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5. 21:52

전지구적 세계화가 근대 국민국가의 폐쇄성을 해제함으로써 이른바 ‘평평한 지구’라는 낙관적 수사를 남발시키고 있지만 이 ‘매끄러운 공간’을 자유롭게 활보하는 것은 여전히 자본뿐이다. 더불어 일상의 공간들에 해방적 가능성을 부여해온 포스트모던 담론들 또한 ‘장소마케팅’이라는 방식으로 자본에 쉽게 전유 되고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는 신자유주의적 테제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전지구적인 신자유주의 흐름이 한국적 양상으로 발현되는 지점을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필자의 논의를 옮겨보았다.



황진태(서울대 지리교육과 박사과정)

서울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도시 중 한 곳이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서 서울의 역동성은 그 폭과 질에서 이전과는 수준을 달리한다. 산업화를 상징하는 청계천 고가도로가 무너진 자리엔 청계천이 복원되었고 근대적 건축의 대표적 경관이었던 건축가 김수근의 세운상가가 헐린 자리엔 초고층 랜드마크가 들어설 계획이다. 한국 근대스포츠의 발상지였던 동대문운동장이 헐린 곳에는 세련된 공원이 들어서는 중이며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서울시청사의 신청사 부지는 일제침략기에 세워진 구청사 부지로 선정되어 구청사 건물은 결국 허물어졌다. 이러한 대표적인 경관들의 변화뿐만 아니라 현재 서울 곳곳에서 추진 중인 뉴타운사업과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건설까지 상기한다면, 동아시아에서 이 정도의 별천지도 찾기 어려울 듯하다. 이와 같은 서울의 역동성에 대한 해석에는 다양한 접근 방식이 존재하겠지만, 본 지면에서는 정치경제학적 시각에서 공간을 연구한 지리학자인 데이비드 하비 David Harvey 의 시각을 실마리로 서울의 이 격렬함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자본의 순환이 만들어 내는 도시의 역동성         

하비는 자본의 순환과정 내에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두 종류의 운동이 있다고 보았다. 이 두 운동이란, 항상적인 위기로부터 벗어나 이윤을 획득하기 위하여 더 나은 기술과 더 나은 입지를 찾으려는 자본의 이동성 Mobility 과 안정적인 기술력과 시장을 확보하면서 그 곳에 머물고자 하는 자본의 고착성 Fixity 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틀은 지구적 규모 Scale 에서 움직이는 자본을 조망하는 것에는 탁월하지만 구체적인 도시나 지역 규모에서 어떻게 그러한 이동성과 고착성이 발생하는 지를 설명하기에는 논의의 추상수준이 높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하비는 도시노동시장의 지리적 범위 내에서 발생하는 생산과 소비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자본의 고착성과 이동성이 도시 규모에서도 발생하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틀을 토대로 서구도시들에 대한 경험연구를 시도하였다. 

하비는 전후(戰後)부터 70년대까지 미국에서 유지되었던 관리주의적 Managerialism 도시(케인즈주의를 바탕으로 시민을 위한 서비스 공급에 초점을 두는 도시)가 70년대 이후부터는 성장을 중시하는 기업가주의적 Entrepreneurialism 도시로 변화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70년대까지 관리주의적 도시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안정적인 재정과 도시경제 성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시정부는 오일쇼크라는 지구적 경제위기의 영향 아래 재정파탄과 도시경제의 추락에 직면하게 되었고 마치 기업가처럼 도시를 운영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에 도시정부는 도시를 상품화함으로써 외부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든다. 앞서 하비의 도식을 적용해 풀어보자면, 도시경제에 깊이 연루되어 쉽게 이동하기 어려운 고착화된 자본이 도시정부와 함께 도시경제를 살리기 위해 외부자본의 이동을 장려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유려한 디자인의 초고층 랜드마크와 함께 각종 도시 인프라가 건설되는 도시화 Urbanization 로의 이행이었다.

기업가주의적 도시로서의 서울

하비의 분석이 한국의 사례에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이 한동안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는 발전주의적 국가 Developmental state 였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추동된 조국근대화는 노동자에 대한 권위주의적 억압에 기반 한 유혈적 테일러주의였다. 따라서 한국은 전후 미국과 유럽에서처럼 노동자와 자본 그리고 국가 간에 합의가 이뤄졌던 역사적 경험이 부족하다. 하지만 기업가주의적 도시로의 이행경로는 유사하다. 한국에서 기업가주의적 도시는 1980년대의 점진적인 무역 개방과 1987년 민주화 이후 활성화된 지방자치제 등으로 인해 도시정부가 중앙정부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이양 받게 되는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했고, 서울시의 기업가주의적 정책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1997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개방속도는 보다 가속화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서 외자유치는 서울시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이명박 시장 임기에 설립된 서울국제금융센터는 97년 위기 이후 해외금융기관 유치를 위한 서울시의 적극적인 몸부림이었다. 당시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 복원의 근거로 해외관광객과 해외자본을 유치하는데 있어서 그들에게 쾌적성 Amenity 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해외직접투자든 해외금융기관 유치든, 그 형태가 어떻든 간에 해외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서울시의 이러한 노력들은 결과적으로 서구도시의 경우처럼 가난한 자들을 주변화 하는 상황을 야기했다(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발생한 노점상과 점포상인들의 주변화를 상기하라). 용산참사는 쇠락지역 건물들을 쓸어버리고 그 자리에 해외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초고층 랜드마크와 국제업무지구를 만들겠다는 서울시의 기업가주의적 행태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예이다. 이처럼 하비의 분석에 기반 해서 볼 때 현재 서울의 역동적인 공간 변화는 순전히 이명박 혹은 오세훈이라는 특정 인물의 특성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안적 개념, 도시권 

한편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진보적 공간 연구자들은 1990년대 자본주의 도시에 대한 대안적 이론으로서 장소마케팅 Place Marketing 을 국내에 들여왔었다. 장소 Place 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각각의 장소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자는 장소마케팅의 주장은 모더니즘 철학의 동일성을 비판하며 차이를 긍정하는 신선한 문제제기였다. 그러나 장소마케팅은 용어 자체가 의미하듯 시장 Market- 에 의해 흔들리는 -ing 장소 Place , 즉 교환가치가 작동하는 공간을 옹호하는 경향을 띤다. 따라서 장소에 신화적 의미들을 부여해 장소를 지키고자 했던 장소 마케팅은, 외려 자본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장소를 상품화하고 시민이 활동하는 사용가치의 공간을 외국인 관광객과 해외자본을 끌어오기 위한 교환가치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긍정하고 마는 역설에 직면하게 되었다.

오늘날 동아시아 도시들 간에 벌어지는 초고층 랜드마크 건설 경쟁에서 알 수 있듯,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향하는 디자인 정책은 서울시만의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또한 도시정부와 자본이 공모하여 발생하는 타자에 대한 배타적인 공세 또한 유독 한국 도시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최근 하비는 도시권 The Right to The City 을 제창하고 있다. 도시권이란 자본가들의 이윤을 축적하는 데 기여했었던 도시화 과정을 민주적으로 강력하게 통제하는 집합적 권력의 활용을 일컫는다. 도시권을 처음 주창했던 앙리 르페브르 Henri Lefebvre 는 현대 자본주의 도시에서 시민들의 만남과 대화가 존재하는 사용가치의 공간이 줄어들고 삭막한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교환가치의 공간이 팽창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르페브르의 시각에서 볼 때, 교환가치의 공간을 전제하는 장소마케팅 또한 신자유주의 도시담론을 위한 전위대 이론인 것이다. 따라서 하비는 현재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도시 내에서의 투쟁들을 단결시킬 슬로건 내지 정치적 이상으로서 도시권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하비가 제창한 도시권 개념은 여전히 추상적이다. 구체적으로 도시권이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노점상의 도시권, 노숙자의 도시권, 장애인의 도시권, 심지어 상류층의 도시권까지 도시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도시권에 대한 경험연구가 수반되어야만 보다 뚜렷해질 것이다. 앞으로 도시권 연구가 활발해지길 기대해본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5. 21:49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달구고 있는 ‘광장에 대한 열망’은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가. 우리는 광장이란 상상적/실재적 공간이 새로운 민주주의가 발현될 수 있는 지점이라 쉬이 낙관할 수 있는가. 근대적 광장의 탄생과 중간계급의 욕망을 결부 짓는 필자의 논의를 통해 광장이란 공간에 내재하는 간극을 톺아보고, 이 모순된 공간을 사유로 횡단함으로써 발생할 새로운 민주주의 현실화를 전망해본다.

 
이택광(경희대학교 영미문화전공 교수)

근대 도시는 광장을 가능하게 한 원인이었다. 도시는 곧 정치적 민주주의의 물질적 구현이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세기 프랑스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지금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디자인 서울’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앞 다투어 실행하고 있는 다양한 ‘(재)개발정책’은 이 19세기 프랑스에서 진행되었던 ‘오스망화’ Hausmannization 를 연상시킨다. 21세기 한국에서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환영을 발견하는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한국에 온 프랑스 학자인 발레리 줄레조가 쓴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5. 21:46

재현 Representation 을 단순히 가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이 거듭되는 Re- 행위 -ation 내에 현재 -present- 가 기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 반복적 행위가 현재에 대한 가상을 넘어 시뮬라크르의 차원으로 전도될지라도, 재현에는 항시 현재가 말소된 흔적으로나마 남아있기 마련이다. 물론 이 흔적을 추적하는 것은 이미 포지티브화 된 사진을 보며 그 이전의 네거티브한 필름을 상상해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현재의 은폐된 단면을 목도하게 된다. 영화로 재현된 공간에서 영토적 포섭의 결을 읽어내고,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불편한 기억을 상기하려는 필자의 사유를 따라가 보았다.
 


신이수(영화감독)

<경계도시2>가 다루고 있는 것은 잔존하는 몇몇 기록물에 의지해야만 가까스로 복원해낼 수 있는 먼 과거사가 아니다. 송두율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7년 전, 새 밀레니엄을 맞이하던 호들갑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어났고, 거의 모든 언론매체가 이 사건을 실시간 헤드라인으로 다뤘다. 다시 말해, 송두율은 현재다. 자못 회고조인 영화의 내레이션은 이 명백한 현재의 사건을 외려 먼발치에 격리시켜 놓고서 바라보게 하려는 감독의 의지다. 이 소격(疏隔)은 거의 읍소에 가깝다. 바라보자. 감독은 바라보자고, 이야기한다. 뒤돌아보자고, 의관을 정제하고, 호흡을 가다듬고, 그 날 그 장소에서 벌어졌던 어떤 카니발을 먼발치서 지켜보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 제안을 받아들인 이들이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것은 창공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야경이다. 남산타워와 63빌딩, 한강대교를 조망하는 널따란 쇼트들이 연달아 화면을 메운다. 이 오프닝은 상징적이다. 그것은 보이저호로 부터 수신된 ‘창백한 푸른 점’으로서의 세계, 을지로의 한 교차로에서 줌-아웃 하여 대기권 밖까지 용솟음치는 구글맵 Google Map 위성의 시점쇼트와 맥을 같이 한다.

이 역설적인 오프닝을 지나 <경계도시2>가 비추는 서울은, 그러나 예외 없이 비좁다. 이 비좁음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혹은 카메라의 동선(blocking)이 확장해 나가려는 시도를 가로막는 요소들은, 두 말 할 여지없이 이 영화가 탐사하는 단 하나의 지점, 송두율로 수렴한다. 이것은 일견 문제적 인물을 전개의 중심축으로 둔 모든 영화에서 공히 작동하는 원칙으로 보인다. 요컨대, “대상이 공간을 제약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계도시2>를 올바로 탐사하기 위해 던져야 할 첫 번째 질문은 이렇게 제기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어째서, 송두율이 거니는 서울은 비좁을 수밖에 없는가?”

한국, 견고하고 비좁은 영토

송두율이 움직여 나가는 물리적 공간을 제약하는 세력은 비교적 쉽게 모습을 드러낸다. 참여정부의 사상검증에 혈안이 되어있던 야당과 보수언론, 그리고 국정원과 검찰에 의해 송두율의 동선은 일부 학술회의를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숙소와 수사기관으로 한정지어진다. 천신만고 끝에 선친의 묘소가 있는 광주를 찾지만, 이 시점의 송두율은 이미 피의자 신분이었으므로 여전히 그 제약 아래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이 풍경은 기시적이다. 체제의 이단아, 앙시앵 레짐에 균열을 일으키는 세력들은 언제나 이와 같은 구속의 절차를 거쳤다.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은 그 배면의 작동논리, 물리적 동선 제약의 컨텍스트에 이르러서이다. 이 대목에서 ‘경계인’을 대하는 체제의 불관용성은 비단 수구보수진영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를 고국으로 불러들였던 진보 지식인 진영이 앞장서서 전향을 요구하고(긴장감이 팽팽하게 지속되던 극장에서 거의 유일하게 폭소가 터져 나오는 장면이다), 호기롭게 ‘감옥갈 일 없고, 가서도 안 된다’라고 격려하던 변호사가 ‘나에게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라며 그를 몰아세운다. 감독이 최초에 세워두었던 방향성을 잃고 자신이 찍고 있는 대상에 대한, 나아가 그 대상을 찍고 있는 자신에 대한 본질적 의문을 제기하는 지점 또한 이 대목부터다. 감독은 숫제 직설화법으로 자문한다.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와 송두율, 그들은 동일인물인가 아닌가?”

<경계도시2> 속의 군상들은 송두율에게 각자의 진영이 요구하는 기능과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해체시킨다. 영토싸움에 골몰한다. 조직/유기체화 되어있는 진영, 그리고 그 주체가 분명한 진영논리는 송두율이라는 부정형의 지표 앞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여지없이 폭력적 불관용을 드러낸다. 들뢰즈를 빌려 얘기하자면, 이 ‘송두율이라는 시약’은 2003년 한국사회 위에 떨어져 고정된 진영(영토)의 기능을 해체하고 탈진영(영토)을 통하여 탈주선을 확보하려했던 ‘기관 없는 신체’에 다름 아니다. 단지 그 자신이 파괴당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만으로, 그 실존의 잠재성만으로, 분열과 대립으로 조성된 세계에 작은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던 한 ‘경계인’이, 진보진영의 훈수와 협잡으로 점철되었던 철야 대책회의 끝에 사실상 전향선언을 하는 장면은 어떤 극영화의 클라이맥스보다 더 참담한 정서적 충격을 안긴다. 그것이 바로 지금 여기의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강력하게 체감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 견고한 비좁음. 스스로의 구속력을 지지대 삼아 더욱 견고하게 구속하려 드는 고국으로부터, 패퇴한 늙은 철학자는 다시금 망명하는 수밖에 없다.

안이한 망각과 불편한 기억 사이


2010년의 송두율은 다시 독일에 있다. 그가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비정했던 시대적 핍박을 받고서, 훗날 다시금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될 지는 그 자신을 제외하고 아무도 알 수 없다. <경계도시2>에 드러난 자기모순적 순간들은 이 고고한 철학자에게 분명 감당하기 힘든 모멸감 또한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 모멸감이 그가 다시 경계인으로 돌아가려는 시도의 원천적인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송두율이 경계인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자립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기실 우리가 이 사태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여하한 문제들 중 가장 소박하고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송두율 이후에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일련의 드라마틱한 사건들을 우리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제와 허섭스레기 같은 보도블록 몇 조각과 분수대로 망가뜨려놓은, 언젠가 컨테이너 산성이 솟아올랐던 자리에서 촛불을 들고 낯모르는 이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때때로 떠올릴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지금도 주말이면 봉하의 어느 바위에 올라 피우다 만 담배를 내려놓고 올 것이며, 또 누군가는 한동안 용산을 지나칠 때마다 남일당 쪽으로 향하는 시선을 거두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기억의 유통기한이 얼마나 속절없는 것인지를 부연하기 위하여 굳이 송두율을 소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인류가 지나온 길이란, 지속적으로 실수를 저지르고 그것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자기비판을 토해낸 후에 얼마 안 가 그 모든 부침을 예외 없이 망각해버리는 행위의 지루한 반복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찰진 선동 한 번 없이 <경계도시2>가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지점은 송두율 너머에 있다. 망각을 사주하는 이 안온함을 뚫고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불편한 기억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광증에 가까운 이 비좁음에 대하여, 우리는 여전히 어떤 불온한 확장을 요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침묵과 망각의 카르텔을 넘어서

그러한 불온함으로, 나는 머지않은 미래 송두율이 하나의 포스트모던한 패션 아이템이 되기를 소망한다. 수갑을 차고 형무소로 향하는 그의 포토제닉한 한 순간이 반팔 티셔츠의 프린팅 베이스로 제작되어 거리의 레디컬한 청춘들에게 소비되는 모습을 그려본다. 천박한 발상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그가 그런 식으로라도 만세에 남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박제된 그가 표상하는 단 하나의 지점은, 한 사회의 한 시대를 가마솥처럼 달구었으나 이제와 누구 하나 소리 내어 다투지 않는 모든 것들에 대한 우리 모두의 원죄, 바로 ‘침묵과 망각의 카르텔’이어야 할 것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5. 21:43

세계화의 대항담론으로 로컬화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중심-주변이 곧 권력-저항과 등치관계일 수 있을까. 어쩌면 주변적 공간을 움직이는 동력이 또 다른 중심화에 대한 반동적 욕망일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문화기호학과 정치철학적 사유를 통해 중심-주변이라는 손쉬운 이분법적 도식을 탈각하고, 중심과 주변을 가로지는 불분명한 경계에서부터 사유를 구축하려는 필자의 논의를 실어보았다.



김수환(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전지구화를 배경으로 로컬의 문제를 사고할 때,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이른바 ‘전복의 딜레마’다. ‘중심’을 비판하고 ‘주변’을 재인식하려는 지향은 흔히 중심과 주변의 전위(轉位)를 꾀하려는 욕망에 의해 인도되기 쉽다. 위계의 전복이 중심과 주변을 가르는 틀 자체를 향한 근본적인 반성을 동반하지 않을 때, 이것은 끔찍한 반복만을 가져올 뿐이다. 중심-주변 모델이 빠져있는 곤궁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존의 중심을 대체(하거나 보완할) 다른 중심(혹은 바깥)을 모색하는 대신, 중심화 하는 체계 자체를 내부로부터 탈중심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중심화 하는 체계 내부에서 그것을 내파(內波)할 수 있는 탈중심화의 계기들을 발견해내고, 나아가 그것을 ‘새로운 보편성’의 자리로서 적극적으로 재사유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역사의 종말’이 점차 구체성을 띠고 정치의 소멸이 불길하게 예고되는 오늘날, ‘정치적인 것’의 재구성을 향한 다양한 모색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특징이 있다. 체계의 전체성으로부터 탈구된 존재자, 전체성의 셈과 몫으로부터 누락된 ‘비-부분’ 혹은 ‘잉여’를 향한 비상한 관심이 그것이다. 누락되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그래서 마치 유령처럼 현전하는 이 잉여는, 전체성의 언어 자체를 되묻지 않을 수 없게끔 하는 본연적 반성의 계기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전체성과 통합의 논리, 치안 police 과 국가 state

랑시에르에게 ‘치안’과 ‘정치’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치안은 사회적 신체를 잘 정의된 서로 다른 부분들로 끊임없이 분할하려는 의지를 갖는다. 그와 같은 분배란 사회의 한 ‘부분’으로 이미 인정받은 (그래서 ‘자리’를 부여받은) 사람들이 다소간 평등한 방식으로 공동체로부터 자신의 ‘몫’을 찾아가는 활동이다. 그런데 이런 ‘상징적’ 분배의 작용은 반드시 특정한 존재자들을 누락시킨다. 자신의 몫을 지니지 않기에 사회의 식별가능한 부분에 포함되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은 ‘셈해지지 않는’) 이런 잉여의 존재들(“몫 없는 자들”)은, 사회라는 구성체 내부에서 치안의 논리에 따라 자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된다.  

따라서 정치란 이 치안의 논리가 ‘없다고’ 여기는 바로 그것들을 있다고 말하는 것, 보여지지 않고 들려지지 않는 것들을 보이고 들리게끔 만드는 활동이다. 그것은 “사회의 부분들에 대한 모든 셈과 비교하여 스스로를 잉여로서 기입하는 보충적 주체들의 행위”인 것이다. 요컨대, 정치와 치안의 결정적인 차이는 이 공백과 보충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다. 만일 치안이 몫 없는 자들의 몫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면, 정치는 언제나 몫 없는 자들의 몫이라는 보충 또는 공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한편, 랑시에르가 말한 치안의 논리는 바디우에게서 ‘상태’라는 명칭을 얻는다. 상태란 그가 “상황 situation ”이라 부르는 것을 하나로 셈하는 임무를 맡은 모종의 메타구조를 말한다. 여기서 바디우는 사물들의 ‘상태’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의미에서의 ‘국가’이기도 한 ‘State’라는 용어의 애매성을 활용한다. 랑시에르에게 치안이 사회적인 것의 ‘상징적 구성’을 의미했듯이, ‘국가/상태’는 집단을 셈하는 역할을 맡은 넓은 의미에서의 ‘재현체계’를 뜻한다. 문제의 핵심은 재현체계로서의 국가가 결코 자신에게 속한 상황 전체를 재현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상황 상태로서의 국가는 언제나 어떤 구체적인 집단의 성원들을 셈으로부터 누락시키는바, 국가의 셈은 비록 상황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의해 헤아려지지는 않는, 즉 그것 속에 고유하게 포함되지 않는 “정원외적 요소 élément surnuméraire”를 반드시 내포한다. 바디우에 따르면, 혁명적 정치란 바로 이런 국가의 셈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다시 말해 “국가가 행하는 부분집합의 셈을 거부하고 그 셈에서 누락된 대중의 현실을 직접 셈하는 것”이다.

통합의 공정, 메타언어적 ‘자기기술’과 ‘예외상태’

치안이나 국가가 상징적 구성이나 재현 체계라 할 때, 결국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체계 내의 모든 부분을 하나로 셈할 수 있도록 만드는 통합 기제 자체의 본질일 것이다. 로트만에겐 ‘자기기술’이라 불리는 이 통합의 공정은 체계의 ‘메타언어’의 관점에서 번역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기호적 공간 밖으로 축출하는 배제의 메커니즘이다. 엄연히 존재하지만 재현되지는 않은 체계의 비-부분들은 (마치 유령이 된 것처럼) ‘비가시성’의 영역으로 내몰린다. 주목할 것은 이 과정이 단순한 주변화가 아니라 원칙적인 ‘비존재화’의 메커니즘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체계 바깥으로 밀려나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체계의 (문)법에 의해 ‘유기되어 있는’ 상태다. 

즉 아감벤이 지적하듯이, 체계의 잉여존재(“호모 사케르”)는 그저 체계 바깥으로 외재화 되지 않는다. 그것은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바깥에 놓이며, 바깥으로 밀려나 있으면서 동시에 안에 붙들려 있다(“포함적 배제”). 체계의 잉여존재는 그것을 배제하고자 하는 정치적 공간의 ‘경계선상’(안도 밖도 아닌 곳)에 제거 불가능한 어떤 것으로서 항존 하고 있다. 따라서 체계의 메타구조가 누락시키고 있는 이런 자리들, 상황에서 빠져있지만 여전히 그에 속해있는 이 존재들이야말로 해방의 정치학이 기반해야 할 잠재력의 처소, 뛰어야 할 ‘로두스 섬’인 셈이다.
 
탈정체화,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모두의 것’으로

따라서 관건은 정치적 통합의 잔여들, 체계의 식별불가능한 이 잉여들을 어떻게 해방의 정치학을 위한 (잠재적) 작인으로서 새롭게 사유할 수 있을 것인지에 달려있다. 그리고 ‘무엇이 이들을 정치적 주체로 만드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우리는 단연 그들이 “지배질서에 따라 정해지는 자리와 정체성의 분배에서 단절하기를 명시”하기 때문이라고 답해야 한다. 기존질서에 자신들을 편입시키는 정체성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함으로써만, 즉 정치적 장 속에서 모든 인식가능한(적법한) 재현의 형식들로부터 스스로를 “탈정체화”함으로써만 그들은 정치적 주체화의 과정에 진입한다. 

무언가를 박탈당한 존재는 정치적 특성이 없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 정치적 ‘우리’가 정체성의 ‘꽉 참’이 아니라 ‘텅 빔’으로 옮겨가는 이 지점이 잉여의 존재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넘어(혹은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전체인 것’으로 나아가게 되는 순간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모두의 것’을 창안하는 잠재력을 보고자 하는 랑시에르의 생각은 그래서 모든 차이들을 횡단하는 새로운 ‘보편성’을 정초하려는 바디우의 기획과도 맞닿는다. 

나아가 랑시에르가 “사이의 공간 in-between”이라 부른, 그리고 바디우가 “공백의 가장자리”라 부른 사건적 존재들의 자리는, 또한 로트만이 학문적 삶의 후반기에 깊게 천착했던 ‘경계’의 문제에 직결된다. 경계란 명확하게 식별되는 단일한 선분이 아니라 다층위적인 복잡한 공간, 일종의 ‘이중 언어 지대’로서 나타난다. 이 경계는 언제나 변경을 맞댄 두 문화, 인접한 두 기호계 모두에 속하기에 본질상 “복수 언어적”이다. 이 주변적 사이-지대(경계)에서 가동되는 것은 메타적 구조를 통한 완벽한 번역(가능성)이 아니라 “번역불가능성의 상황에서의 번역”이다. 힘겹고 부정확한 번역을 창출하는 이 과정은 반드시 번역되지 않는 여분의 잔여를 전제하게 되며, 바로 이 여분, 번역되지 않는 잔여가 새로운 (부적당하지만 똑같이 정당한) 번역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현대 정치철학과 문화기호학 이론에서 잉여의 자리는 유기적 전체성이라는 관념을 내부에서 흩어놓는 내적 계기이자 전체성의 언어 자체를 근본적으로 되묻게 하는 물음의 장소로서 나타난다. 기존의 재현체계로는 명명(식별)불가능한 ‘잉여’의 자리들과 적극적으로 관계하며, 그 자신이 공백과 보충이 되어 그것을 낳은 세계질서 자체의 논리를 드러내는 일, 바로 이것이 로컬을 향한 지향 localitology 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로컬이 자신의 잉여성, 그 내재적 예외성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의식할 때, 비로소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모두의 것’으로 열리는 진정한 ‘공통의 무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5. 21:40

근대 인클로저 운동 이후, 인간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던 공간은 자본이란 초월적 교환체제에 의해 독점적 소유의 공간으로 전락하였다. 이에 공간과 묶여있던 공동체의 기억 또한 점차 희미해지고, 그 빈자리는 오직 숨가쁘게 순환하는 자본만이 간헐적으로 머물다가 떠날 뿐이다. 삶을 성찰케 해야 할 예술조차 일종의 스펙터클로서 자본 순환의 윤활유로 기능하는 시대, 과연 예술이 어떤 실천적 여백을 구축할 수 있을지 예술가이자 활동가인 필자의 생각을 청해보았다.

김강(미술가, 예술과 도시사회연구소 연구원)

그들은 나를 그들의 것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나를 통제했다.
그러나 누구나 다 머물렀다가, 떠났다.
어찌 내가 그들의 것이 될 수 있으랴,
그들이 나를 껴안지 못해,
내가 그들을 껴안고 있는데...

- 「Hamatreya」, Ralph Waldo Emerson

거대한 전시장, 서울

감히 얘기하건데 최근, 최고의 예술은 ‘서울시’ 자체가 아닌가 싶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서울시의 풍경은 미술관이나 갤러리 방문을 통해 새로운 미감을 얻고자 하는 관객들의 발걸음을 필요 없게 만든다. 버스에 올라 서울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에서 얻고자 하는 미적체험이 이미 서울을 ‘보는’ 동안 체득된다. 미술관에 가서야 관람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비디오 작품이나 설치작품들이 대형 건물의 외관을 장식하고 있으며, 서울시의 어디를 가더라도 쉽게 ‘아티스틱한’ 공공예술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서울시 그 자체가 최고의 예술작품으로 변화하기 위해 다이내믹해 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이내믹함은 대형 전광판이나 건물외벽을 예술작품으로 채워가는 것에서 하나의 블록 전체를 예술작품으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진화하고 있다.

창의도시, 컬처노믹스, 도시디자인 등 다양한 구호를 외치며, 서울시는 서울의 여러 경관들을 바꾸어가고 있다. 복원된 청계천은 마치 도시의 거대한 어항처럼 보인다. 도시화가 한창이던 시절, 서울로 이주와 저임금의 도시노동자가 되거나 날품팔이를 하던 사람들이 판잣집을 짓고 살던 곳이 청계천이었다. 하지만 곧 판잣집은 철거되고 개천이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덮이며 근대화의 상징인 삼일고가도로가 생겨났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 이런 풍경은 재차 비문화적인 것, 즉 ‘사라져야 할’ 경관이 되었다. 경제지상주의적/박정희적 발전 모델에서 21세기형 문화 도시적 삶으로의 진입을 알리듯, 삼일고가도로가 철거되고 청계천의 물줄기는 다시 우리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청계천변의 삶은 청계천 8 가 서울문화재단 맞은편에서 현대미술작품의 조형물처럼 ‘전시’되어 그 시절의 삶을 ‘관람’케 한다. 

그러나 이 전시물들의 관람에서 반 보 물러나 잠시 생각에 잠겨볼 필요가 있다. 서울의 경관 어디에나 서울사람들의 일상적 삶과 문화, 그리고 세세한 기억이 서려있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현재의 문화도시정책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서울 공간의 변화가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며 역사를 현재화하는 시민들에게 일종의 무력감을 주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억과 사연이 있는 공간이 하루아침에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 광경을 목도하면서 우리는 우리들 존재자체도 부정되거나, 사라지거나, 혹은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아니, 이것이 단지 예감으로서의 불안감이 아니라 현실일 수 있음을 우리는 뉴타운 개발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미 기 드보르 Guy Debord 가 지적한 스펙터클사회로의 진입이 국가기구를 통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서울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서울시의 문화도시정책은 문화와 예술을 21세기형 개발의 도구로 전유하고 착취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은 시각적 경관을 스펙터클하게 바꾸어 가면서 우리의 삶을 강제적으로 통합시키고 있는데, 이는 ‘도시경쟁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서울시 행정의 대표적인 발현이다. 개발논리에 포섭되어 그 도구로 전락한 문화와 예술은 공공의 시선 안에서 또다시 ‘규격화’ 된다.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이하며 삶을 성찰케 하는 예술의 기능이 ‘규격’ 안에서 이것과 저것을 가르며 삶을 피폐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시가 호명하는 ‘예술’은 정치의 노예로서의 ‘예술’일 뿐이다. 정치의 노예로서의 예술이 마치 현 시대의 예술인 것처럼 포장되어 질 때, 인간의 창의력은 식민화되어 스펙터클사회의 가속을 촉진한다. 그러나 예술은 정치의 노예일수가 없다. 오히려 예술은 사회를 성찰하고 다른 방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상력의 힘과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존재들로부터 발현되어야 한다.

스펙터클에서 벗어나기

“스펙터클 사회를 효과적으로 파괴하는 데 요망되는 것은 실천적 힘을 작동시키는 인간들이다.” 라고 기 드보르가 지적하듯, 결국 스펙터클 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실천적인 인간에게서 나온다. 자신의 삶을 직접 경험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는 스펙터클을 넘어서려는 인간의 원초적인 반응이다. 비록 우리의 삶이 스펙터클의 축적물인 시각적 이미지들의 범람과 피상적인 관계들에 둘러싸여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실천적인 인식은 그것을 넘어서려는 행동을 만들어낸다.

“아트 크로쉬 Art Cloche 는 파리시에의 삶을 재창조할 것이다. 파리시는 이미 죽었으며, 예술적 측면에서 보자면 더욱 죽은 도시이다. 파리에는 그저 매스 미디어와 광고만 있을 뿐이다. 아트 크로쉬는 살아있는 공동체, 그것만을 위해 ‘스쾃’이라 부르는 공간을 선택한다.”라고 주장하며 도시의 빈 건물을 점거하고, 새로운 삶과 예술의 공동체를 꾸렸던 예술가들이 80년대에 프랑스 파리에 등장했다. 또한 2000년대에는 ‘사막과도 같은 도시의 빈 공간을 사용하여 오아시스를 만들자’라는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서울에 등장했다. 즉 도시의 무의식과도 같은 ‘빈 공간’에 주목하여 그 ‘빈 공간’을 다른 형태의 삶과 예술이 실험되는 곳으로 만들어 가는 예술가들이 등장한 것이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예술가들을 ‘스쾃티스트 squatist ’ 라 한다. 이들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소유를 통해 부가 축적되고 권력이 행사되는 현상에 전면적으로 저항하여, 공간을 탈영토화 하는 것을 목표로 빈 건물을 점거하였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적소유권 강화에 대한 예술적 저항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예술가들은 점거된 빈 공간을 자신들의 내밀한 창작공간으로 삼아 교류와 소통의 공간으로 변화시켰으며, 엘리트주의적 예술관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독점의 공간이 아닌 나눔과 상생의 공간으로 영토를 변화시켜가는 그들의 활동은 폐쇄적인 고급 이데올로기로서의 예술이 아닌 삶과 통합되어 하나의 미래적 대안을 제시하는 예술을 지향한다.

그리고 이러한 스쾃티스트들이 만들어 가는 공간이 ‘스쾃 squat ’ 이다. “스쾃은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종류의 ‘공간’에 관계한다. 토지, 건물, 빈터, 주거지, 창작실 등의 재배치를 통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 가는 스쾃은 소유권의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 함께 꾸는 꿈을 제시한다. 그러하기에, 함께 꾸는 꿈이 직접 행동을 통해 사회적 실천으로 나아갈 때, 스쾃은 단지 물리적 ‘공간’에만 관계하는 것은 아니게 된다. 규격화된 삶이 ‘상품’으로 등장하는 시대에, 스쾃은 규격의 틀을 흔들리게 하며, 위엄 있는 삶의 태도를 회복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빈민, 여성, 가족, 인종, 노동, 생태, 자율, 이주노동, 노숙인, 예술, 문화 등 모든 종류의 운동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는 것 또한 스쾃이다. 안주하지 않는 삶, 움직이는 삶, 인간전형을 끊임없이 재창조하는 것, 저항의 양식을 새로이 창안하는 것, 예술가의 정체성을 언제나 재구성하는 것 모두가 스쾃에 포함된다.”



소유권에서 사용권으로, 소비에서 나눔으로

현대 도시에선 공간소유의 유/무로부터 불평등과 권력구조가 창출된다. 정부기관 역시도 공간을 자신들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독선적 소유주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공간은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통체 commonwealth ’ 다. 따라서 이 공통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에 관한 권리를 구체적으로 주장하고 행동하여야 한다. 이에 도시의 빈 공간을 다른 형태의 삶과 예술을 위해 사용하길 원하는 스쾃티스트의 등장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이유를 갖게 된다. 우리는 공간을 소유할 수 없다. 몇몇 일부가 그 공간을 소유할 수 있다고 여기더라도 공간은 소유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공간에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공간에 대한 적극적인 자기 발언과 자기 의지의 관철은 ‘소유’의 문제를 떠나 ‘나눔’과 ‘상생’, 대안적 삶의 형태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도시 공간은 우리 모두의 것이자, 우리는 그 공간에 대한 소유의 권리가 아니라 사용의 권리를 공유한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1. 20:37

비정규교수의 제도적 지위와 생계 문제는 교수 사회의 고착화된 계급질서와 사회 곳곳에 번져있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질서에 기인한다. 비정규교수처우 문제 등 대학 내 민주화 요구를 가로막는 관료화된 교수 사회의 구조, 그리고‘신분의 벽’(교원 자격)을 경계로 한 침묵의 카르텔 현상에 대한 필자의 비판을 새겨듣고자 한다.

홍영경 (성공회대 비정규교수노조 분회장)



“강사 못 구해 폐강 속출”

이는 2009년 9월 14일자 교수신문 일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이번 학기에 많은 대학의 강좌가 수강신청 인원 미달이 아닌 담당교수의‘정리’ 취소된 사연을 취재한 기사다. 기사는 2학기 강의에 배정되었다가 수강신청이 모두 끝난 상태에서 느닷없이 ‘짤린’ 강사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것도 인사 담당부서의 형식요건을 갖춘 해고 통보를 받은 게 아니라 한 다리 건너, 즉 학과 사무실(조교)과 지도 교수에게 들었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보도한다. 그 ‘단칼배기’ 는 강사를 교육자로도 노동자로도 인정하지 않고 학생들의 학습권마저도 배려하지 않는 대학의 독단만이 있다. 그런 비교육적 처사가 우리나라 대학 여지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르칠 적격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어제까지 강의를 하던, 학생들에겐‘교수’소리를 듣게 하던 멀쩡한 교육자를 단지 박사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내쳐 교과과정 운영에 차질을 빚은 이 사태는, 다들 잘 알다시피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을 교육현장에 꿰맞추며 일으킨 유감스런 교육 파행이다.

조용한 해고, 조용한 대학가

2학기 개강을 전후해 일어난 혼란은 대체로 소리 없이 진행되어 노조가 있는 소수 대학을 제외하면 대학가는 조용하다. 단지 언론을 통해 보도가 조금 됐을 뿐, 캠퍼스는 아무 일 없는 듯 일상이 오간다. 이번 사태는, 법조문에 따르면 2년간 강의한 비박사 강사들을 무기 계약으로 전환시켜야 하는데 대학에는 씨도 안 먹힐 요구라 대량 해고 사태로 번진 것이다. 강사의 고용 유연성은 그야말로 ‘말랑말랑’ 이런 식의 해고가 다반사로 일어난다. 어떻게 최고교육기관에서 그렇게‘배움이 높은’사람들을 손쉽게 정리할 수 있고 또 대량해고가 발생해도 별일 없이 지나가는가?

일반 사업장 같으면 파업이나 농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 사안이건만, 해고 당사자들은 왜 입조차 열지 않는가? 이 기이한 현상은 강사의 고용이보통 전임교수의 추천과 단기채용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데서 비롯된다. 교수임용 절차를 거쳐 정규직에 채용된 전임강사 이상의 교수는 교원에 대한예우로 철저한 신분보장을 받으며 교육과 연구에 자율권을 갖는다. 반면 강사는 그들과 똑같은 교육을 담당하지만 신분이 법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강의할 수 있는 자격을 보통 전임들의 천거로 얻는다. (강사 수급에 어려움이 있는 대학들은‘공채’ 하기도 하나 신분이나 조건이 별다르지 않다.) 대학 수가 많지 않던 초기 시절엔 강사직이 교수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교원의 신분이었다. 도제 관계의 의미가 퇴색한 지금도 자체 대학원이 있는 큰 대학의 강사는 전임과 사제의 관계에서 출발할 확률이 높다. 특히 지도교수의 영향력으로 모교나 타교에서 강의를 시작하는게 보통이다보니 한 노동자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지도교수나 추천 교수에게 누가 될까봐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이 드물다. 다른 대학에 출강하려 해도 비슷한 임용과정을 거치기에 몸을 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이 현재 벌어진 해고대란에 대한 실직 당사자들의 자괴감만 있을 뿐 대학이 무풍지대인 이유이기도 하다. 강사에게 법에 따른‘품격 있는’해고 절차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비정규 교수의 벌거벗은 위상

주로 비공식 절차를 거쳐 교육활동을 하는 강사들, 그들의 현재 위상은 어떤 것일까? 대부분의 대학에서 강사는 교육의 절반가량을 맡고 있고 강의 시수는 보통 교수보다 적어 각 대학의 강사 수는 교수의 수를 넘어선다. 이런 풍토를 가능하게 하는 건 고등교육법 상에서 교육 또는 연구를 맡길 수 있는 자를 “교육과정의 운영상 필요한자”로 규정한 애매모호한 시간강사 조항 때문이다. 대학들은 이를 십분 활용해 강사를 아주 요긴하게 써 먹는다. 교과부의 묵인 아래 보통 전임교수의 충원을 50~60%대로 낮추고 그 부족에서 생기는 일반교과과정의 큰 공백을 대체로 시간강사에게 떠맡기며 (겸임, 초빙 등의 비전임도 둘 수 있으나 그 수가 많지는 않다) 학사를 편법으로 운영하고 있다. 2005년도 교육통계를 보면 4년제 대학의 경우 전임교원 확보율이 약 60%로 전임교원(49,200명) 대 시간강사(58,315명) 비율이 44.8 : 55.2였다 (강사에 대한 통계는 어림수기 때문에 별로 믿을 건 못 된다).

2009년 통계가 아직 나오지 않은 지금, 2008년도 통계에는 전임이 54,329명으로 3년에 걸쳐 5천여 명 증가했고 강사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통계마저도 제공하지 않으니 수가 얼마인지 알 수 없으나, 학부생이 한 8만여 명 증가한 것에 비추어 보면 교수 대 강사 비율에 별다른 개선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고등교육의 큰 부분을 담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은 교육통계처럼 주무부서인 교과부는 태만하다 할 만큼 늘 강사문제를 방치해왔다. 그 틈을 타 교수 임용의 문을 좁혀 강사에게 대학 교육의 중책을 맡긴 상황이 수십 년 지속되면서 흔히 ‘전업 시간강사’ 라 불리는 대학강사는 대학교육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굳은 지 오래다. 이제 많은 강사의 교육과 연구 능력은 교수와 별반 차이가 없고 그 규모로 보더라도 하나의 전문 직업군이다.

강사가 도제가 아닌 독자 연구 능력을 갖춘 학자로 그 위상이 변모했어도 전임교수의 권력을 중심으로 한 대학의 철옹성 구조는 여전하다. 그동안 대학들은 자의적으로 대우교수, 강의전담교수 등의 자리를 만들었고 대우를 좀 더 격상한 비정년(Non-Tenure Track)교수직까지 두기도 했지만 이들은 전임 확보율을 올리기 위한 소수의 ‘무늬만 교수’들이었다. 비전임의 태반은 강사이며 이들에게는 법에 근거도 없는 시간당 보수 지급을 철칙으로 하고 전임 교수에게 그 인력 조달을 계속 일임하고 있다. 강사 임면권이 형식으로는 총장에게 있으나 실제는 전임 교수가 쥐고 있다(이번과 같이 법 시행과 관련된 인사 문제에서는 대학본부가 중심이 된다. 학과의 자율 결정이라고 잡아떼는 대학도 있지만). 공채 방식으로 임용되어도 단기채용에 시간급 대우는 똑같고 기간이 차면 알아서 나가는 것이 다를 뿐이다. 주로 인맥으로 연결된 체제를 유지하는 이유는 사회보험이나 퇴직금 등의 부대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 낮은 임금으로 고급인력을 대규모로 쓸 수 있는 데다 그들의 교권이나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아도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부대비용이라야 얼마 안 되는 산재 보험료와 고용보험료인데 이마저 거부하는 대학도 많다). 공채가 허울인 것은 바로 이런 관행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교과 개설이나 학과 회의 등에 열외인 강사는 처분을 기다리며,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신자유주의와 교수사회의 승자독식주의

법에 버림받고 주무부서가 돌보지 않는 강사에게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대학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고 고용 안정을 꾀할 리 없다. 강사를 대등한 학자요 교육자로 보지 않는 대부분 교수들 또한 자신들의‘파이’가 줄어들까 하여 강사들의 여건 개선에 나서지 않는다. 어느 보직 교수처럼 강사에 대해서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 이라는 배타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시각은 바로 자신의 얼굴에 침 뱉기인 줄은 모른다. 대학 수강 신청 안내 책자에 보면 담당 교수란에 전임교수와 강사는 동등한 자격으로 이름이 올라 있고 강의평가도 같은 기준으로 받는다. 그것은 강사와 교수의 강의에 질 차이가 없음을 전제한다. 그러면서 검증 운운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결국 강사를 싸구려 시간급으로 대학 정규교육의 절반에 상시 쓰고 있는 대학은 학생들에게 사기치고 있거나 노동 착취를 하는, 두 가지 불의 중 하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교수임용의 문을 좁혀 강사에게 대학 교육의 중책을 맡기면서 고용이 불안정한 일용직에 놓고 교육자로도 연구자로도 대우하지 않는 이 부당행위는 대학교육 및 학문 발전을 가로막는 작태다. 승자 독식 체제에서는 다양하고 좋은 연구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 수많은 패자는 그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정해진 서열에 목소리가 잠겨 버리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환경 속에서 강사는 언제라도 그 알량한 지위마저 잃을 수 있는데다, 처우가 기본 생활마저 위협할 수준이라 이대학 저대학을 돌며 적정시간을 훨씬 초과하는 강의를 해야 하니 학자로서의 연구능력 또한 소진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그리고 이는 대학교육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강사들이 처한 열악한 여건은 우수한 학생들이 국내 대학원 진학을 꺼리게 하는 한 요인이 된다. 활발한 학문 논쟁보다는 사제지간의 질서가 우선하는 국내 대학에 뛰어난 학자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학은 소수의 능력자로는 발전할 수 없다. 다양한‘끼’가 발산되도록 수평의 문을 넓혀 자극을 할 필요가 있다.

오직 교원 자격 부여만이 해답

이번 비정규직법에 따른 파동을 보며 우리 대학이 성숙하려면 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현장에 혼란이 올걸 뻔히 알면서도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고 자리만 차고앉은 무능한 교과부에는 말도 아깝다.) 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비박사를 가지쳐내며, 이를 교육의 질 향상으로 둔갑시킨다. 박사학위가 없어도 그 분야의 실력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강사의 교육 경력 등은 자원으로보지 않는 외눈박이 대학이 강사들을 박사 강사로 다 교체한들 그들의 여건을 개선할 노력을 할 리 만무하다. 법을 유리하게만 이용하는 대학 입장에서는 박사를 쓰는 것이 비정규직 운영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강사는 몇 년 쓰면 ‘갈아야 한다’ 발상을 하는 대학이 전공자가 버젓이 있는 과목을 폐강하며 외치는 교육의 질은 별로 기대할 게 없다. 진정 교육의 질을 높이고자 한다면 강사를 교원으로 들이는 일이 최우선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1. 20:28


캔디.D (서강대학원 석사과정)



변함없이 잔존하는 성폭력적 요소들, 여성 대학원생으로서 겪는 불편함들, 남성 위주의 행정과 시스템들 등 남성 편향적 질서는 대학원 공간 내에 여전히 뿌리 깊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현실들을 살펴보고 이들을 성정치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독해해보고자 한다.

대학원과 성정치를 이야기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처음에 든 생각은 ‘대학원은 성(性)적으로 폐쇄적인 곳이고, 그 안에서는 아무 이야기도 못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니 대강 그런 이야기를 쓰면 되는 거 아니겠어?’였다. 그런데 과연 대학원이 ‘폐쇄적이고 아무 이야기도 못하는 곳’이라는 한 문장으로 표현 가능한 곳일까? 최상위층 학문기관이라는 정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곳이 대학원이라는 공간 아닌가. 대학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을가지고 생각해보자. 
 
대학원 현실의 단면들

상황1. 대학원 4학기생인 A. 논문을 지도받기 위해 교수님과 매일같이 상담을 하고 지도를 받는다. 그러다보니 교수님과의 친분은 쌓여가는 것이 당연한 일. 어느 날 교수님이 밤늦은 시간에 A를 불러 술이나 한잔 하면서 논문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약간 불안하기도 했지만, 지도교수의 말을 거절할 수는 없는 일. 찾아간 술자리에서 교수님은 ‘논문을 위해서’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한다. 제안을 거절한 A. 다음날부터 교수님은 A에게 논문을 쓸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서 계속 논문을 돌려보내기 시작했다.

상황2. B는 대학원생 모두와 교수님이 함께 하는 자리에서 교수님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이런 일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B양은 학교에 고발을 했고, 교수님은 징계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 후 B가 논문을 쓸 시기가 되자 어떤 교수님도 B양의 지도교수를 해주지 않으려했고, B는 결국 논문을 쓰지 못하게 된다.

상황3. C는 동성애자이다. 정체성과 무관하게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대학원에 입학했고 어느 누구에게도 커밍아웃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 학과내의 어떤 사람이 C가 동성애자임을 알게 되고, 주위사람들에게 그를 아웃팅 시키는 일이 벌어진다. 그 후 C는 학과 사람들과 동석하는 자리가 있을 때 마다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과 수군거림에 괴로워하고 있다.

상황4. D는 트랜스젠더이다. 스스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대학원 생활은 쉽지가 않다. 교수님들은 ‘남’학생과 ‘여’학생을 나눠가며 이야기하고, 그때마다 자신을 설명하는 D에게 불편한 시선을 보낸다. D는 학문을 공부하는데 왜 성별이 그렇게 중요한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실 이 모든 상황은 대학원뿐만이 아닌 어떠한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일이 대학원이라는 공간과 맞물렸을 때 학문을 지속할 수 있을지의 여부가 권력관계와 연계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고 공부를 계속하는 것은 학부와는 다르게 자신의 ‘현실적인 미래’와도 직결되는 것이다. A와 B의 경우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논문에 타격을 받게 되며, C와 D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에 시달리며 이후 학문의 지속에 고민을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있고,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보다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 아닐까?

이런 대학원에서 과연 성정치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가장 개인적이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말처럼 개인의 정체성, 연애, 다양한 종류의 인간관계들은 이 공간 안에서 다양한 의미로 거듭난다. 그리고 권력과 맞물리면서 다시 한 번 정치적인 의제로 떠오르게 된다.

개인적인 삶에서 정치적 의제로

나는 여성(female/woman)이며 바이섹슈얼(양성애자)이고 트랜스젠더인권운동을 하고 (있으며) 여성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페미니스트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어느 누가 나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자며 다가올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내가 만약 여성학이 아닌 다른 학문을 공부했다면, 그리고 학과의 다른 대학원생들이나 교수님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그들은 나를 긍정해 줄 것인가? 아니, 긍정을 떠나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까?

대학원 내의 성정치에 대한 생각은 나를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일에서 시작이 된다.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처음 생각했던 것은 “대학원은 학문을 하는 곳일 뿐 아니라 그러한 학문의 다양성만큼 다양한 사람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들과 열린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기대감이었다. 4학기동안 그런 기대감이 충족되었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당연히 ‘No’이다. 다들 각자의 학문에만 몰입하고 있었고 공부 이외의 다른 분야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차이’를 이해는 하지만 그 이상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각자의 공간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듯 보이는 학자들의 모습은 당황스러웠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학문이 학문을 위한 학문으로 남는 이상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고, 그러한 학문을 공부하는 이들이 바꿔나갈 세상은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불안감도 동시에 일기 시작했다. 또한 뭔가 좀 더 소통하고 싶고 이야기 하고 싶다는 욕심과 동시에, 그러한 나의 욕심이 나의 학업에 미칠 영향도 함께 고민이 됐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했을 때 들어줄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이며 들어주는 사람들이 과연 나와 함께 고민할 것인가, ‘차이’있는 생각을 가진 개인을 ‘차별’하지 않을 것인가 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되더란 말이다. 

도대체 성정치가 뭐라고 끊임없이 떠들어야 하는 것인가를 묻는다면, 세상엔 나와 같은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학문을 공부하든지 간에 당신은 학문을 시작함과 동시에 그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맥락을 이해하고 고민하지 않는 이상 당신의 삶 또한 이해받지 못 할 수 있으며, 학문을 위한 학문에 머무르게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당신 또한 당신이 불편하게 생각하던 그러한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을 어느 날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차이에 대한 긍정, 단순한 정답의 실천

나를 발견하는 일, 그리고 차이를 긍정하는 일에서 성정치는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대학원이라는 공간에서의 성정치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학문과 권력의 정치로 가득 차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어떠한 성정치를 이야기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떠한 태도로 그것들을 마주해야 할 것인가. 처음에 이야기한 몇 사례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보자.

저들의 사건과 고민의 해답은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저런 사건들에 대해서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어떤 이들이 ‘치기어린, 악에 받친, 혹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행동’ 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우리가 새롭게 바라봐야 하는 정답일지도 모른다.

이런 단순하고 간단한 정답이 있음을 알고 있다면 그 정답을 향해 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누군가는 이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볼지도 모르지만, 그 불편한 시선이 지지와 동참으로 바뀔 때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대학원 안에서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위치에 대한 고민의 시작일 것이고 또한 대학원에서의 성정치의 시작이 될 것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1. 20:23

 

대학원과 시장 권력이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만나는지 그리고 그 만남은 어떤 현실 정치적 지형을 만들어내는지 살펴본다. 시장권력에 포섭되어 가는(혹은 이미 포섭된) 대학원 사회와 이를 인준하는 교수들과 학진, 그리고 여기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대학원생들의 현실에 대해 고민해보고, 덧붙여 절대자본주의 체제라는 압도적인 현실 아래서 어떤 저항과 성찰이 가능한지 나아가 대학원이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 함께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명원(문학평론가)



1. 1945년 이후의 대학

오늘과 같은 대학의 시장화를 장기지속적인 구조적 국면에서 진단한 것은 월러스틴이다. 그는 1945년부터 2000년까지를 분절한 후 다음과 같은 7단계의 변화를 지적하고 있다.

1) 1945년 이후 일어난 가장 중요한 일은 적어도 25년에서 30년 동안 지속된 세계경제의 놀라운 확산이다. 서구 지역에 한정됐던 대학이 이 기간 동안 비서구 지역에서 놀랄 만큼 팽창했다.

2) 대학의 수적인 팽창은 교수, 학생, 그리고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의 수적인 증가를 동반했다. 그 결과 대학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민주화됐지만, 지구적인 차원에서의 대학의 서열화 역시 구조화되었다.

3) 대학의 확산은 냉전과 세계적인 기술의 확산과도 일치하고 있다. 엄청난 돈이 대학의 과학기술 부문으로 흘러갔으며, 이에 부흥해 인문학 역시 정부와 기업이 제공할 수 있는 재원을 얻기 위해 점점 더 과학적인 색채를 띠려고 노력했다.

4) 서구에서는 1968년 혁명기에 대학의 지배구조에 대한 논란이 확산됐다. 대학행정가, 학생, 교수들에 대한 질문과 함께, 과학에 대한 관점의 모든 전제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다양한 지식운동이 수립됐다.

5) 그러나 1968년 이후 세계경제는 실질소득 및 실질이윤의 하강에 따른 불황기에 직면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팽창을 거듭한 대학은 1970년에서 2000년 사이에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했다.

6) 이를 위해 대학의 민영화가 상당히 증대했고 심지어는 상업화도 증대했다. 예산감축은 “교원들을 부수어버렸다.” 학생구성원의 민주화가 종말을 맞이하게 되자 결국 교원의 민주화 역시 종말을 맞이했다.

7) 마지막으로 대학의‘고등학교화’가 구조화됐고, 대학에 대한 국가와 시장 부문의 개입이 노골화됐다. 정치적으로 세계체제의 제도로서 대학이 갖는 중요성은 감소하게 됐다.

월러스틴의 이러한 진단은 한국의 대학제도의 변화에 있어서도 큰 틀에서 유력한 참조점이 될 듯싶다. 식민지기의 경성제국대학을 제외하고 전문학교 체제로 유지되었던 한국의 고등교육은, 해방 직후 경성제대가 서울대학교로 바뀌고 고려대와 연희대(연세대의 전신), 이화여대 등이 1946년을 전후한 시기에 학부와 대학원 교육을 시작한 이래 오늘과 같이 팽창되었다.

한국의 대학은 유럽식의 아카데미시즘보다는 미국식의 국가주의와 시장주의의 흐름에 일찍부터 포섭되어 갔다. 1960년대의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한국의 대학은 위로부터의 산업화 논리를 제공하기 위한 미국식 근대화 이론의 수입 및 적용에 힘썼고, 관제화된 사회과학 및 산업부문에 즉각 적용가능한 공학교육의 육성에 진력했다.
 
2차대전 이후의 미국대학이 냉전을 위한 연구에 대거 골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학역시 군사독재 기간 동안 진행했던 교육과 연구의 많은 부문이 일종의 정책연구의 성격을 띠었고, 국가주의와 결합한 근대화 논리를 체계화하는 데 골몰했다. 한국의 초기교육학은 미국의 피바디 대학출신이, 경제학은 시카고학파가 장악한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일이며, 국가주의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한 국민윤리교육이 철학에서 분리되어 확장되었고, 문학연구는 고전교육에서 충효이데올로기를 강조하고 현대문학 연구에서는 순수문학이 강조되며, 인문사회과학의 방법론 모두가 실증주의를 강조하는 흐름으로 전개되었던 것은 이런 까닭이었다.

유럽에서의 68년을 전후한 시기가 대학의 지배구조와 지식생산에서의 반체제적 혁신이 가해지던 시점이라면, 한국에서는 그것이 1980년대를 거치면서 유사한 흐름이 전개되었다. 대학에서의 민중∙민족적 관점에서의 진보적 학문에의 모색과 함께, 학단협과 민교협 등의 진보적교수∙연구자들의 직능단체가 구성되었고, 대학에서의 학생자치조직인 총학생회가 출범하였으며, 사회민주화와 연동된 대학 민주화의 거센 요구가 교육과정 개편으로부
터 대학의 지배구조, 총장 직선제, 지식생산의 진보적 방법론의 모색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199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대학은 세계화의 거센 물결 속으로 휠쓸려 들어가게 되는데, 사실 이 시기가 대학이 국가권력의 헤게모니적 통치에 무력화되는 한편, 시장권력의 노골화된 압박에 굴복하게 되는 분기점을 이루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2.‘아는 것이 돈이다’는 구호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구호가 학문지형의 변화에 있어서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이끈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를 기점으로 민주화 이후 일시적으로 확보되었던 대학의 민주화와 자율적 지식생산의 모델이 난관에 봉착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한 일이다. 당시에 지식인들은 세계화의 구호를 막연하게 받아들였지만, 이후 그것이 모든 것을 경제영역으로 빨아들이는 극단적인 자유기업 자본주의를 은폐하기 위한 수사였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상황이 이미 늦었던 감이 없지 않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이른바 5.31 교육개혁을 발표하면서, 고등교육 부부에서의 경쟁력 강화와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천명하고 나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것은 교육의 시장화를 초래했을 뿐이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대학설립 요건이 최소화됨으로써, 고등교육 이수자의 과잉공급 및 부실사학이 양적으로 증대되는 문제를 낳게 된다. 동시에 대학 모집단위에서의 학부제의 실시는 비인기학과의 자연도태 및 구조조정에 따른 인문사회과학의 부실화를 초래했고, 학생들에게는 무한경쟁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이시기를 기점으로 서열화된 대학평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다채로운 평가·심의장치들이 고안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학술진흥재단이 그간 대학자율로 평가되던 학술지 관리규정 및 교수업적 평가기준을 일괄 설정하고, 이에 따른 학교 간 평가를 토대로 대학에 대한 차별적인 예산지원을 감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대학의 자율적 연구시스템을 무력화한 제도관리시스템의 구축이 그것이다. 

이것이 김대중 정부에 이르러서는 BK(BRAIN KOREA)21이라는 거액의 국책연구비를 당근과 채찍으로 한 연구비 수주경쟁을 가열시키게 되며, 이후 신지식인 개념의 창안을 통한 지식경제의 제창과 함께, 학문과 돈을 직접적으로 연계시키면서 그것을 국가경쟁력이라는 개념으로 통합시키는 교육정책을 구조화하는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교육정책은 노무현 정부를 거쳐 현 이명박 정부에서는 더욱 공세적으로 강화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기존의 과학재단과 학술진흥재단을 통합하여 '한국연구재단'을 설립하고, 확대된 재원을 통해서 '저탄소 녹생성장'과 관련된 노골화된 정책지식의 생산을 연구비 수주를 명목으로 강제하는 등의 양상이 그것이다. 

이러한 학문정책의 변화는 대학의 성격을 나쁜 방식으로, 그것도 매우 급진적으로 변화시켰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대학의 민주화 및 진보적 지식생산의 자율적 인프라가 확대되던 경향은 일종의 반동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항상 위기를 먹고사는 경제적 불안정성의 확대는 대학생들에게 무한경쟁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여, 그 바깥의 사회적 현실에 대한 의식적인 망각과 주변화를 초래했고, 교수와 연구자들 역시 임박한 연구업적 및 연구비 수주의 압박에 무한 노출되어, 지식인 특유의 사회적 개입과 실천의 공간은 희박해졌다. 오늘의 대학은 과거라면 결코 용인할 수 없었던 대학공간의 상업화 및 대학문화의 시장화를 오히려 반기고 있는 실정이며, 대학의 재단이사회를 장악한 기업계 인사들은 대학도 교육기업에 불과할 뿐이라며 무소불위의 자본과 권력을 활용해 대학을 직업학교로 변질시키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런 상황을 오히려 반기고 있는 대학구성원들의 기묘한 노예근성이다.

3. 한국 대학원의 과거와 오늘

지금까지는 자못 구조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한국의 대학사회를 진단해왔지만, 이제는 다소 미시적인 관점이 있기는 하나, 필자 자신이 대학원사회를 경험해오면서 실감했던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경험적인 생각들을 피력해 보도록 하겠다. 경험이란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지만, 객관적 상황이 삼투된 주관이라는 것을 고려해 보면 일방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대학원교육은 1947년에 서울대학교에 대학원이 설립된 것이 효시이다. 1949년에는 고려대학교에, 1950년에는 연희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 대학원이 개설되었다. 60여년에 이르는 전통을 자랑하지만 그 전통이 꼭 자랑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학생들이 대학원을 다니면서 확인하게 되는 것이지만 그것이 학부 교육에 비해서 매우 혁신적인 체제를 갖추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어렵다. 오늘날 전국의 학부 커리큘럼이 모두가 대동소이하듯이 대학원의 커리큘럼 역시 대동소이하다. 이것은 전문교육으로서의 대학원 교육의 학교간 차별성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인시킨다.

더 큰 문제는 각 대학원의 교과과정이 사실상 학부 교육에서 진행되었던 교과과정의 별다른 차이 없는 반복이라는 사실이며, 이것은 대학원에 소속된 전담교원이 충원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큰틀에서의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면서도 각 대학은 경쟁적으로 대학원 정원을 확대시켜왔으며, 이에 따라 연구인력의 과잉배출을 수수방관해왔다. 교육의 질은 변화 없이 규모만 양적으로 확대되다 보니, 대학원 교육의 부실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원이 학문생산의 거점으로서의 성격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 역시 꼭 지적될 사항이다. 이것은 우리 학문의 대외적 식민성 또는 사대주의적 근성에 기인하는 문제인데, 설사 유수한 한국의 대학에서 우여곡절 끝에 박사학위를 취득한다고 해도 유학파 박사들에 비하자면 비교우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교수와 연구자들이 한국사회에는 유독 많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국문학과 같이 한국이 학문의 본토인 학문 영역에서조차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문학 교육'의 필요성이라는 가당찮은 이유로 유학파를 환대하는 경우를 곧잘 볼 수 있다. 자국의 학문에 대한 멸시와 외국의 학문에 대한 선망이라는 이런 이중사고가 약화되지 않는 한, 한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의 연구자로서의 존재감은 갈수록 희박해질 것이다. 



주변국에 비해서도 한국의 대학원생들이 지나치게 고비용을 지불하면서 미래전망이 없는 현실에 매몰되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는 것도 지적하고 싶다. 가령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석사과정은 비교적 입학과 학위취득이 용이하지만, 박사과정의 경우는 입학도 어렵고 학위취득도 심각할 정도로 소수에 불과하다. 대신 박사과정에 진학할 학생은 학문적 역량에 대한 매우 세밀한 평가를 진행한 후 입학을 허가하는 대신, 적어도 과정에 있는 한 경제적 비용에 대한 고민 때문에 학문외적 방황을 할 필요가 없는 각종 장학제도는 물론 생계지원제도가 완비되어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박사과정 학생들은 사실상 지도교수가 진행하는 각종 연구프로젝트에 종속되어 등록금에도 채 못 미치는 열악한 연구비를 수주한 대가로 황금 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각종 번역과 학원강의를 포함한 아르바이트에 종사하느라 정작 해야 될 연구에 투자할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건실한 문제의식을 내포한 예리한 논문과 저작이 산출되는 것은 고사하고, 젊음의 치열한 황금기에 학위과정을 끝마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대학이 박사학위 과정을 학계의 수요에 맞게 적절하게 축소하는 한편, 전업학생인 경우에는 학업을 충분히 지속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조건 없는 연구비 및 장학금을 지원해야한다. 
 
설사 학위과정을 무사히 끝마쳤다고 해도 해당 연구자가 대학의 교원으로서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갖게 될 확률은 예측하기 어렵다. 최근의 대학상황을 보면 신규교원의 임용은 축소되는 반면, 오히려 대학의 구조조정에 따라 경우에 따라서는 대학의 폐쇄나 대규모 인력구조조정이 예상되는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지역의 대학들이 처해 있는 위기의식은 매우 큰 상황이다. 과거라면 박사학위과정 중이나 수료 이후에 시간강사 등으로 일하면서 학문의 미래를 모색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대학원생들에게는 이조차도 어려운 실정이다. 연구인력의 과잉 때문에 대학의 시간강사조차 박사급으로 제한되고 있는 실정이며, 설사 과정 중에 강의를 한다고 할지라도 '비정규직법' 등의 문제를 들어 2년 이상의 강의를 위촉하는 것이 금지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교수확보율이 전체적으로는 60%선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대학당국이 편법적으로 비전임교원을 임용해 교원확보율을 올리는 방식으로 교원수급정책을 활용함으로써, 대학연구자들의 고용조건이 불안정화되고 있는 것 역시 커다란 문제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대학사회에서 빈번히 목격하고 있는 대로, 언제부터인가 겸임교수, 연구교수, 초빙교수, 특임교수, 강의교수 등 타이틀은 교수인데, 급여와 근무조건은 시간강사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교수들이 양적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거기에 전임교원이기는 하지만, 정년은 보장이 안되는 계약제 교수인 비정년트랙 교수들까지 포함하면, 사실 대학이야말로 비정규직으로 가득찬 모순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정이 그렇다고 한다면, 대학의 전임교원들은 단기적인 자신들의 신분보장이라는 이해관계에 무관해 보이는 이 비전임교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일이 실제로는 학문의 재생산을 위해 매우 막대한 중요성을 갖고 있음을 인식하고 교육투쟁과 대안을 만들기 위한 집단행동에 나서야 한다. 사실 대학에서의 민주화의 종말이 학생 민주주의의 종언에서 비롯된 것이듯이, 교수들의 교권이라는 것 역시 교육자 계층 내부에서의 상호불신과 반목을 조성하는 이 인위적인 연구위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대학원생들의 입장에서도 연구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자치조직 및 연구공동체의 가능성에 대한 공동의 노력을 모색해야 한다. 지도교수-제자로 이어지는 도제식의 연구전통 자체가 완전히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의 정신은 결국 그 자신이 속해 있는 독특한 현실의 모순을 자체의 힘으로 극복하려는 의지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1990년대를 기점으로 이러한 공동의 연구공동체가 사라진 것과 함께 창의적이고 대안적인 지식생산의 문제의식과 방법론 역시 소멸되어버렸다. 대학원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인식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전망을 생성시키려는 자체의 진지한 문제의식이 필요한 것은 그런 까닭이다.     
   
4. 지식인은 꼭 대학에 있어야 하나

그러나 이런 질문도 던져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지식인은 꼭 대학에 있어야 하나. 나 자신 역시 어렵게 박사과정을 졸업했고, 교수생활도 해보았고, 지금은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다. 모든 대학원생들이 거칠 것이 분명한 미래전망의 부재 때문에 학창시절 괴로워해보기도 했으며, 한국에서 인문학을 한다는 것의 무력함에 대해 오늘도 자주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과거부터 지금까지 품고 있는 한 가지 생각은 참된 의미에서의 학문하는 행위가 꼭 대학만을 거점으로 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었다. 설사 대학이 아닐지라도, 설사 경제적으로 다소 빈곤한 처지에 있다고 할지라고, 설사 지식생산과는 무관한 직업적 상황에 있다고 할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지식생산의 고유한 모델은 없을 것인가.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좀 어처구니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나는 세상에 내가 무언가 할 말이 있다고 생각했고, 만일 그 발언으로 인해 내 삶의 어떤 안정적인 가능성이 균열된다고 할지라도, 필요한 발언을 제도적 제약 때문에 삼가야 한다면 그건 지식인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학을 둘러싸고 있는 이런저런 방식의 제도관리시스템에 결과적으로 순응하지 않았다. 

동료들이 학진등재지에 논문을 쓰라고 할 때, 오히려 연구업적과는 무관한 문학평론을 써내려갔으며, 애착이 가는 논문을 썼더라도 엉뚱하게 비등재지 논문집에 게재하는 일을 꺼리지 않았다. 동료들이 학진의 연구공모에 응모하여 연구비를 받고, 그 과정을 당연시하거나 자랑스러워할 때, 그들을 비난하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그런 과정 속에서 학문자율성이 손상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쳐보기도 했다. 

한때 바라던 대학교수가 되어 이제는 좀 안정적으로 교육과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기도 했지만, 사립대학에는 흔한 재단 비리 문제로 재임용에 탈락했을 때도, 언짢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연구자로서의 내 정체성을 훼손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책읽기와 글쓰기를 더욱 치열하게 전개시키고자 했다. 

그러면서 계속 생각했던 것이 연구자라고 꼭 대학에 있을 필요가 있나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가능할 때는 그래야겠지만, 구조적으로 그것이 제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를 직감하면, 연구자들은 남들보다 빨리 다른 길을 모색해보는 것도 지혜라면 지혜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나는 왜 연구자가 되고자 하는가 하는 질문이고, 내가 왜 대학원을 다녀야 하는가 하는 명료한 인식이다. 시간에 떠밀리거나 선택을 유보당해서 그 공간에 남아있게 된다면, 연구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키기는 어렵다. 시장권력조차 그런 연구자들의 불안을 먹고 자라니까. 불안을 잘 다스리는 자기에의 배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1. 20:12


배호남(중국 옌타이대학교 한국어학과 외국인교수)




대학원 내에 공고히 자리 잡은 권력 관계를 들추어보고 이를 통해 몸 속 깊이 기입된 권력의 작동을 낯설게 보고자 한다. 대학원 사회는 선생과 제자, 박사와 석사, 남성과 여성, 제단과 학생, 전임과 시간 강사, 유학파와 국내파 등 수많은 권력관계들이 고착화 된 공간이다. 이러한 고착화를 발본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결국 대학원 구성원들이 이들 권력관계에 공모하거나 혹은 이를 내재화했기 때문은 아닌지, 정치성이 실종된 대학원 사회에 대한 필자의 날 선 비판을 들어보자.

대학원 석∙박사 과정에 다니다 보면,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친구들로부터 부러움 섞인 푸념을 종종 듣게 된다.“좋겠다. 너는 아직 학교에 다니니까. 밖의 세상은 얼마나 힘든지…….”필자 역시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눌러 담았던 말.‘대학원 역시 하등 다를 것 없는, 또 하나의 사회다.’ ‘대학원과 권력관계’라는 주제로 원고청탁을 받고 나서, 무슨 내용으로 글을 쓸까 고민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보고 듣고 겪은 불합리한 사정들을 하나씩 밝힐 것인가. 그랬다가 뭔가 불이익이라도 받으면 어떡하나. 게다가 이 불합리는 공공연한 비밀이나 다름없다. 대학원을 1년 이상 다닌 사람이라면, 조교 근무를 1학기 이상 해본 사람이라면, 시간강사에 오를 때까지 대학원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다 알고 있다. 이 공공연한 비밀을 대학원 신문에 글로 쓴다고 해서 얼마만큼의 반향을 얻을수 있겠는가. 이런 회의 속에서 필자는 이 글의 초점을, 대학원의 권력관계를 받아들이는 학생들의 체념적 태도에 맞추어 쓰기로 했다.

체념적 동조와 권력의 내면화

대학원은 학문 탐구를 위한 공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공간에 권력관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학문 탐구’라는 이 숭고한 목적이 실재하는 권력관계를 은폐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권력이 존재하되 그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다. 바로 이 지점이 대학원 내 권력관계의 모든 불합리가 시작되는 곳이다.

대학원생들의 술자리에는 안주가 필요 없다는 말이 있다. 교수들과 선배들의 뒷담화를 나누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울분은 언제나 뒷담화에 그치고 만다. 공개된 자리에서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은 공손한 제자나 후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런 이중성 밑에는 ‘괜히 나서서 득 될 것 없다’는 자기 보신주의와,‘나서서 말한들 뭐 하겠어’라는 무기력한 체념이 깔려 있다. 침묵을 통해 대학원생들은 대학원 내 권력관계에‘참여’한다. 이제 그들은 일방적인 피해자도 아니며, 무기력한 방관자를 넘어 은밀한 동조자가 된다. 대학원의 권력관계는 ‘교수일반’으로부터‘학생 일반’에게로 향하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박사과정과 석사과정, 선배와 후배, 본교생과 타교생,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에 다양한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학위논문을 쓰는 선배를 위해 국회도서관에 몇 차례씩 자료를 찾으러 가야 하는 후배들이있다. 이런 개인적인 심부름이 스스럼없이 행해지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침묵을 통해 학생들 사이에서도 권력이 내면화되기 때문이다.‘이 정도 일 쯤이야’라는 생각 밑에는‘난 예전에 더한 일도 했는데’라는 보상 심리마저깔려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대학원이 군대인가?

이러한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대학원생들 스스로 침묵을 깨고‘발언’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발언은 공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개인적인 울분이나 넋두리가 아닌, 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한 수단을 대학원생들은 이미가지고 있다. 대학원 내에 존재하는 여러 자치단체들 말이다. 대학원의 구성원은 학교(사립대학들의 경우 재단),교수, 학생이다. 대학원 총학생회를 비롯한 자치단체들은 학생들의 의견을 공적인 목소리로 바꾸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여러 대학들에서 대학원생들의 자치단체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무기력한 대학원 사회, 정치적인 것들의 상실

필자가 석사과정에 입학한 1999년도에는 여러 대학원의 총학생회가 나름의 역할을 일정 부분 수행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총학생회가 각 학과나 단과대 대학원생 대표들과 지속적인 의견 교환을 나눴으며, 이런 소통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학교와 교수단체 측에 제시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대학원 총학생회의 큰 중점 사업 중 하나는 학기 초마다 진행되는 등록금 협상이었다. 짧게는 보름에서 길게는 학기 중간까지 총학생회는 지속적으로 학교 측과 등록금 인상률에 대해 협상했고, 그로 인해 무리한 등록금 인상분에 대한 철회를 이끌어내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이런 성과는 공손하고 예의바른 자세를 통해서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몇몇 대학원 총학생회는 등록금 납부 거부 운동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으며, 이런 선택의 배후에는 대학원생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사개진이 있었다. 당시에도 대학원의 총회는 한학기에 한 번뿐이었지만, 필요하다면 임시 총회를 열어서 라도 대학원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총회에 임하는 학생들의 태도 역시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각 학과나 단과대 대표들뿐 아니라 많은 수의 일반 학생들도 참여하여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그 결과로 학교 측으로부터 등록금 인상분의 일정 금액을 학생들의 개인 통장으로 돌려받기도 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대학원생들이 공론의 장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귀찮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대학원 총학생회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몇몇 대학에서는 총학생회의 등록금 협상 참여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협상 과정에서 아예 배제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의 이유는 지금의 총학생회 임원들이 무능력하기 때문이 아니다. 총학생회가 대학원생들의 지지와 관심을 받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그 대표성을 상당 부분상실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박사 과정 중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대학원 총회의 모습이 꼭 그랬다. 각 학과나 단과대 대표자들은 더 이상 선출되지 않아 대학원 조교들이 보고자의 입장에서 참석했고, 일반 학생은 서 너 명만이 참석했을 뿐이었다. 총회를 주최한 인원과 참석 인원이 엇 비슷했던 모습은 대학원 총학생회가 그 대표성을 얼마나 상실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여러 대학원의 학술단체들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양적인 면은 물론 질적인 면에서도 뛰어난 학술특강이나 학제간 연구, 소규모 그룹 세미나에서부터 다른 대학과의 연계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기획과 지원을 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학술단그러나 학술단체의 성장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과거에는 총학생회의 분과 업무로 취급되던 학술단체 기획 지원은 이제 독립된 기구와 활동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럼으로써 대학원생들의 자치단체 활동을 학술적인 영역에만 국한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대학원 내 학술단체의 성장은 그 자체로는 반겨야할 일이지만, 그 성장이 다른 자치단체들의 정치적 역할을 반감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조교와 박사학위를 받지 않은 시간강사는, 대학원생이면서 동시에 학교로부터 급여를 받는 직장인이라는 이중의 정체성을 지닌다. 이 이중성 때문에 조교와 시간강사 영역은 대학원 내 권력관계의 불합리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조교는 코끼리도 냉장고에 넣을 수 있다”는 자조 섞인 농담도 있거니와, 특히 박사학위가 없는 시간강사의 처우 문제는 최근 ‘비정규직보호법’ 개정 논의와 맞물려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기도 하지 않았는가. 필자는 조교 근무 시절, 모든 학과 조교들을 대표하는 자치단체인 ‘조교협의회’ 결성이 추진되다가 무산됐던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다. 지금은 과연 몇 개의 대학원에 조교들만의 특수성을 대변해줄 수 있는 자치단체가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시간강사의 경우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에 분회를 두고 있는 대학은 경북대를 비롯해 8개 대학뿐이다. 어떤 대학의 시간강사 대표단체가 위의 노조에 가입하느냐 마느냐는 그 단체의 구성원들이 상의해 결정할 문제다. 그렇지만 한 대학에 시간강사들 스스로의 대표단체가 아예 없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은가. 그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한 논의의 장은 열어두어야 한다.

몫 없는 자들의 발언이 필요할 때
 

랑시에르는 그의 저서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에서 공동체 내에서 스스로의 권리를 갖지 못한 자들을 ‘몫 없는 자들’이라 부른다. 그는 ‘몫 없는 자들’이 권리를 찾는 방법은 공론의 장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발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학원 내의 권력관계에서 대학원생들의 처지 역시 이와 같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어섰다지만, 대학원 진학률 역시 2000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왔다. 대학원 학생 수는 증가하는데 대학원생들의 권리는 줄어드는 이유가 뭘까. 대학원생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을 귀찮고 쓸모없고 두려운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몫 없는 자들’로 만들기 때문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한다. 가르치는 분에 대한 존경은 우리의 미덕이다. 그런데 우리가 누군가를 존경할 때는 그 상대가 우리를 존중해줄 때이다. 대학원의 권력관계 속에서 학생들은 존중받지 못하면서 존경을 강요당하는 처지에 있다. 이 불합리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대학원생들 스스로의 권리와 주장을 여러 자치단체에 대한 참여와 관심을 통해 공론의 장에서 발언해야 할 것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1. 20:03



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


어떤 영역이든 신자유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대학원이 학문 공동체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 있다면 어떤 형태로 가능하고 없다면 왜 그러한지에 대해 살펴본다. 돈 되는 학문만 육성하는 대학원 정책, 취업을 위해 잠시 머무르는 학생들, 어떤 대안적 담론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학문, 분과 학문의 경계를 고착화시키는 학진 등. 이처럼 많은 요소들이 대학원을 기능적 공간으로 전락시키고 있기에 대학원‘바깥’에서 학문 공동체를 모색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다년간 여이연(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대안적 담론을 만들어 온 필자를 통해 대학원 공동체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대학 안에서도 ‘찬밥’신세인 인문학이 미래의 비전과 삶의 지혜를 제시할 수 있을까? 혹은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시대에 돈 되지 않는 인문학적인 가치와 지혜를 원하기나 할까? 대학의 인문학이 제공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학문적 대안공동체는 제공해줄 수 있을까? 그보다 학문적 대안공동체가 가능하기나 할까? 이처럼 거시적인 문제들을 근시안인 필자가 논할 능력은 없지만 그래도 인문학 분야와 관련하여 고민은 해보고자 한다. 요즘 대학 내에서는 몇 년 전과는 달리 인문학의 위기담론은 슬그머니 사라진 편이다. 인문학이 발등의 불은 끈 것처럼 보인다. 그 대신 인문학의 콘텐츠화, 인문학의 사회적 역할과 과제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한국의 인문학은 어떠한가?

존 쿳시의 소설집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에는 <아프리카에서의 인문학>이라는 장이  있다. 얼핏 보면 제목부터가 단편소설이라기보다 학술논문처럼 보인다. 존 쿳시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노벨문학상) 작가이자 케이프타운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가 왜 이런 제목의 소설을 썼는지 수긍이 갈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인문학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존 쿳시의 페르소나인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소설 속에서 늙은 페미니스트 작가로 등장한다. 그녀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를 만난다. 그 교수는 아프리카에서 인문학은 '대학의 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가 보기에 대학은 거세되었고, 학문은 돈벌이의 장일 따름이다. 요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하루에 50명이나 총질에 사망하고 강간은 다반사고 대다수는 기아에 허덕인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인문학이 상아탑 바깥에서 무슨 소용에 닿겠는가라는 회의가 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인문학은 어떤가? 한국사회에서 인문학은 출발부터 대단히 도구적이었다. 인문학의 목적 자체가 벼슬길에 나가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과거제도는 신분상승의 조건이었다. 사서삼경을 읽고 해석하려는 노력이 입신양명에 있었고, 벼슬을 하면 가족 전체가 경제적 혜택을 누렸다. 부모들은 경, 대부와 같은 아들의 벼슬에 맞춰 대접받았다. 개인의 영광은 가문의 영광이었고 입신양명은 효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인문학 교육이 계층 상층의 사다리였던 시절은 지났다. 대학 학력은 보편화되었다. 고등학생의 84.5%가 대학에 진학하며, 대학교육이 의무교육이 된 지 오래다. 대학졸업장이 별다른 혜택은 주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없을 때 상대적으로 엄청난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불안이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이런 상황이므로 대학 인문학도 시장논리에 맞춰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생계수단을 만들어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전사회가 자본의 논리에 복종하고 있는 시대에 인문학의 경쟁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인문학은 분명 위기에 봉착해 있다. 지금 강단 인문학이 자체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은 비인문학적인 방법으로 지식생산을 계량화하는 것이다.  
 
온 사회가 한 목소리로 사교육 시장을 비판하는 척하지만 대학의 인문학은 사실 사교육이 없으면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사교육의 온상이라는 점에서 학원과 대학은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대학의 인문학과는 사교육의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살아간다. 인문학과 졸업생들이 가장 ‘만만하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온갖 형태의 학원들이다. 학원시장에 인력을 공급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배타적으로 보유하기 위해 인문학과들끼리의 다툼이 치열하다. 고학력 실업시대에 인문학의 최대목표는 스스로가 생산성과 경쟁력이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학진과 인문학의 역설적 관계

대학에는 대학교육의 소비자들로서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과와 학문의 재생산에 필요한 연구 인력들이 있다. 요즘 그들은 학술진흥재단(이하‘학진’)프로젝트로 살아간다. 학진의 장기 프로젝트는 10년이다. 그 이후에는 연구원 자신과 인문학 자체가 자생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하려면 시장논리에 부응할 수 있도록 인문학을 사회 자본화 혹은 산업화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인문학이 속도와 양으로 승부하자면 시장경쟁에서 이기기 힘들다. 그럼에도 인문학적인 가치를 양화시켜서 어떻게 하든지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 지금 인문학이 처한 딜레마다. 인문학이 교환가치의 회로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 연구자들이 연구하면서 살 수 있는 한 가지 현실적 대안은 대학 연구소가 학진과 같은 국가기구로부터 연구지원금을 얻어내는 방식이다. 인문학과가 배출한 실업자 구제책의 하나가 학진 프로젝트 인문학 사업들이다. 학진 인문학 프로젝트들은 시간강사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해주는 것이며 학과로서는 자기 학문의 재생산을 위한 인력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해준다. 대학의 유령으로 떠도는 시간강사들이 연구원이라는 안정적인 신분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학진의 프로젝트는 대부분 한 10년짜리다.국가기구로부터 또 다른 지원을 받지 않는 한, 그 다음부터 인문학은 대학이 아니라 경쟁의 무풍지대인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 시장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인문학의 콘텐츠화가 될 것이다. 사실 콘텐츠라는 표현은 수천 년의 역사적 경험, 문화적 내용과 이야기들, 은유들을 돈을 지불하고 구입해야 하는 상품으로 만들어 되파는 것이다. 모든 연구소들이 인문학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인문학의 자본화에 자발적으로 공모하고 있다. 그 결과는 인문학을 살리기 위해 인문학의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에 맡김으로써 인문학이 실종되는 아이러니에 빠질 수도 있다. 학진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문학의 위기를 지연시킴과 동시에 인문학의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대안적인 학문적 코뮨은 가능한가?

그렇다면 대학제도 바깥에서 학문 대안공동체를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문학 본연의 복고적인 사용가치를 복원하는 길이다. 인문학 자체를 취직이 아니라 취향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그 말은 인문학 박사가 즐겁게 환경미화원(그것이 엄청난 뉴스거리가 아니라)을 하면서 남은 시간에 시를 읊고 동네아이들 모아놓고 철학을 논하는 것이다. 혹은 환경미화원이 벽화를 그리고, 홈리스가 저자거리에서 철학을 논하고, 저자거리에서 콩나물 파는 할머니가 인생을 노래할 수 있도록 인문학이 거리의 학문으로 나가는 방식이다. 그것이 인문학이 가진 사용가치다. 이런 사용가치에 충실하다면 대학바깥에서의 학문공동체가 가능할 수 있다.  

인문학은 환급작물처럼 재빨리 돈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 인문학은 수요보다 공급이 넘쳐난다. 그 점을 받아들이고 가난하게 사는 대신 자유로운 시간에 쿵푸하자는 것이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인문학 자체가 귀족학문이다. 성격이 운명이라고 하지만 학과가 운명인 시대다. 귀족이 아니면서 귀족학문인 인문학을 선택한 것에 대한 나의 책임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학문적인 대안공동체를 상정하려면 일단은 대학주변에서 자리잡겠다는 귀족적인 열정을 ‘열정적으로 체념’할 필요가 있다. 교수, 연구원이 될 가능성에 목매고 대학 안에서 유령적인 존재로 10년, 20년을 보내는 것은 대단히 소모적이기 때문이다. 가난해지는 대가로 값비싸게 구입한 자유 시간에 공부하고 그렇게 공부한 것을 지역사회에 돌릴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는 그런 공동체 창출을 방해하는 힘들과 즐겁게 맞서 싸우는 것이다. 이처럼 가난한 유한계급을 꿈꾼다면 대안적인 학문적 코뮨은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자본이 모든 가치를 제패한 사회에서 자본의 욕망과 유혹에 저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이다. 전지구가 돈의 욕망으로 획일화된 시대에 다른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에 따라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고민하면서 사는 것은 인문학 본연의 사용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지상명령인 ‘소비하고 즐겨라’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정언명령에 따르는 것이다. 그런 명령은 이론적인 정합성, 설득력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삶의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실천과 믿음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결국은 의지와 결단의 문제다. 그러니 쉽지 않은 길이다, 그래도 결심이 굳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남들에게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보여주는 길이기도 하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