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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6호] 이방인으로서의 생활

이방인으로서의 생활

주 남 (서강대 일반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일에 번아웃이 되어 승진 직전에 직장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왔다. 일에 지쳐있던 나에게 한국 유학 생활은 행복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일종의 회피이기도 하다. 일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시끄러운 주변인들의 평가에서 벗어나는 것이 소원이었다. 유학을 온 후, 나는 한국어학당에 다니며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았다. 대학원에 입학한 후에는 명동 화장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좋은 사람들만 만나면서 나의 유학 생활은 알차고 행복한 날들로 가득 채워졌다. 어느새 한국에서 생활한 지 3년이 되었다. 

 

  유학생활이 쉽고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코로나19가 터지고 나서 세상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바뀌었다. 겨울방학이었던 나는 여행객으로 가득 찼던 명동이 2주 만에 텅 빈 거리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억대 월세를 내는 상가들이 어떻게 버틸 수 있는지 궁금해하면서, 길어도 몇 달이면 좋아질 것 같아서 모두가 조금만 버티면 되겠다 생각했다. 몇 달 뒤 사장님은 직원과 나와 같은 아르바이트생을 정리했다.

 

  한동안 일에 지쳐 쉬는 시간만 있으면 집순이로 지냈던 나는, 인간은 역시 사회적 동물이라는 걸 깨우쳤다. 수업 날 신나게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만나고 수다 떨던 날들, 수강생이 많아 비좁았던 강의실, 명동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와 직원 언니들, 사람이 많아 걷기 힘들었던 길거리, 버스킹을 하는 밴드 주위 잔디에 앉아 노래를 들었던 주말, 밥 먹듯이 자주 갔던 중국, 부모님 그 모든 것들이 전부 그리웠다. 

 

  징징거리지 말자. 세상의 모든 사람은 나와 똑같이 코로나19 상황 속에 갇혀 있으니까. 첫 확진자가 발견된 중국에서 온 나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 식당, 지하철 등 온갖 장소에서 나와 중국 친구가 중국어를 할 때면 우리와 가장 멀리 있는 자리로 옮긴 한국 분들을 이해해 주기로 했다. 중국 사람이라고 자기소개를 할 때 상대방이 안 좋은 시선으로 볼까봐 “저 중국에 안 간지 오래됐어요”라고 한 적도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뒤돌아보면 내가 중국인인 것만으로 위축되고 힘들었던 모습이 바보 같았지만, 아직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오로지 코로나 때문에 중국인인 나의 정체성을 숨기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나는 한국에 와서 항상 좋은 사람만 만났던 것 같다. 좋은 사람들과 악의 없이 대화하고, 중국에 대한 인식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잘 모르는 점들이 꽤 있다는 걸 느꼈다. 나는 소통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한국어 실력에 한계가 있어 깊은 이야기하지 못해도 사람들이 나를 통해 내가 살아왔던 나라를 조금이라도 더 알게 하는 게 유학생에게 일종의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언론에서 중국에 관한 보도나 사람들의 댓글은 달랐다. 한국 뉴스에는 ‘중국 관련 뉴스 전용 프레임’이 생성되어 있었다. 댓글에서 중국에 대한 공격적인 표현과 혐오 감정이 나에겐 너무나 생생하게 보였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싫어하는 감정이 뼛속 깊이 나올수록 나에게는 더욱 상처가 되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이런 격차는 계속 존재했지만,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부터는 더욱 심해졌다.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이것을 볼 때마다 아쉽고 힘든 적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중국인 혐오를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나에게 공부는 해답을 찾는 과정이 되었고, 과정을 이해해가면서 계속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자신의 행동과 상관없이 정해진 고정관념 속에서 혐오와 차별을 받는 것이 누구에겐 불공평하고 때로는 억울해할 수도 있다. 

 

  최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한국인 4명이 포함된 아시안 8명이 숨진 총격 사건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사는 아시아 사람들을 공포와 불안 속으로 몰아넣었다. 너무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 뉴스를 접한 나도 충격을 받는데, 고인을 사랑한 가족과 친구들은 어떠한 심정일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더욱 슬픈 것은 혐오 사건에 의해 파생된 또 다른 혐오다. 이것은 아시안 혐오와 범죄자의 잘못이지, 살해되지 않은 중국인의 탓은 아니다.

 

  내가 이제껏 살아왔던 세상은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훈훈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중국인으로서 중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한국에서 외국인으로서 교수님들과 친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난 사랑을 두 배로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나의 불안한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다. 이방인으로 사는 사람들이 이방인으로만 취급되지 않고 사랑을 받으며, 불안해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곳에서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으면 한다. 버티기보다는 기다리겠다. 더 좋은 세상이 다가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