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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2호] 모두가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_뉴욕생활기

부소정

 

1년 전, 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에 있는 한 비영리 기관에서 채용 제안을 받으며 뉴욕에 발을 디뎠다. 각기 다른 인종과 민족, 언어 와 문화, 지향성과 관심사가 함께 하는 도시.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뉴욕에 살면서 느꼈던 이 도시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다양성이 존중받고 서로 다른 개인이 공존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하나의 표준에 모두가 맞춰가는 사회가 아닌, 각 개인 의 특징과 지향, 신체적 조건, 처한 환경이 다름에도 모두가 평범 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이곳 생활의 일면들을 이야기해보며 다양 성을 대하는 한국의 시각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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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
‘Gender diversity is welcome here. Please use the restroom that best fits your gender identity or expression.’ 얼마 전 공연 을 보러 갔을 때 극장 내 화장실 앞에 붙어있던 팻말이다. 기존의 남 녀화장실을 유지하되 ‘젠더 다양성을 환영하며 자신의 성 정체성이 나 표현에 가장 잘 맞는 화장실을 이용하라’라는 성 중립 간판을 단 화장실, 혹은 아예 이분법적인 성 구분을 없앤 화장실을 이곳에 선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한 건물의 경우, 공용 세면대와 각각의 변기가 칸막이로 나누어진 기존의 화장실 구조가 아닌, 각 칸이 개별 세면대와 변기를 갖춘 1인실과 같은 구조로 디자인된 경우도 자주 보인다. 2016년 뉴욕시의회가 통과 시킨 조례안에 따라 뉴욕 시내 모든 공중화장실에 1인용 화장실 남녀 구분을 없애고 성 중립 간판을 의무화한 이후로 생긴 변화다.1 이러한 조례안의 도입은 기존의 화장실을 사용하며 불쾌한 시선 이나 부당한 대우를 감수해야 했던 성소수자(LGBTQI+) 인권 존중을 위함이었다. 하지만 도입 이후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해당 화장실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실제로 사용 해본 결과 1인실 구조 덕분에 다른 사람을 마주칠 일이 없어 프 라이버시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국내에서 성 중 립 화장실을 두고 나오는 ‘몰카’ 및 성범죄 증가에 대한 우려와 달리, 뉴욕뿐 아니라 성 중립 화장실을 설치한 미국 내 타 주들 에서도 법안이 통과되기 이전과 이후의 범죄율 차이가 유의미하 게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2 따라서 안전에 대한 우려가 성 중립 화장실 도입 및 보편화를 막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되며, 뉴욕은 화장실 내 범죄와 관련해 좀 더 근본적인 사회적 논의와 규제 및 처벌 강화가 필요함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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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과 대안을 통해 모두에게 보장된 이동권
어느 주요 도시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인구수가 800만 명이 넘어 가고 늘 관광객으로 붐비는 뉴욕에서 대중교통의 역할은 특히 나 더 막강하다. 버스, 페리, 기차, 지하철 등 다양한 선택지가 존 재하지만, 이 모든 교통수단이 모두에게 편리하게 되어있지는 않다. 24시간 운행하며 36개 노선, 472개 역으로 구성되어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지하철의 경우, 따로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가 없는 역이 많고 전반적으로 시설이 많이 노후되어 있어 장애 인이나 고령자, 영유아, 임산부 등 교통약자가 이용하기에 서울보다 열악하다. 그러나 서울과 뉴욕의 차이 중 눈에 띄는 지점이 있다 면 바로 대안 교통수단의 유무와 실효성이다. 2020년 기준 뉴욕 에서는 5개 자치구를 지나는 약 5,784대의 버스와 234개 지선, 20개 특별 노선, 73개 급행 노선이 운영되고 있으며 전 버스에 장애인 탑승이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다.3 실제로도 버스가 도 착하면 승객들은 휠체어를 탄 승객이나 교통 약자 승객이 먼저 탑 승할 수 있도록 줄을 서서 기다리고, 버스 기사도 저상버스의 높이 를 더 낮추거나 장애인용 리프트를 내려 탑승을 돕는다. 교통약 자 및 휠체어 탑승객을 위해 지정된 앞좌석에 앉아있던 승객은 자리를 양보하고 버스의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기고, 해당 승객 이 안전하게 착석 또는 휠체어를 고정한 후에야 출발하는 모습 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모두가 이 일련의 과정을 익숙해하고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이다. 저상버스 보급률이 약 70%에 달하 는 서울에서 왜 이동권 시위는 계속되고 있으며, 왜 우리는 휠체 어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마주칠 수 없는지 생각해보아야 하는 부분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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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종, 다문화가 공존하는 뉴욕
기본적으로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도 뉴욕은 늘 미국 내 다인종 적, 다문화적인 사회로 높은 순위권에 드는 도시이다. 길거리를 걸을 때 보이는 다채로운 모습들 이면에는 인종 간 갈등 및 차 별, 혐오범죄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뉴욕에 살며 인상 깊게 다가 온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다양성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며 갈등이 일어났을 때 다 함께 대처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그 예시로는 작년 초 코로나19의 여파로 아시아계 미국 인 및 유색인종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율이 증가하자 이들의 안 전한 귀가를 도울 자원봉사자 모집 및 봉사자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설립된 단체인 SafeWalks가 있다. 지하철역 또는 버스정류 장에서부터 집까지 가는 귀갓길이나 공공장소에서 동행자를 원 하는 누구나 신청할 수 있고, 현재는 2,000명이 넘는 자원봉사 희망자와 200명의 정규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져 1,000회 이상 의 귀갓길을 동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5. 이 밖에도 Soar Over Hate6 등의 비영리 및 지역사회 단체들이 영어가 능숙지 못한 고령층 이민 1세대를 위해 주요 정보 및 소식에 대한 번역문을 작성해 제공하거나 무상 식사 배달, 무료 호신술 교육 및 호신용 품 지급 등의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국내 거주 외국인 수가 200만 명을 돌파한 지 오래고 다문화가정 자녀 및 국내 근로 외국인 수가 지속해서 늘어나고 상황 속에 뉴욕에서 마주한 사례들과 같 이 국가와 도시의 차원 뿐만 아니라 개인과 지역사회의 차원 또 한 다문화 수용성을 기르면서 따로, 또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 색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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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그리며
최근 차별금지법을 두고 한국 사회 내 갈등과 혐오 현상이 더욱 더 심화되고 가시화되고 있다. 지금의 여성/남성, 이성애자/동성 애자, 장애인/비장애인, 내국인/외국인 등과 같은 이분법적인 구도에서는 타자의 입장에 서보며 여러 삶의 형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대안적인 사회를 상상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뉴욕에 서 지낸 1년 동안 이 도시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두 가지이다. 첫 째로 언제, 어디서, 누구의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언제든 나도 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며, 두 번째로 그렇기에 나의 권리 못지않게 다른 사람의 권리도 존중할 수 있는, 하나의 표준이 아닌 여러 표준점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함께 그려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모두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한국의 모습이 도래하기를 희망한다. 


1 “Single-Occupant Toilet Room Signage,” NYC Department of Buildings, accessed Oct 1, 2022, https://www1.nyc.gov/assets/ buildings/pdf/Single_Occupant_Toilet_Flyer_English.pdf.
2  Hasenbush, A., Flores, A.R. & Herman, J.L. (2019). Gender Identity Nondiscrimination Laws in Public Accommodations: a Review of Evidence Regarding Safety and Privacy in Public Restrooms, Locker Rooms, and Changing Rooms. Sex Res Soc Policy 16, 70?83. https://doi.org/10.1007/s13178-018-0335-z
3  “Subway and bus ridership for 2020,” Metropolitan Transportation Authority, accessed Oct 2, 2022, https:// new.mta.info/agency/new-york-city-transit/subway-bus- ridership-2020.
4  김보미, “서울 시내 저상버스 보급률 70%···2025년까지 100% 목 표,” 경향신문, 2022년 7월 27일, https://www.khan.co.kr/local/ Seoul/article/202207271115001.
5  https://www.instagram.com/safewalksnyc/similar_ accounts/?hl=en
6   https://www.instagram.com/soaroverh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