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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14호] 스마트폰을 든 스마트몹 김명석(생각 실험실 대표) 이 글은 스마트폰을 예찬하는 글이다. 스마트폰이 가져올 변화를 과대평가하는 맥락은 거창하다. 먼저 기술결정주의라는 다소 끔찍한 견해를 생각해보자. 이 견해에 따르면 기술은 사회 내 다양한 가치들을 결정함으로써 사회의 전반적 구조와 역사까지 결정한다. 불을 다루는 기술이 도입된 후 인류에게 닥친 문명화와 도시화 과정을 이제 와서 우리가 과연 되돌릴 수 있을까? 기술결정주의는 여러 가지 전제들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몇 가지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사회를 지배하고 변화시키는 다양한 힘들 중에서 기술은 중추적 지위를 차지한다. 인류 역사를 고찰해 볼 때 기술 혁신은 사회의 진보를 주도해 왔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도입되고 그것이 그 사회에 일단 정착하게 되면, 그 기술의 진.. 더보기
[114호] 아톰에서 비트로, 출판의 거대한 전환 유재건(그린비 출판사 대표) 출판은 지금 아톰미디어에서 비트미디어로의 이행기에 서있다. 킨들과 아이패드로 촉발된 변화의 파고는 지금까지 출판을 지탱해온 아르케(arche)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 무너짐은 위기의 양상을 띠고 있지만, 기회적 요소 또한 갖고 있다. 마샬 맥루언이 말한 것처럼, “두 개의 미디어가 혼합되거나 서로 만나는 순간은 새로운 형식이 탄생하는 계시의 순간”이고, 이때 우리는 “두 가지 형식들의 경계선 위에서 나르시스의 감각 마비 상태에서 깨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책의 충격’ 앞에서 출판계는 감각 마비 상태에서 깨어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종이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종이책과 전자책을 동일한 ‘책’으로 보고 ‘공통형식’(본질)을 추상함으로써 지금의 위기를 .. 더보기
[113호] 사랑은 제약 속에서 영원과 편재를 희망하는 열정 김명석(연세대 철학과 강사) 흔히 사랑은 모든 제약을 벗어나는 것이라 여겨지지만 제약을 뛰어넘어 나와 타자의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는 자칫 타자를 나에게로 귀속시키는 폭력적 사태를 유발한다. 따라서 제약은 나와 타자의 거리감을 유지시키며 사랑을 보다 더 풍성한 것으로 이끄는 사랑의 조건이다. 제약을 온전히 떠맡는 역설적 선택에서 사랑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필자의 단상을 따라가 보았다. 꽃들이 자기 모든 아름다움을 탕진해 버리는 사월 하순 너는 찰랑거리는 웃음을 치마에 담아 내 앞에 나타났다.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우리의 물리적 거리는 일 미터의 절반으로 좁혀졌다. 일 미터 이상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에티켓이었지만 우리 마음은 한두 번 맞닿았다. 그것은 흔히들 첫눈에 반했다고 말하는 그런 유형의 현상이었.. 더보기
[113호] 나는 연애를 모른다 어둠의 왼손(수유너머 연구원) 좋아하는 언니가 있었다. 그녀는 남자들이 대다수인 커뮤니티에서도 정치적 올바름을 지키면서 ‘잘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대학 새내기였던 나에겐 대단하게만 느껴졌었다. 서로 ‘자기’라고 호칭하는 여자친구와 손을 꼭 잡고 걸어다니면서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를 뿜어내기도 했고, 찌질하거나 무지한 동기들에게 호통도 잘 쳤고, 어르기도 잘 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학회의 장을 맡고 있었고, 여성학 모임에도 열심이었다. 나는 그녀의 카리스마가 좋았다. 그녀는 내게 준 책 속지에, 나를 보면 예전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럽다며 “이렇게 만난 것을 하늘에 감사한다”고 적었다. 마지막으로 각인되어있는 기억은, 남자친구의 손을 붙들고 걸어가는 아련한 뒷모습. 어느 날, .. 더보기
[113호] 지젝의 사랑론(論): 쿨한 사랑에서 열외(列-外)하는 열애로! 한보희(연세대 비교문학 강사) 시와 사랑, 그 폭력적 소격효과 로만 야콥슨에 따르면 시적 언어는“일상 언어에 가해진 조직적 폭력”이다. 이 유명한 명제를 살짝 바꾸면, 슬라보예 지젝의 사랑론으로 들어서는 입구로 삼을 수 있다. 사랑이란 일상적 삶에 가해진 조직적 폭력이다.“사랑은 존재의 질서에 하나의 차이를 만들고 균열을 내려는 폭력적 정념, 다른 모든 대상을 희생함으로써 하나의 대상을 특권화하려는 폭력적 정념이다. … 사랑의 선택은 이미 자체로 폭력인데, 그것은 폭력이 사랑의 대상을 맥락에서 떼어내 사물(Thing)의 자리에 올려놓기 때문이다(슬라보예 지젝,『죽은 신을 위하여』, 57쪽).” 사랑은 일상이라는‘자동화된(automatized)’궤도에서 주체를 탈선시키는 삶의 시어(詩語)들이다. 시의 요체.. 더보기
[113호] 한국 다문화주의의 겉과 속: 이주민에 대한 열외적 열애 오경석(한양대학교 다문화연구소 소장)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다문화주의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이주민들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겁다. 하지만 이 뜨거움(熱)은 실상 일방적인 온정 내지 동정의 시선에 그칠 뿐이며, 이에 이주민의 타자성은 우리의 동일성으로 재차 용해되어 버리고 있다. 이주민들이 사회의 주변부로 끊임없이 내몰리는 현실 또한 여전하다. 다문화 연구가인 필자를 통해 표면적 포용과 배면의 배제로 점철된 한국 다문화주의의 현주소를 짚어보았다. 한국은 이민국가가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평등하게 어울려 사는 문제를 고민해볼 기회와 경험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동질성의 압력이 강한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로 여겨질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이주민 대중이.. 더보기
[113호] 욕망과 금기의 경계에서 번민하는 사랑 우리 사회엔 자신의 열애를 위해 경계를 넘나드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숨고 도망치고 변신한다. 그리고 괴로워한다. 열외하지 않고서는 열애를 할 수 없는 딜레마에서 그들은 진실과 거짓,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경계를 만들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몰래 그어 놓은 선을 밟고 있을 뿐이다. 을 화두로 성적 소수자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자. 송혜림(영화감독) 우리의 경계를, 이탈한 그들 푸른 새벽, 광활한 록키산맥을 배경으로 한 대의 트럭이 지나간다. 트럭은 어느 컨테이너 앞에 도착해 한 남자 (애니스)를 내려놓고 다시 길을 떠난다. 이제 막 소년티를 벗은 듯한 남자는 작은 보따리를 든 채 컨테이너 앞을 서성이고 잠시 후 좀 더 매끈하게 생긴 또 다른 남자(잭)가 도착한다... 더보기
[112호] 기업가주의적 도시 서울, 그리고 도시권 : 데이비드 하비의 논의를 중심으로 전지구적 세계화가 근대 국민국가의 폐쇄성을 해제함으로써 이른바 ‘평평한 지구’라는 낙관적 수사를 남발시키고 있지만 이 ‘매끄러운 공간’을 자유롭게 활보하는 것은 여전히 자본뿐이다. 더불어 일상의 공간들에 해방적 가능성을 부여해온 포스트모던 담론들 또한 ‘장소마케팅’이라는 방식으로 자본에 쉽게 전유 되고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는 신자유주의적 테제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전지구적인 신자유주의 흐름이 한국적 양상으로 발현되는 지점을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필자의 논의를 옮겨보았다. 황진태(서울대 지리교육과 박사과정) 서울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도시 중 한 곳이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서 서울의 역동성은 그 폭과 질에서 이전과는 수준을 달리한다. 산업화를 상징하는 청.. 더보기
[112호] 도시,광장,권력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달구고 있는 ‘광장에 대한 열망’은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가. 우리는 광장이란 상상적/실재적 공간이 새로운 민주주의가 발현될 수 있는 지점이라 쉬이 낙관할 수 있는가. 근대적 광장의 탄생과 중간계급의 욕망을 결부 짓는 필자의 논의를 통해 광장이란 공간에 내재하는 간극을 톺아보고, 이 모순된 공간을 사유로 횡단함으로써 발생할 새로운 민주주의 현실화를 전망해본다. 이택광(경희대학교 영미문화전공 교수) 근대 도시는 광장을 가능하게 한 원인이었다. 도시는 곧 정치적 민주주의의 물질적 구현이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세기 프랑스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지금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디자인 서울’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앞 다투어 실행하고 있는 다양한 ‘(재)개발정책’은 이 19세기 프.. 더보기
[112호] 기관(organ)뿐인 사회, 혹은 망각에 잠식당한 신체(body) : 홍형숙의 <경계도시2> 읽기 재현 Representation 을 단순히 가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이 거듭되는 Re- 행위 -ation 내에 현재 -present- 가 기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 반복적 행위가 현재에 대한 가상을 넘어 시뮬라크르의 차원으로 전도될지라도, 재현에는 항시 현재가 말소된 흔적으로나마 남아있기 마련이다. 물론 이 흔적을 추적하는 것은 이미 포지티브화 된 사진을 보며 그 이전의 네거티브한 필름을 상상해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현재의 은폐된 단면을 목도하게 된다. 영화로 재현된 공간에서 영토적 포섭의 결을 읽어내고,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불편한 기억을 상기하려는 필자의 사유를 따라가 보았다. 신이수(영화감독) 가 다루고 있는 것은 잔존하는 몇몇 기록물에 의지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