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7:41


감정이 메말랐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기쁘거나 화가 나지도 않고 슬프거나 유쾌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무덤덤하기만 합니다. 이외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 갸우뚱해집니다. 우울한 것만도 아닌 이런 감정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이 또한 풍부한 감정을 요구하는 까닭에 스스로도 이게 도대체 어떤 감정인지 헷갈리곤 합니다. 편의상 ‘애매한’ 감정이라고 부를까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애매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상황을 더 애매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연기하는 법을 터득했지만 혼자 있을 때 혹은 여럿 중에 혼자 섬이 될 때는 어느새 이 애매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남들이 웃을 때 울고 울을 때 웃을 수 있으면 차라리 낫겠지만 남들이 웃거나 울거나 상관없이 애매한 상태로 지속되는 이 감정을 도무지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 외로움도 우울도 아닌, 짜증도 좌절도 분노도 아닌, 관조나 무관심도 아닌, 기쁨이나 즐거움은 더더욱 아닌, 애매함 그 자체. 어쩌면 저는 이 감정의 정체를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을 잃었는지도 모릅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서점에서 시집을 하나 샀습니다. 시집을 산 건 처음입니다. 제목이 강렬합니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소설을 읽은 적도 시를 읽은 적도 기억 속에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중에는 소설책과 시집이 단 한 권도 없습니다. 아, 갑자기 부끄러움이 밀려옵니다. 소설과 시를 알지 못하고 살아온 삶에 대한 회한 때문이 아니라 소설과 시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 자신했던 만용과 오만이 들통 났기 때문입니다. 대학원 내내 훈련했던 비판적 사고가 삶까지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건 아닌지, 텍스트를 읽어내는 방법론적 엄밀성으로 생동하는 삶을 평면화한 건 아닌지 고민이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하다보면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고 삶을 대하기 십상이거든요. 책 속의 회색빛 말들이 삶 속으로 전치되는 것도 이상하지만은 않습니다. 날 선 비판 외에는 아무 것도, 떨어지는 낙엽의 쓸쓸함도 추운 아침의 부산스러움도 따뜻한 커피의 그윽함도 담아낼 수 없는 빈곤한 말이 애매한 감정과 맞닿아 있는 건 아닐까요.

성급한 다짐일수도 있습니다. 당장 기말 페이퍼와 종합시험, 밀려 있는 전공 서적들과 아직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논문까지,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한가하게 소설이나 시를 읽을 여유가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한가하게’ 시간을 내 보려 합니다. 작은 커피숍에 앉아 잠시나마 인터넷을 닫고 종이 넘기는 한가로움을 느껴보려 합니다. 감정에는 애매한 감정 말고도 애틋함, 애잔함, 애석함, 애절함 등 미세하지만 확연히 다른 여러 감정들이 있음을, 그리고 저에게도 이런 감정이 있음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소설이나 시를 읽는다고 감수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급하게’ 시도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가 없네요. 변화는 실패한 시도들과 실패할 시도들을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작으로 이번 호에서는 소설과 시 그리고 만화를 소개하려 합니다. 아마 많은 학우들이 학업과 논문에 지쳐 감수성(性)을 감수성(城)인 줄로만 알고 있을 것 같네요. 부디 대학원신문 지면을 통해서라도 성급한 시도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서 말한 시집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닫습니다.

“사람이 시 없이 살 수 있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시 없이 살고 있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살고 있는 것은 현실에 대한 그들의 관념일 뿐이다.” -이성복

편집장 박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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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5:49


오승진 (서강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상해의 역사적 이중성

총학생회가 주최하는 2011년 하계 중국역사문화탐방은 상해(上海), 항주(杭州), 소주(蘇州)의 세 곳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지역은 상해라고 할 수 있다. 상해는 오늘날 중국의 경제발전을 선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이다. 그러나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로 꼽히는 중국문명을 염두에 둔다면, 상해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된 것은 200년도 안 되기 때문에 중국사를 상징하는 역사성을 갖춘 곳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근현대사에 있어 상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한국의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처음으로 세워진 곳으로 한국독립운동사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사적 장소이다. 따라서 중국역사의 긴 호흡에서 상해는 별다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지만, 근현대사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이러한 상해의 특징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역사에서 가지는 상해의 역사적 이중성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러한 역사적 이중성은 상해의 여러 모습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이번 탐방에서 느낄 수 있었다.

상해는 남송(南宋)시대 이후로도 항주와 소주보다 중요한 도시는 아니었다. 그러나 남중국의 무역활동이 활발해진 가운데 19세기 중반 아편전쟁의 결과로 청과 서양열강이 남경조약을 맺으면서 상해가 서양에 개항하였다. 그 때부터 상해에 서양 각국의 조계지(租界地)가 들어서면서 상해는 일약 중국근현대사의 중심도시로 발돋움했다. 이러한 이유로 상해는 중국에서 서양문물을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이 되었고 서양식 건물도 많이 들어서게 되었다. 치외법권 지역인 서양의 조계지는 처음에는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을 상징하는 곳이었지만 일본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 된 이후에는 그에 저항하는 제일선이 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위치한 곳도 상해의 프랑스 조계지였다. 또한 상해는 중국공산당의 성지이기도 하다. 올해로 창당 90주년을 맞이한 중국공산당이 창당을 위해 모였던 중국공산당 제1회 전국대표대회가 바로 상해에서 열렸던 것이다. 현재 상해에서 최신식의 쇼핑가로 꼽히는 가장 인기 있는 카페촌인 신천지(新天地)에는 중국공산당 제1회 전국대표대회 회지(會址)가 있다. 프랑스 조계지였던 곳인 신천지는 가장 서구화된 거리인 동시에 중국공산당이 탄생한 곳이다.

상해는 오늘날 중국의 경제발전을 상징하는 도시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오랜 문화적 역량과 역사를 상징하기에는 버거운 도시이기도 하다. 상해는 중국의 근현대사에서 서양의 문물이 가장 먼저 수입된 곳이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식 사회주의가 태동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해가 가지는 이중성은 상해박물관이 상해는 배제하고, ‘중국’만을 드러내기 위한 전시 구성방식을 택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역사문화탐방에 대한 몇 가지 제안

필자는 이제 수료생이기 때문에 앞으로 참가할 기회가 없겠지만, 총학생회에서 주최하는 역사문화탐방에 대해 후배들을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번 역사문화탐방의 경우 미리 답사지도를 만드는 등의 사전준비가 이전에 비해 많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시의성에 맞춘 준비가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중국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일을 며칠 앞둔 일정이었음에도 그러한 부분을 탐방계획에서 고려하지 못한 점이 매우 아쉽다. 더불어 여행사와 현지 가이드에 너무 의존하다 보니 주제의식이 명확한 역사문화탐방이 되지 못한 것 같다. 비용과 사전준비 등의 여러 문제 때문에 여행사를 통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대학원생들이 가는 탐방이면 일반적인 관광코스와는 다른 확실한 차별화가 필요하다. 또한 기본적으로는 단체로 움직이지만, 상황에 따라 개인적으로 또는 조별로 다른 일정을 짜는 것도 좋을 듯하다. 즉, 도시 간 이동 등은 단체로 움직여야겠지만 도시 내의 일정 중에는 배낭여행처럼 보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안전사고의 위험 등이 증가할 수도 있지만, 참가한 대학원생들의 전공이 다양한 만큼 관심을 가지는 것도 다양할 것이고, 가이드의 도움 없이 현지에서 움직이는 것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별 활동이 끝난 후 저녁시간에 함께 모여 자신들이 어떤 코스로 다니면서 무엇을 봤으며, 무엇을 느꼈는지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면 매우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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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5:45

박승일 기자

대학원 신문 제작과정을 보자. 우선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회의를 연 후 기획의도에 맞게 필자를 섭외한다. 원고료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지면도 아니기에 필자 섭외는 항상 두세 번씩 미끄러지기 일쑤다. 거절의 겸연쩍음도 잠시, 다시 필자를 찾아 나서길 수차례 하다 보니 이제는 전보다 청탁 성공률도 제법 높아졌다. 필자들에게 기획서를 보내고 마감 일자에 맞게 보내주길 당부한 후 남은 지면을 채울 또 다른 작업을 시작한다. 멀게는 대구까지 찾아가서 몇 시간이고 인터뷰를 한 후, 녹취를 풀고 입말을 글말로 정리하다보면 이미 마감이 코앞이다. 중요한 보도 기사가 있을 경우, 관련 인사를 찾아가서 취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해관계가 첨예할 때는 각각의 입장을 균형 있게 배분하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와 함께 학술, 비평, 특집 기사 등 여러 지면을 채우기 위한 작업을 병행한다. 청탁한 글이 하나둘씩 오기 시작하면 서둘러 레이아웃을 짜고 글을 배치한 후 기사 몇 꼭지와 사설을 쓰고, 마지막으로 일면에 들어갈 머리글을 쓴다. 인쇄소에 가기 전 오탈자를 점검하고 각 면에 들어갈 사진을 점검하면 대충 일이 끝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필자들에게 수시로 연락을 취하고 인쇄소와 디자인 조율을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드디어 신문이 나오면 교내 곳곳에 신문을 배달하고 전국 대학원에 우편을 발송하는 일로 긴 작업을 마무리한다. 이 모든 일을 단 두 명이 한다. 

학기 중인 까닭에 전공 세 과목을 빼곡히 들으면서 작업하는 것은 물론이다. 페이퍼를 쓰고 종합시험를 준비하고 심지어는 논문을 쓰는 것도 위의 작업과 병행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방학마다 개최하는 학술 세미나 또한 오롯이 두 명의 몫이다.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보겠다는 생각에, 발간 횟수를 늘리고 온라인 신문도 개설해보려 하지만 번번이 부딪히는 예산 문제에 의지도 열정도 한 풀 꺾인 지 오래다. 굳이 비교하자면, 연대 대학원 신문은 제작인원 5명이 연간 8회를 발간하고, 중대의 경우 제작인원 5명이 연간 10회를 발간한다. 이에 반해 서강대는 2명이 연간 4회를 발간한다. 심지어 2001년(8회 발간)의 예산과 2011년의 예산이 별반 차이가 없기까지 하다. 예산은 그대로인데 제작비는 물가 상승률에 따라 해마다 증가하니 결국 발행 횟수를 8회에서 4회로 줄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계간지가 아닌 엄연한 신문일진데, 계절 바뀔 때마다 한 번씩 나오니 신문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본의 아니게 소홀히 하고 있는 현실이다. 신문이라 하기에 민망하다. 이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2012년에는 연 4회에서 6회로 발행횟수를 늘리고 점차 예산이 확보되면 기존의 8회 발간을 회복하는 게 목표다. 방학마다 내공 충만한 강사를 모셔와 학우들과 함께 빡시게 공부하는 것 또한 목표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전에 임기가 끝나겠지만 이후로도 계속 신문사의 발전을 지켜보고 싶은 바람이 크다.

하지만 이런 욕심도 잠시, 대학원 신문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학우들을 볼 때면, 공부나 열심히 하고 신문은 대충 만들라는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면, ‘이렇게까지 해서 뭐하나’하는 쓴웃음이 새어 나온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더 열심히 하라고 하지 않는, 그야말로 적막한 상황에서 다시 다음 호를 기획하고 필자를 섭외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쩌겠는가. 지치지 않는 수밖에.

한 줄 요약 : 내년에는 발행 횟수 좀 늘리게 기자 좀 충원해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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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5:42


송주현 기자



송주현 기자(이하 송)
최근 <나꼼수>는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데요. 나꼼수가 저널리즘의 환경변화와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요?


원용진 신방과 교수(이하 원) 일단, 기술적인 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나꼼수는 방송의 외연을 넓혔다는 점에서 방송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기술적인 면에서는 단순히 방송이라고 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방송’입니다. 우리가 나꼼수를 방송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것을 방송이라는 범주에 귀속시키지 않으면 현재로서는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냥 방송이라는 용어를 차용하는 거지요. 언젠가는 이러한 형태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리게 될 날이 오겠지요. 같은 맥락으로 팟캐스팅에서 ‘캐스팅’(casting)이란 말 역시 방송(broadcasting)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사실 나꼼수는 단순히 온라인상에 업로드한 데이터 파일로 해석할 수도 있어요. 이름은 붙이기 나름이지만, 사람들은 원래 낯선 것이 등장하면 낯익은 것에 기대어 생각하려고 하거든요.

하지만 나꼼수를 방송의 한 형태로 간주할 경우 추가적인 문제가 생기고 맙니다. 예를 들어 방송이니까 규제나 심의를 해야 한다는 식의 문제 말이에요. 하지만 현재까지는 불특정 다수를 향하는 ‘One to Many’ 형식이 아니라 인터넷상에 파일을 올리면 수용자가 직접 다운을 받아서 들어야 하는 ‘P2P’ 형식이기 때문에 방송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분명한 것은, 나꼼수는 매스미디어가 아니란 사실이에요. 방송이 아닌 개념으로 설명해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설명할 방법이 없죠. ‘김어준의 라디오 방송’이라고 부르는 것도 단순히 편의상 그럴 뿐입니다. 형식 자체가 기존의 저널리즘 환경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나꼼수는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선구자라 할 수 있겠네요.

송 나꼼수만의 차별성이 있다면요?

최근까지 정치풍자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패러디 웹툰’이나 ‘노사모 방송’, 아니면 ‘라디오21’ 정도가 있었어요. 하지만 나꼼수처럼 처음부터 대놓고 정치풍자를 표방하는 프로그램은 전무후무한 것 같습니다. 물론 인터넷 방송 중에도 사회 비판적인 경향의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이들 방송은 스트리밍의 형태로 제공되기 때문에 나꼼수와는 차이가 있어요. 또 패러디가 이런 식으로 ‘절대권력‘을 직접 겨냥한 적도 없었고요. 그런 면에서 굉장히 파격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 나꼼수가 정치에 대한 어설픈 반감만 부추길 수 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나꼼수를 어떤 태도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나꼼수는 듣고 싶은 수용자가 직접 찾아가는 형식이라는 겁니다. 미디어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에서 나꼼수를 본다면 말씀하신 것과 같은 우려를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사람들이 나꼼수라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바로 파일을 다운받아서 듣는 게 아니에요. 사전에 ‘가카헌정방송’인 나꼼수가 가카의 꼼꼼함과 호연지기를 보여준다는 걸 인지한 상태에서 들을 겁니다. 만약 진심으로 가카를 흠모하는 사람이라면 방송을 듣고 갈등이 생길 테니 듣지 않겠지요. 단지 나꼼수에서 웃고 떠드는 걸 듣는 게 목적이라면 이념적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들을까요? 직접 찾아가는 형식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즐길 수 있는’ 수용자들이 들을 겁니다. 이 중에 정권을 막연히 싫어했던 사람들은 나꼼수에서 제시하는 여러 사실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강화하는 계기로 활용하겠지요. 이는 분명 설득의 기능과는 다릅니다. ‘강화작용’으로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나꼼수를 대안적 미디어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요. 물론 분명히 대안적인 역할은 하고 있죠. 그래도 나꼼수가 스스로 언론이라는 지위를 바라거나 격상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대안언론을 외치며 등장한 것이 아니라 하다보니까 대안적이 된 셈이죠. 그 이유는 물론 마땅히 다뤄야 할 사안들을 기존 언론에서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고요. 기존 언론에서 이러한 문제들에 관심을 가졌다면 나꼼수가 이만큼 인기를 끌었을까요? 따라서 특정 상황이 나꼼수를 대안적으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기존 언론들의 비겁함과 나태함이 결국 사람들에게 나꼼수를 대안적인 형태로 받아들이게 한 것이죠.

아마 나꼼수는 대안언론으로 자리 잡으려 하기보다는 현상유지와 변형에 주력할 것 같아요. 언론이라고 하면 시스템화 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엄격한 규제에 노출되기 쉬우니까요. 열악하긴 해도 차라리 일주일에 한 번씩 팟캐스트를 통해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청취자와 소통하기를 선택하는 편이 현명합니다. 이를 문화적으로 해석해 보면, 나꼼수는 이 정권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목요일 미니시리즈’라 할 수 있어요. 드라마의 최고 묘미는 기다림이잖아요. 목요일마다 기다려지는 나꼼수. 일정한 내러티브를 갖고 있는데다 캐릭터에 집중하는 맛도 쏠쏠하고 게다가 거침없는 입담이 웃음을 자아내고 있으니까요. 누가 드라마를 보면서 심각해지고 싶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나꼼수야말로 심각해지지 않고서도 즐길 줄 아는 수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서 듣는 소통 창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법을 개정해서라도 앱을 심의하거나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나꼼수는 분명 방송은 아니니까 그 안에 들어간 내용이 단순히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규격이나 품격, 이런 것을 논하기 어려워요. 게다가 방송이라는 틀로 나꼼수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법률적 해석에 있어서도 나꼼수를 규정짓는 게 그만큼 어려워요. 법적 해석의 범위를 확대한다든지 법률을 개정한다든지 하는 절차적인 문제 또한 복잡하죠. 이에 앞서서, 이러한 논란 자체는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규제할 수 없는 것을 법 개정을 통해 규제하겠다는 것 자체가 초헌법적인 발상이 아닌가 싶어요. 나꼼수는 규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데다 규제를 하는 순간 다른 방식으로 변형될 겁니다. 인터넷에서 사용자 간 공유 방식을 통해 파일로 돌아다닌다면 그걸 현실적으로 규제할 방법은 없어요. 나꼼수에 대한 어떤 규제가 가능하려면, 그것은 결국 만든 사람들을 가두거나 제작하지 못하게 하는 것 말고는 없지 않을까 싶네요.

다른 나라는 정치풍자 프로그램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한국 밖에서 이런 예를 찾기는 어려워요. 오히려 외국에서 나꼼수에 관심을 갖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마 그들은 새로운 형식과 파격적인 내용의 나꼼수라는 게 등장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낄 것 같아요. 사실 나꼼수를 들으면서 낄낄거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현재 한국의 정치상황이나 저널리즘 상황이 최악이라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죠. 마치 일제시대의 독립군을 보는 것 같지 않나요? 최첨단의 뉴미디어 기술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전달하는 내용은 거의 석기시대까지 퇴보한 저널리즘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슬픈 현실이죠. 그러니까 언론환경의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나꼼수와 청취자들 사이에는 일종의 ‘공모의식’이 생겨나고 나아가 이로부터 ‘공모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나꼼수는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에서도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꼼수의 행보가 더욱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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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5:38

 


송주현 기자

국내 유일 가카 헌정방송

한류의 중심, 아이돌이 아니다. 한류의 중심은 ‘가카’다. 앱스토어 팟캐스트로 제공되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는 CNN과 ABC 등 내로라하는 뉴스 미디어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 팟캐스트 다운로드 순위에서도 역시 SBS <두 시 탈출 컬투 쇼>,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등 인기 프로그램을 제치고 연일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1년 4월 27일 ‘국내 유일 가카 헌정방송’을 표방하며 시작한 나꼼수는 딴지일보(김어준 총수)가 만든 인터넷 방송으로 ‘가카’의 임기가 끝나는 2013년 2월까지 방송될 ‘기획 방송’이다. 멤버 구성도 흥미롭다. 사회 전 분야의 걸쳐 거침없는 입담을 자랑하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를 비롯하여 2009년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라디오 오프닝 멘트로 앵커직과 교수직을 내놓아야 했던 김용민 시사평론가, 2007년 대선 당시 ‘BBK 저격수’로 활동하다 검찰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되었던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 탐사보도 분야에서 손꼽히는 <시사IN>의 주진우 기자가 모여 한 시간 반 남짓 날 것 그대로의 야생 토크를 진행한다. 여기서 ‘가카’는 물론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미 ‘꼼수’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나꼼수는 대통령을 둘러싼 비리 의혹과 다양한 정치·사회 이슈를 철저히 ‘팩트(사실)’에 근거해 파헤치며 분석한다. 출연자들은 뉴스의 이면을 파고들기도 하고 아예 보도되지 않는, 그러나 어둠의 경로를 타고 루머처럼 떠돌고 있던 뉴스의 핵심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도 한다. 각종 소송으로 다져진 내공에서 비롯되는 디테일한 수다와 여러 방면에서 제시되는 치밀한 증거들은 청취자들에게 재미뿐 아니라 충격을 안겨주기도 한다.

예정된 등장, 예견된 인기

대부분의 언론들이 정권에 휘둘린 지 이미 오래이다. 방송 3사와 주요 신문 등 오프라인은 물론이고 포털을 포함한 온라인에서도 정부는 자신의 의도대로 프레임이나 메시지를 제작 및 유통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소재 검열이나 보복 소송의 두려움으로 뉴스보도는 진실을 빗겨가고 저널리즘 본연의 역할을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억압된 언론환경 속에서 나꼼수는 진정한 뉴스에 대한 사회적 열망이 낳은 필연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나꼼수는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혀 음지에 묻혀 있던 주제들을 폭로함으로써 말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욕망을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독설과 욕설, 폭소와 빈정거림 등으로 버무려 냄으로써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시종일관 유쾌하게 풀어내는 ‘꼼수’를 보여주었다. 여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막혔던 말길이 뚫기고 정치적 체증이 해소되는 후련함까지 느낀다.

나꼼수를 규제할 근거?

나꼼수의 치솟는 인기만큼이나 이를 보는 시선도 판이하게 갈린다. 지난 6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는 스마트 미디어에서 유통되는 콘텐츠가 새로운 방송편성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공익을 위해 편성에 규제를 가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뒤이어 기다렸다는 듯이 박만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10월 말이나 11월 초 예정된 방통심의위 조직개편 때 스마트폰 전담팀을 만들까 한다”고 밝히며,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심의할 관련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사회의 주목을 끌고 있는 나꼼수를 노골적으로 규제하려는 속내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관련해 정봉주 전 의원은 “현재 방송통신법 상에선 나꼼수를 규제할 근거가 없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서는 법 개정을 해서라도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나꼼수의 치솟는 인기는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는 국민들이 품고 있던 제도언론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인 입장이 나꼼수라는 제3의 대안언론으로 옮겨간 것”이라고 반박했다.

나꼼수, 새로운 정치의 시작을 꿈꾸다.
 
사실 나꼼수가 다루는 주제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나꼼수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사회의 이면을 세련되고 정제된 언어가 아니라 적나라하고 여과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여, 누구나 알기 쉽게 그것도 재미있게 전달한다. 물론 나꼼수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이 과정은 자칫 정치 일반을 음모론으로만 해석하는 편협한 이해를 낳거나 혹은 ‘정치가 다 이런 거지’라는 식의 환멸로 빠지게 만드는 요소를 갖고 있기도 하다. 또한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연이어 폭로한 까닭에 자잘한 사건들에 대해 면역이 생기는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웬만한 충격이 아니면 놀라지도 않기 때문이다. 각종 정치 풍자 프로그램이 개그 코드로 환원되어 그 파괴력이 잠식된 것을 본다면, 나꼼수가 택한 폭로 형식이 이 한계를 돌파하면서 다른 가능성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각에서 나꼼수를 ‘방송 매체’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나꼼수가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하지만 나꼼수를 긍정하는 사람들조차 이 과대한 영향력이 행여나 스스로 판단하고 개입하는 실천의 과정을 과소화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는다. 물론 이 염려는 나꼼수를 규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염려와 질적으로 다르겠지만 말이다. 짐작컨대, 나꼼수의 목표는 나꼼수를 들으면서 웃고 떠들다가 나꼼수가 끝나는 순간 다시 일상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비리에 대한 분노와 정의에 대한 열망을 삶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 이로써 실망으로 점철된 정치를 바꾸어 보겠다는 새로운 정치의 시작이 아니겠는가. 나꼼수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 그 우려는 나꼼수가 이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는가의 우려가 아니겠는가.

우리들은 골방에서 달랑 이거 하나 한다.

나꼼수의 성공요인은 가카의 ‘꼼꼼함’을 시원하게 밝혀낸 탁월한 내용구성과 규제가 닿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서 새로운 메시지 유통구조를 탄생시킨 형식의 선택, 다시 말해 꼼수가 기막히게 맞아떨어졌다는 데 있다. 여전히 강고한 태도로 이 현상을 설명만 하려하는 주류 언론은 자신의 실패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무능력과 남이 잘 하는 것을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 무식함 그리고 권력 앞에서 굳게 입을 다무는 비굴함까지, 이 모든 것을 나꼼수라는 거울 앞에서 졸지에 까발려지게 되었다. 또한 짐짓 아무것도 아닌 척하면서 법 개정 운운하며 나꼼수를 통제하려는 정부의 의뭉스러운 태도 역시 정권 시작부터 말기에 이른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꼼수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당신들은 검찰, 국정원 다 가지고 있잖아? 우리들은 골방에서 달랑 이거 하나 한다. 우리를 건들면 너네는 진짜 쪼잔한 거야.” 18회 방송에서 김어준 총수가 한 마지막 멘트이다. 무엇보다 나꼼수가 보여준 건, 이렇게까지 했으니 이제 공은 우리 시민(demos)에게 패스하겠다는 기가 막힌 센터링이 아닐까. 자비로운 가카께서 꾸준히 소재를 제공해주시는 한 나꼼수는 센터링이든 쓰루패스든 뭐든 닥치는 대로 공을 넘겨줄 것이다. 공을 받았으면 이제 할 일은?

1회 BBK 총정리
서태지-이지아 열사가 덮으려했던 BBK사건의 총정리 판이다. 이지아 측 이혼소송을 변호했던 MB정권의 법률전담 법무법인 ‘바른’의 실체가 드러난다.

2회 한나라당의 내분
4.27 재보선에서 참패한 이후 당 지도부가 모두 사퇴한 한나라당의 위기를 다룬다.

3회 140억의 비밀
BBK사건 피해자인 개미투자자들이 미국 연방법원에서 승소한 이후 이상 징후가 포착되었다. 김경준의 돈 140억 원이 갑자기 다스로 송금된 전후 상황을 설명한다.

4회 남북회담과 부산저축은행
남북 비밀접촉을 돌연 공개 선언한 MB정권의 베를린 선언은 아마추어 외교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의 전말을 밝힌다.

5회 중수부 폐지와 등록금 문제
죽은 권력만을 심판하던 정부의 시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논란을 계기로 살펴본 청와대, 정치권, 검찰 간의 역학관계를 설명한다.

6회 반값 등록금 문제
힘없는 학부모를 상대로 고리대금 사채업을 하는 대학들의 행태를 고발한다. 등록금과 각 사립대학 그리고 교육부 관료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파헤친다.

7회 오세훈의 무상급식
무상급식 투표를 이용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선 출마 시나리오와 그의 사퇴가 정치구도에 미칠 파장을 분석한다.

8회 청계재단의 진실
청계재단을 세운 가카의 진실, 그리고 에리카 김과 가카와의 플라토닉한 관계를 파헤친다.

9회 3MC의 비밀
전일저축은행 비리사건에 연루된 스타MC 신동엽, 강호동, 유재석. 대형기획사를 중심으로 오갔던 수백억 원의 대출내역과 이와 관계된 전후사정을 파헤친다.

10회 6미터의 비밀
정부는 4대강을 왜 6m의 깊이로 파야만 했을까? 그 정책적 문제점을 분석한다.

11회 농협사태의 비밀
북한의 소행으로 사건을 종결한 정부와 이를 뒷받침하기에는 미심쩍은 증거물들, 농협사태 이후 사라진 거래내역에 비추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다.

12회 딴지일보 해킹과 장자연
삼화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된 가카의 조카사위와 IBK 상임위원의 관계를 설명한다. 또한 언론사 인물들과 스캔들을 남겼던 장자연 사건을 조심스럽게 파헤쳐 본다.

13회 장자연 사건과 인천공항
세계 1등의 인천공항을 외국자본에 매각하려는 꼼수를 사실에 근거해 설명한다. 여기에 가카는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 살펴본다.

14회 정봉주, 댓글부대 그리고 자원외교
청와대 민정수석을 중심으로 관리하던 댓글부대는 조직적인 활동을 위해 보수단체 ‘바른민주개혁시민회의’로 재등장하였다. 그들의 활동을 파헤친다.

15회 정봉주, 오세훈 그리고 큰 목사님
BBK저격수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수감미수 사건’을 짚어보고,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를 둘러싼 분쟁의 전말을 밝힌다.

16회 오세훈 백수복귀, 딴지일보 해킹
서울시장 사퇴 이후 대선까지의 정세, 주민투표에서 나타난 강남과 非강남의 분열 양상, 대형교회의 보수화와 이들의 정치 참여에 대해 분석한다.

17회 곽노현 10.26 사건
곽노현 뇌물의혹 사건은 무상급식에 대한 보복성 표적수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를 잇는 진보 정권 죽이기의 일환이다.

18회 가카, 곽노현 그리고 안철수
기독교 정당을 추진하는 전광훈 목사의 에피소드와 특별 게스트 ‘시골의사’ 박경철이 말하는 ‘안철수 신드롬’에 대해 들어본다.

19회 위키릭스(Wikileaks)와 곽노현
가카께서 현대건설 입사 후 고속승진 할 수 있었던 비밀을 위키릭스의 폭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20회 왕재산 간첩단, 삼화저축은행
일심회가 일진회에서 왕재산 간첩단으로 바뀌는 과정을 설명한다. 삼화저축은행 비리사건에 연루된 친박과 친이의 부패고리 및 대통령 친인척 비리의 전말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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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5:30

축복 혹은 저주?
새집증후군의 희생자들

정하상관(이하 J관)은 그 동안 제기되었던 공간 부족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하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학기 시작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문제가 온라인 공론장인 청년광장에서 제기됐다. 한마디로, 신축건물이 사람이 드나들기에 충분히 안전한지에 대한 논란이다. 이는 단순히 공간의 편의성에 머물지 않고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과도 연관되므로 학교 측의 각별한 관심과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

정하상관만 가면 눈 통증, 두통, 가려움, 구토 증상이 나타나

지난 서강학보 583호에 실린 한 학생의 글(“2% 부족한 정하상관과 떼이야르관”)은 세 가지 근거로 새 건물들의 성급한 개관을 지적했는데, 그 중 새집증후군(Sick Building Syndrome)에 대한 언급은 온라인 공간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었다. 새집증후군이란, 새 집에서 눈과 목이 답답하고 머리가 띵하다가 밖에만 나가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 신종 질환이다. 증세가 심해지면 아토피, 알레르기성 비염, 천식 등으로 악화되는데 각종 건축자재에서 흘러나오는 화학물질로 인해 실내 공기가 오염될 때 생겨난다. 학기 시작 첫 날, J관에서의 수업 경험을 서강사랑방 게시판에 올린 작성자 은현선민(“J관 눈아파요 ㅜ.ㅜ”)은 건물에 대한 칭찬과 함께 눈 통증과 두통을 호소했다. 불과 한 시간 정도 수업을 들은 후였다. 이런 증상은 작성자 Lucina(“J관만 갔다하면 어지럽습니다...”)도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글이 개관 2주가 지난 9월 15일에도 올라왔는데, J관에서 1주일에 두 번 수업을 듣는 대학원생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작성자 아직임(“J관ㅜㅜ 알러지..”)은 수업을 들은 후 악화된 눈의 통증으로 결국 알레르기성 결막염 진단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피부질환까지 호소하면서 J관에 더 자주 드나들 학부생들을 걱정했다.

새 집의 축복과 저주를 모두 감내해야만 하는 학생들

이러한 고충을 호소하는 글은 청년광장에 마련된 ‘학교에 바라는 글’ 게시판에도 있었다. 8월 30일에 작성자 르몽드(“J관 계단 환기를 시켜주세요”)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계단을 이용했을 때 페인트 냄새로 숨쉬기조차 괴로웠던 점을 토로했다. 9월 6일에 작성자 강현석(“J관에서 수업하다 구토증세가 있었습니다”)은 학교에 진지한 대책을 요구했다. 그는 어지러움, 눈 통증, 구토와 두드러기 및 가려움증으로 잠을 설치는 등 고통에 못 이겨 병원을 찾은 경험을 말하면서, J관이 충분한 환기를 거치지 않고 급하게 개관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시설팀 관계자 역시 J관이 새집증후군 예방책을 적절히 마련하지 않은 채 개관했음을 인정했다. 새로 지은 건축물의 실내 공기온도를 높여 유해물질을 제거하는 베이크 아웃(bake out)을 하려면 난방기를 가동해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시 냉방기로의 전환이 어렵기 때문에 냉방기가 필요한 8~9월에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새집증후군은 완화된다고 하지만 그 동안 학생들이 겪을 고통에 대해 학교 측은 어떠한 대책이나 설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결국 학생들이 새 집의 저주를 모두 감수하면서 스스로의 몸으로 필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성급한 개관에 따른 문제점들 곳곳에 널려있어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J관을 둘러보다 보면 무언가 어색한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매점이나 자판기 없는 것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편의와 관련된 문제들은 학생과 교수를 구성원으로 하는 ‘후생복지위원회’가 10월 중 학교 측과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다. 그 때까지 J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당장 마주칠 불편이 적지 않아 보인다.

1. 엘리베이터가 부족하다.
11층짜리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두 개 뿐이라는 것이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힌다. 게다가 엘리베이터의 넓이도 교수, 학생, 직원 모두 타기엔 확연히 좁다. 특히 4층 입구에서 들어와 1층부터 3층에 있는 강의실로 내려가야 하는 학생들은 5층부터 11층을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를 마냥 기다려야 한다.


2. 복사실이 없다.
여전히 복사실은 X관 4층에 머물러 있었다. 그 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계신 두 분도 학생들의 불편함을 안타깝게 여기셨다. J관에 복사기가 들어올 때까지 학생들은 부지런히 어딘가로 배회할 것이다. 이제 각 건물의 복사실 위치에 대한 숙지는 기본이고 각 복사실의 혼잡도까지 파악해야 한다.

3. 명패가 없다.
개강 셋째 주에 처음 J관을 찾을 때만 해도 어떤 교수님이 어디 계신지 도무지 찾을 수 없을 만큼 대부분의 연구실 앞에는 텅 빈 명패만이 있었다. 개강 후 한 달이 지나고 다시 J관을 찾았지만 A4용지나 명함 등으로 임시적인 명패를 만들었을 뿐 새 집에 맞는 이름표는 없었다. 그마저도 없는 연구실은 대략 난감할 뿐이다.

4. 흡연구역이 마땅찮다.
J관과 떼이야르관 사이에 놓인 멋진 중앙계단의 위와 아래가 비공식적인 흡연 구역이 되고 있다. 흡연자의 눈치 보기도 고역이지만 계단을 숨차게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담배연기도 들이마셔야 하니 이 역시 괴로울 수밖에 없다. 계단으로 통하는 1층 정문입구에는 이미 담배냄새가 자욱하다. 담배꽁초도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다.


5. 아직도 X관에서 진행되는 수업

문학부 관련 모든 강의를 새 건물에서 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빗나갔다. J관에서 개설될 과목 중 약 40여개는 ‘여전한’ 공간문제로 X관 4층에 배정되었다. 이는 운 나쁘게 어떤 과목을 택한 누군가는 다시 ‘떠돌아다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X관과 J관 사이가 그나마 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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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5:20


연구실 없는 여성학과의 사무실 전경


서강의 풍경이 안팎으로 바뀌고 있다. 이번 학기에 정하상관(국제인문관)과 떼이야르관(산학관)이 들어섰고 올해 12월과 2013년에는 각각 토마스 모어관(일명 학습동)과 인공광합성연구센터(POSCO 프란치스코 홀)가 준공될 예정이다. 학교 주변으로 눈을 돌려보면, 경의선 서강역(가칭)이 내년 개통을 목표로 공사 중이고 학교와 대흥역 사이에서는 2014년을 목표로 주택 재개발이 한창이다. 이렇게 서강을 둘러싼 공간의 변화가 한창이지만 대학원의 부족한 연구실 확보에 기여한 정하상관(이하 J관)의 공간배분과 관련한 논의를 살펴보면 서강의 변하지 않는 현실과 마주한다.

소통의 문제, 서강의 바뀌지 않는 현실

이미 본지는 지난 117호 기사(“헌 집 줄게 새 집 다오”)에서 당시 완공될 예정이던 J관을 다루었다. 문제의 핵심은 간단했다. 대학원생이 공부할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사를 앞둔 대학원 7개의 학과(국문, 영문, 불문, 독문, 사학, 철학, 종교)에 배정된 연구실은 단 6개에 불과했고 연구실조차 없던 학과들(법학과, 여성학과)에 대한 대책조차 없었다. 학교 측은 학과별 인원이 다른 점을 이유로 독립된 연구실 배정에 난색을 표하면서, 인원이 적은 학과들끼리 연구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대학원 총학생회(이하 원총)는 학과 당 하나의 연구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공간 배정을 결정하는 논의 과정이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했다. 여전히 서강은 소통이 아닌 일방적 전달에 익숙해 있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행사인 ‘총장과의 만남’이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져 왔지만, 제25대 원총 ‘우리, 지금, 만남’은 여전히 총장과의 만남을 원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결과를 이루기 위한 과정 그 자체

 학교 측과 원총 사이의 소통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은 옥기원 회장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학교 측은 J관의 공간배분 문제를 논의하는 데 있어 이해당사자(문학부, 교육대학원, 국제대학원)인 학생들을 한 자리에 모으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 8월 중순에야 학교 측은 7개 학과에 독립적인 연구실을 배분한다고 총학생회에 통보했다. 결과적으로는 원총의 의지가 관철된 것이지만 총학생회 측은 그 간의 조율 과정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일방적인 결정을 아쉬워했다. 결과에 만족하느냐는 물음에 원총 회장은 “결과의 문제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물론 공간을 확보하려는 우리의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됐다. 그러나 J관 내의 다른 이해관계자가 불이익을 당했다면 이러한 갈등을 조율할 책임이 있는 학교 측이 학내 구성원 간 분란을 방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J관 공간의 문제를 놓고 모두가 모여 논의했을 때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러한 과정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문과 대학원 학생들 역시 연구실을 배정받은 결과가 비민주적인 논의과정과 일방적인 소통방식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전체적인 연구실 변화를 볼 때, 철학과는 기존의 연구실 면적이 줄어들기까지 했으나 문제제기의 창구는 여전히 막혀있다. 갈등은 봉합되었지만 상처는 여전히 남아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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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5:16


조성호 기자

지난 9월 8일, 정하상관(이하 J관)의 준공식이 열렸다. 홍보실 자료에 따르면, J관은 인문학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새롭게 개편된 국제인문학부를 포함해 국제대학원, 국제지역문화원, 교육대학원 등의 공간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중 J관 5층에 자리가 마련된 국제대학원은 10월 현재 여전히 김대건관(이하 K관)에 머물러 있다. 이사날짜를 깜빡한 것일까? 취재 결과, J관 5층의 적막함 속에는 서강대의 뿌리 깊은 소통 문제가 숨어 있었다.

문학부, 국제대학원이 자꾸 무리한 요구하면 곤란

국제대학원 입주를 둘러싼 갈등의 전말은 J관 공간배정 논의의 진행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 기획처 관계자는 건설위원회가 공간배정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J관이 착공되기 전인 2010년 2월, 제7차 건설위원회에서 입주계획안이 확정되었는데, 이를 두고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부터 문학부와 국제대학원, 학교 측 사이의 입장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올해 6월부터 8월까지 학장 직무대행을 맡아 문학부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국어국문학과 김경수 교수(현재 기초교육원장)는 애초 확정된 계획안 자체를 바꾸려는 국제대학원의 요구에 비판적이다. 아울러 J관이 국제인문관으로서 2001년부터 논의돼 왔던 ‘문학부 국제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련된 공간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국제대학원이 입주하기 때문에 ‘국제’라는 말이 붙은 게 아니라며 지난 5월 학칙개정으로 출범된 국제인문학부를 언급했다. 덧붙여 J관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갈 문학부를 한 자리에 모으는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교수 연구실이 늘어난 것에 비해 대학원생에게는 공간이 충분히 배정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그는 공간배분에 있어 공정성을 기해야 할 학교 측에 아쉬움을 표하며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다 같이 손해보고 들어오는 공간인 만큼 서로를 조금 더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이와 함께 현재 진행 중인 국제대학원 입주 논의가 원만하게 해결되길 원한다고 밝혔다.

국제대학원, 전문대학원으로서 당연한 최소한의 요구

그러나 국제대학원 원장인 김재천 교수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그는 국제대학원이 기존 K관에서 활용한 공간의 절반 이상을 손해보고 들어가는데도 학교 측이 전문대학원으로서 요구할 수 있는 사항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며 아쉬워했다. 물론 국제대학원도 문학부와 함께 J관에 입주할 때 예상되는 상승효과를 기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평성과 공정성이 보장된 상황에서 논의가 진행돼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또한 국제대학원이 공간배분의 논의과정에서 배제되고 전체 J관의 공간 정보에 대한 접근도 어려운 상황을 언급하며 조정자로서 학교 측의 역할수행이 충분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그는 “공간문제를 문의하면 총장도, 부총장도, 기회처장도, 심지어는 건설위원회에 참석했던 어느 상임이사도 논의 자체를 피하려 했다”며, 특히 이메일을 통한 문학부의 의사전달방식과 J관 6층의 일부 소형강의실들을 국제대학원에 배정한 내용을 담은 공문이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학교 측에 의해 부정되는 상황에 깊은 유감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공적 영역에 대한 민주적 논의만이 공간배정을 이익다툼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해 줄 것이라며 서강이 힘을 모아야 함을 강조했다. 이에 덧붙여 “학생들에게 교수들끼리 서로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럽다”면서도 이러한 소통의 문제를 숨기기만 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입장 차를 조율해야할 학교, 원칙적인 입장만 되풀이해

이해당사자인 문학부와 국제대학원의 입장차를 조율할 책임이 있는 학교 측의 입장은 원칙적이고 당위적이다. 기획처 관계자는 국제대학원의 입주문제가 불거진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J관은 물론 앞으로의 공간 배치에서도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강의실과 교수의 연구공간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제대학원이 J관에 입주해야 K관의 공간 활용도 생산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며 서강 구성원 간의 화합을 희망했지만 막상 이러한 갈등을 해소할 구체적인 계획을 물어보았을 때 확실한 대답을 듣기는 어려웠다. 눈에 띄는 대목은 앞으로 학교 전체의 공간 활용계획이 제대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국제대학원의 J관 입주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과정에 모든 주체가 참여하려 한다면 ‘배가 산으로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준공식 당일 이종욱 총장은 “정하상관과 떼이야르관은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건물로 학문 간 벽을 허무는 융·복합 학문연구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이어진 문학부의 전통과 경쟁력이 이로써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대한민국 최고의 국제인문학의 산실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다. 하지만 학문 간 벽을 허무는 연구를 하기도 전에 구성원들 사이에 마음의 벽이 세워진다면, 그리고 이에 대해 학교가 원칙적인 화합만을 강조한다면 오히려 J관은 서강의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다운그레이드의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학교 측의 구체적이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국제대학원은 왜 쌌던 짐을 다시 풀게 되었나

국제대학원 관계자는 올해 3월에야 기획처로부터 J관에 마련될 국제대학원 공간의 설계도면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때부터 국제대학원은 배정된 공간이 현재 K관에 있는 국제대학원의 규모를 수용하기에 크게 부족하다고 학교 측에 이의를 제기해 왔다. 그러나 학교 측은 8월에 임박해서야 뒤늦게 서둘러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그 때는 이미 국제대학원 전체를 옮기는 것이 불가능해 일부는 K관에 잔류할 수밖에 없음이 드러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대학원의 일부 요구사항을 반영한 공문이 7월 말에서 8월 초에 기획처장과 총장의 승인까지 받았지만 기존 원안에 대한 수정을 반대하는 문학부의 반발로 학교 측은 앞서 승인한 수정안을 부정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였다. 이 시기에 진행된 국제대학원과 학교 측의 의견조율 과정이 부당하다고 느낀 문학부는 지난 8월 22일, 교수들의 의견을 모아 학교 측과 국제대학원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문학부의 이러한 행동은 학교 측의 중개를 통한 조율 없이 다른 이해관계자인 국제대학원에 일방적으로 의사를 전달한 유례없는 상황이었기에 국제대학원 구성원들을 불편하게 했다. 조정자로서 학교 측에 의견조율을 바랐던 국제대학원은 요구안이 좌초되는 상황에서 결국 이사 직전 짐을 풀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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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5:13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
『안전, 영토, 인구』의 역자 심세광을 만나다.


 

인터뷰 및 편집 박승일

Q 푸코는 책의 서두에서 이번 강의의 주제가 생명관리권력(bio-pouvoir)이라고 말합니다. 이 개념이 설명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고 이를 계기로 푸코의 작업에 생기는 변화는 무엇인가요?

푸코에게 68년 5월은 학문적 전환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어요. 아시다시피 60년대 푸코의 논의를 특징짓는 것은 고고학입니다. 담론이나 에피스테메 같은 언어적 실천들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앎의 대상으로 구축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었지요. 1966년에 쓰인 『말과 사물』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데 68년을 통과하면서, 푸코는 언어적 실천과 상관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는 정치적인 실천 혹은 비언어적인 실천들의 효과를 그동안 균형 있게 탐구하지 못했다고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68년의 영향이 있었겠지요. 그래서 고고학에서 계보학으로 넘어가게 되고, 이후 75년에 『감시와 처벌』을 쓰게 되죠. 그런데 이 사이에 푸코가 행한 강연 ‘Omnes et Singulatim’, 즉 ‘전체적임과 동시에 개별적으로’에 비추어 보면 『감시와 처벌』은 개별적인 것에 대한 천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서 제시되는 규율권력이란 철저하게 개인과 개인의 행동 방식을 표적으로 삼는 권력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전체적인 것에 대한 분석, 즉 개인들로 이루어진 무리를 조절·관리·통제하는 테크놀로지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지식 및 실천에 대한 분석이 필요해집니다. 이것이 생명관리권력이라는 용어가 제출되는 배경입니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네요. 『성의 역사: 앍의 의지』에서 지적한 것처럼, 푸코가 보기에 근대의 통치성은 생명관리정치(biopolitique)로 특징지어 집니다. 그리고 이 생명관리정치는 두 축을 토대로 하죠. 바로 규율권력과 생명관리권력입니다. 규율권력은 개인을 핵심 대상으로 삼는 반면, 생명관리권력은 개인들의 집합이지만 또 개인으로 환원될 수 없는 무리, 즉 종으로서의 인구를 대상으로 삼습니다. ‘전체적임과 동시에 개별적으로’, 즉 생명관리권력과 규율권력이라는 두 축에 기반을 둔 테크닉이 생명관리정치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종의 단절이 있는 것처럼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규율권력과 생명관리권력을 아우르는 생명관리정치와 관련해 살펴본다면 단절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푸코가 근대의 권력 테크놀로지를 구성하는 두 개의 핵심요소를 순차적으로 발견했기 때문이며, 또한 장치라는 게 하나의 장치가 다른 장치를 단절적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메커니즘을 완성하는 동시적인 작동이기 때문입니다.

Q 사법(주권)-규율-안전 메커니즘 각각의 특징은 무엇이고 이들이 맺는 관계는 어떠한가요?

법과 주권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네요. 중세는 전쟁사회였어요. 전쟁이라는 물리적인 힘을 통해 영토를 제압하는 식이지요. 하지만 십자군 전쟁 이후 변화가 생깁니다. 십자군 전쟁으로 영주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성직자이자 지식을 독점한 사람들이 전쟁의 지배에서 법의 지배로 전환을 꾀합니다. 법의 패러다임이 보편화되면서 결국 중세 봉건 영주의 권력이 안녕을 고하게 되는 거죠. 지금의 우리는 항상 근대 이후의 법만 생각하지만 중세 봉건제 이후 등장한 절대 군주제 역시 법을 통해서 통치되었습니다. 물론 이 법은 당연히 왕이 임의로 정한 법, 즉 사법이고요. 여기서 군주는 법이라는 울타리 바깥에 존재하는 초월자였습니다. 그래서 푸코는 마키아벨리가 근대적이지 않다고 얘기했던 거죠.

중요한 건 전근대적인 의미의 법과 근대적인 의미의 법에서 주권자가 차지하는 위치가 다르다는 겁니다. 근대적인 의미의 법에서 주권자는 절대 법 바깥에 있을 수 없게 됩니다. 근대국가에서는 군주 자체도 법의 지배를 받는, 법에 내재하는 한 요소에 불과합니다. 국가이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볼 수 있는 초월적 존재가 이제는 영토의 일부로 내재화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법에 의한 통치가 핵심요소가 되면서 전근대와 근대를 가르는 기준 역시 주권자의 위치, 즉 법 바깥에 군림하는지 법 안에서 통치하는지의 차이로 바뀝니다. 입헌군주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의 지배를 받는 통치자, 다시 말해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국가라고 하는 것이 정치와 경제 혹은 모든 것의 목표가 됩니다. 이 시기가 바로 근대국가가 탄생한 시기이자 법에 의한 지배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규율과 안전 메커니즘은 아마 인터뷰 중에 계속 설명할 것 같으니 차차 보도록 합시다.

Q 주권과 규율 그리고 안전 메커니즘이 공간을 다루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주권이 영토를 목표로 삼는다는 것은 방금 설명했으니 규율을 살펴보도록 하죠. 푸코는 리슐리외라는 도시를 예로 듭니다. 로마병영을 모델로 삼고 있는 이 도시는 매우 인공적인 공간이에요. 원래부터 있던 마을이나 도시를 재정비한 곳이 아니라 허허벌판에서 새롭게 건설된 곳이거든요. 이 도시는 치밀하게 격자화 되어 있는데, 이러한 격자화의 목적은 모든 것을 보고 또 모든 것을 통제하기 위해서 입니다. 규율도시는 도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관리·조절·통제하기 위해 이에 걸맞게 공간을 구획하고, 또 그곳에 거주하는 개인들을 각자의 사회적인 신분이나 맡은 역할에 따라 인위적으로 배분하는 체제를 갖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워진 도시는 경제적인 활동, 풍속, 도덕, 욕망 등 개인의 모든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고 또 안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를 가능하게 합니다. 

하지만 근대국가가 탄생하면서 도시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뀝니다. 푸코는 낭트라는 도시를 예로 드는데요. 근대도시는 모든 것을 네트워크로 연결합니다. 여기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근대 생물학의 영향을 받은 순환이라는 개념입니다. 순환을 막으면 안 되고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거죠. 이제 관심은 인체의학, 생물학, 생리학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역시 나쁜 순환과 좋은 순환을 구별해서 나쁜 순환을 최소화하고 좋은 순환을 최대화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안전의 문제가 싹트게 되는 겁니다. 범죄와 질병과 같이 통제는 가능하지만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위험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는 거죠. 여기서도 국가의 개입은 제한됩니다.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내고 또 그것에 부단히 개입하면서 철저한 통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요소들을 일단 인정한 뒤 이들 사이에 적절한 순환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 개입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고려되기 시작합니다. 현재의 순환을 내버려두는 일, 즉 움직이고 운동하게 ‘잘’ 내버려두는 일에 관심을 갖는 거죠.

Q 중상주의와 중농주의의 해법은 명백히 다른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하게 내버려두는’ 자유가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요. 안전장치와 자유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가요?

앞서 말씀드린 내용과 연관됩니다. 리슐리외와 같은 규율적 도시체계는 경제사의 중상주의 혹은 중상주의적 내치(內治, police)에 상응한다고 할 수 있어요. 내치 역시 모든 인민과 인민의 활동을 표적으로 삼아 부단히 개입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중상주의는 거의 완벽한 통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식량난’에 대처하는 중상주의의 방식이 애초부터 식량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식이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반면 중농주의자는 식량난에 전연 다른 입장을 취합니다. 식량난은 환상이니까 가만히 내버려 두면 된다는 입장이에요. 아담 스미스나 리카르도 같은 정치경제학자들의 자유주의적 방임이라 할 수 있겠네요. 중농주의의 핵심은 죽어야 될 사람들은 죽게 내버려둬야 다수가 산다는 것, 즉 전체를 구하기보다는 일부를 희생시켜서 다수를 구하는 것이에요. 인식론적인 틀 자체가 바뀐 겁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방임을 특징으로 하는 자유주의의 메커니즘이 놓여 있고요.

또 다른 예로 나병과 흑사병 그리고 천연두를 봅시다. 나병은 나병에 걸린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을 분할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마을 밖으로 추방하는 거지요. 하지만 흑사병은 조금 다릅니다. 추방하기보다는 흑사병이 창궐한 지역을 격리하는 형태를 취하거든요. 뿐만 아니라 엄격한 규율을 강요합니다. 전염병에 걸렸는지 여부를 계속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집 바깥으로 언제 나갈 수 있는지,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등의 규칙을 강제하거든요. 앞서 말한 규율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반면 천연두는 추방도 격리도 아닌 접종의 방법을 택합니다. 쉽게 말해 병에 걸리게 내버려두는 겁니다. 즉 접종을 통해 병에 걸리게 내버려 둠으로써 역설적으로 신체가 일정한 저항력을 상실하지 않게 만드는 거지요. 하지만 여기서 관심의 초점은 개인의 신체가 아니라 인구라는 집단적 신체입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정신병의 형태건 실업의 형태건 범죄의 형태건, 국가가 보존되기 위해서는 ‘찌질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겁니다. 중상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사람들은 뿌리 채 뽑혀야 되지만, 중농주의적 입장 혹은 자유방임적 입장에서는 국가라는 신체가 적절히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러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존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배제되는 사람들이 존재해야만 역설적으로 그렇지 않은 다수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죠. 푸코가 『성의 역사』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가 이러한 근대의 통치 메커니즘입니다.

Q 식량난과 전염병 모두 안전메커니즘의 유형을 따르는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경제학이 도입되기도 했고요. 여기서 인구라는 새로운 개념의 등장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앞서 중농주의를 통해 설명했듯이, 정치경제학의 탄생은 곧 자유주의의 탄생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유주의의 통치와 그 이전의 절대군주제와의 차이는 뭘까요. 전근대적인 주권국가에서는 통치의 대상이 영토였던 반면, 근대 자유주의 하에서 영토는 통치의 주요한 목표가 아니에요. 오히려 중요한 것은 영토에 포함된 하나의 요소인 무리 입니다. 중세만 하더라도 땅 덩어리가 얼마나 큰지가 중요했기 때문에 그거 갖고 싸웠던 거 아닙니까? 그런데 자유주의의 탄생 이후에는 영토에 거주하는 인민에 포커스가 맞춰지게 돼요. 근대 국가의 틀이 형성되면서 주안점이 분산되기 시작한 거죠. 바로 인구라 할 수 있어요.

근대 이전의 신민들은 거의 통치를 받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반은 인간이고 반은 그냥 위험한 동물일 뿐이었거든요. 평등, 자유라는 개념의 인식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말이죠. 절대군주주의 시대, 중상주의 시대 때 통치자가 피통치자를 보는 인식론적 관점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도구에 불과했어요. 그러니까 세제 형태도 단순히 징발이었던 거죠. 그랬던 것이 프랑스 혁명을 통해 부르주아 사회가 도래한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비로소 어떤 변화가 생겨나요. 바로 정치경제학적 변화겠죠. 푸코의 『말과 사물』을 보면 알겠지만 이전까지는 경제학이란 말이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그냥 부의 분석만 있었지요. 철저하게 물물교환에 입각해서, 상품의 표상 가능한 가치가 뭐냐는 물음이었던 거죠. 여기에는 인간의 힘이라든가 노동력이라든가 인간을 어떻게 조절·관리·통제해야한다는 식의 사유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치경제학은 영토에 주안점을 둔 통치로부터 영토에 거주하는 인간에 대한 통치로 넘어가는 것을 잘 보여주죠. 다시 말해 정치경제학은 영토에 거주하는 인간의 무리인 인구를 통치자가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생산하고, 어떻게 활용하는지 그리고 이로부터 일탈할 때 어떻게 조절·관리·통제할 것인가를 일컫는 총체적인 기술, 즉 통치술을 일컫습니다. 사망자 수, 병자 수, 전염병의 관리, 노동과 부의 관계 등에서 통계학과 확률은 인구의 활동을 측정하고 이로부터 경제적 효과를 이끌어내는 주요한 도구가 되지요.

“우리의 현재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의 국가화가 아니라 국가의 ‘통치화’라고 부를 만한 것입니다.”

Q 푸코는 “안전, 영토, 인구”라는 제목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통치성의 역사를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데요. ‘국가의 통치화’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통치(government)라는 말 자체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 혹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일로서 여겨져 본 일이 없었습니다. 예컨대, 여자가 밥을 많이 먹어서 통치하기가 힘들다는 식으로 쓰였거든요.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하고는 무관하게 일상생활에서 마구 쓰였던 것들이 근대에 들어와서 국가가 하는 모든 일로 얘기가 됩니다. 국가하고 전혀 무관했던 일들이 18세기, 19세기 초에 완전히 국가가 전담해야 하는 일로 정착이 돼요. 푸코가 묻는 것은 이것을 둘러싸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거예요. 그럼 해답이 나오죠. 통치의 다양한 행위와 함의가 국가와 관련된 불가분의 실천으로 정착되는 역사적인 어느 순간에 비로소 통치가 현재의 의미로 결정화돼요. 어떤 특유한 실천이 결정화되는 그 순간에 실천과 더불어서 국가가 탄생한단 말이죠. 푸코가 보기에, 서구의 근대가 시작되는 18세말과 19세기 초에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통치가 체계화되면서 어떤 장치를 구성하더라. 그 실천의 효과가 국가라는 겁니다.

Q 그리스-로마의 사유와는 완전히 이질적인 사목권력이 그리스도교 교회를 매개로 해서 도입되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사목권력은 앞서 살펴본 통치성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나요?

사목(司牧)은 고대 근동지역에서 원형적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어요. 성경에도 나오지만 사목의 대상은 양떼입니다. 목자가 책임지는 건 양떼인데, 당연히 양떼는 무리지요. 무리는 이동 중에 있기 때문에 어떤 영토를 점유하고 있지 않아요. 다시 말해 특정한 영토를 점유하고 있는 고정된 대상에 대한 관리나 통치가 아니라 늘 어디선가 계속적으로 이동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통치라는 거예요. 유동성, 이게 바로 앞서 말씀드린 자유주의와 똑같은 겁니다. 필요할 때와 필요하지 않을 때, 최적화된 행위와 최적화되지 않은 행위를 매번 확인하면서 거기에 조절적으로 개입하는 거예요. 전체를 일괄적으로 통제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일단 인정한 가운데 계속해서 유동적인 조절을 하는 작업이란 말이죠. 이게 바로 무리에 대한 목자의 배려입니다. 근데 여기에 모순이 있는데, 개체와 전체를 모두 인도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를 위해서는 전체를 인도함과 동시에 무리를 구성하는 개체 하나하나를 다 챙겨야 합니다. 이동하는 무리 전체를 관리하는 동시에 어린 양에게 먼저 연한 잎을 먹이고 나이든 양에게는 억센 잎을 먹이는 식의 섬세한 관리가 필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때로는 굉장히 모순적인 게 나타나죠.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 전체를 희생하기도 해야 하니까요. 이게 바로 Omnes et Singulatim, 다시 말해 전체적이면서 또한 동시에 개별적인 방식의 통치입니다. 전체를 구성하는 개체를 잘 돌볼 수 있을 때 전체를 돌볼 수 있고 또 그 역도 마찬가지인 불가분의 관계이죠.

이러한 사목권력은 근대 국가 이전까지 아이러니컬하게도 신앙의 차원과 양립해 왔어요. 그런데 정교분리 후 세속화가 진행되고 근대국가가 도래하면서 교회가 이 권한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죠. 그러나 이게 없어진 게 아니라 세속화된 권력의 테크놀로지로 흘러들어가 버렸다는 겁니다. 바꿔 말해 사목권력이 근대국가의 통치에 핵심이 되었다 이 말이에요.

여기서 발전하게 되는 지식이 통계학과 같은 것들입니다. 오늘날에는 통계학이 수학의 일부로 축소됐지만 원래는 그게 아니었어요. 통계학은 원래 국가학이었어요. statistic은 국가(state)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한 학문이었거든요. 통치자는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대해서 낱낱이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혁명적인 변화이죠. 절대군주 시대에는 이런 것이 불가능했어요. 인구통계를 예로 들면, 이전에는 역병과 같이 급격한 변화가 발생할 때만 인구 조사를 했어요. 이건 상시적인 통계가 아니라 불연속적이고 일시적으로 했던 작업이에요. 그러던 것이 근대국가에서는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자 국가를 통치하는 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 됩니다.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물적, 인적 자원에 대한 완벽한 지식이 요구되는 거죠. 이로부터 정치경제학, 인구통계학, 인력관리와 같은 여러 지식체계가 나옵니다. 인력관리의 예는 『성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인간 종으로서의 성을 통제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다보니 성의학, 생리학, 인류학, 인종학 등이 19세기에 권력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게 됩니다. 요컨대, 통치자가 전체와 개인을 완벽하게 알고 그들의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지속적인 감시·조절·관리·통제하는, 이전과는 새로운 목표가 출현한 것이죠.

“[그리스도교적] 사목제도, 새로운 외교적·군사적 기술, 마지막으로 내치, 저는 바로 이 세 가지야말로 서구의 역사에서 국가의 통치화라는 근본적인 현상이 발생할 수 있게 됐던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푸코는 사목적 합리성과는 다른 통치합리성, 즉 통치이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통치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적어도 근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국가는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었어요. 최후의 심판이라는 목적에 이르러 세계는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근대를 알리는 신호탄을 푸코는 베스트팔렌조약이라 하고 있습니다만, 이 조약은 앞서 말한 것과는 완전히 단절되는 거예요. 그 조약을 체결할 당시에 존재하던 국가들 간의 영원한 공존이자 평형이 명문화 되거든요. 그래서 베스트팔렌 조약을 보면 오늘날의 유럽을 볼 수 있는 거에요. 조그만 나라들, 중간 크기, 그리고 대국들, 이것은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되어야한다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진 겁니다. 오히려 이제는 이들 간의 평형이 문제가 돼요. 평형 상태에서 생존이 문제가 되고요. 그러니까 국가에 대한 이전의 관념과 베스트팔렌조약 이후의 관념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지금 존재하는 국가의 영속적인 평형이 목적이 되는 겁니다. 여기에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의 제국이나 합중국으로 통일이 되지 않고 왜 이런 형태를 취하면서 유지돼야 하는가, 바로 여기에 핵심이 있는 거예요. 푸코는 이 지점에서 국가이성을 말합니다. 국가이성의 핵심은 국가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겁니다. 국가에서 벗어날 자는 왕이고 뭐고 아무도 없으며, 모든 것은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라는 거예요. 이 괴물 같은 이성이 바로 국가이성이라는 거죠. 그래서 쿠데타는 가장 탁월한 국가이성의 현시인 겁니다. 왜냐하면 쿠데타야말로 국가의 구제라는 이름으로, 국가이성을 법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국가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최후의 이성이기 때문입니다.

Q 근대 국가의 계보학을 구성하는 출발점에 통치성을 위치시키는 건가요? 푸코가 이 작업을 통해 보려한 바는 과연 무엇인가요?

강의의 제목이 안전, 영토, 인구잖아요.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제목과 내용이 잘 안 맞아요. 왜냐하면 푸코도 인정하듯이, 안전-영토-인구의 틀에서 안전-통치-인구라는 새로운 틀로 이동하고 있거든요. 책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푸코는 영토라는 전근대적인 개념을 안전과 인구라는 근대적인 개념으로 샌드위치처럼 에워싸려고 한 것 같아요. 하지만 강의를 하면서 푸코 스스로도 놀랄만한 사유의 전환이 발생합니다. 아시겠지만 푸코의 문제의식을 관통하는 핵심은, 권력은 편재한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권력이 편재하며 심지어 생산적이기까지 하다면 이로부터 해방 혹은 저항의 가능성을 생각하기란 어렵다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단초를 통치성(government)에서 찾았다고 할 수 있어요.

푸코의 마지막 강의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요. 제목이 『자기와 타인에 대한 통치』입니다. 권력의 문제를 통치의 문제로 확장시켰을 때 나름의 해결책을 발견한 거예요. 강의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거죠. 통치로 넘어가야겠다. 예컨대, 오이코노미아, 즉 경제학이란 말의 전신인 가정 관리술이란 말이 『성의 역사』에 나오죠. 그리고 3권에는 자기 돌봄(국역본에는 자기배려로 번역됨)이란 말이 나와요. 자기 돌봄을 할 수 있을 때 타인을 돌볼 수 있고, 타인을 돌볼 수 있을 때 상위의 국가를 돌볼 수 있고, 국가를 돌볼 수 있을 때 세계의 평화를 돌볼 수 있다는 겁니다. 단절된 게 아니란 거예요. 다시 말해 정치, 미학, 윤리, 도덕 등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이 돌봄인 것이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푸코, 예컨대 미국식 비평을 통해 제시되는 푸코는 전기, 중기, 후기 사이에 단절이 있는 것처럼 나타나요. 단호하게 말씀드리지만, 아닙니다. 푸코가 죽기 직전인 84년에 한 인터뷰에서, 결국 지금까지 자신의 문제계는 권력이 아니라 주체였다고 말합니다. 주체의 문제였다는 거예요.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통치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의 여분으로서 타인을 어떻게 내 통치의 연장으로서 통치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의식이었던 거죠.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아포리아 앞에서 정치의 차원을 포기하고 윤리적이거나 미학적인 차원으로 후퇴했다는 비판이 많았는데, 제가 보기에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정치, 철학, 과학, 삶 자체가 사실은 한 몸이라는 걸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단절이지만 또한 동시에 단절이 아닌, 역설적이게도 이걸 보여주고자 통치성이란 말을 쓴 거죠. 윤리적, 정치적, 미학적 문제가 분리 가능할까요? 아름다운 것과 정의로운 것 그리고 윤리적인 것이 분리될까요? 이것은 분리 불가능한 하나의 실체에요. 여기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건 조화로움이죠. 이것은 탁월하게 정치적인 문제에요. 가장 과격하게 정치적인 문제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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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5:05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복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 무상급식이나 반값 등록금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 비정규 일자리를 줄이고 차별을 없애는 것이 복지일까 아니면 복지와는 상관없는 노동문제일까? 대졸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보장하고 구직수당을 주는 것은 복지일까 아니면 그것 역시 노동문제일 뿐일까? 한국의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또한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제32조 1항)”,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제34조 2항)”고도 한다. 한국의 헌법은 복지정책과 노동정책이 동전의 양면이며 상당부분 국가의 의무라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대답은 단순하다. 복지와 노동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복지국가의 출발, 인간의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이는 복지국가를 이룬 선진국의 예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복지국가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시민의 권리를 갖게 하기 위한 체제로 출발했다. 경제적 고통을 겪지 않도록 보장하는 복지국가의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44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발표된 필라델피아 선언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세계의 주요 정부, 기업, 노동 대표자는 “인간의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제 1항)”,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태롭게 한다(제3항)” 등 네 개 조항에 합의한다. 임금 격차가 없는 정규 노동, 즉 ‘공정노동’을 보장하고 ‘사회보장’ 제도를 결합하여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빈곤의 고통 없이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것이 노·사·정의 주요한 목표라는데 의견 일치를 한 것이다.
 
외국의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청년 구직자 등의 노동예비군은 일찌감치 보편적 복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일하는 대가로 받는 임금에만 목을 매달아서는 경제 변동에 끊임없이 휘둘리는데다가 먹고 살기 위한 일자리 지키기 외에는 다른 꿈을 꿀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과 시장에게 경쟁과 효율은 최고의 가치일 수 있지만 기업과 시장이 속해있는 사회는 경쟁과 효율 그 이상의 가치를 요구한다. 그래서 선진국 노동계의 핵심이슈는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 확보를 위한 노동의 탈상품화, 즉 공정노동과 사회보장이었다. 때문에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동일한 업무이면 기본임금 차이가 거의 없다. 이것은 노동조합과 기업 그리고 국가가 사회적 교섭을 통해 임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여 형평성을 확대한다. 예를 들어 환경미화원이 일주일 동안 일을 쉬면 삶이 매우 불편해진다. 주변이 악취로 넘쳐 난다. 반면 연구자나 교수는 한 달 정도 없어도 그처럼 불편하지 않다. 때문에 외국에서는 환경 미화와 같은 일자리를 단순 노동으로 폄하하지 않고 그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며, 그 결과 교수와 환경미화원의 임금격차가 한국처럼 크지 않다.

청년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구직에 대한 지원과 실직 위험에 대한 보호가 광범위하다. 직장에 다니다가 학업을 더 하거나 직업훈련을 받아 더 나은 일자리를 찾는 것이 쉽고, 그 비용 역시 무료이거나 매우 싸서 학자금 대출로 인해 빚더미에 몰리지 않는다. 물론 외국에서도 청년 일자리 상황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노동유연화가 노동권을 훼손하여 일부 청년층 특히 이주청년의 상황은 한국의 현실과 유사할 정도로 나빠졌다. 하지만 복지 이야기만 나오면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라는 비난을 받는 한국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공정노동 없는 반값 등록금?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는 복지국가 논쟁을 해도 노동과 복지가 전혀 다른 것처럼 이해될까?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노동문제, 차별 및 노동권 유린, 낮은 노동조합 조직율과 단체협약 적용률 등의 개선을 통한 공정노동 확립과 사회보험·주택·교육·의료·조세에서의 공공성 확보를 연결시키기 어려운 것일까? 복지국가 논쟁이 아직 시작에 불과한데다가 그 시작이 무상급식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게다가 반값 등록금 논쟁이 다루어지는 방식을 보면 적잖은 우려가 생긴다. 왜냐하면 공정노동 없는 반값 등록금은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주저앉는 격이기 때문이다.

사실 학비가 조금 비싸더라도 졸업 후 괜찮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졸업 후 가고 싶은 기업, 예를 들어 300인 이상 혹은 1,000인 이상 대기업 일자리는 1993년 전체의 13.6%에서 2009년 6.1%로 반토막이 났다.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고 기업이익이 수조원을 넘는 호황이라는데 그에 걸맞은 일자리는 오히려 줄고 있다. 반면 비정규 일자리나 중소영세사업장 일자리는 더 늘어나고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11년 3월 현재 한국 노동자의 33.8%(577만명)가 비정규직이다. 노동계는 이보다 좀 더 많은 48.7%라고 발표했다. 10명 중 4명 내지 5명이 비정규직인 것이다. 1988년 도입된 법정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2010년 당시 196만명(11.5%)이었으며 저임금 근로자는 26.5%에 달한다.

공기업 등 공공부문도 마찬가지이다. 2003년 설립된 A공기업은 처음부터 정규직 700명과 비정규직 3,500명의 일자리로 설계되었는데, 연 10%대의 이윤율을 낸 이후인 2010년 말에도 정규직 800명과 비정규직 5,936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비중이 742%이다. 또한 공공부문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비중이 민간 부문보다 20% 정도 더 높다. 그래서 공공부문 취업문은 나날이 좁아지고 대기업 역시 비정규직 일자리가 넘쳐난다. 그 주요한 이유가 대기업의 마구잡이식 아웃소싱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중소기업이라도 임금격차나 일자리 불안정만 아니면 대기업에 못지않을 수 있다. 하지만 300인 이상 대기업과 100인 미만 중소기업의 평균 임금은 50% 차이가 있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도 그러하다. 차별시정 제도가 도입되었으나 차별이 사라졌다는 보고는 없다. 게다가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노동자는 노동3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걸핏하면 사용주의 손해배상청구에 시달리는 등 위법을 저지른 사용주는 과태료만 내고 마는데 노동자는 업무방해 등의 이유로 구속을 각오해야 한다.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으면 그나마 항의라도 해보겠지만 전체 노동자의 조직률은 10.3%이고 그 중에서도 비정규직 조직률은 3.1%(2010년)에 불과하다. 전체 임금 노동자의 50%가 취업하고 있는 30인 미만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0.2% 이다. 따라서 반값 등록금 이상으로 괜찮은 일자리, 공정노동이 중요하다. 반값 등록금에 그쳐서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입을 닫아버린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또한 불평등·불공정을 그대로 둔 채 도입하는 복지는 일부 취약집단을 보조하는 잔여적 복지에 불과할 수 있다. 어려운 사람을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 역시 사회권과 시민권의 보편적인 도입을 전제로 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 평등한 기회와 적절한 사회보장 없이 경쟁만을 우선시하고, 경쟁 끝에 낙오한 사람에게 자선을 행하는 것은 생선 잡는 기술은 가르치지 않고 생선을 던져주는 것과 같다.

보편적 복지를 말하기 위해 다시 노동을 말해야 할 때

요컨대, 저임금이나 비정규직이 많을수록 복지 재정 또한 많아야 한다. 하지만 차별받는 사람은 조세를 납부할 돈이 없고, 반대로 차별하는 현실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은 굳이 복지에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없다. 그래서 보편적 복지는 불가능해진다. 때문에 좋은 일자리와 납세능력을 가진 시민이야말로 복지국가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만약 한국의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이 복지국가, 특히 공정노동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복지국가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예비 노동자인 청년, 대학생이 스펙 쌓기와 취업준비에 들이는 관심만큼 공정노동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반값 등록금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끊임없이 취업 눈높이가 높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뿐이다. 태어나서 졸업할 때 까지 너는 명품이니 눈높이를 높이라는 소리만을 듣다가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제 너는 비용이니 눈높이를 낮추라고 하니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좋은 일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간직할 수는 있다. 누가 청년의 희망에 단서를 달겠는가. 문제는 이제 희망인지 공상인지를 판단해야 할 시점이라는데 있다. 

얼마 전 신문에 커피숍에서 근무하던 아르바이트 학생이 주휴수당을 주지 않았다고 해당 기업을 고소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런 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모니터링하고 위반행위를 고소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수가 적기 때문에 시민단체나 청년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이 학생의 고소는 작은 행위이지만 큰 걸음일 수 있다. 청년이 스펙 쌓기만이 아니라 스펙 지키기를 위해, 일하는 동물이 아니라 존엄한 인간이기 위해 법을 지켜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요구보다 더 중요하다. 청년의 힘이 곧 나라의 힘이고 미래의 힘이기 때문이다.

반값 등록금 요구가 모두의 노동권 지키기 운동으로 바뀌는 것, 청년이 공정노동 확보를 위한 복지국가 논의에 뛰어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노동과 복지를 결합해 복지국가를 이루는 바른 길이다. 복지국가는 주어지는 것도 아니며 운명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곧 시민의 열망과 의지, 실천의 결과물이다. 열망이 없으면 복지국가도 없다. 열망이 춤추면 복지국가는 곧 우리의 미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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