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8. 19:05


인터뷰 및 정리 박승일



G20 그래피티 작업이 굉장히 큰 이슈가 됐어요. 신문과 방송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해 좌담회까지 열렸고요. 이러한 반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냥 작업하고 사진 찍어서 트위터에 올릴 생각을 했었어요. 트위터에 올리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했었거든요. 그런데 경찰한테 잡히고 이후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애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사회적 파장이 발생한 거예요. 솔직히 이렇게까지 크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된 것이 더 큰 의미를 불러일으킨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타이밍이 적절했던 것 같아요. 경호법이 11월 1일부로 공표됐는데, 기사가 11월 2일인가에 처음으로 보도 됐거든요. G20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였던 거죠. G20과 관련해 예상됐던 저항, 비판의 움직임이 아직 본격화되기 전에 사건화 되어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 같아요.
 
첫 시도이자 동시에 유일한 시도이기도 했잖아요?

 
그렇죠. G20에 대한 문제제기, 비판, 저항의 첫 번째 포화였지요. 예술행위가 일종의 총탄이 된 거예요. 처음이라서 더 큰 의미를 가졌던 것 같고 사람들도 크게 반응한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처음은 아니에요. 성격은 조금 다르겠지만 이전에 발생한 미네르바 사건이나 촛불 역시 이명박 정부의 상징적 이미지에 대한 파괴 혹은 훼손이거든요. 이번 퍼포먼스 역시 상징이미지를 전장의 중심에 놓고 이들 이미지에 대한 비틀기를 통해 비슷한 효과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두 가지 충격이 동시에 있었는데, 상징이미지에 대한 풍자도 충격이지만 오히려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게 더 큰 충격이기도 합니다.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공안당국의 대응에 대한 충격이겠지요.

 
실질심사를 받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이 그렇게 충격적이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당사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검사의 태도나 내부의 분위기를 봤을 때 사건이 공안화되는 과정이었고, 때문에 수순에 따라 당연히 구속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각오까지 하신 건가요?
 
각오를 했지요. 대비까지 했고요. 예상했던 것보다 결과가 늦게 나왔거든요. 저녁 8시쯤에는 결과가 나올 줄 알았는데 한 열 시까지 기다렸어요. 그 상황에서는 ‘아, 이제 구속이구나’라고 생각했죠. 어쨌든 제 입장에서는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에 대해서 의아하다는 생각보다는 수순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로 여겨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정부가 이런 일로 영장을 청구하는 게 충격적이라고 말하는 게 반갑더라고요. 한 쪽에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하는 그 기간 동안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이라든가 의식이 전과는 많이 달라진 거잖아요. 공안적 행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시민적 의식이 있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이런 점에서 반갑고 의미 있는 반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소하게 묻힐 수도 있는 사건이었는데, 정부가 무식하게 대응해서 사건의 의미도 증폭되고 사람들의 반응도 더 커진 것 같아요. 조연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 셈이네요.

그러게요. 어떤 사람들은 엑스맨이라고 하더군요. 검찰이 내부의 안티세력이 아닐까하고. 그간 이명박 정부가 하는 행태들이 사람들에게 일종의 희극적 대상으로 여겨졌던 것 같아요. 시대에 안 맞는 권위주의적인 모습이나 과거 독재 정부의 행태를 답습하는 게 대표적이지요. 그런데 시민 의식이 전과 다르고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이 바뀐 상태에서는 이런 것들이 구시대적 잔재로 희극화되어 나타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검찰의 태도 역시 희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쌍팔년도도 아닌데 구속수사라니요.
 
이 사건을 기획하셨을 때는 발랄한 태도로 임하셨을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그래피티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발랄하고 즐겁게 임했죠. 행위 자체가 과거의 운동권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일종의 예술적 행위이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긴 임했는데, 작업을 하는 당일에는 비장하다고 해야 할까요? 전투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죠. 어쨌든 경찰과 맞서거나 마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요. 아무래도 법의 벽에 부딪치는 행위이기 때문에 긴장이 됐어요. 하지만 긴장하면서 그림을 그릴 때는 심리적인 방어선을 넘어선다는 것에 대한 희열이 있었어요.
 
희열이요?
 
금지의 선을 넘는데서 오는 쾌감이 굉장히 컸던 것 같아요. 어떤 선을 넘어섰다는 느낌이 제 안에 있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 역시 한국인이기 때문이죠. 해서는 안 되거나 못하게 하는 문화적 금지의 선이 분명히 있는 것 같거든요. 하물며 사람들은 보도블록에 분필로 낙서하는 것도 잘 못하잖아요. 재미있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실제로 하는 것은 잘 못해요. 귀찮기도 하거니와 어떤 선을 넘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거든요. 그리고 그런 행위를 했을 때 다른 사람의 반응, 예컨대 경찰 조사 같은 압박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요. 그래서 그 선을 넘는 것에 대해서 큰 희열을 느낀 거죠.
 
쥐를 굉장히 정교하게 잘 그리셨어요. 쥐로 표상되어 왔던 이명박 대통령을 희화화하기 위해서 쥐를 그리신 건가요? 그림을 그리셨을 때 의도하신 게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저도 한국인이라서 이명박 대통령의 별명이 쥐 이미지와 겹쳐지는 걸 의식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도안을 할 때에는 G20에서 G라고 하는 이니셜을 발음(G=쥐)했을 때의 형상을 뽑아나는 게 더 중요하게 작용했어요. 이명박을 쥐 이미지로 패러디한 그림은 이미 인터넷에 많이 있잖아요? 이명박의 얼굴과 겹쳐지게 만드는 그림. 그런데 그것과는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오히려 이명박이 안 떠오르도록 보이게요.
 
어, 그건 의외네요?
 
이명박이 안 떠오르도록 사실적인 쥐를 그리고 싶었어요. 그냥 쥐를 그리고 싶었던 거죠. 의미의 폭이 훨씬 넓게요.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동시에 쥐에 부여된 이미지, 즉 권세나 부에 대한 탐욕스러움, 다중의 건강한 의식을 갉아먹는 이미지, 인간 삶에 꼭 필요한 공동체적인 것을 훼손하는 그런 이미지까지 포함해서 그리려고 했어요. 그래서 이명박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사실적인 쥐에 가깝게 표현하게 되었죠. 그리고 뱅크시의 그림들에서 이미지를 차용해서 이를 혼성해서 만들었고요.
 
쥐의 이미지가 이명박 보다는 G20의 G가 좀 더 이미지화 된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쥐가 상징하는 탐욕이나 교활함 등을 G20이라는 거대 시스템과 연결 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요. 굳이 사람을 찾자면 이명박뿐만 아니라 20명의 정상을 다 쥐의 이미지로 표현해야 했죠.
 
그럼 스무 마리의 쥐가 필요한 건 아닌가요? (웃음)
 
G20이잖아요. 20마리의 g를 포함하는 거대 구조, 체계로서의 큰 G.
 
아, 큰 G요?
 
스무 개의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 그들을 다 쥐의 이미지로 포착하고 싶었던 거죠.
 
G20이 국격이라고 선전하는 포스터에 쥐 한 마리를 그림으로써 이를 웃음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셨어요. 이러한 작업이 갖는 효과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포스터에 쥐를 그리는 발상은 지젝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정치권력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언어나 그림 등의 상징적 이미지들을 이용합니다. 지젝은 정치권력이 상징적 이미지들의 체계와 관련해 어떻게 발생되고 유지되는지를 논의해요. 나아가 정치권력을 지탱하고 있는 그러한 상징체계가 어느 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무너지는가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지요. 이런 차원에서 쥐는 G20 그룹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정치권력을 상징하는 것이자 동시에 그러한 정치권력을 희화화하며 무너뜨리는 하나의 이미지적 총탄, 예술적 총격으로서의 의미가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 내용적 의미 외에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렸다는 행위 자체에도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러한 행위를 통해 “아, 이런 것을 해도 되는 구나”라는 생각들이 가능하게 된다는 거지요. 상상력을 정신의 차원에서 행위의 차원으로 이전하는 것은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가능성의 범위를 넓히도록 촉구하는 효과를 갖는다는 겁니다. 요컨대 68혁명의 구호, 즉 ‘현실적이 되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처럼 실제적인 것과 가능한 것 사이의 구획선을 무너뜨리는 행위적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재현을 통한 효과뿐만 아니라 있고 행위 자체의 효과도 있다는 말씀이신데요.

 
그렇죠. 아, 이게 가능하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사람들이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의 지평을 넓혀주거든요.
 
반대로 구속 영장이 청구되고 벌금이 부과되는 것을 보면 ‘역시 안 하는 게 낫겠다’라고 냉소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걱정이 되는 점이 그거에요. 인터넷 기사들을 봤는데, 주로 정치적인 논의나 구속수사의 부당성에 관련된 논의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논의들 보다 그래피티 예술가들이 그래피티의 가능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글들이 무척 반가웠어요. 동지를 만난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이 사건의 가장 큰 수혜자나 의미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 공공미술을 하는 사람들, 포괄적으로 말해서 예술가들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시대의 예술가들이 예술이 가지고 있는 정치성을 환기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고요. 나아가 제도권에 흡수되거나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던 예술가들이 다시금 거리로 나와 정치와 만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강하게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금 말씀드렸듯이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게, 오히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더 겁을 먹지 않을까, “저건 구속감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더 방어적이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들어요. 물론 저는 한편으로는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어쨌거나 이를 통해서 법의 극단적인 지점이 드러나게 되었으니까요. 단순히 경범죄로 처리될만한 일이 현재 공안적 사건으로, 즉 공안적 관점에서 반국가적인 행위로 규정이 되고 일종의 상징적 테러행위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라는 거지요. 이렇게 극한을 경험했으니, 이후에는 편안하게 놀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본다는 겁니다.
 

앞서 말씀하셨던 80년대의 운동을 보면 선전, 선동의 요소가 강하잖아요. 깃발 들고 전진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현재 진행되는 공공예술들의 특징을 보면 굉장히 소소하고 심지어는 대의를 보여주지도 않는 것 같아요. 이런 변화는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요?

 
예술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은 정치에 내재하고 있는 동일성, 대의, 합의 등 이런 경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거예요. 다른 방식의 표현과 행위가 가능하다는 게 예술이 가지고 있는 힘이잖아요. 예술가들이 표현하는 ‘차이’가 어떤 정치적 대의에 동일화되거나 수단화되는 게 아니라 분산적이고 이질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통념을 깨는 게릴라적인 행위로, 예술적 저항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방향으로 진행될 것 같은데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응원 메시지들이 많이 왔더라고요. 어떠셨어요?
 
꽤 많이 왔어요. 갑자기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돼 버렸는데(웃음). 이번 기회에 그런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할 생각이에요. 그 중에는 정말 반가운 사람도 있어요. 토론토 G20 회의 때 시위를 조직했다가 구속되어서 지금은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활동가 한 분이 편지를 보냈거든요. 굉장히 반갑고 동지애를 느꼈어요.
 
작업은 혼자 하셨는데 연대가 생겼네요.
 
그렇죠. 그런 게 제일 큰 효과죠. 플러스 알파가 된 거죠.
 
운동 양식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요. 대규모 파업에서 1인 시위로, 다시 그래피티 작업과 같은 퍼포먼스 형태로요. 앞으로도 이런 방향으로 진행될까요?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새삼 느낀 것이 언론의 힘인데요, 이런 행위가 실천적 성격을 갖지만 여전히 표상의 장에 속해있는 것이기 때문에 언론이 보도를 해주지 않았다면 그 반향이 실제로 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여기에는 정치적인 행위가 매스 미디어라는 또 다른 표상의 장에 흡수될 가능성이 존재하지요. 그렇다면 매스 미디어와는 다른 자율적인 매체를 통해 이루어져야겠지요. 예컨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봐요. 또 한편으로, 거대 언론에 의존하지 않는 예술적 상상력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또 다른 아이디어들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단초로 그쳐야 되지 계속 똑같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예술은 반복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서, 뒤샹처럼 미술 전시회에 변기를 갖다놓고 ‘샘’이라고 하는 걸 반복하면 아무런 의미나 효과가 없는 것처럼. 그 예술에 담겨있는 의미를 파악해야지 행위만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앞으로 모든 표현을 퍼포먼스로 하자는 것은 우스운 행위가 될 수밖에 없고, 다만 이 행위의 의미를 곱씹어보자는 겁니다. 이러한 행위가 법의 한계선, 그 금지선을 아주 가벼운 일상적 방식으로 무너뜨렸다는 것. 이러한 이해를 공유한다면, 이 후의 행위들은 꼭 그래피티가 아니더라도 가능하다고 봐요.
 
예술은 반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매번의 시도가 굉장히 중요하면서 동시에 어려울 수밖에 없잖아요.
 
그게 예술가들이 가진 운명이면서 동시에 위력이기도 해요. 매순간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감각이나 삶의 어떤 지점, 한계선들을 넘어설 것인가 고민해야 되고, 또 예민하게 느껴야 하거든요. 항상 민감한 촉수를 가져야 한다는 게 예술가의 고뇌이자 위대한 힘이겠죠.
 
공부하신 전공과는 상관없이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고 싶으신 건가요?
 
넓은 의미에서는 그래요. 예술이 좁은 의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면요. 정치적 행위 역시 넓은 의미에서 예술적 행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감각적인 것을 재편하는 것, 곧 볼 수 있는 것, 말할 수 있는 것,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누구에게 어떻게 분배하는가는 정치적인 문제에 다름없기 때문이죠. 예술적인 하지만 좁은 의미의 예술이 아니라 일종의 감각학이 정치적 행위에 도입되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한국사회에서 저항의 정치가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서강대에서 학생들이 G20과 관련해서 학술 토론회를 기획했는데 학교 당국에서 금지 조치를 내렸던 사건이 있었어요. 인문학을 전공한 총장이라서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말이지요.
 
그게 전력이 없는 게 아니에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박홍이 있었거든요. 당시 보수 우익의 최전선에서 활약하신 분이잖아요. 서강에 그런 전통이 없는 건 아니에요. 전통이 있는 학교에요(웃음). 졸업한 후에 서강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어느 학교보다도 빠르게 신자유주의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자유주의 이념으로 똘똘 뭉쳐서 대학의 기업화, 자본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한 쪽에서는 알아서 기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이에 저항하는 메세지를 던졌다는 게 대비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학생들도 이 둘 사이에서 헷갈려 하는 것 같아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뒤쳐지기 않기 위해 알아서 스펙을 관리하는 쪽이 있다면, 반대로 이로부터 배제되거나 혹은 자발적으로 멀어지는 쪽이 있을 텐데요. 이런 점에서 후배들에게 고민의 지점을 던져주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어떤 면에서는 역설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의식을 갖는 것이 오히려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신자유주의의 힘은 기존의 경계들을 무너트리는데 있거든요. 학생과 노동자, 대학과 기업처럼 서로 다른 단위의 체계와 경계들을 무너뜨리고 하나로 재편한다는 것. 그래서 대학은 학문의 전당, 기업은 자본의 전당이라는 통념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거든요. 학교도 하나의 상품이고 기업이라는 생각을 하잖아요. 학생의 돈을 받아서 열심히 재테크하고 부동산 투기하는 등 영리로 삼고요. 대학은 학생들을 금융 노동자 내지는 소액 투자자로 여기거든요. 지식을 이미지 상품으로 팔면서 실제로는 기업 운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학생들은 자신들을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고 여전히 소비자로만 생각할까요. 대학에 몸담고 있는 시간을 신자유주의 사회로 편입되기 전의 준비시간으로만 생각하고 있어요. 왜 자신들을 이 사회의 정치경제적 시스템과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있는 이익 집단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왜 대학은 신자유주의적으로 운영을 하는데 어째서 하부조직은 그 생각을 못하냐는 말이에요. 그들도 당연히 노동자로서의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공부가 갖는 노동의 의미와 성격을 인식해야 돼요. 제 말은 신자유주의의 첨병이 되라는 게 아니라 자신을 신자유주의의 피해자로 여기지 말고 역으로 이기적으로 이용하라는 말이에요.
 
학교만큼이나 신자유주의적으로 생각하면 누가 인문학을 하겠어요? 다 경제나 경영을 하지요.
 
그래피티를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대학교 강사가 왜 이런 짓을 했을까 의문을 갖더군요. 낯설다는 거예요. 그것도 왜 40대가 그런 짓을 했을까. 그런 의아함 뒤에는 모종의 틀이 있어요. 대학 강사와 40대한테는 정치적인 예술 행위가 어울리지 않다는 겁니다. 그리고 인문계는 현실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어요.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놓여있는 현실의 논리와 메커니즘의 작동 방식에 더 예민할 수 있는 게 인문학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잖아요. 인문학은 자기 존재에 대한 반성적 규정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인식을 강요하거든요. 그거 빼고 인문학에 무슨 본질이 있겠어요. 그렇다면 인문학을 한다는 것이야 말로 돈을 번다는 차원을 넘어서 더욱 더 현실에 대한 개입, 참여와 뗄 수 없는 학문을 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제 행위의 의미도 그런 거예요. 경계를 허물고 상상을 동원하는 것과 현실에 개입한다는 게 다른 말이 아니에요. 현실적이라는 게 돈을 버는 것으로만 축소되어 마치 돈을 안 벌면 현실과 유리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런데 돈을 버는데 매몰되는 것이야말로 현실로부터 철저히 유리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공부나 활동에서 계획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일단 이 사건에 대해서 천천히 깊게 생각을 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제 행위의 의미를 곱씹고 이를 공부로 연결시키고 싶네요. 왜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낡은 통제 메커니즘이 전면화되고 확산되고 있는가를 분석해 볼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예컨대 공안이라고 하는 것이 과거에는 남북 대치 상황 속에서 이념적 의미를 갖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이번 사건은 이념적 성격을 갖지 않더라도 국가의 권위나 기능을 훼손하는 행위라면 얼마든지 공안화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공안의 의미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거지요. 이명박 정부 들어서 행정 자치부가 행정 안전부로 바뀌었거든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행정의 의미가 안전 일반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고, 또한 공안의 의미가 더 이상 이념적인 범위에 한정되지 않고 행정적 범위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미네르바 사건도 일종의 공안적 사건이 되는 것이고 단순히 정부의 기능이나 명예를 훼손하는 것도 공안의 관점에서 취급되고 있는 거예요. 따라서 이런 공안을 뒷받침하는 통제의 기술들인 감청, 감시 등의 확산에 대해서 공부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형성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들을 통해서 연대의 망을 구축해볼 계획이고요.

제가 혹시 놓친 부분이 있나요? 꼭 지면화하고 싶으신 말씀이라던가.
 
서강대 학생들이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나요? 6두품이라는 생각?
 
(웃음) 많죠. 서울대는 차치하고 연고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체질이에요(웃음). 그렇기 때문에 항상 경계에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양가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성골과 진골에 비해서 훨씬 더 권력과 부에 대한 열망에 강하게 빨려 들어가게 되는 위치이기도 하고, 반대로 아예 반골 쪽으로 갈 수 있기도 하고 말이지요. 과거 서강대에는 6두품에서 반골로 가는 경향이 좀 있었는데요.
 
반골쪽으로의 움직임은 많이 사라졌어요.
 
제발 좀 거기서 벗어나기를 바라요. 6두품에 대한 자긍심? 저는 후배들이 그런 자긍심을 가져주길 바라요. 주류를 삐딱하게 볼 수 있는 시각 말이에요. 이상하게 서강대에 예술가들이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겠지요. 그런데 이 자리가 참 좋은 위치에요. 경계의 위치이기도 하고요. 잠재성과 가능성의 위치라니까(버럭). 박찬욱, 문성근, 신해철을 봐요. 그 분야의 중심과는 약간 다른 선을 긋거든요. 불안정하거나 주변적인 위치라고 체념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위치로 전유했으면 좋겠어요. 저부터 그렇게 해야겠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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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6. 21:34


인터뷰 박승일
정리 곽성우



대학원생들에게 루이스 멈퍼드는 생소한 인물인데요. 20세기 초반의 사상가인 멈퍼드가 현재 재조명되는 이유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1920년대에 발표한 처녀작『유토피아 이야기』를 시작으로 말년의 기계를 주제로 하는 논의까지, 루이스 멈퍼드의 사상은 조금씩 변해갔고 그 영향력 또한 시대적 맥락에 따라 굴곡이 있었습니다. 어떤 책은 반향을 일으켰지만 또 어떤 책은 무시를 당했고 70년대 즈음엔 거의 잊히다시피 했지요. 전체적인 관점이 요구되는 위기의 시기, 예컨대 1·2차 세계대전 등 시대의 전환점에는 이 사람의 논의가 어느 정도 통용되었어요. 하지만 그 당시 미국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던 맑시스트들에 의해 멈퍼드가 그리는 사회상, 즉 지금으로 치면 자연친화적, 아나키즘적, 지역 사회적, 소집단 중심적인 사회상은 소박한 전원주의라고 평가절하 됐지요. 2차 세계대전 이후 맑시스트들이 거의 사라진 이후에는 미국의 모더니스트들에 의해 비판을 받았고요. 미국 자본주의가 60-70년대를 거치며 점차 안정화, ‘전문화’ 되면서 멈퍼드가 주창했던 소위 ‘전인적 글쓰기’, ‘전인적 관점’이라는 것이 먹혀들 수 없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20세기 말 경 대두된 범세계적인 문제들, 특히 생태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반反-문명까지는 아니더라도 문명비판이라는 화두를 숙고하도록 하고 있어요. 멈퍼드나 데이비드 소로, 그리고 자크 엘룰 같은 문명비판가들이 현재 재조명되는 까닭은 역시나 지금 우리의 문명에 대해 그들처럼 ‘전인적 관점’에서 한번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절박함에서 비롯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여기 한국 사회에 멈퍼드를 소환해낸 이유가 있으실 텐데요.

저는 미국 이상으로 한국 사회가 과도한 문명, 즉 기술을 지나치게 신뢰한 나머지 학문과 예술이 심각할 정도로 전문화된 사회라고 생각해요. 그 결과 도시, 생태, 과학, 학문, 예술 등에 대한 논의들이 파편화 되었고요. 예컨대 최근 통섭이나 학제 간 통합이라는 화두가 인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윌슨 류의 통섭이 대단히 반생태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해요. 내실을 따져보면 결국 과학으로 수렴되고 말기 때문이지요. 학제 간 통합도 마찬가지에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학제 간 연구의 결과물들은 대부분 하나의 주제 하에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 각 관점의 논의들을 한데 묶는 형태를 띠는데, 이는 사실상 파편화된 결과물들을 엉성하게 얽어매는 단순한 결합 이상이 되질 못합니다. 이에 반해 멈퍼드의 사상은 시간적으로는 고대에서부터 현대사회까지, 공간적으로는 도시와 도시, 도시와 시골, 그리고 나아가 예술과 과학을 자기의 관점에서 함께 논한다는 것이 장점이지요. 덧붙여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멈퍼드의 에콜로지 논의가 한국의 녹색평론으로 대표되는 보다 근원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에콜로지 논의하고는 다르다는 겁니다. 적어도 멈퍼드는 도시, 과학, 기술을 전면 부정하지 않아요. 현대 문명의 장점을 충분히 인정하는 한해서 보다 건강하고 생태적으로 조화된 문명을 추구하지요. 따라서 김종철 선생의 소농주의, 천규석 선생의 농업중심주의 등과 멈퍼드의 논의를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저 또한 박정희 이후 지금까지의 우리사회가 산업화사회를 지향하면서 이루어 놓은 것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문제는 산업화가 너무 급하게 진행되며 발생한 문제들을 극복하고 앞으로 우리가 좀 더 생태적인 문명을 이룩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겠지요. 때문에 저는 과학기술과 예술의 조화, 농촌과 도시의 조화에 대한 추구가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아닌가 생각했고, 그런 의미에서 멈퍼드의 사상을 한국에 소개하고자 했습니다.

멈퍼드가 말하는 ‘소박주의’는 무엇이며 그 구체적 비전은 어떠한지요.

멈퍼드는 거대 도시, 거대 산업 등 ‘거대’라는 형용사가 붙는 현대문명의 특징이 인간을 비인간화 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거대가 아닌 소규모, 이른바 소박한 것이 요청되지요. 멈퍼드가 지향하는 도시는 사람들이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소규모 도시, 중세적인 도시예요. 이상적이라 꼽는 정치체계 또한 미국 초기 타원형의 자그마한 소규모 도시에서 구축되었던 주민자치 내지 참여형 정치체계고요. 문제는 현재의 거대 도시(서울처럼 인구 2000만이 밀집한 도시)내에서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현실화 할 것인가 하는 점인데, 저는 그것이 우리의 상상력에 달려있다고 봐요. 예컨대 거대 도시의 거대 아파트 촌 내에서, 아파트 한 동의 주민들이 창문이나 베란다 혹은 옥상을 공동으로 활용해서 유기농 작물을 재배하는 것도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겠지요. 한편으로, 근로시간이 단축될수록 복지나 문화에 대한 요구는 늘어나는 반면 국가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때문에 문화와 복지에 대한 욕구를 자치적으로 해결할 필요성이 대두될 수밖에 없고요. 실제로 주부들에 의해 아파트나 주택단지나 조그만 동 단위를 중심으로 공동육아, 공동 레크리에이션, 공동 도서관 등이 조직되고 있다고 해요. 멈퍼드의 소박주의는 이러한 여러 움직임들로부터 현실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박주의’는 신념으로서는 옳다고 생각되지만 이론적 정합성이나 실천적 구속력에 있어서는 조금 빈약해 보입니다.

확실한 것은 현재의 거대주의가 인류의 역사에서 매우 예외적이란 사실이에요. 한국의 역사를 놓고 봐도 그렇고 서양의 경우 또한 현재와 같은 문명은 적어도 19세기 이후의 현상이라는 거죠. 물론 그 전에도 로마제국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지금처럼 거대 과학기술에 의해 생태가 파괴되는 정도는 아니었지요. 이처럼 거대 문명은 분명히 예외적인 현상임에는 분명한데, 이때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은 이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며 그 변화의 동력은 어디에서 오는가하는 것일 테지요. 하지만 저는 변화의 동력을 추상적으로 입론화 해야만, 예컨대 역사의 변화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과 같은 논의가 먼저 충족되어야만 사회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좀 더 소박하게 이야기 하자면, 그럼 예수가 이론을 가졌느냐, 예수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는 방안이 있었느냐, 이렇게 되물을 경우엔 할 말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오히려 멈퍼드는 인과론이야 말로 거대주의의 병폐라고 봤어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멈퍼드의 논의가 그 당시 사회주의자나 미국의 모더니스트들로부터 비판받게 된 이유의 근저엔 모더니즘이 구축했던 거대 인과론적 논의에 대한 철저한 거부가 있습니다. 거대 사회과학이론이 갖는 정합적이고 논리 정연한 운동법칙을 부정했다는 거지요. 이런 점에서 멈퍼드는 보드리야르 등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모더니즘에서 지적했던 실패, 즉 거대이론의 실패를 미리 정확하게 짚은 사람이지 않을까 싶어요. 어쨌든, 멈퍼드는 변화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변화가 좀 더 빨리 이루어지길 바랐기에 문명에 관해서 자신의 논지를 펼쳤던 학자라고 볼 수 있어요. 저 또한 이 거대주의가 계속 거대해지리라고는 믿지는 않아요. 이미 자기 폭발의 위기 속에 있어요. 따라서 현재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모색하며 노력하고 있는 만큼, 그리고 이러한 소소한 움직임들을 소박주의라고 일괄할 수 있다면, 소박주의의 희망이라는 것을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멈퍼드는 ‘소박주의’의 이상화된 주체로 르네상스인 혹은 ― ‘스페셜리스트’와 반대되는 의미에서 ― ‘제너럴리스트’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일단 멈퍼드의 르네상스인은 소위 말하는 천재나 창조적 소수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다빈치 같은 사람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제시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르네상스나 중세, 즉 지역 공동체에서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을 지칭해요. 그들의 삶은 농업이나 수공업등의 전문화된 직업들로 분화되었던 것이 아니라 각 분야가 같이 병존하는 삶이었거든요. 삶 속에 예술과 기술이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녹아있었단 거죠.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는 다빈치 같은 천재가 하나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준俊-다빈치였다는 겁니다. 결국 통합된 소규모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데, 현재 한국적 맥락에서 본다면 농촌보다 도시가 기술이나 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고, 때문에 이 둘을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겠지요. 각자의 개인적인 관심의 교류 그리고 이에 기반하는 전인화가 가능하다는 얘기에요. 물론 도농교류 등이 보다 활성화 되어야겠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인식에 공감하고 또 전인적 교육이 가능해진다면, 사회조직이나 구성이 바뀌는 근본적인 변화와 함께 제너럴리스트가 탄생하지 않을까 싶어요.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녹색성장’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청계천이나 4대강 같은 사업은 적어도 멈포드적 착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현 정권이 하는 환경사업은 무늬만 생태적일 뿐 생태적 도시환경과는 거리가 있어요. 청계천이든 4대강이든 그 내실이 시멘트로 물을 가두는 것인데, 이는 모든 자연을 차단하고 파괴하는 것일 뿐이거든요.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생태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지요. 그곳에 무엇이 사는지 물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라도 녹색이 된다면야 좋습니다. 단적으로 대구의 경우가 그래요. 대구가 5-6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더운 동네였는데 현재는 그렇지 않아요. 그 이유는 대구시에서 지난 10년 동안 나무를 많이 심었기 때문이에요. 물론 그 사업의 이면에는 문희갑 당시 대구시장과 조경사업가들의 결탁이 있었지요. 4대강 사업을 하게 될 때 건설업자들이 이득을 볼 것처럼, 조경사업가들이 부당이득을 봤고요. 그러나 결과적으로만 보면 나무를 심어서 온도가 내려간 것은 사실이지요. 그런데 4대강 사업은 이러한 결과라도 초래할 수 있느냐,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나 녹색이 붙는 여러 변용 사업들이 유행하고 있는데, 방금 이야기한 사례처럼 사람들에게 정말로 생태적 이익을 준다면 그나마 좋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멘트를 떡칠하고 결과적으로도 비생태적일뿐인 사업은 아니란 생각입니다.






"아주 작은 나라, 아주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탓일까. 대한민국이란 말처럼, 걸핏하면 세계최대, 세계최고라는 말처럼 우리는 거대의 신화에 젖어 살아왔다. 그래서 작은 것이 아름답고 진실하다는 것을 잊고 살아왔다. 더이상 작은 것으로 되돌아가서는 안되고 되돌아갈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후퇴고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세상에서 거대하지 않게, 시시하고 약소하며 가난하고 허약하며 서글프고 이름없이 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 삶을 그런 사회를 그런 자연을 꿈꾸며 거대신화에 처음으로 도전했던 멈퍼드를 좋아했다."








문화운동가들이 최근 골목길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골목길에서 공통적인 것을 조망해보자는 논의인데, 이를 멈퍼드 식으로 읽어낼 수 있는 가능성 혹은 선생님의 의견을 말씀해주세요.

일단 충분히 가능한 시도라고 봐요. 하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조금 부정적입니다. 현재 농촌이 파괴된 이상으로 골목길이 파괴되었거든요. 서울의 북촌, 가해동, 명륜동에 일부 남아있죠. 설혹 남아있다고 해도 거의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에서 그곳을 공동체적인 삶의 터로 재조명하고 재건할 수 있을까하는 점은 약간 회의가 듭니다. 물론 도시의 공동체 생활을 확보해나가는 노력의 일환으로서는 의미있고 중요한 일이긴 한데 특정한 공간에 주목하는 운동들, 예컨대 한옥 재현 등과 같은 운동들에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요. 오히려 저는 대형 아파트단지나 주택단지에서 적절한 생태공간을 마련하자, 그런 운동이 효과가 있고 가능성 또한 높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아파트 공간을 넓히는 사람들의 욕망들을 전략적으로 이용해서, 강남 등과 같은 동네에서 넓은 아파트를 갖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유기농적인 자가 재배를 하도록 유도하는 운동을 벌이는 게 도시를 보다 생태화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은 거죠. 물론 보다 멀리 보자면 골목이든 한옥이든 각각의 개별화된 아파트나 주택단지든, 소박한 유기농 공간의 확보는 그 자체로는 한계가 있어요.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워봐야 제한적이지요. 쌀이나 고기 문제 등은 해결이 안 되니까요. 때문에 도농 간의 교류, 즉 유통을 직결화 한다든가 혹은 특정 아파트나 특정 시골마을이 협동조합을 구축한다든가 하는 식의 방법이 확충되어야 한다고 봐요.

기술에 대한 멈퍼드의 관점은 엘룰이나 포스트먼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세 사람은 기술을 비판한다는 점에선 공통적이나 결론은 조금씩 다릅니다. 엘룰이 간단히 말해서 기술비난론자라면 포스트먼은 기술비난론자까지는 아니고 멈퍼드에 좀 더 가까운 사람이에요. 앞서 얘기했습니다만 멈퍼드의 주장은 시대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여요. 30-40년대까지만 해도 기술에 대해 낙관적이었어요. 특히 전기 에너지 등에서 많은 기대를 했지요. 원자력 또한 인간적인 기술일 수 있다고 봤고요.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원자력에 대해선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원자력 기술이 전쟁에 의해 군사무기화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퍼드는 인간적인 기술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를 절명시킬 수도 있는 기술이 펜타곤으로 상징되는 거대 권력의 수중에 넘어가지 않고 주민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통제될 수 있다면, 과학자가 보다 인문적인 전인이 될 수 있다면, 나아가 과학과 기술이 인문과 예술로 통합될 수 있다면, 우리의 기술은 또 다시 세계와 인류를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멈퍼드는 믿었다고 봅니다.

르네상스적 인간상을 모범으로 삼는 멈퍼드가 서구인들의 사상적 피난처인 ‘고대 그리스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잘 구별할 필요가 있는데, 멈퍼드는 그리스 ‘사상’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그리스 ‘도시’로의 회귀를 주장한다는 거예요. 제 개인적으로도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비판적이고 그 사람들의 사상을 좋아하지 않아요. 가령 미국 사회에서 네오콘들을 이론적으로 지탱해주는 정치 이론가들의 태도는 다분히 플라톤주의적이지요. 반면 소크라테스를 죽인 아테네라는 민주적 소도시, 그 직접 민주주의의 발상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찬양을 하는 편입니다. 마찬가지로 멈퍼드 또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의 사상이 아니라 인간적이고 이상적인 도시문명의 원형이자 직접 민주주의의 원형인 아테네, 그리고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 문명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봐야 해요. 멈퍼드는 서양의 특정 사상가들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었어요. 반면 예수에 대해선 관심이 많았고요. 멈퍼드는 소크라테스가 철학이라고 하는, 인간 회의정신의 시초라는 점에선 높이 평가합니다. 하지만 예수는 로마제국을 무너뜨린 사회운동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에 대한 평가와는 사뭇 다르죠. 물론 멈퍼드 또한 서양인이기에 자신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 도시만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 한계겠지만요.

멈퍼드를 위시해 여러 학자들을 중심으로 ‘미디어 생태학’이라는 학문 분과가 구축되고 있는데요.

생태주의 언론학이라는 학문 영역이 현재 명확한 이론체계를 갖추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도 한두 권 책이 번역되어 나왔고 미국에서도 최근 활발히 언급되고 논의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말, 21세기 초에 와서 위력이나 변용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미디어들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하는 점에서 멈포드의 논의가 시사점과 계몽점을 던져준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반갑습니다.

라클라우나 지젝 등의 포스트-맑시스트들이 비판하듯, 전인적 관점이라는 것이 자칫 봉합할 수 없는 ‘적대’들을 조화와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은폐해버리지는 않나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러한 비판은 멈퍼드 살아생전에, 그러니까 1920-30년대에도 사회주의자들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비판이에요. 보다 더 올라가면 윌리엄 모리스에 대한 엥겔스의 비판도 있겠지요. 정통 사회주의자든 수정 사회주의자든 어떤 사회주의자든지 간에, 사회주의자들은 아나키즘이나 생태주의 등이 현실 모순을 오히려 은폐하고 봉합하는 것이 아닌가, 혁신이나 혁명을 저해하고 결과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억압구조를 더욱더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지 않는가하고 비판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는 사회주의적 전략을 취하지 않는 다른 어떤 대안들에 대한 사회주의의 매우 전형적인 비판이라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개인적인 입장에서 저는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을 듯해요. 그런 주장도 있고 이런 주장도 있다고요. 사회주의적인 논의도 있고 사회주의적이지 않은 논의도 있어서 여러 논의들이 다양하게 얘기될 수 있는 그런 풍토가 좋은 것이 아닌가 싶어요. 오히려 반대로 멈퍼드가 질문하듯이,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거대 기술, 거대 과학, 거대 성장, 거대 산업, 거대 국가를 구축하고 마는 구조적 결합을 갖고 있다면, 사회주의자들이 이에 대해서 어떻게 답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소련이나 중국의 경우를 가짜 사회주의라고 부정하면서 진짜 사회주의는 아직 오직 않았다라고 답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얘기인 것 같고요. 사회주의자들은 머리가 좋고 현란한 논리를 좋아해서 이것저것 따지려 들지만, 오히려 그러한 점이 사회주의를 망치는 원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대학원이 점차 ‘제너럴리스트’가 아닌 ‘스페셜리스트’를 키워내는 곳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학원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현재의 파편화되고 세분화된 전공 내에서는 학생들의 학문적인 영위는 물론이거니와 교수들의 학문적인 영위는 이룰 수 없다고 봐요. 학부교육도 그렇지만 특히 대학원교육의 경우 대한민국처럼 전문화, 파편화되어있는 곳이 어디 있나 싶어요. 미국도 그렇지 않다고 알고 있어요. 따라서 멈퍼드가 우려했고 또 주장했듯이, 대학원생들이 가능한 현재의 파편화해서 벗어나서 보다 전인적인 관심, 시각, 노력으로 여러 학문분야를 두루두루 섭렵하길 바랍니다. 물론 짧은 기간에는 힘들겠지만, 그렇게 했던 선학들의 예를 참조하면서 자기 학문의 영역도 넓히고 깊이도 심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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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6. 20:56

 


"그들의 삶은 coming out 이 아니었다. coming soon 이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차분한 성격이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음악과 미술, 글짓기, 운동 등 다방면에 소질이 많았어요. 시골 동네에 흔히 있는, 공부 잘하고 잘 노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이성관이 남들과 달랐고, 쉽게 이야기할 곳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고 생각했었지요. 또 대학진학 이후엔 그렇게 고민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기도 했어요. 제가 89학번인데, 90년대 대학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고 방송과 뮤지컬, 개그맨 활동까지 그야말로 정신없이 활동했거든요. 그때엔 그냥 이렇게 살면 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을 좋아해 보려고도 했고, 또 그때는 여자 친구도 있었어요. 나도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했던거지요. 하지만 그럴수록 내적인 갈등이 심했습니다. 노력한다고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점차 알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커밍아웃의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군대에 입대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사회와 떨어져서 지내다보니 생각할 시간이 많잖아요. 내적인 고민을 많이 했던 때였죠. 그러다가 제대를 하고 모델을 하는 첫 번째 남자친구를 3년 정도 만났어요. 그 친구 때문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동성애자라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되고 힘이 생겼어요. 그 친구가 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왜 그걸 동성애자라고 해서 네가 스스로 그걸 부정하고 사랑하지 않냐. 그렇다면 누가 너를 사랑하겠냐. 더욱 당당해지자라고 조언을 해준게 큰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사실 대학교 연기 수업에서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했어요. 교수님과 가까운 친구들 지인들은 알고 있었죠. 그때도 사실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문제는 사회 속에서의 '자아'였어요. 아무래도 방송활동을 하니까 계속해서 저를 숨길 수는 없었지요. 결국 공인으로서 사회와 사람들에게 가장 큰 커밍아웃을 해야 했죠. 커밍아웃이 그들에게 이해를 바라거나 설득을 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있는 그대로를 봐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이었는데 사람들에겐 그게 쉽지 않았나봐요. 예상은 했지만 막상 닥쳐오니 견디기가 힘들었어요. 그 뒤 2년 동안 인생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갔던 것 같아요. 힘들었고 속상했죠.

그래도 이제 홍석천씨를 보면서 정말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떠신가요?

글쎄요, 단지 제가 공인인 홍석천이기 떄문에 봐주는거 같아요. 그만큼 홍석천이라는 사람이 더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오고 있는 것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 스스로도 많이 회복을 했죠. 하지만 여전히 성적 소수자로 사는게 녹록치 만은 않습니다. 특히 제 가족들, 다시 말하면 성적 소수자의 가족들은 원하지 않는 고통을 함께 감내해야 하죠.

반대로 그들의 고통은 제가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저 집 아들이 동성애자래' 혹은 '쟤네 형이 동성애자래' 라는 말들 하나 하나에 가족들은 예민해 질 수 밖에 없어요. 마치 식구 중에 죄인을 둔 것과 같아요. 범죄가 없는 죄인인거죠. 저 역시 아직도 가족들을 생각하면 너무도 힘듭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개인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어떤 면들이 변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일단 10년 전 커밍아웃을 했을 때보다 지금은 환경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성적 소수자 모임도 많아졌고 간혹 대학교 동아리도 있더라구요.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회와 소통을 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물론 아직도 '죽어라' '더럽다' 라고 하면서 동서애자들을 매도하는 분들도 있죠. 하지만 몇몇 분들의 관심을 통해서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해가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주목할 만 하다고 봐요. 저 역시 그런 점에서 생활하는데 좋아진 부분들이 있죠. 예를 들면, 제가 하고 있는 가게들과 사업들이 그런거죠. 예전에는 홍석천 이름만 들어도 꺼려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면 요즈음에는 저를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요.

사회에서 바라보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에 대해선 어떤 입장이십니까?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관심이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죠, 하지만 억압과 탄압과 차별이 있는데, 그렇게 주어지는 관심은 그것이 진심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관심이 있어야 생각이 있고 생각이 있어야 약간의 변화라도 생기기 떄문이죠. 물론 성적 소수자가 바라는 건 있는 '있는 그대로를 봐달라는 것' 이에요 하지만 사실 그대로를 나둘 수 없는 게 사회 현실이잖아요. 일단 주어지는 관심은 받아야 해요. 그리고 그 관심 속에서 고쳐나가고 변화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커밍 아웃을 후회 하지 않으시나요?

물론 힘들고 속상할 때, 그냥 감추고 살았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적은 있어요. 하지만 그랬다면 지금의 홍석천은 없었겠죠. 커밍아웃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그러면서 제가 가진 진정한 정체성을 찾게 되었고, 또 사회적으로 부딪혀 내야 할 부분이 더욱 명확해 진거죠. 삶이 더 치열해 지면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 전보다 많아지긴 했지만 후회스러운 적은 없어요.

하지만 많은 성적 소수자가 커밍아웃의 기로에서 힘들어 합니다.

사회적인 커밍아웃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행동입니다. 가족들과 합의도 있어야 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하죠. 자신이 가진 정체성을 찾으려는 의지만큼 사회는 소수자를 열외 시키기 때문이에요. 아이러니 하게도 조금 전에 말한 좋아진 환경은 동성애자를 밝힐 수 있는 환경에 관한 것이에요. 동성애자가 설 자리에 대한 환경은 아직도 부족하죠. 그렇기에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커밍아웃은 더욱 어려운 환경을 자초하는 것이에요.

커밍아웃 이후 끝내 자살까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안타깝죠. 굳이 그렇게 힘든 커밍아웃은 하지 않을 필요도 있어요. 그만큼 더욱 준비를 해야죠. 사회적 인식 때문에 자신의 삶을 포기한다는 건 너무도 슬픈 일이잖아요. 또 보통 가족들에게 먼저 커밍아웃을 하기 마련인데 가족들의 분위기가 아니라면, 굳이 할 필요가 없어요. 기다려야됩니다. 물론 커밍아웃을 하기 전까지 수많은 고민을 했을거에요. 또 생활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죠. 하지만 커밍아웃은 그보다 더한 고통이 따라오게 되어있어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죠. 사람들 혹은 사회가 이 땅에서 성적 소수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벽은 상당히 높거든요. 부딪혀서 부숴져 버릴 것이면 커밍 아웃을 늦추는 편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열외된 성적 소수자들에게 필요한 용기는 어떤 것일까요.

먼저 사회 생활에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경제적인 면도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하죠. 네가 누구든, 나에게 어떤 욕을 하든, 반응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용기에요.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죽고 싶을 만큼 힘든 것들이 닥쳐 올 거에요. 그리고 분명 그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잔인할 거에요. 하지만 죽고 싶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구원의 손길을 구하고 있는 거에요. 나는 열외받고 싶지 않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 나를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라는 의지인 것이지 정말 죽고 싶은 건 아니에요. 죽을 용기보다 더한 용기로 살아가야 해요.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용기인 것이죠.

갈등하는 성적 소수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기엔 자신의 인생은 짧아요. 삶에서 필요한 것은 일단 자기 중심으로 생활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건 단지 열외자들 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지금 말하는 자기 중심의 삶은 이기적인 것과는 달라요. 자기 자신과 열애하라는 것이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싶습니까? 그렇지 않죠?, 자기 자신과 열애하는 사람은 삶을 쉽게 포기 하지 않아요. 사랑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되면 굳이 남들을 설득시키거나,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져요. 다시 말하지만 삶이라는 건 그리 길지 않아요. 자기 마음가는데로 가장 편하게 생각하고 움직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바로 내일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매분, 매시간, 하루 하루가 중요하죠. 그렇게 자신과 열애하면서 지내다 보면 새로운 인생,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새로운 삶, 얼마 전 입양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생활은 어떠신가요?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과 똑같아요. 신경써야할 부분이 많죠. 아이들이 크면서 점점 성에 대해서 사춘기도 오고 하는데 그점에 있어서 어려운 점이 좀 많아요. 그리고 여는 학생들 처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와, 바쁜 가족에 대한 불만들이 생겨나더라구요. 물론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있어 주고 싶죠. 하지만 쉽지 않더라구요. 하지만 가족이 있다 라는 건 오늘, 제가 사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해요.

아이들을 키움으로써 교육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단순한 학업 뿐만이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교육에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게다가 제가 성적 소수자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사회적 열외자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죠. 사회속에는 저뿐만이 아닌 많은 열외자들이 있잖아요. 그런 교육들이 어릴 때부터 이루어 져야 앞으로 더 많은 환경이 변화할 거라고 생각해요.

성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에요. 학업에서는 획일적인 이론으로 그치고 마는 성교육이 정말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어쩌면 어설픈 교육으로 한 인격의 정체성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죠. 교육이 변해야 아이들도 변하고, 사회도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해주신 가족이라는 존재도 그렇고 성적 소수자로 살면서 관계라는 것이 가장 큰 벽일 것 같아요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대담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나쁘게 들릴 수 도 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죠. 물론 가족은 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끝까지 부딪히면서도 서로 잡아주고 끌어줄 수 있죠. 하지만 친구라거나 동료는 그렇지 않거든요. 어제까지 형님, 아우 하다가도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는 존재잖아요. 내가 주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더라도 남에게 받고자 하는 것에는 인색할 필요가 있어요. 기대감으로 뒤섞인 '의리'라는 것을 믿기 보다 단지 현재의 모습을 믿는 것이 낫죠. 네가 있어서 좋다고 한다면 그게 좋은 것이 되어야지,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것을 기대하게 되면 관계의 벽이 생길 수 밖에 없어요. 기대하지 않으면서 행복할 수 있는 법,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아요.

기대하지 않은 행복이 찾아온 경우가 있었나요?

커밍아웃을 한 뒤 한동안 저 자신에게 몰입해서 살던 적이 있었어요. 열심히, 아니 치열하게 살지 않는다면 안 될 시간들이었죠. 그당시 사람들은 '홍석천' 을 보기 보다 '동성애자 홍석천' 으로 바라보던 때였으니까요. 그런데 언젠가 가게에 한 가족이 식사를 하러 왔어요. 그때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저기 저 아저씨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아느냐 하고요. 식사를 마치고 저에게 인사를 하더라구요. 아이들과 함께... 커밍아웃을 하고 뿌듯했던 순간이었죠. 작지만 동성애자로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이었고요.

선생님에게 열애 그리고 열외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열애... 다시 말하면 사랑이겠죠. 사랑은 혼자하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내 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도 아니에요. 일방통행이 된 사랑은 열애할 수 없죠. 사람이 제 각각 다르듯, 그 차이를 인정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만큼 두 사람이 함께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은 매우 힘든 것이죠. 그리고 언젠가 모두가 헤어지듯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어요. 다만 그 유통기한의 사이에서 가장 멋진 순간을 위해 열애하는 거죠. 기간은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그리고 열외는... 제가 항상 경험하는 것이죠. 늘 열외의 대상이 되는 만큼 열외되지 않기 위해서 싸워야 해요. 열외의 의미에는 '무시' 라는 것이 포함되어요. 같은 곳에서 다른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같은 곳에 있을 수 없는 것이죠. 너희는 우리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니까 공평한 조건에서 열외 시키는 거에요. 함께 열애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죠. 적어도 출발선이 다른 열외는 앞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건 자유겠지만, 동등한 권리에서 열외된 다는 건 너무 가혹한 것이죠.



마지막으로, 10년뒤의 모습을 그려 본다면?

제2의, 제3의 홍석천이 등장했으면 좋겠어요. 10년 동안 혼자 싸워내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자신의 권리와, 정체성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만큼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었으면 하고요. 가능하다면 더 이상 성적 소수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도 없어졌으면 해요. 그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편해지고, 굳이 인터뷰를 하거나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거겠죠. 성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세상, 10년 뒤에 왔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및 정리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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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5. 22:03

낯선 공간에 던져질 때, 우리가 이 ‘낯’-선 공간에서 마주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얼굴’이다.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이 생경한 경험은 그 동안 익숙했던 자신의 모습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호주의 사막에서 에베레스트까지, 낯선 공간을 여행하는 인물들에게서 새로운 자아 구축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소설가 해이수를 만나보았다. <인터뷰 및 편집/편집부>



21세기의 객자(客子)는
사막 위에서 춤추고
에베레스트에 반한다.

"청춘의 시절은 공간이 주는 힘, 익숙하지 않지만 낯선 공간이 주는 힘을 직접 체험해 나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접한 어둠 속에서 차차 사물을 인식해 나가듯, 어려움을 봉착했을 때 얻는 깨달음이야 말로 그 공간이 주는 절대적인 힘이라고 봅니다. 너무 협소한 자기 세상에 갇히지 말고 낯설지만 넓고 깊은 공간을 통해서 자아의 의식을 확립하는 계기를 많이 가졌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향해 끝없이 질문하고 해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거죠. 늙으면 자본은 있어도 체력은 없어요. 청춘은 그 반대이죠. 다양한 공간을 향해 떠나보고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 청춘이 가진 자본보다 무한한 가능성이에요."

“잔인하면서도 재밌지, 그게 인생이잖아.”

‘젤리피쉬’는 어떤 이야기를 담은 책인가요? 낯선 공간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로 서술되고 있는데요.

‘젤리피쉬’의 주인공들은 20대 중후반에서 삼십대 초반의 젊은 화자들이에요. 그들이 네팔, 케냐, 호주와 같은 낯선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자아와 부딪히고 질문하고 성찰하는 내용을 주로 다룬 작품이지요. ‘캥거루가 있는 사막’ 때부터 왜 한국이 아닌 낯선 공간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곤 했는데, 사실 국내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도 있어요. 하지만 우선적으로 국외라는 곳, 즉 낯선 곳을 통할 때 제가 생각하는 작품의 내용과 의도를 제일 잘 전달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일종의 소설 속의 장치인 거죠. 물론 그 장치가 단순한 장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겠지요. 따라서 독자들이 저의 글에 등장하는 익숙하지 않은 공간과 환경을 접하면서 새로운 상상과 체험을 하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젤리 피쉬'의 주인공들이 접하는 공간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요? 단순히 낯선 공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젤리피쉬’의 낯선 공간은 단순히 처음 가본 공간이 아닌 인물들의 안전장치가 제거된 공간이에요. 인물들은 어떤 보호막도 없이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공간에 던져지는데, 저는 그들이 익숙하지 않은 생소한 곳에 던져질 때 자아가 가진 본질의 문제를 보다 치밀하게 대면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마치 벌거벗은 상태로 객지에 놓인 것과 같아요. 익숙한 곳을 떠나온 자신을 되돌아보고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깨달음과 지혜를 얻게 되는 거죠. 어쩌면 자아의 성찰을 위해 낯선 공간에 뛰어든다는 점에서 이들이 접하는 공간은 일종의 순례자의 공간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요. 자신의 내면을 순례하는 겁니다.

그 낯선 공간을 소설에서 형상화 할 때 이전 작품과 달라진 점이 있었습니까?

공간의 의미가 변하면서 낯선 공간에 놓인 화자와 인물들의 심리가 변화한 점을 들 수 있어요. ‘캥거루가 있는 사막’에서 중점을 두었던 공간은 자아 탐색의 공간이었거든요. 그때 저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20대 인물들을 통해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졌었죠.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을 통해 인물들, 크게는 인간의 내면을 살펴보고 탐색하는데 집중했던 셈이에요. 반면 ‘젤리피쉬’에서는 자아에 대한 몰두보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나를 찾는 과정에 방점을 두었어요. 이전 작품에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해답을 나에게서 찾으려 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그 해답을 관계에서 찾으려 했던 거죠. 나와 세상, 이렇게 이분법적인 소통이 아니라 나와 세상 사이에 관계라는 끈으로 이어진 타지의 인물들과의 소통에 집중했던 겁니다. 이는 ‘캥거루가 있는 사막’에서처럼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젤리피쉬’에서는 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트레킹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야.”

‘젤리피쉬’ 중 ‘고산병 입문'을 보면 새로운 공간을 접하는 행위로 트레킹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트레킹은 평범한 여행과는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은데요.

공간을 체험하는 행위는 투어(tour), 트레벌(travel), 트레킹(trekking) 으로 나뉠 수 있어요. 투어는 명승지 혹은 유서 깊은 곳을 탐방, 관광하는 행위이고 트레벌은 그 지역의 문화와 언어를 개인이 직접 뛰어 들어 체험하고 경험하는 행위, 쉽게 말해 긴 기간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트레킹이라는 행위는 클라이밍(climbing)하고 비교할 수 있는데 클라이밍은 전문적인 등반, 고지를 향한 수직적 행위이에요. 하지만 트레킹은 고지를 둔 수직적인 행위라기보다 과정에 중심을 둔 사선적인 행위입니다. 트레킹은 도보로서 그곳의 자연환경과 문화를 인식, 이해하고 공간을 답사하는 움직임이에요. 이때 어떤 일정한 고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순간이 고지가 됩니다. 그래서 트레킹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공간에 대한 정복이라기보다는 그 과정을 향유하는 것이에요. 그 과정은 온몸의 오감을 열어서 자신이 품고 있는 질문에 집중하고 이해하기 위한 성찰의 시간인 것이죠. 육체적 여행이 아니라 정신적 여행이 바로 트레킹입니다.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고산병 입문’ 이나 ‘루클라 공항’에서 묘사되는 고립된 공간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그 공간들은 고립된 공간이라기보다 제한된 공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에베레스트의 산, 루클라의 공항, 룸비니의 사원, 그리고 젤리 피쉬의 집. 인물들이 접하는 이 공간들은 제한적이에요. 특히 ‘루클라 공항’은 인물들이 일정한 시간 동안 벗어날 수 없는 곳인데, 주인공은 바로 이 제한된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게 되죠. 그리고 이때 쌩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면서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는 거고요. ‘아웃 오브 룸비니’의 경우 룸비니의 공간은 세 가지로 나뉘어 있어요. 첫 번째는 낯선 룸비니를 향해 가는 과정의 공간이고 두 번째는 룸비니라는 신비하고 특정적인 공간이며, 세 번째는 룸비니를 다시 나오면서 접하는 공간이지요. 이 공간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순차적으로 바뀌어 가지만 화자는 그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자신을 성찰하게 됩니다. 이처럼 제한된 공간 속에서 인물들은 ‘나의 케냐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겪게 돼요. 두 작품속의 인물들이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되는 이 제한된 공간은 깨달음의 공간이고 카이로스의 시간을 간직한 곳이지요.

방금 말씀하신 ‘카이로스의 시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시간에는 ‘크로노스의 시간’과 ‘카이로스의 시간’이 있어요. 원인과 결과는 시간에 따라 순차적으로 일어나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에는 그런 인과적 흐름이 아닌 어느 한순간의 번뜩임이 존재하지요. 다시 말해 카이로스의 시간이란 어떤 특정한 사건이 체험자의 뇌리에 각인되는 순간, 바로 찰나(刹那)를 뜻하는 것입니다. 작품에서는 그 시간이 여행을 통해 얻어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비단 여행이 아니더라도 무언가에 끊임없는 고민해오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에 고민의 퍼즐들이 맞추어지는 순간을 느낄 수가 있어요. 물론 이 시간은 지속적으로 고민하며 해답을 갈구한 사람들에게 다가오지요.

“탕탕(蕩蕩)과 외외(巍巍)”

탕탕과 외외를 품고 시작된 에베레스트 등반, 하지만 ‘루클라 공항’은 “에베레스트를 올라갔다 오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데요.

실제 루클라 공항은 참 재미있는 곳이에요. 에베레스트라는 신성한 공간과 산 아래 세속 공간의 사이에 위치한 중간 기착지거든요. 소설 속에서 이 중간 기착지에 모인 인물들은 각자 목적이 달라요. 주인공은 높고 지고지순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 어떤 친구는 술과 담배 등의 중독을 벗어나고자, 또 다른 친구는 기계 문명을 반성하려고 도달하지요. 그들에게 그곳은 산과 세속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특수한 공간이면서 자신의 고민이 그곳에서 만난 타인을 통해 발현되는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관계와 경험을 만들면서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려 하지요. 그런데 그들이 산에서 내려갈 때가 되면 필연적으로 모두 자신의 예전 일상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저는 이때의 복귀를 예전과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맞이하는 과정으로 보았어요. 설령 그들이 변함없는 예전의 위치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그들은 이미 자신의 삶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발견하는 과정을 경험했기 때문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에베레스트에 오르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다는 말은 겉은 달라지진 않았지만 내면은 변화했음을 함축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주인공의 내면을 돌아보게 만드는 주변 인물의 역할을 빠트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 너는 그렇게 힘든 곳을 올라갔다 왔느냐, 이 질문은 ‘루클라 공항’에 등장하는 쌩이 주인공에게 항상 궁금해 하는 부분이에요. 하지만 쌩은 끝내 그 대답을 듣지 못하고 결국 주인공의 팔을 물어버리죠. 주인공이 이후 헤어졌던 쌩을 다시 만나려고 애를 쓰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쌩의 잇자국뿐, 그들은 다시 만나지 못해요. 그때 주인공에게 남겨진 쌩의 잇자국의 의미는 물은 자국, 물음의 흔적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쌩이 주인공에게 던진 질문, 즉 왜 쉽지 않은 여정을 택하고 왜 힘든 산에 오르는지에 대한 물음이 이젠 자아의 물음이 된 셈이지요. 쌩이 주인공에게 자신을 돌아볼 질문을 인식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 겁니다. 또한 ‘젤리피쉬’에서 가정교사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과 여학생의 사이는 한순간 점멸했다가 영원히 암전 되어버리는 관계에요. 그 둘은 짧은 시간 동안 함께 호흡하죠. 사적인 것은 묻지 않고 자기 말만 들어야 한다는 규칙 속에서 그들의 관계가 시작돼요. 이는 어찌보면 절대 애틋할 수 없는 조건이지만, 반짝거리는 한 순간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애틋해져 있어요. 그래서 주인공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죠. ‘루클라 공항’과 ‘젤리피쉬’에 나오는 주변 인물들은 이렇게 화자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도록 해요. 주인공을 이끄는데 이 타자들의 역할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거죠.

“다시 여행을 떠나는 거야. 무엇을 해야 할지 알 때까지.”

여행을 많이 다니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낯선 공간은 어디였나요? 이곳에 이대로 머물고 싶다고 생각한 곳이 있나요?

작년 여름에 몽골을 다녀왔어요. 몽골은 몇 가지 세계적인 기록이 있는데 죄수 탈옥율 이 가장 적은 곳이래요. 탈옥을 해서 도망을 가도 말이나 차가 없는 한 한 시간 정도를 도망가도 다 보이기 때문이지요. 깨끗하고 광활하죠. 제가 거기서 자고 일어난 첫날 아침에 본 것이 양을 치는 목동이었는데, 그 순간 소설가가 된 것이 후회되면서 양치기가 되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과 함께 하는 아름다움을 몸소 받아들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있는 지인에게 몽골에서 양치기나 해야겠다는 문자를 보냈는데, 그 지인이 해준 말이 소설가가 결국에 양치기라는 것이었어요. 거짓말쟁이 양치기 말이에요. 대한민국의 훌륭한 양치기가 되어달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어쨌든, 몽골은 비우는 곳이었어요. 사진기도 수첩도 모두 두고 몸과 마음만 가지고 가는 곳이었어요. 그곳에 도착하면 알게 돼요. 비우는 곳이라는 걸. 비우러 가는 곳에선 찍고 적고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가장 낯선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너무도 있고 싶었던 곳이었지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여행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캥거루가 있는 사막’, ‘젤리피쉬’ 모두 여행의 목적을 알려주지 않아요.

여행에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쌩의 잇자국처럼 끝없는 물음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여행이라는 행위는 정복이 아니라 이해와 인식의 과정이니까요. 그 과정을 통해 얻게 된 답들은 사람들마다 모두 다를 수밖에 없고요. 작품 속에서 주인공들은 낯선 나라를 헤매고 험준한 사막을 넘고 초원을 거닐지만, 이는 단지 은유일 뿐이에요. 읽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그것은 상상 속의 체험일 수 있고 내면의 성찰일 수 있지요. 따라서 작가로서의 바람이 있다면, 독자들이 저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며 스스로 그 여행의 결과와 해답, 그리고 깨달음을 얻어가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세세한 부분까지 통제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엄연히 독자의 영역이에요. 비록 제가 만든 이야기와 인물들이지만 연민과 설렘과 슬픔의 감정 등을 직접 느끼는 사람은 결국 독자들이니까요. 그리고 그 과정은 일종의 독서를 통한 정신적 트레킹일 테고요.

“노프라블럼은 빅프라블럼이다.”

요즘 외국으로 떠나는 많은 젊은이들을 보곤 합니다. 그들을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나가게 만드는 현재의 가장 큰 프라블럼은 무엇일까요?

사실 특정한 경우를 빼면 꼭 나가야 할 필요, 그 프라블럼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청춘의 시간에서는 어느 정도의 장치와 도구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저도 그랬고요. 젊은 나이일수록 낯선 공간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간혹 외국으로 떠나는 친구들을 보며 도망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들에게 낯선 곳은 자신을 대면하기 위한 곳이지 도피처가 아니에요. 어쩌면 그곳은 자신의 욕망과 도전을 재점검하는 공간일 수도 있다는 얘기지요. 마치 빵으로 부풀어지기 위해서 발효되는 시간이며 공간인 셈입니다. 제가 작품에서 인물들을 외국으로 나가게 한 이유도 그것과 비슷해요. 덧붙이자면 우리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지구에 살고 있는 것처럼 저는 국내작가이기도 하지만 세계 시민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작품은 우리 동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세계를 무대로 한 이야기이기도 한 거죠. 이런 맥락에서 밖으로 나가고 외국으로 나간다는 건 세계 시민으로서의 행동이라고 봐요. 한국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세상을 바라보며 맞이하는 것이고, 세계 시민의 일원으로서 낯선 세계를 대면하는 것이죠. 저는 작가로서 그런 공간과 인물들을 작품에 활용하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애써 생소한 공간에서 어려운 경험을 했던 그들이 돌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록 그들이 현실에서 마주친 문제와 찾지 못한 해답이 있어서 이곳을 떠났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돌아옴을 실패와 좌절로 볼 필요는 없다고 봐요. 여행이나 트레킹은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지요. 비록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이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사람들과 부대낀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똑같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 자리에 돌아온 그 사람은 자신이 이루어야 할 이상향을 향해 좀 더 성장한 내면을 지니게 된 사람입니다. 배우라면 무대 위, 연구자라면 실험실 안, 화자라면 이젤 앞, 작가라면 종이와 펜 앞에서 과거와는 다른 자신을 세우는 겁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떠나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이죠.

“고도가 높으면 썩지 않을 수가 있다.”

결국 자신다움을 발견할 가능성은 낯설음을 경험함으로써 생길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낯섬과 불안을 대면해야 하는 현재의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을 남겨주세요.

사실 저도 늘 불안해요. 청춘의 시간이 끝난다고 해서 그 불안이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사람의 삶에는 항상 불안이 스며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그 불안이 익숙한 것이든 낯선 것이든 담대하고 의연하게 대처했으면 좋겠어요. 멀리 있는 불안을 앞으로 당길 필요는 없어요. 현재에 충실하고 노력하면 가까운 불안이 하나둘씩 사라져요. 소박하면서도 차분하게 계단을 밟아가는 겁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청춘들은 취업난에 불안해하는데, 그건 사회라는 낯선 곳을 향하는 학생들에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문제에요. 핵심은 꿈을 찾으면 직업을 얻게 되지만 직업을 추구하면 꿈을 잃게 된다는 거예요. 제가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자본과 꿈의 굴레에서 많은 친구들이 현재 고민을 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이 지닌 문제들은 그들 스스로 이미 해답을 알고 있는 노프라블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한 노프라블럼에서 생기는 불안을 크게 부풀리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낯설다는 것에 부딪혀 실패하더라도 그것은 성장의 한 과정일 수 있어요. 그래서 낯설음에 대면하려는 시도는 필요한 거고요. 낯선 공간, 낯선 시간에서 그 불안을 제거하거나 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이용하려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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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1. 22:39

사람들은 과학 지식의 대부분을 입시 교육 과정에서 배운다. 하지만 이 또한 단편적인 지식들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기자 역시 빅뱅 우주론의 기본 아이디어만을 알고 있을 뿐 우주의 기원과 역사를 이해하는 이론으로서 빅뱅 우주론을 체계적으로 접한 적은 없었다. 이석영의「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은 제목 그대로 빅뱅 우주론에 대해 쉽게 풀어쓴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천문학을 낯설어 하는 사람들에게 우주의 탐구가 우리의 일상과 연결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로 연결될 수 있음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 속에 담겨 있는‘천문학’,다소 멀게만 느껴지는 이 이름은 밤마다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 만큼이나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7000만 인구가 살고 있는 남북 10000 킬로미터 한반도만 생각해도 벌써 머리가 혼미해진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인류의 진정한 고향이자 근원인 우주 앞에서, 그 무한한 심연 앞에서 느낄 현기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빅뱅 우주론이 현재의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아름다운 이론’으로 정립되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그전까지의 빅뱅 우주론은 수학자들의 시각으로 볼 때 조금 불편한 면이 있었어요. 그때 제기되었던 세 가지 문제점이 우주의 편평도 문제, 우주의 지평 문제, 원시 입자의 문제였어요. 대표적으로 편평도 문제 같은 경우, 확률적으로 매우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우주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수학적인 측면에서 그렇게 작은 확률을 가진 현상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죠.
그런데 암흑 에너지가 그 부분을 채워주었던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암흑 에너지의 존재를 강하게 신뢰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에요. 초신성 연구를 통해 빅뱅 이론이 수학적으로도 매력 있는 이론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암흑 에너지 개념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지금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 분야가 이 분야이기도 합니다. 암흑 에너지가 100개도 안 되는 적은 숫자의 초신성 연구를 통해 관찰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프로젝트들은 1000개, 10000개의 초신성을 통해 암흑 에너지를 다시 한 번 관찰하고 있어요. 규모가 크기 때문에 팽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훨씬 정밀하게 알 수 있을 것이고, 동시에 암흑에너지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탐구할 수 있겠지요. 지금까지는 진공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는 것만을 알고 있지만, 이론적 예측과 실제 값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아직 수수께끼로 남겨진 부분이 많습니다.

● 천문학에선 하나의 의문점을 풀기 위해 대단히 많은 이론들이 서로 경합을 해왔는데요. 그렇다면 현재 빅뱅 이론에 도전하고 있는,‘우주의 시작과 지금’을 설명하는 또 다른 이론은 없나요?

20년 전까지만 해도 빅뱅 이론에 대치되는 이론이 있었는데 그것이 정상우주론이에요. 이것은 정적인 상태가 유지된다는 이론으로, 우주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대략 지금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빅뱅 이론처럼 우주가 무(無)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팽창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는 이론이죠. 그러나 허블 망원경을 통해 은하들이 서로 멀어져가고 있다는 걸 발견한 이후엔 점차 사라지게돼요. 다시 말해 지금 빅뱅 이론 외에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이론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단지 빅뱅 이론 내에서 다양한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거죠. 예를 들면 최초의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보다는, 일단 시작했다고 가정한 뒤 어떻게 팽창했는가, 어떻게 물질이 생기고 별과 은하가 생겼는가를 연구하는 식이지요. 또 지금까지는‘어떻게’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요즘은 최초의 빅뱅이‘왜’생겼는가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물질에는 입자가 있고 반입자가 있듯이, 우주에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지역이 있는 반면, 같은 공간이지만 다크섹터(Dark Sector)라는 암흑의 세계도 있다는 주장이 최근에 제기되고 있지요. 쉽게 볼 수 없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에 영향을 주는 섹터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주로 입자물리학에서 많이 연구되는 분야인데요. 우주에는 알 수 있는 물질과 알 수 없는 물질이라는 이항대립이 존재한다는 것이에요. 대표적으로 입자와 반입자, 전자와 양전자의 존재입니다. 이처럼 관측되지는 않지만 알 수 있는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알 수 없는 물질들이 존재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지요. 연구자들은 이 상호작용의 증거가‘중력’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만약 이게 증명이 되면 바리온 이외의 임계밀도를 설명할 수 있게 되요. 정리하면, 빅뱅 우주론에 대적할만한 다른 우주론은 현재 존재하지 않고 빅뱅 우주론이 가지고 있는 의문점들에 초점을 맞춰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한국에서는 천문학이라고 하면 우주인 이소연 박사를 가장 먼저떠올릴 정도로 아직까지는 천문학이 보편화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과학지식의 대중화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직까지 크게 활동을 한 적은 없어요. 오히려 이 책을 낸 이후로 그러한 요청들이 많아졌죠. 그리고「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이 예상보다 많이 읽히는 걸 보고 사람들이 천문학에 대해 관심이 있구나하고 느꼈고요. 실제로 연세대학교에서‘우주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맡고 있는데, 한 학기에 약 400명 정도가 들을 정도로 인기가 굉장히 높아요. 저는 학기 초와 말에 학생들에게 강의에 대한 소감을 꼭 적어서 제출하게 하는데, 학기 초에는 다들 천문학에 대해 낯설어하고 어려워하다가도 학기말이 되면 많은 학생들이 굉장히 좋은 평가, 재미있다는 평가를 해요. 그런 것들을 보면 아쉬운 점이 많지요. 강압적인 교육 때문에 수학과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배울 기회가 없고 점차 과학에 대해 낯설어지게 되거든요. 안타깝게도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이미 지긋지긋한 대상으로 생각해버린다는 거예요. 학생들을 보면 대체로 과학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건 사실 국가 전체로 보면 엄청난 손해예요. 학생들이 수학∙과학 등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겁니다. 사실 배워보면 재미있는데도 말이지요. 결국 이는 대중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 되요.그리고 실제로 고정관념을 깨고 과학지식의 대중화에 힘쓰시는 분들이 있어요. 예컨대 조경철 박사의 경우, 우리 같은 아폴로 세대들은 TV에서 그분의 강의를 들으며 천문학도의 꿈을 키웠거든요. 오늘날에도 그런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이때 학자로서 조심해야 될 부분이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대중교육 활동을 하다보면 대중의 요구는 많아지게 마련이고 그 요구들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학자 본연의 자세인 연구 활동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 오랫동안 외국에서 공부하시며 연구 활동을 하셨는데, 세계에서 한국 천문학의 위상은 현재 어떠한지 궁급합니다. 또 앞으로의 가능성은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일단 한국 자체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국가 인지도가 낮다 보니까 국내의 학자들도 마땅히 인정을 받기가 어렵고요. 개별 연구자들이 연구를 잘해도 국가 인지도가 낮으면 연구 활동을 인정받는 게 늦어지는 것이죠. 현재 한국에서 천문학 박사 인원이 150명 정도인데 이는 매우 작은 규모입니다. 하지만 규모에 비하면 개별 연구자들의 연구 자체는 활발한 편이에요. 그래서 다른 학문들과 비교할 때, 규모에 비해 국제적 위상이 높다는 생각을 하고요. 올해 물꼬를 틀만한 일이 생겼습니다. 한국이 세계 최대 망원경인‘대 마젤란 망원경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된 것이죠. 이 망원경은 2017년에 완성 예정인데요. 거울 면적이 현존하는 망원경의 거의 5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망원경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면서 한국이 관측 시간의 10%를 사용하게 되었죠. 이건 엄청나게 비약적인 발전이에요. 미국의 연구 인력이 우리의 50배인데, 그들이 5~60%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한국이 10%를 사용한다는 것은 관측여건이 엄청나게 좋아진 거라고 보시면 돼요. 과거에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처지였다가‘스바루’라는 8.4m짜리 자체 망원경을 독자적으로 개발했고, 그 이후에 천문학적 위상이 높아졌지요. 우리도 이 망원경이 완성되면 아마 위상의 변화가 있을 겁니다.

● 관측 여건이나 기기의 발전에 의해 위상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편인가요?

그렇습니다. 자연과학은 이론보다 실험에 더 많은 바탕을 두는 학문이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 큰 발견이 실험을 통해 이뤄져요. 허블 우주 망원경처럼, 여태껏 할 수 없었던 새로운 해상도로 이미지를 볼 수 있다든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파장 영역의 빛을 볼 수 있다든지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관측을 통해 과거에 갖지 못한 정보를 가지게 되면 급격한 지식의 진보가 오는 것이고요.

● 선생님께서 2006년에 발표하신 논문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논문의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세요.

은하는 나선 은하와 타원 은하라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나선 은하는 별이 생성되는 은하이고 타원 은하는 별이 생성되지 않는 은하이지요. 지난 100년 동안 천문학자들은 타원 은하는 별을 더 이상 생성하지 않는, 죽어가는 은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우주 공간에 쏘아 올린 우주 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 많은 타원 은하가 아직도 별을 생성하고 있다는 자외선 특징을 발견하게 됐어요. 간단하게 요약하면 크게 두 가지 발견으로 정리 할 수 있어요. 첫 번째는 타원 은하도 별을 생성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어떤 타원 은하는 별을 생성하고 어떤 은하는 별을 생성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 지점에서 의문이 제기되죠. 왜 어떤 타원 은하는 별을 생성하는데 어떤 타원 은하는 그러지 않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지요. 제 연구는 이 의문을 기반으로 하나의 이론을 제시한 것입니다. 타원 은하만의 특징은 은하 중심에 블랙홀이 있다는 것인데, 이 블랙홀이 잘 알려졌다시피 주변 기체를 빨아들이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기체를 뜨겁게 달구는 역할도 해요. 그런데 별이 생성되려면 기체가 차가워야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기체가 있어도 별을 생성하는 것을 막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주장한 것은 타원 은하 중심의 블랙홀에 의해 타원 은하 내의 별 생성이 조절된다는 이론이었어요.

● 현재 진행 중이신 프로젝트와 향후 연구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은하 형성이론을 정립하는 것이 저와 우리 연구팀의 목표입니다. 천문학적으로도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대상이 은하에요. 별과 우주에 대해서는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지만, 아직도 정복하지 못한 대상이 은하거든요. 은하의 생성에 대한 질문이나 거대 은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와 같은 미완의 질문들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에요. 거대 은하의 경우 작은 은하 수천 개가 충돌과 병합을 하면서 만들어지는데, 그 과정이 너무 복잡해서 아직 이론적으로 다 기술하는 것이 불가능해요. 은하에 대한 이해에서 도달해야 할 목표가 100점이라면 아직 10점정도 수준에 와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만큼 은하 이론은 천문학에서 불확정성 원리가 적용되는 분야라고 할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죠. 그래서 제 희망사항은, 연구를 하기 시작한지 10여년 정도 되었는데 본격적으로 은하 연구를 하는 그룹을 하나 만들어서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이에요. 아직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영역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천문학에 남아 있는 최고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연구 그룹을 만들어 내는 것이 현재의 그리고 앞으로의 제 소망입니다.

● 순수학문을 공부하는 것은 어렵고 힘든 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연구자의 입장에서 순수학문을 공부하는 것이 갖는 의의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우선 매력이 다르지요. 응용학문은 자기가 아는 것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낸다는 매력이 있어요. 반면 순수학문은 그와는 다른 의미로 재미있는 것 같아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사상의 지평을 넘는 일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을 세계 최초로 안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을 알았을 때의 희열이라는 것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지요. 콜럼버스의 경우를 떠올리면 쉽게 공감하실 겁니다. 새로운 대륙을 발견했을 때 그 희열, 나머지 수억의 사람들이 꿈도 못 꾸는 세계를 현실로 보았을 때의 재미라는 것은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블랙홀을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로 알고 있는데, 저는 블랙홀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 심지어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요. 지금도 저는 밤늦게까지 학생들과 토론한 뒤 집에 가는 게 아쉬워요. 아침에 일어나면 빨리 학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요. 자신의 직장을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퇴근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아마 죽을 때까지 이럴 것 같아요. 그러한 기쁨이 순수학문을 공부하는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 김지현 객원기자 / 정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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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1. 22:30

신자유주의 질서가 모든 일상의 영역에 깊숙이 스며든 지 오래다. 하지만 과연 주어지고 강요된 삶의 양식이 얼마나 의문시 되고 있을까. 생존에 대한 공포와 변혁에 대한 냉소 사이에서, 다른 사유와 다른 삶의 가능성들은 조금씩 침식당하고 있다.「아무도 남을 돌보지마라」의 저자 엄기호에게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삶에 대한 진단과 그가 생각하는 사유와 실천의 관계를 들어보았다.



“2000년 이후 내가 보아 온 이들의 마음은 누구할 것 없이, 몰락에 대한 공포와 타인에 대한 차가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제 우리는 탐욕스런 욕망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탐욕의 이면을 지배하고 있는 힘은 몰락에 대한 공포였다.”


● 국내외에서 수년간 활동가로 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해 나름의 문제의식을 갖고 책을 쓰셨을 것 같은데요.

제가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맡게 된 일이‘하자센터’라는 대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였어요. 자연히 새로운 페다고지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지금까지 소위 비판적 페타고지라고 불리던 방법론은‘see-judge-act’,즉 사회 현실을 보여주고 비판적으로 판단하도록 한 후 행동을 촉발시킨다는 도식이었어요. 그런데 이러한 방법론이 지금은 처음부터 삐걱거려요. 아이들이 부조리하거나 불평등한 상황 자체를 외면할 뿐만 아니라 그런 상황을 보고도 비판적 의식을 갖지 않는다는 거죠. 강준만 선생님의「사람들은 왜 분노를 잃었을까」라는 책의 제목처럼요. 비판적 진영의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어요. 비참한 현실을 보여주면 응당 분노해야하는데 분노하지 않으니까요. 요즘 아이들이 보수적이라는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에요. 그런데 애들이 단순히 보수적이어서 그럴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왜 안 보려고 할까. 과연 안 보려고 하는 걸까 아니면 제대로 된 것을 못 보여주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 거죠.

그래서 분노하지 않는 아이들은 어떤 감정과 감수성을 갖고 있는지 세세하게 짚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후 애들을 관찰하며 얻게 된 결론은, 비참하고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상황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 분노가 아니라‘공포’라는 것이었어요. 예전에는‘나는 저렇게 안될 거야’라고 생각하니까 분노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나도 얼마든지 저렇게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까 분노보다는 먼저 공포감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예전 방식의 페다고지는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죠. 따라서 새로운 페다고지를 계발하기 위해서라도, 이 공포의 실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나아가 신자유주의라는 체계가 어떻게 지속적으로 공포를 확대∙재생산하며 사람들을 포섭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현실이 그처럼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자유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모든 가치는 도착될 가능성이 있거든요. 자유뿐만 아니라 평등, 정의, 사랑 등등 소위 말하는 대의라는 것들 모두요. 어떤 면에선 지금 신자유주의 사회는 자유가 너무 넘쳐나요. 물론 그렇다고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 자유라는 것이 어떤 자유인가, 도대체 어떤 형태로 도착되어 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는 말이에요. 신자유주의에서 자유의 핵심 논리는 이런 거예요.‘너희 모두는 자유롭다. 그러니 너희가 책임지고 잘 선택해라.’이처럼 자유는 관념적이고 형식적이며 즉각적으로, 다시 말해 선험적으로 주어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선험적으로 주어진 자유 속에서 사람들이 얻게 되는 것 혹은 감당해야 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책임, 선택에 대한 책임뿐이에요. 자유가 선택의 문제가 되어버리면 선택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파편화된 개인들만 남을 뿐, 공동체는 붕괴해 버리고 말아요. 전통적으로 자유는 인간의 권리, 즉 Human Rights 중 하나였어요. 여기서 인간이란 Human, 다시 말해 인류라는 공동체지요. 그런데 자유가 선택의 자유로 국한되면 Human은 Individual 로, Rights는 Responsibility로 바뀌게 됩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는 자유라는 이름하에 모든 실패와 탈락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이 짊어지게 만드는 시대라는 거예요.

● 그것이 ‘사회적 비용의 외부화’ 내지 ‘자기계발의 강제’로 가시화 되고 있는 듯합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예전에는 자본가의 파산은 자본가가 투자를 잘못해서 일어난, 즉 자본가 개인의 실패였어요.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해고되는 것도 예전에는 사장이나 회사가 잘못했기 때문이지 노동자들의 잘못은 아니었거든요. 반면 지금은 구조조정으로 노동자가 쫓겨나면서도 오히려 노동자의 책임이라고 이야기되는 시대예요. 단적인 예가 쌍용자동차 사태입니다. 그 상황에서 몇몇은 쫓겨나고 또 몇몇은 안 쫓겨났어요. 그런데 쫓겨난 사람에게 쏟아진 비난들을 보면 그동안 업무를 잘하지 못해서, 자기계발을 안 해서, 그러므로 남을 자격이 없으니 당연히 쫓겨나야 된다는 식의 논리예요. 운영을 잘못한 회사의 잘못도 아니고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 정부의 잘못도 아니고 바로 쫓겨난 사람의 잘못이라는 말이에요. 실직에 대한 궁극적 책임이 이젠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된 겁니다.

●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세종시를 보면 기득권층의 이권은 유지하되 나머지 계층은 철저히 배제하는 양상이 엿보입니다.

근대국가가 작동했던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가 비스마르크식 통치인데, 그 핵심은 국가전체를 철저히 관료제화해서 국민들 중에 소외층이 없게 만들겠다는 것이에요. 누구든지 한 자리씩 차지하게끔 몫을 나누어 주겠다는 것이고, 나아가 이를 통해 혁명을 막으려 했던 겁니다. 애초에 지방 균형발전 차원에서 제기된 세종시 건설 논의도 어떻게 보면 남한 사회 내에 소외되는 사람이나 지역 없이 떡고물을 나누어주겠다는 비스마르크식 통치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걸 도로 백지화 하겠다는 말은 근대국가의 두 번째 선택항, 즉 신자유주의적 전략을 택하겠다는 뜻이에요. 살아남은 사람은 같이 가는 거고 도태되는 사람은 어쩔 없다. 덧붙여 도태되는 것은 전적으로 그들 잘못이라는 전략이니까요.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성채를 만들고 그 바깥은 사람이 죽든가 말든가 내버려두는 건데, 저는 이런 면에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자본주의 초창기로 회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부르주아가 성안의 사람을 의미했던 그 당시로요.

● 배제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는‘국가’내지‘국민’등의 총체성을 겨냥하는 수사가 동반되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입니다.

우리 가족이 생존하면 우리 마을이 생존하면 우리 민족이 생존하면 나도 생존한다. 이게 상상의 공동체의 핵심이에요. 황우석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고 올해 초 WBC나 김연아 현상도 일정부분 그 연장선상에 있어요. 물론 이러한 현상은 그만큼 위로가 필요한 시대라는 방증이기도 해요. 사는 게 피곤하니까 영웅을 찾게 된다는 말이지요. 이런 걸 볼 때 저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10년, 20년 전으로 돌아간 정도가 아니라 200년, 500년 전으로 돌아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헤겔「법철학」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근대국가가 출현하면 영웅은 소멸한다고요. 영웅은 특수한 의지를 가지고 보편을 감당하는 존재인데, 근대국가의 출현 이후에는 국가 자체가 보편적 의지와 이성을 대표하기 때문에 영웅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지요. 그런데 현재의 상황은 반대에요. 요즘 누가 국가를 믿습니까. 대한민국이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국가가 나를 책임져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국가가 아닌 영웅을 찾게 되는 이유예요.

●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것 역시 그런 심리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나요?

그건 또 다른 이야기예요. 물론 김연아나 박태환 같은 인물들을 영웅시하면서 삶의 위안을 얻는 측면이 있어요. 하지만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건 좀 달라요. 앞서 대의가 무너진 시대라고 말씀드렸지요. 대의를 안 믿는 시대의 핵심이 뭐겠어요. 우리 모두가 속물이라는 거지요. 너도 속물 나도 속물 대의를 말하는 놈들도 다 속물. 그런데 이명박은 뭐냐. 속물의 왕인 거예요. 영웅은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 자신의 이해와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다시 말해 이명박이 뽑힌 이유는 그가 영웅이라서가 아니라 대의가 죽은 시대에 이명박이야말로 너무 솔직하게 스스로 속물임을 드러내었기 때문이지요. 저런 속물이 대통령이 되면 노무현이나 김대중처럼 되지도 않는 대의를 말하면서 우리를 피곤하게 하지 않을 거다, 속물이니까 속물의 욕망을 만족시켜줄 수 있을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제가 보기에 이명박이 국가니 민족이니 이런 대의를 얘기 안하고 오히려 굉장히 속물적인 말을 하면 할수록 인기가 올라갈 거예요. 사람들이 그걸 하라고 뽑아준 거니까요.

● 신자유주의의 키워드 중 하나가‘생명정치’입니다. 신종플루 사태도 이와 관련되고요.

아감벤의 생명정치 논의에서 생명은 생물학적 생명과 사회정치적 생명으로 나뉩니다. 그런데 속물들이 바라는 것은 사회정치적 생명을 풍요롭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에요. 먹고 마시고 쓰고살자. 나의 생물학적 생명을 보장해 달라. 이게 속물적인 사유지요. 이 정권이 실패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 생물학적 생명을 지켜주는 것마저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에요. 신종플루 사태만 보더라도 한국은 통치의 무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어요. 타미플루를 확보하는 등의 실질적인 대응은 찾아볼 수 없고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캠페인뿐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또 그 캠페인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떤가. 이건 제가 직접 경험한 건데, 민방위 훈련에서 사람들을 연병장에‘모아놓고’신종플루를 조심하라고 훈계하는 식이라는 거예요. 정말 상식도 없는 정권인거죠. 당연히 지지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사람들은 자신을 고상하고 교양 있는 존재, 사회정치적인 생명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라지도 않아요. 이 정권에 바라는 것은 속물적인 욕망을 충족시켜 달라는 것, 생물학적 생명을 보호해달라는 것인데 이것조차 충족 시켜주지 못하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이 정권이 신자유주의조차도 못 되는 정권이라고 판단하고 있어요. 큰 틀에서보면 신자유주의적 정권인데 운영해 나가는 방식을 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정권인 거죠.

● 통치의 무능을 드러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생명을 배제하는‘통치의 군사화’전략만은 탁월하게 발휘하고 있거든요. 용산사태가 그렇고요.

맞습니다. 국민을 다스린다는 의미에서 보면 웃기지도 않는 정권인데 빈민, 이주 노동자, 사회운동 등의 세력들과 싸울 때는 너무나 신자유주의적이에요. 미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게 된 역사적 맥락을 봐도 이주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이 포함되어 있어요. 이처럼 신자유주의는 적들을 사회 밖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찾는 게 특징이죠.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 질서와 개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국가는 내부의 사회운동에 대해서 대단히 폭력적인 방식을 취하고 국민은 이런 방식에 암묵적으로 동의해요. 속물들이 지켜지길 원하는 질서란 결국 사유 재산의 보장, 즉 경제 질서이고 국가는 그게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한 방식으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즉 현재의 처벌 메커니즘은 개인을 훈육하는 차원을 넘어 처벌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사람들마저도 훈육하는 방식인 겁니다. 쌍용차 문제가 그런 식으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도 그 이전에 용산 사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용산 사태를 보고 정말 죽을 수도 있구나, 정말 죽이는 구나라고 느끼게 됐다는 말이에요. 이처럼 가혹한
처벌을 공시하면서 사람들을 길들이는 방식은 푸코의「감시와 처벌」1장에 기술되는 처벌방식이에요. 자본주의가 초창기로 회귀한 것처럼 처벌 역시 훈육사회 이전으로 돌아간 셈입니다.

● 결국 새로운 페다고지의 구축이 시급해질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다면 이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의 좌파가 대단히 소비적이라는 점이에요. 좌파 내지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글을 쓰는 행위를 보면 생산적이지가 않아요. 우리의 현실을 새롭게 이해하는 사유와 태도를 촉발시키기보다는 서구나 제 3세계의 이론을 수입하는데 급급하다는 겁니다. 들뢰즈의「대담」이라는 책엔 이런 내용이 있어요. 들뢰즈는 본인의 책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는 사람이 제일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해요. 왜 자신의 책을 두세 번 읽으면서 이게 맞는지 안 맞는지를 따지고 있느냐, 내 책은 그냥 한번만 읽고 새로운 감흥과 영감이 떠오르면 그걸 발판으로 삼아 새로운 걸 시작하면 된다는 얘기거든요. 저는 우리나라의 좌파나 진보라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기억해야 되는 게 이 지점이라고 봐요.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영감을 학생들 혹은 독자들에게 촉발시키고 있는지 자문해 봐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질 않으니 페다고지가 안되죠. 좌파지식인들의 핵심 역할은 새로운 앎, 새로운 인식, 새로운 실천, 새로운 반성 등을 촉발하고 격려하는 것임에도 말이지요. 그래서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떤 좌파지식인 이든지 간에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영역, 저 같은 경우엔 수업을 하는 강의실이‘로두스’니까 거기서 치열하게 뛰어야 된다는 겁니다. 자기 학생들도 설득을 못하는데 누구를 설득하겠어요. 그 곳에서 생산 그리고 생성을 해야 되는 거지요.

● 마지막으로 인문학적 사유와 실천에 대한 의견 부탁드립니다.

20대 대학생들이 신자유주의 사회의 모순을 잘 몰라서 문제가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너무 잘 알아서 문제고 그래서 냉소주의에 빠지는 거지요. 김대중 노무현 10년을 거치면서, 해봤자 소용없고 진실은 타락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이미 체감했다는 말이에요. 저는 이 시대에 사유를 하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아는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그보다는 나의 앎이 어떤 태도를 만들어내고 있는가를 되짚어보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태도야말로 내가 지금 어떤 방식의 삶을 살고 있는지 묻게 되는 동시에 앎 너머를 사유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대안이 없지는 않아요. 따지고 보면 대안들은 너무나 많죠. 그런데 그 수많은 대안들이 대안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지금의 태도들이 그것들을 시답잖게 보도록 만들기 때문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사유가 문제가 아니라 실천이 문제라고 말하는데, 현재의 앎과 태도 자체를 의문시 하지않는 한 아무리 새로운 대안과 실천이 제시되더라도 다시 냉소주의에 포획될 수밖에 없어요. 따라서 대안이 마치 도달 불가능한 먼 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냉소주의에서 벗어나 지금 존재하는 이 대안들을 대안으로서 바라보는 태도를 촉발하는 것이 핵심적인 사안인 거죠.

인터뷰 곽성우 / 정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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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1. 22:19

「열외인종 잔혹사」는 제 14회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발간된 이후 여기저기서 큰 화제가 되었다. 한국 사회가 끌어안고 있는 모순이 폭발하는 상황을 속도감 있고 시의적절하게 묘사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채용 여부를 저울질 당하는 인턴 여성에서부터 박정희를 목 놓아 외치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한 공간 안으로 밀어 넣은 인물의 군상은 실로 다양하다. 나는 어떤 인물에 해당되는지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군중의 혼란과 분노가 종이 너머로 전해져 온다. 스스로“한겨레 아니면 절대 당선되지 않았을 내용”이라며 웃어버리는 저자 주원규는 과연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 걸까.




“건축은 기능적 목적으로 공간을 만드는 예술이다. ... 건축은 공간을 통해 인간의 생활을 재조직하는 작업이다. ... 건축은 인간의 생활을 조직하기 위하여 공간을 조직하는 예술이다.”

● 제목이 독특합니다.‘열외인종 잔혹사’는 천민자본주의가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나타나는 열외인간들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열외인종 혹은 열외인간에 대한 나름의 정의가 있을 것 같아요.

1차적으로는 경쟁사회 시스템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 경쟁할 기회조차 잡지 못한 사람들을 의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경쟁사회 안에서 경쟁하고 활동하고 움직이고 살아가야만 하는 모든 사람들 자체가 열외인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한국 사회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총칭하는 것이죠. 한국 사회 전체가 천민자본주의에 함몰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이미 열외인종이라고 생각합니다.


● 소설 전반적으로 서울의 공간을 매우 자세하게 묘사하셨는데요. 그 중에서도 코엑스를 굉장히 상징적인 공간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코엑스라는 공간 자체가 천민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주의의 양극화 같은 부분들이 완전히 집약되어 있는 거죠. 지하철로도 쉽게 접근이 가능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코엑스 내부는 소위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일반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고가품들로 채워져 있어요. 그래서 제게 코엑스는 소비를 촉발시킬 수 있는 첨단을 지향하는 공간입니다. 롯데리아와 밥 한끼 먹는데 38만원을 내야 하는 디럭스룸이 공존하는 모습이 사회의 모순을 단적으로 나타낸다고 생각했습니다.


● 작품 속에서 김중혁은 이성적인 방법을 통해 위기를 탈출하는 등 광록과 비교해서 노숙자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김중혁이 전세를 역전시키는 핵심적인 인물이 되는데요. 김중혁에게 이러한 역할을 부여한 특별한 의도가 있습니까?

사실 이 작품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것을 보고 구상했어요. 특히 김중혁이란 캐릭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실제로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소외당한, 열외된 사람이었죠. 그런 상황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려다 결국 희생되었잖아요. 이 서사를 김중혁이라는 캐릭터에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민중의 상황을 묘사할 때조차 노숙자라는 존재는 이와 동떨어져 있는 열외인종이 되고 있는 상황에 주목했고요.


● 많은 사람들이 양머리(십헤드)라는 상징성에 주목하는 것 같습니다. 목자가 없으면 스스로 길을 찾지 못하는 무능한 양으로 민중을 매도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민중을 어떤 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제가 소설 속에서 사용한 양머리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갈 수 없는 존재, 목자가 인도해야만 하는 존재들입니다. 이는 역설적인 표현이죠. 실제로 민중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지배 세력의 관점이고, 저 자신은 이러한 관점을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민중을 양으로 보는 시각에 장점은 있죠. 목자가 이끌어주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목자가 낭떠러지로 우리를 데려간다면? 우리는 아무런 저항 없이 그냥 희생당하게 됩니다. 저는 그러한프레임 자체를 거부하고 싶은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문화∙정치적인 해체가 일어나야 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문화나 의식에 치중하는 한국 교회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지만, 텍스트에 집중함으로써 기독교의 본 취지를 되짚어 보도록 하는 대안이기도 합니다.


●‘분노’가 혁명의 방아쇠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성 혹은 논리가 아닌 감정적인 분노로 인해 사회 모순이 터져 나온다는 발상은 독특해 보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성의 시대니 뭐니 해서 이성을 강조해 왔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성이 정지된 상태가 현재 한국사회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야기하는 분노는 거의 막장에 내몰렸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 본능으로서의 분노를 말합니다. 반사작용이라는 측면의 분노라는 거죠. 사회가 잘못되었으니까 바꿔야 한다는 혁명적 의식에서 분노하는 게 아니라 내몰린 상태에서 어쩔수 없이 파열되는 현상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러한 사태에서 이성을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치인 시대라고 생각하고요. 이성의 반대편인 감성적 측면이 분노로 폭발함으로써 역으로 이성이 사회의 문제를 자각하는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더 이상 감정 등의 개념이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시대라고 보고 있습니다. 소설에서도 말이 안 되는 지금 상황을 묘사하고 싶었어요. 감정이 극한으로 몰려있는 상태, 그런 상황에서는 어떠한 논리도 적용되지 않거든요.

● 소설에서처럼 분노가 방아쇠가 되어 혁명이 실제로 일어나야 한다면 그러한 변화는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이미 소설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내몰린 사람들의 분노의 폭발은 이미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표출되고 있어요. 저는 혁명이 점조직처럼 흩어진 개인들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무질서하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류의 헤게모니가 밑에서부터 와해되어야 합니다. 유교 가부장주의와 미국적 자본주의가 결탁된 한국의 기묘한 사회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작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들이 나타나야 되는 것이죠. 이렇게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점조직형태의 혁명이 우리를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최근 한국 사회에서 그러한 희망의 움직임들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사실 이는 30대들의 책임이지요. 현재 20대가 일어나서 활동을 해야 하는 시기인데 그렇게 할 수 있게끔 30대가 터를 마련해주지 않고 있어요. 오히려 보다 더 자본주의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지요. 하지만 지금 10대들에게는 희망을 걸어 봐요. 지금 20대들과는 좀 다른 것 같고, 또 혁명에 대한 선입견이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능성이 존재하지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 점조직적 형태의 혁명은 희망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실제적인 측면에서 하나의 움직임으로 응집이 되어야만 물리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저도 낭만적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오히려 기득권을 결속시키는 계기로만 작용할 가능성도 있죠. 하지만 적어도 소설, 영화 같은 문화 영역은 밑에서부터의 혁명을 부르짖는 것이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최근 들어‘소통’이 사회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선생님 역시 소통을 강조하고 계시는데,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소통 혹은 가장 시급한 소통은 무엇일까요?

지금 한국사회는 문제라는 차원을 이미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말하자면 폭풍전야의 상태인데, 어떤 식으로든 다가올 파멸을 유예하는 시기인 거죠. 그런 후폭풍에 어떻게 반응하고 인식하느냐에 따라 파멸에 대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모순들로 인해 분노의 감정이 현실화되었을 때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소통이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내재화되어 있는 분노를 끄집어내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 정부의 상명하달식 소통은 진정한 소통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한 소통은 문제 인식이나 현상에 대한 지적이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죠.

● 작품 속에서도 방금 말씀하신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관계는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카니발을 주도하는 양머리 집단 사이에도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소통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현재 어떤 집단이나 사람들 사이에서도 소통이 막혀 있는 상태임을 강조한 것이죠.

● 책이 나온 이후 선생님의 이력이 많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활동하시는 ‘대안교회’와 활동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십시오.

대안교회란 한 마디로 건물이 없는 교회입니다. 건물 자체가 자본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렇게 종교가 자본에 예속되면 종교는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인민의 아편이 됩니다. 따라서 적어도 종교인이라면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대안교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대안교회의 활동은 간단합니다. 모여서 함께 성서 원전을 공부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성서도 번역하고요. 한국에 교회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본래의 취지와는 다른 지금의 풍토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초기 교인들은 오직 문서만을 읽었습니다.

● 한국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성경이 원래의 기독교 정신과 많이 다른가요?

한국의 천민자본주의 프레임 안에 교회가 들어온 거죠. 70년대 박정희 시대에 급성장한 것이 한국 교회입니다. 성서의 가르침이 천민자본주의와 유교적 가부장주의라는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 기득권의 논리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죠.‘잘먹고 잘살자’라는 이야기를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결국 한국 교회는 자본이나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보는 것이죠. 사실 청교도적인 순수성은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거기에 유교적 가부장주의를 끌어와 권위의 위계를 형성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니 토 달지 마라. 이런 식의 논리를 신자들에게 강요하는 형태가 대표적이죠. 이런 부분들을 비판하고 쇄신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 유교 가부장주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데요.

유교 가부장주의는 한국 사회의 암이에요. 도려내야 해요. 사실 유교주의 자체가 배척할만한 것은 아닌데,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미국식 자본주의와 섞이면서 부정적인 면으로 키워졌어요. 근대화 과정에서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거예요. 더 이상 조선시대 때의 그것이 아니고, 권력의 도
구가 된 것이죠.

● 현재 10, 20대의 경우 문자매체보다는 영상매체에 더 익숙합니다. 감수성 또한 이전 세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고요. 문학과 타 매체 간의 연계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비단 우리 세대만 해도 문학의 언어만을 배우며 자라진 않았어요. 엔터테인먼트 영상 언어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세대이지요. 퓨전이나 크로스오버 등 같은 현상은 나타날 수밖에 없어요. 따라서 타 매체들과 어울리면서도 문학 고유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방향을 지금부터라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학이 언어라는 재료를 사용하는 데, 이를 살려내면서 크로스오버를 할 수 있는 방안 말이지요. 또, 솔직히 한겨레 문학상이 아니었다면 이 소설은 당선되기 어려웠을 겁니다. 문학 업계가 많이 경직되어 있다는 이야기이에요. 매체 융합의 문제뿐만 아니라 미술이나 문단 등 권력구조의 해체 또한 고민해야 할 듯합니다.

● 대학원생 또한 잉여인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돈이 안 되는 일을 한다는 것이 곧 무능함으로 인식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학문에 정진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우선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선입견, 편견이 없어져야 합니다. 현재는 돈이 안 되는 학문을 비생산적이라고 몰아가고 있는 분위기인데, 이러한 잣대를 만들어낸 것 자체가 구조악이지요. 생산-비생산, 효율-비효율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사회적 의미들이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고리를 깨기 위해서라도 지금 학문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기존 헤게모니를 해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항적 움직임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 그렇다면 지금 시대에서 문학의 힘은 무엇일까요? 문학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요?

문학이 할 수 있는 것은 센스를 제공하고, 우리가 처한 현실을 느끼게 하며 질문을 던져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제대로 수행함으로써 독자들의 감각을 일깨워야죠. 비판을 하든 긍정을 하든 어떤 식으로든 현실을 수용해서 소통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 문학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김지현 객원기자 / 정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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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1. 22:06

건축은 그 시대의 가치를 반영하고 사람들의 삶을 형태 짓는, 인간의 삶에 가장 가까이 있는 예술 범주 중 하나이다.「건축을 묻다: 건축, 예술을 의심하고 예술, 건축을 의심하다」는 건축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살피기 위해, 건축이 예술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예술의 범주에 어떤 것들이 포함되는지, 즉 예술의 분류와 경계를 살핀 후 건축이 그 분류와 경계에 포함되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책을 진행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단지 건축 뿐 아니라 예술의 범주 및 역사적 변화 과정도 엿볼 수 있는 교양서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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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기능적 목적으로 공간을 만드는 예술이다.... 건축은 공간을 통해 인간의 생활을 재조직하는 작업이다.... 건축은 인간의 생활을 조직하기 위하여 공간을 조직하는 예술이다.”

● 먼저 예비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무엇이고 어떤 사람들을 위해 쓰셨는지 간략하게 말씀해주세요. 
더불어 10년 전에 출간해 좋은 평을 받았던「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와 이 책의 공통점 내지 차이점도 부탁드립니다.


이 책은 ‘건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요. 이는 제가 가끔 술자리에서 혹은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지 좌표를 찾기 위해 종종 던지던 질문이고요.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바로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따라서 기본적으로 이 책의 독자로 상정한 사람들은 저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즉 건축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든지 삼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책을 내고 보니 미학을 하는 사람들이나 문화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보는 것 같더라고요.「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와 이 책의 차이라면 바로 이 지점이죠. 이전 책의 대상이 건축에 최소한의 관심을 갖고 있는 일반 대중이었다면, 이번 책은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집단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공통점이라면, 책 표지에도 썼지만 두 책 모두 인문학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기존의 건축 책들에 국한하지 않고 질문에 답이 될 만한 인문학 서적들을 여기저기서 중구난방으로 호출하고 있는 것이고요.

● 건축을 설명하는 방식은 다양할 텐데, 그 중‘예술’이란 범주와 연관시켜 이야기를 시작하셨어요. 이유가 있을까요?

우선 책의 구성적 측면에서,‘건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효율적으로 답하기 위해 제가 깔아놓은 포석은 이런 거였어요. 건축이라는 개념과, 건축과 연관을 맺고 있는 좀 더 규모가 큰 개념들이나 작은 개념들과의 관계성을 통해 답을 제시하자는 것이었지요. 그 개념들이란 예술, 기능, 구조, 테크놀로지 같은 것들이었고요. 그런데 그 중에서 특히 예술이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적합한 개념이었어요. 예를 들어 기술로 시작하면 나머지 개념들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가기엔 부족한 점이 있는데, 예술로 시작하면 나머지 개념들과 연관을 지으며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훨씬 더 수월하다는 얘기입니다.

● 예술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범주였다는 말씀이신데,‘예술’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인간이 가진 상상력의 한계, 그 지평을 넓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가치가 없다면 예술이 아니지요. 예를 들어‘패션이 예술인가’라고 물었을 경우, 상상력의 한계를 확장했다면 그것은 예술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가령‘이세이 미야케(三宅一生,Issey Miyake)’가“패션의 가치는 신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옷감에 있다.”,혹은“신체는단지 texture를 가진 옷감을 걸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말을 통해 패션이 작품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의 전환을 갖게 했다면, 이때 이세이 미야케는 예술가라고 불릴 수 있어요. 다시 말해 예술의 가치는 딱 하나, 우리 상상력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이고 그랬다면 그것은 예술이에요. 그렇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한‘쟁이’의 취미생활 혹은 직업에 머무르는 것이겠지요.

● 건축의 역사를 인문학적 지식과 함께 설명하시면서 많은 철학자와 건축가들을 소개하셨는데요. 
그 중 특히 좋아하는 인물이나 독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인물이 있나요?

건축가‘르코르뷔제(Le Corbusier)’입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건축가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가 중요한 건축가라는 사실은 누구나 동의하지만 이 사람이 건축사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갖는지에 대한 가치판단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르코르뷔제는 수많은 건축가들 중 조금 뛰어난 건축가 정도가 아니라 기원전부터 지금까지의 건축가들 중 가장 위대한 단 한 명의 건축가라 생각해요. 제가 이런 확신을 갖는 이유는 그가 건축의 근본을 바꿨다고 평가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음악에서 베토벤처럼 말이지요. 모짜르트 등 이전 시대까지의 음악가들은 그저 고용된 존재였던 반면 베토벤은 인쇄소를 통해 자신의 새로운 생존방식을 개척했어요. 또한 음악이 예쁘고 좋은 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이고 압도적인 방식을 통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음악에 새로운 존재가치를 부여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건축에서 르코르뷔제가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건축가는 건축주를 위해 집을 지어주는 사람이었는데 르코르뷔제는 건축가들에게“당신들은 앞으로 이런 세계에 살아야 됩니다.”라고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고, 또 그것을 구체적인 건물과 계획안을 통해 보여준 첫 번째 사람이었단 말이지요. 쿤의 표현대로라면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이고,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을 천재라고 한다면 가장 위대한 건축의 천재는 르코르뷔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그 정도로 건축의 가치를 바꾼 사람은 없었다고 봐요.

● 책 내용이 한국의 예들 보다는 유럽의 역사와 건축물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오늘날 한국의 건축이 일본과 미국을 거쳐 전해진 유럽 양식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겠고요. 
 그렇다면 한국의 건축양식에 대한 평소의 입장은 어떠신가요?

한국이라는 문화적 공동체가 어떤 건축을 이루었고 또 앞으로 이룰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관점은 일반적으로 두 개의 상반되는 방식이 있다고 봐요. 하나는 과거 지향적인 방식인데, 우리의 한옥은 어떻게 생겼었다는 식의 설명이지요. 그리고 두 번째는 현재 진행형인 방식인데, 현재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더 강조하는 입장이에요. 저는 이 둘 중 현재 진행형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어요. 현재의 한국 사회는 서양과도 다르지만 과거의 조선 시대와도 분명 다르기 때문이지요. 물론 현재 한국 사회가 허공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전통적 양식이나 서양의 양식을 잣대로 현재의 한국 건축을 들여다보는 것은 한계가 뚜렷해요. 대표적인 예로 아파트, 찜질방, 노래방, 러브호텔, 예식장 등이 있어요. 이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건축 현상이에요. 현재 한국 사회와 연관시켜야만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 건축물들이라는 거지요.

● 책에도 그러한 예들이 몇 가지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어떤 건축 양식이 있을까요?

찜질방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서양의‘room’은 벽을 통해 구분이 되는 반면 한국의‘방’은 벽 없이 바닥만 있으면 되지요.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유일한 요소는 신발을 벗느냐 신고 있느냐고요. 이처럼 서양의‘room’은 벽을 통해서 구분되기에 그 안에서 어떤 기능이 실현되는지에 따라 다시 구분됩니다. 손님을 맞는 방은 응접실이라는 식으로요. 그런데 한국은 전통적으로 그냥 방이 있고 그 안에는 여러 기능들이 혼합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같은 방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고스톱도 치는 식이지요. 이것이 한국의 전통적인 공간 구성 방식이에요. 찜질방 역시그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규정되어 있지 않아요. 그 안에선 독특한 공동체가 형성되지요. 찜질방을 혼자 가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거예요. 항상 몇 명이 모여서 가는데, 거기서 밀도가 높아지면 모르는 사람 옆에서도 마음대로 자고 사람을 그냥 넘어 다니고, 옆에 있는 사람이 10분 전에 베고 있던 베개를 그냥 가지고 가서 베는 식의 행동들을 해요. 저는 이것이 한국 사회의 농경사회 공동체가 찜질방이라는 건축 양식을 통해 재조합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즉
서양의 어떤 사회에서도 일본에서도 불가능하고 오직 한국에서만 구현이 가능한 건축 양식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한국이 제안한 이 새로운 건물 양식을 외국인들은 매우 신기하게 바라보고있고요.

● 도서관, 학교, 은행, 시장, 아파트, 부엌 등에 대한 상반되는 배치의 예들이 나옵니다. 
그 중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훈육으로 이루어지는 학교와 토론으로 이루어지는 학교의 건물배치가 분명한 차이를 갖는다는 점인데요. 한국의 교육 공간 배치에 대한 의견은 어떠신가요?

학교 건물 배치에 있어서 한국은 그 태생이 비극적이에요. 병참기지의 한 부분으로 잠재적인 병력을 양성한다는 것이 오늘날 학교의 모습을 구성하게 된 시초이지요. 지금 학교의 모습들도 병참기지와 썩 다를 것이 없어요. 새로 짓는 학교 건물들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교실이 있고 한쪽에 복도가 있고 벽 옆에는 운동장이 있어야 해요. 건축은 변화하고 있지만 21세기의 학생들을 포용하기에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건물들은 여전하지요. 그래서 저는 학교 공간이 건물들이 마구 흩어져 있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견 불가능할 것 같지만 가능합니다. 다만 가장 큰 문제는 운동장이 좁아지거나 없어진다는 점인데요. 한국에는 학교에 축구 같은 운동을 할 수 있는 큰 운동장이 있어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어요. 물론 운동장이 있으면 좋지요. 하지만 운동장이 조례 등 일방적인 훈육이 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자 전체주의적 인간을 양성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운동장은 포기될 수도 있겠죠. 이처럼 운동장 문제가 해결되면 학교의 교실들을 마구 흩뿌려 놓는 것이 가능하고 또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역사와 사회가 무엇인가라는 근원(arche)에 대한 성찰의 결과를 구조체(tecture)로 만든 것이 건축(architecture)이다’라는 답을 제시하셨습니다. 이 답에는 인간과 건축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녹아있는데요.

그때의‘인간’은 한 개인이 아니라 개인들이 연관을 맺고 있는 조직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학교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조직이고 집이라면 가족이 모여 있는 조직이에요. 그런데 조직이 방이란 공간을 통해 특정한 방식으로 나뉘어 표현된 것이 바로 건축입니다. 인간의 조직이 무작위로 조직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생활하는 방들도 무작위적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을 테고, 그렇다면 방이 조직되어 있는 방식이 사회가 조직되어 있는 방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을 테지요. 나아가 인간의 조직이 비합리적일 경우 방의 조직을 적절히 배치하면 인간의 조직을 적절히 조정하는 것도 가능하리라는 신념이 생길 수 있고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가령 제가 있는 한양대학교 건축과 대학원 방들은 교수의 방과 대학원생들의 방이 붙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교수들은 자신들의 방문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학생들의 방을 거쳐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지요. 이것은 교수가 들락날락하면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감시하고 통제한다는 것과 한양대학교의 교수-학생의 관계가 도제식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에요. 즉, 사람 사이의 관계가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에 의해 구현되어 있는 거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관계를 그다지 원치 않았어요. 학생들이 언제 학교에 오고 나가는지 별 다른 관심이 없고 단지 학생들이 원할 때 찾아와서 이야기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학원생들의 방은 제 방에서 멀리 떨어진 끝 쪽에 위치해 있어요.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저와 학생들의 관계가 저와 학생들이 방을 사용하는 방식에 의해 표현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방식이 확장되어 조직되면 건물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리하면, 인간과 건축의 관계는 공간을 사용 하는 방식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고, 거꾸로 방이 조직되어 있는 방식을 재조립할 경우 인간 사이의 관계도 재조정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이는 건축이 사회적 책임을 자임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되고요.

● 건축의 사회적 가치를 말씀하셨는데요. 그렇다면‘청계천’이라는 공간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청계천은 원체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가치를 판단하기가 곤란한 점이 있어요. 일단은 더 무거운, 더 가벼운, 더 빠른 것 등이 최고의 가치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의 전환이 도시를 통해 구현된 좋은 예라고 생각해요. 청계천 복원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지요. 물리적으로 음지였던 공간을 양지로 만들었다는 것은 상당히 큰 가치가 있는 거니까요. 다만 그 과정에서 사회적 음지에 있던 사람들이 사회적 양지에 같이 등장하지 못하고 계속 음지로 밀려나가는 상황은 아쉽지요. 예를 들어 청계천에 있던 상인들이 동대문이나 장지동으로 이전을 했는데, 재정착률이 10%도 안 된다는 건 이 사업이 음지를 양지로 바꾸는 데 실패 했고 단지 양지에 있던 사람들의 영역을 좀 더 확대 재생산하는 정도로 끝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게끔 해요. 그리고 사업이 지나치게 과시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 그래서 펌핑을 통해 물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점은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고요.

●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서강대에는 건축과가 없기 때문에 아마 이 책을 통해 건축에 관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독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봐요. 다만 일반 독자들 중 이 책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공이 무엇이죠?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그렇다면‘커뮤니케이션이 무엇인가’에 대해 술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겠지요.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이란 이것이다 라고 답을 내리려 하면 아마 대부분 실패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 방법을 쓰면 틀림없다고 봐요. 커뮤니케이션과 관련을 맺고 있는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몇 가지 개념들 사이에서 연관성을 찾는다면, 커뮤니케이션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커뮤니케이션을 파악할 수는 있을 거예요. 우리가 커뮤니케이션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이유는 정답을 표현한 한 문장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 가치관을 정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질문에 부딪혔을 때 커뮤니케이션이란 개념 하나만 문제인 경우는 없지요. 언제나 그와 관계된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연관 속에서 문제가 생길 거예요. 따라서‘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체적인 방식을 이 책에선 건축이라는 주제를 통해 제안했다고 생각하고 책을 읽으시면 될 것 같아요. ‘생각의구조’를 제안한 것이라고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곽경윤 객원기자 / 정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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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1. 21:53


소비사회의 명멸하는 스펙터클은 욕망을 구축하고 삶을 포위한다. 자본주의적 욕망의 집어등集魚燈을 좇는 동안 우리의 삶에는 무수히 많은 상처가 기록된다. 하지만 이 벌어진 상처 위에 순간의 쾌락이라는 진정제를 삽입함으로써 고통을 유예하고, 상처를 곪게 만드는 것은 분명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상처가 상처로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의 시대에 인문학적 사유를 통해 삶의 상처를 드러내고 고통을 공유하고자 하는「상처받지 않을 권리」의 저자 강신주를 만나보았다.

“자본주의적 삶은 너무나 친숙하고 평범해서 우리 삶이 얼마나 자본주의에 길들어 있고, 그로부터 상처받는지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 의식하기 어려운 상처를 일깨우는 학문, 그 상처를 치유하려는 학문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문학입니다.”


● 철학자의 사상과 문학가의 문학작품이 각 장마다 대구를 이루는 흥미로운 구성입니다.
    책의 기획의도 내지 문제의식은 무엇이었나요?


우리는 현재 자본주의의 아비투스에 지배받고 있어요. 그런데 과연 자본주의적 아비투스를 따르는 삶이 행복한 삶일까요. 아니거든요. 하지만 이에 대한 자각은 힘듭니다. 자본주의는 태어나면서부터 우리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일차 기억덩어리이자 습관덩어리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문제는 기존의 기억을 다른 기억으로, 내가 선택하지 않은 아비투스를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아비투스로 대체하는 일이에요. 그때 우선적으로 필요한 작업이 현실에 대한 진단이겠지요. 따라서저는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가 우리의 내면에 각인시킨 습관체계가 우리에게 큰 상처를 주고 있음을 전방위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시도 했어요. 그리고 철학자와 문학가를 짝짓는 구성을 취한 이유는, 이게 상처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히 이성적인 측면으로만 접근하면 오히려 반발심만 키울 수도 있겠다는 고려 때문이었습니다. 상처를 지적하는 작업이 자칫 상처를 덧나게 하면 안 될 테니까요. 일단 굳어 있는 정서를 말랑말랑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에겐 이성과 감성이 있으니 둘 모두를 같이 공략하자는 것이 기본적인 구성의도였습니다.

●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철학자들을 보면‘생산’의 문제와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맑스가 과연 생산의 문제에만 치중했는가라는 점이에요. 노동자 혁명은 강한 공권력에 의해 언제든 탄압받을 수가 있어요. 이론가이자 동시에 실천가였던 맑스가「공산당 선언」에서‘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한 것은 노동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어요. ‘역사는 생산력의 발전을 통해서 필연적인 방향으로 나간다. 그러므로 역사는 너희들편이다’라고 생산력을 강조했던 겁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보드리야르 같은 학자들이 생산력 중심주의라고 공격 했던 거고요. 하지만 실제로 맑스가 생산의 문제에만 치중했느냐, 아니거든요.「자본론」만 봐도 생산 못지않게 유통과 소비의 문제에 대해 강조합니다. 다만 소비의 문제가 덜 강조됐던 이유는 당시의 자본주의가 식민주의에 기반한 자본주의였기 때문이에요. 국내의 초과생산분을 식민지에서 얼마든 해소할 수 있는 구조였다는 말이고 따라서 이를 해체하기 위해 무엇보다 생산의 지점을 파고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컸던 거죠. 하지만 20세기 중후반부터는 상황이 변하지요. 초과 생산분을 강매할 식민지가 사라지고 이제는 얼마나 생산할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소비시킬 것인지가 문제로 대두돼요. 자본주의가 광고와 같은‘유혹의 기술’을 계발하고, 미국에서‘소비자 심리학’이 대두하게 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 근거하지요. 따라서 핵심은 이거예요. 결국 실천적 문제고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생산과 소비가 끊임없이 순환해야만 하는 자본주의 구조, 이 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개입의 지점을 생산으로 잡을 지 소비로 잡을 지 선택해야 되는 문제라는 겁니다. 시대적 맥락에 따라 맑스는 생산의 지점에, 보드리야르와 같은 학자들은 소비의 지점에 개입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고요.


● 소비가 유혹의 수준을 넘어서 자유를 위한 정언명령으로 정당화되는 시대인 듯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현재를 긍정하라’라는 수사가 많이 동원되는 시대이기도 하고요. 그때의‘현재를 긍정하라’라는 말의 속뜻은 뻔해요. 자본이 원하는 것은 너희들의 삶을 긍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소비하라는 얘기거든요. 니체가 현재를 긍정하라고 했을 때 그 현재는 영원한 현재입니다.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이 순간, 그리고 이 순간. 그런데 자본이 말하는 현재란 소비를 하는 오직‘그 순간’뿐이거든요. 쉽게 말해 돈이 있어서 소비를 하는‘그 순간’은 긍정되지만 다른 시간은 긍정되지 않아요. 니체가 말하는 현재에 대한 긍정과는 너무나 다르죠. 그런데 자본은 버젓이 그런 표현을 쓰고 있어요. 비슷한 예 중 하나가‘노마드’라는 표현이에요. 들뢰즈는 기존의 습관체계에 사는 사람을 정착민, 탈주하는 사람들을 유목민, 즉 노마드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 노마드라는 표현을 삼성 같은 곳에서 가져다 쓰고 있지요. 니체와 들뢰즈의 표현에서 자유나 개척의 이미지만 따서 쓰고 있는 거예요. 그것이 소비를 추동하는데 도움이 되니까요.현재에 대한 긍정이나 노마드라는 표현은 어떻게 보면 현 체제에 반(反)하는 내용임에도 그걸 또 전유해서 쓰고 있는,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고 한편으로는 무서운 상황인거죠.


● 말씀하신 것처럼 철학자의 전복적 사유를‘문화자본’으로 전유하는 것 또한 자본의 전략 중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비교해 보면 이렇습니다. 니체나 들뢰즈는 모두 신을 거부해요. 초월적인 것이 아닌 내재적인 것, 다시 말해 개인들의 역량을 강조하기 때문이에요. 어느 참조점에도 근거하지 않는, 자신의 삶에 대한 자족적인 긍정과 향유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본이 말하는 삶에 대한 긍정은 삶 자체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 화폐에 대한 긍정이에요. 오직 돈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즉 돈이 있을 때에만 삶을 향유할 수 있는 거니까요. 돈이 떨어지면 결핍감을 느끼면서 돈이 있을때는 마치 자신이 니체적 삶 혹은 노마드적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착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돈이 없어도 삶을 긍정하는 것, 나아가 돈에게 자신의 역량이나 향유능력이 길들여졌다면 이를 단호히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 니체나 들뢰즈의 생각이니까요. 자본은 판매만 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가져다가 써요. 대표적인 경우가 티셔츠에 프린팅 된 체게바라겠지요. 그때의 체게바라는 자유로운 개인주의자이자 터프하고 남성적인 느낌을 풍기는 이미지에 불과해요. 체게바라가 어떻게 살았고 어떠한 사회 변화를 꿈꿨는지 등은 소거되고 말죠. 따라서 니체든 들뢰즈든 체게바라든 이런 방식의 전유들에 대해서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 왜 소비자들은 제한된 자유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가장 좋았을 때만 기억해요. 힘들게 돈을 버는 시간은 잊어버리고 소비할 때의 느낌과 쾌감만 취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때만큼은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착각하는 거죠.하지만 선택 자체는 자유가 아니에요. 선택지를 만드는 게 자유지요. 자본에 의해 주어진 상품들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자유가 아니란 말이에요. 이문열의「선택」에 보면 황당한 논리가 나옵니다. 자신의 먼 친척뻘 되는 장씨부인 이야기인데 장씨부인이 어렸을 때 굉장히 똑똑해서 남자아이들보다 공부를 더 잘했다고 해요. 그런데 여자가 공부를 할 수 없는 사회조건 하에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예요. 아이를 키우는 것으로요. 그런데 이것을 장씨부인의 선택이었다고, 그러므로 조선시대에도 자유가 있었다라는 논리로 연결해요. 재차 강조하지만 선택지를 만들지 못하면 자유일 수가 없어요. 장씨부인은 전형적으로 선택지를 만들지 못한 경우죠. 더구나 이 소비 사회에서 선택의 자유라는 것도 일부 사람들만 누리는 자유예요. 단적인 예로, 편의점에서 50만원 버는 분들이 파리 갈까 뉴욕 갈까를 선택할 수 있나요. 자본주의에서 물건이든 무엇이든 소비를 하면서, 즉 자본이 만들어 낸 여러 항목들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서‘아, 나는 자유롭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문열의「선택」에서 장씨부인이‘아, 나는 자유롭다’라고 하는 거랑 똑같은거예요. 착각이죠. 인간은 자신의 선택지까지 만들 수 있어야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 부르디외는 미래를‘잠재성의 장’에서‘가능성의 장’으로 재인식하는 것이 혁명의 조건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의 정치사적 맥락과도 맞닿는 것 같은데요.

부르디외가 지적하는 것은 생계수준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을 때 인간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얘기예요. 단적인 예로 저같이 80년대 학번들은 졸업하고 가장 안 풀린 경우가 전공에 따라 기업에 취직하는 거였어요. 이 말을 꺼내는 이유는, 소위 말하는 386 세대들은 생계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독재타도 등의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있었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취업도 안 되고, 된다 하더라도 비정규직이고, 심지어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상황이잖아요. 2000년대 이후 대학에서 정치적 시위들이 잠잠해진 이유도 어떻게 보면 부르디외의 지적이 들어맞는 거죠. 현재의 생존이 위태롭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은 미래, 연대, 이런 것들을 사치로 볼 수밖에 없어요. 인문학도 마찬가지예요. 80년대 학번들은 전공은 안 들어가더라도 읽고 싶은 책들을 읽고, 보고 싶은 연극을 보러 갔어요. 지금과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한 가지, 그 당시 우리나라가 산업화되면서 대학만 졸업하면 취업이 보장됐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지금 누군가가 인문학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고민한다면 지금 조건에서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가끔 386 세대들이 왜 요즘 대학에서는 시위를 안 하냐고 그러는데, 그건 좋을 때 태어났으니 그런 거지요.

● 자본가 마인드 혹은 기업가 정신을 갖는 것이 시대의 덕목인양 제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 삶은 피폐해지고 있는데요. 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얘기해요. 돈 가지고 돈을 벌려고 하면 자본가라고요. 그게 부동산이든 오 만원, 오십 만원 어치의 투자이든지 말이에요. 직장에 나가 일을 하는 것은 착취를 당하는 것이지만 부도덕한 것은 아니에요. 착취당하는 사람을 어떻게 욕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투자라는 형식의, 돈으로 돈을 불리는 행위는 전형적으로 자본가적 행위이고 인문학적으로 부도덕한행위이지요. 다른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번 돈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행위이니까요. 만약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돈 가지고 돈을 불리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삶의 원칙을 명확하게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 삶의 목표는 전적으로 어떻게 하면 돈을 불릴 수 있을까에 맞춰져 있잖아요. 그래서 투기가 일어나는 것이고요. 그런데 과연 이러한 삶이 좋은 삶일까를 자문해 볼 필요가 있어요. 물론 쉽지 않는 일이라는 것은 분명해요. 우리가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시간이 오래됐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20년을 이 사회에서 살았다면 20년 정도의 흔적을 가진 아비투스가 자기 안에 구축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삶을 살겠다고 결심해도 자신의 몸은 여전히 CGV 가서 영화보고 싶고 스타벅스 가서 커피마시고 싶어 할 거예요. 바로 바꾸기는 힘들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삶 자체가 우리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우리만의 상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의 상처로 계속 남을 것이라는 철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탈자본적 삶을 위한 실천은 무엇인가요.

방금 얘기했듯이 화폐의 역능, 무한히 증식하는 그 힘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해요. 돈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투기가 일어나는 상황이 바뀌어야지요. 하지만 혼자서는 불가능해요. 책의 결론부에 썼듯이 모든 사람들이 기업에 취업을 안 하거나 다 같이 소비를 안 하면 자본주의는 아마 붕괴할 거예요. 하지만 곧 문제가 생기죠. 생산에 참여를 안 해서 돈을 안 벌고 그래서 소비를 안 하면 무엇을 먹고 살 것이냐. 가능한 답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에 참여를 안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돕고 사는 것이에요. 그렇게 공동체를 이뤄서 그 공동체를 계속 키워나가는 것이고요. 그런데 한편으로 걱정이 되는 것은, 그러한 공동체가 커졌을 때 자본주의가 그 공동체를 가만히 놔둘까하는 점이에요. 실제로 20세기 초반에 독일에서 지역공동체 활동이 있었는데 공권력이 강력하게 탄압해서 해체시킨 사례가 있어요. 자본주의는 자본을 신처럼 모시는 체계인데 그 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온전할 수 있을까, 자본을 모시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가 마치 종교탄압 하듯 이들을 탄압하지 않을까 싶은 거죠. 사실이 문제는 굉장히 민감한 주제예요. 전통적인 혁명 없이 변화가 가능할 것인가, 돈으로 투기 안하고 서로 돕고 사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방식의 수정주의적 운동이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라는 주제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지금 상황에서 그런 운동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고 또 그 이상의 대안이라는 것을 던지고 싶지 않았어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가 그렇게 복된 시스템이 아니고 오히려 그 시스템이 우리를 상처 입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주된 의도였으니까요. 다시 말해 상처만 정확하게 진단하면 그걸로 족하다라는
입장이었습니다.

● 성급한 전망을 제시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엿보입니다.

저는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요. 그것이 혁명이나 변화를 꿈꿨던 사람들이 저질렀던 잘못을 똑같이 반복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에요.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천천히 그리고 같이 가고 싶지 제 의도대로 그들을 끌고 가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폭력이거든요. 그래서 정치철학적인 글을 쓴다고 해도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그렇게 현실에 대한 진단을 공유한 다음에 나도 그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이야기 하며 같이 나아가고 싶어요. 다시 말해, 저는 성급하게 어떤 지향점을 제시하는 정치적 지도자이기 보다는 사람들 옆에서 그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철학자, 인문학자로 남고 싶다는 말이에요. 사람들과 함께 삶의 문제, 실천의 문제, 미래의 문제들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저는 충분하다는 생각이고요. 삶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 중요해요. 따라서 그 과정을 어떻게 걷는지,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되묻고 고민하는 것이 철학하는 사람의 역할이자 또한 제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인문학의 ‘소비’ 와 ‘유행’ 현상에 대한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외국의 최신이론을 옷이라고 비유할 때 그 옷을 수입해 들여오면 처음에는 당연히 우리 몸에 안 맞아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자르고 오려서 우리 몸에 맞추면 돼요. 그러면 우리 것이지요. 수입, 괜찮아요. 논의가 풍성해질 수 있다면 어떤 사상이 들어와도 상관없어요. 다만 그 사상이 우리 몸에 맞는지, 우리 몸의 어떤 부분을 보호해줄 수 있는지, 우리 몸의 차가웠던 부분을 따뜻하게 해줄지를 성찰하고 재단해야 해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노력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저 옷이 우리 삶에 어떤 도움이 될까라는 성찰 없이, 외국 것은 무조건 좋다는 생각으로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다니거나 다른 옷이 들어오면 휙 버리거나 하는 식이예요. 나아가 그렇게 수입한 옷들이 안 맞는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니까 또 다른 옷들을 끊임없이 수입하고요. 혹여 맞을까 하면서요. 사상이 유행처럼 겉돌 수밖에 없어요. 처음 우리 몸에 걸쳐봐서 맞으면 잘라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계속 게을리 한 결과인 것이지요. 그런데 또 수입한 옷을 자를라치면 민감하게들 반응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무조건 잘라야 된다고 생각해요. 인문학의
어떤 담론도 그걸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는 우리의 삶이고, 따라서 우리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수 없다면 어떤 옷이든 잘라야 하는 거죠. 이런 생각이 공유된다면, 저는 요즘 유행하는 아감벤이나 칼 슈미트나 그 어떤 학자의 사상이든 들여와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아감벤의 사상이 우리의 정치상황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도움을 준다면 수입해도 상관없다는 말이에요. 다만우리 몸에 맞게 고쳐서 아감벤이 도저히 못 입는 옷으로 재단해야 되겠지요. 아감벤의 이 부분은 팔이 너무 길다 그러면 자르고, 주머니가 너무 작다 그러면 넓히고, 이런 식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예요. 외국의 어떤 철학과 사상이든 이런 식으로 소화할 수 있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곽성우 / 정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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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4. 20:52

‘종언의 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사유의 모색

 

"이 책에서 시도하는 것은 이들의 사유를 통해 자연 상태를 먼 과거나 밀림의 오지로 내쫒아 현재의 법-권리-국가를 투명하고 완결한 것으로 상상하려한 근대의 인간학을 뒤집어보는 일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뒤집기에는 국적이 있을 수 없다. 여기에 선보이는 글들이 씨름하고 있는 사건이나 텍스트는 물론 특정한 '국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거기서 추출된 것은 '인간'을 둘러싼 '정치적인 것'의 구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국민'인 한에서 '인간'일 수 있다고 전제하고 있는 근대적으로 분식된 정치사상은 여기에 들어설 자리가 없는 셈이다."


우선 선생님께서 책을 쓰시게 된 동기를 듣고 싶습니다.

일본 유학 중에 독특한 경험을 했어요. 독일이나 프랑스에 유학을 가면 그곳 말을 통해서 그곳의 철학을 하잖아요. 반면 아시다시피 일본에서의 공부는,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이론이 수입 되서 한 번 번역과정을 거친 것들에 대한 공부들이죠. 말은 일본말로 하는데 텍스트는 외국어인. 근데 저는 한국 사람이잖아요. 이런 식의 경험을 하게 된 거죠. 그때 생긴 문제의식이 비서구지역에서 서양이론을 공부하는 이 기이한 현상은 뭘까, 이것의 역사적 계보 같은 것은 뭘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서구화의 문제라고 얘기할 수 있을 텐데, 인문학 분야의 서구화 혹은 서구 이론의 수용, 다른 언어체계들 사이의 만남, 이런 것들을 경험했던 거죠. 이런 의미에서 하이데거나 벤야민 같은 사람들을 읽고 이것을 현재의 현실에 적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구나. 어디까지나 동시대적으로 호흡하고 번역해야 하는 문제이지, 이론이 있고 그 이론에 따라서 현실을 재단하는 방식은 아니겠구나. 말하자면 그 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말씀하신 다른 생각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2,30년대 일본에서 독일사상이 읽혔던 맥락을 보면, 일본은 당시 근대초극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였어요. 근대초극은 쉽게 말해서 서구적인 보편주의를 넘어서는 세계질서를 구축 혹은 구상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어떻게 보면 앵글로색슨적인 보편주의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하고 있던 나치즘, 소비에트 등 변형하는 형태의 새로운 지역질서에 대한 구상이었던 거죠. 그렇게 봤을 때 과연 이들이 독일 철학을 단순히 수용했던 것일까. 애매하다는 거예요. 제 생각엔 마루야마 마사오가 칼 슈미트를 읽으면서,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 촘스키를 읽는 것과 똑같은 감각으로 읽었을 거 같아요. 우리가 촘스키를 읽을 때 서양이론이라고 읽진 않잖아요. 촘스키의 미국 비판이나 911에 대한 글은 한 지성이 세계의 정세를 바라보는 글에 가깝거든요. 마루야마 마사오가 칼 슈미트의 책을 그런 식으로 읽었다는 거죠. 마루야마 마사오가 갖고 있던 감각은 굉장히 동시대적이었던 거예요. 마루야마 마사오의 칼 슈미트 뿐만 아니라 미키 기요시의 하이데거, 쿄토 학파의 헤겔철학도 말하자면 서양 이론과 대결하고 이 철학을 넘어서는 뭔가를 구축하기 위한 대상으로 읽어낸 결과들이라는 거죠. 하고 싶은 말은 일본이 대단하다는 게 아니라 사상사라는 것, 특히 동아시아에서의 서양이론 수용을 다른 식으로 볼 수 있는 역사적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서문에서도 썼듯이 이론의 수입, 수용 등 이런 말들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유에 국적이 없다는 건 우리의 존재 자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가 질서 지워지고 분란이 일어나고 해소되는 이 전체의 상황을 정치라고 부른다면, 이를 사유하는 데에는 국적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거죠. 물론 역사적 맥락을 다 부정하자는 의미는 아니고요.


이 책에서 어떤 정치적인 구체성은 언급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1992년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 즉 냉전 종식 이후에 미국적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궁극적으로 승리했고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역사철학적 비전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했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가정하고 있는 보편적 인류라는 개념 이상으로 인간이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인간이 자신을 더 실현할 수 있는 역사적인 비전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얘기한 거예요. 그런데 이 얘기나 나왔을 때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좌파들은 통속적인 이데올로그라고 야유를 했어요. 근데 저는 이 얘기를 좌파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정말 그렇거든요. 좌파가 보편적 인류라는 개념에 기반한 자유, 평등을 넘어서는 인간 실현의 이념, 목적, 의미라는 것을 보여준 적이 있냐는 거예요. 예를 들어,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하버마스하고 데리다가 프랑크푸르트 신문에 기고를 합니다. 유럽적 보편주의에 기초해서 대테러전쟁에 대한 비판을 하거든요. 거기서 드러나는 것은 하버마스와 데리다가 손을 잡았다거나 결국은 둘 다 유럽 중심적이라기보다는 좌파들도 결국에는 보편적 인류의 행복이라는 것에 기대서 미국을 비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미국도 세계 평화와 보편적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대테러전쟁을 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전쟁을 하는 쪽이나 전쟁을 비판하는 쪽이나 모두 보편적 인류라는 것에 기대지 않으면 비판이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후쿠야마가 얘기했던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이야기였던 거예요. 후쿠야마는 미국이 승리한 후 역사적 투쟁이 끝날 거라고 얘기했던 게 아니에요. 다만 지금까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뒤에 존재하는 다른 목적(goal)이라고 생각되어왔는데, 후쿠야마는 이제 자유민주주의 이상의 목적이 없다고 선언을 한 거지요. 마라톤으로 비유하면 선두주자가 들어오고, 4-50명이 더 들어오잖아요. 역사를 방송 중계로 비유한다면 방송은 1등이 들어오는 순간 끝나지만 2등부터 50등 까지는 방송 후에도 계속 들어오는 거예요. 92년 소련의 붕괴 이후에도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최종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4-50등들의 경주가 계속된다는 거예요.

사회중의 붕괴 이후의 좌파 이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91년도 이후의 이론이 스탈린주의만큼의 실제적 정치 조직체를 구성하는 역할을 못했다고 생각해요. 즉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근원적 모순을 지적하고 그것을 전복하는 하나의 원리를 정립하려 할 때, 91년도 이후에 등장한 이론들은 아무런 힘을 못 가졌다는 거예요. 스탈린주의는 하나의 세계가 어떻게 구성될 것이고 이 구성 위에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지침들을 줬다면, 그 이후의 이론들은 명확하지가 않고 굉장히 어려워졌어요. 역사를 다시 구성해야 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 국가에 대한 이해를 다시 해야 되기 때문이에요. 푸코를 보면서 권력에 대한 개념들을 바꾸고, 데리다를 통해서 서구의 보편주의를 다시 생각해 보고, 라깡을 통해서 인간 주체라는 것을 근본적으로 의심하는. 흔히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정치철학이라고 얘기되는 사람들의 논의가 왜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와 닿는가. 왜냐하면 여전히 스탈린주의를 읽었던 감성으로 읽기 때문이에요. 뭔가 지침을 주지 않을까. 흔히 말하잖아요. 대안이 뭐냐. 대안이 있을 리가 없죠. 대안이라는 게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는 다른 방식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것인데, 없는 거죠. 이 이론들이 그런 얘기들을 안 한다는 거예요.

민주주의가 법치주의로 흡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를 회복하기 위해 법의 공정성을 완성해야 되는 건가요?

용산참사를 예로 들면, 검찰은 경찰의 공권력이 정당하고 합법적으로 집행되었기 때문에 농성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니고, 진압과정에서 기동대원이 죽은 것은 공권력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공공질서를 어지럽힌 행위기 때문에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하잖아요. 근데 이 사건에 대해서 분노하거나 허탈해 할 수밖에 없는 게, 실제로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러면 현실적으로 이에 대해서 어떻게 항의를 하고 어떤 식으로 시정을 요구할 것인가라고 할 때, 몇 가지 방법이 있어요. 첫 번째는 법 집행의 정의가 없었다는 걸 밝히는 거예요. 법이 담보해 내야할 정의가 완전히 상실됐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자료들을 선별적으로 취하거나 은폐했음을 폭로하는 것이죠. 따라서 이에 대한 대응은 법집행의 공정성과 정의를 회복해라는 식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정부는 뭐라고 합니까. 이 모든 것들이 합법적 절차와 적법성을 가지고 집행되었다고 하잖아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사항들을 전부 사법부에서 처리해야 될 문제라고 말한다는 거죠. 그렇다면 이제는 거리에서 아무리 시위를 해도 아무런 정치적 힘을 못 갖는 거예요.

법을 넘어서는 정의를 구축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합법의 이름으로 모든 권력들이 행사되는 한 그것이 아무리 정의롭지 않게 보일지라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그런데 이것이 80년대와 다른 이유는, 당시에는 법 자체가 부당하다는 전제가 있었다는 거죠. 즉 80년대에는 법을 넘어서는 정의가 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87년 이후의 민주화체제는 법치의 정당성, 즉 대한민국의 실정적인 통치체제가 합법성과 정당성을 합치해서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더 골 때리고 답답한 거죠. 시쳇말로 얘기하면 MB를 우리 손으로 뽑았으니 할 말이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거예요. 그랬을 때, 우리가 물어야 하는 건 공권력의 과도한 행사에 대해서 정의 혹은 보편적인 가치설정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냐, 그 정의는 무엇을 담보해야 하느냐라는 거죠. 지금의 체제를 전(全)부정할 수 있는 정의의 이름이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고요. 지금 그럴 수 있는 정의의 이념이 등장할 수 있느냐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현대정치철학자들의 논의가 갖는 함의는 무엇인가요?

여기서 현대정치철학자라고 하는 랑시에르나 아감벤 등은 자유 평등이라는 이념 자체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 즉 역사적 목적이라고 했던 것들, 정의에 기초에 세워졌다는 이념들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물음을 던집니다. 정의를 추구하는 게 과연 좌파들이 할 일인가라고 묻는 거죠. 다시 말해, 지금의 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다른 실정적인 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지금 우리가 비전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냐 하는 물음인 거죠. 무슨 말이냐 하면, 용사참사의 경우 국가권력이 행사되어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는데, 이는 법이 정의를 담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집행 상의 오류가 아닙니다. 아감벰이나 랑시에르가 보기에, 법의 행사라는 것은 원래 저런 거라는 겁니다. 혹은 저런 행사의 양식이야말로 법 행사의 최소단위라고 얘기를 하는 거죠. 가장 원형이라고 얘기하는 것이고요. 정당성 없이, 목적성 없이 행사되는 것이야말로 법의 가장 원초적 형태라는 거죠. 벤야민이 폭력비판론에서 얘기했던 신화적 폭력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국가, 주권, 인민, 권리 등 은 근대 정치의 전개과정에서 항상 획득되어야 할 것 성취되어야 할 것으로 파악되어 왔는데, 그것이 성취되었다고 선언된 순간 과연 이 언어들이 어떤 내실을 가질 수 있냐는 물음을 던지는 겁니다. 아감벤은 이를 환상과 변명이라고 불러요. 말하자면 근대적 정치 이념을 통해서 구축되어온 실정적인 정치체제가 계속 이 운동의 방향대로 나갈 것이냐, 후쿠야마는 더 나아갈 곳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고,  아감벤은 이 체제를 인정하고 이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이냐가 아니라, 과연 후쿠야마와 소비에트체제 를 포함해서 과연 근대적인 정치체제가 자유와 평등과 인권이라는 이념이 실행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왔느냐하는 물음을 던지는 겁니다. 아감벤은 법과 폭력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는 거예요.

법과 폭력, 그리고 정치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말씀이신데요.

용산참사 얘기로 돌아가서, 과연 그렇다면 이런 정치 이론들이 현실 속 사건들과 직면했을 때 어떤 이야기들을 던져줄까. 저는 오히려 단순한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용사참사를 이해하기 위한 또 하나의 사례로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있는데요. 우리나라 헌법에서 대통령 탄핵이 의회에서 발의되면 헌재로 가게 되죠. 이게 심각한 문제라는 겁니다.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선출된 권력이잖아요. 그런데 선출된 권력을 비선출된 권력이 궁극적인 최종 심급으로서 결정한다. 이 말은 재판관의 개인적인 판단에 맡기겠다는 겁니다. 근데 아시다시피 재판관이 사람인 이상, 범박한 이야기이지만, 어떻게 맡기겠습니까. 신영철 같은 사람도 있는데. 그런데 어느 정파를 막론하고 헌재가 올바른 결정을 내려주기를 기대했다는 건데, 이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국민들이 선출한 최고의 권력을 사법부가 판단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법에 의해서 판단하는 것이 정치의 공간을 말살하고 있다는 겁니다. 헌재에 판단을 위임하는 형태가 반복된다면 굉장히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거예요. 따라서 그것이 거리의 정치이든 의회의 정치이든, 쉽게 말해 정치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죠. 그래서 아감벤이나 랑시에르 등이 얘기하는 것은, 법치라는 것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 하나의 커다란 메시지라고 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즉, 법이라는 것이 항상 잠재적인 규칙의 체계이지 사람들의 삶을 질서지우는 지고의 힘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법에 우선하는 정치는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요?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겠죠. 정당 정치와 거리의 정치 중 어떤 게 더 필요하냐. 의회가 힘이 없어서 거리로 나오든 의회와 거리가 연합하든 어떤 정치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법이 전권을 휘두르는 것은 시정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법이 정치적으로 인권, 평등, 자유 같은 것들을 성취해나가는 수단이었다면, 지금의 법은 자유와 평등과 인권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거꾸로 통치해나간다는 거죠. 자유, 인권, 국가 등의 근대적인 정치이념이라는 것이 과연 그렇게 정의로운 것인가, 이 말은  그것과 정의가 불변하는 형태로 결합되어 있을 수 있냐는 것을 묻자는 것이죠. 이러한 물음의 메시지는 현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비추어 보았을 때 명확합니다. 결국 법치라는 것을 얼마나 상대화 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공권력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이 법이 정당하게 집행되지 않았다 혹은 이 법이 정의를 담보하지 못했다는 논리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법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보다 철저하고 더 근본적인 정치적 원리를 확립해야 한다는 겁니다. 법에 대한 정치의 우위가 중요하다는 거죠. 이건 국가에 대한 사람의 우위라고 말해도 되고요. 행정력에 대한 의회의 우위라고도 볼 수도 있고요. 좌파이론이 지금의 법이 기초해 있는 이념이 아닌 다른 이념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법이 기초해 있는 이념과 표리부동하게 결합해서 그 어떤 실질적인 정치의 공간도 만들어 주지 않는, 오히려 정치의 공간을 옭죄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가 지금의 문제라는 것이죠. 이것을 위해서 거리가 필요하냐 의회가 필요하냐는 전술이나 전략의 문제인 것 같고요. 촛불의 가능성이라는 것은 그런 거에 있었던 거죠. 굉장히 원리적인 문제였던 것이고요. 법은 언제든지 거부할 수 있고, 그런 이념조차도 거부할 수 있다는 거죠. 다르게 얘기하면 법이나 이념들은 잠정적인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네요. 이것이 아마 지금 새로운 정치철학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정치는 법이 당연시 하고 있는 전제들의 영역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건가요?

확장되어야 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거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아감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이 인간이 되는 것이 정치의 가장 최소단위이다. 동물이 어떻게 인간이 되느냐, 이 과정이 뭐냐는 거예요. 인간은 동물이기도 한 거잖아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동물이 아닌 것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동물에서 인간으로 이행하는 혹은 동물의 상태와 인간의 상태가 중첩되어 있는 이 상태가 어떻게 인간이라는 형태로 삶을 구성하게 되느냐고 물었을 때 지금까지는 계속 인간이라고만 얘기해 왔다는 거죠. 인간이기 때문에 동물적인 행태를 해서는 안 된다고만 얘기해 왔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아감벤이 볼 때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동물에서 끊임없이 인간으로 되는 과정이라는 거고, 바로 이게 정치라고 말합니다. 이를 제 책에서는 말하는 입과 먹는 입이라고 얘기 했던 거고요. 아렌트 같은 경우에는 이를 오이코스하고 폴리스라고 얘기할 테고, 홉스 같은 경우엔 자연상태와 국가라고 얘기하겠죠. 아까 식으로 얘기하자면 법과 정치의 공간이 되겠죠. 결국 한 짝의 대당들이 딱 결정되어 있는 이 상태를 벗어나야 된다는 겁니다. 인간은 동물임과 동시에 인간이다. 즉 잠정적이라는 거예요. 이 잠재성, 포텐셜이 없으면 아무런 가능태가 안 생긴다는 거예요. 이미 인간인데 더 할게 뭐 있어. 후쿠야마를 비판적으로 독해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죠. 넌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인데 더 추구해야할 게 뭐 있니.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민주주의를 창안해야 되는 건가요?

중요한 것은 이것이 법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 입니다. 아까 새로운 정치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전혀 새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아감벤은 그런 의미에서 사회주의나 구좌파들이 얘기했던 것들을 환상과 변명이라고 부르고요. 오히려 가장 원리적인 정치적 행위, 형태는 사회주의나 아니면 여러가지 이념들이 환상과 변명이 되어서 분식해오고 망각해왔던 것들이에요. 따라서 근원적인 정치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감벤의 논의에요. 


“더도 말고 딱 한 가지 일을 해보고 싶었다. 이 이름들이 어떤 전망을 보여주고 어떤 실천적 지침을 마련해주는지가 아니라, 누구나가 뛰어들어 본 전망이나 실천적 지침의 일면성과 한계 영역을 어떻게 지적해주는지를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이다. 즉 ‘~주의’, ‘탈주’, ‘다중’ 등의 의장(의장)들을 걷어내고, 정치적인 것에 대한 사고가 마주해야 할 최소단위를 추출해보고자 했던 셈이다.”


인터뷰 및 정리 박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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