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6.04.21 11:55




프리 제돌: 수족관 돌고래의 생명정치 



남종영_한겨레신문 환경 기자, 영국 브리스톨대학교 인문지리학 석사



미국 플로리다 주의 시월드는 세계적인 범고래쇼로 유명한 곳이다. 동물학대 논란이 제기되어지난 3월 범고래 공연과 번식의 단계적 중단을 선언해 뉴스 전파를 탔다. 이곳에는 ‘돌핀 코브’라는 먹이주기 체험 시설이 있는데, 돌고래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늘 줄이 길게 선다. 2014년 이곳에 갔을 때 죽은 생선이 올려진 하얀 접시를 나눠주며 가이드가 신신당부한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자, 이렇게 세 단계의 동작을 해주시면 됩니다. 돌고래가 오면 턱을 한번 만져주고, 하얀 접시위의 생선을 집어 떨어뜨리고, 다시 머리를 쓰다듬어주세요. 그리고 절대로 하얀 접시를 난간 위로 들지 마세요. 돌고래 눈에 띄면 안 됩니다!”

돌고래는 이 하얀 접시를 절대로 보아선 안 된다. 하얀 접시는 인간이 원치 않는 돌고래의 행동을 ‘격발’하는 하나의 물체다. 하얀 접시를 난간 위로 들어 올리면, 돌고래는 점프해 생선이 담긴 하얀 접시를 낚아챈다. 이 과정에서 관람객이 돌고래에게 손목을 물리는 사고가 몇 번 발생했다. 

재밌는 점은 돌핀 코브의 돌고래들이 굳이 힘써 점프를 하지 않아도 관광객들 가까이 가면 생선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그들에겐 절박하지 않다. 그러나 돌고래들은 인간들이 주는 생선을 ‘수동적으로’ 받아먹지 않고,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방식으로도 배를 채우려고 한다. 동물지리학자 트레이시 워켄틴(Tracy Warkentin)은 이를 ‘동의의 균열’(cracks in consent)혹은 ‘동물의 저항’(animal resistance)로 해석했다. 




“박쥐가 되는 건 어떤 기분일까”

돌핀 코브의 돌고래들은 ‘어포던스’의 예를 잘 보여준다. 어포던스는 이론생물학자 제임스 깁슨(James Gibson)이 정리한 개념이다. 

텅빈 방에 축구공 하나가 덜렁 놓여 있다고 상상해보자. 방문을 열고 들어간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대부분은 공을 들고 두리번거릴 것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공을 통통 튀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공을 던져 ‘벽치기’를 할 것이다. 

‘어포던스’는 동물과 환경 사이에 작용하는 행동 유발성이다. 좁게는 행동을 유발하는 ‘격발 장치’로서의 본능을 우리가 가졌다는 뜻이지만, 넓게는 동물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해 반응하고 상호작용하는 잠재력을 말한다. 

여기서 환경이란 물질적인 모든 것이다. 지구가 만들어놓은 자연적인 모든 것들 - 바다, 하늘, 물, 불, 바람, 바위, 동식물, 인간 등 -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생산한 모든 것들 – 공, 책, 스마트폰, 배설물 등-로, 쉽게 말하자면 ‘나 이외의 모든 것’이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으로 우리는 환경을 만난다. 반응하고 학습하여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감각기관이 진화해 오늘에 이르렀다. 감각기관은 불균등한 진화는 다양한 종의 진화로 귀결됐다. 동물 사이의 차이로 이어졌다. 개는 냄새만 맡고 자신의 집으로 찾아올 수 있지만, 인간의 후각은 맛있는 음식 앞에서나 가동되는 사치스러운 감각이다. 후각이 발달한 개가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인간과 다르다. 당연히 개의 감각 세계와 그로부터 유래된 인지 체계는 인간과 천양지차다. 어떻게 다르냐고? 경험을 할 수 없으니 알 수 없다. 시각 중심주의에 사로잡힌 인간이 개를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언젠가 철학자 토머스 나이젤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박쥐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박쥐는 어두움 속에서 음파로 세계를 인식한다. 그의 정신작용을 인간이 어떻게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수족관과 어포던스

2013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시작으로 한국에서는 다섯 마리의 돌고래가 제주 앞바다로 돌아갔다. 이들 돌고래는 바다에서 불법포획돼 수족관에서 돌고래쇼를 벌이던 동물들이었다. 자, 그럼 ‘어폰던스’라는 개념을 붙잡은 채, 야생에서 갓 잡혀온 제돌이가 수족관에 적응하는 몇 날들을 상상해보자. 

제돌이의 감각기관은 야생바다에 맞게 진화되어 왔다. 주된 감각기관은 청각이다. 어두운 바다 밑에서 천리안은 필요없다. 그래서 돌고래는 귀로 본다. 음파를 쏜 뒤 되돌아오는 반송파를 이용해 물체의 모양, 크기, 거리, 질감을 파악한다. 메아리를 이용해 위치를 추적하는 기술, 즉 ‘반향정위’(echolocation)라는 것이다. 시각의 경우 인간과 거의 비슷한 시력을 가졌지만 보조적이다. 돌고래가 눈을 완전하게 쓸 때는 수면 위로 도약했다가 철퍽 하고 수면 아래로 잠수하는 찰나의 순간이다. 돌고래에게 바다 위의 세계는 그래서 전혀 다른 감각기관을 사용하는 외계인의 행성과 진배없다.  

지금 수족관에 잡혀온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는 자기 생애에서 가장 좁은 공간에 처했다. 무한의 바다를 누비던 몸이 기껏해야 초등학교 교실 한 칸 정도의 크기에 갇혔다. 소독약 냄새가 가득하고 호루라기 소리가 귀를 찌른다. 바다에서 먹던 활어를 먹지 못한다. 인간이라는 외계종이 ‘죽은 생선’을 내던진다. 넓은 바다를 누빌 때 쓰던 근육의 사용을 멈춰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음파 기관이다. 음파를 쏘면 몇 미터 못 가서 콘크리트 벽에 튕겨 나온다. 돌고래 보호운동가인 릭 오배리가 말했듯 “수족관에 있는 돌고래는 마치 사방이 거울로 만들어진 집에 사는 것과 같다”. 반향정위를 위한 신체기관은 꺼두어야 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돌고래가 적응하려면 자신의 감각기관을 좁은 수족관 환경과 동조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야생의 몸’에서 ‘돌고래쇼의 몸’으로

돌고래 수족관은 기본적으로 이윤의 공간이다. 그러나 사회의 감시와 대중의 여론 때문에 동물복지에도 신경써야 한다. 수족관 조련사들은 돌고래가 제값을 지닐 수 있도록 건강하게 관리하면서 아울러 돈을 벌 수 있도록 쇼를 가르친다. 미셸 푸코가 말한 ‘생명정치’(biopolitics)가 수족관에서 행해진다. 인간 정치가 그러한 것처럼 개체 수준과 집단 수준에서 돌고래 몸을 관리하고 개조한다. 

나는 다수의 현장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돌고래 몸의 개조를 개념화해보았다. 수족관에 잡혀 온 야생 돌고래는 ‘야생의 몸’(wild body)에서 ‘수족관의 몸’(captive body)으로 다시 ‘돌고래쇼의 몸’(show body)으로 변환된다. 이 세 단계에서 ‘먹이 지배’(feed control)와 ‘긍정적 강화’(positive reinforcement)라는 두 가지 기술이 돌고래 몸에 투과된다. 둘은 인간이 수족관 돌고래를 다스리는 가장 기본적인 통치기술이다. 다음은 돌고래 몸의 개조 단계를 정리한 것이다. 

1단계__돌고래가 가장 먼저 배우는 게 ‘죽은 생선’(dead fish)을 먹는 것이다. 배고플 때까지 돌고래를 굶긴다. 남방큰돌고래는 대개 이주일 동안 굶으며 저항하다가, 살기위해 죽은 생선을 받아들인다.

2단계__돌고래는 좁은 수족관에 갇힌 충격에서 천천히 헤어나오기 시작한다. 좁은 공간에서 운동하는 법을 익히고 소나를 끄고 소리의 눈을 닫는다. 돌고래는 ‘수족관의 몸’이 된다. 

3단계__돌고래가 죽은 생선을 허락하면, 사육사들은 먹이 지배를 통해 묘기를 가르친다. 원칙적으로 돌고래는 연습이나 공연 중에만 보상용으로 생선을 먹을 수 있다. 수족관에서는 간단한 법칙이 통용된다. “배고플수록 많이 배운다”. ‘돌고래쇼의 몸’이 완성된다.



감금의 아상블라주

돌고래쇼가 벌어지는 수족관을 상상해보라. 공연장과 좁은 내실, 두 공간 사이를 가르는 철문, 시멘트 바닥, 인공 해수, 타깃, 호루라기, 훌라후프, 소독약 냄새, 어두침침한 조명, 웅웅거리는 소음, 죽은 생선을 던져주는 사육사, 왁자지껄한 관중 등이 수족관의 행위자들(actors)이다. 야생에서 잡혀온 돌고래는 감각기관으로 인지하면서 물체들과의 관계를 설정한다. 밥줄을 쥐고 있는 조련사와의 사회적 위계도 확인한다. 어포던스가 발현되어 새로운 몸이 된다. ‘수족관 돌고래’로서 새 삶을 출발한다. ‘돌고래쇼의 몸’이 되기까지 제돌이는 6개월이 걸렸다. 다른 남방큰돌고래도 그 정도의 기간을 거쳐 무대에 선다. 

그러나 수족관은 인간의 전일적인 지배가 이뤄지는 생명정치 공간은 아니다. 그보다는 수족관이라는 공간을 형성하는 물질적, 비물질적 요소로 구성된 네트워크 속에 돌고래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감금의 아상블라주’(assemblage of captivity)에서는 끊임없이 인간과 돌고래의 ‘밀당’(negotiation)이 이뤄지고 때때로 ‘돌고래의 저항’이 발생한다. 토라진 돌고래가 특정 조련사를 거부하기도 하고, 리더 돌고래의 주도로 일부 묘기를 빠뜨려 쇼를 빨리 끝내기도 한다. 

제돌이는 2013년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거기서 제돌이는 다른 행위자들과 다른 양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바닷물, 해류, 햇빛, 차가운 바람 그리고 최근에는 돌고래 관광을 하러 찾아오는 인간들과 요트들도 있다. 그러면, 두 공간-수족관과 야생-에서 돌고래와 인간이 맺는 관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둘을 비교해본다면 돌고래를 대상으로 한 생명정치의 작동 양식이 더 뚜렷하게 부상할 것이다. 






사진설명 = 서울대공원 수족관 내실에서 ‘스테이셔닝’을 하고 있는 제돌이. 스테이셔닝은 사람이 오면 물가로 다가오는 행동으로, 돌고래가 수족관에 들어와 맨 먼저 학습하는 동작이다.  사진=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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