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5:01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9월 하순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강정마을을 다시 찾았다. ‘살아있는 바위’ 구럼비는 거대한 펜스에 가로막혀 벌금과 체포를 각오하지 않는 한 갈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맨발로 그 바위 위에 서면 온몸으로 전해오던 생명의 소리는 굴삭기에 의해 요란한 죽음의 소리로 둔갑해버렸다. 평화롭던 마을공동체도 이미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곳에선 찬반 주민들 사이에 멱살잡이가 벌어지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여 거듭 묻게 된다. 천혜의 자연과 평화로운 마을을 파괴하면서 얻게 되는 국익이 무엇이냐고?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둘러싼 득실관계를 따져봐야 할 자리는 첨예한 이념 대결이 대신하고 있다.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은 해군기지 반대 세력을 “종북·좌파”, “김정일의 꼭두각시”, “대중(對中) 사대주의자”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국익’의 관점에서 제주해군기지의 문제점을 제기해왔다. 기지 건설과 20여척의 대형 함정 도입·유지에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의 예산 투입이 불가피하고, 한-중 간에 불필요한 군사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 미-중 간의 패권경쟁에 한국이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제기는 이내 “반대를 위한 반대”, “유언비어” 등으로 일축되기 일쑤다. 하여 거듭 정부와 보수 진영에 간곡히 호소하고 싶다. 국익의 관점에서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을 따져보자고.

대한민국 국민치고 우리에게 생명선과도 같은 해양수송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국의 이어도 영유권 주장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는 점에 대다수 국민들은 동의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해군기지 건설은 우리에게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전략적 부담’이, 국가안보상의 긴급한 상황을 진화할 수 있는 ‘소화기’가 아니라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을 확실한 위협으로 만드는 ‘인화물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중 해군이 이어도에서 대치하면?

제주해군기지가 한중관계에 막대한 부작용을 초래해 국익을 위협할 수 있다는 가장 일차적이고도 직접적인 이유는 이어도 문제에 대한 해군의 대응 계획에서 비롯된다. 해군은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되면 기동 함대를 배치해 이어도에서 초계 활동을 할 계획이다. 그런데 한-중 간 합의되지 않은 수역에 한국이 군함을 보내 초계 활동을 벌이면 양국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만약 중국 해군이 이어도에 출현하면 우리는 외교적 항의에서부터 군사적 맞대응까지 다양한 조치를 취할 것이고, 반중감정도 고조될 것이다. 중국이 취할 조치도 이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한국이 먼저 해군 함정을 보내 양국의 함정이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한국은 외교적·경제적·안보적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미합의 수역에 함정을 보내 긴장 상황을 자초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여론은 결코 우리 편이 될 수 없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은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대단히 높은 한국의 국가신인도 강등을 검토할 것이다. 중국 내에서는 반한감정이 일어나고 이는 한국 상품 불매운동과 중국인 여행객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대치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의 위험 부담은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일본을 굴복시키는데 사용한 희토류 수출 중단이나 한국에 대한 여행 금지 조치 등 경제적 보복에 나설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마도 어떤 정부가 되었든 미래의 한국 정부는 해군 함정을 철수시켜 사태를 수습하려 할 것이다. 이는 곧 배타적 경제수역(EEZ) 획정을 둘러싼 협상력의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이어도 해양주권 수호를 이유로 제주 해군기지를 만들어 해군 함정을 파견할 때 자초하게 될 ‘확실한 위험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절실한 문제제기에 대한 토론도 검증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해군기지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근거 없는 기우에 불과해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주권적 선택이 초래할 비주권적인 결과

또 한 가지 전략적으로 더욱 큰 부담이 따를 수 있는 문제는 미국이 제주해군기지를 어떤 형태로든 이용해 한중 관계가 크게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도를 둘러싼 대치 상황은 한-중 양자 간의 문제라는 점에서 외교적으로 풀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미-중 갈등에 휘말리면 한국의 선택지는 극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이라는 ‘주권적 결정’이 우리의 운명을 ‘타자화’하는 가장 ‘비주권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해군은 미국과 협의 없이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미국 예산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으며 이미 진해와 부산을 기항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할 가능성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과 협의 여부 및 미국 예산의 투입 여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둔군지위협정(SOFA) 그리고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따라 미군은 한국 해군 기지인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할 수 있는 원천적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SOFA 규정상 미군이 우리 시설을 활용하려면 관련 정부, 외교통상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SOFA에는 “(미국의) 선박과 항공기는 대한민국의 어떠한 항구나 또는 비행장에도 입항료 또는 착륙료를 부담하지 아니하고 출입할 수 있다”고 나와 있고, 이를 실증하듯 한미동맹 역사상 미국이 한국에 군사력을 유출입하는데 사전 ‘승인’을 받은 사례는 없다.

첨예한 이슈인 미사일방어체제(MD)와의 연관성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미국 주도의 MD에 참여를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주 해군기지와 MD는 무관하다고 강변한다. 그런데 정부는 미국과 함께 2년 전부터 MD 공동연구를 실시해오고 있다. 작년에는 한미 양국의 이지스함이 합동 MD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밀실에서는 오키나와와 괌을 방어하는데 한국이 기여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미국이 한국을 대표적인 MD 협력 국가로 분류하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이 패트리어트 미사일 최신형인 PAC-3를 한국에 배치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3년부터 들여오기 시작한 PAC-3는 주한미군 기지인 오산공군기지와 군산공군기지뿐만 아니라 한국 공군기지인 수원기지와 광주기지에도 배치됐었다. 이는 필요할 경우 동맹국의 기지도 미군 군사력의 전개 지역으로 삼겠다는 전략에 따른 것으로, 제주해군기지가 한국 해군기지더라도 미군과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는 핵심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진정 국익을 생각한다면

결론적으로 제주해군기지는 미국이 쓰고 싶으면 쓸 수 있다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그런데 미국이 사용하려 하는데 한국이 못 쓰게 하면 한미동맹에 큰 문제가 발생한다. 거꾸로 미중 군사 갈등 시 미국의 사용을 묵인하면 한국은 군사적으로 중국에게 위해 행위를 하는 셈이기 때문에 한중관계가 파탄에 직면하게 된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이라는 주권적 선택이 우리의 운명을 타자화하는 비주권적인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주 해군기지가 없으면 이러한 걱정은 애초부터 할 필요가 없게 된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를 위해 해군기지 건설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중국의 한 전문가가 쓴 칼럼은 제주해군기지가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에 치명적인 위험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기우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변강연구소 뤼차오(呂超) 소장은 9월 6일자 <환구시보> 기고문을 통해 “오늘날 한국은 중국인 관광을 통해 돈을 버는 동시에 그 관광객들의 고국을 무력을 통해 위협하려고 한다. 우리는 한국으로 하여금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며, “중국인들은 제주 관광을 거부해야 한다”고 선동하고 나섰다. 관변 학자가 중국 당국의 승인 없이 칼럼을 쓸 수 없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는 결코 개인의 입장으로 치부할 수 없다. 이처럼 제주해군기지가 한중관계에 중대한 불안을 야기할 소지가 대단히 크다. 과연 우리의 최대 무역상대국이자 외교·안보적으로도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 중국을 등 돌리게 하면서까지 얻게 되는 국익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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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4:56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여전히 조용히 불타고 있다. 핵발전의 기본 원리가 연속적인 핵분열인 이상, 아무리 냉각수를 들이부어도 녹아내린 격납용기와 핵연료는 조용히, 눈에 보이지 않고 소리와 냄새도 없는 방사능을 내뿜고 있다. 핵발전을 옹호하는 전문가들조차 이 사고를 수습하는데 최소 십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 예상한다. 이 사고가 불행 중 다행으로 이 수준에서 마감된다 하더라도 그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도 후쿠시마 주민들을 비롯해 우리 모두는 직접 또는 간접적인 상해와 부담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꺼지지 않는 핵발전소의 불길만큼이나 핵산업의 드라이브도 아직 꺾이지 않고 있다. 이는 핵발전의 시작과 성장이 정치와 군사, 에너지 산업의 동맹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상기할 때, 그 동맹이 쉽게 깨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전 르네상스’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해외 원전 수출과 신규 핵발전소 부지 선정을 강행하려는 이명박 정부는 그 첨병을 자임하고 있다. 그리고 ‘핵발전은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와 동시에 ‘그래도 우리 지역에는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여전히 국민 다수의 여론이다.

왜 ‘핵마피아’는 거대하고 강고하며, 왜 어떤 사회는 ‘탈핵(脫核)’을 선택하고 어떤 사회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조건이 탈핵을 촉진하거나 가로막는가? 이는 세계화된 자본주의 경쟁 체제의 경제성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핵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와 힘들도 봐야 한다. 나아가 탈핵을 이야기할 때도 그 정치사회학적 측면을 살펴봐야 한다.

탈핵의 정치사회적 측면

한 국가와 사회가 탈핵에 접어든다고 할 때, 거기에는 몇 가지 지렛대 또는 배경이 있다. 이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때, 탈핵은 보다 효과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첫째는 구조와 경로의존성의 문제다. 이는 경제와 에너지 순환에서 핵발전이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느냐 그리고 거기에 이해관계 주체가 어느 정도 강하게 얽혀있느냐의 문제다. 핵발전은 다른 어떤 기술이나 에너지 시스템보다 경로의존성이 크다. 예로, 프랑스는 유럽 내에서 유독 핵발전 비중이 높아서 그만큼 탈핵이 어려운 상황이다. 생산된 전력의 수출 뿐 아니라 연료재처리, 핵융합 등으로 커진 핵산업 덩치를 쉽게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는 핵산업 비중을 높이려고 (보수)정부가 의도하더라도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산업의 이해당사자(업주, 노동자, 전문가, 언론인, 정치가)들의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복지의 단물처럼 탈핵의 단물도 경로 의존적이다.

둘째는 사회역량, 특히 탈핵을 지지·지원할 시민 역량의 문제다. 1998년 독일의 사민-녹색 연정이 탈핵의 분수령이었지만, 이는 70년대 이래 누적된 탈핵 담론과 운동의 결과였을 뿐이다. 소수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이 이끌고 가는 탈핵운동은 외부 환경의 급변이나 정치권의 풍향 변화에 휘둘리거나 뒷심을 갖지 못한다.

셋째는 정당, 특히 녹색정당의 존재와 활동 유무의 문제다. 현재의 정치 체제에서 정치세력은 표를 좇게 되고 여론의 중앙값을 지향하기 마련이며, 이는 당연히 타협적이고 보수적인(현상유지적인) 경향을 만들게 된다. 기성의 산업과 에너지 체제, 그리고 사는 방식과 문화에 기반한 정당들(우파에서 좌파에 이르기까지)이 수미일관하게 탈핵의 입장을 견지하지 못하는 것은 숱하게 목도된 일이다. 일본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과감하게 탈핵 궤도로 진입하지 못하는 것은 집권 민주당마저 부분적으로 핵산업(그리고 현재의 에너지-문화 체제)과 이해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반면, 탈핵 시나리오를 가동하고 있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녹색지향의 정당이 존재하며 게다가 유의미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핵 문제에서 ‘소외’된 한국 정치

하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6개월이 넘도록 한국 정치권의 대응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기껏해야 국내에 유입되는 방사능 물질에 대한 모니터링과 안전지침 요구, 핵발전소 안전점검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미온적인 활동이 국회의원들의 게으름 탓이라고 치부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핵발전 정책과 운용에 대해 정치권 역시 그 동안 놀랍게도 ‘소외’되어왔기 때문이다. 

핵에너지는 ‘거대기술’이다. 고도의 기술력과 막대한 자본이 투자되며 군사무기와도 직결되는 전문적인 영역이다. 그래서 초기 핵발전 시장이 형성될 때까지 민간 발전사들은 수익성과 안전성 확보에 대한 부담으로 진입을 꺼려했고, 정부가 나서서 투자와 정책적 지원을 시행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핵발전소를 어디에 어떻게 건설하고 운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소수의 과학자, 관료, 기업가의 손에 맡겨져 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정치인에게조차 핵발전 관련 내용은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고 알 필요도 없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2030년까지 핵발전 비중을 59%로 확대하고 이를 위해 십 수기의 핵발전소를 증설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할 때도 정치인들이 개입하고 발언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었다. 핵발전소나 핵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정은 지역 주민들의 주민투표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가장한 관권선거에 내맡겨져있는 형편이다. 심지어 지금 수명연장에 들어간 고리1호기와 수명연장을 계획하고 있는 월성1호기 같은 노후 핵발전소의 연장 가동 문제는 가부 결정이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에너지는 자본이자 권력이다. 에너지 정책이 한 번 수립되면 그것은 국책사업과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지역과 국민에게 강제된다.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을 거부하는 지역과 주민은 님비(NIMBY)로 매도당하고, 국민은 정부가 설정한 에너지 수요치와 그에 따라 제공되는 발전량을 가지고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유도된다. 그래서 에너지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다. 우리가 에너지를 얼마만큼 생산해서 얼마만큼 쓸 것인가 그리고 거기에 수반되는 비용과 부담을 누가 그리고 어디에서 담당할 것인가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논의할 수 있다면 핵발전을 지속하고 심지어 늘리자고 쉽게 결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는 결국 정치의 역할과 국민의 참여 문제로 돌아온다.

‘탈핵정치’의 자리찾기

탈핵을 위한 시나리오의 대강은 이미 나와 있다. 결국 문제는 총에너지 소비의 6%, 전체 발전량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핵발전의 비중을 어떻게 대체할 것이냐의 문제다. 물론 산업사회가 도래한 이래 이제껏 우리가 취해 온 자연착취적이고 낭비적인 삶의 양식을 되돌아보는 것이 우선이지만, 핵발전 없는 녹색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대중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논의의 틀거리가 필요하다.

탈핵 한국 사회를 상상하는데 있어 가장 큰 반론은 수출과 소비 증가로 에너지 수요가 계속 늘고 있는 가운데 핵발전 증설이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것과 핵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당장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럽의 사례를 보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5천불 정도에 이르면 에너지 소비가 오히려 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또한 재생에너지도 내일 당장 핵발전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보다 가시적으로 핵발전을 줄이고 대체하는 그림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할 때 이에 해당하는 전력분은 에너지 수요관리와 효율화로 충당하고, 노후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로 인해 발생할 전력 부족분은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로 충당하는 시나리오다.

수요관리와 효율화로 신규 핵발전소 계획분의 발전량보다 많은 수요 절감을 이룰 수 있다면 핵발전소 신규 건설의 설득력은 지탱될 수 없다. 그리고 재생에너지가 노후 핵발전소와 가동 중인 핵발전소의 발전량을 대체할 수 있는 만큼 기존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는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탈핵의 과정을 수행한 이후에는 에너지 수요를 더욱 줄이고 화석에너지를 점차 재생에너지로 대체해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탈핵의 도정에서 당면한 구체적인 이슈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수명 연장을 추진하고 있는 월성 1호기 핵발전소를 그대로 폐쇄하고, 이미 수명연장에 들어간 고리 1호기를 폐쇄하는 일이다. 그 연속선상에서 현행 원자력법을 개정하여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을 법률로 다루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제5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전면 재검토하여 적정한 에너지 수급 전망과 핵발전 비중을 설정하고, 탈핵 시나리오가 기본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원자력문화재단을 해체하거나 재생에너지문화재단으로 바꾸는 것도 빠뜨릴 수 없다.
 에너지 민주주의, 올바른 에너지 정치를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 즉 정치인과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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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4:52


문이얼 (아이비스 에너지 전략 연구소)

리비아 민주항쟁의 배경

카다피가 나토의 공습과 반군의 공세에 밀려 트리폴리에서 퇴각하면서 리비아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향후 리비아 사태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을 하기 위해서는 리비아 사태 진행 과정에서 드러난 다양한 모순관계를 볼 필요가 있다. 

지난 1969년 친서방 경향의 국왕을 쿠데타로 몰아내고 이집트의 나세르가 주창한 아랍 민족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은 카다피가 권력을 잡았다. 당시 국왕은 벌어들인 석유 대금을 리비아 대중들의 필요에 맞게 제대로 분배하지 않았고, 이러한 상황 때문에 리비아 대중들은 카다피의 쿠데타를 묵인했다. 리비아는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식민지배를 받았고, 사회적으로 매우 낙후되어있었기 때문에 쿠데타 성공 이후 카다피는 몇 가지 급진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카다피는 우선 리비아 주둔 미군 공군기지를 철수시켜 외세의 지배를 거부했고, 정부가 직접 석유 자원을 통제하여 이전보다 서방측으로부터 더 많은 석유 판매 대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석유 수입은 주로 주택보장과 의료보장 등 사회 보장에 충당되었고, 토지 재분배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아울러 아랍 민족주의자답게 서방측에 도전하면서 분열된 아랍민족들의 단결을 위해 애썼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리비아는 경기침체에 빠졌고 이에 따라 대중의 불만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1986년 미국은 서독주둔 미군장교클럽 폭파사건에 리비아가 연루되었다고 단정하고 리비아의 수도인 트리폴리와 벵가지를 보복 폭격하고, 리비아에 대해 경제적 제재를 가했다. 이런 미국의 군사·경제적 공격에 리비아 국민들은 카다피에 대한 불만을 잠시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카다피는 당시 전 세계에 유행처럼 번진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리비아의 침체된 경제상황 개선과 권력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다음 해인 1987년부터 국제통화기금의 처방에 따라 점차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수입대체 경제정책은 폐기되고, 농업과 산업부문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이 도입되었다. 이 때문에 농민과 노동자, 자영업자의 불만이 증가했지만, 1992년 유엔의 리비아 경제제재 때문에 이러한 불만은 재차 ‘주권 수호’, ‘제재 반대’라는 구호 속에 억제되었다. 지난 2000년 초반부터는 카다피 정권이 ‘카다피 혁명’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국유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밀어 붙였다. 일부 사람들은 카다피가 정치적 주권을 지나치게 양보한다고도 비판했는데, 결국 카다피는 2004년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서방과 타협했다.

1993년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한 카다피 암살미수 사건이 발생하자 카다피는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에 대한 강경책을 쓰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지난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카다피는 재빨리 미국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이후 카다피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에 저항해 싸우고 있던 리비아 출신 이슬람주의 전사들을 체포하는데 미국과 공모했다. 또 카다피는 각종 정책적 차원에서 다른 부족들이나 지역을 홀대하고 자기부족 출신들을 국가 요직에 등용했는데 이는 다른 부족이나 지역의 불만을 불러 일으켰다.
 
반(反)카다피군의 특징과 서방의 정치적 계산

현재 리비아의 반카다피군은 기존의 카다피 정권에서 이탈한 이들과 정부로부터 억압받던 민중들이 섞여있다. 전자는 기본적으로 카다피 정권 하에서 진행되었던 민중 탄압과 서방과의 타협 및 거래에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충실히 수행했던 인물들이었다. 이 점에서 이들은 카다피가 서방에 대해 취했던 태도에 반대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반카다피군 내에는 급진적 이슬람주의자들도 있는데, 이들은 카다피를 몰아낸다는 목적 하에 친서방 구체제측 인사들과 일시적인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카다피에 대항하여 싸우는 과정에서도 이들 사이에는 끊임없이 불신과 긴장, 적대감이 표출되었다. 예컨대, 지난 7월 말 반군 사령관인 유니스가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된 일이 그것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유니스가 나토와 결탁하여 자신들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몄기에 그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의 유럽 지역 대표자로 임명된 한 리비아 관리 역시 유니스가 지나치게 이슬람주의적인 반군의 위치를 나토에 알려주어 폭격하게 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실제로 리비아 내전 과정에서 반군에 대한 나토의 오폭사건들이 많았는데, 이 가운데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 관리는 카다피에 대항해 싸우는 반군들의 70% 이상이 나토와 서방측의 군사적 개입을 반대하는 이슬람주의자들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리비아의 저명한 종교 지도자인 셰이크 알리 살라비는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의 핵심적인 지위에 있는 인사들이 리비아 혁명을 훔치려는 친서방 꼭두각시라며 사퇴할 것을 주장했다.

서방은 카다피와 미국이 화해한 이후 카다피가 자행하던 잔혹한 반대파 탄압에 침묵했고, 각종 무기들과 시위진압용 물품들을 리비아로 수출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군사적 개입은 정치적 도덕성이라는 면에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서방은 왜 리비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려고 했던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석유 문제가 있다. 그동안 서방은 카다피와의 타협 이후로 다국적 석유 회사들을 리비아 석유산업 부문에 진출시켰다. 그러나 리비아 민주항쟁의 여파로, 무장한 리비아 민중들이 석유 관련 시설을 통제하기 시작한데다가 이 투쟁이 아랍 민주항쟁의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자극할 우려도 있었기에, 서방 국가들은 더 적극적으로 사태에 개입해야만 했다. 이를 위한 핑계가 바로 ‘인도주의적 개입’이다. 그러나 이런 ‘인도주의적 개입’은 사실 민중 봉기를 약화시켜, 카다피 구체제에서 이탈한 반카다피 세력들로 하여금 혁명에 대한 통제력를 회복하고 구질서로 회귀하게 돕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서방의 대응 사이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이는 리비아에 대해 각국이 가지고 있는 이해관계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문제였다. 먼저 리비아에서 생산된 석유의 대부분은 영국과 프랑스가 위치한 유럽으로 보내지기 때문에 이들 국가들은 미국보다 리비아의 석유 문제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반면 국내 경제가 심각한 상황이고 이미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은 리비아에 대한 이해관계가 그나마 덜 한 편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리비아 사태에 대한 무대응이 자칫 제국의 위신과 영향력에 상처를 낼 가능성을 고려해야 했고, 아랍 혁명의 물결 속에서 자신들 역시 아랍의 친구인 것처럼 서둘러 가장할 필요도 있었다.

‘제2의 혁명’으로 나아가고 있는 리비아 혁명

카다피가 트리폴리에서 퇴각한 상황에서 문제의 초점은 정부 구성과 질서 회복일 텐데, 여기서 관건은 서방과 이후 구성될 리비아 정부 그리고 이슬람주의 반군들 사이의 관계이다. 우선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친서방 인물들이다. 이후 이들이 구성할 정부는 서방 및 다국적 석유기업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들이 그러한 결탁을 하면 할수록 이슬람주의자들이나 민중들로부터 저항을 받을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게다가 정부 구성을 놓고 적대적인 분파들이 경쟁적으로 난립하여 갈등이 커지게 되면서, 이후 구성될 리비아 정부는 만성적인 혼란과 마비 상태를 겪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리비아 반군들의 무장 해제가 신속히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친서방 리비아 정부의 사태 장악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불안정을 해결하기 위해 리비아에 대한 나토 공습에 참여했던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지상군 파병이 논의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쉽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유럽 국가들이 재정위기에 빠져 군사비 감축을 하고 있는 마당에 대규모 지상군을 파병하는 것은 단순한 공습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설사 서방의 지상군이 리비아의 안정을 위해 개입한다 해도 이 과정에서 나토군이 행사할 폭력에 대해 리비아 민중들의 저항만을 촉발할 가능성이 많다. 이런 상황은 북아프리카 사막에 또 하나의 이라크를 재현하는 것이다. 설사 나토측이 친서방 리비아 정부에 순전히 정치적, 경제적 지원만을 제공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만약 리비아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빠른 시일 내에 개선되지 않거나 혹은 악화되고, 더 나아가 이후 구성될 친서방 경향의 리비아 정부가 대중들의 다양한 정치적·경제적 요구들을 탄압할 경우, 나토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리비아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인 석유 시설을 원상복구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점도 이런 압박을 크게 만들 것이다). 무엇보다 리비아는 이라크와 중요한 차이점 하나가 있다. 즉 리비아에는 이라크와 달리 현지 주둔 외국군이 없기 때문에 리비아 정부가 서방에 의해 지원받을 수 있는 폭이 제한된 반면, 이에 대항하는 다양한 반군들과 민중들은 행동의 자율성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비록 서방측의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이라크와 달리 리비아 민중들은 엄연히 자신들의 손으로 카다피를 쫓아냈다는 점이다. 어쩌면 리비아는 이제 ‘제2의 혁명’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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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4:47

세계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Mundus?)
- 전 세계로 번진 재정위기로 위협당하는 세계경제 -

장시복(목포대학교 경제학과)

전 세계로 번진 재정위기

세계는 재정위기로 중병을 앓고 있다. 그리스로부터 시작된 재정위기는 아일랜드를 거쳐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번지고 있다. 이로 인해 재정위기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유럽연합이 과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심지어 최악의 경우에는 유럽연합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최근 이 문제는 10월 위기설로 나타나고 있다. 10월에 유럽 주요국의 국채만기가 도래하면서 그리스의 디폴트 선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1년 8월 스탠다드앤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하면서 재정위기는 이미 미국에서 시작되고 있다. 스탠다드앤푸어스가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 무리하게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했다는 비판이 있지만, 어찌됐든 이번 강등으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향후 경기위축을 겪게 될 것으로 보여 재정위기는 단기에 쉽사리 해결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은 재정위기가 미국 혹은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전체가 공통으로 겪고 있으며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문제임을 잘 보여 준다. 유럽의 재정위기가 미국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또한 미국의 재정위기가 유럽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면서 ‘재정위기의 악순환’이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각 국이 이 위기를 시급하게 풀지 못한다면 세계경제는 더 심각한 상태로 내몰리게 될지도 모른다.

부채의 폭탄 돌리기

그런데 이번 위기에서 주목할 점은 재정위기를 기점으로 민간부채가 국가부채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재정위기에 대한 각 국 정부의 대응은 부채 자체의 수준을 줄인 것이 아니라 부채를 떠안는 주체를 자본에서 국가로 이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대 재정위기는 자본의 위기를 국가의 위기로 전화하고 있는 것이다.

부채문제는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미국의 부채규모는 GDP 대비 1.5배였는데, 이 비율은 2005년에는 3.5배로 계속 늘어나 지금은 전 세계 GDP 44조 달러에 맞먹는 수준이다. 부채의 증가는 모든 경제주체에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가계, 비금융기업과 금융기관, 정부 모두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것이다. 가계부채의 경우, 주택경기 호황에 따른 주택 재융자와 신용카드 부채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비금융기업도 기업매수와 합병이 유행처럼 퍼지고 주주자본주의 압력으로 차입금을 빠르게 늘리면서 대규모 부채를 지게 되었다. 그러나 부채 증가의 대부분은 금융기관으로부터 연유한다. 예를 들어 미국 금융부문의 부채는 1970년 초 전체 부채의 10%에 지나지 않았지만, 2005년 이 비중은 전체 부채의 1/3수준으로 늘어났다.

금융기관의 부채 증가와 함께 특히 자본을 유동화한 가공자본과 이를 재가공한 금융상품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예컨대, 주식은 이윤에 대한 청구권을 자본화한 수익증서로서 의제자본으로 기능하는데, 이는 일정한 금액을 신용화폐로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시장에서 판매되기도 한다. 주식뿐만 아니라 주택담보대출, 대학등록금 대출과 자동차 할부 등 화폐자본으로 전환될 수 없는 많은 금융상품들이 신용공급을 위해 유동화 되었다. 게다가 유동화 된 자본은 다시 재가공되었다. 이번 위기에서 부채담보부증권(CDO)이라는 파생금융상품을 통해 잘 드러난 것처럼 금융자본은 ‘그림자 금융시스템’을 통한 투기적 차익거래(speculative arbitrage)를 노리고, 유동화한 금융상품을 다시 쪼개고 분할하여 파생금융상품으로 재가공했다. 그리고 이 파생금융상품은 다시 2차, 3차 파생금융상품으로 재가공 되어 전 세계 곳곳으로 팔려나갔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경제에서 금융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나타났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10년 4월 세계 외환시장 1일 평균거래액은 3.9조 달러였다. 이 돈 대부분은 무역결제대금이 아니라 외환거래, 선도거래, 옵션 등의 금융거래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이 돈은 실로 엄청난 금액이다. 1일 평균거래액 3.9조를 우리 돈으로 환산(1달러=1,000원)하면 3,900조원에 이른다. 이는 우리나라 GDP의 약 3.9배에 달하는 돈이다. 이 돈이 1년 돈안 움직인다면, 그 금액은 1,423조 달러에 달하며 우리 돈으로는 142경 3천조 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이처럼 금융투기에 기름을 붓고 동시에 금융투기가 더 많은 부채를 유도하는 상승작용이 벌어지면서 세계경제는 금융세계로 휩쓸려 들어갔다. 또한 금융에서 차익을 얻기 위해 모든 경제주체들이 뛰어들면서 금융위기가 빈번하게 발생했으며 세계경제는 늘 불안정의 위협 속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번 위기는 금융에서 나타난 부채 폭발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공황으로 부채가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떠안아야 하는 짊이 되었으며, 정부가 이 부채를 금융안정조치와 경기부양대책으로 떠안으면서 자본의 위기가 국가의 재정위기로 전화된 것이다.

재정위기 해결의 곤란함

문제는 전 세계로 번진 재정위기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2006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세계대공황으로의 확산을 막기 위해 시행한 경기부양책의 약발이 다해가면서 세계경제는 ‘더블딥(double deep)’에 빠지고 있다. 세계경제의 경제성장률은 둔화되고 있으며 이윤율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실업률도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소비, 투자의 모든 영역에서 경제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경제의 실물부문에서 더블딥이 발생하면서 재정위기는 더 심각해 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편으로 재정위기를 해소하려면 세계경제의 회복을 반드시 전제해야 한다. 경기회복으로 세입이 늘어나야만 재정적자를 축소하여 국가부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는 정부가 경기회복을 위한 확장적 재정정책을 사용할 수 있는 여력이 크지 않아 실물경제의 추락을 저지할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당분간 세계경제는 금융위기와 실물위기를 동시에 겪게 되면서 재정위기의 악순환을 쉽사리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재정위기를 해소하려면 감세정책을 철회하거나 공공부문의 긴축적 구조조정 등을 시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정책들은 정치 갈등을 야기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은 부자감세를 철회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공화당과 티파티(Tea Party) 등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정치적 갈등을 양산하고 있다. 부자 스스로 세금을 내겠다는 주장마저 계급투쟁의 문제로 몰아가는 분위기에서 긴축이나 감세철회로 재정위기를 해결하려는 정책은 정치 갈등을 양산할 공산이 커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정위기를 해결하려는 대책이 쉽사리 도출되기는 어려워 보이며 장기화될 가능성마저 높아 보인다.

세계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최근 월스트리트에 분노한 미국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월가를 점령하자”는 구호아래 시위대는 금융자본의 탐욕과 부패, 정권유착 등을 질타하고 사회적 불평등에 항의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월스트리트를 넘어 시카고, 뉴멕시코, 워싱턴 등으로 번지고 있으며, 이 가운데 노암 촘스키, 마이클 무어와 같은 저명한 인사들도 시위대를 지지하고 나섰다. 다른 한편 재정위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유럽에서도 정부의 경제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재정위기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정부의 공공지출 삭감에 항의하고 부채에 시달리는 가계에 대한 지원 강화를 요구하며 영국,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등에서도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 분노가 정부의 행동을 전환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재정위기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각 국의 시민들은 삶의 고통을 겪고 있으며 이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막대한 손실을 만들고도 엄청난 퇴직금을 챙긴 금융 경영자들, 엄청난 금액의 구제 금융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금융시장, 약발이 먹히지 않는 경기부양책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시민들의 고통이 커지면서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윤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에 공분하는 시민들은 이렇게 묻는다. “좋은 시절 당신들은 자본주의의 미덕인 사유재산을 옹호하며 모든 과실을 가져갔다. 공황이 발생하자 당신들은 “우리가 망하면 모두가 망한다”며 구제 금융을 당연시했다. 그리고 이제 재정위기가 발생하자 당신들은 다시 자본주의의 미덕을 내세우며 감세는 사회주의라고 주장한다. 도대체 당신들은 어느 별에서 왔는가?”

향후 세계경제는 재정위기의 여파로 인한 금융 불안정과 실물 경기위축으로 재정위기가 더 심각해지는 악순환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재정위기의 악순환은 단순한 경제문제로 끝나지 않고 정치의 위기, 삶의 위기로 확대·심화될 것이다. 월스트리트에 분노한 시민들은 재정위기가 세계대공황을 넘어서 정치와 삶의 위기로 전화되고 있음을 징후적으로 보여준다. 혼돈의 시대! 세계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Mund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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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4:42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교수)

근대의 생명권력이 전체화시키면서 또한 개별화시키는 권력이라고 말했을 때, 푸코는 자신이 얼마나 헤겔과 닮은 생각을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전체화시키면서 개별화시키는 권력으로서 근대 권력을 해부하는 것이야말로 헤겔의 가장 독특한 업적이기 때문이다. 아마 몇 가지 유예조건을 달고 적절하게 손을 본다면 우리는 푸코가 후기에 전개했던 생명권력 분석이 법치국가를 분석한 법철학에서의 헤겔과 얼마나 흡사한지 깨닫고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주권적이고 사법적인 권력의 모델을 집요하게 비판한 푸코는 실은 그와 똑같은 노선을 따라 나아갔던 헤겔(알다시피 헤겔은 홉스와 루소로 대표되는 주권적인 권력을 집요하게 비판하지 않았던가)과 일치하지 않는가, 무엇보다 주체화되지 않은 채 존재하는 개인은 불가능하다는 푸코의 집요한 주장은 가족-시민사회-국가의 변증법을 통해 자신을 개인으로서 동일화하면서 동시에 탈동일화하는 과정이 근대 사회의 특징이라는 헤겔의 청사진과 겹쳐지지 않는가, 등등. 아마 둘이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점을 찾는다면 푸코에게 있는 ‘자기의 윤리적 실천’이 헤겔에게는 없고, 헤겔에게는 있는 인륜성(Sittlichkeit)이 푸코에게는 없다는 점일 것이다.

전연 양립할 수 없는 자리에 놓인 두 철학자가 동일한 질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 그리 큰일은 아닐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반대의 방향으로 치닫는, 영원히 조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철학자를 관류하는 물음일 것이다. 그것은 정치적 주체(화)란 쟁점이다. 그러나 이 질문과 상대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이제 거의 바닥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헤겔과 푸코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다.

폭동의 이유 없음 그리고 사회(적인 것)의 소멸

이를테면 최근 영국의 런던에서 점화되어 번져간 폭동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폭동은 발전한 서유럽의 한 국가에서 벌어졌다는 점을 빼고도 그것의 이유 없음이라는 점으로 인해 많은 이들을 당혹스럽게 하였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거의 연중무휴로 벌어지는 폭동과 시위, 테러 소식을 접하고 있다. 그래서 어지간한 집단적인 분규는 뉴스감도 되지 않는 듯이 심드렁하게 대한다. 아랍 어느 도시에서의 유혈 폭동에 뒤이어 남미 어느 도시에서의 대규모 시위 소식으로 이어지는 화면을 바라보며, 우리는 세계의 시간표 속에 폭동과 변란이 항시 일과처럼 포함되어 있다는 사악한 착각에 빠질 지경이 되었다. 그런 터에 런던을 비롯한 영국 여러 도시에서 벌어진 폭동은 흔하디흔한 것이 되어버린 소동 가운데 하나쯤으로 여겨도 무방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폭동이 별난 관심을 끈 이유는 단연 그것이 보여준 어떤 특색 때문이었다. 알다시피 그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동이었다는 점에 있다. 폭동이 계속된 며칠 간 그 폭동은 마치 이 몸짓은 과연 무엇을 겨냥한 것인지 알아 맞혀 보시오라는 블랙유머가 뒤섞인 퀴즈처럼 여겨졌다. 폭동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으리으리한 보석상이나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명품을 파는 고급 상점은 제쳐두고 동네의 만만한 가게들에 진열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물건 나부랭이들을 털었다. 하층 계급들 사이에서 공적(公敵)으로 취급되었을 법한 이들은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은 채, 기껏해야 몇 푼 더 벌거나 아니면 동네의 돈 잘 버는 이웃쯤이었을 이들의 재산을 약탈했다. 이런 탓에 그 폭동은 우스개 같은 “약탈적 쇼핑 폭동”이라는 이름을 얻을 지경이 되었다. 물론 폭동을 일으킨 자들이 모르는 이유를 그것을 관전하는 이들이 시끄러우리만치 열심히   떠드는 일은 우리 시대의 전형적인 사회학적인 풍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설명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는 바로 그들이 제시하는 그 모든 설명을 유효하게 만들어줄 ‘사회(적인 것)’란 것이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이후 사회과학이란 것이 생겨나서 열심히 했던 일 가운데 하나는 자기 나름의 과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집단적인 행위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집단적인 행위는 더 이상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정치적 열정이 아니라 잡다한 사회적 문제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인종문제, 세대문제, 빈곤문제, 여성문제 운운으로 이어지는 숱한 사회문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영국에서의 ‘약탈자들의 쇼핑 폭동’은 무슨 문제일까. 당연히 사람들은 이를 사회문제라는 감광판 위에 놓고 이를 인화하려 할 것이다. 사회적인 것에 관한 과학적 지식의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초상을 판독하면서 각자 원인이라 할 만한 것을 결정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무망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말했듯이 그런 분석을 쓸모 있게 만들어 줄 조건 자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인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시야에서 스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이런 전환을 가리키는 이름이 신자유주의이고, 신자유주의를 선구하였던 저 유명한 영국 수상, 대처의 유명한 발언 가운데 하나가 “사회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음을 상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인륜성의 정치, 동일화와 탈동일화 사이에 놓인 갈등을 해결하는 실천

그렇다면 영국에서 터져 나온, 그리고 많은 이들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이 수신자 불명의 폭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마 에티엔 발리바르라는 프랑스 철학자의 생각을 참조하는 것이 도움이 될 듯싶다. 그는 근대 정치를 구성하는, 환원 불가능한 세 가지의 정치 형태를 분석하며, (정치의 자율성에 해당하는 ‘해방’의 정치, 정치의 타율성에 해당하는 ‘변혁’의 정치에 더해) 정치의 타율성의 타율성으로서 잔혹에 대응하는 인륜성의 정치란 것을 꼽는다. 그가 우리에게 익숙한 자유와 평등의 정치에 더해 인륜성의 정치를 추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인륜성의 정치란 것이 동일화와 탈동일화 사이에 놓인 갈등을 해결하는 실천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동일화와 탈동일화란, 이미 주어진 세계 안에서의 정치를 다루는 해방과 변혁의 정치와는 달리 세계 자체의 가능성을 다루는 정치를 말하는 것이리라. ‘어떤 무엇’이지 않은 세계란 것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또 그런 세계란 것이 바로 그 세계를 인지하고 체험하는 주체 없이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그러므로 이러한 세계/주체의 발생이란 다른 말로 하자면 사회의 (불)가능성과 관련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대가 동일화/탈동일화의 정치, 즉 인륜성의 정치를 효과적으로 통과하지 못할 때, 우리는 세계/주체의 발생이 저지되고 억류되는 과정에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아마 발리바르가 동일성으로 전환되지 못한 채 폭발하는 적대의 힘을 표현하기 위해, 적잖이 느닷없고 또 어색한 잔혹성(cruelty)이란 개념을 통해 가리키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가 섬뜩하게 묘사하는 ‘초주관적인 폭력.’ 마치 빙의(憑依)에 걸린 듯이 어떤 알 수 없는 자신 안의 사물(the thing)이 자신을 휘두른다는 느낌 속에서 나타나는, 다시 말해 자신의 주관적인 반성과 의식을 초과하며 분출하는 폭력. 그리고 어떤 객관적인 효용도 만족도 기대할 수 없으며 심지어 그에 반하면서 발생하는 또 그것을 초래한 어떤 객관적인 원인을 고정시킬 수 없는, ‘초객관적인 폭력.’ 이 두 가지 폭력 모두는 사회적인 것을 가능케 하는 구성적인 조건이라 할 적대란 것이, 동일화/탈동일화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함으로서 초래하는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거의 매일 목격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말에서도 체념적으로 정착하게 된 저 악명 높은 “묻지 마” 운운과 결부된 폭력.

어쨌든 세계 없는 세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이 폭력을 어떻게 동일화/탈동일화의 과정을 통해 전환할 것인가. 물론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무엇인가를 감지하고 표상할 수 있게 하는 가상을 생산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잘하고 있을까?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도록 만들었던 금융위기 이후, 우리가 처한 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실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그래서 정작 올 것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무한히 연기된 뒤틀린 종말, 즉 재탄생을 위한 순간을 갖지 않은 채 지속되는 영구적인 종말이라는 체념의 세계 아닐까. 어디에서나 유혈낭자하고 잔인한 폭력이 벌어지고 또 그것이 착취를 위한 형태로도 저항을 위한 형태로도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은 공통의 세계를 구축하지 못할 때, 그리고 정치적 주체의 동일성으로 전환되지 못할 때, 얼굴 없고 한계 없는 폭력이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대중매체에서 사흘이 멀다고 지겹게 마주하는 농담 같은 자유주의적인 흥분, 이를테면 학교에서의 체벌이나 군대에서의 폭력 비판에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또 알려지지도 않는 채권추심원의 폭력, 주가와 평판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될 만한 일이라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기업의 폭력 등에 비추면 폭력의 축에도 못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참담한 일은 그런 일은 폭력 축에도 끼지 못한 채, 인간의 사악한 본성에서 말미암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법과 믿음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완벽하게 도구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잔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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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4:39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는지라(그렇다고 잘한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거죠.) 학교 와서 집에 갈 때까지 책만 보다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이래저래 눈짐작으로라도 챙겨보려 하지만 지나치기 쉬운 사건들이나 언뜻 봐서는 이해하기 힘든 사건들의 경우 아무래도 놓치고 말 때가 많습니다. 더군다나 ‘이게 도무지 나랑 무슨 관련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사건의 경우, 아예 관심조차 안 가질 때가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다 보니 이제는 먹고 사는 것 이외에는 다른 관심을 가질 여유도 의지도 점차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이러다 꼰대가 되는 건 아닌지 무서워지더군요. 아뿔싸.

부랴부랴 신문을 펼칩니다. 이것저것 주간지도 좀 챙깁니다. 인터넷은 안 뒤집니다. 괜히 딴 짓 할까 봐요. 영국에서 폭동이 났군요. 아, 이건 아는 거네요.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모양입니다. 이것도 아는 거네요. 아, 아니네요. 자세히 읽다보니 대충 알던 내용이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한 꺼풀 안을 살펴보니 이건 뭐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매달려 나옵니다. 대처(M. Thatcher) 이후의 신자유주의가 영국 폭동과 엮이더니 미국 금융위기에 이어 리비아 민주혁명으로 심지어는 복지논쟁까지, 이 모든 게 긴밀한 ‘구조연관’ 안에 기입되어 있었네요. 그런데 이마저도 딱 잘라 무엇 때문이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신자유주의가 만병의 근원은 아니니까요. 답이 없는 물음이기에 여기저기에서 각양각색의 목소리들이 넘쳐납니다. 하나로 마름질할 수 없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서로 교차하고 간섭하면서 계쟁(係爭)을 만들어 냅니다. 계쟁, 즉 권리를 얻기 위한 다툼 말입니다. 

자신들의 몫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계쟁은 기존의 질서가 배분한 위치와 기능의 분할선을 의문에 부치는 과정입니다. 예컨대, 리비아의 민주혁명은 카다피가 구획한 질서 및 정당화의 체계를 가로지르는 것이자 이러한 체계가 갖는 위계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위도 이와 비슷합니다. 시장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하는 체계가 현재의 위기를 낳았다면, 당연히 이 체계의 근거 없음을 밝히고 지금까지 박탈당했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시작이겠지요. 한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복지 논쟁 역시 빈부에 따른 나눔을 지움으로써 기존의 셈법을 흐트러뜨리는 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권리를 주장한 결과로 받게 되는 ‘몫’이 아니라 몫을 얻기 위해 스스로의 언어와 역량을 배가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연한 말인가요?

이번 호에서는 최근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주요 사건들을 짚어 봤습니다. 그런데 ‘이슈’라는 단어에는 ‘계쟁’이라는 뜻과 함께 ‘불화’라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권리가 없는(혹은 박탈된) 상태를 전제하기에,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자들의 요구는 이미-항상 불화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의 요구는 언어가 아니라 하나의 외침으로 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화와 함께 비로소 존재하는 이들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이기도 합니다. 앞서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알지 못한다고 푸념한 것은 몫을 요구하지도 불화에 참여하지도 않는 무던한 삶을 반성하기 위해서입니다. 계속해서 이슈를 만들어 내는 것, 즉 계쟁이자 또한 동시에 불화인 이슈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것, 이는 스스로의 언어를 갖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번 호의 목적은 주요 이슈에 관심을 갖자는 게 아닙니다. 불화를 두려워 맙시다. 이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편집장 박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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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4:28


홍승범(심리학과 조교장)


심리학과의 위치

2006년에 서강대학교 학부과정에 심리학과가 개설된 후, 4년이 지나 2010년에 석사과정이 처음으로 개설되었다. 세부 전공은 상담 및 임상과 인지 전공 두 분야로 나누어져 있다. 심리학과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교수님들은 현재 네 분(김정택, 조긍호, 이창환, 안명희 교수님)이 계시지만, 다음 학기부터 임상과 발달심리를 전공하신 새로운 두 교수님들께서 오실 예정이다. 2010년 3월 1기 대학원생이 입학한 이후 현재 3기생들이 입학한 상태로 총 27명의 학생들이 있다. 현재 서강대학교 심리학과의 인기는 실로 대단하여 매 입시전형마다 경쟁률이 10 대 1을 넘고 있다. 앞으로 입시가 진행될수록 심리학과의 규모는 더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심리학과의 분위기는?

서강대학교 심리학과는 현재 가족 같은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유지되고 있다. 신생학과의 특성 때문인지 선, 후배 간의 위계질서를 엄격히 따지기보다는 서로 허물없이 가깝게 지내고 있다. 본인의 관심분야에 따라 학과 수업과는 별도로 학회와 다양한 스터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학업적인 측면 이외의 순수 친목을 다지기 위한 여가 활동에도 모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학과 내의 의사결정을 위한 회의, 원우 한마당과 행사에 학생들의 참여도가 상당히 높다. 교수님과 학생들의 관계도 상당히 가깝다. 학업에 대한 부분 이외에도 교수님들과의 식사시간을 자주 갖으며, 유대를 돈독히 하고 있다. 또한 매학기 모든 교수님, 학생들이 참여하는 북한산 등반과 뒤풀이를 통해 학과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다다른다. 석사 과정이 개설된 지는 2년이 아직 되지 않았고, 아직 3기수만이 있지만, 학과 내의 유대감과 결속의 끈끈함은 수십 년의 전통을 가진 그 어느 학과에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학교에 바라는 점은?

석사 과정이 개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아직 체계가 안정적이지 못하다. 여러 고충사항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부분은 장학금과 공간지원 문제이다. 우선 장학금과 관련하여 살펴보면, 서강대학교에 심리학과 과정이 생긴 지는 5년 정도 되었지만, 훨씬 이전부터 교양과목으로 꾸준히 유지되어 왔다. 학내 학부과정에서 심리학을 부전공 혹은 교양과목으로 선택하는 학생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고, 매학기 개설 과목 수도 증가하는 추세로 평균적으로 학기마다 25과목 정도 개설된다. 학교에서 학과별 지원 장학금을 산정할 때 여러 조건을 적용하는데, 심리학과의 경우 신생학과라 많은 조건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다. 이에 따라 수업을 지원하는 조교의 수가 학과 업무에 비해 적게 할당되는 게 현실이다. 장학금을 위해 조교 근무를 원하는 대학원생은 많은 반면, 한정된 장학금으로 인해 일부의 학생들만이 조교 근무를 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소수의 조교 석사생들에게 타과에 비해 많은 업무가 집중되고 있다. 또한 연구실 공간의 문제의 경우는 모든 학과에서 경험하는 고충일 수 있지만, 심리학과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현재 심리학과에 배정된 연구실의 좌석 수는 7자리이다. 올해 입학한 3기 대학원생들은 연구 공간에 대한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상태이다. 입시 전형마다 경쟁률이 10 대 1이 넘고, 타과에 비해 인원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점을 본다면, 심리학과에 대한 연구 공간 지원이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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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4:26

조현지(불문과 박사 과정)

서강대 불문과 대학원의 자부심은 무엇보다도 양질의 수업

저희 불어불문학과 대학원은 현재(2011년 1학기) 두 명의 박사과정과 두 명의 석사과정 그리고 세 명의 논문 등록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석사 졸업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박사과정에 입학할 학생과 논문을 준비하면서 휴학 중인 학생들을 합하면, 위의 인원보다 조금 더 될 것입니다. 이렇게 열 명 남짓한 대학원생들이 수업을 듣기도 하고, 세미나도 하고, 가끔 국제 문학 포럼 등에 참여하고 의견을 교환하기도 하면서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서강대 불문과 대학원의 자부심은 무엇보다도 양질의 수업에 기인합니다. 불문과의 교수님들은 불문과가 지향할 바가 학생이 많은 학과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잘 훈련된 소수를 배출하는 학과가 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특히, 한국에서 불문학을 공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언어적인 부분을 포함한 학업적 성취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수업은 매우 긴장도 높게 진행됩니다. 예를 들자면, 이번 학기에 진행 중인 말랭 교수님의 기호학 수업은 프랑스에서는 1년(8개월) 과정이지만 서강에서는 1학기(3개월) 안에 진행이 됩니다. 또한 다른 과목들은 매 시간 각자가 발표 분량을 담당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저희가 소수학과이다 보니 누리는 혜택입니다. 학생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매주 수업 중에 자신의 글을 발표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토론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지적받을 수 있습니다. 외국어로 수업을 하면서 외국어로 말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각자에게 돌아간다는 점 역시 소수학과이기에 누리는 혜택 중 하나입니다. 몸은 좀 힘들지만, 수업 중에도 충분히 개별적인 지도를 받고 있다는 든든함과 어느 대학 못지않게 강도 높은 학문적 훈련을 받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연구실에서 불문과 대학원생들이 모여서 생활하니, 서로 불어 해석에 관한 의견을 묻거나 선배님들께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프랑스의 최근 학계의 동향이나 문단의 흐름, 작가나 신간 서적에 관한 대화가 원활히 이루어진다는 점이 좋습니다. 프랑스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신 선배님들, 또 프랑스를 자주 오가시는 선배님들이 이따금씩 들리시니 그분들의 경험을 통해서 유용한 정보들을 전해 듣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문화에 대한 거리두기가 가능하고 또 우리의 문화적 바탕에서 프랑스적인 것을 해석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습니다. 우리가 외국인으로서 프랑스 문화를 존중하며 탐구해야 하겠지만 수용에 있어서는 늘 선별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니까요. 외국 문학과 문화를 국내에 소개하는 일을 담당하게 될 사람들이기에 늘 프랑스의 문학 및 그 바탕이 되는 사회, 문화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주시하게 됩니다.

인문학적 사고가 반영된 인문관 공간 배정을 기대하며

그런데, 이렇게 연구실에 도란도란 모여서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 최근 새로 짓는 인문관 연구실 배분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연구실은 저희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토론하는데 필수적인 공간임에도 소수학과라는 이유로 연구실 배정에서 우선순위가 부여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학과 연구실의 중요성을 인원수로 파악하다니, 이것은 지성의 산실인 대학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많은 학과가 우선시 되고 소수학과는 상황논리에 맞추어 고려된다면, 이는 시장을 관리하는 기업의 경영논리를 따르는 것일 뿐 인문학의 가치를 인식한 선택은 아닙니다. 인문학이 균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각 학과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 사회 내에서 학문 간 존중이 필수적이며, 이러한 존중은 공간의 물리적인 배분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야만 합니다. 인문대에서 소중하지 않은 학과는 없으며, 오히려 소수학과는 소수이기 때문에 독립성을 보호받아야 합니다. 인문학적 사고가 반영된 인문관 공간 배정이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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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4:24

김나연 독문과 조교장

독문과에 진학한 계기는?


제가 독문과 석사에 입학할 때, 주변에서 모두 축하해 주었던 것만은 아닙니다. 삶에서 돈이 최고의 가치 중 하나인 요즘, 많은 사람들이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을 시간낭비, 돈 낭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문학과 같은 순수학문 분야의 경우 그에 대한 편견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문학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지금도 대학원 입학 결정에 후회 없이 즐겁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여러 대학 중 서강대를 선택한 이유는 인문학 전통과 학구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마음껏 학문의 길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대로 학생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주는 열정적인 교수님들을 만나 제 꿈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비록 학생 수는 소수이지만 수십 명의 학생을 가르치실 때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수업을 준비해 오시고 강의를 해 주십니다. 소수학과의 장점 중 하나는 교수님과의 유대감입니다. 수업 시간 외에도 제가 공부하는 것에 있어 어려움이 있을 때면 언제든지 시간을 내 주시고 지도해 주시며 공부 외에도 여러 가지 조언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학과 내에서는 제가 생각했던 대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하지만 인문학을 대하는 학교의 입장은 외부에서 바라볼 때의 시각과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자본주의 논리에서 벗어나 중립적 위치를 지켜야 하는 곳이 학교입니다. 특히 대학은 학생들이 사회로 나아가기 전 순수하게 학문에 전념해서 사고의 폭을 넓히고 이를 통해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제 2의 가정과 같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많은 대학들이 인문학과를 축소하거나 통합하여 학생 수를 줄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역시 졸업 후 취직이 어렵고 오늘 날의 자본주의 가치관에 맞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독문과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함을 느끼는 제 자신에 행복해야 할 지, 슬퍼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올 2학기부터 사용하게 될 국제 인문관을 생각하면 이런 마음입니다. 입학 전 국제인문관이 지어지는 걸 보면서 인문학의 가치를 여전히 중요시 하고 지원해 주는 서강대를 보며 뿌듯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수학과라는 이유로 독문과의 단독 연구실이 없을 지도 모른다는 소식은 날벼락과 같았습니다. 단지 인원이 적다는 이유로 학생이 언제든 편하게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을 축소한다는 것은 당장 눈앞의 숫자, 이익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물질적인 부분은 당장 의식주를 해결하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정신적인 부분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정하는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수많은 문제들 앞에서 좌절하고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혜와 힘을 키워주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요즘 서점에 가면 인문학과 다른 다양한 분야를 통합한 책들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인문학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소통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을 제시해 주는 해결책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진정한 교육 기관으로써, 학생을 키워내는 제 2의 가정으로써 서강대학교가 소수학과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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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27 14:20

<충격 보고> 공부를 잘하려면 연필이 좋아야 한다!
당신이 공부를 못하는 건 순전히 연필 탓, 공부를 잘하려면 연필을 바꿔라.

박승일 기자


공부 못하는 애들이 꼭 연필 탓하는 건 다 그럴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연필이 좋아야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건 너무 당연한 얘기 아닌가. 필자는 지금까지 이 사실을 반박할 만한 어떤 구체적인 증거도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게 따지지는 마시길. 이하에서는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제품을 소개하고 지금껏 공부를 못한 건 다 이런 제품이 없었기 때문이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 제품을 다 사용해도 공부를 못한다면, 그건 당신 머리가 나빠서 일게다. 확실하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목을 길게 빼고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거북이처럼 목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목을 동그랗게 돌리면서 스트레칭을 해도 뼈마디 부딪히는 소리만 요란할 뿐 뻐근한 건 여전하다. 이런 목으로 공부를 잘 할리 만무하다. 거북목 증후군은 좋은 자세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예방효과가 크다고 한다. 우선은 바른 자세로 앉아서 공부해야 하지만 바른 자세에서는 또 잘 써지지 않는 게 논문이지 않던가. 그렇다면 바로 위의 제품이 특효라 할 수 있다. 위 제품은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된 본체와 푹신한 재질의 받침이 목의 경추 부위를 지탱해주어 올곧은 목과 어깨 라인을 만들어 준다고 광고 문구에 쓰여 있다. 물론 확인한 바는 없지만 생긴 걸로 보면 제대로 견인해 줄 것처럼 보인다. 사용방법은 간단하다. 홈 파인 부분에 목 뒷부분을 대고 누우면 그만이다. 하지만 하루에 5분에서 15분 정도 사용하는 게 좋다고 한다. 푹신하다고 베고 잠든다면 어찌 될지 모를 일이다. 주요 쇼핑몰에서 판매하며 ‘REAL EASE’로 검색하면 된다. 언뜻 본 최저가는 대략 53,000원인데 하루에 하나만 파는 쇼핑몰에서 초특가 18,400원에 판매한 적이 있다.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이 제품은 한 눈에 보기에도 척추를 교정하는 기구로 보인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허리가 결리고 쑤신다면 척추를 의심해 봐야 한다. 당연한 말인가. 아무튼 위 제품은 좀 요령이 필요하다. 저 노랗게 생긴 세로축 사이에 자신의 척추를 맞춰 넣어야 하는데, 필자가 해본 바로는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그렇다. 필자는 이미 예전부터 허리가 쑤셔서 거금을 들여 위 제품을 구매했던 것이다. 두둥. 경험을 바탕으로 자세히 설명해 줄테니 필독하시라. 우선 저녁에 잠들기 전 이불을 깔고 위의 제품 위에 살며시 눕는다. 엉덩이부터 차례대로 접지하면서 척추 아래 부분부터 윗부분까지 순서대로 노란 색의 세로축 사이에 맞춰 넣는다. 틈이 좁아서 잘못하면 어긋나기 일쑤고, 어긋난다면 척추가 뒤틀릴 사소한 위험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그 상태에서 약 10분에서 15분 정도 누워있으면(그 이상은 금하고 있다) 된다. 누워있는 동안에 팔을 머리 위로 길게 펼쳐서 스트레칭을 최대화할 수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도 동일하게 사용하면 된다. 잠자기 전후에 사용할 때 잘못하면 저 위에서 그냥 잠들 수도 있으니 필히 눈 부릅뜬 상태에서 사용해야 한다. 위 제품은 미국 FDA 등록제품이라고 한다. 좋다는 말일게다. 검색어는 ‘SPINE WORX’, 최저가는 57,200원이다. 아, 사용해보니 아주 괜찮았다. 강추!



위의 두 제품과 마찬가지로 건강세트 되겠다. 이 제품은 특히 여성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제품이다. 사진 상으로는 허접해보이지만 나름 고도의 기술이 집약되어 있다고 한다. 우선 이 제품은 좌우면으로 경사각을 유지하고 있어 착석 시 상체의 체중을 엉덩이에서 허벅지로 분산시킨다. 또한 엉덩이 좌우쪽을 받쳐주고 있는 경사면이 “퍼지고 늘어진(광고 인용)” 엉덩이를 안쪽으로 모아 볼륨있는 힙라인을 만들어주고, 장시간 의자 사용으로 변형된 엉덩이를 밸런스존에 고정시킴으로써 골반 밸런스를 잡아준다고 한다. 게다가 이 절묘한 각도가 허리에 압력을 주어 자연스럽게 바른 자세를 유도해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다리를 안쪽으로 모아주어 다리를 꼬고 앉아서 발생하는 허리 뒤틀림도 막아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가랑이 사이에 쑥과 같은 약재를 넣어 습도를 조정하는 기능도 있다고 한다. 요약하면, 골반교정, 힙업 효과, 자세 교정 그리고 방석 기능에 탈취·제습까지 이 모든 기능이 하나의 제품에 집약되어 있는 것이다. 흠... 천잰데. 말만 들어서는 거의 세기의 발명이라 할만하다. 인터넷 사용 후기를 보니 제법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궁금한 사람은 직접 사서 사용해 보시길. 검색어는 ‘다이어토우미(DIETOUMI)’, 최저가는 27,500원이다. 방석치고는 좀 비싼 편이다. 



공부에도 체력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지 어언 3년이 되었다. 물론 3년 전부터 느꼈지만 그 이후에도 꾸준히 느끼고만 있다. 운동을 하면 힘들어서... 흠 어쨌든 이 제품은 운동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걷기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발목 뒤틀림을 방지해 주는 제품이다. 발 아치(발바닥 가운데에 깊게 파인 부분)가 무너지면 체중을 지지하지 못해 발목 뒤틀림 증상이 오고 점차 무릎, 허리 통증으로까지 진행된다고 한다. 이 제품은 발바닥 아치를 지탱해주는 단계별 인서트가 보행 시 발과 지면의 접촉면을 확보함으로써 충격을 완화하고 체중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발목을 바로 세워서 위와 같은 증상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발바닥 전체로 걷게 만들기 때문에 피로감도 훨씬 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발은 평면이 아니라서 걸을 때마다 빈 공간이 생기는데 이 공간을 채워주는 게 이 제품의 기본 원리라 할 수 있다. 이거 완전 과학적이다. 역시나 혹해서 얼마 전부터 신발 깔창에 넣어서 사용하고 있는데, 우선 발바닥이 편한 게 제일 큰 장점이다. 게다가 이 기술이 적용된 십만원이 넘는 전문 워킹화를 사지 않아도 싼 가격에 비슷한 효과를 누릴 수 있으니 이 역시 만족도 상승 요인이다. 오래 신으면 쿠션이 눌려서 처음보다 효과가 떨어지니 때맞춰 인서트를 바꿔주면 오래도록 신을 수 있는 것 또한 장점이다. 가격은 모델별로 다르지만 기본형은 29,800원이다. 한 줄 요약, 비싼 신발 사지 말고 지금 신고 있는 신발에 깔창만 바꿔라. 검색어는 ‘베어풋 사이언스(bare foot science)’



하루 종일 마우스를 사용하다보면 손목 부분이 뻐근하고 어깨가 결리는 증상이 생기기 마련이다. 일반 마우스를 잡을 때 손목이 휘어지는 게 증상의 원인인데, 이러한 자세로 손가락과 손목에 반복된 동작을 가하면 통증을 동반한 어깨 관절염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게다가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어깨와 팔은 물론이고 목과 등 근육이 뭉치면서 뒷목 뻐근함과 함께 두통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을 VDT증후군(Visual Display Terminal Syndrome)이라고 한다나? 위 제품은 손목 관절의 뒤틀림 없이 마치 악수하듯 자연스럽게 마우스를 잡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장시간 사용하더라도 피로감이 없다고 한다. 당연히 손목 관절에도 무리가 없다. 또한 엄지손가락이 위치한 부분에 앞,뒤 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는 버튼이 있어 커서를 화면 끝으로 이동해야하는 수고로움도 덜어준다고 한다. 딱 보기에도 뭔가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라서 폼 나는 클릭질에도 도움이 된다. 뭔가 있어 보이지 않는가! 가격은 정말 착해서 22,000원 밖에 안 된다. 논문 검색이나 논문 검색 중 ‘간간히’(라고 쓰고 ‘대부분’이라고 읽는다) 하는 웹서핑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역시 강추 아이템. 검색어는 ‘wowpen joy’이다.



이 제품은 일명 ‘공부하는 티내기’ 제품이라 할 수 있다.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제품 설명에 따르면, 흔들리는 차안이나 이동 중에, 심지어 잠자리에 누워서도 졸린 눈을 부릅뜨고 볼 수 있는 신개념 ‘독서 강제 제품’이라고 한다. 정말 할 말이 없다. 이 제품을 구매할 대상은 바로 당신, 책 보기를 돌같이 여기는 당신이다. 한 손에 강하게 동여매어 놓으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 볼 확률을 높임과 동시에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책을 옆에 두고 사는 사람이라는 과분한 오해를 살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검색어는 ‘북 그립(book grip)’, 가격은 14,000원이다. 


        
의약품이 아니니 걱정 마시길. 의사의 처방이 없어도 먹을 수 있는 건강식품이다. 프로폴리스(propolis)는 꿀벌이 나무와 꽃에서 모은 화분과 자신의 분비물을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집을 지키는 물질(pro 앞 + polis 도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꿀벌은 식물이 분비하는 수액을 자신의 침과 화분을 섞어서 벌집에 바르는데 이렇게 발효되어 만들어진 프로폴리스는 벌집 외부로부터 바이러스와 세균의 침입을 막고 벌집 내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프로폴리스에 함유된 플라보노이드라는 물질은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작용에 탁월하다고 한다. 활성산소의 산화적 손상에 대항하여 생체를 보호하는 물질을 항산화물질이라고 하는데, 이 물질은 활성산소가 가지는 과잉의 산화력을 제거하고 활성산소의 연쇄적 산화반응을 억제한다. 쉽게 말해,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약 60조개의 세포는 나이가 들수록 혹은 ‘음주나 흡연’과 같은 생활 습관에 의해 점차 산화되어 가는데, 항산화작용은 이러한 산화현상을 막아주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몸에 좋다는 건 확실하다. 특히 이 제품은 면역기능에도 탁월해(앞서 말했듯이 집을 지켜준다고 하지 않던가) 학업과 논문 스트레스로 지친 학우들의 무너진 면역체계를 견고하게 세우는 역할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건강에 자신하다가 논문 마감 일주일 전에 감기 몸살로 앓아눕지 말고 미리미리 챙겨두는 게 좋지 아니한가! 검색어는 프로폴리스, 최저가는 함량에 따라 다르니 검색해 보시길. 홍삼보다는 훨씬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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