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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6호] 지극히 정치적이지만 아직도 정치로 불리지 못하는 이슈, 돌봄과 돌봄공공성

지극히 정치적이지만 아직도 정치로 불리지 못하는 이슈, 돌봄과 돌봄공공성

 

박 선 경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코로나19 재난 위기로 인해 우리 사회의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몇 편의 광고들이 있다. 한 음식배달서비스앱 광고는 멀리 사는 자녀의 생일상을 앱으로 쏘라고 권한다. 어떤 커피 광고는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을 하는 엄마에게 커피 타고 쉬어가라고 한다. 케이블의 키즈맞춤형 VOD 서비스 광고는 심지어 부모를 향한 일종의 협박으로 시작한다. 식탁에서 재택근무를 하면서 통화중인 엄마는 아이가 공차며 노는 소리에 업무가 방해되자, 아이에게 잠깐만 티비를 보고 있으라고 말한다. 이어서 나오는 멘트는 “아이를 티비 앞에 방치하는 이 잠깐만이…….”로 시작하며 부모의 불안감을 자극한다. 이런 광고들은 코로나19 재난 위기로 인해 돌봄의 책임을 고스란히 개인의 몫으로 떠안게 된 이들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내는지를, 그리고 가사일과 아이돌봄의 부담이 어떻게 불평등하게 배분되고 있는지를 잘 드러낸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려는 목적을 가진 상업광고가 코로나19 재난 위기 속 돌봄부정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자체가 일종의 아이러니이다. 다소 과장하자면, 이런 광고는 돌봄부정의 문제를 정치나 사회가 나서서 해결하지 못할 것을 직감적으로 감지하는 개인에게 돈으로, 상품으로 돌봄문제를 해결하라고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봄은 전적으로 정치적 이슈이다(Tronto, 2013). 모든 시민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성장하고, 누군가를 돌보기도 하다가, 다시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죽게 된다. 자녀돌봄, 노인돌봄, 장애인돌봄 등 다양한 돌봄의 종류를 떠올려 본다면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서로 돌봄을 주고 돌봄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도 이 모든 돌봄의 과정 속에서 발생할 비용이나 이익은 그 나라의 의료제도, 복지제도, 교육제도, 그리고 시민들의 돌봄에 대한 인식과 정책 선호에 따라 제각각 다르게 계산될 것이고 다르게 분배될 것이다. 


  이처럼 지극히 정치의 영역인 돌봄이슈는 그동안 개인이나 가족 간의 문제 혹은 특정 성별의 문제만으로 취급되었을 뿐, 공적 이슈라는 인식이 부족했다. 그러나 코로나19재난 위기로 인해 돌봄의 일부를 책임져왔던 공공기관의 활동이 멈추자 돌봄 부담은 개인에게로 불균등하게 부과되었고 이는 역설적으로 다수의 시민들에게 돌봄의 중요성을 깨닫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고려대학교 거버넌스의 다양성 SSK 사업단이 2020년 8월에 시행한 여론조사는 돌봄중요성과 돌봄의 공공성에 대한 시민의 인식이 어떤지를 잘 보여준다. 이 조사는 보건의료, 교육, 장애인돌봄, 노인돌봄 및 아이돌봄 등 세부영역별로 돌봄이 국가의 책임인지 개인의 책임인지를 물었는데, 돌봄이 국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보건의료는 응답자의 57%, 교육은 51%, 장애인돌봄은 43%, 노인돌봄은 37% 그리고 아이돌봄은 응답자의 29%가 해당 돌봄의 많은 부분이 국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돌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단순한 수사를 넘어서는 듯도 하다.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돌봄교사, 장애인활동 보조인 등 돌봄노동자에 대한 임금인상과 처우개선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80% 이상의 응답자들이 이들의 처우개선에 찬성했다. 통상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집단에 대한 임금인상이나 처우개선에 보수적인 편인 한국의 시민 인식을 감안하면, 위의 수치는 코로나19 재난 위기가 만들어낸 약자에 대한 사회적 지지로 과장해서 해석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만큼 높은 수치이다. 

 

  그렇다면 이제 돌봄의 공공성이 확보되는 건 시간문제일까? 시민들이 돌봄을 국가의 책임이라고 이해하고 있으니, 이제 시민들이 돌봄을 정치 영역의 전면으로 내세워 돌봄공공성을 확보하라고 국가에 요구할까? 앞서 언급한 설문자료를 분석한 박선경과 김희강(2021)의 연구는 돌봄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걸림돌이 의외의 곳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보수이념을 가진 사람일수록, 성차별적 사고를 가진 사람일수록 그리고 여성일수록, 돌봄이 국가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았고 돌봄노동자의 처우개선에도 반대할 확률이 높았다. 잠깐만, 여성이라고? 그렇다. 가족 내에서 각종 돌봄을 담당하고 있을 여성들이 돌봄을 국가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견 모순적인 이러한 결과는 여성 집단 내 세대간 차이에 의한 결과였다. 여성 중 장년층은 돌봄이 국가책임이라고 생각할 확률이 가장 낮았으며 돌봄노동제공자들의 처우개선에도 가장 보수적이었다. 돌봄의 짐을 본인들의 생애주기동안 평생 감당해왔을 장년층 여성들이 왜 돌봄의 공공성에 보수적일까? 한 가지 힌트는 성별분업인식과 성차별적 사고이다. 세대와 성별을 기준으로 집단을 구분하여 성차별적 사고의 정도를 비교분석한 결과를 보면, 청년 세대 여성은 성차별적 사고에 가장 강하게 반대하지만, 장년 세대에서는 남녀 구분없이 성차별적 사고를 가질 확률이 높았다. 아마도 장년층 여성에게 돌봄은 여성인 자신들의 일이므로 돌봄을 국가의 손에 맡긴다는 것은 직무유기나 불효 혹은 부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돌봄 이슈는 아직도 사적 영역과 개인의 선택으로만 좁게 그리고 작게 명명되어 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돌봄의 짐을 온전히 감당하면서도 그것의 공공성을 수용하는 것이 직무유기라고 생각하는 장년 세대와 돌봄의 공공성을 주장하는 청년세대 간 간극은 정치 언어로 발화되지 못한 채 가정을 맴돈다. 매일 누군가의 집에서 엄마와 딸이 혹은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갈등하며, 돌봄을 대체할 도우미이모님이나 비싼 사립요양병원을 각개전투로 찾을 뿐이다. 지극히 정치적이지만 아직도 정치로 불리지 못한 것은 언제 정치의 언어로 대중적으로 발화될까? 정치인데 정치가 아닌 것으로 불리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돌봄부정의를 더 겪어야 할까?

 

참고문헌
Tronto, Joan. 2013. Caring Democracy New York, NY: New York University Press.

박선경·김희강. 2021. “코로나19 위기 속 돌봄의 공공성과 국가 역할에 대한 인식” 『한국과 국제정치』 
37권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