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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5호] ‘도시광산(Urban Mining)’을 꿈꾸며

고물상 이 우 철

 

도시 광산(Urban Mining). 폐기물 재활용 중에서 주로 금속을 재활용하는 분야를 일컫는 말입니다. 휴대폰이나 컴퓨터 등 가전제품, 서버 등의 전산장비, 반도체 기판,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에서 값비싼 금속들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금, 은, 구리, 알루미늄 등은 물론이고 팔라듐, 네오디움 등 희토류까지 다양한 자원들이 폐기물 안에 들어 있습니다. 도시 광산은 광산에서 자원을 캐내듯, 폐기물에서 자원을 얻는다는 말이죠. 여기에 종사하는 저 같은 사람들은 ‘도시 광부’라 자처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저 고물상입니다. 왜 그럴까요?

 

누구나 ESG를 얘기하지만...

 

바야흐로 ESG의 시대입니다. 대기업부터 공공기관, 지자체,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ESG를 표방하지 않으면 도태될 듯한 분위기입 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과거 한때 온 사회를 휩쓸던 웰빙 유행도 떠오릅니다. 특히 대기업은 사내 외의 저명인사들로 ESG 위원회를 구성하고, ESG 경영을 홍보합니다. 그러나 아무나 낄 수 없는 것이 ESG입니다. 대기업의 ESG는 그들만의 리그이거나, 혹은 그 누 구의 리그도 아닌 황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자, 그러면 이해를 돕기 위해 ESG에 대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다 아는 얘 기 아냐?” 하지 마시고, 잠깐만 눈여겨 봐주세요. 그래도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하는 얘기는 좀 다른 면이 있지 않겠습니까?

 

먼저 순서대로 하지 않고 Governance부터 정리합니다. 별 영양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고요? 이건 각 기업이 알아 서 할 문제입니다. 지배구조가 핵심이니까요. 윤리경영도 포괄하는 개념이란 의견도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외부에서 뭘 어떻게 할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시민단체, 언론 등이 감시 역할 을 하고 탈법적 요소가 있으면 관계 당국이 나설 일일 뿐입니다. 여기서도 Governance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음은 Environment입니다. 핵심은 탄소배출권입니다. 생산과정은 물론이고 폐기 및 재처리 과정에서 최대한 탄소배출을 줄여야 합니다. 이건 국제적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므로 사실상 강제 사항입니다. 특히 자원을 순환시키는 재처리 과정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생산 과정의 일자리는 이미 안정적이며 상대적으로 고임금인 반면, 폐 기와 재활용 과정의 일자리는 3D 업종에 속하고 사회적 시각도 차갑습니다. 생산한 만큼 폐기되는 것이 세상 이치일진대, 매우 불 공정합니다. 마지막으로 Social, ESG에서 이 항목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참 좋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ESG를 검색해 보시면 노동 자 인권 등등 별 필요 없는 설명이 많습니다만, 지역사회 공헌과 상생 경영이 포인트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사내 문제일 뿐이니 그런걸 Social 어쩌고 하면 그냥 사기죠. 이 항목을 잘 실천하면 환 경, 경제, 복지 등을 아우르며 큰 사회적 성과를 이룰 수 있을텐데, 이 역시 말만 앞서고 대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사회 적 공헌한다면서 장학금 지급하고 메세나 활동을 통해 문화계를 뒷받침하는건 좋은 일이긴 한데, 그러면 기존의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활동과 뭐가 다를까요? 지역사회나 중소기 업과의 동행이 없다면 공허할 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진짜 문제점들은 더욱 심각합니다.

 

그린워싱, 불법 처리, 귀차니즘, 나눠먹기...

 

ESG 경영한다면서 친환경과 탄소중립을 외치지만, 허울뿐인 그린 워싱이 넘쳐납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패스트푸드점들이 음료수에 빨대 안 쓰고 뚜껑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뚜껑도 플라 스틱 아닌가요? 여기에 더해 한 햄버거 프랜차이즈는 플라스틱 뚜껑은 물론이고 물티슈까지 줍니다. 최소 2배 이상 플라스틱을 쓰는 셈이죠. 이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사례가 대기업들도 빈번합니다. ESG의 첫걸음인 친환경부터 눈속임으로 시작하는 것이죠. 

 

눈속임 다음으로는 아예 불법도 자행합니다. ESG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폐기물들의 중국 유출입니다. 원래 반도체 PCB 기판 등의 전자 스크랩은 ‘바 젤 협약’에 의해 국가 간 이동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기판에 함유된 유해 성분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중국으로의 전자 스크랩 대규 모 유출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태주 지역은 한때 전자 쓰레기의 산이라 할 만큼 도시 전체가 환경의 거대한 사각지대였던 적 도 있습니다. 이렇게 전자스크랩이 환경적으로 유해하지만, 또한 중요한 자원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금, 은, 구리, 팔라듐, 탄탈, 네오디움 등 고가의 유가금속이 담겨 있죠. 그래서 생산국, 사용국의 적법 업체에서 처리해서 환경 유해 요소를 줄이고, 그 과정에서 자 원을 확보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할 일자리 또한 창출되고요. 전자 스크랩 등을 빼앗기면 자원은 물론이고 일자리까지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자원과 환경, 일자리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ESG 경영의 첫걸음이자 궁극적 목표인데, 현 실은 이상과 멀어 보입니다.

 

이에 비해 어찌 보면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귀차니즘과 무신경이 빚는 웃픈 풍경도 있습니다. 자기 부상열차라고 들어보셨나요? 자기 부상열차가 수명을 다하면 고철로 거래됩니다. 무게를 달아 쇳덩이를 사고 팝니다. 그런데 자기 부상열차에는 네오디움이라는 영구자석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 있습니다. 이거 비쌉니다. LME(런던 메탈 익스체인지) 사이트 들어가서 네오디움 선물거래 시세 보면 다들 깜짝 놀라실 겁니다. 판매자인 대기업이 고철로 팔아먹고, 구매자가 그야말로 고물상에 불과할 경우에는 값비싼 희소자원인 네오디움도 쇳덩이로 취급되고 맙니다. 생산과 판매에는 열성을 다하지만 자원 회수에는 무신경한 대기업의 관행이 그대로 드러나는 점입니다. 대기업의 귀차니즘과 처리업체의 무지가 콜라보를 벌이고 있는 거죠.

 

이런 부조리와 잘못된 관행들을 바로잡기 위해 거의 모든 대 기업에는 ESG 위원회가 있습니다. 때로는 ‘지속가능경영 위원회’라고도 불립니다. 보통 사내의 고위 임원들과 교수, 변호사, 회계 사, 얼굴이 알려진 셀럽으로 사외이사진을 구성합니다. 기업의 투 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을 위한 감시 활동이 본질이겠지만 현실과 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대게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 정도가 고작일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우리 기업 들은 사내규정을 교묘하게 회피해 사실상 내부자에 준하는 사외 이사를 선임하거나, 동일 계열사에 중복 선임해 감독, 감시기능을 발휘하기가 어려운 구조입니다. 이렇게 ‘무늬만 사회이사’였던 사람들이 ESG 위원회로 명찰 바꿔 달았다고 갑자기 환경과 자원을 지키며 사회에 공헌하기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가능성은 낮 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끼리끼리 위원회’, ‘밀어주고 끌어주는 위 원회’라는 오명이 생긴 겁니다. 자리만 바꿔가며 자기 이익 챙기는 위원회의 실효성은 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겠죠.

 

ESG의 물꼬를 트려면?

 

ESG, 꽉 막혀 있는 상황입니다.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답은 간 달하다 봅니다. 바로 중소기업에게 문턱을 낮추는 것입니다. 대기 업마다 거래해 온 규모 있는 업체에게만 폐기물, 폐장비 등을 공 급하거나 아예 자체적으로 재처리업체를 꾸리려는 움직임까지 제 각기 다른 방침들입니다. 그 와중에도 공통적으로 ESG를 근간으로 한 ’ 환경적 적법처리와 소외계층 일자리 창출‘이라는 길은 다 막혀 있습니다. 이래서는 탄소배출을 낮추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적용도, 자원의 적법하고 올바른 횟수도, 지역사회의 일자리 창출 로도 이어지지 않습니다. 자기네끼리 해 먹으면 부당한 내부거래 고, 재벌이 재처리업까지 뛰어든다면 이게 Social은 어디로 가는 것이며, C기업이 빵집 프랜차이즈 차렸던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골목상권 침해하면서 ESG를 외쳐본들 위선입니다.

 

환경 재처리업은 특별한 기술이 없는 이들도 일할 수 있는 분 야입니다. 그래서 보호 종료 청소년이나 중장년 취약계층들이 일 단 수거 등 단순직으로 출발하여 분리, 추출 등 숙련된 전문 인력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대기업은 문턱을 낮추고, 재처리를 맡은 중소기업들은 자기 배만 채우려 하지 말고 지역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해 나가야 합니다. 그랬을 때 재처리 업계에 대한 사회의 냉랭한 시선을 극복하고 스스로 대우받는 업종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고물상이라는 고치에 갇힌 도시 광부들이 나비가 될지, 그대로 썩어버릴지 모르겠습니다. ESG의 바람을 타고, 도시 광산 위로 훨훨 나는 도시 광부들의 꿈을 꾸며 내일을 준비합니다. 어쩌면 호접몽에 그칠지 모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