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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5호] 미·중 전략경쟁 시대 국제정치 이해하기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외교전략센터 연구교수 정 상 미

 

 

요즘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지하는 ‘안미경중(安美經中)’ 상황에 있었던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중 대립이 심화가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집니다.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견인해 온 것이 바로 최대 시장인 중국의 성장이었고, 이 때문에 우리에게 중국의 부상은 곧 경제적 기회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2016년 7월 한국 정부가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DD) 배치를 결정하자, 이에 반발한 중국 정부는 다양한 한국의 대중국 경제적 의존도를 활용하여 보복성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 사태를 계기로, 한국은 중국의 부상이 경제적 위협으로 되돌아올 수 있으며, 미·중 전략경쟁의 격화가 한국의 활동 공간 축소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2023년 5월 시점에서 미·중 전략경쟁의 전개 상황을 논의하고, 다른 자유진영 경제선 진국들의 대응이 한국의 전략에 갖는 함의를 논의하고자 합니다.

 

미·중 전략경쟁은 ‘냉전’의 귀환인가?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전 지역과 사안들에 걸쳐 심화되고 있습니다. 혹자는 현재 상황이 과거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세계가 진영화되어 갈등하던 냉전기와 유사하다며 ‘신냉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2022년 2월 24일 발발한 러시아-우크 라이나 전쟁 이후의 상황은 미·중 경쟁구도가 주변국들을 끌어들이며 이른바 ‘자유진영’ 대 권위주의세력의 진영화가 가속화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미국을 필두로 자유진영 국가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규탄하고 경제제재를 부과하는 한편, 서로를 무제한적인 친선관계(‘friends with no limits’)로 지칭한 중국과 러시아는 개전 이후에도 돈독한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소련의 붕괴 이후 활력을 잃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는(NATO)는 마침내 존재 이유를 되찾고, 서유럽 국가들은 러시아발 군사적 위협에 대비해 방위비 증액에 나섰습니다. 미국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하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연대를 과시하는 동안,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갈등을 중재하고, 북한이 전쟁 중인 러시아를 지원하고, 이란과 중국의 우호 관계가 강화되는 등 익숙한 블록화가 다시 ‘오래된 미래’로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미·중 경쟁과 미·소냉전의 차이

 

1.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 우위

첫째,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로 인해, 미국과 중국이 전면적인 군사적 대결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022년 기준 미국의 국방비 지출은 약 8,770억 달러로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의 39%를 차지하며, 이는 국방비 지출 2 위국부터 11위 국가까지의 국방비를 합산한 38%를 넘는 액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한 전면적 전쟁을 상정하고 미국과 갈등을 키우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대만 문제와 남중국해 영토분쟁이 양국 간 군사적 충 돌 가능성을 높이는 잠재적 위험 요인들로 고려되고는 있지만, 미·중 간에는 미국과 소련의 경우에서처럼 핵전쟁을 포함한 전면적 전쟁을 전제로 하는 군비경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2. 미국의 상대적 국력 쇠퇴와 자국 중심주의

둘째, 현재의 미국은 상대적 국력의 쇠퇴로 인해, 냉전기처럼 파트너 국가들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진영의 결속을 강화하는 ‘큰 형님’의 역할을 맡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를 공격하고, 취임 첫날 세계정치의 리더로서 ‘미국의 귀환(“America is back!”)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집권 이후 바이든 행정부의 행보는 무역, 산업정책, 동맹정책에서 자국 중심주의적 경향을 보임으로써, 결과적으로 전임자인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바이든 대통령이 완성시 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 우방국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샀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문제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자국중심주의는 종종 우방국들조차 경제 분야에서의 각자도생에 나서게 함으로써, 진영 내 미국의 리더십에 균열을 내는 일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3. 진영을 넘어선 경제적 상호의존

셋째, 고도로 진행된 세계화로 인해 미국을 포함해 자유진영의 대부분 국가들과 중국은 높은 수준의 경제적 상호의존도를 보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중국과의 완전한 경제적 단절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 입니다. 미·소 냉전기에는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경제· 통상 면에서도 분리되어 있던 것과 비교하면 분명한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은 안보 문제를 이유로 들어, 첨단 기술 분야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시키는 디커플링(de-coupling)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야를 제외하면 미·중 간 경제적 상호의존은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어, 2022년에는 양국 간 상품교역액 총액이 6,906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국내정치체제 차이를 이유로 자유민주주의 진영 대 권위주의 진영의 대결구도를 강조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대만 문제에서의 입장 차이를 이유로 갈등적인 외교관계를 보여주는 것과는 별개로 경제교류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공통의 문제 상황과 각국의 대처

 

미국의 우방국이자 경제선진국인 국가들 다수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지함으로써 발생되는 딜레마를 공통적으로 겪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화가 고도로 진행되면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전 세계적으로 증대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EU 역시 서로 최대의 무역 파트너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중국은 2022년 對EU수출에서 2위 (1위 미국), 수입에서는 1위 (2위 미국)를 차지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오 랜 안보파트너이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데 한 목소 리를 내 온 서유럽 국가들도 모든 문제에 있어서 미국 편으로 줄을 서기에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유럽 정상들은 러시아 규탄에 대해서는 미국과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도, 중국 견제에 대해서는 미국과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최근 독일(2022년 11월), 스페인(2023년 3월), 프랑스(2023년 4월)의 정상들과 EU 집행위원장(2023년 4월)이 줄 지어 중국을 방문해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입니다. 방중에 앞서 EU 집행위원장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디 커플링(de-coupling)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것은 중국이 산업분야에서 갖는 과도한 경제적 영향력을 정치적 강압의 도구로 활용하는 리스크를 줄이는 디리스킹(de-risking)을 지향해야 한다는 취지의 연설을 했습니다. 이후 여러 국가가 이에 동조하였고, 결국 지난 5월 19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에 이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과 유사한 상황에 놓인 국가로 호주를 꼽을 수 있습니다. 호주는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최근 중국 견제를 목적 으로 만들어진 파이브아이즈(FIVE EYES), 오커스(AUKUS), 쿼드(QUAD)에 모두 가입한 한편,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입니다. 2017 년부터는 중국의 호주 국내정치 개입 논란과 호주의 5G 네트워크 사업에서 중국 화웨이가 배제되며 양국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2020년 호주 정부가 중국을 겨냥해 코로나 진원지에 대한 국제조사를 요구한 것에 대응해 중국 정부가 호주의 대중국 수출품에 대해 관세 폭탄을 부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악화되었던 양국 관계는 2022 년 5월 집권한 호주의 노동당 정부가 새로운 외교정책 비 전을 발표하고 중국 정부도 호주에 러브콜을 보내면서 최근 들어 해빙기를 맞고 있습니다. 올해 5월 무역관계 정상화를 위해 호주 통상장관이 4년 만에 방중 했으며, 7 월에는 중국 외교부장이 호주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당 장 중국으로부터 국가존립을 직접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대만과 미국의 대중국 견제정책에 앞장서 보조를 맞추고 있는 일본도 2022년 기준 중국의 핵심 무역파트너로서의 지위는 잃지 않고 있습니다.

 

종합하면, 미·중 전략경쟁은 미국의 압도적 군사 력 우위, 미국의 자국중심주의적 경향,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높은 상호의존으로 인해 미·소 냉전기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우리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나라들 은 미·중 전략경쟁으로 인한 딜레마에 대처하기 위해 외교·안보 영역과 경제영역에서 각자의 셈법을 가지고 합종연횡하고 있으며, 첨단 분야를 제외한 산업 분야에서는 여전히 자유진영 국가들과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의존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이러한 국제정치의 운영방식을 읽어내고, 여기에 부합하는 대응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생존의 핵심의 내적 경쟁력

 

미·중 전략경쟁심화로 인한 딜레마적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과 산업 분야에서 가진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호주가 지난 3년간 중국의 무역 보복조치를 견디며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호주의 산업경쟁력 덕분이었습니다. 호주 철광석의 대체 불가한 입지 때문에 중국의 수입 제재 품목에서 철광석은 처음부터 제외되었고, 80.5%의 관세 폭탄을 맞은 보리는 대체시장을 개척함으로써 수출량을 중국의 무역 보복 이전보다 더욱 증가시켰습니다. 한국의 경우, 반도체와 이차전지 같은 핵심 산업들이 이런 경쟁력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보다 많은 분야에서 한국이 대체 불가능한 국가로서의 입지를 다진다면, 어느 쪽에 의해서든 강제적으로 결별을 당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영화의 선봉에 선 미국과 중국조차, 서로의 필요에 의해 완전한 결별이 불가능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이 말입니다. 이를 위해 정치학 전공자 및 정책의 영역에 속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사회구성원들이 안정적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성장하고 경쟁력을 획득해 갈 수 있도록,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석하고 이를 관리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일에 매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서강대 대학원에서 다양한 분야의 경쟁력을 쌓으시는 동안 말이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