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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6호] 변화하는 학교, 쫓아가는 우리

백 혜 정 초등학교 교사

 

2020년 1월, 초등학교 교실에서 반 아이들과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19 예방 수칙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스, 신종 플루, 메르스 등 나름대로 무사히 그리고 나와는 상관없이 지나간 전염병들을 마음속으로 꼽아보며 딱 그 정도로만 위기감을 가졌다. ‘며칠 조심하면 지나가리라, 다시 평소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하지만 1년 전 그 날 이후로 학교에서 학생들과 맨 얼굴로 반갑게 인사하는 일은 없어졌다.

 

사태의 심각성을 뼈저리게 느낀 건 전국 학교 개학이 일주일 미뤄졌다는 기사를 접하고 난 뒤였다. 웬만한 자연재해로는 하루도 꿈쩍하지 않는 대한민국 교육현장에서 자그마치 일주일이라니!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으며 지난 1년간 교육현장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한 가운데서 바라본 학교 현장과 학생들의 모습 그리고 평범한 초등교사로서 느낀 점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1학년에겐 아직 이릅니다.

 

2020년 4월, 귀여운 부직포왕관과 삭막한 마스크를 동시에 쓴 채로 뒤늦게 입학식을 마친 1학년 학생들이 줄지어 교문을 나섰다. 남겨진 교실엔 담임선생님들께서 모여 앉아 앞으로의 일들을 의논하고 계셨다. ‘1학년들에게 제대로 된 원격 수업이 가능할 것 인가.’라는 주제로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회의 중이셨다. 일주일 전 먼저 개학한 3학년들의 첫 화상수업 도전 결과가 처참했던 바람에 더욱 착잡한 분위기였다. 정말 동영상 강의라도 찍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한숨 쉬는 선생님들께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었던 나는 가져온 서류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뒷걸음질쳐 교실을 빠져나왔다.

 

교육부는 원격 수업 방식으로 ‘쌍방향 화상수업’과 ‘교육 콘텐츠 시청’ 그리고 ‘과제 제시 학습’ 등을 권고하였다. 이 중 초등 1~2학년들이 온전히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없다. 연필 쥐기를 배우는 아이들에게 전자기기 조작이나 인터넷 플랫폼 활용은 너무나 먼 일, 학부모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심지어 1학년들에겐 학교적응이라는 큰 산이 있다. 이들에겐 수학문제를 푸는 일보단 교실 책상에 40분동안 바른 자세로 앉는 것이 더 급하다는 뜻이다. 이런 ‘입학초기적응활동(1).’을 물리적 교실 없이 수행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과제였다. 하지만 결국 한 달 만에 다가와버린 온라인 개학, 선생님들은 EBS방송과 학교에서 자체 제작한 학습꾸러미(학습지)등을 동원하여 저학년 원격수업을 시도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학년을 대상으로 원격 수업을 주력으로 삼는 것은 시기상조였다. 앞서 서술하였듯 어린 학생들의 플랫폼 접근성이 낮았고, 학교 적응을 위한 대체활동 수립이 미흡했던 까닭이다. 현재까지도 서울 내 초등학교 중 94%가 쌍방향 수업을 운영(2)하면서도 아직 초등 1, 2학년 학생들에 한해서는 전면 등교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1~2학년 원격 수업을 완전히 포기했다는 뜻은 아니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1~2학년 학생들에게 원격 수업을 대비한 플랫폼 사용 교육, 미디어 활용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전염병과 자연재해와 같은 변수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발전된 수업 플랫폼으로 진입장벽을 낮추고, 가정에서 교육을 도울 수 있는 매뉴얼과 교육자료를 동원한다면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원격 수업이 더 원활해질 것이다.

 

결국 학교 현장에서 원격 수업은 유사시 바로 전환할 수 있는 주요 수업 방식으로 자리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아 마이크로소프트사 CEO 사티아 나델라는 “2년 걸릴 디지털 전환이 2개월만에 이루어졌다”고 표현했다. 온라인 개학 초기, 혼란 속에서 시작된 원격 수업이었지만 지식 전달 중심 교육에서 ‘소프트 스킬과 역량 부분’을 강조하는 수업의 장을 열어 주는 등 장점도 눈에 띄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학교가 거쳐온 과정은 굉장히 험난했고 아직 남아있는 위기 역시 무시할 수 없다.

 

 

6학년도 사실 힘듭니다. 하지만...

 

처음 쌍방향 화상수업 플랫폼으로 아이들과 대면하게 되었을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스마트폰, 패드를 들고 소파나 침대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있어 주의를 주었고, 개중 한 명의 마이크 상태가 좋지 않아 화상수업방 전체에 시끄러운 이명이 들려 전체 음소거를 눌렀다. 우여곡절 끝에 출석을 불러보니 몇 명이 없다. 연락해보니 인터넷 연결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창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거실 티비 소리나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려 오기도 하고, 혼자 키득거리며 딴청부리는 학생도 눈에 들어온다. 그때 옆 반 선생님께서 동영상 재생이 안된다며 울상인 채 찾아오셨다.

 

원격 수업을 위해 학생들은 원활한 인터넷 환경과 스피커, 마이크 그리고 웹카메라 등 다양한 전자기기를 갖춰야 한다. 가정별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좋은 장비가 바로 집중력으로 이어지는 것 또한 아니다. 선생님의 간섭과 보호자의 눈 없이도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계획적으로 학습하는 능력, 일명 ‘자기주도학습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화상 수업에 온전히 집중하기 힘들어 한다. 설상가상으로 위 조건들, 쾌적하고 관심이 넘치는 가정환경과 자기주도학습능력을 가진 학생들은 대부분 성적 상위권이며, 이는 상하위권 학생 간 학력격차가 더욱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3) 상위권 학생들의 성적엔 별 변화가 없는 반면에 중하위권 학생들의 성취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원격 수업의 제일 큰 적은 줄어든 학교의 영향력과 늘어난 가정 내 학습의 결과로 심각해진 교육 불평등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년간 교육계는 ‘쌍방향 화상 수업’을 지향점으로 삼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 각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화상 수업을 위한 강의가 있었고, 교육기관들은 학생들에게 태블릿 피씨 등 전자기기를 지원했다. 학생들 또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화상 수업 플랫폼에 꽤 익숙해졌다. 그 끝에, 나는 우리 반 6학년 학생들이 인터넷으로 조사해온 자료를 원격으로 발표하며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는 광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소극적이었던 아이들이 비대면 상황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거나, 또래 친구들과 e학습터 게시판(사이버 교실 플랫폼)에서 댓글로 친목을 다지는 모습 역시 내가 느낀 원격 수업의 긍정적 일면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공교육은 바쁘게 쫓아가고 있다. 원격 수업 시대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 말이다. 온라인 원격 수업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학습할 수 있으며 개인 맞춤형 수업을 제시하는데 유리하다. 또한 갈수록 발전하는 미디어 콘텐츠를 활용하기에 제격이다. 풍부한 미디어 자원 속에서 성장하는 학생들을 원격 수업으로 제대로 지원한다면 우리 교육계는 우려와 부작용 대신 ‘미래 교육’이라는 빛나는 상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더 나은 수업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선생님들과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헤쳐 나가고 있는 대견한 학생들 모두를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1 교육부- 초중등 교육과정 총론
2 출처-서울교육청 2021 원격수업 운영 현황 조사(3.3.~3.12.)
3 <주간동아> 원격수업으로 중위권 사라진 ‘교육 양극화’
 <한국일보> 교사 10명 중 7명 “원격수업이 학력격차 더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