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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2호]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게 사랑이잖아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김민지

보통 ‘사랑 영화’라고 하면 연인이 등장하는 영화를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모자(母子)의 사랑을 다룬 자비에 돌란 감독의 <마미>가 생각난다. 스무 살이던 2018년 5월 어느 새벽, 이 영화를 만났다. 다 보고 나서 휴대전화 메모장에 “어느 연인의 이야기보다도 더 뛰어난 사랑 이야기를 봐서 너무나 기쁘다”, “각자의 결핍을 사랑으로 메꿔나가는 모습을 통해 타인을 냉소적으로 바라봤던 태도를 반성하게 되었다” 라고 적었다. 감정의 폭은 장면을 따라 움직였고, 마치 마법에 빠진 것 같았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지닌 ‘스티브’와 그런 아들을 돌보는 엄마 ‘디안’,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게 된 이웃집 여자 ‘카일라’의 이야기다. 디안은 분노 조절이 어려운 사고뭉치 아들을 키우는 과부다. 남편이 떠난 후, 심해진 아들의 폭력 성향과 생활고에 못 이겨 청소년 보호시설에 스티브를 보낸다. 이후 스티브가 사고를 쳐 쫓겨나 둘은 재회하게 된다. 우연한 만남을 통해 모자와 인연을 맺게 되는 카일라는 전직 교사로, 과거에 겪은 사건으로 인해 말을 더듬는 인물이다. 세상의 시선에서 보면, 세 사람 모두 결핍을 가진 존재다.

 

감독은 뚜렷한 색감, 독특한 화면 비율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낸다. 이야기를 극대화하는 요소 중 하나는 ‘색’이다. 색은 정보 기능, 상징 기능, 구도 기능, 감성 표현 기능 등을 지니고 있어서 여러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특히 감성 표현 기능이 두드러진다. 다양한 색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극적인 효과를 주며, 우울하거나 행복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색은 크게 빨강, 노랑, 파랑의 3가지 색으로 구별된다. 보호시설에서 집으로 돌아온 스티브는 방에 들어가 창문을 붉은 천으로 가리고 아빠의 흔적을 찾는다. 스티브의 불안하고 복잡한 심리는 빨간색을 통해 표현된다. 노란색은 따뜻함을 나타낸다. 아빠의 사진을 바라보고, 추억이 담긴 CD를 재생하는 얼굴에는 노란빛이 가득하다. 파랑은 위태로운 장면에서 쓰였다. 후반부, 스티브의 분노가 폭발한 장면에서 화면은 파란색을 띤다.

 

화면 비율이 1:1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영상의 2차원적 요소에는 화면의 형태, 물체의 크기, 영상의 크기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 화면의 형태를 종횡비라고 한다. 종횡비는 화면의 가로와 세로의 비율을 말한다. 표준 영화 화면은 1.85:1의 비율로 가로가 더 넓다. 인간의 시각은 가로가 넓으므로 영화 화면도 가로가 더 길기 마련이다.

 

<마미>는 그 공식을 깬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사각형 화면으로 흘러간다. 가로 길이가 세로 길이보다 길어지는 순간은 단 2번뿐이다. 디안, 카일라와 소통하며 점점 나아져 가던 스티브가 자유를 느끼며 롱보드를 타는 장면, 디안이 이루어질 수 없는 아들의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는 장면이다. ‘Oasis’의 노래 ‘Wonderwall’이 흐르고, 보드를 타던 스티브는 마치 커튼을 열듯 두 손을 펼친다. 스티브의 손짓을 따라 화면의 가로 길이도 함께 길어진다. 행복이 차오르듯 화면도 가득 채워지며, 전율이 돋는다.

 

두 번째 순간은 영화 끝자락에 등장한다. 디안은 스티브의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지만, 상상은 상상일 뿐 현실이 아니다. 상상이 끝나면서 화면비도 서서히 정사각형으로 돌아온다. 현실은 정사각형의 네모이니, 직사각형의 행복은 유지될 수 없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일반적인 영화 화면과 달라 답답함이 느껴지지만, 인물에 집중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마미>는 이렇듯 화면을 일부만 보여줌으로써 감독의 의도를 명확히 전한다.

 

조금 특별한 관계의 엄마와 아들을 보여주며, 인간의 본성과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어떤 과한 희망이나 과장 없이 담담하게 현실을 담아내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한계가 극적으로 해결되는 억지 스토리가 아니라서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진다’는 것에 대해 오래도록 고민하게 해준 영화라서 마치 발자국이 남듯 이야기가 마음에 새겨졌다.

 

더불어 ‘소외된 이들의 삶’도 생각해 보게 한다. <마미> 속 인물들은 어딘가 결여되었고, 조금은 이상하다. 이러한 점이 오히려 그들을 더 사랑스럽게 해준다. 세 인물을 보고 있으면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동화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함부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각자의 결핍을 채워주면서 느끼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세상에 혼자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면, ‘삶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한 개인이 삶을 이어 나가려면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개인적인 경험에 빗대어 말하자면, 사람에게 상처받은 마음은 다시 사람에게 위로받는다. 우울한 순간에 주위 사람들을 일부러 외면한 채 혼자만의 굴을 파고들어가도, 더 깊은 수렁에 빠질 뿐이다. 결국에는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면서 극복하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영화나 책, 연극 혹은 뮤지컬과 같은 문화가 지닌 힘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원톱 주인공이 혼자 세상을 구하는 스토리보다 여럿이 함께 뭉쳐 어려움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빛나는 주인공 옆엔 언제나 숨은 보석 같은 조력자가 있기 마련이다.

 

언젠가 친구와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 있는데, 친구는 “오로지 한 사람이 중심이 되어 흘러가는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오늘에서야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갈수록 타인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가는 세상이지만, 타인과 함께 있어서 인류는 살아갈 수 있다. 사랑을 나누고, 온기를 느낄 때 우리는 성장한다. 디안이 스티브에게 해준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게 사랑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