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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0호] 이용마 선배에게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사진출처=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 페이스북
 

자유기고 요청을 받고 이용마 기자가 생각났습니다. 이용마 기자가 돌아가신지 2년 8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전하지 못해서입니다. 이용마 기자는 2012년 MBC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실현을 촉구하는 170일 파업을 이끈 언론인입니다. 당시 노조의 홍보국장으로 파업과정에서 부당해고 됐습니다. 5년 9개월 만인 2017년 복직됐으나, 2019년 8월 복막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선배와의 첫 인연은 국민TV에서였습니다. MBC에서 해직 후 ‘이용마의 한국정치’라는 대담프로그램 진행을 맡아주셨고, 저는 연출자로서 선배와 함께하게 됐습니다. 멘트 하나, 질문 하나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 ‘깐깐한’ 선배와 제작을 하면서 선배가 방송에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선배는 ‘적당히’나 ‘타협’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2015년 국민이 주인인 방송을 표방하며 만든 국민TV에서 경영진이 “대화 좀 하자”는 대자보를 불법 단체행동으로 간주해 징계를 내리고 보도국을 폐지했습니다.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던 저는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파업’이라는 단어는 취재 현장에서나 접하는 단어지 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고민하는 제게 선배는 언론인은 단순한 월급쟁이가 아니며, 공정보도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파업을 해서라도 저항해야 할 상황이면 용기를 내야 한다는 파업 권유(?)도 해주셨습니다. 파업 기간 내내 피가 바싹바싹 마르는 상황들을 겪으며 시도 때도 없이 선배를 찾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네가 오죽했으면...”하면서 위로와 함께 조언을 해주셨던 생각이 납니다. 선배의 지지가 없었다면 저는 끝까지 파업을 끌고 가지 못했을 겁니다. 덕분에 스스로의 투쟁만이 언론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오후 녹화를 끝내고 오니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와 있었습니다. “선배, 기사 봤어요? 이용마 선배가 희귀암에 걸렸대요.” “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며칠 전 속이 쓰리다며 건강검진을 예약해뒀단 선배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으레 받는 정기검진으로 여겼습니다. 끝나고 술 한잔하자는 농담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선배에게 바로 연락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기사를 봤다. 괜찮으시냐”는 물음에 선배는 “사람들이 너무 걱정을 해서 걱정이다”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배의 암 발병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얼마나 속을 썩였으면...’ ‘화가 병이 됐다’며 분노를 터트렸습니다. 하지만 선배는 누군가를 탓하거나 쉽사리 책임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선배는 새로운 항암치료 기법을 통해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하고, 공기 좋은 곳에서 자연치료를 하고 있다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선배가 회복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선배의 모습을 다시 본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다음날인 2017년 3월 11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연단이었습니다. 선배는 야윈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 어떤 연사보다 단단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검찰과 언론은 누구의 것입니까. 조중동, 재벌 전부 다 개인의 것이라고 칩시다. 하지만 검찰과 공영 언론은 누구의 것입니까. 국민의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주인입니다. 검찰과 언론이 바로 서면 재벌 문제, 관료 문제, 기업 문제, 노동 문제 그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선배는 시민의 집단지성을 믿었고, 변화와 개혁을 꿈꿨습니다. 직접 민주주의 요소가 반영된 시민 참여만이 검찰, 언론 등 기득 권 집단을 개혁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정치권력이 인사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막아야 하고, 좌우 편향성의 시비를 극복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고민 끝에 나온 것이 추첨을 통해 뽑힌 ‘국민 배심원단’이 표결을 통해 공영방송 사장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 아테네 민주주의의 핵심인 추첨제와 같이 사실상 직접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방식이라는 주장을 하셨습니다. 실질적 국민 참여가 이뤄질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언론인이자 정치학자로서 자연스러운 생각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선배의 손을 맞잡고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제도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제자리입니다. 공영언론의 사장을 뽑는 이사회 구성은 여전히 정부 여당에 유리하고, 사장 선임에 국민 참여를 강화하는 제도 개선을 담은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진척이 없는 상황입니다. 

 

 선배는 언론은 시민들이 ‘세상을 보는 창’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 창이 왜곡되면, 우리가 보는 세상이 왜곡될 수밖에 없으니 굉장히 중요하다고... 그러니 미우나 고우나 언론이 바로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언론은 스스로 역할과 위상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대통령 당선인이 먹은 김치찌개를 르포로 내보내고, 목욕탕 목격담이 기삿거리가 되는 무의미한 보도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대통령 당선인이 기자들에게 ‘현안질문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면 기자들은 이를 수락하고 병풍마냥 서 있습니다. 선배가 지금의 모습을 바라본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선배는 돌아가시기 전 SNS에 “세상이 바뀐 것이 확실하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이제 봄이 오나 보다”라고 적으셨습니다. 글쎄요. 선배가 말씀하시는 봄의 모습이 어떤 모습을 하고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은 바꿀 수 있는 것이겠지요? 

 

 얼마 전 MBC 창사 6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를 방송을 봤습니다. 보는 내내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습니다. 회복되시겠지. 살아내시겠지... 라고 기적을 바라고 있을 때, 선배는 차곡차곡 죽음에 대해 준비하고 공부하고 계셨습니다. 직접 장지를 고르고, 세상에 남기는 말이 영상에 담겨 있었습니다. 선배는 다시 살아난다면 송창식의 노래와 같이 낙천적이고 헤밍웨이의 소설과 같이 낭만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스무 살 전후에 한국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눈을 뜨면서 김산의 ‘아리랑’ 같은 치열한 삶을 살게 됐다고 고백했습니다. ‘치열한 삶’을 살았다는 말에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방송을 보고 아내 분께 안부를 여쭸더니 “힘이 되는 선배라는 소리가 너무 듣기 좋다며, 잘 지내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배! 저는 지난해 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선배가 해직시절 대학교에서 엄청 행복해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방송과 강의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좋다고 말씀하셨죠? 저는 공부가 어렵기만 합니다. 이럴 때 선배가 곁에 계셨으면 뭐라고 하셨을까요? 왠지 얼굴에 웃음을 한가득 담고 “재밌게 해~”라고 말씀 하실 것 같습니다. 지금도 투덜대며 전화하면 반갑게 받아주실 것 같은데...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선배와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제 욕심이었을까요? 벌써 선배가 떠나시고 계절이 10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아직 선배 이름 앞에 ‘故’ 라는 단어가 붙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요. ‘故 이용마’라니... 

 

 그래도 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선배를 통해 배운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질문을 못하면 민주주의가 망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항상 고민하고 질문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