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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6호] 플랫폼 노동의 현상과 과제

플랫폼 노동의 현상과 과제

권 오 성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

 

플랫폼 노동의 현상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AI나 빅데이터에 의해서 가능해진 고도의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그때 그때의 수요에 따라 초단기적으로 노동력을 활용하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모델이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하여 일감을 얻는 사람(이하 편의상 “플랫폼 노동자”라고 한다)의 취약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플랫폼 노동이 기존의 노동법 체계에 던지는 가장 큰 고민은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로 인정할 수 있는가이다. 그런데 플랫폼 기업은 플랫폼 노동자에게 통제력을 직접 행사하기보다는 ① 플랫폼 노동자에게 일할 여부를 선택하게 하고, ② 일을 하기로 한 경우에는 플랫폼이 제공한 매뉴얼에 따라 일을 수행하도록 하고, ③ 일의 수행결과는 고객이 평가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노동력을 조달 및 활용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① 플랫폼 기업이 보내는 신호(호출)에 응답하는 행위는 동의로 평가되고, ② 업무에 대한 지시명령은 사전에 제공된 매뉴얼로 추상화되어 종속성이 희석되며, ③ 업무에 대한 감독과 평가는 ‘별점평가’의 방식으로 고객과 분업한다. 이러한 ‘종속성 희석 매커니즘’을 통하여 종래 임노동의 방식으로 수행되던 업무는 독립노동의 모습을 띠게 된다. 이로 인하여 플랫폼 경제에서는 종속적 노동자와 독립계약자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으며, 이러한 모호함은 플랫폼노동자에게는 법적 보호를 상실할 ‘위험’으로 기능하는 반면, 플랫폼 기업에는 노동법을 회피할 ‘기회’로 기능한다. 그 결과 플랫폼 기업은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로 자신의 모습을 엄폐하고, 플랫폼 노동자는 그저 손에 쥔 또는 바이크 운전대에 줄지어 달린 스마트폰 화면을 주시하며 누군가 보낼 신호를 기다릴 뿐이다. 이러한 신호에 응답하는 행위는
자발적 동의로 평가되고, 임노동은 독립노동(le travail independant)으로, 임노동자는 자영인으로 변신하고, 이로써 플랫폼 노동자는 사용자 없는 노동자가 된다.

 

  진짜 사용자는 꼭꼭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플랫폼 사업모델은 반드시 하나의 기업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업의 네트워크에 의해 공동으로 운영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복수기업의 네트워크(poly corporate network)의 출현으로 종래 대부분 1:1의대응 관계에 있던 사업(business)과 기업(organization)의 관계가 다양한 유형으로 분화하였고, 그 결과 사용자의 식별에 곤란한 문제를 야기하였다. 예컨대 전통적인 택시회사가 승용차를 소유하고, 기사를 고용하여 육상운송사업을 하였다면, ‘타다’는 렌터카 회사인 쏘카가 승용차를 소유하고, 브이씨엔씨가 타다 플랫폼을 운영하고, 파견업체가 기사를 공급하였다. 타다 서비스를 사용하는 승객의 입장에서 보면 쏘카와 브이씨엔씨와 파견업체는 유사택시라는 육상운송사업을 ‘공동으로’ 영위하는 복수의 기업들일 뿐이다. 이처럼 복수의 기업이 네트워크를 이루어 하나의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하나의 기업만 사용자로 보아야 한다는 전통적인 인식을 고수할 경우 하나 이상의 기업은 사용자로서의 법적 책임을 완벽하게 회피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경계의 모호화와 네트워크 사업구조는 플랫폼 기업이 노동법상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플랫폼 기업은 이러한 규범 회피를 통하여 자신이 마땅히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노동법적 보호를 박탈당한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온전히 준수하고 있는 다른 기업에,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해야 하는 국가에 전가한다. 결국 플랫폼 기업이 ‘혁신’이란 이름으로 자행하는 근로자성 은폐와 비용의 전가는 가깝게는 중산층 소멸과 소득 불평등의 원인이 되고, 멀게는 사회적 연대 해체와 복지국가의 파탄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플랫폼 노동에 대한 정책과제


  온라인 플랫폼은 하나의 스크린 같다. 우리 사회 노동현실은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스크린 위에 하나의 상(像)을 그린다. 그런데 기존 노동현실은 수 세기 동안 형성된 노동법의 규율 덕분에 원생적 상태를 다소 극복했다면 온라인 플랫폼에 맺히는 상은 노동법을 우회하려는 자본의 탐욕과 혁신으로 포장된 비용 전가로 인하여 원생적인 모습을 그린다. 따라서 플랫폼 노동을 어떻게 법적으로 규율할 것인가의 문제는 ‘원생적 상태의 플랫폼 노동을 어떻게 규범화된 상태로 복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노동법의 적용대상에 관한 전통적인 사고는 근로자가 엄격한 의미에서 종속적인 상황에 있을 때만 노동법을 적용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와 민법이나 상법의 적용을 받는 독립사업자의 경계에 있는 독립노동의 증가는 기존의 법적 틀 내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야기한다. 따라서 타인을 위해 동일한 노무를 제공하면서도 근로계약에 의하여 노동법 및 사회보장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보호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필자는 모든 일하는 사람을 보호대상으로 하는 일반법으로서의 ‘일하는 사람의 보호를 위한 법률’의 입법을 제안한다. 이러한 입법은 유사근로자(employee-like)와 같은 제3의 범주를 추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통적인 근로자를 포함한 모든 ‘일하는 사람’을 포괄(inclusive)하는 일반법의 제정을 의미한다. 다만, 이러한 포괄적 노동법제 도입에 앞서 플랫폼 노동자의 고용상 지위를 조작하여 노동법을 회피하려는 플랫폼 기업들의 ‘규범회피행위’에 적극적 개입하여 오분류를 교정하여야 한다. 플랫폼 노동자를 너무 당연하게 ‘자영업자’로 취급하는 인식은 착시에 불과하다. 따라서 오분류로 교정해야 할 사안(유사택시, 배달)을 중심에 두고 새로운 보호방안을 모색하는 논의는 오분류를 교정하는 기제가 아니라 오분류를 면책하는 매커니즘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오분류 문제를 교정하기 위한 유용한 방법으로 근로자성 판단에 관한 입증책임의 전환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일하는 사람의 규범적 기본값을 ‘근로자’라고 추정하고, 이러한 추정을 깨뜨리고 싶은 당사자에게 반증의 입증책임을 부담토록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전통적인 입증책임 분배원칙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생소할 수 있겠으나, 산업혁명 이후 노동계급의 출현 과정 및 근대적 생산방식의 보편화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타인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을 기본적으로 근로자로 추정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의 여명기에는 근로자와 비근로자가 명확하게 분기되지 않았다. 공장에 출근하는 사람 중에는 자신이 사용할 도구를 가져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맨몸으로 온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일반화, 보편화 되기 전의 단계에서는 ‘일하는 사람의 규범적 기본값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가정’이 타당했을 수 있다. 실제로 초기 자본가들은 '생산'의 과정을 통제할 기술을 알지 못했다. 산업혁명 이전 장인들의 노동은 기본적으로 도급계약이었다. 즉, 작업방법은 장인들에게 내부화되어 있어 의뢰인(자본가)이 일일이 지시명령을 내리는 일은 없었다(정확하게는 지시명령을 내릴 능력이 없었다). 당시 고용계약의 전형적인 분야는 집사나 하녀 등 가정 내 가사노동자였다(주종법의 적용대상). 그러나 산업혁명에 의해 공업 분야의 노동 방식이 크게 바뀌어 종래의 독립성이 높은 장인 노동에서 공장 전체의 작업 중 일부를 할당받아 수행하는 것이 되었다(분업화). 이러한 전환에 의해 노동자는 작업내용을 사용자로부터 지시받고, 그대로 수행하는 만큼 약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특별히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간주되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대부분의 생산활동이 기업에 의해, 즉 근대적 생산방식에 의해 수행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일하는 사람의 규범적 기본값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18세기적 가정’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규범적인 기본값 자체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즉, 일하는 사람의 규범적 기본값을 ‘근로자’라고 추정하고, 이러한 추정을 깨뜨리고 싶은 당사자에게 반증의 입증책임을 부담하게 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일상화된 지금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부합할 것이다.

 

플랫폼 노동운동의 과제

 

  온라인 플랫폼은 플랫폼으로부터 일감을 할당받아 작업하는 노동자들이 서로를 연대의 대상이 아니라 한정된 일감을 두고 다투는 경쟁자로 인식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인식은 노동자의 연대를 근본적으로 약화시킨다. 플랫폼 노동자에게 일터(그런 것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는 연대의 마당이 아니라, 자발적 자기착취의 배양기(培養器)일 뿐이다. 각자가 처한 상황의 다양함 때문에 이해의 공통성을 자각하기 어렵게 되어버린 플랫폼 노동자에게는 그들을 서로 결합시켜 새로운 연대를 구축(構築)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규모의 우위를 점한 선도 기업이 자연독점을 쉽게 달성할 수 있는 플랫폼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플랫폼 노동자들의 단결 또한 특정 업종의 플랫폼 노동자 전체의 단결이라는 큰 목표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직종별 노동조합 형태의 강력한 단결체를 조직했을 때에야 비로소 독점적 플랫폼 기업에 유효하게 대항할 수 있는 교섭력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정부와 국회를 실효적으로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단체교섭권’이라는 헌법에 규정은 되어 있으나 빈번하게 무시당하는 권리가 아니라 전체 플랫폼 노동자의 단결이라는 ‘실력의 행사’야말로 플랫폼 노동을 둘러싼 원생적 상황에 균열을 내는 유효한 타격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무엇보다 플랫폼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 즉 계급성을 진지하게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 각자가 서로를 한정된 일감을 두고 다투는 경쟁자로 인식하는 한 연대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