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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글

[156호] 편집장의 글_양아라

 

버팀

 

편집장 양 아 라


“재난은 때로 제도와 구조를 허물고 사생활을 중단시켜, 더 넓은 눈으로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보게 해준다. 우리 앞에 놓인 임무는 그 문을 통해 보이는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 가능성을 일상의 영역으로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 

 

마치 방독면처럼 마스크를 쓰고 지나쳐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대중교통을 타면 울리는 재난문자의 단체 진동 소리도 새롭지 않은 일상입니다. 손안의 스마트폰은 ‘멈추지 않는 세상’인 것만 같습니다. 마치 몸 밖에 있는 신체 기관처럼, 잠을 자거나, 화장실에 갈 때도 스마트폰을 늘 곁에 둡니다. 넷*리스와 배*만 있으면, 집 밖을 나오지 않고도 살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는 택배와 배달을 기다리는 이용자의 얼굴이 보입니다. 스마트폰 밖에서는 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위험한 노동자들이 보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카메라 앞에 멈춰서 체온을 측정하고, 카페와 식당에 들어가면 QR코드를 찍으며 정보를 기록합니다.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건강과 타인의 생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정보를 기꺼이 내어줍니다. 제한된 공간에 안전하게 접근하거나 이용하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신분을 입증해야만 합니다. 외부인은 출입금지입니다. 안과 밖의 경계선이 그어집니다. 안전을 위해 자연스럽게 자신과 주변을 감시하는 주체가 되어가는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지난 1년간 날 선 일상을 버티며 나와, 가족, 주변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견뎠습니다. 출구 없는 불안과 공포가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재난의 시대에 ‘버팀’은 ‘저항’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강대학원 신문은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들이 겪는 불평등과 고통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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