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고

[161호] 우울을 대하는 태도: 드라마<우리들의 블루스>와 영화<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장채린

 

<우리들의 블루스> 속 우울증
얼마 전 우연히 <우리들의 블루스>를 접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본가로 돌아가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실 때 함께 시청하게 되었 는데, 그 속에서 '선아'라는 캐릭터가 눈에 띄었다. 선아는 어릴 적 어머니에게 버려지고 아버지와 생활하게 되었지만, 사업이 망하 게 된 아버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등, 그녀 삶 속의 굴곡 때문에 우울증을 앓게 된 인물이다.

 

드라마 4화를 보면 그녀가 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선아의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빨랫감이 쌓 여있고 집 안 창고도 엉망진창인 모습이 보이며 집안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음이 보인다. 아침을 먹고 며칠째 씻지도 못한 그녀는 씻고자 했지만, 겨우 씻고 나와보니 아이와 남편이 돌아 온 저녁이 되어 있다.

 

이처럼 우울증을 앓는 환자들이 주로 호소하는 증상인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행동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는 이러한 묘사를 통해 우울증이라고 해서 항상 울고만 있고, 슬퍼하기만 할 것이 라는 편견에 빠져있는 기존의 우울증을 표현하는 연출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괜찮아짐을 강요받는다는 것

 

이러한 섬세한 연출과 우울증에 대한 이해도를 보이는 듯한 모습 때문에 뒤에서 자세하게 풀어질 선아의 이야기도 기대되었다. 우리 들의 블루스는 매화마다 중심 이야기로 다뤄지는 인물이 달라지 기 때문이다. 지난 9화와 10화에서 선아와 동식이라는 인물이 중 심인 에피소드가 방영되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해당 회차는 나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선아가 이혼한 남편에게서 아이의 양육권을 가져오기 위해 재판을 진행하였지만 패소하여 아이를 데려오지 못하게 된 상황 이 전개되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를 데려오려 했지만, 뜻처럼 되지 않은 선아는 다시금 깊은 우울감에 무력해지고, 밥도 먹지 않고 계속해서 울기만 한다.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동식은 소 리친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내가 너 같아도 그런 인생을 살았다면 살맛이 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너의 아들도 너를 닮아 나중에 우울감에 힘들어하며 살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한다. 그 뒤로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와 누나의 죽음 때 문에 계속 슬퍼하시다 돌아가셨는데 너는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얘기하지만, 이는 강압적인 방식 으로 우울함을 통제하고자 하는 태도라고 보였다.


선아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그녀는 집 안 청소를 하고, 밥을 잘 챙겨 먹으며 기운을 차리고 우울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그녀는 우울증에서 잘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연출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분명 좋게 끝났다고 할 수 있고 시청자의 반응 또한 긍정적인 반응이 대다수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내가 그 과정 속 동식의 행동이 석연치 않게 느껴진 데 에는 한 영화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 영화는 바로 일본의 만화가 호소카와 텐텐이 남편의 우울증 투병 속 일상생활을 녹여 낸 코믹 에세이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를 원작으로 제작된 일본 영화 <남편이 우울증에 걸려서>이다.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 : 조금은 느리게 가도 괜찮아
이 영화 속에서는 우울증을 다른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회사 생활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고, 몸에 통증까지 호소하며 힘들어 하는 남편 미키오를 위해 아내인 하루코는 우울의 주된 원인인 회사를 그만두자고 이야기한다. 그 후 하루코의 일러스트레이터 작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며 둘은 마음의 병을 낫게 하려고 노력한다.

 

앞선 드라마 속에서 동식은 우울함에 힘들어하는 선아에게 애도 있는데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해야 하지 않느냐고 화를 낸다. 이와 달리 영화 속 하루코는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것을 함께 고 민하고, 우선 그것을 삶 속에서 분리하여 편안한 상태를 만들어 주고자 노력한다. 그녀는 남편이 왜 빨리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 지 않는지, 혹은 괜찮아지는 모습을 보이더니 어째서 더 상태가 나빠졌는지 같은 질책의 말은 하지 않고 그의 상태를 존중한다. 밥을 먹고 싶지 않으면 억지로 챙겨 먹게 하지 않고, 남편이 경제 적인 부분을 더 책임지는 것이 당연시되는 일본 사회 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해 자책하는 것을 보며 지금은 그저 인생의 여름방 학이라 생각하자고 위로한다.

 

영화 분위기 특성상 잔잔하여서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을 것 이다. 혹자는 이 영화를 두고 지루하다고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보이는 마음의 병이 점차 나아 지는 미키오의 모습과, 중간마다 등장하는 대사들은 나에게도 위로가 되어주었다. 

 

우울과 함께하는 삶

 

윈스턴 처칠은 우울증을 '검은 개(Black Dog)'라고 명명했다. 현대 사회에서 우울증은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많은 사람이 겪는 감기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나 또한 이 검은 개가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검은 개는 내가 어떤 일을 겪는지, 마음의 울타리가 얼 마나 단단한지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진다. 이것이 언제 어떻게 손가락만 한 조그마한 크기가 될지,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집채만 한 크기가 될지는 알 수 없다.

 

하루코가 단골손님으로 있는 골동품 가게의 주인 할아버지가 조그마한 유리병을 선물로 주며 이야기한다. 이 유리병은 특별 할 게 없는 병이지만, 깨지지 않고 긴 세월을 거쳐 지금까지 남아 있었기에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라고. “깨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할아버지의 말씀으로부터 깨달음을 얻 은 하루코는 미키오에게 이 말을 전한다. 이 대사는 아무리 힘들 어도 깨지지 말고(죽지 말고) 버티자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의 미가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깨지지 않고 있는 지금 모습 그대로 이미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검은 개가 내 삶에 함께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위로해 주는 것처럼 느껴 졌다.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사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0년의 우울증 환자 수가 5년 전보다 30.3%나 증가하였다고 한다. 그중 10대는 85.9%, 20대는 127.9%, 30대가 54.3%로 다른 연령대보다 더 높은 증가율을 보 였다. 젊은 세대의 우울증과 그 때문인 무력감의 양상은 전체 사회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긍정적인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청년들에게 쉴 틈 없이 계속해서 달려 나가기 를 요구한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도태되는 사람인 것처럼 여기 게 하는 사회 분위기는 지쳐도 쉬지 못하게 하고, 잠시 쉬어가고 자 하는 사람에게는 실패자의 낙인이 찍히게 한다. 기계 또한 쉼 없이 가동하면 어딘가 고장이 나버리기 마련이다.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힘들면 애써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아". 모두가 각자의 템포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열심히'를 강요받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