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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13호] 사랑은 제약 속에서 영원과 편재를 희망하는 열정


김명석(연세대 철학과 강사)


흔히 사랑은 모든 제약을 벗어나는 것이라 여겨지지만 제약을 뛰어넘어 나와 타자의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는 자칫 타자를 나에게로 귀속시키는 폭력적 사태를 유발한다. 따라서 제약은 나와 타자의 거리감을 유지시키며 사랑을 보다 더 풍성한 것으로 이끄는 사랑의 조건이다. 제약을 온전히 떠맡는 역설적 선택에서 사랑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필자의 단상을 따라가 보았다.

꽃들이 자기 모든 아름다움을 탕진해 버리는 사월 하순 너는 찰랑거리는 웃음을 치마에 담아 내 앞에 나타났다.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우리의 물리적 거리는 일 미터의 절반으로 좁혀졌다. 일 미터 이상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에티켓이었지만 우리 마음은 한두 번 맞닿았다. 그것은 흔히들 첫눈에 반했다고 말하는 그런 유형의 현상이었다.

우리는 커피숍을 완전히 독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고 심지어 제삼자가 동석했다. 그 공간은 내 것이 아니었다. 장악력의 결핍은 어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화는 언제나 찰나처럼 짧고 그 찰라 동안에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몰려와 우리 곁에서 북적거렸다. 그 시간 그 공간을 내가 장악할 수 없으니 그 좁은 공간에 우리가 함께 있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독점할 수 없다. 단 한 명의 불청객도 짜증스럽게 시끄럽다. 단 하나의 시선만으로도 우리만의 공간은 쑥대밭이 되었다.

더 가까이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어요,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어요, 같은 공간에 거주하고 싶어요, 같이 살고 싶어요, 감히 이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과 해도 되는 말은 일치하지 않았다. 벤치에 매일 하나씩 놓고 간 네 머리칼을 밤마다 알약처럼 삼켰다. 심장이 실타래처럼 엉켜 숨이 막혔다. 나는 상사를 앓았다. 시인의 미문美文, 라디오의 선율, 창밖 짤랑거리는 미루나무, 물감처럼 번지는 단풍, 면도날보다 더 날카로운 지성, 어느 날 불현듯 내 앞에 불꽃처럼 나타나 이내 사라질 이 모든 아름다움들이 출현하는 바로 그때 바로 그곳에 너는 부재했다. 그래서 나는 아팠다.

실외는 아름다움이 번식하는 공간이다. 동시에 너의 부재를 체감하는 공간이다. 노고단 돌탑에도 울돌목 흰 구름 아래도 너는 없었다. 결국 실외는 고통스러운 공간이다. 나는 실내에 웅크렸다. 밀실을 찾아다녔다. 밀실에 들어앉은 네 모습을 보고 싶었다. 밀실에 너를 감금하고 싶었다. 그 시간 그 공간에서 너의 시간과 공간을 나에게 합병하고 싶었다. 그래 정확히 말해 너를 소유하고 싶었다. 너를 소유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나는 전혀 사랑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 아니다. 단지 인생을 낭비 중이다. 삶의 열정은 소유욕으로 표출되었다. 사랑의 시대에 사랑이 아니라 소유가 나를 지배했다.
소유는 전유와 독점을 전제한다. 그리하여 소유의 열정들은 본성상 경쟁하고 충돌한다. 소유는 경제학의 영역에 속한다. 만일 사랑이 소유라면 사랑은 경제학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사랑하는 이를 소유하려는 자는 대가를 지불하고 그를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를 소유물로 간주하는 순간 그는 상품으로 취급된다. 왜냐하면 모든 소유물은 상품이기 때문이다. 소유의 시대에 나는 무엇이든지 가져다바쳐 너를 구입하고 싶었다. 나의 열정은 난폭했고 너를 희소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전락시켰다.

내가 그토록 온갖 힘을 다 썼지만 끝내 너를 소유하지 못했고 사랑을 이루지도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사랑이었지 소유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왜 나는 그토록 소유에 집착해야 했을까? 소유의 가장 강력한 동인은 제약이다. 책을 전유하지 못하면 다 읽지도 못한 채 이내 돌려줘야 한다. 줄을 긋지도, 메모 하지도, 접지도, 함부로 더럽히지도 못한다. 제약이 싫어 가구를 소유하고, 세탁기를 소유하고, 차를 소유하고, 집을 소유한다. 내가 너를 소유하고 싶었던 것은 너와 함께 하는 시공간이 심하게 제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시공간에 제약된 채 실존하는 것이다. 나는 오직 약간의 물리적 공간만을 점유할 뿐이다. 피부는 바깥 세계로부터 나를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이 물리적 경계면은 나를 제한된 공간에 가두어 놓는다. 피부는 공간을 무한히 밀어낼 힘이 없고 무한정 팽창하여 세계 전체를 점유할 수도 없다. 나는 편재하지 못한다. 나는 한 시점에 두 곳에 위치할 수 없다.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에 너는 자주 없다. 네가 머물고 있는 그곳에 나는 거의 없다.

나는 시간적으로도 제한된 존재이다. 나는 오직 일정 물리적 시간 내에서만 지속할 뿐이다. 나는 무한한 과거부터 무한한 미래까지 지속할 수 없다. 탄생과 죽음은 전생과 사후 세계로부터 나를 운명적으로 감싸고 있다. 이 시간적 경계면은 나를 제한된 시간에 가두어 놓는다. 또한 의식은 현재라고 불리는 시점만을 파악한다. 나는 두 시점을 동시에 포착할 수 없다. 너와 함께 이루었던 그 경이로운 모멘트를 나는 지금 의식하지 못한다. 나의 기억과 상상과 재현은 환상처럼 질량감이 없다. 너는 이미 이 순간 의식의 저편으로 밀려났다.

너는 편재할 수 없기 때문에 너를 나의 공간에 감금하려 했다. 나는 영생하지도 영원을 의식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너를 나의 현재에 묶어두려 했다. 하지만 시공간적 제약은 결코 제거할 수 없다. 너를 감금한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공간을 공유하지도 의식을 공유하지도 못한다. 나와 너는 엄연히 분리된 공간이다. 너는 영원히 딴 몸이다. 나는 너를 관통할 수 없다. 너의 피부는 강철보다 강해 죽는 순간까지 마모되지 않는다. 너는 영원히 다른 의식이다. 네 의식은 빛보다 빨라 현상되지도 인화되지도 않는다. 나는 네 의식을 순간 포착할 수 없다. 너와 나는 분리된 시간이다.

애무와 키스는 경계면을 흐리게 할 수 있지만 와해시킬 수는 없다. 섹스는 단지 경계를 무너뜨렸다는 느낌만 줄 뿐이다. 애무하는 동안에도 너는 때때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너는 뒤돌아선 차가운 등이다. 시간은 매정하게 흐르고 환희와 판타지와 오르가즘은 이내 종결된다. 내 의식은 너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동결할 수 없다. 의식은 바람처럼 쉽게 분산되고 사랑하는 이에게 집중하지 못한다.

만일 네가 필연적으로 영원히 다른 공간이고 다른 시간이라면, 너를 소유한다 하더라도 너를 완전히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소유는 너를 제한 없이 사랑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 소유는 오히려 너를 분실하는 첫 걸음이다. 사랑을 놓치는 수순이다.

왜 내가 너를 그리고 사랑을 놓쳤는지 이제야 깨닫는다. 그것은 내가 본성상 제약된 존재라는 것을, 오직 그 한계 내에서만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 한계를 부정하는 것은 사랑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찌는 더위와 뜨거운 햇볕은 농사의 제약이지만 동시에 농사의 가능성이듯이, 네가 다른 시간이고 다른 공간이라는 사실은 사랑의 제약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나는 사랑하기 위해 자유롭고 사랑하기 위해 제약되어 있다.

나는 내가 제한된 존재라는 것을, 네가 제한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제약은 존재의 필연적 조건이다. 이 필연성을 부정할 때 사랑하는 이를 자기 공간에 감금하고 자기 시간에 속박하려는 망상을 갖게 된다. 소유는 자기 홀로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이기심이다. 팽창과 점령의 야욕이자 열패의 두려움이다. 자아를 신격화하는 우상숭배이다. 무능력과 미성숙의 징표이다. 반면 사랑은 너와 함께 제약을 조절하는 협력이다. 사랑은 소유하지 않는 채 시공간을 융합한다. 맞잡은 손, 엉킨 팔짱, 맞닿은 피부, 어루만짐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마주 보는 깊은 눈동자, 따뜻한 낯빛, 현처럼 떨리는 뜨거운 목, 귀에 속삭임, 향기로운 숨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제 나는 우리가 본성상 제약된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기로 한다. 제약은 오히려 사랑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다. 나는 사랑하기 위해 제약되어 있고, 제약되어 있기 때문에 너를 사랑한다. 사랑은 제약 속에서 영원과 편재를 희망하는 열정이다. 사랑은 소유의 유혹을 극복하고 존재의 제약을 인정하는 지속적인 모험이다. 사랑은 쓸쓸한 공간과 무상한 시간을 은총으로 받아들이는 송영送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