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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글

[125호] 서강에 없는 것

 

 

 

 

scene 1. 이제 누구도 커피전문점에 가는 사람을 된장녀라고 비하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커피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한 존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수년 전부터 동네와 골목 상권을 접수한 커피전문점은 코피 터지는전쟁 가운데 시장의 마지막 보루인 대학교를 선택했습니다. 매년 쏟아지는 50만 명의 대학 신입생 모두가 커피의 신규 고객이라고 하니 그럴 법도 합니다. 그나마도 취업 하려면 남들보다 많은 스펙을 쌓아야 하는 대학생들에게 카페인의 각성효과는 살아남기 위한 필수 요소지요. 일요일이 오고 또다시 일요일이 와도 고단한 논문을 써야하는 대학원생들에겐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일본 메이지 대학 문학부 사이토 다카시 교수의 말마따나 커피는 잠들지 않는근대의 원동력임이 분명합니다. 학내로 들어온 커피전문점, 그리고 커피라는 기호식품이 갖는 느낌이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이유입니다.

 

scene 2. 현재 학교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기업가 정신 충만한 대학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기사가 걸려있습니다. 영어 못지않게 돈이 중요하고, 이 돈을 버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모든 교수와 학생이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앞으로 1학년 교과과정에 기업가정신 수업이 생겨날 겁니다. 개화기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문학, 사학, 철학은 지성계의 중심이었다는데 이쯤 되니, 문사철(文史哲)을 위시한 인문학 관련 전공들은 없어지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소위 취업 잘 되는 학과로 학생들이 몰리는 상황에서 비인기 학과나 인문학과는 자취를 감추고 있으니까요. 솔직히, 먹고 살기도 버거운데, 웬 인문학 타령이냐 반문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먹고사는데 유용한 것에 기업가 정신만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 삶엔 사랑과 죽음, 희망과 정의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들도 무성하지 않던가요. 부가 특정 학문에 집중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scene 3. 결국 서강에는 커피전문점도 많고, 기업가 정신도 충만합니다. 점점 대학이 예전의 대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는 환경 속에서 과연 서강에 없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그리하여, 이번 호에서는 미술, 음악, 사진, 무용, 건축 등 서강에 없는 학문들을 들여다보며 현재를 고민해봅니다. 당장 대학에 부과된 학문적 과제, 그로부터의 일탈을 꾀합니다. 일상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채 정신없이 살다가 가끔 내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없는 것이 정말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을 하게 되곤 하거든요. 지나치게 있는 것들에만 집중하다보면 언젠가는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 날이 있을 겁니다.

 

편집장 김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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