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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5호] 기술 변화에 따른 트렌드의 변화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대학 겸임교수 민 병 운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가 주최하는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는 미래 산업의 동향을 주도할 최신 기술과 신제품을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기술 박람회다. 그동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규모가 축소됐었으나 CES 2023은 173개 국가에서 3,000여 개의 기업들과 11만 5,000여 명이 참가, 2022년 대 비 약 40% 이상 커진 규모로 개최될 정도로 온전한 회복세를 보였다. 이번 CES 2023은 모빌리티, 메타버스, 로보틱스, 스마트 시티·홈, 디지털 헬스케어 등을 주제로 펼쳐졌다.

 

1. 가전(家電)이 아닌 차전(車電)의 시대로

CES 2023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모빌리티의 확장’에 있었다. 가장 많은 기업과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자동차 전시관은 모터쇼를 방불케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CES의 C를 ‘Consumer’가 아닌 ‘Car’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중요한 점은 CES 2023에서 선보인 자동차들이 단순한 전기차나 자율주행차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모빌리티의 확장’이 말해주듯 이번에 선보인 자동차들은 차량 내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경 험을 혁신 기술로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 디스플레이는 자동차의 차체, 창문, 계기판 등을 모두 포괄하였다. 이에 대해 실리콘밸리 혁신 미디어 더밀크(The Miilk)는 ‘가전(家電)을 넘어 차전(車電)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했다. 예를 들어 BMW는 이번에 ‘I 비전 디(I Vision Dee)’를 선보였는데, 이 모델은 E-잉크(E-ink) 기술을 통해 차체 색상을 32가지로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실내의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증강현실과 가상 세계를 구현하여 운전자의 요구에 따라 외부에서 유입되는 빛의 밝기를 조절하고, 다양한 운행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심지어 디스플레이가 운전자와 대화하며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자동차가 단순한 운행 수단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이 된 것이다. 



BMW I Vision Dee (출처 : TechCrunch) BMW I Vision Dee (출처 : Autoweek)

소니 역시 자동차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소니는 혼다와 합작한 기업인 소니 혼다 모빌리티(Sony Honda Mobility)를 통해 ‘아필라(Afeela)’를 공개했다. 아필라의 지향점은 모빌리티가 아니라 '움직이는 엔터 테인먼트 플랫폼'이다. 즉, 아필라의 전면에 ‘미디어 바’ 디스플레이가 설치돼 운전자에 따라 다양한 콘텐츠가 제공되고, 운전자의 성향에 따라 맞춤형 게임이나 콘텐츠가 제공되는 것이다. 소니의 영화, 게임 등 콘텐 추를 자동차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아필라는 ‘바퀴 달린 플레이스테이션’, 또는 ‘플스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소니가 그동안 빼앗겼던 미디어 생태계를 되찾기 위해 자동차를 선택한 것이다.

 

소니와 혼다의 전기차 아필라(Afeela)
(출처 : Sony Honda Mobility)
소니와 혼다의 전기차 아필라(Afeela)
(출처 : Sony Honda Mobility)

BMW와 소니의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는 점은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전자제품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애플이 ‘애플카’를 만들 예정이라는 소식은 오래전부터 들려왔지만, 상용화를 앞둔 실제 자동차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전에는 자율주행과 같은 모빌리티 기술에 초점이 맞춰졌었지만, 이번에는 그보다 자동차 안에서의 다양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있었다. 최근 3년 간 사람들은 집이 아닌 공간에서도 사적 공간을 갖길 원했고, 이동할 때에도 대중교통이 아닌 안전하고 쾌적한 나만의 이동수단을 갖길 원했다. 이런 사람들의 변화된 니즈(needs)가 바로 모빌리티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결국 자동차는 곧 새로운 모바일 디스플레이인 것이고, 이에 따라 새로운 산업의 재편도 기대하게 한다. 즉,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TV, 태블릿, 스마트폰에서 차량용 디스플레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그에 따라 미디어 콘텐츠와 광고 기업 들은 차량용 디스플레이에 특화된 콘텐츠 제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2. 리얼리티에 기반한 메타커머스

 

최근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메타버스 역시 친숙한 개념이 되었다. 그래서 CES 2023에서도 메타버스가 주요 키워드로 선정되며 메타버스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가 선보여졌다. 특히, 그동안 메타버스가 로블록스, 제페토와 같은 게임 플랫폼에서의 활용에 그쳤다면 이번 CES 2023에서는 오프라인과 융합되어 실제로 소비자가 소비 활동을 할 수 있는 메타커머스로 구현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사람들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오히려 오프라인 쇼핑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했고, 오프라인에서의 소통 역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터치캐스트(Touchcast)는 메타버스 큐브(Metaverse Cube)를 선보였다. 메타버스 큐브는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그 매장을 디스플레이로 둘러싸 현실에서 가상 매장을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즉, 디스플레이에 가상 점원이 등장해서 아이폰에 대해 설명하고, 판매까지 담당한다. 소비자는 해당 매장에서 핸드폰 구매를 결정하면 매장 내 엘리베이터에서 구매한 제품을 받을 수 있기도 하다. 

 

국내 참가 기업 중에서는 ‘롯데하이마트 VR 스토어’가 유사한 개념을 구현했다. VR 스토어는 메타버스 인 허브 월드(Hub World)에 구현된 가상 매장이다. 이 가상 매장에서 여러 가전제품을 둘러볼 수 있고, 가상 상담원을 통해 자세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이런 메타커머스에 대해 김학용 IoT전략연구소장은 “이번 CES 2023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VR 기기, PC 속의 메타버스를 한계를 넘어 일상생활 속에서 메타버스가 구현됐다”며 박람회의 의의를 되새겼다. 

 

Touchcast의 Metaverse Cube (출처 : Touchcast) 롯데하이마트 VR 스토어 (출처 : 롯데하이마트)

 

3.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디지털 헬스케어와 푸드테크

 

CES 2023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너무 먼 미래에 대한 기술력 과시보다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방점이 찍혀져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당장의 건강과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디지털 헬스케어와 푸드테 크기 주목받았다. 특히, CES 2023에서는 디지털 헬스 섹션이 별도로 마련됐고,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가 지난해보다 더 비중 있게 다뤄졌다.

 

그 중 국내 스타트업 포티파이는 온라인 스트레 스 관리 서비스 '마인들링'을 선보였다. 마인들링은 스마트폰 카메라에 손가락을 접촉하면 카메라가 손가락의 혈류를 감지해 심박변이도(HPV)를 측정하고 바로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하는 서비스이다. 나아가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맞춤형 치유 설루션을 통해 스 스로 마인드 케어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설루션이다. 더불어 삼성전자는 TV를 통한 원격의료 시스템을 선보였다. TV를 통해 진료 예약을 하고 원하는 시간에 원격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포티파이의 마인들링 (출처 : 에이빙)

 

이와 함께 푸드테크로 주목받은 기업은 농기계 업체 존디어(John Deere)였다. 존디어는 운전자 없이 24시간 비료와 농약을 뿌리는 AI 기술을 선보였다. 이제 스마트폰 조작을 통해 밭을 갈거나 씨를 뿌리고, 제초제를 살포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존 디어가 주목받은 이유는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안정적으로 식량이 공급될 수 있으려면 결국 농업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후변화와 식량 위기, 노동력 부족의 공통된 국제 환경 속에서 최첨단 기술만이 생산의 지속가능성을 보장케 한다는 점이 작용한 결과이다.


존디어(John Deere)의 자율주행 트랙터 (출처 : Mint Lounge)

 

이번 CES 2023의 키워드는 '생존을 위한 혁신'이었다. 3년 간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인류는 생존을 고민하게 됐고, 반대로 기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렇기 때문에 혁신 기술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이번 CES 2023에 반영되기도 했다.

 

4. CES 2023을 통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티핑 포인트

 

CES 2023의 기술 흐름과 트렌드 변화를 보면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큰 기업이 작은 기업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빠른 기업이 느린 기업을 선도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빅테크 기업들도 있었지만 스타트업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타트업은 빠른 기업의 생존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디어, 광고, 마케팅 비즈니스로 포커스를 좁혀보면 스타트업은 기술을 선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전반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챗GPT 역시 실리콘밸리의 대표 스타트업인 오픈AI(OpenAI)에서 탄생했고, 카피라이팅, 이미지, 음악, 영상, 버추얼 모델 제작 등 스타트업들이 개발한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이 두드러지게 성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광고 기반 기업이 아닌 기술 기반 기업이라는 점이고, 이런 스타트업들이 등장하면서 전문 광고 회사가 아닌 인공지능 기반의 기업들이 광고와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에 영향력을 넓히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 레거시 기업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실제 그들이 온전한 크리에이티브를 구현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을 통해서 크리에이티브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줄여주거나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방향성을 거꾸로 기존 레거시 기업들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지금부터 우리가 주목할 변화는 큰 기업 중심으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관심 있게 봐야 할 변화는 빠른 기업을 통해 일어날 것이고, 스타트업들이 있는 곳에 변화와 기회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