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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113호] 지젝의 사랑론(論): 쿨한 사랑에서 열외(列-外)하는 열애로! 한보희(연세대 비교문학 강사) 시와 사랑, 그 폭력적 소격효과 로만 야콥슨에 따르면 시적 언어는“일상 언어에 가해진 조직적 폭력”이다. 이 유명한 명제를 살짝 바꾸면, 슬라보예 지젝의 사랑론으로 들어서는 입구로 삼을 수 있다. 사랑이란 일상적 삶에 가해진 조직적 폭력이다.“사랑은 존재의 질서에 하나의 차이를 만들고 균열을 내려는 폭력적 정념, 다른 모든 대상을 희생함으로써 하나의 대상을 특권화하려는 폭력적 정념이다. … 사랑의 선택은 이미 자체로 폭력인데, 그것은 폭력이 사랑의 대상을 맥락에서 떼어내 사물(Thing)의 자리에 올려놓기 때문이다(슬라보예 지젝,『죽은 신을 위하여』, 57쪽).” 사랑은 일상이라는‘자동화된(automatized)’궤도에서 주체를 탈선시키는 삶의 시어(詩語)들이다. 시의 요체.. 더보기
[113호] 한국 다문화주의의 겉과 속: 이주민에 대한 열외적 열애 오경석(한양대학교 다문화연구소 소장)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다문화주의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이주민들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겁다. 하지만 이 뜨거움(熱)은 실상 일방적인 온정 내지 동정의 시선에 그칠 뿐이며, 이에 이주민의 타자성은 우리의 동일성으로 재차 용해되어 버리고 있다. 이주민들이 사회의 주변부로 끊임없이 내몰리는 현실 또한 여전하다. 다문화 연구가인 필자를 통해 표면적 포용과 배면의 배제로 점철된 한국 다문화주의의 현주소를 짚어보았다. 한국은 이민국가가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평등하게 어울려 사는 문제를 고민해볼 기회와 경험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동질성의 압력이 강한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로 여겨질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이주민 대중이.. 더보기
[113호] 욕망과 금기의 경계에서 번민하는 사랑 우리 사회엔 자신의 열애를 위해 경계를 넘나드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숨고 도망치고 변신한다. 그리고 괴로워한다. 열외하지 않고서는 열애를 할 수 없는 딜레마에서 그들은 진실과 거짓,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경계를 만들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몰래 그어 놓은 선을 밟고 있을 뿐이다. 을 화두로 성적 소수자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자. 송혜림(영화감독) 우리의 경계를, 이탈한 그들 푸른 새벽, 광활한 록키산맥을 배경으로 한 대의 트럭이 지나간다. 트럭은 어느 컨테이너 앞에 도착해 한 남자 (애니스)를 내려놓고 다시 길을 떠난다. 이제 막 소년티를 벗은 듯한 남자는 작은 보따리를 든 채 컨테이너 앞을 서성이고 잠시 후 좀 더 매끈하게 생긴 또 다른 남자(잭)가 도착한다... 더보기
[113호] 연애, 열애, 열외 두 사람에게 뻗어나온 선(線)이 말과 감정과 몸의 형태를 빌어 서로 섞인다. 말들은 이어지고 감정들은 맞닿으며를 말들은 이어지고 감정들은 맞닿으며 몸들은 접촉한다. 때로는 격렬하고 때로는 농밀하게, 양자를 잇는 현(絃)은 쉴 새 없이 진동한다. 사람 사이의 연(緣)이 ‘붉은실’로 표상되는 것은 그러므로 우연이 아니다. 연애(戀愛), 즉 서로를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행위는 말과 감정과 몸을 이용해 너와 나를 얽는 하나의 망(網)을 함께 자아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망을 구성하는 선들이 서로 마찰하며 붉은 빛깔의 열기를 방사하는 상태를 우리는 열애(熱愛)라 부른다. 하지만 연애에서 열애로의 전위에는 부정적인 계기가 함축되어있다. 이전의 성긴 망은 열애를 통해 점차 틀에 박힌 직물(織物)로 재단.. 더보기
[112호] 자본의 흐름, 사유의 정지 곽성우 기자 신체적 허기는 정신적 빈곤을 초래한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기야 하겠지만 배고픈 체 소크라테스가 되는 일이 말처럼 쉽진 않다.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 이조차 허락되지 않은 이에게 마냥 소크라테스가 되라고 말하는 것은 기만을 넘어선 폭력이다. 다시 말해 경제적 기반은 단지 먹고 사는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유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현실은 다분히 편향적이다. 경제적 양극화가 그 어느 때보다 가열 차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소크라테스 되기를 선택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사유가 곧 사치인 절박한 삶들의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는 삶이란 사유의 빈.. 더보기
[112호] 소설가 해이수를 만나다 낯선 공간에 던져질 때, 우리가 이 ‘낯’-선 공간에서 마주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얼굴’이다.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이 생경한 경험은 그 동안 익숙했던 자신의 모습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호주의 사막에서 에베레스트까지, 낯선 공간을 여행하는 인물들에게서 새로운 자아 구축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소설가 해이수를 만나보았다. 21세기의 객자(客子)는 사막 위에서 춤추고 에베레스트에 반한다. "청춘의 시절은 공간이 주는 힘, 익숙하지 않지만 낯선 공간이 주는 힘을 직접 체험해 나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접한 어둠 속에서 차차 사물을 인식해 나가듯, 어려움을 봉착했을 때 얻는 깨달음이야 말로 그 공간이 주는 절대적인 힘이라고 봅니다. 너무 협소한 자기 세상에 갇히지 말고 낯설.. 더보기
[112호] 서강 50주년 기념이 단순히 현재에 대한 자축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추하는 것이라면, 서강의 50년을 기념하는 것 또한 과거 50년을 상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상기의 구체적인 방식들은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서강의 50년이 상기될 때 흔히 나열되는 계보 외에 조금은 다른 계보들을 추적하고자 했다. 서강의 건물들이 세워졌던 각 해와 각 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실제 학생들의 모습들은 어떠했는지를, 그 당시 신문기사들을 위주로 거칠게 소묘해보았다. 서강이란 동일한 공간에서 청춘을 향유했던, 현재의 우리와 조금은 다르고 또 한편으론 비슷한 과거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자 한다. 더보기
[112호] ‘토건망국’을 향한 질주를 멈춰라 정부가 ‘일로영일’(一勞永逸)을 내세운 호랑이 해의 봄도 어느 덧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오랜 안락을 향한 대한민국의 국책 사업은 땅을 파고 산을 깎는 반(反)녹색 성장을 지향하며 전국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토건주의를 일선에서 비판하고 있는 필자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홍성태 (상지대학교 문화컨텐츠학과 교수) 한국이 토건국가의 덫에 걸려 고통 받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민주화와 고성장에 성공하고 ‘진정한 선진화’의 문턱에 이르렀으나, 토건국가의 덫에 걸려 위기에 처하고 만 것이다. 토건국가란 무엇인가? 그것은 막대한 혈세를 탕진해 소중한 국토를 파괴하는 기형적인 국가, 투기와 부패의 만연을 초래하는 개발 국가를 말한다. 이러한 토건국가를 개혁하지 않는 한 ‘선진화’는 불가능.. 더보기
[112호] 기업가주의적 도시 서울, 그리고 도시권 : 데이비드 하비의 논의를 중심으로 전지구적 세계화가 근대 국민국가의 폐쇄성을 해제함으로써 이른바 ‘평평한 지구’라는 낙관적 수사를 남발시키고 있지만 이 ‘매끄러운 공간’을 자유롭게 활보하는 것은 여전히 자본뿐이다. 더불어 일상의 공간들에 해방적 가능성을 부여해온 포스트모던 담론들 또한 ‘장소마케팅’이라는 방식으로 자본에 쉽게 전유 되고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는 신자유주의적 테제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전지구적인 신자유주의 흐름이 한국적 양상으로 발현되는 지점을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필자의 논의를 옮겨보았다. 황진태(서울대 지리교육과 박사과정) 서울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도시 중 한 곳이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서 서울의 역동성은 그 폭과 질에서 이전과는 수준을 달리한다. 산업화를 상징하는 청.. 더보기
[112호] 기관(organ)뿐인 사회, 혹은 망각에 잠식당한 신체(body) : 홍형숙의 <경계도시2> 읽기 재현 Representation 을 단순히 가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이 거듭되는 Re- 행위 -ation 내에 현재 -present- 가 기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 반복적 행위가 현재에 대한 가상을 넘어 시뮬라크르의 차원으로 전도될지라도, 재현에는 항시 현재가 말소된 흔적으로나마 남아있기 마련이다. 물론 이 흔적을 추적하는 것은 이미 포지티브화 된 사진을 보며 그 이전의 네거티브한 필름을 상상해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현재의 은폐된 단면을 목도하게 된다. 영화로 재현된 공간에서 영토적 포섭의 결을 읽어내고,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불편한 기억을 상기하려는 필자의 사유를 따라가 보았다. 신이수(영화감독) 가 다루고 있는 것은 잔존하는 몇몇 기록물에 의지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