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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48호]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_신동우

일상공유

 

일반대학원 아트&테크놀로지학과 석사과정 신동우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 Paul Gauguin, 1848~1903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은 프랑스의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폴 고갱 (Paul Gauguin)의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이란 제목의 작품이다. 이 작품의 제목을 한국어로 표현한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라는 제목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흔히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표현하며, 작품에서의 제목(Title)은 모든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이 작품 또한 고갱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그의 삶과 그가 느꼈을 혹은 겪었을 다양한 감정들을 우리는 마주할 수 있는데, 특히 이 작품을 그렸을 때 그는 정서적 상실감과 패배감 그리고 우울함이 극단에 이르렀을 때이고 거기에 사랑하는 딸의 죽음으로 인하여 자살을 기도하기 전, 마지막 유언과 같이 남기고자 했었던 작품이다. 이러한 예술 작품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고 교훈을 얻기도 하며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작품을 그린 고갱은 단 한 번도 전통적인 미술 교육을 받은 사람은 아니었다. 금융회사에 다니면서 풍족한 생활을 영위한 직장인이었지만 당시 프랑스의 금융위기로 인해 직장을 잃고 35세에 처음 그림을 시작했는데 사실 그가 그림 쪽에는 재능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전시회에서 작품을 출품하거나 살롱에서 입선되는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고 전해지며 이러한 고갱은 자신만의 그림 스타일을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상황을 겪게 되고 그로 인하여 병에 걸려 고통을 받고 늘 자신의 실력을 끊임없이 증명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다 이상적인 화가 집단을 꿈꾼 고흐와의 만남을 통해 고갱은 고흐의 아를 작업실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고 같이 작업하고 다양한 토론을 함께 나누면서도 둘 사이의 의견 차이로 인해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고흐가 자신 귀를 자른 사건이 발생했다. 여기에서 귀를 자른 사건보다도 필자가 고갱의 작품을 인용한 이유를 설명하자면 당시 작품을 발표했을 당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갱이 작품의 제목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한 질문(‘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이 당시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질문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며 사실 이러한 질문은 나의 주관적인 견해로는 ‘나’라고 하는 자기 존재에 관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되묻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나도 많은 삶을 살아본 경험이 풍족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이야기를 내가 선뜻 한다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얼마 전, 교정을 산책하면서였다. 다른 대학원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고 잠깐의 사회생활을 하던 도중에 대학원 진학을 두고 많이 고민 했었던 기억이 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때 내렸던 선택으로 인하여 아트&테크놀로지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했고 현재 마지막 학기에 이르렀다. 과거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고민하던 그때가 졸업을 앞둔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은 상황은 조금 다를지라도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졸업과 함께 박사과정으로의 진학이나 취업에 관한 고민들 때로는 석사과정을 선택하려는 사람들과 같이 우리는 일상에서 늘 시작과 끝, 그리고 또 다른 시작의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더 많은 고민과 신중한 결정 사이에서 늘 그렇듯이 고민할 것이고 결국은 매 순간 선택이라는 것을 해야 할 것이며, 다만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 스스로가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물음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져질 질문들이라 나는 생각한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나는 내가 지각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이렇게 늦다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학교에 적은 두되 그저 몸 성히잘 빈둥거리다 오는 것이 내 목표였는데,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뒤늦게 한 국제 민간 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다 늦게 무엇하는 짓인가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 두시까지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하지만 그 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것은 종이 한 장으로 남아있는 석사 학위가 아니었다.첫 학기 첫 시험 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찔끔 흘렸던 눈물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이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반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한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 인생을 살더라도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에세이 “지각인생”, 손석희 아나운서

 

 

마지막으로 공유하고 싶은 내용은 “지각인생”이란 손석희 아나운서의 에세이이다. 약 10년 전에 공유되었던 내용이지만 내가 이 글을 좋아하는 이유와 인상 깊은 내용은 비록 그가 남보다 늦게 시작한 결혼생활과 직장생활 그리고 나보다는 한참 늦게 시작한 유학과 석사과정에서의 굉장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결국은 종이 한 장으로 남을 석사학위보다도 차가운 연구실에서 남몰래 흘렸던 눈물과 절실함에 대한 기억과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 인생을 살더라도 이러한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라는 에세이의 마지막 문장이다. 결국은 그가 내린 선택과 결정에 대해 절실함을 갖고 있고 겸허하게 책임을 수용하는 태도 때문인데 나 또한 마찬가지로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수 없는 질문의 끝에서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지금 이때를 다시 돌아봤을 때 그 선택이 후회가 들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꿈과 열정을 잃지 않고 나라는 존재에 대한 정체성과 가능성을 믿는다면 나를 포함한 우리는 그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더라도 그리고 어떤 시련이 다가와도 우리는 그것들을 충분히 잘 이겨내고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