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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0호] Connecting the Dots - 모든 것은 열린 결말이기에

미 샌프란시스코 N사 해상 및 항공무역 사업부 김 태 경

출처:Pixels

Connecting the Dots

 

 몇 년 전, 故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에서 했던 졸업 연설을 본 적이 있었는데, 연설문의 내용 중 'Connecting The Dots' 라는 부분이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현재의 순간들이 어떻게든 미래에 연결된다는 것에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저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제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다시 말하자면, ‘Connecting The Dots’란 인생 속의 경험과 과정들을 일련의 점으로서 표현한 것이고, 그 점들을 연결하다 보면 그 모든 것들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하는 일이 인생에 어떤 점을 찍는 것이라면, 미래에 그 점들이 어떤 선을 만들지, 도형을 만들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결국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나는 5년 후, 10년 후 어떠한 사람이 될지 그리고 무엇 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각각의 점들이 연결되는 것처럼, 지금껏 내가 해왔던 경험들이 모여 나를 이루는 것이라고 믿는다. 결국 지금까지 무의미한 일은 없던 것이기에,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목표가 뭐냐? 라고 나에게 묻는다면, 아쉽게도 목표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없기보다는 아직 모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들이 각각의 점들이 되고, 점들이 모여 선이 되듯, 내가 그려 온 점들과 그로 인해 느낀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한 국제통상 전공생의 성장기

 

 스스로를 ‘우물 안 개구리’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항상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었고, 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기에 대학에 가면 꼭 교환학생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학부 시절, 그토록 원했던 미국 교환학생이 되었지만, 현지 생활은 어려움 그 자체였다. 타지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듯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 그리고 영어 실력 향상에 대한 갈망과 ‘성공해야 한다, 얻어가야 한다’라는 깊은 강박은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전 자체가 값진 것이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실패는 아닐 텐데.) 하지만 멈춰 설 수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더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만의 ‘컴포트 존’을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았던 1년은 나 자신의 새로운 면을 알 수 있게 만들었고, 낯선 곳에 적응하며 스스로가 더욱 더 단단해지고 견고해졌다. 

 

 나는 본래 다른 전공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당시 미국에서 새롭게 국제통상학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는데, 무역과 통상이 단순한 상품 매매 및 교환을 넘어서 전 세계와의 소통이라고 생각하니 흥미롭게 다가왔다. 고민 끝에, 전 세계의 흐름을 배우는 더 넓은 범위의 포괄적인 공부가 하고 싶어 국제학부로 전과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4학년에 결정한 늦은 전과를 위기라고 생각했지만, 새로운 과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달렸다. 

 

 그러던 중 코로나19와 마주하게 되었고, 일상이 멈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가상회의 매체를 통해 비대면으로 수업을 듣거나 업무를 보는 것이 일상화 되었고 오프라인일 경우 발생하는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과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여 코로나19로 인한 공백을 성취감으로 바꾸게 되는 계기는 금융감독원 공모전 도전이었다. 사실 공모전이라는 게 리스크가 큰 나름의 도박이라고도 생각했다. 어쩌면 성과 없는 결과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부딪혀 보자고 마음먹었다. 

 

 나와 팀원들은 ‘청각 장애인의 금융생활을 위한 애플리 이션 개발’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언했고, 주제에 대해 깊이 있고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기획, 제작, 구체화하기까지 약 3개월간 온라인 및 오프라인으로 정기 회의를 가졌다. 밤을 지새우며 의견을 나누고, 계획 자체를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첫 공모전 도전에 1등을 수상하기까지,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과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값지다는 것을 배웠고 그 성취감은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진심은 언젠가 통하는 법

 

 프로젝트 수업 중 직접 해외 바이어를 발굴해 국내 중소업체와 바이어를 연결하여 무역계약을 체결하기까지의 중간자 역할을 수행한 적이 있었다. 교수님께서 KOTRA가 해당 프로젝트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는 것을 소개해 주셨고, 그러던 중 KOTRA 인턴 모집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당시 전공을 더 깊게 이해하고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무역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실무에는 어떻게 적용될지가 궁금했고, 직장생활을 경험해 보고 싶어 지원하게 되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운 좋게도 KOTRA 인턴에 합격하여 나의 첫 5개월간의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차게 시작하였으나 사실 단 하루도 쉽게 넘어갈 수 없었던 날들이었다. 처음으로 느끼는 사무실 공기는 적응하기 어려웠고, ‘인턴’이라는 이름하에 나는 고객은 아니지만 정직원도 아니었으며, 혹은 들어오자마자 곧 회사에서 나갈 어중간한 위치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또한,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느껴졌던 직장생활의 낯섦이라는 높은 벽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주어진 업무와 상황에,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했고 항상 진심으로 대하고자 노력했다. 어쩌면 나는 그 ‘애매함’에 도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업무 처리와 과정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있었고, 팀 전체가 이끌어가는 사업에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어 나름의 문제 해결 능력과 책임감도 배웠다.

 

5개월이 막바지를 향하면서 홀가분하게 인턴생활을 마무리하겠다고 스스로에게 굳게 다짐했던 마지막 달이었지만, 왜인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인턴 생활이었다. 나같이 열정적인 인턴은 결코 잊지 못할 거라고 말씀해주신 팀장님 때문일 수도, 함께 했던 팀원 분들이 마지막에 주신 따뜻한 격려와 선물 때문일 수도, 태경씨는 꼭 코트라에 입사해야 한다고 종종 얘기하신 대리님 때문일 수도, 내가 떠난다고 눈물을 흘린 다른 팀 인턴 때문일 수도, 회사를 떠난 다음 날 아침에 아쉬움의 안부 연락을 주신 위원님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KOTRA에서의 순간들은 지금의 내가 되기 까지 수많은 경험의 점을 찍을 수 있었던 곳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인연의 점을 찍게 된 곳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삶의 의미: 금문교(the Golden Bridge)로 향하는 나에게

 

 흔히들 삶을 등산에 비유하곤 한다. 정상을 향해 끊임없이 오르며 결국은 목표에 도달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관점을 다르게 디자인해보고 싶다. 등산을 할 때, 각자의 목적지와 목표는 다 다를 텐데, 정상까지일 수도 있고, 목표를 정하지 않고 오르다가 내려 올 수도 있고, 힘들면 쉬어갈 수도 있다. 산을 오르기 전에는 아주 멀리 있는 목표 지점을 보면 ‘저기까지 언제 올라가나’ 하고 힘이 빠지기도 하는데, 그럴 땐 불확실해 보이는 목표를 보기보다는 ‘내 발 자국’만 보고 가는 것이다. 앞만 보고(혹은 주변도 보고) 가다보면 어느새 내가 정말 멀리 와있더라. 그렇게 지금 현재의 발자국처럼, 혹은 위에서 언급한 점들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다보면 어느새 더욱 성장한 내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제 나는 또 다른 도전을 앞두고 샌프란시스코로 떠난다. 여전히 목표는 잘 모르겠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에서의 직장 생활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배우고 느낀 모든 경험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모든 것은 열린 결말이기에 내 삶의 주인으로서 계속 나아갈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앞으로 어떤 점들이 나의 인생을 채워 나갈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