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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6호] 학생 연구자의 ‘사이 시간’

학생 연구자의 ‘사이 시간’

김 선 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매일의 스케줄이 줌(ZOOM)에 접속하는 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코로나19의 3차 대유행으로 5인 이상 집합 금지 등 강한 거리두기 조치가 시행된 작년 12월 이후의 일이다.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건 약속의 기본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장소를 빠뜨리기 시작했다. 소규모로 사람들을 모아서 하던 강의와 스터디, 질적 연구자의 일상인 인터뷰, 각종 회의까지 줄줄이 비대면으로 전환됐다.

 

  랜선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일상은 어떻게 보면 좀 더 효율적이었다. 옷을 차려입고 장소까지 가는 시간의 수고를 들이는 대신, 상의만 대강 챙겨 입고 모니터 앞에 앉으면 일할 준비가 끝난다. 이동 시간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니 같은 시간 안에 좀 더 많은 일정을 소화할 수도 있다. 다들 온라인 소통에서 피로를 느끼니 핵심 위주로만 이야기하고 일하는 시간이 짧아지는 느낌도 든다. 인터뷰할 때는 의외의 소득도 있었는데, 인터뷰이가 연구자인 내 시선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기에 오히려 표정에서 드러나는 비언어적 신호를 관찰하기가 좀 더 쉬웠다. 녹음기를 따로 준비하여 녹음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알아서 기록이 남았고, 녹취록을 만드는 과정도 좀 더 순조로웠다.

 

  그러나 따지자면 득보다는 실이 컸다. 온라인으로 모든 생활의 방식을 옮긴 동안, 나는 대학원생 연구자의 삶에서 ‘사이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체감하게 됐다. 우선 물리적인 움직임이 주는 신체의 활력이 무너졌다. 온라인 전환이 우리에게 장소로부터의 자유를 준 것 같지만, 오히려 각자의 집이라는 좁은 장소에 우리를 묶어 놓았다. 좋은 화상회의 환경을 위해서는 가능하면 혼자 분리된 조용한 공간이 필요한데, 그게 집 말고는 딱히 없기 때문이다.

 

  나는 평상시 집에 오래 있는 것을 기피하는 편인데, 무언가 침잠되는 기분이 드는 탓이다. 오히려 적당한 타인의 시선과 생활 소음이 있는 공동 연구실이나 카페 같은 곳에서 더 좋은 집중력을 발휘하곤 했다. 다음 온라인 일정을 위해서든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이든 집에 묶여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마음이 불안정해지는 경험을 했다. 장소들을 옮겨 다니면서 획득하는 생활 운동량과 일조량을 따로 신경 써서 채워야 하는 상황이 되니, 그걸 못 할 때마다 체력도 점차 저하됐다.

 

  정해진 목적에 맞는 커뮤니케이션을 마치고, 서로에게 손을 흔들다 보면 나오는 ‘이 회의는 호스트에 의해 종료되었다’라는 메시지도 여전히 적응하기 어렵다. 면대면으로는 정해진 일정이 마무리되어도 식사나 차를 함께 하거나 아니면 함께 도서관까지 이동하는 동안에라도 여러 방식으로 소통이 이어지고, 특히 대학원생에게는 공식적인 수업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사적인 대화가 의외의 영감을 줄 때도 많다. 인터뷰 상황에서도 녹음을 시작하기 전후에 일어나는 소통, 그 공간이 주는 고유한 분위기가 연구자에게 제공하는 정보값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접속 종료 후 모든 과거가 꿈처럼 되어버리는 비대면 환경에서 사이 시간에 벌어지는 번외 소통의 가능성은 매우 적어지고 공허함만 남는다. 특히 세 학기째 등교할 일이 거의 없이 온라인으로만 동료들을 만나게 된 대학원생들은 이제 선후배의 얼굴과 이름조차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가 됐다.

 

  생각해보면 내 배움과 성장의 많은 부분은 대학원 공식 수업 바깥의 사이 시간에 일어났다. 비슷한 길에 뜻을 둔 학생들이, 그리고 교수가 같은 공간에 모여 있기에 생겨나는 우연한 교류의 계기가 긴요했다. 비싼 등록금을 낸 만큼, 조금이라도 사이 시간을 풍부하게 채우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적극적으로 빈 강의실을 찾아 수업에서 채울 수 없는 지식을 얻기 위해 스터디를 함께 하기도 했고,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능률이 있든 없든 연구실에 머무르는 날이 많았다. 가까운 도서관에서 수많은 장서와 원문복사, 상호대차 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고, 식사를 해결하기도 편한, 무엇보다 동료가 함께 있는 공간이 주는 힘은 작지 않았다. 

 

  비대면 전환과 사이 시간의 실종 상황에 학생 연구자들이 그저 아쉬워만 하지는 않는다. 마스크가 생활필수품이 된 세상에 어쨌든 우리 모두 적응하고 있듯이, 같은 장소에서의 대면 접촉 기회가 줄어들면서 잃어버린 사이 시간의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라도 채워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조금은 편하게 사용했던 학교가 공간을 내어주지 않으니, 카페나 스터디룸 같은 장소를 찾아서라도 소규모 모임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완전히 온라인으로만 이루어지거나 혹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동시에 결합하는 방식으로 번외의 배움을 위한 스터디 등이 이루어진다. 내가 속해 있는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에서도 아쉽게나마 서로의 논문 초고나 연구 아이디어, 칼럼, 비평글 등을 합평하는 모임이나 일상적인 스터디를 온라인 전환하여 진행해 왔다.


  온라인 모임은 많은 한계가 있지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는 부분 또한 없지 않다. 이전에 사이 시간의 배움은 주로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 왔다. 공간은 물론 인적 네트워크까지도 학교와 학과라는 물리적 공간 내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강제로 학교 바깥으로 ‘내쫓긴’ 상황 속에서 학생 연구자들이 만들어나가는 교류의 시간은 학교, 지역, 직업 등을 넘나드는 새로운 종류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좀 더 동질적인 사람들끼리 하는 논의에 있는 체계성이나 깊이 등은 조금 아쉬울 수 있었지만, 인간과 사회를 탐구하는 연구자로서 자기 학과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다양한 지식 체계, 그리고 다양한 삶의 현장들을 마주하게 되기도 했다.


  아쉬운 점, 나아가 다소 화가 나는 지점은 이렇게 사이 시간의 중요성을 감각적으로 알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주체는 오직 학생 연구자들 자신뿐이라는 데 있다. 연구자들조차 각자도생하는 신자유주의 대학이 문제라는 진단은 거의 비판적 학계의 정설인 데도, 막상 코로나로 인한 위기 상황에서도 복구의 책임은 오롯이 연구자들 개인에게만 주어졌다. 

 

  대학은 무엇을 하고 있나. 방역을 핑계로 건물을 폐쇄하거나 다양한 서비스 이용에 제한을 걸어버리고서는, 빠르게 비대면으로 전환하여 이전과 동일한 시간의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는 핑계로 코로나 이전과 동일한 등록금을 걷고 있다. 학계 혹은 선배 연구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 어쨌든 학술대회를 잘 치러내기 위해 온라인 행사 대행사에 많은 예산을 몰아주는 동안 학생이나 후배 연구자의 삶에 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한 것처럼 느껴진다.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나. 많은 학생 연구자들이 ‘학문공동체에서 배제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거나, ‘사이 시간의 배움’을 잃고 있는 순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