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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2호] 여섯 개의 점으로 보는 세상

점역교정사 박 민 호

 

시각장애인의 문자, 점자


11월 4일은 ‘점자의 날‘이다.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라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한글 점자를 만들어 반포한 1926년 11월 4일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점자란, 지면이 볼록 튀어나오게 점을 찍어 손가락 끝의 촉각으로 읽도록 만들어진 특수 문자다. 많은 사람들이 ’창제 시기와 창제자, 창제 목적이 명확하게 밝혀진 유일한 문자는 한글 뿐‘이라고 잘못 알고 있지만, 사실 점자 또한 위와 같은 문자에 포함된다. 점자는 세계 최초로 기존 문자를 2진법으로 코드화한 체계이며, 특정 언어가 아니라 문자를 재현하는 체계이므로 세계 여러 언어권에서 널리 쓰인다.1)


점자는 프랑스의 시각장애인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 1809~1852)가 창안한 6점식 점자 체계에 근거한다. 6점식 점자는
현재 자국어 점자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모든 국가에서 공통으로 채택하고 있는 점자 체계이다. 이 6점식 점자 체계는 국제영어점자위원회 (International Council on English Braille: ICEB)가 1993년 통일 영어 점자(Unified English Braille: UEB)를 규정할 때 제시한 대원칙이기도 하다.2)


점자는 6개의 양각 점(embossed dots)을 2X3 모양으로 배열한 6점(가로로 2개, 세로로 3개)으로 구성되고, 왼쪽 위에서 아래로 1, 2, 3점,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4, 5, 6점의 고유번호를 붙여 사용한다. 이 점의 개수와 위치로 구별되는 각각 고유한 점의 모양을 점형이라 한다. 점자의 점 하나는 볼록하거나 그렇지 않은 한 점으로 나타낼  수 있으며, 그 경우의 수는 2다. 따라서 6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점형의 수는 총 64개(26)이다.3)3) 그중에서 점이 하나도 찍히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 점의 개수와 위치를 조합한 점형 63개를 이용해 국어, 영어, 음악, 수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문자와 기호를 점자로 표기
한다.

 

한글점자 ‘훈맹정음’


한국 시각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을 위한 점자 개발의 필요성을 최초로 제안한 사람은 미국인 선교사 로제타 홀(Rosetta Sherwood Hall)이었다. 홀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활용되던 뉴욕식 점자 체계를 바탕으로 하여 한글 최초의 점자인 ‘평양점자’(4점식 점자)를 만들었으나, 6점식 점자에 비해 편리성이 떨어지고, 초성 자음과 종성 자음이 구별되지 않는 등 문자로서 결함을 가지고 있어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다.


이후 1913년 조선 총독부가 일본의 점자 체계를 가져와 제생원 맹아부(현재의 국립서울맹학교)를 통해 국내 시각장애인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다. 이때 제생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송암 박두성 선생이 7명의 시각장애인 제자들과 함께 비밀리에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고 한글 점자를 6점 점자로 창안하여 ‘훈맹정음’이란 이름으로 반포했다.


점역·교정사 자격과 시험


점역·교정사는 시각장애인의 문자언어인 점자를 전문적으로 학습하여 시각장애인이 촉각을 이용한 대체도서를 읽을 수 있도록 일반문자를 점자로 번역하고 교정하는 사람을 말한다.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자격시험을 시행하며 국가 공인 민간자격의 형태로 관리·운영한다. 점역·교정사 자격은 점역 또는 교정이 가능한 과목 유형 및 숙련된 과목 수에 따라 1, 2, 3급으로 분류하며[국어, 영어, 수학/과학(컴퓨터), 일본어, 음악], 1급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영어 점자 자격을 필수로 소지해야 한다. 자격을 취득한 점역·교정사는 주로 시각장애인 복지관, 점자도서관, 맹학교, 시각장애인 연합회 산하 단체 등에서 활동한다. 발급된 자격증의 유효기간은 5년이며, 유효기간 이내에 급수별 보수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자격이 정지된다.4) 현재 등록된 공인 점역·교정사는 2021년 12월 자료5)를 기준으로, 3급 1,003명, 2급 169명, 1급 180명으로 현장의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전문적으로 훈련된 양질의 인적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


쉽지 않은 점자 학습


점역·교정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면서 몇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했다. 첫째로, 점자라는 낯선 기호체계가 주는 그 자체로의 어려움이었다. 점자를 접하기 전에는 막연하게 마치 상형문자처럼 글자나 의미의 형상을 축약해서 나타낼 것이라 추측했었다. 하지만 점자는 자모를 부호화하여 표현가능한 글자 수의 제한 때문에 표음문자(각각의 글자가 일정한 소리를  나타내는 문자)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의 표음문자를 쓰는 나라는 이것을 그 나라 문자에 맞추어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각각의 점형이 무엇을 나타내는지를 일일이 익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예를 들어, 1-2-4-5점을 찍은 하나의 점형이 한글에서는 자음 ‘ㅇ’을, 영어에서는 알파벳 ‘G’를, 숫자에서는 ‘7’을 의미하며, 한글 약자로 쓰일 때는 ‘ㅜㄴ ’을 나타내는 식이다. 여기에 각종 문장부호와 특수기호까지 더해지면 더욱 혼란해진다. 기표와 기의가 서로 반복적으로 미끄러지며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그저 점일 뿐인 선명하지 못한 반직관의 상태에서 고통스럽게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로는, 수많은 규정과 그 예외의 규정들을 암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ㅑ, ㅘ, ㅜ, ㅝ’뒤에 ‘애’가 이어 나올 때에는 그 사이에 붙임표를 적어 표기한다든지, ‘성, 썽, 정, 쩡, 청’은 ‘ㅓㅇ ’ 대신 예외적으로 ‘ㅕㅇ ’의 약자로 표기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중세국어와 옛 글자, 현대국어의 규정들이 혼재되어 탄생한 점자 규정이라 생기는 문제들이다.


마지막으로, 학습에 필요한 교육과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점자를 교육하는 기관을 찾기가 힘들뿐더러, 그나마 있는 교육도 비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열리지 않아서 점자 교육이 가능한 선생님을 직접 찾아 개인교습을 의뢰하는 식으로 학습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시중에서는 점자 학습을 위한 도서를 찾아볼 수 없어서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점자 규정 해설서 한 권에 의지해야 했다. 또한,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점자프린터로 출력된 점자본 기출문제를 필수적으로 봐야만 하는데도 구할 길이 없어 시각장애인 복지관에 연락해서 개인적으로 부탁을 드려 출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시험 시행처에 문의해 봐도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판매하지는 않는다는 답변만 얻었을 뿐이다.


시각장애인과 점자의 현주소, 그리고 우리


우리의 일상에서 점자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을까? 엘리베이터의 버튼, 지하철의 점자블록, ATM기기의 점자 라벨, 캔 음료까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점자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점자들이 제대로 표기가 되어 있지 않거나 규정에 맞지 않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면, 캔 음료에는 해당 제품명이 아닌 ‘음료’, ‘탄산’ 등으로만 표기되어 있어 시각장애인이 원하는 제품을 식별하고 정확히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맥주와 콜라가 점자로 동일하게 표기돼 있기 때문에 콜라를 맥주로 오인해 마시는 일이 생길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의약품의 경우 약제의 종류와 함량을 잘 구분하여 복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점자가 잘못 표기되거나 심지어 아예 표기되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오·남용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한국소비자원의 58개 의약품(일반의약품 45개, 안전상비의약품 13개)을 대상으로한 국내 의약품 점자 표시 실태조사에서 점자를 표시한 의약품은 16개로 27.6%에 그쳤다.6)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비대면 서비스가 가속화되면서 무인점포 등이 늘어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를 도입한 매장이 빠르게 확산하게 됐다. 하지만 이 중 점자 디스플레이를 적용했거나 숫자 패드와 카드 투입구 등에 점자 라벨을 부착한 기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시급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정부는 장애인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키오스크 표준 규격을 만들었지만, 도입까지 강제할 수는 없어 무인 민원 발급기에만 겨우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각장애인의 75.9%는 후천적 장애 발생이나 사고에 의한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 발생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원인불명의 경우도 15.1%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각장애는 선천적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누구든 언제나 후천적으로 시각장애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분명 존재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등록 시각장애인 수 는 2021년 기준 251,620명이다.7) 2020년 실시한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실태조사에서는 점자 해독이 가능한 시각 장애인의 비율이 6.9%, 현재 점자 해독을 배우는 중인 비율은 2.7%로 상당히 낮게 나타났다. 대부분의 시각장애인(90.4%)은 점자  해독이 불가능한 점자 문맹인 것으로 밝혀졌다.8)


위의 수치들을 보고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우리는 당장 내일이라도 시각장애를 겪을 수 있으며, 실제로 시각장애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점자를 자유롭게 읽거나 쓰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2016년부터는 “점자 및 점자 문화의 발전과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여 시각장애인의 점자 사용 권리를 신장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점자법이 시행되고 있다.9) 그럼에도 아직 우리 사회는 점자를 단순히 일반 문자의 보조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어 제대로 된 규정이 마련되지 못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점자는 문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자신감과 독립성은
물론 사회생활의 동등권을 획득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의사소통 수단이 바로 점자이기 때문이다. 점자는 시각장애인의 유일한 문자 생활 수단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다.


유네스코는 ‘문화 다양성 선언문‘ 제5조에서 “모든 이는 선택한 언어로 자기 것을 창조하고 배포할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한다”라고 밝히고 있다.10) 시각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은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함으로써 진정으로 가능해진다. 방관과 무관심이 곧 우리 스스로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이제는 정말 변해야 할 때다. 변화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된다.

 

참고문헌

1) 최슬기, 최성민. (2010). 매거진 esc 세계의 문자들. 한겨레.
2) Jennifer Dunnam. (2018). 통일영어점자 해설서. 하상장애인복지관.
3) 송철의. (2018). 한국 점자 규정 해설(2017 개정 한국 점자 규정). 국립국어원.
4) (2021). 점역·교정사 민간자격의 관리·운영에 관한 규정.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5) (2021).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6) 이지섭. (2019). 의약품 점자표시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조사보고서. 한국소비자원.
7) (2021). 국가통계포털(KOSIS) 「장애인현황」 상세 통계표. 보건복지부.
8) 김성희. 이민경. 오욱찬. 오다은. 황주희. 오미애. 김지민. 이연희. 강동욱. 권선진. 백은령. 윤상용. 이선우. (2020).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책보고서.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 보건복지부.
9) 법률 제 18988호. [2022. 9. 27. 일부개정]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10) (2001).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선언. 제 31차 유네스코 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