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4. 4. 15. 18:28

 

민주주의, 이것은 이제 저 먼 곳에 자리한 이론적 차원의 논의가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할 무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을 기본 가치로 내세우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국민이 소외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그저 꿈에 불과한 일인가? 다수결의 원칙을 내세워 사회적 소수를 분리시키는 또 하나의 억압적 정치 형태인 것은 아닐까. 모두가 자율성을 가진 인간으로 나와 국가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상상.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로티의 사유를 바탕으로 철학자 이유선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인터뷰 및 편집_ 김하늘(penhan@sogang.ac.kr)

 

나의 유토피아에서 인간의 연대성은 편견을 제거하거나 혹은 이전까지는 감추어졌던 깊은 곳을 캐냄으로써 인식될 하나의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성취되어야 할 하나의 목표로 보이게 될 것이다. 그것은 탐구가 아니라 상상력, 낯선 사람들을 고통 받는 동료들로 볼 수 있는 상상력에 의해 성취되어야 할 어떤 것이다. 연대성은 반성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낯선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굴욕의 특정한 세부 내용들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을 증대시킴으로써 창조된다. 그렇듯 증대된 감수성은, 가령 그들은 <우리와> 같이 느끼지 않는다라든가 고통이란 언제나 있게 마련인데, <그들이> 고통받는 것을 왜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것인가?’ 라고 생각하여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국외자로 치부하는 그런 일을 어렵게 해준다. 다른 인간들을 그들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하나로 보게하는 이 과정은, 낯선 사람들이 어떠한지에 대한 상세한 서술과, 우리 자신들은 어떠한지에 대한 재서술에 관한 문제이다.”

 

Q. 우리들은 민주주의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을 지향하는 사회인지 모르고 살 때가 더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이지만, 달리 말하면 결국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다수가 된 사람들만이 주인이 될 수 있는 사회이기도 하니까요. 로티의 철학을 바탕으로 생각해 본다면, 민주주의란 무엇이고,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요건은 무엇일까요?

 

A. 로티에게 있어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라는 말과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자유주의라는 용어는 신자유주의 같은 의미로 많이 해석되고 상당히 우편향된 한정된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그에게 있어 자유주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공간을 확보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지요. 그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우리가 제도나 관습의 틀에 갇혀 잘 보이지 않았던 어떤 제약들, 로티의 표현에 의하면 잔인성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 문제에까지 관심을 갖고 고쳐나가는 것부터가 시작이라 볼 수 있지요.

로티는 프래그머티스트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유토피아적인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민주주의를 위한 현실적인 비교대상을 될 수 있는 사회를 그 예로 끌어 옵니다. 북대서양 연안의 사민주의 국가(스칸디나비아 3)들을 우리가 현실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이야기 할 때 떠올려 볼 수 있는 하나의 모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에게 민주주의의 요건이라 하면, 경제적인 여건도 어느 정도 중요합니다. 아프리카 짐바브웨 같은 빈국에서 무가베 같은 끔찍한 독재자가 나왔잖아요. 대중이 교육받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쉽게 조작당할 때 민주주의는 어렵게 되지요. 기본적으로 그 사회에서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 앞서 언급한 잔인성의 문제,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는 문제까지 관심을 확대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덧붙여 말하면, 로티는 듀이가 말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꿈을 계승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듀이가 생각하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미국 사회가 가진 모든 갈등과 대립이 극복될 수 있는 사회였죠.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개인의 개성과 민주주의를 연결합니다. 이 이야긴 뒤에 나누도록 하지요. 결국 로티에게 민주주의란 한 편에서는 경제적인 안정을 위한 발전이 필요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민주주의가 어떤 제도적인 틀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 가야 하는 어떤 것이라는 겁니다. 그 목표는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고정되지 않은 목표를 달성함에 있어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누가 고통을 받는 상황에 처해 있는가에 관한 끊임없는 관심과 실천, 로티의 표현에 의하면 우리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로 여기지 않았던 사람이 우리의 영역에 들어온 것.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자유의 영역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자유주의자로서의 우리라는 개념입니다.

 

나는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라고 부르는 인물을 스케치할 것이다...나는 아이러니스트란 말로서, 자신의 가장 핵심적인 신념과 욕구들의 우연성을 직시하는 사람, 그와 같은 핵심적인 신념과 욕구들이 시간과 기회를 넘어선 무엇을 가리킨다는 관념을 포기해 버릴 만큼 충분히 역사주의자이고 명목론자인 사람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한다.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란 괴로움이 장차 감소될 것이며, 인간들이 다른 인간들에 의해 굴욕 당하는 일이 멈추게 되리라는 자신들의 희망을, 그렇듯 근거지을 수 없는 소망 속에 포함시키는 사람이다.”

 

Q. 로티는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이상적인 인간이 아이러니스트라고 보았던 건가요? 헤럴드 블룸의 시인의 불안이라는 개념을 써서, 이것이 아이러니스트의 숙명이라 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요.

 

A. 아이러니스트라는 말은 개인의 삶에 있어서 자신의 삶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인간을 말합니다. 이는 앞서 말했던 듀이 식으로 말하면 개성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죠. 니체가 플라톤을 비판하는 부분도 삶의 주인이 나 자신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죠. 삶의 의미를 자신의 삶 바깥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을 말하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인간은 숙명적으로 헤럴드 블룸이 말한 시인의 불안에 시달립니다. ‘강한 시인이라는 시인들은 죽을 때까지 자기가 쓴 시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선대 시인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불안에 떨죠. 그래서 시인의 불안이라는 말은 데카르트적인 확실성에 반대되는 의미입니다. 데카르트가 방법적인 회의를 통해 지식의 확실한 기초를 세우고, 그것을 토대로 우리의 지식이 얼마나 확실한가를 이야기하려 했다면, 니체 이후의 철학자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지식의 확실성이 아니라 나에게 있어서 진리란 무엇인가, 다르게 말해 내 삶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입니다. 이 물음이 나온 배경은 모든 것을 정당화 해주리라 믿었던 모든 거대 담론들이 별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보편적 진리, 형이상학적 진리, 종교적 교리 등을 아무리 이야기해 보아도 그게 도대체 나랑 무슨 상관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단 거겠죠. 블룸의 시인은 니체가 말하는 자율성을 추구하는 인간, 듀이가 말한 개성을 찾고자 하는 인간, 로티는 자신의 삶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아이러니스트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겠네요. 자신만의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시인처럼 자신의 삶을 자신만의 어휘로 서술해 보는 인간이 바로 아이러니스트이지요.

 

인간의 연대성이라는 개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우리의 도덕적 의무감의 우연적이고 역사적인 성격에 대한 니체의 관점을 인정하면서, 우리는 상상의 초점이란 것이 (칸트가 생각하듯이) 인간의 마음 속에 붙박이로 갖추어진 특징이 아니라 발명품이라고 해도 나빠질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단순히 인간 자체에 대한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슬로건을 지키는 올바른 방법은 할 수 있는 한, 우리 자신을 일깨우는 수단으로서 우리라는 우리의 감각을 확장시키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화된 사람들, 즉 우리가 여전히 본능적으로 우리라기 보다는 그들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과의 유사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 슬로건을 제대로 독해하는 올바른 방법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폭넓은 연대성의 의미를 <창조>하도록 우리 스스로에게 권유하는 것이다. 그릇된 독해의 방법은 그런 연대성은 우리가 인식하기에 앞서서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고 <인식>하도록 권유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경우, ‘이 연대성이 <진짜냐?>’고 하는 요점을 잃은 회의적 물음에 빠져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종교와 형이상학의 종말은 잔인하게 되지 않으려는 시도의 종말을 의미할 수 밖에 없다는 니체의 암시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Q. 그런데 모두가 자신의 삶을 완성하려는 각각의 욕망을 안고 살아간다면, 구성원 간의 합의를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를 성취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A. 그 부분은 로티에게 중요한 이론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로티가 아이러니스트 개념을 이야기 하면서 빼놓지 않는 것은 무관심의 괴물이라는 말입니다. 나보코프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보통 그렇다고 봅니다.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의 주인공을 보면 자신이 빠져있는 것을 쫓다보니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삶의 고통은 안중에 없고, 오직 자신의 문제만이 유일한 관심사죠.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너무나 강해 타자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무관심의 괴물이 되어서겠죠. 이 사람들은 민주주의와는 완전히 상관없는 인물들입니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험한 인물이죠. 그래서 로티는 아이러니스트가 되는 것이 자유주의자, 달리 말해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으로 자동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언급했습니다. 그렇지만 자유주의적인 사회를 만들면 그 안에서 수많은 아이러니스트가 사는게 가능해지기에, 민주주의가 다른 이론이나 철학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그런 아이러니스트의 욕망이 최대한 실현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만드는 어떤 제도를 가진 사회의 모습을 말하는 거겠죠. 그러나 이런 아이러니스트들이 가지는 사적인 욕망은 아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제약이 될 텐데, 그래서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중요해지는 것이지요. 인권에 관한 인식이 성장해 온 과정을 보면 예전에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었던 것들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많은 것이 상식이 되었어요. 여성참정권은 지금으로서는 당연한 얘기 같지만 여성이 투표할 권리를 갖게 된 건 100여년 정도 밖에 안됩니다. 무엇이 사회적으로 제약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은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로티가 말하는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은 오늘날 당연히 제약되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과연 진짜 그러한가?’라는 물음을 던져보는 겁니다. 우리가 이미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기준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민주적인 실천 과정에서 합의되고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민주주의 사회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그 실천에서 강조되는 것이 상상력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틀 안에서만 고통, 잔인성에 대해 생각한다면 여성의 참정권 같이 지금의 상식적인 일들은 일어날 수 없었겠죠. 로티도 같은 맥락입니다. 민주주의적인 실천은 어떤 제도적인 형식을 완성시키는 문제도 아니고, 우리가 어디까지 관용과 포용의 영역을 넓힐 것인가 하는 문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상상하는 문제와 관련될 것입니다.

 

Q.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대화를 통한 합의라고 본다면, 그 합의를 이끌어내는 대화의 장으로 하버마스의 공론장을 말씀하셨습니다. 공론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요?

 

A. 공론장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학자들이 지금도 하고 있지요. 그 중 하버마스가 대화의 가능성을 가장 크게 두고 있는 사람이라 대표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공성은 공동체의 목표와 관련된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가 공공성의 문제와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다면 공공성은 무엇인가하는 문제도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공론장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거죠. 공론장 논의는 우리가 어떻게 공공성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민주주의 제도와 관습들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하버마스 뿐 아니라 듀이 같은 프래그머티스트도 공공성이 논의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데 필수 전제조건이라 보았지요. 나아가 로티로 넘어와서도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 핵심은 공공성의 내용이 미리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듀이의 경우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별하는 개념적인 틀을 가져오기는 하지만, 무엇이 공공성인지를 명확히 구획하지는 않지요. 이는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전체주의나 독재, 또는 소수가 지배하는 시스템과 다른 점은 무엇이 공적인 문제인가를 논하는 것 자체를 시스템 안에서 갖추어 놓은 제도라는 점에서 차별화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논하는 것이 공동체의 구성원들 간 합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누군가가 선정해버려 더 이상 논의의 여지가 없는 영역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이미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죠.

하버마스의 공론장, 듀이의 공공성, 또 로티가 우연성을 토대로 연대를 강조할 때도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중요한 것은 대화 그 자체가 하나의 민주적 실천 과제라고 보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공공성인가하는 논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이 실천과 분리될 수 없다고 보는 거죠. 이들의 말에 전제되어 있는 것은 그 어떤 이론가도 그것을 선험적으로 제시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사실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불편하고, 수많은 부작용들을 감수해야 할 테지만, 결국 민주주의는 그 부작용들을 줄여가면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것들을 달성해 낼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될 겁니다. 또 구성원들은 마땅히 그것을 감수할 용기가 있어야 되는 것이고요. 내가 불편하더라도 더 나은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할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곧 가능한 일이 되지 않을까요.

 

현행의 제도와 실행에 대해 어떤 재서술을 제시한다는 것이 그것의 적들에 반대하여 옹호론을 편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집의 버팀대를 세운다거나 집 주변에 바리케이트를 세우는 일이 아닌, 마치 집의 가구들을 바꾸는 내부 수리와 더 흡사한 일이다.”

 

Q.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기준을 정해 놓는 것에 반대한다면, 이미 만들어진 제도 역시 거부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직 불완전한 민주주의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제도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을까요?

 

A.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상상력에 대한 강조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의제 민주주의, 즉 의회를 통한 간접 민주주의라는 것이 한계에 부딪쳤다는 공통적인 의견이 있는 듯 합니다. 합법적인 투표에 의해 선출된 합법적인 대표들이 과연 대표성을 갖는 것인가 의문을 갖는 거죠.

그럼 어떤 대안이 나와야 하는데, 그 부분이 상상력에 달려 있다고 보는 거죠. 우리는 삼권분립이 이루어지고, 보통선거가 실시되고, 의회제도가 작동하면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자동적인 판단을 해버립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민주주의는 이미 오래전에 달성됐다고 하죠. 그런데 그럴까요? 민주주의 사회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소외되지 않고, 개성을 실현하면서 살 수 있는 사회일 텐데 한국 사회처럼 획일성이 강한 사회라면 거의 전체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에 대한 대안을 세우려면 우리가 가진 틀 안에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죠. 그래서 상상력을 강조하는 겁니다. 한국에 잘 알려진 학자들 중 가라타니 고진의 경우 일종의 생활협동조합이 전면적으로 확산되는 사회가 실현될 때, , 우리가 생각하는 국민국가 경제 시스템이 크게 작동하지 않게 될 때, 새로운 형식의 공동체가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것을 하나의 대안적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결국 우리가 현재의 틀 안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상상하고, 그것은 하나의 정치적 실험으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겠지요. 물론 시도하는 데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들 수 있기 때문에 로베르토 웅거는 앞서 말한 상상력의 강조와 함께 상상을 통한 공간에서 작동하는 일종의 사유실험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Q. 사유실험이란 말 그대로 생각 속에서 상상을 통해 나온 대안을 시뮬레이션 해보는 것인가요? 상상이라는 것이 너무나 추상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 사례를 들어 설명해 주신다면요.

 

A. 사유실험이라는 것이 관념적인 차원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웅거는 구체적인 대안을 몇 가지 이야기합니다. 그 중 하나가 오늘날과는 다른 기업 형태가 작동하는 사회를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사회주의가 붕괴될 때 나온 여러 대안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노동자 지주제라던가,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공장 같은 거죠. 가족 기업에 대해서도 이야기 합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가족기업이 재벌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웅거가 말한 가족기업은 일본 지역 마다 전통을 잇는 조그만 가족기업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기서 강조한 부분은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냉혹한 합리성이 작동하지 않는 기업형태가 가능할 것이라는 거죠. 우리도 우리 사회에서 이런 예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또 하나 주장한 것이 기본 소득제입니다. 앞서 로티가 말한 민주주의 요건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는다는 이야기를 한 것처럼 기본소득제도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회 구성원들이 생존의 불안에 휩싸이면 전체주의로 가게 된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이미 드러났잖아요. 모든 사람들을 생계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자, 그럼 사람들이 사회에 대한 수많은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 나온 제도적 실험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보는 거겠죠.

 

Q. 결국 민주주의는 실천의 영역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원생의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한다면 어떤 것부터 시도해 볼 수 있을까요?

 

A. 요즘 젊은 세대는 우리 세대가 겪지 못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섣불리 조언을 하기가 어렵네요. 그 또한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말일수도 있기 때문이죠(웃음). 굳이 조언을 해보자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네요. 로티 식으로 아이러니스트가 되는 공부 말입니다. 사회적인 불안이 커질수록 자신의 삶의 욕망을 타자의 욕망으로 채울 가능성이 커지고, 사회적으로 보면 이런 개인이 늘어난다는 것은 민주주의와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로티는 이론과 실천을 분리하고, 아이러니스트가 자동적으로 자유주의자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하지만, 저는 그것이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동인형으로 살아가지 않고, 불안한 사회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우리 각자가 뭔가 자신의 욕망, 즉 내가 어떻게 살고자 하는 인간인가를 확인하고, 그런 것들을 실현해보기 위한 시도를 힘들더라도 끈질기게 가져가면서 내 삶의 가치와 연결해 보려는 태도가 중요한데, 이는 각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고, 자기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 가능해야 하죠. 블룸이 시인의 불안을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건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자율적인 개인들로 존재하려면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공부, 책을 읽는거죠. 그런 의미에서 대학원생들은 그런 삶을 살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안에 속하지 않고, 또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사람들까지도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공부하는 협동조합 같은 건 어떤가요? 작지만 큰 실천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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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3. 12. 20. 18:36

 

지금 세계를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포스트모더니즘내지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것은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도 다가와선 집요하게 달라붙어 따라다니는 말이 되었고, 알든 모르든 어느새 우리가 사는 세계를 지칭하는 명칭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듯하다. 그리고 원래 그 의미가 무엇이었던 간에, 그 단어는 근대’(modern)라고 불리던 시대를 이미 지나간 것, 혹은 적어도 어떤 식으로든 지나가야 할 무엇으로 만들어버린 듯하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근대를 넘어선다는 것이, 상품과 미디어의 복제능력에 의해 혁명적 꿈과는 먼 어떤 니힐리즘과 동일시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은 거대한 상품과 미디어의 공세 앞에서 넋을 잃은 니힐리즘과 달리, 새로운 삶의 가능지대를 표시하는 희망의 표지일 수도 있지 않을까?”

 

Q. 선생님께서는 동료들과 함께 현대문화에 대해 저술한 <문화정치학의 영토들>에서 포스트모던을 희망의 표지로 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A. 우선 모더니즘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네요. 모더니즘은 영역마다 성격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미술에서의 모더니즘은 매체적인 특성을 회화의 평면성으로 간주하고 순수 모더니즘을 추구하면서 미술 이외의 것들을 쫓아내려 했지요. 미술에서 초현실주의는 내러티브가 중요한데, ‘그게 문학이지 무슨 미술이야이러면서 쫓아내고, 퍼포먼스적인 것들은 그게 연극이지 무슨 미술이야이러면서 몰아내다보니 남는 것은 환영 효과가 사라진 평면성을 추구한 미술만 남게 되었죠. 이질적인 것들을 다 몰아내고 동질화하려는 것이 미술에서의 모더니즘 특징이었습니다. 건축에서는 달랐을까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은 원래 건축에서 나온 말인데요. 서양 고전 형태의 건축물들을 가시화하려다보니 직선화되고 육면체 박스 같은 건축물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해 획일화된 건축물들이 출현하게 되었죠. 직선과 직각, 가시성, 지역별로 조닝-상업지대, 주택지대 등의 형태로 동질화하려는 것-하는 것도 모더니즘의 특징입니다. 동질화되고 획일화된 세계를 강조하는 이념들이 더는 설득력을 잃게 됐다는 점, 그러면서 다양성을 강조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Q.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그것을 정확히 분리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모더니즘에서 추구했던 진리를 향한 거대서사로부터 탈주하려는 움직임을 포스트모던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많은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모더니즘 시대와 구분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지 궁금합니다.

 

A. 우선 지금이 정확히 포스트모던한 시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시대에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를 적용하는 것은 거리가 있어 보여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역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규범적인 것들이 설득력을 잃으면서 나타난 현상이 포스트모던이라는 거죠. 사회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보자면 근대라는 것은 노동의 시대잖아요. 그것이 좋은 의미에서든, 그렇지 않든 노동의 시대를 지나 지금은 노동을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시대라는 겁니다. 전체 노동자의 반이 비정규직이고, 실업자도 통계를 내보면 나날이 높아지고요. 이건 노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 간다는 거죠. 노동의 시대라는 것은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아라라는 규범이 있던 시대인데 이제는 자본주의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었으니 그 규범은 이제 무의미해졌어요. 그런 의미에서 노동이 모든 것을 대표하는 시대는 끝나고, 더 이상은 이대로 지속되기는 힘들겠다는 문제의식이 생겨난거죠. 이제는 네그리 같은 학자가 이야기했듯 과거와 달리 노동이 전부 탈물질화 되어 비물질적 노동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 그 예 중 하나입니다. 그런 변화들을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경계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19세기의 정치적 혁명들 속에서 만들어진 평등의 이념은 자본주의가 진행되어감에 따라 소비의 영역에서 누구나가 다 규격화된 상품을 선택하고 구매할 수 있는 형식 민주주의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상품은, 그가 지불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계급과 성별, 사회적 지위나 학력, 국적 등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불평등과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깊어지는 빈부의 차이, 착취와 전쟁은 상품의 풍부함과 소비의 평등 속에서 은폐될 수밖에 없었다.”

 

Q. 현대 사회의 특징으로 소비를 들지 않을 수 없는데요. 소비사회도 포스트모던의 산물로 볼 수 있을까요?

 

A. 소비사회를 모더니티나 포스트모더니티의 산물로 보기 보다는 시대적으로 봐야할 것 같네요. 시기적으로 보면 소비사회라는 것은 2차 대전 이후에 출현했다는 면에서 소비사회가 모더니티보다는 포스트모더니티에 상응한다고 볼 수는 있겠네요. 19세기 자본주의는 절약을 강조한 금욕주의를 주창했고, 소비는 미덕이 아니라 악덕으로 간주되었죠. 그런 시대가 위기에 봉착한 것이 20년대 말이에요. 29년 대공황이라고 하죠. 20년대 말에는 포드주의, 생산라인(assembly line)이 도입되면서 대량생산이 본격화된 시대인데 계속 금욕주의가 강조되다보면 만든 물건들이 팔리지를 않게 되고 창고에 쌓이게 되겠죠. 그러다보니 금욕과 절약으로는 자본주의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늘면서 이제 거꾸로 소비하라는 명령이 중요해집니다. 그 소비를 창출하기 위해 케인즈는 유효수요의 원칙을 중심에 두고 새로운 경제학을 만들어냈고, 뉴딜(New Deal)정책으로 공공사업을 벌여 돈을 뿌려 수요를 창출하게 된거죠. 이제 소비가 의무가 된 사회가 된 겁니다. 포스트모더니스트의 대표적 인물로 간주되는 보드리야르 같은 경우 소비사회를 자본주의와 포스트모던에 연결했던 연구 등을 보았을 때 소비사회는 포스트모던에 가깝게 위치하지 않았나 생각 합니다.

 

Q. 한국에서의 포스트모던 현상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A. 1987년 이후가 아닐까요. 87년 이전에 제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학교에서 저축 포스터를 그리라고 했지요. 자동차도 검정색이 아니면 허용되지 않았죠. 87년 민주화운동을 거치고 난 후 노동조합들이 대거 만들어졌잖아요. 그러면서 임금도 오르고, 노동자들의 대중적인 구매력도 증가했지요. 그렇게 내수시장 활성화 전략으로 그동안 수출에만 의존하던 것에서 내수에도 집중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어요. 내수시장 형성이 중요했던 건 국민들의 소비를 확대하는 것이니까 그때부터는 더 이상 국민들에게 절약을 강조하지 않았죠. 이런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여성지(womens magazine)의 변화 같아요. 예전에는 커피가 묻으면 어떻게 물을 빼고, 어떻게 하면 절약할 수 있을까를 가르치는 것에서 알뜰주부가 이상적인 모습이었음이 나타나죠. <주부생활>이라는 잡지 제목이 이런 현상을 잘 나타내준다고 말 할 수 있어요. 그런데 87년 이후부터는 굉장히 화려한 이름을 가진 잡지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죠. 이런 여성지의 특징이 광고와 글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글에서도 트렌드를 강조하면서 이런 의상, 이런 구두가 유행하고 있다고 가르치는데, 이건 광고회사랑 다를 바가 없죠. 이런 현상과 맞물려 소비사회로 넘어간 게 아닌가 싶어요.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혹은 유명인사의 외양과 그들의 생활방식 등을 개성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모방한다. 혹은 TV나 잡지 등을 통해 제공되는 계급 표시적인 주택과 인테리어, 자동차, 의류 등이 하나의 모델로 모방된다. 이런 모방을 통해 대중들은 개성화하고자 하며, 스스로를 타자로부터 구별짓고자 한다. 이런 관점에서 유행역시 이해될 수 있다. 차이화와 유행은 얼핏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비사회에서 이 둘은 좋은 커플이다. 짐멜에 의하면, 유행은 한편으로 그것이 모방이라는 점에서 사회에 대한 의존 욕구를 충족시킨다. 다른 한편 유행은 차별화 욕구를 만족시킨다.”

 

Q. 유행도 포스트모던의 특징으로 볼 수 있을까요?

 

A. 유행은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있었죠. 프랑스 혁명 이전 귀족시대에도 유행은 있었어요. 그런데 유행이라는 것은 소비자들이 자신의 감각에 의해 만들어 내야 되는 건데 이게 생산하는 사람들에 의해 유행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소비사회 들어서 변화라고 볼 수 있죠. 지인 중에 의류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유행색협회라는 곳이 있다더군요. 올 봄에는 무슨 색이 유행한다는 것을 유행색협회에서 정하면 디자이너들이 그 색으로 디자인해서 옷이 나오면 소비자들은 그 옷을 입어야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거예요. 소비자들의 감각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유행이 아닌 옷을 팔기 위해 생산자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는 얘기죠. 만드는 이유야 분명하죠. 빨리빨리 유행이 바뀌어야 또 옷을 사지 않겠어요? ‘패셔너블이라는 단어로 가진 것을 새 것으로 빨리 바꾸게 하는 것을 포스트 포드주의라고도 부릅니다. 휴대폰이나 자동차 같은 고가품도 마찬가지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형태인 소비주의도 이제 자본주의에서의 변화 뿐 아니라 문화현상 전반에 확산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감각을 바꿔 새로운 것들을 자꾸 소비하게 하려는 의도겠지요.

 

오늘날의 육체는 광고, 모드, 대중문화 등 모든 곳에서 범람하고 있다. 육체를 둘러싼 위생관념 및 영양 그리고 의료의 숭배, 젊음, 우아함, 남자다움, 아름다움 등에 대한 강박관념, 미용, 날씬해지기 위한 식이요법, 그리고 육체에 따라다니는 쾌락의 신화. 이것들은 모두 오늘날의 육체가 가장 강력한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품으로서의 육체는 의도적으로 투자되는 동시에 물신숭배 되고 있는 것이다.”

 

Q. 책의 본문에서 육체 소비라는 말이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 왔습니다.

 

A. 기본적으로 신체는 보여주기 위함은 아니잖아요. 소비 시대로 바뀌게 되면서 육체는 관리되고 검열되는 과정을 통해 소비되죠. 이건 성욕에 대한 관점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어요. 이전에 금욕이 강조되던 시기에 성욕은 억제하고 감추어야 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소비사회가 되면서 성욕을 자극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게 됩니다. 상품광고에서 성적인 이미지를 쓰는 건 지금 너무나 일반적이죠. 섹시함을 강조하는 것, 즉 여성들에게 섹시할 것을 요구하고, 남성들은 성욕을 자극해 끌어들이는 식의 체제가 만들어졌어요.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신체를 욕망의 가시적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해지죠. 그러다보니 신체는 보여주기 위한 것이 되고, 신체적인 것들이 다른 어떤 것보다 시선의 대상으로 바뀌게 된거죠. 그러다보니 당연히 건강미가 중요해지게 되었고요. 이상한 현상도 나타납니다. 음식이 포화하니 많이 먹고, 돈을 들여 살을 빼는 거예요. 돈 들여 먹고 돈 들여 빼는 시대죠.

 

Q. ‘육체 소비논의의 연장선으로 개인의 육체가 부를 생산하는 사회적 자본이라는 의미의 육체 자본’, 특히 성형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성형은 여성들의 예뻐지고자 하는 욕망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사회생활을 잘 하기 위한 하나의 자기계발로 여겨지고 있는 듯 합니다. 많은 자기계발서나 대중강연에서는 이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자존감이나 자신감을 강조하는 걸 많이 봐왔는데요. 이것만이 이 시대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일까요?

 

A. 최근에 <삶을 위한 철학수업>이라는 책을 새로 냈는데, 거기에 자존심과 자긍심에 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자존심이란 일종의 방어기제로, 남이 나에게 보내는 시선이나 건네는 말들을 공격으로 받아들여 그로부터 나를 방어하기 위해 쳐내는 것이죠. 그래서 자존심이 센 사람의 경우 신경질적이고 히스테리컬 하지요. 사실 이건 약함의 징표예요. 자신의 약점을 카무플라주하기 위한 방어기제로서 성형수술을 하는 것이라면, 이는 자존심을 지키려는 행위와 일치하겠네요. 그런데 자긍심은 강자들이 자신을 긍정할 때 나타나죠. 내가 진짜 좋아서 하는 일이 있다면 사람들이 오해를 해도 설명할 필요를 굳이 못 느끼겠죠. 자긍심이 있으면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 못해도 별 상관없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자긍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자신을 치장한다는 것이 크게 의미 있는 작업은 아닐 거예요. 성형수술도 마찬가지겠지요. 자기가 정말 좋아하고 자기 인생을 걸 만한 일을 하는 것, 나의 인생 계획을 실천하며 살 수 있을 때 진짜 자긍심이 생기겠죠. 그런 사람에게 성형수술은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겁니다.

 

“<권력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누굴 만나서 무엇을 하든지, 당신 몸에 부착된 전자장치는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포착할 수 있다. 이것이 단지 할리우드의 스릴러적 상상세계에서나 가능한 것일까? 거리에 설치된 무수한 CCTV, 당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는 핸드폰의 GPS, 정부와 기업의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된 당신의 신상정보는 단지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서 사용되기만 할까?”

 

Q. 전자감시 시대입니다. ‘구글링으로 신상털기는 흔한 일이 되어 버렸고, “당신의 앞마당 역시 불특정 다수에게 언제든지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본문에서 언급된 것처럼 구글 어스’(Google Earth)는 개인의 사생활 뿐 아니라 국가의 안보마저 위협하고 있는데요. 이런 시대에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이제 그런 것들은 이미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 같아요. 없앤다 해도 또 많은 피해나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요. 그런 것들에 대한 방어 방법을 찾기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카운터 감시(반감시, 대안감시)의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위키리크스도 중요한 역할을 했고, CIA에 있다가 에콰도르에 망명을 신청한 스노든 사건을 통해서도 그런 사례를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정보기관에 대한 카운터 감시인거죠. 촛불 시위를 할 때 폭력을 쓰는 경찰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뭐겠어요? 시민의 카메라죠.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쇠파이프로 맞서는게 아니라 카메라를 들이대는 거예요. 반폭력 감시의 장치로 카메라나 이런 것들이 사용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식의 카운터 감시, 대안 감시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좀 더 적극적인 대응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동체주의란 많은 경우 그 외부의 이질적 요소들에 대해 배타적이고 적대적이다. 이질적 요소의 유입을 차단하여 동질성을 유지하려 하고, 외부자를 배제하여 친숙하고 친밀한 자기들만의 천국을 만들고 싶어 한다. 코뮨주의는 이런 점에서 공동제나 공동체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른 관계,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하며, 그런 만큼 다른 원리를 작동시킨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발적인 결사체며, 보호되고 보존되어야 할 어떤 정체성/동일성에 스스로 고정되지 않으며, 외부적 요소에 대해 항상 열려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외부적 요소를 통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갱신하고 변이시켜 가는 연합과 연대의 집합체다. ”

 

Q. 선생님 책에서 국가로 통합된 공동체라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국가라는 개념이 근대의 산물이라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이르러 국가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지고 점점 초국적인 사회가 될 텐데요. 지금도 이미 글로벌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현상이 많이 진행되었지만요. 근대의 우리들이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 왔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까요?

 

A. 인구, 영토, 주권을 세 가지 기본요소로 하는 국가 개념은 19세기 이후에 만들어졌죠. 전에는 사실 봉건 영주들이 다스리거나 도시국가들이 대부분이었죠. 그런데 나폴레옹 전쟁 이후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국민국가 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니까 국가의 역사는 정말 얼마 안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도시들을 통합해 이탈리아라는 국가가 만들어졌을 때 마시모 다젤리오가 우리는 이탈리아를 만들었다. 이제 이탈리아인을 만들 차례다.”라고 말을 했다지요. 같은 국민이라는 의식이 없으면 국가가 유지되기 힘들기 때문이에요. 국민을 만들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초등학교 입니다.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하려고 언어와 역사를 가르치죠. 지금은 국가라는 개념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EU 같은 국가연합체가 생겨나고 있어요. 국가연합체는 국가의 수준을 이미 넘어선 것이지요. 생산이나 유통도 이미 국가 단위를 넘어섰고요. 국가의 위상이 굉장히 약화된 거라 볼 수 있어요. 또 중요하게 봐야할 건 노동력의 이동입니다. 우리나라 같이 단일민족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나라도 이주노동자의 수가 엄청나잖아요. 그런 시대에 국가나 민족정체성이라는 걸 계속 주장하는 것은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거라 볼 수 있어요. 정체성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하자면, 이는 본래 사람들의 다양성을 제한하고 동일화 시키고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로 통제하려 하죠. 사람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서는 국가가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하다보니 일단 동일화하려 하는 근대적인 감수성의 체제라고 볼 수 있지요. 이제 필요한 건 서로 다른 민족을 횡단할 수 있는 트렌스 네이션한 사고예요.

 

Q. 대학이 기업의 인력양성소로 변화하고, 대학의 연구기능은 기업의 R&D센터로 느껴질 정도로 대학의 기업화라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집니다. 선생님께서 활동하시는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연구자들의 코뮨을 자처한다는 소개글을 보았는데요. 대학의 기업화에 대한 대안으로 선생님의 수유너머활동을 들 수 있을까요?

 

A. 저도 공부를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제가 보기에 대학원이라는 곳이 별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더라고요. 프로젝트 옆에서 보조하다가 논문 써서 졸업해 대학에 취직하는 직장인이나 다름없어 보였어요. 저는 공부의 즐거움을 찾고자 대학원을 찾은 건데 이렇게 되어 버리면 커다란 즐거움 하나를 잃게 되잖아요. 그러고 싶지 않아서 학교에서 안 된다면 밖에서 하자 이런 생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 수유너머입니다. 또 학교와 상관없이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고요. 우리들은 이런 상황에서 다행히도 공부의 즐거움을 발견한 사람들, 적게 벌더라도 하고 싶은 공부를 계속 하겠다 결심한 사람들이 주로 모여서 만든 공동체, 코뮌이죠. 예술가도 있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하지만 세미나나 강연을 하는 등 공부와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되어 있지요. 당번을 두고 음식도 함께 만들어 먹으면서 타인들을 배려하는 삶을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종류의 삶의 방식들, 윤리, 살아가는 지혜를 계속 찾아가는 것을 코뮌주의라 명명하는데, ‘수유너머는 그것을 위한 시도, 실험, 운동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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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3. 11. 21. 01:57

 

 

 

 

얼마 전 라이프치히에 다녀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플라잉 유니버시티(Flying University)’가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려 다녀왔습니다. 나치 점령대나 현실사회주의 때 일종의 지하대학으로 폴란드 사람들이 만든 개념이죠. 당시 공개적으로 열릴수 없다 보니 누군가의 아파트로, 지하 술집으로 옮겨 다니던 것을 영어로 플라잉 유니버시티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정식 명칭으로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비행대학'(The Flying University of Transnational Humanities)’이라고 부르는데, 기존 인문학의 지배적 패러다임인 내셔널 패러다임에 대한 대안적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는 취지입니다. 그 명칭은 정규적인 방식이 아니라 폴란드 지하 대학처럼 운영되어서이기도 하고, 실제로 참가자들이 각 국에서 날아와야 하기 때문이기도 한 복합적인 이유를 담고 있습니다. 현재 약 12개 대학 박사 과정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어요. 내년에는 피츠버그 대학교의 월드 히스토리 센터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우리 안의 파시즘>을 읽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혼란을 느꼈습니다. 시야가 좀 더 넓어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고요. 저 뿐 아니라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저와 같은 혼란을 느끼더군요. 그건 분명 그동안 마치 당연하게, 고정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훈육과정에 의해 우리도 모르게 내면에 잠식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 듯 한데요. 선생님께서 내면화된 권력에 문제의식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우리 안의 파시즘>당대비평에 특집으로 내던 것이었죠. 거기에 논쟁이 붙다 보니 이렇게 단행본까지 나오게 됐네요. 벌써 15년 된 이야깁니다. 박사 논문을 쓰고 나서 1990년대를 폴란드 역사와 씨름하며 보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남한에서의 사회 혁명이 먼저냐, 통일이 먼저냐, 민족문제가 중요하냐, 계급문제가 중요하냐 논쟁이 많았는데, 이 논의를 위한 이론적 토대가 너무나 약해 보이는 겁니다. 그걸 계기로 박사 논문을 맑스, 엥겔스로 파고 들어가 민족 문제가 무엇이냐 하는 걸 공부했지요. 폴란드는 유럽 사회주의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민족 논쟁을 한 곳입니다. 18세기 말부터 100년 이상 3개국(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분할 점령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애국주의 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현실 사회주의의 잔재들을 만나게 된 겁니다. 사회주의는 과거 식으로 생각하면 좋은 헤게모니를 잡은 사람이 권력을 잡아 사회를 확 뜯어 고치면 사회를 근원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이나 프랑스 혁명만큼 근원적인 혁명이 없는 겁니다. 부르주아 혁명이나 프롤레타리아 혁명도 마찬가지고요. 당시 모스크바 노동자들은 단추 하나까지도 바꿨죠. 부르주아의 심볼이라 해서 패션까지도 바꿔버린 겁니다. 계급도 바뀌고, 법제도 바뀌었으니 그런 면에서는 근원적인 혁명이라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직접 가서 만나본 현실 사회주의는 별로 바뀐 게 없는 겁니다. 오히려 더욱 섹시스트(sexist)적인 사회이고, 프라하 같은 곳의 결혼 상담소에서는 아직 페미니즘에 오염되지 않은 미모의 여성이 다수 있습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내걸고 있었죠. 서울에서 만일 이런 광고가 났다면 어떨까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모든 면에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사회주의 혁명이고,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 사회에서는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섹시즘(sexism)은 당시의 남한보다도 더 강했죠. 그런데 막상 취업 통계를 보면 여성 취업률이 꽤 높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남녀평등이 완벽히 구현된 듯 했어요. 그런데 집안에서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맞벌이 부부인데도 집안일은 여전히 여성이 도맡아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하는 문제의식이 현실 사회주의와 자꾸 맞물리면서 혁명을 통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어떤 방법으로 가능할까?’하는 의문이 계속되다 무엇보다 사회의 결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거죠.

 

사회의 결이 바뀐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합니까?

 

일상적 파시즘의 코드를 읽어내는 것부터가 시작이죠.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1989년 이후 정치적으로 민주화되었고, 민노총, 전교조라는 이른바진보 진영이 나와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죠. 전대협이나 한총련은 학생 운동을 주도했고요. 학생 운동을 예로 들어 볼까요. 당시 학생운동을 하는 학생들이 너무나 군사적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간부 수련회에 가면 김밥말이 같은 제식훈련을 하는데 이를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겁니다. 진보적인 기자들은 이를 또 자랑스럽게 기사에 쓰고요. 이들이 권력을 잡는다면 세상이 바뀔까요? 소련 등지에서의 역사가 재현되는 건 아닐까요. 실제로 북한에서 더욱 끔찍한 형태로 재현되고 있지 않나요?

한국 사회에서도 1980년대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지배될 때 우리가 권력을 가지면 세상이 바뀐다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지금의 사유 방식, 세상에서의 실천 방식이 예전 앙시앙레짐의 독재체제 방식과 다를 것이 없는데 세상이 어떻게 바뀌겠는가하는 문제의식을 <우리 안의 파시즘>에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들을 바꾸지 않으면 절대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겁니다.

 

말씀 중에 당시 진보를 외치던 사람들에 대해 이른바진보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진정한 진보의 모델을 제시해 주실 수 있나요?

 

모델을 찾아 볼 수는 있겠지만 모델을 찾는다는 발상 자체가 구태의연할 수도 있습니다. 모델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순간 그 모델 자체가 폭력이 될 수도 있죠. 이 모델이 가장 진보적인 모델인데, 이 모델과 일치하지 않으니 진보가 아니다라는 발상은 문제가 될 수 있단 겁니다. 멕시코의 사바티스타(Zapatista)와 마르코스의 예를 들면, 좋은 헤게모니가 권력을 잡고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이야기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바티스타에 진입해 취재했던 프랑스 기자들의 결론은 사바티스타 역시 이전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어요.사실 맑스도 사회주의의 모델을 내세운 적은 없고 자본주의 비판만 했지요. 그러다 어느 순간 사회주의가 청사진처럼 제시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건들에 대해 눈을 기울이는 것이겠죠.

또 다른 예를 들어 볼까요. 2001년 현대자동차 구내식당 여성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반대투쟁에 대한 영상 보고서 <··>이 민주노총의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울산 인권영화제에서 검열시비로 인해 영화제 자체가 무산된 사건이 있었어요. 1997IMF 이후 한국에 노동시장유연성이 생겼는데, 문제는 노동시장이 경직되다 보니 기업은 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해고가 자유로운 비정규직, 임시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그 결과 부작용으로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노동강도는 비슷한데 급여 수준은 반 정도 밖에 안 되는 일이 발생했어요. 이 때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파업을 하는데 결국 회사 측과 타협한 것은 노동자 해고를 원칙적으로 받아 들이되, 그 숫자를 줄이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수는 구내식당 여성노동자들의 수와 같았어요. 결국 식당 여성노동자들을 모두 해고하고, 그들을 노조가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방식을 택한 겁니다. 여기에 여성노동자들이 노조에 대해 다시 파업을 했던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찍은 거지요. 이 사건으로 한국에서 노동자 계급은 단일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같은 노동자인데도 남성노동자가 여성노동자에 대해 헤게모니를 쥐고 흔드는 꼴이고, 함께 파업을 했는데 남성노동자는 모두 정규직이 되고, 여성노동자는 비정규직이 된 겁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리지요.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 내에서도 또 민노총 소속의 노동자는 이미 그 안에서 특권을 가집니다. 노동계급 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 안에서 젠더 간의 불평등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일부 기자들로부터 임지현은 노동자의 단결을 해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중요한 건 노동자의 단결을 우선적으로 이야기하는 순간 노동자 계급 내에서의 불평등은 가려진다는 거죠.

이런 이야기까지도 다루어야 하는데 여전히 민노총은 진보이고, 그 진보의 폭력성이나 헤게모니에 반대하는 측은 보수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구조화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봅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모델을 가지고 사회의 변화를 꾀하는 것의 문제점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노동자들이 권력을 장악하려면 우선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투쟁이 가장 중요하니 노동자 계급 사이의 사소한 분열은 봉합하고 노동자의 단결을 강조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올 수 있는 겁니다. 현재 사회에서는 오히려 자본가와 노동자의 차이보다 노동자 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이가 더 커졌는데 말이죠. 그런데 그것을 단순히 맑시즘의 논리로 생산수단을 가진 자와 못 가진자로 나누는 구도로 보게 되면 이미 바뀌어 버린 사회를 제대로 볼 수 없는 문제를 안게 되는 겁니다. 더욱 경계해야 할 건 진보의 이름으로 이런 것들이 구조화되는 거겠지요.

 

한국 사회에는 연고주의, 민족주의, 가족주의, 가부장제 같은 것들이 타 문화권보다 강하게 나타난다고들 합니다. 한 편에서는 이런 부정적 특성이 역설적으로 한국사회를 유지시켜 준다고 보기도 하던데요. 많은 글에서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계시는데, 그렇다면 한국사회가 이런 주의를 떨치고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연고주의, 가족주의, 남성 중심의 섹시즘 등은 한국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사회에난 존재합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은 외적으로 볼 때 여성이 대통령이 될 정도로 여권이 신장된 사회라고 볼 수도 있어요. 연고주의, 가족주의, 섹시즘 등이 한국사회의 특성이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서유럽(영미, 프랑스, 독일 등)이 모범적이고 정상적인 해방의 길을 걸었고, 그 외 국가들은 성숙하지 못한 길을 걸었다는 잘못된 전제가 깔린 거라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동문회 문화는 한국보다 더하다고도 볼 수 있을 정도예요. 그런데 이런 네트워킹 방식이 좀 더 정교하기 때문에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어요. 한국에서 해병대, -대학교면 무조건 뭉치자는 식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것을 한국만의 특수성이라고 보기보다, 근대적인 사회가 낳는 특수성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예전에 이런 주제를 다룬 글을 쓸 때만 해도 서구의 근대성을 정상적으로, 그 외 국가의 근대성을 비정상적으로 보는 사고방식의 잔재가 남아 있었어요. 이제와 당시의 글에 대해 자기비판을 해본다면 근대성에 대한 이해가 너무 이분법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68혁명에는 많은 신화가 있지만 세상을 바꾸는 일, 일상의 결이 바뀌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나타내는 예가 페미니즘이 가속화된 계기입니다. 68에 참가한 학생들은 기존의 불평등을 모두 뒤집어 엎자고 했지만 결국 남학생은 운동에 앞장서고, 여학생은 허드렛일이나 하고 있는 거죠. 그 여학생들 사이에서 페미니즘이 나타난 거예요. 굉장히 급진적인 맑시스트들 사이에서 그 안의 불평등을 인지한 거죠. 이런 여러 문제가 응축되어 68에서 터진 거라면, 한국사회에서는 아직 68을 겪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반드시 68일 필요는 없지만 일상에서의 결을 바꾸려는 노력 없이 한국사회가 민주적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최근 몰두하고 계신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Transnational History)’가 일상의 결을 바꿀 수 있을까요? 기존의 역사관과는 어떻게 다르다고 볼 수 있나요?

 

그동안 한국사회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그래, 좋다. 당신의 주장에 수긍하지만 대안은 무엇이냐였습니다. 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다 보니, 대안을 제시한다기 보다 기존의 역사관을 새롭게 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트랜스내셔널 개념을 제시하게 된 겁니다. 이건 그리 어려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역사를 보면 오늘날의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은 현대 자본주의의 결과가 아니라 사실 아주 먼 고대부터 끊임없이 사람들의 이동으로 글로벌리제이션이 있어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인류의 기원은 아프리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지요. 또 신라 금관은 시베리아에서 출토되는 스키타이 문명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 한민족 또한 단일민족이 아닌 시베리아 쪽에서 넘어 온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볼까요. 석굴암은 간다라 미술 양식의 영향을 받았죠. 그런데 간다라 미술양식은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간다라 지역 원정 결과물입니다. 그리스 헬레니즘의 조각 기법이 인도에 전해졌고, 거기서 만들어진 헬레니즘 기법으로 불상들을 조각하기 시작한 것이 중국을 거쳐 한국에까지 오게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 불상이 서양인처럼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 거죠. 국경 개념도 근대에 와서나 생긴 개념이죠. 전근대사회에는 국경개념이 지금과 달라 여권이 없었어요. 여권은 쟈코뱅의 근대적 발명품인거죠. 그렇다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전근대 사람들도 얽혀 살아왔던 겁니다. 얽혀 살아오던 삶의 방식을 근대 국가가 만들어지고 국사가 만들어지니 오늘날의 국민국가의 경계선으로 딱 끊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역사로만 한정을 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많은 것들을 간과하게 되지요.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는 미래를 위한 역사관이라기 보다 과거의 글로벌리제이션을 간과했던 역사 서술에 대한 지적부터 시작합니다. 오늘날에는 환경적인 요인에서 트랜스내셔널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로 한국 사람들의 수명이 짧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는데, 그렇다면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에 대해 한국 정부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기존의 내셔널 패러다임으로 보면 중국이 자기 국토에 자기네 인민의 결정에 따라 나무를 베고 사막을 만들어도 우리는 사실 할 말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결과는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죠. 한국 산림청에서는 중국과 협력해 나무심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합니다. 캠페인에 불과하지만 이는 국민국가의 관점에서는 최선인 거죠. 체르노빌 때는 어땠나요.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지역에 있었던 원자력 발전소 체르노빌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우크라이나이지만 벨라루스와 접경지역에 있었지요. 사건 이후 바람으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원전이 있던 지역만 오염됐는데, 벨라루스는 국토의 3분의 1이 오염됩니다. 벨라루스의 오염된 지역 거주민들은 이주를 해야 했어요. 그런데 당시는 소련으로 엮여 국가 간 갈등은 크게 나타나지 않았지요. 그렇다면 현재 국토의 3분의 1이 황폐화된 벨라루스는 어디서 보상 받아야 할까요? 현재 동유럽에서는 만일 체코가 원자력 발전소를 지으려면 폴란드 의회나 우크라이나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과거라면 체코가 자기네 자본으로 국민의 동의 하에 핵발전소를 세우는데 다른 나라가 상관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체르노빌 사건이 있고 보니 이것이 체코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국 모두의 문제임을 인식하게 된 거죠. 그런데 지금 동아시아에서는 후쿠시마 사건 이후 한국의 전문가들이 가니 일본 측에서는 이것이 국가의 안보 문제라며 원천봉쇄 합니다. 더 걱정인건 중국이 황해연안에 원자력 발전소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기존의 내셔널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그 어떤 개입도 할 수 없다는 얘기죠.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은 중국의 계획에 대해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위해 핵발전 플랜트를 수출할 길을 찾아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더군요. 이렇게 얽혀 있는 사회에서 더욱 근원적인 문제를 풀기 위한 접근법으로 트랜스내셔널 개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Transnational History)’ 개념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위해 기존의 내셔널리즘(Nationalism)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요.

 

사실 내셔널리즘 자체도 우리사회에서 고유하게 발전해 온 개념이 아닌 유럽에서 건너온 것입니다. ‘국사라는 말이 한국어일까요? 그건 일본에서 만들어낸 말입니다. 전세계 사학과에서 국사, 동양사, 서양사라는 구분이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뿐이에요. 근대 교육체계가 만들어지면서 우리도 ‘national history’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겁니다. 일본 최초의 국사책은 불어로 쓰였죠. 파리 엑스포에 출품하려는 목적이었는데, 그것들이 나중에 교육을 위해 동경제국대학에서 국사 교과서로 쓰고, 동양사를 만들어 냅니다. 국사와 동양사를 구분한 건 일본은 동양이 아니다, 일본은 너희 서양과 다르지 않은 대등한 국가이다,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이 만들어낸 동양의 이미지는 조선과 중국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죠. 그래서 일본에서 동양사의 대상은 조선과 중국이 되고, 국사의 대상은 일본이 됩니다. 일본에서 국사, 동양사, 서양사의 구조가 어떻게 발생했는가에 대한 아무런 고민 없이 한국에 그대로 들어와 우리나라 역사도 국사, 동양사, 서양사로 구분하게 되었어요. 기존의 국사 체계는 우리의 고유한 발명품이 아닌 일본의 가공식품을 수입한 것과 다름없는 것이겠지요. 일본에서 교육받은 학자들이 한국에 와서 만든 국사는 결국 주어는 다르지만 문법은 같다고 볼 수 있어요. 그 문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맥락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틀을 깨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을 분명히 인지하고 나아갈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비판을 받게 될 수도 있고요.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과정에도 불구하고 그런 노력을 해야만 하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입니까? 또 앞서 강조하신 사회적 맥락 읽기의 중요성을 실천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조언해 주신다면요.

 

그에 대한 이유나 목적을 찾기보다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 연구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주장 역시 한국사회의 상식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앞으로 더 힘들 수 있겠지요. 그런 것들이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연구자의 본분을 생각하면서 공부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동시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내 연구의 이유라고 봅니다.

사회의 맥락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분명 아닙니다. 학생들에게는 언제나 신문읽기를 권장합니다. 그리고 일상에서도 그 맥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권력 문제를 이야기 하려면 푸코를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형제와 나의 관계, 또는 교수와 나의 관계에서 권력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읽으려 하는 것부터 시작일 수 있겠지요. 반드시 책으로만 배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눈을 뜨고, 바라보고 예민하게 깨어있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예전 같은 세상이라면 그람시가 이야기 했던 것처럼 창공에 빛나는 별이 있고, 북극성을 쫓으면 우리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실현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별들은 모두 흩어져 있고, 북극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환상에 빠뜨릴 수 있겠지요. 어떤 이데올로기나 사상을 공부할 때 정의를 정교하게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이런 사상이 어떤 맥락에서는 이렇게 재현되고, 또 다른 맥락에서는 저렇게 재현되고 있는지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싶네요.

 

 

▲ <우리 안의 파시즘>의 저자 임지현은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이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며, 학문과 국경의 경계와 틀을 넘어선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자이다. 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마르크스, 엥겔스와 민족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폴란드의 바르샤뱌 대학과 크라쿠프 사범대학을 오가며 연구와 강의를 했다. 한국 사회의 본질주의적 역사인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만들어진 역사로서의 민족주의와 국사의 해체를 주장해왔다. 비교역사문화연구소를 만든 이후 국사(national history)’의 대안으로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을 모색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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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3. 6. 12. 14:35

 

매체 비평지 미디어스소속인 청년 논객 한윤형. 1999안티조선운동의 원년멤버를 시작으로 다양한 진보매체에 글을 써온 그는 스스로를 삼류 기자라고 평한다. 어쩌다 청춘의 인생이 이렇게 되었는지, 루저의 정서란 무엇인지,

일베현상을 해석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청춘여행을 떠나본다.

   

청년 문제와 관련된 글을 기고하며 문제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억지로 이어 붙이거나 구색을 차린다는 느낌이었지만 여러 소재와 청년 세대를 접합한 글을 쓰다보니 세대 담론이 실제로 정치적 문제와 연결이 되어 있다는 어떤 직관을 갖게 되었다...<p6>

 

Q. 루저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A. 루저잉여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외부에서 원고 청탁을 받으면서부터였어요. 잡지 <황해문화>에서 루저문화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었거든요. 당시 기고했던 글의 제목이 루저는 세상 속에 자기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라는 것이었고, 이를 제 책의 챕터 제목에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어요. 이렇듯 잉여나 루저문화에 대한 글들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면서 담론적 접근으로 풀어나가려 했고, 그렇기에 공적인 글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잉여루저문화라는 것이 생각보다 중요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죠.

 

Q. 루저문화를 세대론적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A. , 사실 저도 루저문화가 반드시 세대론의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다만 루저문화라는 것이 지금의 청년세대와 가장 크게 결부된 문제임은 확실한 것 같아요. 특정 소재와 청년 세대를 접합한 글을 쓰다 보니 세대 담론이 시대의 문제를 반영하는, 즉 세대 문제에 대한 접근을 도와주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루저라는 단어보다는 잉여라는 말을 선호하는 편이예요. ‘루저라는 정서는 기존의 세대 담론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충분한 논의가 있었을 테지만, ‘잉여는 최근에 한국사회에서만 나타난 독특한 단어니까요.

 

Q. 잉여라는 말이 오늘날 새로운 의미를 담기 시작했다는 말씀이신지요. A. ,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예전에는 잉여라는 말을 오늘날과 같이 쓴 적이 없거든요. 과거 잉여라는 단어는 물건의 가치를 평가하는 측면, 잉여가치라는 표현으로 활용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경제생산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드러내기를 어려워하는, 그런 문제적 상황을 일컬어 잉여인간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이죠. 사람의 노력과 행동이 쓸데없는 잉여라고 표현되는 것은 경제적으로 그들의 행동은 쓸데없다라는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잉여력’, ‘잉여인간과 같은 단어를 양산해 낸 배경은 바로 신자유주의에 접어든 오늘날 한국 사회와 맞물린다고 봅니다. 이들은 결국 기존의 한국 사회에서는 포착할 수 없었던, 이 세대만의 독특한 감성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죠. 그래서 위와 같은 단어들을 이 시대 한국 사회의 어떤 세태를 드러내기 위해 세대론적 관점으로 이야기 해온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세대론은 왜 잉여의 청춘이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접근 방식으로 차용한 것일 뿐 루저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세대론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게 답이다라는 식으로 마치 무 자르듯이 뚜렷한 답을 내리려는 것은 아니었어요.

 

Q. 사실 루저문화라는 것에 나타나는 열패감, 루저의 감성은 어떻게 보면, 오늘날 청년세대 이전에도 계속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요?

A. 루저의 정서는 시대마다 당대의 특수한 사회적 배경을 드러내는 독특한 차이와 특징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이상의 문학 시대에 나타나는 루저의 정서라는 것은 식민지 지식인의 무력감을 다루는 것일 테고요. 영화 비트말죽거리 잔혹사를 생각해본다면, 사람들이 영화에 나타난 주인공을 보고 루저로 인식하는 이유는 그들이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이잖아요. 과거 한국사회에서 루저라는 개념에 담긴 정서는 학벌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늘 날 나타나는 루저의 정서는 모두가 학벌사회 안으로 편입된 가운데 등장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루저 개념과는 차이가 있어요. 대학에 진학한 이들이 좌절에 빠져드는 정서인 것이죠. 결국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 루저의 정서가 과거와 다르게 나타나는 지점이 있다는 것, 새롭게 나타난 루저의 정서를 다룰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죠.

 

Q.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나타나는 루저의 정서는 학벌의 내부에서 시작한다는 말인가요?

A.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명문대를 선호하고, 명문대 출신이 되기를 추구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이 되었지만, 여전히 학벌사회의 외부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거든요. 제 책에 대한 리뷰에서도 비슷한 글을 봤는데요, “나는 스스로를 루저라고 생각하지만, 좋은 대학을 나오지는 않았다는 내용이었어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전 세대보다 오늘날 루저의 정서가 나타나는 범위가 더 넓어졌다는 것이에요. 루저의 정서를 갖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하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루저 문화의 시사점이 있다면 루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애매하면서도 색다른 새롭다는 정서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루저는 새로운 것은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엄친아나 심지어 어른들보다 명료하게 인지하는 주체다 <p159>

 

Q, 루저라는 문화적 정서를 단순히 저항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 이룰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자조적인 성격으로 이해하는 논의가 인상 깊었습니다.

A.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학한다는 것, 자기비판의 냉소를 보인다는 것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죠. 정말 죽을 만큼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학할 여유도 없습니다. 더불어 루저의 정서는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부족할 때 많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요(웃음). “나는 능력이 되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지만, 사회가 그에 대한 보답을 주지 않을 때 박탈감이나 소외감의 정서를 느끼게 되는 것이죠.

 

사실 사회의 규탄 이전에 이들 스스로가 자신들 처지에 대해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내면화 하고 있다. 요즘 보이는 루저 문화라는 것은 이 부끄러움을 그나마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려는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정서는 정치적인 각성과 자기 학대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 <p150>

 

Q. 그렇다면, 이 세대가 가지고 있는 루저의 정서라는 것이 오히려 주류에 편승하기 위한 욕망에서 오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까요

A. 분명 그런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자조를 보인다는 것은,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이룰 수 없는 데서 나타나는 감성 아니겠어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주류와 비주류의 간극, 속칭(웃음) ‘넘사벽’(그는 이 용어를 굳이 인문학적 표현으로 풀어내자면 심연의 간극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이 심해진 것이죠. 사실 이 간극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숫자가 꽤 많으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요.

 

Q. 넘사벽이요?(웃음)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A. , 간단히 요약하면 이런 것입니다. 학벌 사회라는 것은 균질화된 엘리트들을 대기업들이 안정적으로 고용해줄 수 있을 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체제입니다. 그런데 이제 사회가 그만큼의 인원을 포섭할 여력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원하는 대로 해서 어느 정도의 학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앞날에 희망이 없음을 느끼기 시작하는 거예요. 학벌 사회의 승자임과 동시에 잉여 인간이 된 것이죠. 바로 이런 감정이 잉여라는 단어에 함축된 정서가 과거의 루저정서와는 차이가 있는 이유예요. 오히려 주류에 편승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열패감을 자기비하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멘토는 추상적인 단언이 아니라 멘토링이란 활동에서 나올 것이니, 나는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이들의 시도가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업그레이드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계속 이들에게서 위안을 얻기를. <p144>

 

Q. 루저 문화라는 것은 요즘의 멘토 문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멘토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일단 제가 생각하기에는 멘토라는 말이 애초에 어원과는 다르게 소비됐다고 봐요. 멘토가 제대로 된 조언을 하려면 자신의 전문 영역 안에서만 조언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령 글쟁이가 되려는 사람이 있다면, 제가 글을 쓰는 사람이니 구체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겠죠(웃음). 물론 하지 말라고 조언할 수도 있을 테고요. 그런데 멘토 현상의 문제는 자신의 영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폭 넓은 범위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충고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에요. ‘힐링 문화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사실 저는 자기계발 담론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자기계발을 하려면 자신이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오늘날 대부분의 멘토링은 그 영역을 닫아버리고 있다는 거예요. 개인에게만 희망을 가져라, 노력을 하라는 식의 요구를 하는 것은 분명 멘토 현상의 문제점이라 할 수 있죠.

 

파편화된 취향의 문제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정치를 논하기 위해서는 모종의 통합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 가능성은 대략 두 가지이다. 하나는 비교적 공통적인 조건에 놓인 20대의 삶의 문제를 제시하는 문화 콘텐츠를 통해 20대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p193>

 

Q. 다른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지금 청년세대의 삶을 서사화 하기 위해서는 웹툰이라는 컨텐츠를 비평하거나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요.

A. 세대의 특성은 사회가 만드는 것이죠. 오늘날 청년 세대의 대표적인 특성은 인터넷과 대중문화, 취업난이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청년 세대는 파편화된 취향을 보이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파편화된 취향의 문제를 극복하고 통합을 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20대의 삶의 문제를 제시하는 문화콘텐츠에 대한 비평이라고 생각했어요. 바로 웹툰이 이런 매체에 해당되는 것 같고요. 웹툰은 청년세대가 주축이 되어 활발하게 창작할 수 있고, 이를 향유하는 소비자도 대개 청년 세대이거나 혹은 그 아래 세대들이거든요. 그렇기에 자신들의 삶과 경험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경우가 많죠.

 

Q. 가령 어떠한 웹툰이 있을까요?

A.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라는 웹툰이 있는데요, 저는 이 웹툰의 컨셉이 굉장히 재미있다고 봐요. 사실 이 웹툰의 근본적인 물음은 한국사회에 신자유주의가 언제 들어왔느냐에서부터 시작돼요. 88만원 세대, 공무원 시험 준비생인 주인공 남기한은 어느 날 잠에 들었다가 90년대인 자신의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가게 되거든요. 그는 돌아간 과거에서 영어공부를 집중적으로 하면 엘리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90년대 한국사회는 아직 영어 조기교육이 일상화되지 않은 시기였으니까요. 경쟁지향적인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개인의 게으름과 무능력 때문이라고 치부해버립니다. 우리 사회가 백수와 백조를 바라보는 시각을 생각해보세요. 그런 점에서 일찍이 영어 공부를 해두면 성공하기 쉽다고 생각하는 남기한의 생각은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흐름을 보여주는 결이 됩니다. 그래서 이 웹툰은 현재 20대 후반, 30대에 접어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들 이후 세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남기한의 생각은 엘리트가 되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없거든요. 그래서 공감할 수가 없어요. 이미 모두가 성공하기 위한 룰을 알고 있기 때문에 똑같이 영어교육을 받고, 학원을 다니면서 대비를 한다는 것이죠. 이런 웹툰 비평을 통해 또래세대들에 대한 논의를 다양하게 끌어낼 수 있고, 기성세대들도 , 이 세대가 이런 경험을 겪어왔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Q. 책에 보면 인문 오덕이라는 말을 하셨는데요. 이론을 다루는 학계의 연구와 현실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 중요한 말씀인 같습니다.

A. 단지 저 혼자서 우스갯소리로 쓰는 말인데요. ‘인문 오덕을 무협지에 나오는 무공비급 판타지라고 이야기하곤 해요.

 

Q. 무공비급 판타지요(웃음)?

A. , 흔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판타지를 말해요. 남들은 모르고 나 혼자만 알고 있는 무언가를 몰래 갈고 닦으면 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요(웃음). 사실 저도 학부시절 수업에서 이론적 논쟁을 할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그런 논쟁들이 결국에는 네가 그걸 잘 읽어봤느냐라는 지식의 계보 싸움으로 흐를 때가 많았거든요. 결국 네 계보는 별 거 아니다라는 식의 다툼을 하게 되고요. 이를테면 네 이론은 이런 게 문제다”, “네 이론적 근거는 별 거 아니다는 식의 계보 싸움이 되는 것이죠. 물론 이론적 논의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다 면밀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좀 다른 게 필요해요.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우위를 증명하기 위해 텍스트를 늘어놓으며 아집에 빠져들기보단, 이와 반대로 현실문제와 대면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Q. 그렇다면 지나치게 이론적인 풍토에 빠지지 않고, 현실 문제를 대면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저는 대학원을 다니진 않았지만, 이론적 영역과 현실문제의 간극을 좁히는 방법으로 잡글을 많이 써보는 것이 감각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잡글은 완결된 형태의 글은 아니지만, 블로그나 여러 게시판에 부담 없이 줄줄 써내려갈 수 있는 글이죠. 무엇보다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관심사나 취미가 필요해요. 아무런 취미도 없이 이론적 텍스트만을 읽고 사회문화 연구를 한다는 것, 그런 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이제는 우리 모두가 문화의 수용자이자 생산자이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보다 깊은 취미나 관심을 갖는 게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이런 과정에서 연구의 깊이나 논의의 보편성도 확장될 수 있다고 보거든요.

 

일베현상에 대하여

Q. ‘일베도 루저문화의 정서가 나타나는 공간으로 볼 수 있을까요?

A. 여성혐오적 성향’, ‘진보성향에 대한 적대감’,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심리와 더불어 루저문화의 정서가 일베를 설명하는 중요 요소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루저문화가 일베라는 공간 자체를 대표하는 특성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자신들을 할 짓 없는 키보드 워리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를 두고 정작 일베유저들은 그거 나 아니거든?’하며 스스로 명문대 학력인증을 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Q. 그것도 굉장히 재밌는 현상이네요. 그런데 책에서 일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다카하라 모토하키의 두 가지 내셔널리즘 유형을 언급하신 것을 봤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듣고 싶네요.

A. 먼저 고도성장형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은 고도성장 시기에 대중을 균질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국가를 내세운 내셔널리즘이라고 볼 수 있죠. 이는 우리가 이전부터 흔히 봐왔던 우익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반면 개별불안형 내셔널리즘은 현실에서 집단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서로 욕하고 싸우면서 형성되는 새로운 형태의 내셔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요즘 문제가 되는 일본의 넷우익이 이런 유형의 내셔널리즘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두 내셔널리즘 간의 표현 양상도 차이가 있죠. ‘국가를 내세우던 고도성장형 내셔널리즘이 진지한 게 특징이었다면, 요즘의 개별불안형 내셔널리즘은 유희적인 놀이의 성격이 짙습니다. 사실 저도 개소문닷컴을 보다보면 재미를 느끼는 경우가 있어요(웃음).

일베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의 놀이에서 사용되는 문맥이 사회적으로 볼 때 매우 민감한 차원이기 때문이에요. 이것은 영국 EPL의 맨유 팬들과 리버풀 팬들이 서로의 지역을 비하하면서 싸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맥인 것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축구 경기를 놓고 일시적인 지역비하의 언어를 유희 코드로 사용하는 것이고, 경기가 끝나면 사라지는 것이죠. 그런데 일베가 전라도 출신 사람들을 두고 특정한 은어를 사용하며 비하하는 것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이는 이전부터 정치적 논란거리였던 호남 차별과 같은 이슈로 자연스레 연결이 되고, 급기야 한국의 민주주의라는 광범위한 사안으로 번지게 됩니다. 문제는 아마 일베유저들은 이러한 메커니즘을 잘 몰랐을 거라는 거죠.

 

Q. 일베 유저들이 단순히 유희하는 것이라고 보시나요?

A. 일베라는 공간에서 나타나는 행동 패턴은 두 가지 정도가 있는 것 같아요. 첫째는 말 그대로 놀고 있는 것이죠. ‘일베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그러한 이야기가 확대 재생산 되면서 외부에 퍼지잖아요. 그런데 외부에서 화를 내면 뭘 그리 심각하게 반응하나?’ 하면서 놀이를 멈추지 않거든요. 바로 이런 것이 일베의 패턴 중 하나라고 보고요. 두 번째는 일베 이용자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스스로 사실 검증을 내세워 과격하게 행동하는 거예요. 이 두 가지 패턴이 한꺼번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일베라는 공간이 출현하게 된 배경입니다. 디씨인사이드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유머코드들, 예를 들면 저질스럽고, 과격하고 선정적인 패러디가 들어있는 게시물들을 수용하기 위해 생겨나는 사이트라는 것이죠. 일반 네티즌들이 느끼기에 과도한 표현을 일베에서 드러나잖아요. 아마도 일베에서 활동하는 당사자들은 외부에서 자신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두고, 취향에 대한 탄압이라 생각하는 부분도 있을 거라고 봐요.

 

Q. 일베를 파시즘으로 보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물론 일베라는 공간이 유럽과 일본의 넷우익에서 볼 수 있는 선진국형 극우파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죠. 그렇지만 한편으로 일베를 파시즘의 전조로 본다면, 한국사회가 언제나 파시즘의 전조였던 것은 아닐까요. 과거 7-80년대 군사정권 시절의 한국사회도 국가가 주도하는 고도성장형 파시즘의 전조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많잖아요. 무엇보다 일베라는 공간이 아직 정치적으로 그만큼의 영향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Q. 마지막으로 잉여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 청년세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A. 현재 청년 세대에게는 자기의식이 필요해요. 대체로 취업도 안 되고, 돈도 없고, 결혼하기도 어려운 자신의 처지만을 이야기할 뿐, 자신이 왜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간 청년 세대에 대한 글을 기고하면서 느낀 점이 있는데요, 현 세대는 남의 영역을 잘 모르는데다가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 같아요. 386세대를 예로 들면, 당시에는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 가난한 집에서 자수성가 해 스스로 명문대에 입학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렇다보니 소득수준이 다양한 사람들이 섞이면서 세대 내에서 공유하는 의식이 평등했던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요즘은 다른 것 같아요. 지금 세대는 같은 학교라는 집단 안에서도 평준화 되지 못하고, 격차가 존재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어떤 행동을 보이라는 것은 아니에요. 걷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뛰어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내가 처한 현실은 왜 그런 것일까?’라는 질문을 형성하고, ·외적으로 많은 논의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현실과 꿈을 타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한탄과 자조에 머물게 아니라, 내가 처한 현실이 왜 이러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스스로 생성해 내는 것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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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3. 4. 15. 17:26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지난 20여 년 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변화와 낙차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성, 죽음, 공동체, 정치, 사랑 등 최근 인문학계 화두를 가지고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을 찾아 나선다. 이 인터뷰는 정동(affect)과 공동체(commune)에 관한 이론을 공부하는 연구모임 ‘aff-com’(아프-)이 발간하는 아프-꼼 총서’ 1권에 대한 압축적 이야기이다. 


 

 

 

서문에서 한국사회의 여러 가지 변화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정동이론을 참고하셨다고 밝히셨는데요. ‘정동이론이 무엇인가요?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논의들이 서로 의식하지 않은 채 모이면서 정동이론은 거대한 전환을 이루고 있어요. “사람들이 누군가와 이어져 있음(결속)/없음(결속의 부재)이나, 어딘가에 소속됨과 같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을 이론의 어휘로 정동(affect)이라고 하거든요. 나아가 정동적 전환(affective turn)이라는 말은 <가상계>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의 연구로부터 비롯되는데요. 여기서 정동 연구는 일종의 신체에 대한 새로운 유물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인간의 신체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인터페이스, 즉 우리의 삶과 세계를 구성하는 많은 신체들이 결합되면서 형성하는 관계들과 그 안에서 촉발되는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고찰하기 위한 방법론이에요. 한 사회의 변화 또는 방향에 대해 낙담하거나 환멸을 느끼는 게 아니라, 그 시대를 이루는 정동의 움직임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죠.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은 그만’NO MORE FEMINISM의 집단 정서와 또 다른 페미니즘’ another feminism을 향한 미력한 시도들 사이에서 공전하고 있는 중이다.”

 

책에서는 그러한 정동이론을 여성의 삶에 가장 먼저 대입하셨는데요, 페미니즘의 정치적 함의와 연결시켜본다면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요.

요즘에는 새로운 삶을 위한 실천적인 노력들과 지속 가능성을 탐색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작업들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버렸어요. “아직도 페미니즘이냐?”라고 되묻는 상태인데요. 사실 아직도 다른 방식의 삶을 자기 삶의 문제로서 실천하고, 실험하고, 모색하고, 지속해보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이들은 정치적 실천의 실패를 마치 자기 삶의 실패인 것처럼, 마치 벌을 받듯이 받아들이고 있어요. 새로운 형태의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연합)을 통해서 자기 삶의 변화를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연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해요. 그런 연대가 바로 보호고치(cocoon)’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게 없죠. 여성가족부나 제가 페미노크라트라고 표현했던 소수 권력화된 페미니스트들의 이미지가 과도하게 강조되면서 페미니즘이 세력화되었다는 부정적인 인식만 갖게 되는 것 같거든요.

 

혼자 사는 여성들의 생존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은 결국 보호고치가 없는 사회에서 내가 세계와 맨몸으로 대면해야 한다는 위기의 결과이기도 한데요, 그런 감정을 한국 전쟁 직후 폐허의 순간과 연결해주셨어요.

현재 한국 사회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상상적인 자기 이미지는, 깜깜한 세계 속에 혼자 서 있는 모습과 같아요. 자신을 가릴 최소한의 옷이나 보호막도 없이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세계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는 형상이죠. 여기서 만들어지는 불안감은 아무 것도 날 방어해줄 수 없다는 절체절명의 불안감이에요. 오늘날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은 분단체제의 특성들, 정치 차원의 이미지 조작, 그리고 전쟁의 원형적 기억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이런 것들이 개인들을 폐허 앞에 끝없이 노출시키고 있죠.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재의 안전을 느끼고 보장 받을 권리가 있잖아요. 그런데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사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어요. 그게 경제적인 경쟁체제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회와 시스템을 유지하는 통치성의 문제일 수도 있죠. 사람들의 존재론적인 안전을 계속 위협해서, 뛰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드는, 그런 점에서 너무도 가혹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만 그런 걸까요?

저는 그렇다고 봐요. 이런 현상은 1·2차 세계대전 사이에 만들어진 역사적 파시즘 체제거든요. 당시 독일, 이탈리아, 일본과 같은 파시즘 동맹국에서는 서로를 미분화해서 적대하고, 그 적대를 강화하기 위해 경쟁체제를 심화시키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어요. 이러한 경쟁 시스템은적대적인 집단들을 절멸하고 자신은 살아남는 자발성의 구조를 만들어요. 하지만 위의 국가들이 패전하면서 이 경쟁 시스템 역시 강제적으로 없어져야만 했죠. 제가 지금 연구하는 풍기문란법도 통치를 하는 시스템, 즉 풍을 다스리는 시스템인데요, 이 법이 1920년대 파시즘 체재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에요. 대개의 경우 사회적 적대로 이루어진 불안정한 시스템의 발생 원인으로 신자유주의를 말하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해진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냉전체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국은 1995~1996년도에 시작되려고 했던 탈냉전을 경험해보지 못한 채 IMF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에 바로 진입했거든요. 결국 한국 사회에서는 탈냉전의 과제인 파시즘적 구조화와 단절할 수 있는 계기도,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계기도 없었다는 말과 동일하죠. 따라서 오늘날의 경쟁시스템을 보다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막연한 의미의 신자유주의 대신, 한국 사회 고유의 구조와 역사를 보는 작업이 매우 중요해요.

 

한국 사회의 불안정한 시스템으로 모두가 신자유주의만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상황에서라면, 그런 본래의 시스템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겠네요.

본래의 시스템을 아는가의 여부보다는 그것을 새로운 문제 틀로 전환시켜서 접속시키는 게 중요해요. 예를 들면, 이번 대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SNS에 대해 분석했잖아요. 그 결과 “SNS가 진보정치의 것이 아니었나?”라는 이야기들이 무성했지만, 더욱 중요한 건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비율이 50% 이상 꾸준히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목욕탕, 등산 등 끼리끼리 모이는 아줌마 네트워크들은 70년대 새마을 운동, 나아가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애국반 조직들, 청년 조직들, 부락 조직들로부터 생성된 거예요. 박정희 체재를 지나면서 지역단위에 뿌리를 둔 작은 네트워크들을 통해 사회를 재구조화하는 작업들이 생겨난 거죠. 사실 우리는 SNS와 같은 새로운 네트워크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한국 사회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그물망들이 무엇인가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리고 그 기저에는 문화가 없다고 생각하죠. 보수적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에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문화가 있고, 욕망이 있거든요. 물론 그 네트워킹 안에 들어가는 게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어서 분석이 쉽지는 않죠. 한국사회의 고유의 구조들을 보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적 시각 이전에, 보다 새로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거예요.

 

죽음을 묻는 일은 생존을 묻는 일이기도 하다. 너의 죽음은 나에게 슬픔의 공감과, 우정의 연대를 서명하는 일만이 아니라 나의 생존, 그 익숙한 삶의 감각을 심문審問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용산참사나 노 대통령의 죽음을 추방된 죽음이라고 표현하셨는데요. 이러한 죽음에 대한 분노를 다시 정치적인 것, 정치적인 삶으로 끌어오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예를 들면,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다”, “하루에 몇 명이 자살한다라는 통계는 이제 식상해졌어요. 표면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죽음에 둔감해졌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죽음에 감응하지 않는 건 아니죠. 늘 주변에서 사회적 타살에 가까운 자살을 목격하며 살잖아요.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사람도 실제로는 사회적인 어려움 때문에 삶을 마감했을 수 있고요. 어떤 의미로든 죽음이 삶 속에 드리워져 있는 것일 텐데, 문제는 이조차 익숙해지면서 삶의 패턴이 되고 있다는 거예요. 보통 일상적인 삶을 비정치적이고 탈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이야기하는 정치적인 것은 바로 일상에서의 정치적인 것이에요. 자본주의 소유권이나 재개발 문제 등과 같은 대단한 정치의식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 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소박한 삶, 행복한 삶 또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면서 부당하게 죽지 않을 권리에 대한 인식을 말하는 것이죠.

 

벌거벗은 사람들’, 부당하게 죽은 사람들의 존재와 나를 동일시한다는 것은 내가 그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용산참사를 두고 우리도 그들과 같이 벌거벗은 삶이다. 그들의 문제는 내 문제이므로 아픔을 같이 해야 한다는 식의 언설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지식인들의 과도한 자기연민은 자신의 사회적 기반을 명료하게 볼 수 없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죠. <디아스포라의 지식인>이라는 책에서 홍콩학자 레이초우는 위의 경향을 자기의 서발턴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어요. 보통 서발턴(subaltern)은 사회적인 계급 구조에 속하지 않는 하층의 배제된 사람들을 말해요. 물론 미국 주류 사회의 입장에서 볼 때 아시아 혹은 비서구 지역에서 온 학자들은 인종적 소수자들이죠. 하지만 이들은 미국 주류 사회 내에서만 서발턴일 뿐, 자국의 제도 내에서는 기득권을 가지고 있거든요. 지식인들이 나도 철거민들과 같이 가진 게 없다며 정치적인 동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같은 맥락에서 소설을 쓰는 작가도 벌거벗은 삶이다라고 동일화하는 것은 문제라는 얘기를 책에서도 하고 싶었어요.

 

한 시대의 가족 서사는 그 사회 구성원들에게 내재된 기원에 대한 인식과, 인간적 결속, 혹은 결속의 기준으로서 인간적인 것에 대한 이념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바로미터이다.”

 

가족이 민족을 상상하는 기본단위가 되거나 사회, 공동체에 대한 상상과도 연계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노동, 재생산, 공동체에 대한 감각이라는 차원과 가족서사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제가 쓴 <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책에도 나와 있지만, 근대체제에서 인간이 세계와의 결속을 상상하는 원초적인 모델은 가족서사를 통해 나타나요. 사실 저의 최근의 관심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자살률의 증가와 출산율의 저하인데요. 사실 자살률이나 출산율이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홀로코스트 이후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자살이 큰 문제가 된 적이 있어요. 장 아메리(Jean Amry)자유죽음, 헝가리 출신의 노벨문학상 작가인 임레 케르테스(Imre Kert eacute;sz)청산이라는 표현으로 자살을 대신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몇 명이 태어나고 죽고 사고가 났다는 것을 인구통계학적으로만 이야기해요. 한 인간의 실존, 그 속에 담긴 생과 삶을 보는 게 아니라요. 매우 가혹한 사회죠.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는 재생산을 거부한다는 일종의 switch off 상태를 말해요.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 스위치 오프의 상황을 파시즘 사회와 연결시킨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파시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재생산 기계로 만드는 거예요. 한국에서 여성과 남성은 인간이라는 의미 대신, 생산과 재생산 도구로서의 의미밖에 없거든요. 일본의 파시즘을 비판한 대표적 학자인 후지타쇼죠(藤田 省三)가 이야기 했듯, 파시즘 사회는 주어진 시스템을 훌륭히 재생산하는 매트릭스에요. 그동안 파시즘 사회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저항들이 있었지만, 자살과 출산 거부는 매우 극단적이고도 파격적인 형태의 저항이죠. 재생산을 멈추면 이 세계는 멈출 수밖에 없거든요. 단지 아이 셋을 낳으면 돈을 주겠다와 같은 정책으로 해결 될 문제가 아니에요.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운영방식을 보지 않으면 스위치는 계속 꺼지도록 되어 있어요. 이 스위치 오프 상황은 최근 다양한 문화생산물에서 나타나는 자기폐기적인 방식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아무리 파괴적인 영화라고 할지라도 마지막 장면에는 하나의 씨앗, 추억, 생명 등 미래로 이어지는 무언가를 반드시 남기거든요. 그런데 최근 한국 사회의 문화생산물은 그런 것들이 전혀 없죠. 저는 <마더>, <박쥐>, <똥파리>와 같은 작품들을 보면서 자기 폐기의 양상들, 여기서 그냥 끝내버리는 것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이런 상황들이 재생산 기계를 멈추는 현상과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이고, 그 기본 플롯이 가족 내러티브인 것이죠.

 

“‘자영의 환상은 노동자에 자기지지 기반을 두었던 참여 정부와의 전략적 차별화의 소산인 동시에, 노동자, 페미니즘 여성 등 기존의 집단적 주체성에 대한 피로감에 젖은 집단들에게 효과적으로 호소하는 대중정치 차원의 선동이다.”

 

많은 유권자들이 이명박 정부를 지지한 이유가 자영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자영의 문제는 앞으로 연구할 중요한 주제 중 하나에요. ‘자영(自營)’은 자기 삶을 자기가 가꾸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말해요. IMF 이전, 소위 잘 나가던 시절의 사람들은 자영이 아닌 벤처에 대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 자영의 판타지는 IMF 이후 대기업, 벤처 등 기업구조의 몰락과 함께 불가능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 판타지에는 희망이 있고, 그 희망을 전유하는 것이죠. 이는 성장의 이데올로기 판타지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알다시피 한국전쟁 이후 폐허의 상태에서 시장에 펼친 좌판이 작은 가게가 되고 오늘날의 국밥집, 자갈치 할매집으로 이어져 왔는데, 바로 이런 것들이 한국 사회 발전의 초석이 되었죠. 요즘 흔히 말하는 한강의 기적’, 그 뿌리에 자리한 것도 자영의 판타지거든요. 하지만 자영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할 수 밖에 없었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 계속된 경제성장에 대한 판타지는 자영의 판타지에 내포된 희망을 전유하는 양상이라고 생각하고요, 이후의 작업들을 통해 좀 더 하고 싶은 얘기들이 있어요.

 

그런데 왜 지금 다시 파시즘을 고민해야 하나요. 그런 고민을 통해 어떤 대안을 제시해야 하나요?

저는 현재 파시즘과 관련해서 불안의 문제를 얘기하고 싶어요. 특히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이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구조화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낙차를 잘 보여줍니다. 영화 <야생동물보호구역>을 보면 한강에서 자살한 시체를 꺼내어 지갑을 털어 사는 사람인 악어가 등장해요. 한강이 있고, 한강변 저 쪽엔 실제 동네이지만 신기루처럼 느껴지는 강남의 빌딩들이 배경으로 나타나죠. 악어는 강남의 반대편에 있고요. 그런데 한강변 저 쪽이 쪽’, 이 둘 사이를 잇는 다리에서 사람들이 끝도 없이 강으로 떨어지고 있어요. 이런 내용이 한국 사회의 파시즘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구조화하는가를 매우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파시즘 사회는 적대를 구조화해서 건널 수 없는 간격들을 만들어 놨거든요. 게토의 주민이 된 한강변 이 쪽 사람들은 저 쪽으로 절대 넘어갈 수 없어요. 저 쪽으로 건너가지 않으면 모두가 이쪽에서 죽거나, 죽은 자에 기생해서 살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든 죽은 자의 시체를 밟고서라도 저 세계로 넘어가야 해요. 그래서 삶과 죽음’, ‘게토’, ‘반경이라는 게 핵심적인 용어죠.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불안이라는 정동은 바로 이러한 구조에서 생기는 거예요. 이러한 불안은 자책감을 동반하고 계속해서 자기폐기를 양산하죠. 심지어 강남 사람들조차 강남이 신기루라는 것에 대한 불안에 휩싸여 있어요. 기득권층은 자신이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정상인데, 가진 사람들조차 이런 구조에서는 모두 다 무너지는 거예요. 결국 모두가 불안한 사회에서는 증오가 싹트게 되는 것이죠.

사랑은 잃어버린 열정을 되찾는 유일한 길이며, 안전한 장벽 대신 너에게로 열린 위험한 길을 내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랑윤리 주체’,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요. 사실 사랑하기엔 너무 불안한 존재가 대학원생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바디우는 사랑과 예술이 인류의 진리공정이다라고 얘기해요. 사랑, 예술, 발명이 똑같다는 의미죠. 인류는 본래 자신이 가진 물질적 기반으로부터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에너지와 열정, 능력, 잠재성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것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을 얻은 거예요. 삶의 지속가능성에서 본다면, 대학원생들이 하는 새로운 지식 추구의 활동들은 상당히 문제가 많잖아요(웃음). 대학원생이하는 사랑이 단지 대학원생이기 때문에 어려운 게 아니라, 직장인과 같은 일반인들이 하는 사랑의 방식과는 다르기 때문에 어렵다고 하는 것이죠. 함께 밥을 먹고 공부하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들의 사랑이 일반인들이 맺는 사랑의 관계방식과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생들이 코뮌(commune)을 만들어서 우리도 예술을 하고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어도 좋을 것 같네요.

현재는 그런 의미의 자기 조직화자기 가치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학원생들이 하고 있는 사랑은 드라마에 나오는 특별한 연애도 아니고, 기념일을 챙길 수 있는 보통의 연애도 아니죠. 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특유한 무언가를 만들고, 또 만들 수밖에 없는 조건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을 의식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애도 급진화 할 수 있는 거죠. 주류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들의 연애는 항상 결여되고, 부족하고, 모자란 것처럼 생각되지만, 역으로 다른 것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될 수도 있잖아요. 사회는 계속해서 자기 삶의 가치를 얘기할 수 없도록 그렇게 수세로 몰아가고 있거든요. 그렇기에 여럿이 함께 자기 삶의 가치들을 인정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나 기반, ‘보호고치’, ‘다메이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인생은 자기 책임이다라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aff-com은 우리의 신체가 그 자체로 다른 존재, 다른 것들과 정동됨을 배울 때만이 가능한 그런 접촉면이라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aff-com의 이론과 실천은 이러한 인터페이스로서의 삶-연구-글쓰기의 실험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학문의 식민성도 심하지만 지역성 문제를 무시할 수 없잖아요. 부산에서 대안적인 연구공동체 ‘aff-com(affect+commune)’을 하시면서 어떤 즐거움이나 어려움이 있으셨나요?

아프콤이 인문·예술중심의 대안적 모임을 지향하게 된 건 저의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저는 이 지역에 연고나 기반이 없는 순전한 뉴커머이고 일 때문에 이주한 사람이거든요. 이 사회를 다시 저의 새로운 사회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비정규직 연구자로 살 때 겪었던 어려움들을 잘 알기 때문에 서울에서 했던 연구 공동체나 학술운동들을 함께 해보고 싶었어요. 연구나 작업들은 기존에 제가 가지고 있었던 네트워크들 속에서도 진행하지만 그곳과는 달리 새로운 논리와 방식으로 진행되는 여기만의 세계를 만들 필요가 있거든요. 물론 힘들기도 하지만 보람이 있죠. 좀 비관적인 얘기지만, ‘내가 평생 여기에 있어도 이방인으로 있겠구나라는 현실적인 전망도 해요. 기반이 전혀 없기 때문에 외롭거나 미래가 안 보일 때도 있거든요. 아프콤이 저에게 그런 기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저희 팀원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프콤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날 기회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지식인으로서 관성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주말에도 불이 켜진 연구동을 보며 다들 무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나도 선생님처럼 살고 싶다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그건 선생님이 되었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이겠지하며 한숨을 쉴 때도 있고요.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제가 어떤 얘기를 하던 사실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가 될 뿐이라 참 어려워요. 오늘날 연구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것을 제가 다 가늠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일단 현실 논리를 따져봤을 때 인풋 대비 아웃풋이 가장 분명한 게 공부예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솔직한 노동이자 단순한 노동이라고 생각하고요. 또 한 가지, 공부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걸고 있는 게 분명히 있거든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도 확신 할 수 없지만, 사실 우리가 하는 공부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투여되고 있나요. 그렇기에 공부를 한다는 건 단지 개인적인 동기나 호불호로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부를 포기할 수 없고 그 가운데서 의미를 느낀다는 것, 그리고 그 의미들을 사회적·현실적으로 찾아가고 또 만들어 가는 것이 공부를 계속 하게 만드는 추동력이지 않을까요. 그 속에서 자기 확신과 열정이 상승하며 형성되거든요.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가치를 만들어내고 담론화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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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3. 1. 8. 15:08

 

왜 웃느냐고요? 좋아하니까!

 

이요셉 (한국웃음연구소 소장)

 

인터뷰 및 편집 김아영

 


웃다보면 행복해지고 좋아하는 것을 하다보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 성공 스토리에서 늘 반복되는 일종의 ‘트루이즘(truism)’. 즉 뻔한 소리다. 그러나 그 뻔한 이야기가 구체적인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에 녹아든다면 그리 뻔하지만은 않다. 한편 같은 말을 시간차를 두고 반복적으로 듣게 되면 나중에는 ‘그게 그런가보다’ 하게 되는 게 인간이다. 허허허 하다보면 ‘정말 즐거운가보다’ 하게 되는 것도 우리의 뇌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가장 잘 증명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세상에 이렇게 긍정적인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정말 있었다. ‘하하하’라는 의성어를 괄호 안에 넣기가 무색할 정도로, 대화의 절반이 웃음이었으며 웃다가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본 인터뷰는 인터뷰이를 긍정바이러스라는 열쇳말로 녹여낸, 보통의 자기계발서와 맞먹는 하이 테크놀로지다. 이 고급기술에 당신은 알고도 당하리라.


 

경영학과를 졸업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웃음이라는 키워드에 몰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공부를 안 했습니다. 당연히 학점도 안 좋았고요. 대신 사회생활을 많이 했어요.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 해서 옷 장사, 신발 장사 이런 저런 장사들도 해보고 백화점에서도 일 했었죠.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요. 그렇게 대학생활을 보내고 졸업한 뒤 회사에 원서를 썼는데 다 떨어지더라고요. 학점이 안 좋으니 그럴 수밖에요. 그러다가 어떤 분을 알게 됐는데 그 분이 병원에 와서 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셨어요. 경영학과 전혀 관계없는 일인데 내가 그 곳에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그 병원이 암환자를 위한 병원이었거든요. 아픈 분들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에 문득 대학 때 레크리에이션을 했었던 게 떠올랐어요. 이것을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간단하게 활용해봤거든요. 예를 들면 이렇게요. “자, 박수 세 번 해보세요. 시작!” 하면 환자들이 같은 박자로 짝짝짝 해요. 이어서 “그럼 박수 다섯 번 해보세요.”라고 주문하면 또 똑같은 박자로 다섯 번을 쳐요. 그런데 박수 다섯 번을 이렇게 보여주는 거예요. 짝짝 짝짝짝 마이너스 짝. 이렇게 했더니 환자분들이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 그 이후로 이분들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한 본격적인 웃음과 유머 연구를 시작했어요. 혼자 공부 하고 있었던 저를 위해 병원에서 작은 대체학과도 만들어주셨고요. 덕분에 책들을 사 보면서 점점 실력이 쌓이기 시작했죠. 그러던 중 ‘웃음은 운동’라는 것을 고안하게 됐어요.

 

‘웃음이 운동이다’를 어떻게 가르쳐주셨나요?

운동은 아침, 점심, 저녁 언제든 할 수 있잖아요. 늘 웃을 수 있는 방법을 만들게 된 거죠. 거울을 봐도 하하, 땅을 봐도 하하, 그냥 미친놈이 되는 거죠. 누구 웃겨주려고? 암 환자들 웃겨 주려고요. 병원에 들어갈 때도 길게 웃었어요. 연습하는 과정이었으니까요. 저는 웃음이 유산소 운동이라는 것을 가르쳐줬어요. 웃으면 심장과 폐가 튼튼해지고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장 운동이 돼요. 사실 개그콘서트 보고 웃는 거나, 혼자 웃는 거나 똑같아요. 우리 뇌는 진짜 웃음과 가짜 웃음을 구별하지 못하거든요. 웃고 나면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해요. 관계가 가까워지고요. 재밌는 사실을 하나 알려드릴게요. SERI에서 CEO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나 했는데요, 85%가 넘는 CEO들이 유머가 있는 사람, 표정이 밝은 사람을 채용하겠다고 했어요. 이게 뭐냐면, 그 사람 마인드를 본다는 거거든요. 제가 하는 것은 그냥 웃는 것이었어요. 한 번 보여드릴게요. 지금 운동하는 거예요. 뭐 한다고요? 운동! 피부가 좋아지고 혈액순환이 좋아지는 운동이에요. 먼저 한 단어를 길게 하는 게 좋아요.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거 보세요. 지금 어이가 없어서 웃고 있잖아요? 그런데 재밌는 게 뭐냐면 지금 운동을 했거든요. 이제 “아 좋다” 한 번 해보세요. 기분이 어때요? 좋아지죠? 바로 이거예요. 이 기분으로 공부를 하는 거예요. 시험을 치는 거예요. 면접을 보면 어떨까요? 떨어질 수가 없죠.

 

그런데, 그렇게 정신없이 웃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되레 무서워했을 것 같은데요?

제가 막 웃으면 의사나 간호사들이 지나가다가 그 웃음소리를 듣고는 무슨 좋은 게 있는가 싶어 문을 열어보곤 했어요. 그런데 제가 웃음을 연구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이상한 사람 취급 받지는 않았고요. 제가 왜 이야기를 하냐면, 지금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이 말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12번도 넘게 등장했다). 저는 매일 웃는 것을 100일 동안 연습했어요. 그러다보니 자신감이 생겼고요. 웃음은 바로 자신감과 연결되어있어요. 옛날 장군들이 장수를 보자마자 제일 먼저 웃는 이유가 그런 거죠. 상대를 기선제압하기 위해서도 그랬지만, 사실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떨쳐 내기 위함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말 중에 ‘웃어버린다’는 게 있잖아요. 자신감이 없으면 어떤 것도 할 수 없어요. 유머는 마음에 여유를 만들어주고요, 그 사람 안에서 힘 있는 자신감을 만들어 줍니다.

 

웃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짓는 표정 중에는 무표정이 가장 많거든요.

맞아요. 그런데 보세요. 사람의 첫인상은 4초 만에 결정된다고 해요. 상대방을 보자마자 무의식에서 그 인상을 찍어버리거든요. 한국인들의 무표정은 심각하죠. 외국인들은 볼골대가 올라가 있어서 가만히 있어도 웃는 표정이거든요. 우린 반대에요. 가만히 있으면 화난 것 같죠. 그런데 이 첫인상을 바꾸려면 200시간이 필요하대요. 우리가 면접하러 갈 땐 어떻게 하죠? 자, 문을 엽니다, 들어갑니다, 앉습니다, 앉아서 면접관을 봅니다. 이 과정만 해도 벌써 4초가 지나가요. 사람들은 상대를 볼 때 가장 먼저 자세와 얼굴 표정을 봐요. 웃는 표정이 정말 중요하지 않나요?

 

선생님 성격이 원래 그렇게 낙천적이고 적극적이신가요?


아뇨.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동네 슈퍼마켓도 혼자 못 들어갔던 사람이에요. 일로 만날 땐 전혀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누굴 만나면 굉장히 어려워요. 내성적인 성격 때문이죠. 그렇지만 지금 성격테스트를 해보면 외향적으로 나와요. 훈련을 하다 보니 성격도 바뀌더라고요.

 

연구기간은 얼마나 걸리셨나요? 이런 저런 책도 엄청나게 보셨을 것 같은데요.


웃음과 유머와 관련된 책이라면 다 봤어요. 10년 동안 1억 정도 썼죠. 정말 관련된 것들은 다 본거예요. 레크리에이션, 유머 세미나 좋다는 데는 다 가보고 다 배웠어요. 그런데 공부하다보니 사람 마음을 또 알아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심리학도 공부하고 심지어 영성까지 봤죠.


 

 

기분이 좋아지는 방법이 있을까요?


네, 제가 하는 방법이 있어요. 매년마다 하는 건데 보통 사람들은 이걸 안 해요. 근본적인 것부터 질문해봅시다. 제가 왜 병원에서 그런 일을 했을까요. 스펙을 얻는 것도, 월급 받는 것도 아니었어요. 제가 왜 암환자들을 웃기려 했을까요? 좋아서요. 자, 중요한 것 세 가지가 있는데요. 일단 좋아하는 것을 적어보세요. 남자친구 사귀는 거, 영화 보는 거, 좋아하는 책 다 적으세요. 100개를요. 두 번째는 하고 싶은 것을 적어보세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적으면 어떻죠? 기분이 좋아지죠. 좋아하는 것을 적으면? 역시 기분이 좋아져요. 마지막으로 되고 싶은 것을 적어보세요. 이건 많이 나오지는 않아요. 이제 이 세 가지 영역, 즉 정말 좋은 것,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에서 각각 10개씩 골라 점수를 매겨보세요. 공통분모가 나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선생님은 어떤 것을 적으셨나요?

저는 작년에 판소리, 영어 등 몇 가지를 적었는데 실행에 옮기기 위해 목표를 정했어요. 목표 정하기, 이게 왜 중요하냐면. 자기개발서 작가로 유명한 구본형씨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좋아하면서 돈도 많이 받는 일은 선택하기 쉬운 게 아니라고요. 젊은 나이에서 그런 삶을 누리려면 재벌 2세 아들 아니거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택할 수가 없죠. 차선으로 돈은 별로 못 벌지만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잖아요? 이건 시간이 좀 더 많이 걸리지만 아웃라이어에서도 이야기했듯, 시간이 투자가 되어야 프로로 인정을 받죠. 그런데 사실 프로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은 10년까지는 안 걸리고요 5년, 더 빠르면 3년 정도 걸린다고 봅니다.

 

3년만 완전히 미치면 된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완전히 미쳐야 하죠.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은 벌지만 좋아하지 않는 일을 택해요. 그래서 구본형씨는 돈은 좀 적게 벌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하죠. 저도 좋아하다보니 그게 제 일이 됐어요. 많은 사람들은 대학에 들어갈 때 부모나 선생님이 정해주는 과를 가요. 본인이 정한다고 해도 지금 뜨고 있는 과에 들어가죠. 졸업은 5년, 10년 후에 하고요. 졸업하고 나면 또 다른 게 유행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좋아하지 않는 것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뻔하지 않나요? 좋아야 에너지가 나오고,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붙기 때문에 바로 여기서 전문성이 나오는 거예요. 세상은 어떻게 바뀔 지 아무도 몰라요. 삼성도 위기설이 있고요, 애플도 마찬가지잖아요. 대기업이 그렇다는데 하물며 개인은 말할 것도 없어요.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뿐이에요. 좋아 하는 것을 하는 것이죠.


논문 쓸 때도 마찬가지겠지만, 정말 좋아한다고 좋아하는 것만 써도 될까요?

제가 경영학을 공부했는데 그 전체 중에 딱 하나가 기억에 남아요. 바로 ‘파워’입니다. 어떤 집단이든 리더가 있고, 일반적으로 소속된 사람들이 있죠. 그런데 누가 파워를 쥐고 있느냐는 거예요. 당신의 파워를 알 수 있는 방법, 딱 한 가지 질문을 해보면 알 수 있어요. 본인이 빠지고 보면 알아요. 내가 빠졌는데 조직이 잘 돌아간다는 말은 나라는 사람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기 쉽다는 거죠. 그렇다면 나에 대한 파워는 약하다고 봐야 해요. 파워를 쥘 수 있는 방법은, 돈은 원하는 만큼 못 가지더라도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다는 거죠. 저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들을 많이 하거든요. 1년에 하나씩 배워나가는 데, 그러다보니 창조를 할 수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볼게요. 판소리를 배우면 장단을 배우잖아요. 이걸 비트박스와 조합했더니 굿거리 비트박스가 되더라고요. 전혀 다른 게 나오죠.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것. 이건 좋아하는 것을 가질 때 만들 수 있어요. 다른 쪽에서 볼 수 있는 안목과 관점도생겨나고요.

 

페이스북에 올라온 동영상 잘 봤습니다. 헐리웃에서 판소리 공연 하는 동영상 말이에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 시간만큼은 “내가 바로 헐리웃 스타다”하는 생각으로 노래를 하시더라고요.


네, 그런데 문제는 제가 영어를 못한다는 거였어요. 올해 초 미국에 갈 때만 해도 아예 못했었거든요. 그래서 생각을 바꿨죠. 실패하자. 제 목표가 ‘실패하자’였어요. 공연을 잘 하자가 아니었죠. 실패했던 것을 나만의 스토리로 삼자는 거였어요. 그러자 걱정이 사라졌어요. 보통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잘 하자’, ‘완벽하게 하자’고 하지만, 처음부터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가서도 이렇게 했어요. “저는 한국의 이요셉입니다. 저를 따라해 보세요.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이렇게 하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이가 없어서 낄낄낄 웃죠. 이런 일들을 통해 배운 게 뭐냐면, 사람들은 ‘영어를 잘 하는 완벽한 나’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즐거운 마인드를 줄 수 있는 나’를 필요로 한다는 거예요.

 

오, 그런 자신감이 헐리웃 공연을 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나 보네요.

아뇨, 자신감이 있어서 한 건 아니에요. 그 때도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옆자리에 외국인이 앉아 있었어요. 영어로 말을 걸까 말까 13시간을 고민하다 말 한마디 못 해보고 그냥 내렸거든요. 정말 가슴이 떨려서 입을 못 떼는 거예요. 그게 저의 원래 모습이에요. 즉 타고난 자신감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 넌 영어 잘하지만 난 한국말 잘 한다.’ 안 되면 한국말 하고 오겠다는 거예요. “여러분~” 하고 오는 거죠. 생각을 바꾸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강의 중간에 하면 사람들이 굉장한 도전을 받아요.

 

 

선생님은 강의하실 때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시나요?

저는 웃음에 대한 강의를 하지만 웃기기 위해서 가는 건 아니에요. 어떤 관점과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러 가는 겁니다. 강의는 재밌어야 하지만 재미만 있으면 안 돼요. 싸이가 왜 떴나요? 재미와 웃음이 없었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어림도 없는 이야기죠. 싸이보다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나요. 싸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확실히 집어넣었어요. 흥, 춤, 이런 것들이 싸이의 강점이죠.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별 차이가 없다면 강점을 발휘하지 못해요. 앞으로 어떤 일을 진행 해나갈 때 나만이 좋아하는 강점을 하나 만들어줘야 해요.

 

그런데 안동출신이시던데요. 안동은 유교의 본고장 아닌가요?

유교적인 게 아주 강하죠. 저는 안동에서 본다면 완전히 미친놈이에요(하하하). 게다가 전 안동 토박이고요, 재수하러 서울에 처음 올라왔어요. 안동은 크게 웃는 것에 대해 금기시하는 게 있어요. 철저한 유교문화죠. “크게 웃으면 남자답지 못하다, 체통이 없다”고 해서 크게 웃는 게 문화적으로 잘 안 돼요.

안동에서도 지금처럼 크게 웃으시나요? 아니면 분위기에 맞추시나요?
아니요 분위기에 맞추죠. 물론, 분위기에 맞춥니다(하하하).

 

그렇다면 개발된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웃음과 유머가 마음의 여유를 찾게 해주고 자신감을 만들어 주죠. 그런데 자신감에는 뿌리가 있어요. 저는 이걸 주로 다루는데요. 바로 자존감이에요. 자기를 얼마큼 좋아하는가. 사랑하는가. 자존감은 바로 알아볼 수 있어요. 사실 자신의 점수는 자신이 주는 것이지만, 부모나 주위 사람의 영향을 받아 자라온 점수예요. 이게 그 사람의 인생이 되어버려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그런데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이 있어요. 첫 번째는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거예요. 유머도 마찬가지예요. 따라 해보세요. 비결은? “안 웃겨도 웃는다.” 사람들은 웃긴 이야기를 좋아하죠. 하지만 막상 웃긴 이야기하는 사람은 얼마나 긴장하는지 몰라요. 웃어줄까 안 웃어줄까. 내가 안 웃긴 이야기를 했는데도 웃어주면 기분이 어떨까요? 기분이 좋죠. 이걸 제일 잘 하는 사람이 강호동이나 유재석이에요. 재미없는 상대의 말에도 웃어줘요. “나 이거 알거든?” 하면 상대는 대꾸하지 않죠. “와 이거 진짜 웃기다”고 해야 화답을 해요. 중학교 때 일인데요, 한번은 친구 어머니가 웃는 저를 보시고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이야, 네 웃음은 600만 불짜리다”.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그 다음부터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또 가서 계속 웃었죠. 안동에서 웃음치료를 했던 요인 중 하나가, 친구 어머니에게 들었던 그 한 마디, 자존감을 살려준 그 한 마디였어요.

 

지금 가수 ‘디쌤버’와 왕따 예방, 자살 예방을 위한 청소년 힐링 콘서트를 하고 계시지요.

사실 디쌤버가 소속된 CS해피엔터테인먼트 전창식 사장님이 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오셨었어요. 인연이 된 김에 제가 좋은 일 좀 해 보자고 제안을 했죠. 저는 성인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면 2시간 내내 웃기고 울리고 할 수 있어요. 개그나 코미디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바꾸는 작업을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청소년들은 “너나 웃어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제가 제일 어려워하는 대상이 중고등학생이죠. 다행히 랩이나 비트박스를 배워뒀던 게 아이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힐링콘서트가 좋은 게 뭐냐면, 공연이 끝난 후 디쌤버와 우리 모두가 상담을 해 주거든요. 아이들에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죠. 내년 1월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힐링캠프를 3일간 무료로 진행하려 해요. 아직까지 다른 가수들을 생각하진 못했지만, 아마 기획사도 싫어하지 않을 것 같아요. 이슈가 되니까요. 오늘도 춘천, 대구, 부산, 경주, 여수 이렇게 힐링콘서트 스케줄을 잡아 놨어요.

 

마지막으로 우리 대학원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얼마 전에 전현무씨가 <스타특강쇼>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KBS에 합격하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방송사 면접을 볼 땐 질문이 정해져 있대요. 어떤 프로그램을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선배가 누군지, 왜 좋아하는 지, 이렇게 세 가지를 물어본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떤 프로그램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다 똑같이 대답한대요. 당시 전현무씨 옆에 앉은 사람은 “저는 전 국민 모두가 시청하는 열린음악회를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했대요. 자신은 보지도 않는데 그렇게 이야기 한다는 거예요. 반면 전현무씨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해요. “하루는 공부를 하고 도서관에서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포장마차 주인아주머니를 보게 됐는데, 작은 텔레비전을 쳐다보시며 막 웃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싶어 텔레비전을 들여다봤더니 개그콘서트였어요.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제가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든지 길거리에 있는 포장마차 아주머니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진행자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자 면접관 세 명이 씩 웃더라는 거예요. “합격”이었죠. 본인이 연구하는 분야와 미래의 직업이 연결되는 그 포인트를 찾아보세요. 처음부터 무리하게 접합지점을 만들 수는 없어요. 95%는 비슷하게 가되, 5%는 다른 부분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하루 정도 시간을 다 비워 보세요. 자신만을 위해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재밌는 영화도 보고요. 2~3만원이면 되잖아요? 그러면서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고 상상해보세요. 그럴 때 한 번씩 “씨익” 웃게 되거든요.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날 설레게 만드는 것,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는지, 그걸 왜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거예요. 이렇듯 자꾸 질문을 하다보면 삶 속에서 놀라운 긍정의 힘, 웃음의 힘들이 나올 거예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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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병진 2015.03.09 01:01  Addr  Edit/Del  Reply

      대한민국 해피바이러스 전파자
      신바람나는 세상을 만드는데
      앞으로도 힘이되어 주십시오!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11. 5. 14:42

 

 

인터뷰 및 정리 김아영

 


“오늘날 60억 인류는 미토콘드리아의 세포질 유전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생로병사의 답을 찾는 신성불가침 영역을 스스럼 없이 이야기 하는 <콩고, 콩고>의 저자 배상민(36). SF라는 장르 때문이었을까.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너무도 긴 여행을 선보이는 그의 책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소설은 당대를 반영하는 유산이라 했던가. 다행히도 작가는 자신의 글을 통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을비에 젖는 추석을 앞둔 지난 9월 28일 곤자가 플라자에서 그를 만났다.


 

 

인류 진화의 발생이 콩고라고 주장하는 <콩고, 콩고>는 서기 1만년을 무대로 막을 여는 SF 소설. 이야기는 크게 네 가지 구조로 진행된다. 만년 후 고고학자 이야기, 현재의 ‘담’과 ‘부’의 이야기, ‘율’과 관련한 병원이야기, 마지막으로 의사와 담의 취조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런데 ‘담’과 ‘부’, 그리고 ‘율’이 다 무엇이냐고? 이들은 다름 아닌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다. 먼저 ‘부’와 ‘담’의 이름은 최초의 인류라는 의미를 가진 아담과 이브에서 차용했다. ‘율’은 규칙과 관련된 인물이라 ‘율’이라고 칭했는데, 붙이고 보니 어감이 괜찮았다. 소설에서는 스스로 진화된 인류라고 믿는 ‘부’와 ‘담’이 이야기를 주도해나간다. ‘부’는 유서 깊은 사창가 집안에서 태어난 똑똑한 여자아이. 한편 침팬지보다 못한 IQ 78의 대두 ‘담’은 미혼모의 아들이다. 창녀의 딸이기에, 바보이기에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하는 ‘담’과 ‘부’는 합심하여 세상을 ‘왕따’시킨다. 소외된 이들의 입장에 서서 현실에 대해 과감히 맞서는 소설, <콩고, 콩고>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다. 한 번 읽어보시라.)

 

<콩고, 콩고> 소설 이름이 특이하네요. 연거푸 발음하면 할수록 말맛이 귀여운데요, 뜻이 궁금합니다.

“인류의 기원은 아프리카 기원설이 정설이죠. 네이버와 네셔널지오그래픽에 의하면 콩고라는 땅에서 인류가 지속적으로 탄생한다고 해요. 아프리카에서 인간의 프로토타입들이 등장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최종적으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출현했다고 하거든요. 어찌 보면 성서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가 살았던 땅이 콩고가 아닐까 해서 이름을 콩고로 지었어요. 오늘날 전 세계 60억 인류는 한 명의 어머니에게 수렴이 되고, 이러한 미토콘드리아 모계 유전이 시작된 최초의 무대도 콩고가 아닐까 하고요.

 

펑키음악처럼, 진지한 이야기도 진지하지 않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책을 쓰셨나요? 소설의 분위기가 평범하지는 않던데요. 이를테면 구성 방식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소설의 기술 방식에서 볼 때, 진지한 이야기를 진지하지 않게 하고 싶었습니다. ‘한국문학이 갖고 있는 진지함에 대한 동경 말하기를 굳이 나까지 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있었거든요. 사실 한국문학에 나오는 인간들은 늘 패배하는 사람들이에요. 저는 패배하는 사람들이 아닌, 끝까지 세상에 맞붙는 인간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제 작품을 문학이라고 범주화 시킬 수는 없겠지만 기존에 있는 것을 뭔가 다르게 써보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펑크음악 같은 느낌의 글을 써보고 싶었던 거죠.

 

혹자의 신랄한 비평을 본 바 있습니다. 남성 작가가 웃긴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개그 본능 혹은 로망이 아니냐는 내용이었는데요.
작가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글을 쓴 게 아니기 때문에 딱히 웃겨보고 싶진 않았어요. 아마 펑크음악과 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는 것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일 텐데요. 지금은 ‘달파란’이란 이름으로 영화음악을 하고 있는 강기영씨가 제가 대학교 1학년 시절 ‘삐삐밴드’라는 것을 만들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때 그 음반에 정말 매료됐던 기억이 있어요. 음악 자체는 가볍고 신나는 반면 가사 내용은 너무도 심오하고 해석의 여지도 많았거든요. 저는 시를 쓰듯이, 그렇지만 너무 폼 잡지 않은 채, 또 다른 우리 시대를 이야기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 소설이 펑크음악 가사 같은 그런 심오함 때문에 대중들에게 외면을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콩고, 콩고>와 같은 방식으로 글을 쓰다 보면 비문도 많아지고 말로 재간을 부려야 해서 힘이 들긴 합니다. 다 쓰고 나면 너무 유치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저도 이제부터는 남들처럼 진지한 문체로 써야겠다 싶어요. 예를 들면 박민규씨도 처음엔 굉장히 웃기는 글들을 썼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진지 모드로 돌아가는 것을 봤어요. 그도 약간은 제가 느꼈던, 그런 괴로움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입니다.

 

소설은 당대를 반영하는 알레고리어야

 

<콩고, 콩고>는 픽션입니다. 그렇지만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사실 ‘읽기’에 따라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허구도 실제 세계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저는 모든 역사소설이 어떤 알레고리를 따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당대를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이거든요. 사실 현재를 반영하지 않는 소설은 의미가 없다고 봐요. 마찬가지로 미래를 그리는 것 또한 지금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현실을 어떤 식으로 반영할 것인가 하는 거예요. 저는 특히 고고학자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구조적으로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인 ‘담’과 ‘부’는 세상 가운데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서 그들이 겪고 있는 현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담’과 ‘부’의 시대적 현실을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현재를 반영하되, 구조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시간을 만 년 정도 벌려놓았던 것입니다.

 

그 구조적인 이야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소설에서 등장하는 병원도 구조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한 알레고리들 중 하나에요. 병원을 통해 사회구조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요, 이를테면 우리 사회의 압축적인 단면과 약간의 이상향들을 병원 안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아주 오랜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는데요(배상민씨는 현재 우리학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1학기 신입생이다), 요즘 생활하다 보면 느끼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 중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은, 서로 손잡는 것에 너무 인색하다는 거예요. 신자유주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개인화를 부추기고 있거든요. 그런 것들의 핵심은 바로 연대를 떨어뜨려 놓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홀로 서 있는 인간은 다루기가 쉽다는 게 함정이죠. 95학번인 저의 대학생활을 돌이켜보면, 그땐 서로 뭉쳐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학생들은 학교에 너무 쉽게 굴복하는 것 같아요. 등록금이 올라도 제대로 된 시위 한 번 못하는 것이죠. 뭉쳐있는 개인은 구조의 지배자들에게 대항하기가 쉬운데, 홀로 존재하는 개인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이런 것들이 구조적인 이야기의 일례라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인간을 자꾸만 개인화시키는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손을 잡으면 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그냥 보여주면 너무 재미없을 것 같아서 저는 소설 속에서 정신병동을 빌려왔어요. 의사가 ‘담’이라는 주인공을 계속해서 심문해 나가는데 그 과정이 ‘담’의 기억 속에서 2000년대의 과거와 자꾸 맞물리거든요. 만년 후 로제타스톤이 인류를 지배하는 정체를 드러내는 과정과도 연관이 되고요. 만년 후 세상, 현재 병원의 세상, 그리고 담과 부가 나왔던 세상, 이렇게 세 개의 브릿지를 이용해 ‘담’의 기억 속의 과정을 넣었던 것입니다.

요즈음 가장 화두가 되는 키워드는 아무래도 대선인데요. 서민복지, 빈부격차, 양극화를 기반으로 보수와 진보담론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콩고, 콩고>는 마치 ‘모두가 잘 사는 사회’라는 이상과는 반대되는 현실을 블랙코미디로 풍자하는 내용 같습니다.


 

이것 역시 개인화와 연관 지어 설명할 수 있는데요. 대선에서 복지보다 더 근본적이고도 시급한 문제는 바로 개인이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거예요. 사실 우리는 잘나지 않았거든요. 내가 잘났다는 것은 한정된 사회 내에서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빼앗아 와야 하는 구조임에 틀림없어요. 이런 일들은 전지구적으로 봐도 그렇고요. 결국 극단적인 개인화의 흐름이 복지에 대한 요구로 수렴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복지에 대한 요구와 열망들은 아래에서부터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철수나 문재인, 박근혜와 같은 대선후보 개개인을 영웅화시켜서 그들이 마치 우리를 구원해 줄 것 같은 메시아적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지난 2002년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통해 메시아를 만들려 했잖아요? 그런데 결국 메시아 스스로가 목숨을 끊는 상황이 벌어졌어요. 결국 인간은 개인 자신이 허약하다는 건 알지만, 서로 손을 잡고 같이 갈 생각 대신 메시아를 통해 구원받으려 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올해 대통령이 누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당선자가 집권 기간 동안 강한 의지를 가지고 일을 한다면 국민들이 원하는 복지를 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과 같이, 또 다시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 당선된다면 그 복지는 언젠가 공중분해 될 수 있어요. 실제 지난 10년 동안 이뤄놓았던 복지가 날아가는 것을 목격했잖아요. 그래서 우리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런 현상은 곧 국민들 개개인이 허약하다는 반증이기도 하고요. 따라서 우리가 복지를 열망하고 고민하기 이전에 인간 개개인은 허약한 존재라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게 됐을 때는 복지나 메시아로 투항하려 하지 말고, 서로 손을 잡고 스스로 일어나야 하는 게 아닐까요?

 

세상에 바란다, 바보가 많아졌으면

 

갑자기 바보 담론으로 화제가 전환됐다. 그가 생각하는 바보에 대한 조작적 정의는 이렇다. “바보는 자기 스스로 손해를 본다는 이미지가 굉장히 강합니다. 자신의 것이지만 자기 것을 지키지 못하는 인간들을 말하죠.” 우리가 흔히 누군가에게 무엇을 달라고 요구했을 때, 가진 것을 순진하게 내어 주는 상대를 보며 “어허, 쟤 진짜 바보네” 라고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누가 뒤통수를 때려도 실실 웃는 인간들, 그리고 그런 모욕을 감수하려는 인간들도 역시 바보의 범주에 해당된다. 아무래도 그는 바보 아닌 바보의 이야기를 하려는 듯 보였다.
 
책의 맨 뒷부분에 나와 있는 ‘작가의 말’을 보니 바보 이야기가 나오던데요. 그 바보 이야기 좀 해주세요.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덤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바보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들이 바보 같아지기 위해서는 그 이면에 불합리한 구조가 존재해야합니다. 자신의 희생을 각오한 사람들만이, 즉 분노한 사람들만이 자기의 모든 것을 던져 저항하려고 하거든요. 이를테면 안중근 혹은 윤봉길 의사와 같은 사람도 어찌 보면 바보인 거죠. 죽을 줄 뻔히 알고 자신만의 길을 가기 때문이에요. 결국 불합리한 사회구조가 이 같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듭니다. 결국 이들이 똑똑한 바보이기도 하고요. 소설 속에서는 ‘부’가 똑똑한 바보고, ‘담’은 그냥 바보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현 정치인들 중 바보 같은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솔직히 얘기하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끝으로 바보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봐요. 하지만 그런 시대는 지나가야만 해요. 가는 게 좋은 거고요. 그런 바보가 계속 만들어진다는 것은 사회가 그만큼 극악하다는 얘기거든요. 누군가를 두고 바보라고 말 할 때에는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보고 판단해야 하거든요. 지금 안철수 원장이 부상하고 있지만, 그 분의 인생을 보면 바보짓을 한 건 별로 없어요. 성공을 위해 달려왔던 사람이고요. 그런데 성공한 사람치고 양심적이라는 겁니다. 박근혜 후보 역시 좋은 배경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려놓고 무언가를 한 적은 없잖아요. 기득권으로 살아왔으니까요. 이를테면 자기 목숨을 내 놓는 다든지, 자기 전 재산을 털어 나눠줬다든지 하는 똑똑한 바보, 그런 바보가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는 시대는 이제 지나간 것 같아요. 그냥 바보들이 똑똑한 바보를 따라가는 시대이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진보 성향의 인사들만 바보의 범주에 해당되는 것 같은데요?

저는 진보가 정의롭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봐요. 진보는 기존의 틀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몸부림이고, 그건 기본적으로 이기심의 발로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는 보통 ‘진보는 정의롭고 가난하다’ 이런 식으로 틀을 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강남사람이 진보적이면 이상한 사람 아냐 라고 생각하잖아요. 아니, 강남에서 잘 사는 게이라고 하더라도 진보적일 수 있지 않나요. 자기의 권리가 억압되니까요. 결국 진보를 정의나 바보와 같은 선상에 두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진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사
 
오백만 년 후를 예상하며 내 놓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 속에는 인간 대신 문어가 등장한다. 문어의 시대를 예고하며 천장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유난히 반짝였다. 똑똑한 문어가 등장해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듯, 인간 역시 똑똑해지거나 바보가 될 수 있으며, 이런 것이 자연의 올바른 선택이 아닐까 한다는 것. 이런 그의 관심사는 바로 진화와 역사다.


 

책에서 DNA와 같은 단어도 등장하던데요. 유전자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유전자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는데 진화에는 관심이 많아요. 저는 진화가 퇴화를 포함한다고 생각해요. 진화는 결국 선택과 집중이잖아요. 잘 하는 건 키우고 못 하는 건 없애는 것, 환경에 적합하게 맞추는 것이 진화죠.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은 환경에 대한 관심까지는 아니지만, 인간이 뇌를 발달시키는 쪽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다 보니 너무 똑똑해졌다는 거에요. 그래서 다른 생물들을 못살게 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거든요. 예전에 <지구가 멈추는 날>이라는 할리우드 B급 영화를 보던 중 저승사자 같은 키아누리브스가 나타나 이렇게 이야기 하던 게 기억이 납니다. “나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왔다. 그런데 지구를 구하려면 인간을 제거해야 한다.” 우와, 그 통찰이 정말 멋있어요. ‘그렇다, 지구를 구하는 방법은 인간을 다 없애는 것이구나. 그러면 다른 생물들이 살아날 것이고, 대기는 깨끗해질 것이며 오존층의 구멍은 다 메워지겠지. 인간만 없으면 생태계는 다 회복될거야’ 하는 생각을 했죠. 어쩌면 그 생각의 연장선일 수도 있는데요, 자연이 강제적으로 인간의 머리를 퇴화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화는 자연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거니까요. 지금까지 인간이 계속 똑똑해지는 방법으로 진화해왔다면 어느 순간에는 다시 원점으로 내려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렵네요. 그렇다면 역사에 대한 얘기도 해 주세요.


저는 이야기로서의 역사를 좋아합니다. 이야기가 있으니 역사가 있는 것이고요. 각본에 없는 드라마니까 더 좋고요. 저는 주로 고대사에 관심이 많은데요, 왜냐하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거든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군신화, 또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일화나 고사를 보면 정말 신기해요. 무려 몇 천 년 전의 일을 다 알고 있는 거잖아요. 강태공도 무려 삼천년 전 사람이고, 예수님도 이천 년 전 사람인데 그들이 당시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알고 있는 게 신기한 거죠. 아마도 만년 뒤에 현재를 본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기준에서 만 년 전을 보면,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았을 수도 있어요. 그 땐 정치라든가 교육, 교통에 대한 별다른 문제가 없이, 그냥 친구들끼리 모여 살았으니까요. 자식을 낳으면 자기들이 알아서 크는 것이고요.
 
혹시 초자연적인 현상에도 관심이 많으신가요?

네. ‘귀신이 있는가 없는가?’ 이런 거 있잖아요. 귀신이 없으면 세상이 재미없을 것 같아요. 공포 영화도 다 없어질 거고요. 귀신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외계인은 별로입니다. 우리보다 너무 똑똑한 애들이 있다면 좀 불안해지지 않을까요? 그냥 적당히 바보스런 외계인도 있어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너무 똑똑해서 UFO 타고 날아오는 이런 외계인을 원하지는 않아요.
 
상민씨는 언제나 자신의 삶을 외부와 연동시켜 왔다고 말한다. 80년대가 바깥세상을 반영하는 외부 과잉의 글쓰기 시대였다면, 현 시대에는 자신을 내부로 끌어안는 독백체 글쓰기들이 많아졌다는 것. 그런 그가 다음 작품의 소재로 주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용산사태이다. 어마어마한 공권력의 집행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한다 한들, 이와 같은 상황에 반응하는 글쓰기를 별로 본 적이 없다는 통탄에서 출발한다. 논문도, 다른 어디에서도 성찰하지 않는 무관심이 우리 개인의 삶을 고달프게 만들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자기 침잠의 글 대신 가치 있는 글을 써라
 
글을 쓰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 합니다.


가치가 있는 것들을 썼으면 좋겠어요. 뭔가 주절주절 이야기하고 싶다면 그냥 일기를 쓰면 되거든요. 굳이 일기 수준의 글을 가지고 남의 시간과 돈을 요구해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남이 읽기 원하는 글이라면 ‘남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고 글을 썼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요즘 문제는 저자가 자신의 내부를 너무 깊게 파고들어가는 글들이 많다는 거예요. 얼마 전 학부생들 글을 봤는데 자기 침잠의 세계에 대한 글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물론 그런 자기반성이나 자기성찰이 필요해요. 그런데 제가 답답함을 느끼는 건,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구조의 지배자들이 다루기에 굉장히 좋은 시스템이죠. “난 아프고 힘들고 실업자야” 자꾸 이렇게만 이야기 한다면 나아지는 게 없어요. 그럴 땐 남 탓을 좀 해야죠. 바꿔달라고 요구해야 해요. 그렇게 하려면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고요. 특히 어릴 때 혼자서 외로웠단 얘기가 엄청나게 많은데요. 지금도 ‘나는 방황 중’인 친구들이 한 25%, 50%는 ‘어릴 때 외로웠음’, 그래서 지금 어찌할 바를 모르는 친구가 2명 있었어요. 그런 것들은 그냥 일기에 쓰면 되죠. 주위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들과 자신을 비교해보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심을 가지는 글쓰기를 했으면 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유식한 말에 대한 양해를 구하며 이태리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Homo Sacer) 이야기를 꺼냈다. “용산 사태에서 실제 망루에 있었던 사람들은 호모사케르나 다름없어요. 물도 끊고, 전기도 끊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막았잖아요. 그들에게도 선거권이 있다지만, 법적·정치적 인간으로 인정해주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사태를 국가가 방조하고 있는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호모사케르가 존재한다고 보는 겁니다.” 포털사이트 지식인의 힘을 빌리거나 평론가의 글을 참고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지 않다는 배상민씨. 그에게는 작가라는 자의식보다 문필가의 능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그가 과연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우리 사회에 나설지 궁금하다.

 

 

* 호모 사케르란 고대 로마에서 사회로부터 배제시키는 형벌을 받은 죄인들을 가리키던 용어이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사형을 당하지는 않지만, 시민으로서의 법적인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는 지극히 단순한 생명체이다. 극단적인 경우 누군가 호모 사케르를 살해한다 해도 살인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그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 속에도 호모사케르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용산은 바로 이런 사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예로 존재하기에 그는 요즘 용산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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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4. 10. 20:53

 

 

한국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가?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의 저자

지주형을 만나다.

 

인터뷰 및 편집 박영흠 객원기자

 

   바야흐로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2008년 신자유주의의 종주국 미국 한복판에서 터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모델은 금과옥조에서 파산선고를 받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지난 1월 다보스에 모여든 0.1%의 자본가들마저 자본주의가 고장났다고 고백할 정도다. 세계는 이제 침몰하는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지금-여기의 한국 사회도 그러한가? 황폐해진 삶의 밑바닥에서 잉태된 변화에의 요구는 닥치고MB연합으로 환원되고 있다. ‘88만원 세대의 해법은 여전히 경쟁에서 우월한 지위를 점하기 위한 스펙 쌓기이고, 40대에 퇴직을 걱정하는 고용 불안의 대책은 변함없이 주식-부동산 대박이다. 1997IMF 위기 이후 뿌리를 내린 신자유주의적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의 냉랭한 현실에선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는 세계적 흐름과의 큰 온도차가 느껴진다. 아직 이곳에서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구조적 질서가 되어버렸기 때문인가?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의 저자 지주형 교수(경남대)를 만나 한국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세상은 전쟁터고 국가와 사회는 믿을 수 없으니 가족과 지인끼리 똘똘 뭉치지만 그렇게 한다고 미래가 희망적인 것은 아니다. 대체 IMF 위기 이후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이러한 일이 벌어졌을까?”

 

Q. 지금 한국 사회에서 왜 신자유주의를 말해야 합니까? 현실의 모순을 굳이 신자유주의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A. 현 사회의 모든 문제를 신자유주의로 환원해서 설명할 수는 없을 겁니다. 신자유주의는 역사적, 제도적으로 특수한 자본주의의 한 형태를 이야기하는 건데, 신자유주의가 아니라고 해도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적인 문제들도 분명히 있죠. 그러나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에 초점을 맞춘 까닭은 신자유주의가 현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는 1997년 이후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노동 유연화가 심화되면서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났고,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문제가 생겼으며 재벌의 힘이 더 커졌습니다. 이런 문제는 현 정권 5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난 문제입니다. 정권 교체로 이 모든 것을 바꾼다거나 정권이 바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영국과 미국에서 복지국가적-케인스주의적 국가와 사회관계를 해체해버리고 신자유주의 체제를 앞장서 이뤄낸 사람은 대처와 레이건입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축적이 이뤄지고 금융자본가들이 제일 큰 이익을 보게 된 건 오히려 이른바 진보적정권으로 바뀐 뒤인 블레어와 클린턴 시기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 갑자기 잘못된 게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부터 다 있었던 일이지요.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축적을 더 확장시키고 싶었는데 오히려 세계 경제 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없었다고 할 수 있죠.

 

“...산업발전의 논리보다 금융적 수익성의 논리가 우세하게 됨으로써 한국의 자본주의는 과거의 발전 경로와 질적으로 단절하고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발전 경로로 들어섰다.”

 

Q. 신자유주의 이전과 이후 한국 자본주의에서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요?

A. 하나는 계산 방식에서의 단절입니다. 박정희 정권 당시 기업 성과에 대한 평가 기준은 수출, 매출, 자산규모 등이었습니다. 지금은 단기적 수익성이 중요합니다. 산업을 보는 개념이 바뀐 겁니다. 산업지향적인 기준이 중시되다가 지금은 금전적 기준이 제일 중요하게 된 겁니다. 20032SK텔레콤이 기업설명회에서 설비 확충에 5200억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니까 투자자들은 배당금이 줄어들 것을 염려해서 주식을 내다판 적이 있습니다. 주가가 떨어지자 회사측은 놀라서 투자규모를 크게 줄일 수밖에 없었지요. 과거엔 대우그룹처럼 자산 규모가 큰 게 좋은 거였는데 지금은 꼭 그렇진 않아요. 부채가 많아서 또는 투자를 크게 해서 자산 규모가 커진다면 이자비용이 늘거나 배당금이 준다는 이유로 오히려 주가가 떨어질 수 있는 거죠. 예컨대 기업 인수전에서 승리한 기업이 오히려 주가가 떨어지고 재무상태가 나빠지는 승자의 저주라는 현상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기업 활동에 대한 멘털리티가 바뀐 겁니다. 또 하나는 금융과 산업의 관계가 단절됐습니다. 예전엔 국가의 산업정책이 있고 그 달성의 수단으로 은행이 이른바 관치금융을 통해 재벌기업에게 저금리 특혜금융을 주는 긴밀한 관계가 있었죠. 이게 안 좋은 측면이 있었지만 산업정책을 통해 어떤 산업을 전략적으로 발전시킬 때는 효율적 수단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거의 불가능하죠. 재벌기업들이 수익성 위주로 경영을 하다 보니 예전만큼 투자를 안 하기 때문에 은행이 돈을 빌려주고 싶어 해도 오히려 돈을 안 빌려요. 은행도 재무건전성을 중시하니까 위험해 보이는 기업대출은 피해요. 그래서 전반적으로 기업대출이 줄고 가계대출이 늘었죠. 생산적인 부문으로, 고용을 더 창출할 수 있는 부문으로는 돈이 안가고 가계대출(바꿔 말하면 부채)은 크게 늘어나는 거죠. 이게 큰 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IMF 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사회적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았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의 고단한 삶은 고용 불안, 노동시장 연장과 상습적인 야근, 자기계발과 재테크, 출산율 저하, 자살률 증가, 타인에 대한 신뢰와 삶에 대한 만족도의 저하를 특징으로 한다.”

 

Q. 한국 신자유주의를 연구함에 있어 굳이 그 형성과 기원을 역사적으로 살펴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사회과학에서 역사적 연구를 하는 까닭은 보통 지금의 현실이 자연적 질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어떠한 질서도 저절로 생겨나거나 그대로 둔다고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세력들 간의 각축 속에서 유지되거나 변화합니다. 한국의 신자유주의 질서도 자연적인 게 아니라 추진했던 세력들과 그에 저항했던 세력들의 투쟁의 결과로 형성된 거죠. 국내의 관료, 미국의 재무부도 있고, 부분적으로는 재벌이 원했던 측면도 있고, 여러 가지 다양한 인풋이 있었죠. 그들의 싸움에 의해서 신자유주의로 전환된 다음에도 그 신자유주의는 그대로 가지 않고 또 변화될 수 있어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려면 신자유주의가 얼마만큼 역사적으로 퇴적된 결과물인가를 보는 과정을 밟아야 됩니다. 역사적으로 들여다보는 까닭은 그 퇴적물들을 다 확인하기 위해서죠.

 

Q. ‘시공간의 개념을 중심으로 한국의 신자유주의를 분석하고 있는데, 그러한 개념을 활용하는 이론적 의의는 무엇인가요?

A. 70년대 이후 사회학과 지리학에서 공간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주된 관심은 사회적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입니다. 간단한 예로, 서울과 지방 사이의 교통은 매우 잘 되어있습니다. 근데 지방과 지방 사이는 교통이 아주 안 좋습니다. 이게 사회적 공간이거든요. 물리적 거리는 지방과 지방이 더 가깝지만 사회적 거리는 지방과 서울이 더 가깝습니다. 원래 그런 게 아니라 권력관계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진 거죠. 공간을 어떻게 조직하느냐에 따라 어떤 집단은 이익을 얻고, 어떤 집단은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회적 공간을 만드는 사회적 힘이 있고, 사회적 공간이 낳는 효과가 있는 거죠. 그런 전통에서 볼 때 IMF 위기 이후 한국의 신자유주의화도 공간의 변화와 함께 이해하지 않으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는 측면에서 관심을 가졌던 겁니다.

시간은 원래 사회과학이 사회 변동에 관한 학문이니 만큼 전부터 많은 관심이 있었지요. 특히 자본축적의 핵심 메커니즘 중 하나가 시간을 조작하는 것이잖아요. 노동가치론 체계 자체가 시간에 대한 거죠. 데이비드 하비가 말한 자본의 회전시간도 투자한 다음에 이익을 얻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말합니다. 그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자본은 더 많은 이익을 보겠죠. 신자유주의를 얘기할 때 금융자본의 헤게모니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신자유주의는 재산권자의 권리를 극대화하는 사상이고 그 사상에 가장 적합한 게 금융자본주의입니다. 예컨대, 자산을 유형자산으로 가지고 있으면 현금화가 쉽지 않습니다. 공장을 한 평씩 쪼개서 팔수는 없잖아요. 반면 화폐·주식·채권처럼 금융 형태로 보유하면 처분의 자유가 엄청나게 늘어나죠. 노조 걱정할 일도 없고 필요할 때 쪼개서 팔수도 있고, 미래 수익을 예측하고 금융공학 모델로 리스크를 계산해 그걸 기준으로 현재가치로 할인함으로써 미래까지 기다리지 않고 당장 이익을 실현하는 등 여러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일상의 삶부터 권력의 행사, 자본 축적의 방식에 이르기까지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죠.

 

Q. 이 책은 오늘날 파편화된 분과학문 체계의 관행과 달리 국내와 국제, 정치와 경제·사회를 총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연구가 필요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세계체제론을 연구하게 된 까닭이 그 필요성을 잘 설명해줍니다. 월러스틴이 원래 아프리카 전공자에요. 아프리카는 왜 저발전하는가? 처음엔 아프리카 국가들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죠. 그런데 알고 보니 아프리카가 세계 분업 질서 속에서 처한 위치 때문이었잖아요. 20세기, 특히 전후 미국 학제의 산물인 현대 분과학문 체계는 월러스틴이 경험한 것과 똑같은 문제의식을 갖게 만듭니다. 한 사회의 문제를 파악하려 할 때 그 사회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만 보면 많은 부분을 놓칠 수밖에 없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겠죠. 한국전쟁을 설명할 때 남한과 북한만 보고 어떻게 설명해요. 마찬가지로 한국 경제를 설명할 때도 한국만 보고 설명할 수는 없는 겁니다.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복합적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복잡한 현실에 단순한 처방을 내리면 재앙을 낳을 수 있는 거죠.

 

Q. 다른 나라의 신자유주의와 비교할 때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보이는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A. 먼저 국가 주도로 신자유주의화 됐다는 점이 다릅니다. 물론 국가를 통하지 않고 신자유주의화 되는 경우는 없고 결국 제도를 바꾸는 건 국가가 하는 거지만, 어떤 세력이 먼저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는가를 보면 조금 달라요. 미국의 경우는 월스트리트가 압력을 가하고 정치인들이 그걸 받아들인 거잖아요. 우린 미국이 압력을 가하기 전에, 그리고 재벌이 압력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관료들이 먼저 했다는 거죠. 또 하나는 재벌이 먼저 신자유주의를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벌이 아직 완전히 금융자본화되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겠어요. 물론 금융투자와 계열사를 늘리고 거기서 이익을 얻는 걸 선호하는 쪽으로 행태가 많이 변했죠. 하지만 영국이나 미국처럼 국내의 제조업 베이스를 거의 포기해버리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어요. 해외에 많이 아웃소싱하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은 그런 부분들을 많이 갖추고 있기 때문에 영국·미국과 달리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도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는 거예요. 개발국가 시대에 만들어진 경로에 대한 의존성이 있는 거죠.

 

위기관리의 형식과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위기의 객관적 구조가 아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주어진 객관적 구조 속에서 위기관리에 따라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볼 수 있는 사회세력들 사이의 직간접적인 사회적·정치적 투쟁이다. 그리고 그 결과 지배적인 위기관리의 방식이 결정되면 위기효과와 위기관리 비용이 불균등하게 배분된다. 투쟁에서 승리한 집단은 막대한 전리품을 챙길 수 있지만 반대로 패배한 집단은 극도의 고통을 감수할 수 있다.”

 

 

 

 

Q. 유럽의 신자유주의화를 보면 위기 상황에서 여러 사회세력들이 대안을 놓고 경합하고 투쟁하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신자유주의의 형성 과정에서는 노동을 비롯한 반대세력들이 헤게모니 투쟁에서 상대적으로 무기력했던 것 같습니다.

A. 일종의 세력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한국 사회에는 신자유주의에 우호적인 세력들이 상당히 많았거든요. 87년 민주화 이후 재벌이나 관치금융에 대한 비판 세력이 많이 늘어났죠. 그런데 IMF가 한국에 요구한 것 중 하나가 재벌에 대한 개혁이었어요(물론 그것은 실패하고 대신 재벌의 체질만 개선시켜준 게 사실이죠). 기존에 추진하던 시장주의적 개혁과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시민운동도 거기에 편승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참여연대죠. 참여연대의 재벌 개혁은 소액주주 권리를 강화하는 거였는데, 당시 맥락에서 전혀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근본적으로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한다는 건 신자유주의의 주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겁니다. 결국 재산권자의 이익을 재산권 가진 만큼 보장해주자는 거거든요. 당시 유명했던 장하성 교수는 우리에겐 개혁적으로 보였지만 초국적 자본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자기들의 편이었죠. 노동운동은 이전부터 이미 상당히 경제주의적 성향을 보이고 있었고, 산별노조도 아닌 기업별 노조가 자기 회사 얘기가 아닌 한국 경제의 대안을 논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당시에 진보정당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실상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이 하나도 없었던 거죠.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결코 논리적으로 필연적이거나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국내외의 소수집단들이 독점적이고 반민주적으로 내린 결정의 결과일 뿐이다.”

 

Q. 한국 사회에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형성되는 과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세력들로 미국 재무부-월스트리트 금융자본-한국의 엘리트 경제관료들을 꼽고 있습니다. 한국 관료들의 내부 역할도 있었지만, 미국의 영향력이 심대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한국 신자유주의의 형성과 전개에서 미국의 비중과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A. (IMF 이전부터)한국의 관료들이 독자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려 해왔지만 계속 실패했지요. 미국이 들어와서 (압력을 행사해줌으로써)비로소 성공한 겁니다.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 확산에서 미국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죠. 클린턴 행정부 때 정책적으로 개방하라고 직접적 압력을 가했습니다. 여러 측면에서 IMF 위기로 몰아간 것도 미국이고, IMF 체제로 들어온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치밀하게 자기 이익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한 것도 미국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다만 이 책에서 관료를 비롯한 내부 세력을 강조한 까닭은 거기에 대한 인식이 약하고 또 이들이 국내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가장 중요한 집단이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공동체의 경제사회적 삶의 방식과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권위와 권력의 원천이 월스트리트, 미 재무부, 국내 경제부처 등의 자본, 국가, 전문지식에만 있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자본, 국가, 지식과 구별되는 제4의 정치적 권위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다.”

 

Q.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경제민주주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A. 지금 민주통합당이나 새누리당에서 말하는 경제 민주화는 김대중 정부 때 있다가 풀려버린 재벌규제, 즉 출자총액제한제도 같은 걸 다시 하겠다는 얘깁니다. 복지도 신자유주의와 완벽하게 호환이 가능한, 기껏해야 영국의 블레어 정부식의 복지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죠. 경제민주화가 아니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본질에선 다 빗나간 거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경제민주주의가) 그런 걸 얘기하려고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경제의 실질적민주화란 말을 쓴 겁니다. 민주라는 건 실제로 참여를 해야 민주화가 되는 거죠. 얼마전 유종일 교수가 내놓은 정책안을 보면 노동자의 경영 참여라는 작은 조항이 하나 있습니다. 그와 같은 것을 전사회적 수준으로 대폭 확대해야 되는 거죠.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들어가는 식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진짜 민주화가 되는 거죠. 작지만 그것부터 시작해서 좀더 많은 부분에서 민주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끔 해야겠죠.

 

Q. 미국 재무부와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은 글로벌 신자유주의 질서의 지배블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탈신자유주의적 노선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일국적 차원의 경제시스템 변동이 현실적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요?

A. 먼저 미국 재무부와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이 2008년 이전만큼 영향력이 있는지는 조금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영향력이 약화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옛날만큼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건 인정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한미 FTA 때문에 소송도 걸 수 있게 됐으니까요. 한국이 작은 실험들을 할 수는 있겠지만 대대적인 실험을 해서 전세계 자본주의의 구도를 바꾸도록 선도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전세계 자본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인 것도 아니고요. 국내의 변화를 원한다면 변화하는 국제환경에 지혜롭게 대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Q. 경제 테크노크라트들의 독단적 결정에 의해 중요한 정책들이 수립되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경제 정책의 결정이 고도로 전문적인 영역인 것이 사실인데요. 공동체 구성원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정책 결정의 민주화가 과연 가능할까요?

A. 가능합니다. 대통령이 지시하면 관료들이 실행하는 식의 기본 이념이 작동을 안 하는 게 문제지요. 관료들이 와서 대통령을 설득하는데 대통령한테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으니까, 경제 문제는 전문가들이 하는 걸로 생각하고 전체적인 경제 문제에는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지니까, 게다가 정당과 노조가 제 역할을 못해 민의가 형성되지 않으니까 결국 못했던 거죠. 그런데 한국의 신자유주의를 재벌이 추진한 게 아니라 관료들이 추진했다는 게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측면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관료는 재벌보다 통제하기 쉬우니까요. 관료들은 재벌들하고 친하긴 하지만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자기 인사권자거든요. 민주주의에서는 (공동체 구성원이 뽑는) 인사권자가 마음만 먹으면 변화도 가능합니다.

 

Q. 올해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어 정치적 변동이 예상됩니다. 앞으로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전개될지 전망을 부탁드립니다.

A. 한국이 자체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변화시킬 동력은 많지 않습니다. 유력한 대선 후보들을 봤을 때도 그렇고, 관료들이 바뀔 가능성도 없어요. 국가구조도 사회적 세력관계도 크게 변할 거라고 예측할 수 없어요. 만약 전세계적인 변화가 생기면 한국이 그러한 변화를 쫓아갈 가능성은 있겠죠. 그런데 그것도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어요. 한국은 살림살이가 그전부터 어려웠던 데다가 금융위기 이후에도 경제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지 않았고, 게다가 기업들이 수출도 잘하고 세계적 위기에도 잘 버티고 있기 때문에, 금융 위기가 터져서 세계적으로 난리가 난 지금의 상황에서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야 말로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다만 예전보다 사람들이 살기가 좀 어려워진 건 사실이니 그 부분은 복지제도로 해결해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비관적 생각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지주형,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책세상(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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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27. 18:35

 


인터뷰 및 정리 박승일


“미래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자료는 역사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시작된 그때의 광경을 돌이켜봐야 한다. 한 시대가 저물고 혼돈이 찾아왔던 1970년대에, 인류에게는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방향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일까?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인류의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다면, 지난 30여 년간의 세계사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막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Q 이 책을 관통하는 주요한 문제설정은 무엇인가요.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라는 물음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A 이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어요. 첫 번째는 지금까지 신자유주의를 좁은 의미에서의 경제적인 흐름으로만 바라봤었는데, 그보다는 이에 대비되는 정치적인 시각에서 신자유주의를 바라봐야 한다는 겁니다. 두 번째로 이 정치라는 것을 국민 국가 내에서의 정치적 절차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실천들로 환원해서 생각하기 쉬운데, 신자유주의 자체가 이미 전지구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여러 층위에서 복합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거예요. 국민 국가뿐만 아니라 지구 질서까지 포함하는, 다시 말해 지구경제정치적인 시각에서 신자유주의를 바라봐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정치적인 현상으로 바라보면 신자유주의라는 게 어떤 정해진 프로젝트가 일방적으로 관철된 것이나 혹은 사람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적 필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대안들이 서로 경합하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아주 어렵게, 하지만 어쨌든 다른 대안들을 물리치면서 전지구적으로 관찰되었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 않았는데 왜 막을 수 없었는가라는 문제제기를 했던 것이죠. 이 물음 안에 답이 다 들어있어요. 만일 다른 대안이 있었다면 그 대안을 살펴보는 게 신자유주의가 저물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우리 시대의 대안을 마련하는데 가장 중요한 참고가 되지 않겠느냐하는 것이죠. 70년대 신자유주의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내놓았던 대안들이 실행되지 못했다고 해서 3~40년 뒤인 지금 그걸 그대로 발굴해서 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 때 신자유주의와 맞서는 과정에서 패배를 했다면 어떤 한계가 있었던 것인지 살펴봐야 우리 시대의 대안을 조금 더 지혜롭게 마련할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Q 서론에서 이 책의 목적을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좀 더 설명해 주신다면요.

첫째로 많은 경우 7~80년대 서구의 진보좌파 세력이 신자유주의에 투항했다고만 알고 있지 그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어요. 투쟁의 과정들을 망각 속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칠레와 영국 그리고 프랑스의 사례를 다뤘어요. 다음으로 좌파의 문제점들을 들춰내는 것은 지금 우리의 대안을 짜기 위해서예요. 역사라는 게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뭔가 일정하게 반복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각도에서 실천한다면 새로운 상황들을 창출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과거의 한계나 오류에 대해서 생각 외로 잘 모르는 측면이 있거든요. 잘 모른다는 것은 과거의 오류를 그대로 반복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한계를 들춰내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라고 봤던 거예요. 마지막으로 최종 결론과 연결되는 문제인데, 70년대 좌파의 한계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지나치게 국민 국가라는 정치무대에 스스로를 제한하거나 또는 과잉적응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 보면 좌파가 국민 국가의 집권세력이 되었을 때 자신들의 가능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신자유주의는 지구 질서 차원에서 공격을 해오는데, 영국이나 프랑스 사례를 보더라도 지금 상식으로 봐서는 너무 답답할 만큼 국민 국가라는 정치 역학에 갇혀 있었거든요. 신자유주의가 서서히 몰락해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생활 세계’와 ‘국민 국가’ 그리고 ‘지구 질서’의 여러 층위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정치형태를 발명해내는 것이 좌파의 한계를 극복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Q 1930년대 초 서구 좌파 세력들이 봉착한 ‘좌파 정치의 첫 번째 구조적 위기’란 무엇인가요.

러시아 혁명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서유럽에 보통 선거가 실현되면서 좌파 세력이 선거를 통해 집권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좌파의 집권은 가능해진데 반해 노동자가 원하는 사회경제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그런 조건은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거예요. 지금의 국가와 달랐던 거죠. 독일 사민당이나 영국 노동당 역시 공황이 닥쳤을 때 자유주의 세력이나 보수주의 세력과 다른 형태의 경제정책을 펼치지는 못했던 겁니다. 물론 이들의 강령에는 사회주의니 혁명이니 하는 말들이 다 남아있었어요. 그런데 그건 먼 미래의 과제고 당시에 펼칠 수 있었던 정책은 자본주의 정치 세력의 정책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통화 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인플레이션 억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식이였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면 케인스주의 정책을 반대로 펼쳐야 했는데, 그러면 불황이 더욱 심화돼서 좌파 정당들을 지지했던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고 결국 이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다른 세력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공산당으로 돌아서면 그나마 나은 경우인데 심지어 나치를 지지하기도 했던 겁니다.

이게 다 20년대 말 30년대 초에 있었던 일이거든요. 저는 이게 ‘좌파정치의 첫 번째 구조적 위기’라고 봅니다. 제도적인 절차를 통해서 좌파정권이 집권할 수 있는 국민-대중적인 정치공간은 마련되었는데, 이를 통해 집권한 세력이 국민-대중적인 경제공간을 마련해낼 수 있는 여지는 아직 열리지 않았던 상황인거죠.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브레턴우즈 체제가 등장한 후에야 초국적인 케인스주의의 배경 속에서 각국이 국민 국가 차원의 케인스주의 정책들을 펼쳐나갈 수 있게 됩니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복지국가라 할 수 있는 국민-대중 경제가 전개되면서 첫 번째 구조적 위기가 봉합 혹은 극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한때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70년대 들어 초국적인 케인스주의 체제라고 할 수 있는 브레턴우즈 체제가 깨지고 세계 질서가 금융자본주의 질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위기로 도래하게 됩니다. 좌파 세력들이 두 번째 구조적 위기를 주체적으로 극복했어야 했는데 그게 아니라 수동적으로 끌려가면서 결국 이른바 제 3의 길로 정착되고 만 것이죠.

Q ‘구조 개혁 좌파’라는 말이 생소합니다. 이들은 기존의 좌파와 어떤 점에서 같고 또 다른가요.

상식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좌파는 사민주의 아니면 혁명적 사회주의 둘 중에 하나에요. 그런데 서유럽을 중심으로 보통선거제도가 도입되고 나서 이 열려진 정치공간에 일정하게 적응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의제들을 끊임없이 현실정치에 도입하려고 한 세력들이 분명히 있었어요. 이러한 세력들이 사민당 좌파나 노동조합 좌파로 아니면 이태리 공산당이나 프랑스 공산당으로 나타나기도 했는데 그 특성이 전반적으로 일치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통틀어 ‘구조 개혁 좌파’라고 표현한 거예요.

70년대 케인스주의가 위기에 몰렸을 때 이 위기를 새로운 질서로 만들려는 우파의 대안이 등장했는데 여기에 경합하는 대안들이 좌파 쪽에서도 제안됩니다. 그런데 사민주의는 대안이라고 볼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기존질서를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기존의 케인스주의를 지키려고만 했거든요. 오히려 케인스주의를 적절히 극복하면서 70년대 등장한 신자유주의 우파와 정면으로 맞붙었던, 즉 기존질서를 바꾸려고 했던 좌파가 있었어요. 이들은 체제 바깥에 있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도 아니고 사민주의처럼 수동적으로 기존 질서를 고수하려고 했던 사람들도 아니에요. 이런 이유로 이태리 공산당이나 칠레 공산당 아니면 영국 노동당 좌파나 프랑스 사회당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신자유주의의 황혼기인 지금, 대안을 만들어내기 위해 중요하게 참고해야 할 흐름이 바로 이들이라는 문제의식이 깔려있는 거죠.

“1970년대의 기본 전선이 꼴을 갖춰가고 있었다. 한편에는 국민 국가의 성취를 바탕에 두고 자본주의 극복의 방향에서 체제의 골간에 손을 대려는 구조 개혁 좌파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초국적 네트워크를 통해 자본주의 복고의 방향에서 체제의 골간을 뒤집으려는 신자유주의 우파가 있었다. 승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싸움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이것이 수십억 지구인 하나하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결정적인 대결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Q 아옌데 정부가 제시한 <인민연합 강령>이란 무엇이고 이 강령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구조 개혁 좌파는 케인스주의를 부정한 게 아니라 오히려 케인스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이들이 추구한 국민-대중 경제의 건설은 사실 탈자본주의가 아니에요. 국민-대중 경제 건설, 흔히 복지국가라고 하는 것을 만드는 데는 동의한 거죠. 그런 점에서는 사민주의와 다를 바가 없어요. 하지만 이들은 이를 최종적인 목표로 본 게 아니라 그걸 디딤돌로 봤다는 데서 차이가 있어요. 디딤돌로 해서 탈자본주의 전망으로 가야 한다고 본거죠. 그 당시에는 국유화를 많이 얘기했는데, 도식적으로 말하면 케인스주의 + 국유화의 전망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칠레는 선거를 통해 집권하면서 서유럽보다도 먼저 구조 개혁적인 전망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칠레는 아직 복지 국가를 건설하지 못한 대표적인 남반구 국가, 즉 반주변부 국가였어요. 왜 건설하지 못했냐하면 지구 질서 층위의 자본주의가 칠레 경제를 그런 방식으로 구조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칠레의 주요 수출원이 구리인데 거기서 나오는 수익의 대부분을 미국 자본이 가져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복지국가를 건설하기가 불가능했던 거죠. 국민-대중 경제를 건설하기 위해서도 칠레는 자본주의 그 자체를 건드릴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반주변부였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의식이 서유럽보다 먼저 등장했던 것이고 더 많은 대중적 지지를 받으면서 집권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인민연합 강령>은 남미판 케인스주의라고 할 수 있어요. 요컨대 칠레 정부가 구리 광산을 완전히 국유화해야 한다, 여기에서 생기는 수익을 바탕으로 다양한 복지정책을 펼쳐야 한다, 단순히 구리 광산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에 종속되어 있는 제조영역에서도 국유화를 단행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인민연합 강령>의 핵심이거든요. 때문에 칠레의 경우를 70년대에 등장한 보편적인 구조 개혁 대안의 한 형태이면서 또한 유럽보다 먼저 등장하고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받은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겁니다.

Q 칠레에서 시도한 구조 개혁은 실패했습니다. 이 가운데 드러난 구조 개혁 좌파의 한계는 무엇이고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나요.

저는 칠레에 대해 정당한 발굴과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물론 재평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많아요. 아옌데(Salvador Allende) 정부가 쿠데타 때문에 실패한 것을 놓고 칠레 집권 좌파들의 실정이 누적돼서 결국 쿠데타로 인해 무너진 것이라고 보는 입장인 거죠. 그런데 저는 이러한 입장이 지나치게 결과 중심적인 평가라고 생각해요. 쿠데타가 일어난 것 자체가 다른 정상적인 정치과정을 통해서는 정권을 뒤엎는 것이 어려웠다는 방증일 수 있거든요. 구조 개혁 좌파의 시도가 일정 정도 성공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반대 세력이 쿠데타를 시도한 것이라고 역으로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 세력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어요. 좌파 세력이 선거를 통해 정당하게 집권을 했고 대중의 지지를 받는 구리광산 국유화 같은 정책을 통해 강력한 구심점을 구축했던 점은 분명히 성공한 측면이라 할 수 있어요. 다만 한계라면 그 힘을 보다 강하게 이어가는 측면에서는 취약했던 거지요. 우파 세력은 미국이라는 지구 질서의 핵심권력과 연계를 했기 때문에 국민 국가 내 거점이 상대적으로 취약했음도 불구하고 아옌데 정부에 맞서면서 결국에는 쿠데타까지 일으킬 수 있었던 거잖아요. 그렇다면 아옌데 정부는 국민 국가를 거점으로 하면서 동시에 지구 질서 차원의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어디에서 동원할 수 있었을까요. 1972년 정치위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민중 권력의 여러 힘들, 예컨대 노동 현장 내에서의 노동자 자주권리 운동이라든가 지역에서의 주민자치 운동이라든가 이런 데에서 힘을 확보했었어야 했는데, 당시의 상황들을 보면 기대했던 것만큼은 유기적인 연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이런 측면들이 구조 개혁 좌파의 한계가 아니었겠는가. 이점이 바로 생활 세계와 국민 국가 그리고 지구 질서를 아우르는 정치를 재발명해야 한다는 이 책의 결론과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Q 영국에서 구조 개혁 좌파가 시도한 ‘대안 경제 전략(AES)’의 성취와 실패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요.

영국의 경우는 실패의 측면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노동당이 74년 총선에서 승리할 때 내세운 공약 자체는 구조 개혁적 전망을 담고 있었지만 실제 집권하고 나서 펼친 정책은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이게 어떻게 보면 이미 사민주의적 정책이 일정하게 완성되어있는 중심부 국가에서의 좌파 세력과 칠레처럼 복지국가 건설 그 자체가 과제인 반주변부 국가의 좌파 세력이 갖는 차이라 할 수 있어요. 영국 노동당의 주류세력이 당시의 경제적 혼란 속에서 기존의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틀을 소극적으로 유지하는데 중심을 두었기 때문에 구조 개혁 좌파 전망을 갖고 있었던 당내의 주변부 좌파 세력은 실질적인 정책 집행을 못하게 됐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1976년의 외환위기는 전지구적인 금융 네트워크 세력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하고 마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사실 영국은 성취라기보다는 실패를 중심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패의 원인으로는 결국 노동운동과 같이 좌파의 대중적 기반이 되어야할 실천들이 그동안 사민주의적인 복지국가 틀 안에서 수동화, 체제화, 관료화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어요. 이런 한계들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구조 개혁 전망을 말 이상의 실천으로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을 영국의 실패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국의 외환위기는 국민 국가 내의 거점만으로는 부족하며 자본의 초국적인 공세에 맞설 수 있는 민중 세력의 거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한 사례라 할 수 있어요.





Q 자본진영의 진지전이 승리를 거둔 이유는 무엇이고 이후의 변화는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특히 영국의 IMF 위기가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요.

칠레와 영국의 외환위기를 비교해보면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어요. 칠레의 경우는 아직까지 금융자본이 전면에 나서지 않은 상황이거든요. 칠레에 대한 미국의 공세를 보면, 국무부나 CIA와 같은 전통적인 냉전 세력들과 칠레의 광공업에 투자하고 있었던 초국적 자본들이 주도가 됐었죠. 하지만 이들이 주도한 공세는 절반의 성공밖에 이루지 못했어요. 칠레 정부를 전복시키거나 굴복시키지는 못한 거죠. 때문에 쿠데타를 통해 개입할 수밖에 없었던 거고요. 사실 칠레는 약한 나라에요. 인구가 천만밖에 안 돼요. 그런데 이 나라에 대해서도 완전하게 본 떼를 보이지는 못한 거예요. 그런데 칠레 쿠데타가 73년 9월 11일에 발생했는데 불과 3년 뒤인 76년에 영국에서 IMF 외환위기가 발생합니다.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영국, 과거 자본주의의 종주국이었고 세계의 중심부인 이 나라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굴복을 시킨 거예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했냐는 겁니다.

중요한 건 공세의 주도세력이 바뀌었다는 거예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냉전주도세력이 아니라 새로운 세력, 즉 국제 은행가 네트워크와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서독의 연방은행을 통해서 활동하는 초국적 금융 엘리트들의 네트워크가 작동을 한 거죠. 한 유서 깊은 국민 국가를 초토화시켜버리는 광경을 역사상 처음으로 경험했던 겁니다. 사실 IMF는 없어질 수 있는 기관이었어요. 브레턴우즈 체제의 톱니바퀴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 체제가 붕괴된 뒤에는 용도 폐기될 운명이었거든요. 그런데 이후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IMF가 굉장히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잔존하게 된 겁니다. 미국이 영국 정부에 직접 개입한다는 건 국가 간 전쟁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IMF를 통해서 개입한다면 실질적인 목소리는 미국을 통해서 나오더라도 마치 국제 사회가 한 나라의 금융위기에 올바른 처방을 제시해주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거죠. 바로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신자유주의가 정착이 된 건데, 가장 선구적인 사례가 76년 영국의 외환 위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Q 완전 고용과 복지 정책 대신 금융 시장을 중심으로 진지전의 지형이 변화한 것은 우파의 논의 틀을 좌파가 수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나요.

76년 말에 미국을 중심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는데, 카터정부가 케인스주의적인 정책을 복원하려고 하다가 이 상황에 직면하면서 항복을 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상징적인 게 볼커(Volcker)라는 사람을 미국 연방준비제도(FRS, Federal Reserve System)의 의장으로 임명해요. 볼커는 의도적인 초고금리정책을 펼치면서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성공합니다. 성공하지만 역으로 인위적인 경기침체 양상이 나타나게 되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초고금리정책의 피해를 중남미가 떠안게 되었다는 겁니다. 70년대에 금융자본은 남미의 군사정권들에게 굉장히 싼 이자로 떠안기다시피 해서 대규모 융자를 해줍니다. 이 돈으로 남미의 여러 나라가 경제정책을 펼쳤는데 갑자기 초고금리가 되면서 눈덩이처럼 빚이 늘어나게 되고 결국 외환위기를 맞이하게 되죠. 그리고 이 위기를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IMF의 요구에 따라 구조조정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중남미 여러 국가로 신자유주의가 확산되기 시작한 거예요.

이 모든 과정의 한 가운데에 ‘볼커 쇼크’가 있기 때문에 볼커 전환을 중요한 변곡점이라 할 수 있어요. 달리 말해 전지구적인 규범이 성문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전에는 완전 고용이나 복지 정책 혹은 냉전에서의 승리와 같은 여러 가치들이 공존하고 있었어요. 이런 가치들을 다 고려하면서 정책들을 펼칠 수밖에 없었던 게 45년에서 75년까지의 상황이라면, 볼커 쇼크 이후에는 자유주의 경제의 가장 중요한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바로 화폐가치의 안정이며, 이를 위해서는 다른 모든 가치들은 희생되어도 좋다는 전지구적인 규범이 확립된 것이죠. 신자유주의의 출발이라 할 수 있겠네요.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좌파 세력이 프랑스의 미테랑 정권이었는데, 이마저도 83년에 항복을 하고 말아요. 결국 좌파 세력들이 우파의 틀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되는, 즉 제 3의 길 같은 노선이 등장하게 되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 시대가 끝난 거지요.

“더욱 치명적인 것은 좌파 스스로 패배를 합리화하고 우파의 구조 개혁을 새로운 신념으로 추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최후의 저항자들이 앞다퉈 전향하는 순간, 새로운 지구 정치 경제 질서의 헤게모니는 완성되었다.”

Q 프랑스 구조 개혁 좌파의 대안인 <공동 정부 강령>은 무엇을 시도했고 왜 실패했나요.

정당하게 평가를 한다면 미테랑 정부가 81년에 집권하고 나서 1년 동안 펼친 정책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보다 급진적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자본주의의 중심부 국가가 은행의 대부분과 제조업의 거대한 그룹들을 실제로 국유화했던 겁니다. 물론 이 국유화에는 한계가 있어요. 사회당은 국유화를 통해 노동자의 자주권리를 실현시키겠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국유화를 하고 나서는 자본주의 내의 공기업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즉 국가가 경영진을 임명하면 그 경영진이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형태에 머물고 맙니다. 많은 부분에서 한계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이 더 이상 이윤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조업을 포기하고 금융으로 넘어가면서 현재 신자유주의의 핵심에 있는 반면 프랑스는 국유화한 기업들을 계속해서 육성해나갔기 때문에 아직도 제조업이 살아있어요. 이런 차이들은 어쨌든 미테랑 정부가 구조 개혁적인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에요.

물론 이런 점들을 높게 평가할 수 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프랑스 역시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81~83년 당시에 미국이나 서독이나 통화 가치 안정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게 기조였기 때문입니다. 케인스주의의 입장에서는 경기 침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인 적자 재정을 펼쳐야 하는데, 당시의 전지구적 질서에서는 통화 가치 안정을 위한 인플레이션 억제가 주안점이었기 때문에 프랑스가 확장 정책들을 고수할 수 없게 되었던 거죠. 케인스주의가 교과서의 지위에서 이단의 지위로 추락하게 된 겁니다. 유독 프랑스만 이런 전반적인 흐름에 저항을 했던 거였어요. 그런데 모든 나라들이 의도적으로 긴축 정책을 펼치는 상황에서 한 나라만 확장 정책을 펼치다보니까 무역수지 악화라는 문제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결국 프랑스 역시 케인스주의적인 경기 확장 정책을 포기하게 되고 말아요.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신자유주의가 정착되고 있는 마당에 프랑스라는 국민 국가 차원에서 프랑화를 고수하면서 케인스주의적인 경기 확장 정책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고 할 수 있어요. 이런 한계를 절감하면서 프랑스 좌파가 유로화 단일 통화에 앞장서게 됩니다.

Q 영국과 프랑스의 패배는 이후 세계 질서가 전개되는데 엄청난 영향을 줬습니다. 왜 이들은 자본 진영이 강요한 선택지 외의 다른 선택을 하지 못했나요.

만약 영국과 프랑스가 다른 대안을 선택했다면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질서와는 다른 질서가 만들어졌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을 거예요. 영국과 프랑스가 중요한 나라이긴 하지만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핵심에는 미국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 미국의 변화에 따라서 지구 질서의 상황이 변동했기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가 당시에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과 완전히 다르게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만일 영국의 노동당 정부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리고 프랑스의 미테랑 정부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신자유주의 지구화 과정이 정착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이고 더 완만하게 진행되었거나 아니면 금융자본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왜곡된 형태로 실현이 됐을 수도 있겠죠. 이런 가능성들은 분명히 있어요.

그렇다면 왜 그런 선택을 하지 못했는지 물을 수 있어요. 당시의 좌파 세력들은 그런 선택을 하고 싶었지만 만일 그렇게 한다면 반드시 엄청난 혼란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걸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예컨대, 얼마 전에 그리스 총리가 국민 투표하겠다고 한 마디 했는데 전 세계, 특히 채권국인 독일이나 프랑스가 달려들어서 이틀 만에 없었던 걸로 만들어버렸잖아요. 이런 상황을 당시의 영국과 프랑스가 경험했겠죠. 여기에 맞서려면 70년대 초에 칠레가 경험했던 것처럼 대중 운동의 전면적인 부상, 다시 말해 좌파 정부와 대중 운동 세력이 유기적인 연계를 맺으면서 장기적인 혁명을 시도해야만 했어요. 장기적이고 혹독한 혁명의 과정을 겪어야 했는데, 차마 그런 선택을 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자신감이 없었던 거죠. 자신감이 없었던 중요한 이유는 당시 좌파가 생활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만약 대안적인 선택을 한다면 과연 노동 운동이 따라올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던 거예요. 신자유주의는 이런 일련의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긴 역사적 선택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시장’과 ‘국가’ 보다 우위에 서야 할 ‘사회’ 자체를 새로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어쩌면 ‘구조’ 개혁의 여러 과제들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이 아닐까. 오늘날 이 ‘사회’는 자본-임노동 관계나 국가 관료 기구의 거대 체계로부터 자율성부터 되찾아야 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자체를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점에서 여성주의와 생태주의는 기존 사회주의 운동에 부족했던 새로운 각성을 불러 일으켰다.”

Q12 좌파 정치가 국민 국가에 지나치게 긴박되어 있었다는 역사적 한계를 지적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생활 세계를 바꾸는 정치와 지구 질서를 바꾸는 정치는 국민 국가의 정치와 어떻게 연동될 수 있나요.

새로운 정치를 발명해야 한다는 게 굉장히 거대한 과제로 보이는데, 사실 20세기에 걸쳐서 좌파 운동이 만들었던 질서 역시 거대한 실천들의 결과였거든요. 보통선거제도를 도입하고 국민 국가를 만들고 독립을 쟁취하는 등 이 정도의 거대한 실천들이 21세기에도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19세기에도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든다는 게 굉장히 거대하고 막연하게 다가왔었을 텐데, 20세기의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점차 현실로 만들었던 거잖아요. 마찬가지로 21세기에도 국민 국가로 한정되지 않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기 위한 실천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있어야만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어요. 몇몇 국가에서 케인스주의 정책을 복원한다고 해서 신자유주의가 바뀌는 게 아니에요. 신자유주의 자체가 인류사적이고 문명사적인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그 정도의 인류사적이고 문명사적인 프로젝트가 가동이 되어야만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생활세계를 바꾸는 정치는 다른 게 아니라 생태주의나 여성주의의 문제의식을 이어 받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이를 자본주의 변형에 적용한다는 건 결국은 생태 사회주의 혹은 녹색 사회주의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과 같아요. 구조 개혁 좌파의 중요한 인물인 앙드레 고르(Andre Gorz)가 생태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은 이렇게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거죠. 국민 국가의 정치를 재탈환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생활 세계의 정치를 복원해야만 한다는 거예요.

지구 질서를 바꾸는 정치는 가령 남미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에요. 다수의 국민 국가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서,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남미연합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그러면서 공고했던 신자유주의 지배질서에 균열을 일으키는 가장 전위적인 세력이 되고 있거든요. 저는 이런 움직임들이 남미뿐만이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했던, 지구 질서를 바꾸는 정치가 다소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느껴질 텐데, 이러한 움직임들을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존의 국민 국가 정치에 기반을 두면서도 그것을 가능케 하는 생활 세계와 이를 넘어서는 지구 질서의 실천들을 동시에 아우르는 변증법적인 과정으로 정치를 사고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를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국민 국가를 넘어서는 정치형태를 생각하기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에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틀을 만든 것은 신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어요. 지구적 차원의 지배를 관철시키는 틀을 만든 거잖아요. 반면에 좌파 세력은 그런 틀을 못 만들어왔죠. 그런데 남미의 경우 스스로 그런 틀을 만들어가고 있는 거예요. 국민 국가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남미 국가들의 공동 의지가 관철되는 틀을 남미연합이라는 형태로 만들어가고 있는 거죠. 지구 질서 차원의 틀을 만들어가기 위한 구상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남미연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겁니다. 새로운 형태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가장 앞서서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Q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가 한창인 지금, 우리는 과거의 패배를 미래의 승리를 위한 실험으로 소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나요.


스웨덴의 사회학자 예란 테르보른(Therborn, Goran)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가 의미는 있지만 탈자본주의의 전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준비되어 있지 못한 것 같다고 냉정하게 평가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과거에 진보 좌파가 준비 했던 여러 대안 및 전망들과 비교해보면 미래를 준비하는 패러다임이 없는 게 사실이에요. 오랜 시간 동안 신자유주의를 경험하고 나서 자생적으로 여러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과거 맑스, 레닌주의나 사회민주주의처럼 일정하게 정형화된 틀을 갖추지는 못한 상태에요. 그런 의미에서 아직은 초보적인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전망을 갖게 하는 것은 이런 운동이 어떤 예측가들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전지구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우리가 촛불시위를 통해서도 경험했지만 대중은 인지적인 능력이나 혁명의 잠재적 역량에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앞서 있는 상황이에요. 68 혁명도 TV를 통해서 빠르게 확산되었는데, 지금은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광범위한 인터넷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잖아요. 아주 빠른 속도로 저항주체 더 나아가 대안주체가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새로운 내용을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서 이와 마찬가지로 속도를 내서 노력할 필요가 있겠지요. 한국뿐만 아니라 전지구적으로도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준비가 아직은 미흡한 상태이기 때문에 좀 더 분발할 필요가 있어요. 제가 이 책을 쓰면서 여러 문제의식을 던진 이유도 이런 과제들을 급하게 하지만 내실 있게 준비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몇몇 정책만 제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거든요. 부자 증세만 하면 해결할 수 있다거나 은행 국유화만 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이런 건 아니거든요.

Q 앞으로의 신자유주의를 전망한다면요.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정책 패키지가 아니라 인류사적인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어요.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로 신자유주의가 몰락기에 접어든 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에 다른 질서로 대체되기는 힘들 것 같아요. 기존의 대안은 몰락했지만 새로운 것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그람시적인 위기 개념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세상을 지배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이건 굉장히 무서운 얘기에요. 이 시간은 전지구적인 위기의 시기이기 때문에 1920~30년대의 대공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다만 이런 시대일수록 더욱 근본적인 대안이 등장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커지기 마련이겠죠. 항상 종말론이 그렇잖아요. 무서운 종말의 가능성과 구원받을 가능성이 함께 온다는 것, 다시 말해 종말은 곧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기도 하기에, 이 둘을 함께 볼 필요가 있는 거지요. 힘들지만 흥미진진한 시대가 우리 앞에 열려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기존의 정치 형태를 뛰어넘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를 스스로 발명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국민 국가의 정치에 적응해온 과거 좌파 정치의 역사가 놓쳤던 정치의 또 다른 층위들을 환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또 다른 층위의 정치들을 국민 국가 수준의 도전과 결합시켜야 한다. 이 책의 첫머리에서 제시한 도식을 따른다면, 그것은 곧 국민 국가의 정치를 생활 세계의 정치, 지구 질서의 정치와 (재)접속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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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27. 15:13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
『안전, 영토, 인구』의 역자 심세광을 만나다.


 

인터뷰 및 편집 박승일

Q 푸코는 책의 서두에서 이번 강의의 주제가 생명관리권력(bio-pouvoir)이라고 말합니다. 이 개념이 설명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고 이를 계기로 푸코의 작업에 생기는 변화는 무엇인가요?

푸코에게 68년 5월은 학문적 전환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어요. 아시다시피 60년대 푸코의 논의를 특징짓는 것은 고고학입니다. 담론이나 에피스테메 같은 언어적 실천들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앎의 대상으로 구축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었지요. 1966년에 쓰인 『말과 사물』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데 68년을 통과하면서, 푸코는 언어적 실천과 상관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는 정치적인 실천 혹은 비언어적인 실천들의 효과를 그동안 균형 있게 탐구하지 못했다고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68년의 영향이 있었겠지요. 그래서 고고학에서 계보학으로 넘어가게 되고, 이후 75년에 『감시와 처벌』을 쓰게 되죠. 그런데 이 사이에 푸코가 행한 강연 ‘Omnes et Singulatim’, 즉 ‘전체적임과 동시에 개별적으로’에 비추어 보면 『감시와 처벌』은 개별적인 것에 대한 천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서 제시되는 규율권력이란 철저하게 개인과 개인의 행동 방식을 표적으로 삼는 권력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전체적인 것에 대한 분석, 즉 개인들로 이루어진 무리를 조절·관리·통제하는 테크놀로지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지식 및 실천에 대한 분석이 필요해집니다. 이것이 생명관리권력이라는 용어가 제출되는 배경입니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네요. 『성의 역사: 앍의 의지』에서 지적한 것처럼, 푸코가 보기에 근대의 통치성은 생명관리정치(biopolitique)로 특징지어 집니다. 그리고 이 생명관리정치는 두 축을 토대로 하죠. 바로 규율권력과 생명관리권력입니다. 규율권력은 개인을 핵심 대상으로 삼는 반면, 생명관리권력은 개인들의 집합이지만 또 개인으로 환원될 수 없는 무리, 즉 종으로서의 인구를 대상으로 삼습니다. ‘전체적임과 동시에 개별적으로’, 즉 생명관리권력과 규율권력이라는 두 축에 기반을 둔 테크닉이 생명관리정치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종의 단절이 있는 것처럼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규율권력과 생명관리권력을 아우르는 생명관리정치와 관련해 살펴본다면 단절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푸코가 근대의 권력 테크놀로지를 구성하는 두 개의 핵심요소를 순차적으로 발견했기 때문이며, 또한 장치라는 게 하나의 장치가 다른 장치를 단절적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메커니즘을 완성하는 동시적인 작동이기 때문입니다.

Q 사법(주권)-규율-안전 메커니즘 각각의 특징은 무엇이고 이들이 맺는 관계는 어떠한가요?

법과 주권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네요. 중세는 전쟁사회였어요. 전쟁이라는 물리적인 힘을 통해 영토를 제압하는 식이지요. 하지만 십자군 전쟁 이후 변화가 생깁니다. 십자군 전쟁으로 영주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성직자이자 지식을 독점한 사람들이 전쟁의 지배에서 법의 지배로 전환을 꾀합니다. 법의 패러다임이 보편화되면서 결국 중세 봉건 영주의 권력이 안녕을 고하게 되는 거죠. 지금의 우리는 항상 근대 이후의 법만 생각하지만 중세 봉건제 이후 등장한 절대 군주제 역시 법을 통해서 통치되었습니다. 물론 이 법은 당연히 왕이 임의로 정한 법, 즉 사법이고요. 여기서 군주는 법이라는 울타리 바깥에 존재하는 초월자였습니다. 그래서 푸코는 마키아벨리가 근대적이지 않다고 얘기했던 거죠.

중요한 건 전근대적인 의미의 법과 근대적인 의미의 법에서 주권자가 차지하는 위치가 다르다는 겁니다. 근대적인 의미의 법에서 주권자는 절대 법 바깥에 있을 수 없게 됩니다. 근대국가에서는 군주 자체도 법의 지배를 받는, 법에 내재하는 한 요소에 불과합니다. 국가이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볼 수 있는 초월적 존재가 이제는 영토의 일부로 내재화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법에 의한 통치가 핵심요소가 되면서 전근대와 근대를 가르는 기준 역시 주권자의 위치, 즉 법 바깥에 군림하는지 법 안에서 통치하는지의 차이로 바뀝니다. 입헌군주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의 지배를 받는 통치자, 다시 말해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국가라고 하는 것이 정치와 경제 혹은 모든 것의 목표가 됩니다. 이 시기가 바로 근대국가가 탄생한 시기이자 법에 의한 지배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규율과 안전 메커니즘은 아마 인터뷰 중에 계속 설명할 것 같으니 차차 보도록 합시다.

Q 주권과 규율 그리고 안전 메커니즘이 공간을 다루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주권이 영토를 목표로 삼는다는 것은 방금 설명했으니 규율을 살펴보도록 하죠. 푸코는 리슐리외라는 도시를 예로 듭니다. 로마병영을 모델로 삼고 있는 이 도시는 매우 인공적인 공간이에요. 원래부터 있던 마을이나 도시를 재정비한 곳이 아니라 허허벌판에서 새롭게 건설된 곳이거든요. 이 도시는 치밀하게 격자화 되어 있는데, 이러한 격자화의 목적은 모든 것을 보고 또 모든 것을 통제하기 위해서 입니다. 규율도시는 도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관리·조절·통제하기 위해 이에 걸맞게 공간을 구획하고, 또 그곳에 거주하는 개인들을 각자의 사회적인 신분이나 맡은 역할에 따라 인위적으로 배분하는 체제를 갖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워진 도시는 경제적인 활동, 풍속, 도덕, 욕망 등 개인의 모든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고 또 안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를 가능하게 합니다. 

하지만 근대국가가 탄생하면서 도시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뀝니다. 푸코는 낭트라는 도시를 예로 드는데요. 근대도시는 모든 것을 네트워크로 연결합니다. 여기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근대 생물학의 영향을 받은 순환이라는 개념입니다. 순환을 막으면 안 되고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거죠. 이제 관심은 인체의학, 생물학, 생리학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역시 나쁜 순환과 좋은 순환을 구별해서 나쁜 순환을 최소화하고 좋은 순환을 최대화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안전의 문제가 싹트게 되는 겁니다. 범죄와 질병과 같이 통제는 가능하지만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위험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는 거죠. 여기서도 국가의 개입은 제한됩니다.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내고 또 그것에 부단히 개입하면서 철저한 통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요소들을 일단 인정한 뒤 이들 사이에 적절한 순환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 개입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고려되기 시작합니다. 현재의 순환을 내버려두는 일, 즉 움직이고 운동하게 ‘잘’ 내버려두는 일에 관심을 갖는 거죠.

Q 중상주의와 중농주의의 해법은 명백히 다른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하게 내버려두는’ 자유가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요. 안전장치와 자유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가요?

앞서 말씀드린 내용과 연관됩니다. 리슐리외와 같은 규율적 도시체계는 경제사의 중상주의 혹은 중상주의적 내치(內治, police)에 상응한다고 할 수 있어요. 내치 역시 모든 인민과 인민의 활동을 표적으로 삼아 부단히 개입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중상주의는 거의 완벽한 통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식량난’에 대처하는 중상주의의 방식이 애초부터 식량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식이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반면 중농주의자는 식량난에 전연 다른 입장을 취합니다. 식량난은 환상이니까 가만히 내버려 두면 된다는 입장이에요. 아담 스미스나 리카르도 같은 정치경제학자들의 자유주의적 방임이라 할 수 있겠네요. 중농주의의 핵심은 죽어야 될 사람들은 죽게 내버려둬야 다수가 산다는 것, 즉 전체를 구하기보다는 일부를 희생시켜서 다수를 구하는 것이에요. 인식론적인 틀 자체가 바뀐 겁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방임을 특징으로 하는 자유주의의 메커니즘이 놓여 있고요.

또 다른 예로 나병과 흑사병 그리고 천연두를 봅시다. 나병은 나병에 걸린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을 분할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마을 밖으로 추방하는 거지요. 하지만 흑사병은 조금 다릅니다. 추방하기보다는 흑사병이 창궐한 지역을 격리하는 형태를 취하거든요. 뿐만 아니라 엄격한 규율을 강요합니다. 전염병에 걸렸는지 여부를 계속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집 바깥으로 언제 나갈 수 있는지,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등의 규칙을 강제하거든요. 앞서 말한 규율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반면 천연두는 추방도 격리도 아닌 접종의 방법을 택합니다. 쉽게 말해 병에 걸리게 내버려두는 겁니다. 즉 접종을 통해 병에 걸리게 내버려 둠으로써 역설적으로 신체가 일정한 저항력을 상실하지 않게 만드는 거지요. 하지만 여기서 관심의 초점은 개인의 신체가 아니라 인구라는 집단적 신체입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정신병의 형태건 실업의 형태건 범죄의 형태건, 국가가 보존되기 위해서는 ‘찌질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겁니다. 중상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사람들은 뿌리 채 뽑혀야 되지만, 중농주의적 입장 혹은 자유방임적 입장에서는 국가라는 신체가 적절히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러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존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배제되는 사람들이 존재해야만 역설적으로 그렇지 않은 다수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죠. 푸코가 『성의 역사』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가 이러한 근대의 통치 메커니즘입니다.

Q 식량난과 전염병 모두 안전메커니즘의 유형을 따르는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경제학이 도입되기도 했고요. 여기서 인구라는 새로운 개념의 등장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앞서 중농주의를 통해 설명했듯이, 정치경제학의 탄생은 곧 자유주의의 탄생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유주의의 통치와 그 이전의 절대군주제와의 차이는 뭘까요. 전근대적인 주권국가에서는 통치의 대상이 영토였던 반면, 근대 자유주의 하에서 영토는 통치의 주요한 목표가 아니에요. 오히려 중요한 것은 영토에 포함된 하나의 요소인 무리 입니다. 중세만 하더라도 땅 덩어리가 얼마나 큰지가 중요했기 때문에 그거 갖고 싸웠던 거 아닙니까? 그런데 자유주의의 탄생 이후에는 영토에 거주하는 인민에 포커스가 맞춰지게 돼요. 근대 국가의 틀이 형성되면서 주안점이 분산되기 시작한 거죠. 바로 인구라 할 수 있어요.

근대 이전의 신민들은 거의 통치를 받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반은 인간이고 반은 그냥 위험한 동물일 뿐이었거든요. 평등, 자유라는 개념의 인식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말이죠. 절대군주주의 시대, 중상주의 시대 때 통치자가 피통치자를 보는 인식론적 관점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도구에 불과했어요. 그러니까 세제 형태도 단순히 징발이었던 거죠. 그랬던 것이 프랑스 혁명을 통해 부르주아 사회가 도래한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비로소 어떤 변화가 생겨나요. 바로 정치경제학적 변화겠죠. 푸코의 『말과 사물』을 보면 알겠지만 이전까지는 경제학이란 말이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그냥 부의 분석만 있었지요. 철저하게 물물교환에 입각해서, 상품의 표상 가능한 가치가 뭐냐는 물음이었던 거죠. 여기에는 인간의 힘이라든가 노동력이라든가 인간을 어떻게 조절·관리·통제해야한다는 식의 사유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치경제학은 영토에 주안점을 둔 통치로부터 영토에 거주하는 인간에 대한 통치로 넘어가는 것을 잘 보여주죠. 다시 말해 정치경제학은 영토에 거주하는 인간의 무리인 인구를 통치자가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생산하고, 어떻게 활용하는지 그리고 이로부터 일탈할 때 어떻게 조절·관리·통제할 것인가를 일컫는 총체적인 기술, 즉 통치술을 일컫습니다. 사망자 수, 병자 수, 전염병의 관리, 노동과 부의 관계 등에서 통계학과 확률은 인구의 활동을 측정하고 이로부터 경제적 효과를 이끌어내는 주요한 도구가 되지요.

“우리의 현재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의 국가화가 아니라 국가의 ‘통치화’라고 부를 만한 것입니다.”

Q 푸코는 “안전, 영토, 인구”라는 제목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통치성의 역사를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데요. ‘국가의 통치화’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통치(government)라는 말 자체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 혹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일로서 여겨져 본 일이 없었습니다. 예컨대, 여자가 밥을 많이 먹어서 통치하기가 힘들다는 식으로 쓰였거든요.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하고는 무관하게 일상생활에서 마구 쓰였던 것들이 근대에 들어와서 국가가 하는 모든 일로 얘기가 됩니다. 국가하고 전혀 무관했던 일들이 18세기, 19세기 초에 완전히 국가가 전담해야 하는 일로 정착이 돼요. 푸코가 묻는 것은 이것을 둘러싸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거예요. 그럼 해답이 나오죠. 통치의 다양한 행위와 함의가 국가와 관련된 불가분의 실천으로 정착되는 역사적인 어느 순간에 비로소 통치가 현재의 의미로 결정화돼요. 어떤 특유한 실천이 결정화되는 그 순간에 실천과 더불어서 국가가 탄생한단 말이죠. 푸코가 보기에, 서구의 근대가 시작되는 18세말과 19세기 초에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통치가 체계화되면서 어떤 장치를 구성하더라. 그 실천의 효과가 국가라는 겁니다.

Q 그리스-로마의 사유와는 완전히 이질적인 사목권력이 그리스도교 교회를 매개로 해서 도입되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사목권력은 앞서 살펴본 통치성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나요?

사목(司牧)은 고대 근동지역에서 원형적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어요. 성경에도 나오지만 사목의 대상은 양떼입니다. 목자가 책임지는 건 양떼인데, 당연히 양떼는 무리지요. 무리는 이동 중에 있기 때문에 어떤 영토를 점유하고 있지 않아요. 다시 말해 특정한 영토를 점유하고 있는 고정된 대상에 대한 관리나 통치가 아니라 늘 어디선가 계속적으로 이동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통치라는 거예요. 유동성, 이게 바로 앞서 말씀드린 자유주의와 똑같은 겁니다. 필요할 때와 필요하지 않을 때, 최적화된 행위와 최적화되지 않은 행위를 매번 확인하면서 거기에 조절적으로 개입하는 거예요. 전체를 일괄적으로 통제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일단 인정한 가운데 계속해서 유동적인 조절을 하는 작업이란 말이죠. 이게 바로 무리에 대한 목자의 배려입니다. 근데 여기에 모순이 있는데, 개체와 전체를 모두 인도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를 위해서는 전체를 인도함과 동시에 무리를 구성하는 개체 하나하나를 다 챙겨야 합니다. 이동하는 무리 전체를 관리하는 동시에 어린 양에게 먼저 연한 잎을 먹이고 나이든 양에게는 억센 잎을 먹이는 식의 섬세한 관리가 필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때로는 굉장히 모순적인 게 나타나죠.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 전체를 희생하기도 해야 하니까요. 이게 바로 Omnes et Singulatim, 다시 말해 전체적이면서 또한 동시에 개별적인 방식의 통치입니다. 전체를 구성하는 개체를 잘 돌볼 수 있을 때 전체를 돌볼 수 있고 또 그 역도 마찬가지인 불가분의 관계이죠.

이러한 사목권력은 근대 국가 이전까지 아이러니컬하게도 신앙의 차원과 양립해 왔어요. 그런데 정교분리 후 세속화가 진행되고 근대국가가 도래하면서 교회가 이 권한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죠. 그러나 이게 없어진 게 아니라 세속화된 권력의 테크놀로지로 흘러들어가 버렸다는 겁니다. 바꿔 말해 사목권력이 근대국가의 통치에 핵심이 되었다 이 말이에요.

여기서 발전하게 되는 지식이 통계학과 같은 것들입니다. 오늘날에는 통계학이 수학의 일부로 축소됐지만 원래는 그게 아니었어요. 통계학은 원래 국가학이었어요. statistic은 국가(state)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한 학문이었거든요. 통치자는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대해서 낱낱이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혁명적인 변화이죠. 절대군주 시대에는 이런 것이 불가능했어요. 인구통계를 예로 들면, 이전에는 역병과 같이 급격한 변화가 발생할 때만 인구 조사를 했어요. 이건 상시적인 통계가 아니라 불연속적이고 일시적으로 했던 작업이에요. 그러던 것이 근대국가에서는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자 국가를 통치하는 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 됩니다.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물적, 인적 자원에 대한 완벽한 지식이 요구되는 거죠. 이로부터 정치경제학, 인구통계학, 인력관리와 같은 여러 지식체계가 나옵니다. 인력관리의 예는 『성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인간 종으로서의 성을 통제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다보니 성의학, 생리학, 인류학, 인종학 등이 19세기에 권력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게 됩니다. 요컨대, 통치자가 전체와 개인을 완벽하게 알고 그들의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지속적인 감시·조절·관리·통제하는, 이전과는 새로운 목표가 출현한 것이죠.

“[그리스도교적] 사목제도, 새로운 외교적·군사적 기술, 마지막으로 내치, 저는 바로 이 세 가지야말로 서구의 역사에서 국가의 통치화라는 근본적인 현상이 발생할 수 있게 됐던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푸코는 사목적 합리성과는 다른 통치합리성, 즉 통치이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통치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적어도 근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국가는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었어요. 최후의 심판이라는 목적에 이르러 세계는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근대를 알리는 신호탄을 푸코는 베스트팔렌조약이라 하고 있습니다만, 이 조약은 앞서 말한 것과는 완전히 단절되는 거예요. 그 조약을 체결할 당시에 존재하던 국가들 간의 영원한 공존이자 평형이 명문화 되거든요. 그래서 베스트팔렌 조약을 보면 오늘날의 유럽을 볼 수 있는 거에요. 조그만 나라들, 중간 크기, 그리고 대국들, 이것은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되어야한다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진 겁니다. 오히려 이제는 이들 간의 평형이 문제가 돼요. 평형 상태에서 생존이 문제가 되고요. 그러니까 국가에 대한 이전의 관념과 베스트팔렌조약 이후의 관념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지금 존재하는 국가의 영속적인 평형이 목적이 되는 겁니다. 여기에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의 제국이나 합중국으로 통일이 되지 않고 왜 이런 형태를 취하면서 유지돼야 하는가, 바로 여기에 핵심이 있는 거예요. 푸코는 이 지점에서 국가이성을 말합니다. 국가이성의 핵심은 국가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겁니다. 국가에서 벗어날 자는 왕이고 뭐고 아무도 없으며, 모든 것은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라는 거예요. 이 괴물 같은 이성이 바로 국가이성이라는 거죠. 그래서 쿠데타는 가장 탁월한 국가이성의 현시인 겁니다. 왜냐하면 쿠데타야말로 국가의 구제라는 이름으로, 국가이성을 법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국가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최후의 이성이기 때문입니다.

Q 근대 국가의 계보학을 구성하는 출발점에 통치성을 위치시키는 건가요? 푸코가 이 작업을 통해 보려한 바는 과연 무엇인가요?

강의의 제목이 안전, 영토, 인구잖아요.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제목과 내용이 잘 안 맞아요. 왜냐하면 푸코도 인정하듯이, 안전-영토-인구의 틀에서 안전-통치-인구라는 새로운 틀로 이동하고 있거든요. 책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푸코는 영토라는 전근대적인 개념을 안전과 인구라는 근대적인 개념으로 샌드위치처럼 에워싸려고 한 것 같아요. 하지만 강의를 하면서 푸코 스스로도 놀랄만한 사유의 전환이 발생합니다. 아시겠지만 푸코의 문제의식을 관통하는 핵심은, 권력은 편재한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권력이 편재하며 심지어 생산적이기까지 하다면 이로부터 해방 혹은 저항의 가능성을 생각하기란 어렵다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단초를 통치성(government)에서 찾았다고 할 수 있어요.

푸코의 마지막 강의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요. 제목이 『자기와 타인에 대한 통치』입니다. 권력의 문제를 통치의 문제로 확장시켰을 때 나름의 해결책을 발견한 거예요. 강의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거죠. 통치로 넘어가야겠다. 예컨대, 오이코노미아, 즉 경제학이란 말의 전신인 가정 관리술이란 말이 『성의 역사』에 나오죠. 그리고 3권에는 자기 돌봄(국역본에는 자기배려로 번역됨)이란 말이 나와요. 자기 돌봄을 할 수 있을 때 타인을 돌볼 수 있고, 타인을 돌볼 수 있을 때 상위의 국가를 돌볼 수 있고, 국가를 돌볼 수 있을 때 세계의 평화를 돌볼 수 있다는 겁니다. 단절된 게 아니란 거예요. 다시 말해 정치, 미학, 윤리, 도덕 등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이 돌봄인 것이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푸코, 예컨대 미국식 비평을 통해 제시되는 푸코는 전기, 중기, 후기 사이에 단절이 있는 것처럼 나타나요. 단호하게 말씀드리지만, 아닙니다. 푸코가 죽기 직전인 84년에 한 인터뷰에서, 결국 지금까지 자신의 문제계는 권력이 아니라 주체였다고 말합니다. 주체의 문제였다는 거예요.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통치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의 여분으로서 타인을 어떻게 내 통치의 연장으로서 통치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의식이었던 거죠.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아포리아 앞에서 정치의 차원을 포기하고 윤리적이거나 미학적인 차원으로 후퇴했다는 비판이 많았는데, 제가 보기에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정치, 철학, 과학, 삶 자체가 사실은 한 몸이라는 걸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단절이지만 또한 동시에 단절이 아닌, 역설적이게도 이걸 보여주고자 통치성이란 말을 쓴 거죠. 윤리적, 정치적, 미학적 문제가 분리 가능할까요? 아름다운 것과 정의로운 것 그리고 윤리적인 것이 분리될까요? 이것은 분리 불가능한 하나의 실체에요. 여기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건 조화로움이죠. 이것은 탁월하게 정치적인 문제에요. 가장 과격하게 정치적인 문제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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