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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59호] 언론중재법과 12월 31일

양아라 기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을 핵심 골자로 하는 「언론 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개정안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8월 임시국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처리하려 했다. 당시 언론 단체 등은 사회적 합의 없이 언론중재법 개정을 강행하려 한다며 반발했다. 여야 ‘8인 협의체’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11차례 회의를 진행했지만, 의견 대립을 좁히지 못하고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가 보류됐다. 결국, 여야는 지난 9월 29일 ‘국회 언론·미디어 제도개선 특별위원회(언론특위)’ 구성에 합의하고, 올해 12월 31일까지 언론중재법, 신문법, 방송법, 정보통신망법 등 언론·미디어 제도개선 전반을 논의하기로 했다.

 

 언론특위 구성에 합의한 지 48일이 지난 11월 15일, 제1차 회의가 개최됐다. 국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하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에 한국 기자협회 등 언론 단체들은 12월 31일 활동 종료가 되는 언론특위 활동 기간을 21대 국회 임기 종료 시점까지 연장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이들은 언론특위가 사회적 합의 기구로 확대될 수 있도록 특위 안에 각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상설 자문 기구를 설치하여 의견을 수렴하라고 촉구했다.

 

 2005년 제정된 언론중재법은 언론사의 보도로 인해 침해되는 명예, 권리, 법익에 관한 다툼을 조정·중재하여 실효성 있는 피해 구제 제도를 확립하여 언론의 자유와 공적 책임을 조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언론보도 피해자는 현행법에 따라 언론사를 상대로 정정보도, 반론보도, 추후보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언론사와 직접 협의할 수 있고,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과 중재를 신청할 수 있으며,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국내 언론분쟁제도의 근거법은 언론기본법(1980)≫정간법/방송법(1987)≫개정 정간법/방송법(1995)≫언론중재법(2005)≫개정 언론중재법(2009)으로 이어지고 있다.1) 언론중재법 개정을 통해 인터넷 신문, 포털 뉴스 등 새롭게 등장한 매체를 분쟁 조정 대상에 범위에 포함했다. 2009년 이후로 언론 중재법은 개정되지 않았고, 새로운 매체의 언론분쟁을 해결하지 못하고 지체되는 모습을 보였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피해구제 사각지대를 해소하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오늘날 언론중재법 개정안 찬성 여론은 언론 불신이 극에 달한 언론의 위기 상황을 보여준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1년 발생한 미디어 및 언론 관련 이슈에 대한 국민 인식을 조사한 결과.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76.4%가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법안이 통과돼 제도화된다면 언론 발전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의견은 81.9%에 달했다.2) 이처럼 시민들은 보도에 대한 언론의 책임과 보도 피해구제의 현실화를 요구하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취지는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구성을 보완하고, 정정 보도 등의 효과를 높이고, 허위ㆍ조작보도3)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강화하여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에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는 언론 중재위원 정원 상한 확대, 위원 추천 등 규정 보완, 정정보도 청구기간 연장과 청구방법 다양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기사 열람 차단 도입 등 일부 조항이 ‘독소 조항’으로 담기며 언론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는 8월 12일 보도자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관련해 “일반 시민 피해구제보다는 권력과 재벌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악용할 소지가” 있어 “언론개혁의 탈을 쓴 언론통제”라고 비판했다. 또한, 언론노조는 지난 11월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포털과 여야 대선 후보와 정치권은 언론 현업 5단체가 언론중재법 개악의 합리적 대안으로 제시한 사회적 자율 규제 기구 논의에 동참하고 적극 지원하라”고 촉구했다. 아이티(IT)시민단체인 오픈넷은 9월 28일 보도자료에서 “언론 피해 구제가 진정한 목적이라면, 개별 사건에서 법원이 손해배상액 자체를 높게 인정하여 피해 보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제도의 보완을 강구하면 될 일”이라며 “반드시 손해 전보를 넘는 징벌의 대상으로 다루는 규제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조언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란은 크게 고위 중과실 추정, 징벌적 손해배상제, 기사 열람 차단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이 개정안 내용은 현재 국회 언론특위에서 회의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여야 협의에 따라 수정, 삭제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본회의 안건으로 올라온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일부를 살펴보고자 한다.

 

허위·조작보도 고의·중과실 추정 문제 

제30조의2(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특칙)
② 법원은 언론보도 등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1. 보복적·반복적으로 허위·조작보도를 한 경우
2. 정정보도·추후보도가 있었음에도 정정보도·추후보도에 해당하는 기사를 별도의 충분한 검증절차 없이 복제·인용 보도한 경우
3.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자료(사진·삽화·영상 등)를 조합하여 새로운 사실을 구성하는 등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

 

의안번호: 2112222.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 심사진행상태: 본회의부의안건

[출처: 대한민국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언론중재법 개정안(30조2의 2항)에는 언론의 고의 또는 중과실에 의한 허위·조작보도 추정 요건이 있다. 언론의 ‘현실적 악의’가 없었더라도, 이 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다면 언론사가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유엔 인권 전문가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제인권법 기준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는 권고가 담긴 서한을 8월 27일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4)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당국의(언론중재법 개정) 의도는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 구축’”이라면서, “개정안이 수정 없이 채택될 경우 의도한 바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언론사의 고의·중과실을 추정하여 징벌적 배상을 매기도록 한 허위 조작보도에 대한 특칙의 매우 모호한 표현이 “언론 보도와 정부나 정치지도자 혹은 기타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 비교적 인기가 적거나 소수가 지지하는 의견 등 민주 사회에서 필요한,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는 과정을 제한할 수 있다”며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정보 접근과 사상의 자유로운 흐름이 특히 중요해지는 시기를 지나게 되는 만큼, 이러한 문제가 더욱 부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문제

제30조의2(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특칙)
① 법원은 언론 등의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라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또는 그 밖의 정신적
고통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보도에 이르게 된 경위, 보도로 인한 피해정도, 언론사 등의 사회적 영향력과 전년도 매출액을
적극고려하여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핵심 골자인 징벌적 손해배상제(Punitive Damage)는 언론이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라 피해를 입은 경우, 손해액의 5배까지 언론사에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2011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서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했으며, 법률의 손해배상액의 상한선을 손해액의 3배로 잡고 있다. 이에 따라 언론이라는 특정 영역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규정하는 것은 과잉입법이라고 지적이 따라붙었다. 특히 징벌적 손해
배상제를 남용으로 정치인, 기업가 등 권력 감시와 비판, 견제 역할을 하는 언론의 사회적 역할과 위축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언론이 사실을 보도할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처벌받고 있다. 형법(제307조 1항)에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백만 원 이하의 벌금이 규정돼 있다. 또한, 정보통신망법(제70조 제1항)에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명시돼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미디어언론위원회는 “국가형벌권의 남용이 우려되는 부분”이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가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언론 보도로 피해를 입는 경우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고, 언론중재위원회나 민사재판을 통한 손해배상도 가능해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과잉입법이라는 주장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면서도,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을 보호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이 제시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 문제

제17조의2(열람차단청구권) ① 인터넷신문이나 인터넷뉴스서비스를 통한 언론보도 등으로 인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피해를 입은 자는 해당 인터넷신문사업자 또는 인터넷 뉴스서비스사업자에게 언론보도 등의 열람차단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언론보도 등의 내용이나 표현이 공적인 관심사에 관한 것으로서 여론형성 등에 기여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1. 언론보도 등의 제목 또는 전체적인 맥락상 본문의 주요한 내용이 진실하지 아니한 경우
2. 언론보도 등의 내용이 개인의 신체, 신념, 성적(性的) 영역 등과 같은 사생활의 핵심영역을 침해하는 경우
3. 그 밖에 언론보도 등의 내용이 인격권을 계속적으로 침해하는 경우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 신설된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도 논란의 대상이다. 인터넷 뉴스의 주요한 내용이 진실하지 않거나 사생활의 핵심영역을 침해하는 경우에 피해자는 해당 기사의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청구권의 사유가 광범위해, 청구 요건에 대한 명료화와 투명한 절차, 구체적인 적용 시한에 관한 논의가 요구됐다.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은 기사에 딱지를 붙이는 일(라벨링)이 될 수 있고, 기사를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기사삭제와 일부분 비슷한 효과를 보일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들은 피해구제 방법으로 반론·정정보도보다 기사삭제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언론중재위원회(언중위)는 지난 9월 6일 보도자료를 통해 위원회 조정사건 중 약 30%가 신청인과 언론사 합의로 열람 차단됐고, 이미 실무적으로 정착된 관행을 제도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언중위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무한 복제, 지속되는 피해에 대한 실효적 구제 방안”이라며 “인터넷의 특성상 정정·반론보도가 이루어져도 잘못된 보도가 다시 확산되어 피해를 발생시키는 경우가 많아 열람차단청구의 도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언론·출판의 자유(헌법 21조 1항)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물론 언론·출판의 자유가 타인의 명예와 권리, 공중도덕이나 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되며(헌법 21조 4항) 이에 대한 법적제재를 가할 수 있는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언론중재법이 피해구제보다는 언론 처벌에 목적에 방점이 찍힌다면 사회에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언론 보도의 자율규제를 하는 기구인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인터넷신문위원회가 존재한다. 또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선거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선거보도심의위원회 등에 의해 공적규제도 이뤄지고 있다. 사실 확인이 미흡한 보도, 사생활 침해 보도, 편파적인 보도 등은 언론의 신뢰를 저하할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 언론 보도에 대한 실효성 있는 규제방법을 위해 규제 기구의 개선도 요구된다. 언론중재법 개정과 별개로 언론사 내부에서는 피해구제에 대해 방어적이거나 소극적인 태도가 아닌 적극적인 태도로 책임져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보도 과실을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자들이 실제로 실천할 수있는 제도 실행에 나서야 한다. 다양한 취재원을 통한 사실 확인과 취재 과정의 투명성 확보, 편향된 관점이 아닌 다양한 관점을 담은 기사 보도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1) 양재규 (2021) 언론분쟁조정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검토와 전망 -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중심으로, 언론중재, 158, 46-59
2) 해당 조사는 20~60대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0% 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미디어 이슈> 7권 6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허위·조작보도는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를 언론, 인터넷뉴스서비스,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을 통해 보도하거나 매개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4) 국가인권위원회(2021.10.29.). 유엔 특별보고관:“언론중재법 개정안, 국제인권법에 맞게 수정되어야”. 국제인권동향 2021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