들으면 들을수록 마치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 같다는 동질감이 있었으며 어떤 특별함이 아닌 일상의 삶 안에서 행복의 가치를 찾아보자는, 그런 얘기를 해주었다고.

지금 나는 기자의 지위를 내려놓고 한 사람의 평범한 사진가로서 타인의 삶이 지닌 가치를 찾는 일에 마음을 쓰고 있다. 그 타인이 국가나 인종, 또는 가난함과 부유함, 성별의 차이나 장애의 유무 등에 따라 어느 한 쪽에 낮게 치우친 이들이라 해도 마음을 두어 바라보면 그 가치가 결코 작지가 않음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광석이 형의 노래를 하나하나 새겨 듣다보면 작고 소소한 삶의 가치가 결코 낮추어 바라볼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하려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노래 <나무>의 노랫말과 같이 무성한 가지로 그늘을 만들어 누군가의 삶의 쉼터를 만들고 싶어 했던 것처럼. 그에 대해 쓴 책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가 한 가인(歌人)에 대해 마음을 두어 바라본 소중한 기억의 산물인 이유는 그래서 스스로 자명하다. 부질없이 휘둘리던 삶의 테두리 안에서 나는 안식의 여지를 그에게서 받았다. 마음을 두어 바라본 첫 사람. 가인(歌人) 김광석. 여전히 생각나는 오늘 난 다시 그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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