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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15호] 우리는 오늘, 김수영을 읽는다 이은정(이화여대 강사) 흘깃 바라보기만 해도, 보는 이를 한 순간에 결박시켜버리는 사진이 있다. 푼크툼, 사진의 어떤 의외의 부분이 보는 이의 마음과 머리와 눈을 찌르듯 상흔과 자상을 남기는 순간이다. 김수영의 이 사진이야말로 몇 번을 보아도 생생한 푼크툼, 녹록치 않은 결박을 느끼게 한다. 어떤 이는 이 사진에서 ‘런닝구의 포스’를 발견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영화배우 양조위의 깊고 쓸쓸한 표정을 얘기하기도 하며, 어떤 이는 그 불온한 아우라에 일순 전염되고, 어떤 이는 그 퀭하고 형형한 눈빛에 한참 사로잡혀 있기도 한다. 사진 속의 김수영은 뺨을 괴고 앉아 생각에 골몰한 채 비스듬한 시선으로 묻는다. “나, 너, 우리, 어떻게 살고 있는가?” 김수영은 생전보다 사후에 각인된 시인이다. 1970년대와 .. 더보기
[115호] 죽음을 증언하는 검은 페이지의 삶 이성혁 (문학평론가) 1989년 3월 7일 새벽, 기형도 시인은 종로에 있는 한 삼류 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숨졌다. 만 29세. 그리고 같은 해 5월, 그의 유고 시집인 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곧 기형도를 뒤따라 세상을 떠나게 될, 당대의 평론가 김현이 이 시집에 감동적인 해설을 썼다. 요절한 시인의 시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을 평론가의 해설이 실려 있는 이 시집은 1990년대에 굉장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독재 체제에 항거하는 데 기꺼이 참여했던 1980년대의 시가 대낮의 시라고 한다면, 기형도의 시는 밤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1990년대의 청년들은 에서 어두운 곳에 감추어져 있었던 자신의 검은 자화상을 발견하곤 했다. 입속의 검은 잎, 낯선 나와 마주치기 기형도의 시를 읽어.. 더보기
[115호] 유재하, 주류와 언더 사이에 움튼 위로의 목소리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2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요절가수 고 유재하. 생전의 그는 엄청난 대중적 파급력을 담보했던 인기가수도 자체 후광이 눈을 멀게 하는 미남도 아니었다. 솔직히 단 한 번도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직접 목도한 대중 또한 거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잘 알지도 본적도 없고 더구나 세상을 떠난 지 23년이나 된 가수의 노래가 왜 지금도 많은 영화 속에 삽입되며 존재가치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일까? 23년 전 세상을 떠난 유재하를 지금 우리가 다시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재하는 데뷔음반이 곧 유작앨범이 된 대중가요 사상 유례가 없는 비운의 가수다. 그는 세월이 흐를수록 생존의 아쉬움을 더하는 독특한 가수다. 당시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직접 작사, 작곡, 연주, 노래하는 .. 더보기
[115호]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임종진(사진작가) 올해를 넘기면 어느새 15주기를 맞이한다. 스스로 삶을 거두고 떠난 사람. 그가 없는 빈자리는 기억 저편의 아련함으로 가득 메워졌다. 쌓인 세월만큼 그리 깊어가는 것일까. 여전히 그가 그립다. 15년 전의 과거형으로 기억되지만 그대로 가슴 깊이 남아있는 사람. 김광석. 오늘도 광석이 형이 그립다. 지난 2005년 12월 초순 즈음 어느 늦은 밤. 먼지 냄새가 폴폴 묻어나는 필름을 꺼내 든 순간 예상했던 대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1996년 1월’ 이후 되도록 꺼내려하지 않았던, 일부러 살펴보려 하지도 않았던 그런 필름꾸러미였다. 사진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사진 작업물에 대한 애착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옛 기억이 상념에 허우적댈 것이 뻔했기에 ‘보는’ 것을 자제하려던 것이었다. 남들이 생.. 더보기
[115호] 신의의 인간 박종철, 언제 어디서나 김태호 (박종철출판사 대표) 박종철(朴鍾哲). 1987년 1월 14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4년이 조금 안 된 어느 날, 서울 남영동에 있는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의 비밀 조사실에서 수사를 받다 고문에 목숨을 잃은 대학생의 이름이다. 정보기관은 혈안이 되어 찾던 어떤 운동권 학생의 소재를 후배인 박종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 연행했다. 고문이 있었고, 박종철은 입을 열지 않았다. 전두환이 대통령이던 시절이었다. 1979년 12월 12일에 불법적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그에 반대하는 시위와 집회는 곤봉과 최루탄으로 해산시키고, 시민과 학생들을 연행하여 감옥으로 보내고, 결정적으로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은 군인 집단의 우두머리가 참으로 희한한 방식으로 대통령으로.. 더보기
[115호] 20세기 전태일과 21세이 글로벌 리더십 임승수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저자) 얼마 전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분신을 했다.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에 문제에 관한 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점거농성을 하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 일이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면서 자신의 23살 파릇파릇한 몸뚱이에 파란 불꽃을 댕긴 지 벌써 40년이 지난 20세기의 일이건만, 21세기의 전태일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저 법률을 지키라는 소박한 요구에 자신의 몸을 불사른다. 얼마 전 실업자나 구직자도 노조를 설립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이 실업자나 구직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인 것이 법적으로 정당하다는 의미다. 참 노조 만들기 힘들다... 더보기
[114호] 존재(being)에서 행위(doing)로 박승일(신방과 박사과정) 2008년, 촛불이 한창이던 여름에 쓴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웹 2.0은 정해진 정보가 정해진 루트를 통해 전달되는 포털과는 달리 수동적 수용자(subject)가 정보를 창조할 수 있는 새로운 중심이 되고, 기존의 정보를 재배치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안할 수 있는 기획자(project)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중(multitude)적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담론 권력 내에서 틀지어진 이데올로기를 쫓기보다 굳게 형성된 상징계의 영역에 실재의 침입을 유도하는 징후적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내파’적이다. 웹 2.0은 이러한 속성을 존재적 차원에서 담지하고 있다. 물론 이는 잠재성(virtuality)으로 존재하지만 특정한 맥락과의 절합(articulation)을.. 더보기
[114호] 세대의 문화정치와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의 미래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미학/문화연구) 맑스가 강조했듯이 각자는 자신이 원하는 바와는 다른 역사적 조건 속에 던져져서 살아가지만, 동시에 그 조건 자체에 순응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그 조건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역사적 구조와 주체 사이에 변증법적 긴장이 발생하고, 각 주체들이 상이한 조건 속에서 서로 다른 이념과 감정의 물결에 휩싸이게 되며, 결과적으로 세대 간 단절과 갈등이 심화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간 세대 간 갈등과 단절을 다룬 연구들이 꾸준히 제시되었지만 대부분의 연구는 세대 간 단절의 근본 원인을 분석하고 그에 입각하여 사회변동의 흐름을 전망하기보다는 세대 간 화합을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자는 식의 도덕적 ‘봉합’에 매달려 왔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진보적 .. 더보기
[114호] 트위터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요훈 ('디지털 세계의 엘리스' 저자) 최근 구글, MS 등 IT 기업을 중심으로 인터넷에 노벨상을 주자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인터넷은 전세계 국가와 인종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소통과 토론 문화를 활발하게 열어나가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민주주의 발전과 세계 평화에 기여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다시 말해 검열되지 않은 개인의 의견이 자유롭게 교환되고 토론될 때, 민주주의는 더욱 성장할 수 있으며 그게 바로 세계 평화라는 논리다. ‘자유로운 의사교환 = 민주주의 = 평화’라는 논리는 2009년 이란 사태 때 이란 정부가 SNS서비스중 하나인 트위터를 이용하지 못하게 막았을 때도 등장한 적이 있다. 이란 사태 이후 미국 학계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트위터를 이용할 수 있는 검열 회피 기술을 개발해 .. 더보기
[114호] 블로그, 디지털 리터러시의 시작과 끝 장상미 (함꼐하는 시민행동 미디어팀장) 블로그에서 트위터로, 유튜브로, 페이스북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강자가 탄생하며 진화해가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의 시대에는 완결된 형태의 방법론, 즉 정답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오히려 변화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실험하고 공유하며 다음 단계의 힌트를 찾아내는 능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능력, 즉 디지털 리터러시는 기존의 교육 시스템이나 조직, 기관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변화의 흐름에 공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고 발현된다. 우리는 웹2.0 혁신과 함께 등장한 블로그를 통해 그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 블로그란 무엇인가 디지털 리터러시라고 하는 거창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블로그란 무엇인가?’란 오래된 질문으로부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