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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60호] 한류 4.0

박 우 승 기자

오징어게임 포스터 (출처: 넷플릭스)

 일제 강점기와 2차 세계 대전, 그리고 남북 전쟁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졌던 대한민국은 어느새 ‘한류’를 통해 글로벌 대중문화의 세계를 재편해가고 있다. 지난 2012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라는 뮤직비디오는 2005년 유튜브 창사 이후 최초로 조회 수 10억 건을 달성하며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본 단일 영상’ 1위를 차지하였고, 미국 아이튠즈 뮤직비디오 차트 1위, 빌보드 싱글 차트 2위(7주연속), UK 싱글 차트 1위, MTV 유럽 뮤직 어워드(MTV EMA 2012) 베스트 비디오 상 등을 받으며 전 세계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약 11년이 흐른 지금,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빌보드 핫100 차트 최고순위 1위(7주연속), 스포티파이 역대 최다 스트리밍된 그룹(170억), 뮤직비디오 최단기간 10억 뷰 달성, 24 시간 내 유튜브 최다 시청 등을 기록하며 23개의 기네스 세계 기록 을 달성하여, 기네스 명예의 전당에 등재되고 있다.

 

 이외에도 칸 영화제, 골든글로브상 등에서 각종 최고의 상들을 휩쓸고 약 13여 개의 국가에서 흥행한 <기생충>, 넷플릭스 역대 최고 시청 가구 수와 8억 9,110만 달러(약 1조 550억 원)의 ‘임팩트 밸류’ 등을 기록한 <오징어 게임>, 공개 첫 주 만에 전 세계 1억 2,479만 시간 시청을 기록한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의 K-콘텐츠는 엄청난 문화 파급력을 지니며 비영어권 콘텐츠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이제 세계인들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본적이 없더라도, BTS의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감상한 적이 없더라도, 해당 콘텐츠들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K-콘텐츠에 등장한 ‘달고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짜파구리’, ‘한복’ 등의 한국 생활 문화들이 덩달아 세계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듯이, 한류는 나날이 소프트 파워의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이러한 한류의 흥행은 비단 하루아침에 찾아온 행운이 아닌, 90년대 이후부터 약 10여 년을 걸쳐 일궈낸 긴 과정에 대한 값진 결과물이다. ‘눈부신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한류가 이토록 전 세계인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흘러갈 것일까?’라는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선 그동안 한류가 흘러왔던 시간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혼종적인 특징

 

 혼종성(hybridity)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늘 한류의 중심에 존재했다. 유럽이나 일본, 미국에 비해 전반적으로 뒤처진 개발도상국이었던 90년대의 한국은 개발도상국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각종 외국 문화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한국의 문화와 혼합하였다. 타 문화에서 영감을 얻고, 영감을 혼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국 문화의 혼종화(hybrdization) 특징은 오직 자국의 유산에 의존하여 자국 문화를 보호하고, 그 안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려는 보수적인 국가들의 특징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학자 Welsch에 의하면 초문화성 (transcultural) 형태는 여러 문화가 함께 존재하는 곳에서 단순히 문화와 문화가 병렬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닌, 상호작용 혹은 합쳐져 두 가지 이상의 문화가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한국의 혼종성은 다양한 문화 중 선택적으로 혼합시켜 초문화성 형태로 이행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인 배경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한국의 혼종성은 미국의 다문화 사회와 비슷한 맥락에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미국은 1609년 영국인들이 버지니아 해변에 살던 원주민 인디언들과 만난 순간부터 수백 년간 다문화적 사회를 유지해왔다. 미국의 민족 집단은 유럽계, 중동계, 북아프리카계, 히스패닉계, 아시아계, 오세아니아계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다양한 민족들로 이루어진 미국은 각종 문화들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다문화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럽에서 기원한 서양 문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민족들과 종교들의 영향을 받으며 혼합된 문화를 가진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얻은 막강한 부를 기반으로 현재까지 세계 최고의 질과 양의 문화콘텐츠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미국의 혼합된 문화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작곡가 거쉬윈(Gershwin)을 들 수 있다. 거쉬윈은 유럽의 클래식과 미국의 재즈를 결합시켜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어나갔고, 대중음악계와 클래식계에서 모두 호평을 받으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다양한 할리우드 영화들의 음악을 작곡하기도 하였고, 오페라를 작업하기도 하였으며 재즈, 블루스, 클래식, 흑인 영가 등의 다양한 장르들을 크로스오버하여 작곡하기도 하였다. 결국 거슈윈이라는 문화적 결과물은 미국 내 존재하는 유럽인들의 클래식 문화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재즈 문화 의 혼합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메니지먼트 시스템 문화와 미국의 음악 문화가 혼합되어 생긴 K-POP 아이돌 그룹들, 미국의 할리우드식 스토리텔링과 한국의 문화가 혼합되어 생긴 K-드라마와 영화들이 띄고 있는 혼종성과 흡사하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혼종성은 미국이 걸어온 혼종성의 발자취를 개발도상국 시절부터 천천히 따라 걸어온 것일 지도 모른다.

 

공통된 주제와 신선한 문화적 배경

 

 문민정부의 문화산업 개발, 국민의 정부부터 시작된 일본 대중문화 개방 등을 기점으로 1997년 중화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별은 내 가슴에>, 2003년에는 일본으로 수출되어 욘사마 열풍을 일으킨 <겨울연가>, 그리고 <대장금>까지 한류 열풍의 시작에는 1990년도~2000년대 중반의 K-Drama가 중심이 되었다. 특히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 <대장금>은 스리랑카에서 99%라는 말도 안 되는 시청률을, 루마니아에서는 경영 위기를 겪던 공영방송 TVR 채널을 살리는 등의 놀라운 기록들을 세우기도 하였다. <대장금>의 성공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핵심적인 요인 중 하나는 바로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공통된 주제’에 ‘신선한 문화적 배경’ 의 결합이다. 왕궁의 요리사 견습생이 된 젊은 노동계급 소녀의 모험 이야기에는 시간과 장소 등의 특수성을 떠나 누구나 좋아하는 노동계급 출신이 실력으로 마침내 성공한다는 보편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궁중 음식이라는 한국의 문화적 배경은 외국인들이 신선하게 느끼기엔 충분했다. 

 

 <대장금> 외에도 ‘순수한 첫사랑’이라는 공통된 주제에 한국 남성이라는 신선함이 들어간 드라마 <겨울 연가>, ‘빈부격차’라는 공통된 주제 속에 한우 채끝살을 얹은 ‘짜파구리’와 과도한 ‘영어’ 사랑 등의 한국인들의 문화 코드를 섞어 다룬 <기생충>, ‘자본주의와 계급’이라는 공통된 주제 속에 ‘달고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의 생소한 문화가 들어간 <오징어 게임>, ‘어려운 상황에 굴하지 않고, 다시 극복하려는 힘’이라는 공통된 주제 속에 한복 의상과 K-POP 멜로디가 들어간 블랙 핑크의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 ‘Love Your Self’라는 공통된 주제에 외국인들에게 신기한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라이브로 선보인 방탄소년단 의 <IDOL> 라이브 무대와 같이 K-콘텐츠들은 세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공통된 주제와 한국만의 신선한 문화적 배경을 통해 한국만의 콘텐츠를 생산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세계인들이 K-콘텐츠의 주제에 대해 공감하고 자신 을 등장인물들과 동일화시키며 콘텐츠에 녹아들었던 한국의 문화적 배경을 받아들일 때,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문화 브랜드가 구축되고, 향유자들에게 문화적 각인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곧 한국이 K-콘텐츠를 통해 더 강력한 국가 브랜드를 구축하여 국가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고, 정치적으로는 ‘소프트 파워’라는 무형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K-콘텐츠는 단순히 돈을 벌고 싶어하는 자본가 세력의 추진력에 의존하여 철저히 상업적으로 제작되었을 수도 있다.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콘텐츠에 녹아있는 정체성이 말살되지 않기 위해선 여러모로 국가의 서포트와 핸들링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과 문화산업이 현재보다 더욱 높은 협업을 통해 한류 콘텐츠를 제작한다면, 한국은 지금보다 더 강력한 국가 브랜딩 전략을 구축하며 높은 국가적 이미지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기술의 수용

 

 일본과 문화수출부분에서 경쟁하고 있었던 2000년대의 한국은 비, 보아, 올드보이, 2PM 등의 문화상품들을 내놓았다. 하지만 한국의 문화콘텐츠들은 콘텐츠 유통방식에 있어 국가마다 각기 다른 유통방식 및 현지 미디어와의 협력, 예측할 수 없는 해당 국가의 시장에 대한 ROI(Return On Investment, 투자수익률) 등 다소 까다로운 유통방식의 위험성과 함께 서구권의 라디오, 대형 영화체인, TV 채널 등의 전통적인 매체들을 뚫을 수 없었고, 서구권의 전통 매체들에게 기피를 받기도 하였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서구권의 전통적인 매체들을 깨고 진출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한국의 문화산업계는 기존의 매체들은 피하고, 새로운 매체인 뉴미디어에 진입하여 소비자들에게 직접 다가가는 방식을 택하기 시작하였다. 

 

 K팝 아티스트들은 유튜브, 트위터 등과 같은 뉴미디어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며 소비자들에게 다이렉트로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Youtube 플랫폼의 활성화로 유통방식은 전에 비해 저렴한 비용과 간단하고 편리한 유통, 그리고 CMS 모니터링을 통한 시장분석 등 다소 획기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비디오를 볼 수 있는 공간적, 시간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플랫폼의 특징 또한 시너지 효과를 내어 드라마, 영화보다 비교적 짧고 강렬한 K-POP 뮤직비디오가 점차 한류를 이끌어나가기 시작하였다. 한국국제문화교류재단과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으로 발간한 ‘2022년도 한류실태조사(2021년 기준)’에 따르면, 외국인들에게 제일 높게 각인된 한국 연상 이미지는 K-POP(14.0%)이며 소비 특성에서 접촉 경로는 온라인/모바일 플랫폼(81.5%), 주 이용 플랫폼은 유튜브(80.3%) 라는 보고내용(해외한류실태조사,2022)을 통해 알 수 있듯이, K-POP의 주된 소비는 주로 유튜브 플랫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산업 또한 음악산업과 마찬가지로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매체를 찾게 되었다. 2016년 사드 미사일의 배치 공표 이후 한한령(限韓令)이 내려지며 한국은 산업의 주 고객을 잃고 다른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때마침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와 수준 높은 콘텐츠를 알아본 넷플릭스(Netflix) 플랫폼이 2016년 진출 예정을 밝히며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산업은 서구권의 전통적인 매체를 피해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플랫폼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넷플릭스와의 결합은 <오징어 게임>이라는 엄청난 문화 콘텐츠를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플랫폼이라는 신기술을 대중문화라는 제품 에 통합시켜 빠르게 발전해 나갔다. 코로나19로 인해 빠르게 진행된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국가 간의 장벽은 허물어졌고, 그 어느 때보다 국가 간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신기술과 대중문화의 조합은 성공적으로 작동하였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2022년도 한류실태조사’의 보고에서도 코로나19 발생 이전 대비 드라마, 영화, 음악의 소비가 각각 53.5%, 51.8%, 47.3%씩 증가 하였고, 주 접촉 경로가 넷플릭스와 유튜브인 온라인/모바일 플랫폼 이라는 점에서 코로나19라는 악재는 신기술이 결합된 한류 콘텐츠에게 오히려 일종의 호재로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류의 미래는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까? 하나의 장르로 구분될 정도로 성장 기도를 달리고 있는 K-POP은 현재 단순히 대중음악 시장을 넘어 미래 혁신 기술과 맞물려 해당 기술을 구현해 낼 수 있는 중심에 다가서고 있다. 현재 국내/외의 주식시장에서는 메타버스 ETF(Exchange Traded Fund)가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K-POP은 미래 발전 방향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메타버스를 가속화 시킬 수 있는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이미 메타버스 영역에서는 <제페토>의 블랙핑크 팬미팅, <포트나이트>의 트래비스 스캇 콘서트 등의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되었고, 그 효과에 대해 입증된 바 있다. 따라서 국내의 반도체, 기술, 게임 기업과 함께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 대중문화 산업, 그리고 정부가 메타버스에 대해 통합적으로 협업한다면 향후 게임, 콘서트, 스포츠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K-POP이 그 중심을 차지할 수도 있다. 특히 신기술을 다루는 데 있어 정부 및 공공기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지원과 함께 해외 저작권 침해에 대한 적시 대응과 저작권 보호 강화, 해외 플랫폼의 부당한 계약 방식에 대한 법률개정 등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은 한둘이 아니다. 

 

 현재 K-콘텐츠는 전 세계의 국가들 사이에서 큰바람을 일으키며 문화콘텐츠 제작의 틀을 변화시키고 있다. 즉 세계적 변화 양상의 중심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한류는 그동안 한류생성(한류 1.0)에서 시작되어 한류심화(한류 2.0)을 통해 한류다양화 한류 3.0)을 겪어왔고, 현재 한류 4.0의 시대를 맞고 있다. 신기술과의 융합과 더불어 문화콘텐츠가 더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어가고 있는 한류 4.0이 현재 3.5단계에 있는 한류가 지닌 것 보다 더 높은 국가 경쟁력으로 발전하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