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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63호] 세상을 보는 눈

장 혜 연 기자

 

‘노력도 재능이다?’

 

며칠 전 인스타그램의 빽빽한 피드 창을 통해 눈길을 사로잡는 문구를 발견했다. 글은 몇 장의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진 안에는 인터넷 강의 분야에서 사업을 펼치는 유명인과 전문직업을 가진 인물이 등장했다. 단 몇 장으로 구성된 사진 안에는 공부는 ‘재능’이라는 선천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자막이 쓰여 있었다. 댓글 창에는 ‘공부는 유전이다. 집중할 수 있는 능력과 노력, 환경 자체가 재능이다’라고 주장하는 편과, ‘그렇지 않다. 대학 진학 시험은 개인의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라는 찬반 논쟁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이 같은 공부 논쟁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다만, 이전의 ‘공부 유전론’에서 발전된 점은 개인의 노력이나 환경도 재능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는 점이었다. 우린 정말 유전으로 인해 이미 결정지어진 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오스트레일리아의 작가 론다 번이 집필한 자기계발서 시크 릿에서 주장한 ‘R(real)= VD(vivid dream)’도 자기암시라는 측면 에서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심리학은 이러한 질문에 조금 더 정확한 해답을 제시한다. 자기충족적 예언, 피그 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 낙인효과(Stigma effect, 스티그마)와 같이 다양한 심리학적 용어로 설명할 수 있지만 오늘은 그 중 암묵이론을 통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implicit theory(암묵 이론)는 개인의 성향에 대한 신념을 말한다. 다시 말해, 개인이 주변 세계를 인식하고 사고하는 방식에 따라 자신이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강력한 설명을 가능케 한다.

 

암묵이론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인간의 사고방식은 고정 혹은 성장이라는 두 가지 차원이 존재한다. 고정된 사고방식이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 사고 형태를 이야기한다. 성장형 사고방식이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동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유연한 구조를 가진다는 사고 형태를 이야기한다. 암묵이론은 특히 지능과 학업에 대한 측면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한다. 고정된 사고방식에서의 지능이란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성장할 가능성이 작으며 쉽게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 한다. 반면, 성장형 사고방식에서의 지능은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나아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암묵이론을 연구했던 뮬러와 드웩(Muller & Dweck, 1998)은 대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를 냈다.  

 

지능 = (      )% 노력 + (      )% 능력(타고난)

 

이때, 고정적 사고방식을 가진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35%의 노력과 65%의 능력이라고 응답했지만,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진 학생들은 65%의 노력과 35%의 능력이라고 응답하였다. 고정적 사고방식을 가진 학생들은 학교 공부나 시험과 같은 상황에 있어 노력을 적게 하고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성공한 것이고, 더 큰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이 낮은 지능 혹은 실패를 의미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았다(권준모, 2003).

 

주목할 만한 점은, 지능에 대한 개인의 사고방식은 어려운 문제나 상황에 부딪혔을 때 대처하는 방식을 예측 가능케 만든다. 어려운 문제나 상황은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게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학생은 개인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것이 자신의 능력이 좋지 않다 는 것을 증명하는 모양새라고 생각하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심지어는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아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변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노력하지 않은 상태에서 운 좋게도 좋은 결과가 나오면 지능이 높다는 반증이 되고,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자기변명 또는 해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암묵이론의 관점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사고방식이라 일컫는 마음가짐(Mindset)이 개인의 인식, 의도, 행동에 지대 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 들과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친구와 연인관계, 타인과의 관계와 같은 대인관계 상황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Freedman(2019)에 의하면,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대인관계에 있어 장애물을 마주했을 때 상대적으로 쉽게 수긍 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반면,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대인관계에 있어 장애물을 마주했을 때 노력을 통해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았다. 노력이나 시도 혹은 미래의 성장에 대한 개인의 사고관이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쿠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갈등과 문제상황을 해결하는 회복탄력성이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미국의 교사 출신 심리학자 안젤라 리(Angela Lee)는 수 년간의 교사 생활을 통해 아이들의 학습 능력과 지능지수는 관계가 없으며, 모든 학생이 지능과 상관없이 교과 내용을 이해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안젤라는 지능보다 중요 한 무언가가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자 대학원에 진학 하였다. 미국의 육군사관학교, 일반회사 등 다양한 분야의 기관과 협력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 결과, 성공을 이뤄낸 사람들에게 찾을 수 있는 공통적 요인을 파악하고, 이를 그릿 (GRIT)이라고 정의했다. 단어 그대로 이해하면 ‘기개’라는 뜻이지 만, 안젤라의 그릿은 Growth(성장), Resilience(회복력), Intrinsic motivation(내재적 동기), Tenacity(끈기)라는 의미로 재정의된다.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릿을 키우기 위한 방법에 대해 물었을 때, 그녀는 아직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고 답변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방법 중 가장 훌륭한 방법을 소개해주었는데, 그 방법은 바로 암묵이론을 주장한 드웩(Dweck)의 성장형 사고방식이다. 능력은 타고나거나 고정된 것 이 아닌 자신의 노력에 의해 바뀔 수 있다는 믿음과 사고방식. 지금의 실패가 계속된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도입부에서 말한 인터넷 강의 분야의 유명인이 캡처된 동영 상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유튜브에 들어가 검색해 보았다. 단 몇 장의 캡처 화면이 무색하게도 무려 1시간 23분짜리 강의 동영상이었다. 초반 부분에는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발견한 내용과 동일한 발언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1시간 23분짜리 동영상에서 공부에 대한 유전을 이야기한 것은 단 7분 40초 남짓. 나머지 1시간 16분의 시간 동안에는 최선의 노력으로 값진 결과를 만들어 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뜨거운 열정과 노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토로하며 학생들의 열정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때로는 이렇게 단편적인 모습을 조합하며 제공되는 정보가 필자 자신의 마음에 깃들어 자신을 쉽게 규정하고, 정말로 그런 미래를 만들까 우려스러울 때가 있다.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미리 자신의 한계를 규정짓고 제대로 된 시도조차 하지 않은 적도 있다. 하지만 남들보다 습득이 조금 느린 것이 무슨 상관인가? 남들에 비해 오랜 시간을 노력하며 쏟아부어도 상관없다. 인간은 사고의 동물이고, 사고는 곧 현실을 만드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성장할 수 있다는 열린 태도와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이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규정과 언어 속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자기 신념과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구체화해야 한다.

 

배움이나 습득이 조금 느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삶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어쩌면 타인과의 비교에서 나오는 자신의 주관적 판단이다. 남들과 비교하여 선제적 변명을 늘어놓기 보단 최선을 다해 부딪히고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진정한 스포츠맨십이고 페어플레이가 아닐까. 이것이 바로 내가 ‘노력이 재능이라는 주장’에 반대하는 이유다.

 

참고문헌

Mueller, C. M., & Dweck, C. S. (1998). Praise for intelligence can undermine children's motivation and performa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5(1), 33.

권준모. (2003). 지능에 대한 암묵적 이론과 성취 동기. 교육심리연구, 17(1), 95-107. 3 Freedman, G., Powell, D. N., Le, B., & Williams, K. D. (2019).

Ghosting and destiny: Implicit theories of relationships predict beliefs about ghosting. Journal of Social and Personal Relationships, 36(3), 905-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