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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5호] 디지털전환 시대의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 : 정원사 로봇은 소녀와 소년에게 왜 꽃을 주었을까?

국립순천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신 홍 임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에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성에서 기괴한 모습의 정원사 로봇 이 꽃에 물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파괴된 성을 찾아온 소녀와 소년에게 아름다운 들꽃을 선물로 주기도 한다. 정원사 로봇은 왜 꽃을 주었을까? 꽃을 가꾸고 꽃을 선물로 주는 정원사 로봇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은 심리학에서 중요한 주제임에도 마음을 수량화하여 측정하는 시도는 지금까지 그리 많지 않았다. Gray와 그의 동료들(2007)이 마음을 수량화하여 측정한 것은 새로운 시도로 볼 수 있다. 마음지각은 경험성 (experience)과 주도성(agency)의 두 가지 독립된 차원으로 구분된다. 경험 성은 즐거움이나 고통 같은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며, 주도성은 스스로 기억하고 계획하며, 자기 의지대로 행동하고,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다.

 

Gray는 다양한 연구들을 통해 대상과의 관계에 따라 대상에 대한 마 음지각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일반적으로 한 개인은 자기 자신을 경험성과 주도성에서 가장 높게 평정하며, 자기에게 나약하거나 부정적으 로 인식되는 대상일수록 경험성과 주도성에서 낮게 평정한다. 예를 들어, 성인 남자는 소녀, 소년, 아기, 환자보다 마음지각에서 더 높게 평정되며, 동물 중에서는 소, 돼지나 닭과 같이 우리가 고기로 활용하는 동물이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동물을 먹는, 모순적 태도와 행동의 불일치를 감소시키기 위해) 마음지각에서 낮게 평정된다. 다양한 대상에 대한 마음 지각의 연구에서 지금까지 마음지각이 가장 낮게 평정된 것은 (독자께서 예상하시는 것처럼) 로봇이다. 로봇은 경험성과 주도성에서 죽은 시체보다 마음지각에서 낮게 평정되었다. 그러니까 로봇은 대체로 마음이 없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마음지각과 도덕적 처우

 

마음지각에 관심을 두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마음지각은 우리가 대상을 어떻게 도덕적으로 대할지에 대한 문제와 직접적 관계가 있다. 마음지각 의 선행연구(Gray et al., 2007; Gray & Wegner, 2012)에서는 특정 대상에 대한 마음지각의 주도성이 높아질수록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경향이 커지는 데 비해, 경험성이 높아질수록 이 대상을 해치는 행동에 대한 심리적 불편감이 커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한 상대방이 고통을 느낀다고 지각할수록 이 상대방을 해치는 행동을 심리적으로 불편한 것으로 평정하여, 마음지각의 경험성은 대상에 대한 도덕적 처우와 직접적 관계가 나타났다. 따라서 한 개인이 대상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마음지각이 형성되어, 이 대상의 행동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묻고, 이 대상을 도덕적으로 대하는 정도가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Gray & Schein, 2012). 예를 들어, 돌과 인간을 연속선상의 양 극단에 두었을 때, 해치는 행동에 대한 심리적 불편감은 가장 단순한 마음을 가진 돌에서 가장 낮고, 복잡한 (sophisticated) 마음을 가진 인간에 대해 가장 높을 것을 예측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로봇은 마음지각에서 낮게 평정되기 때문에, 로봇에 대한 도덕적 관심은 거의 없을 것을 추정해 볼 수 있다.

 

Gray와 Wegner(2012)의 연구에서는 연구 참가자들에게 아동의 얼굴과 유사한, 살아있는 듯한 로봇 ‘카스파(Kaspar)’를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기계 로봇의 조건에서는 전선줄이 보이는 로봇의 뒷면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고, 살아있는 로봇의 조건에서는 아동과 유사한 로봇의 얼굴을 앞면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후 참가자들에게 로봇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uneasy), 무서움(unnerving) 및 섬뜩함(creeped out)을 5점 척도에서 평정하도록 한 결과, 실제 인간과 유사한 로봇의 조건에서 기괴한 불쾌감(eeriness)의 부정적 정서가 더 강하게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로봇이 인간과 유사한 외관을 가질수록 심리적 불쾌감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로봇의 마음이 인간과 유사하다고 인식될수록 로봇에 대한 불안감과 불쾌감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마음지각이론은 로봇과 인간의 외관적 유사성이 높아질수록 심리적 불쾌감이 느껴지는 불쾌한 골짜기에 대한 설명을 확장했다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이전 연구들이 주로 로봇의 외관에만 치중되었던 데 비해 로봇과 인간의 마음을 구분하는 근본적인 기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러 나 마음지각이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로봇에게 인간의 마음과 같은 속성을 부여하는 것이 심리적 불쾌감을 경험하게 하는 이유인가?(Wang et al., 2015). 예를 들어, 특정 상황에서 한 개인은 시를 쓰는 로봇에 대해 마음지각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로봇에게 인간의 속성을 부여하는 사람일수록 로봇에게 언제나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인가? 또한 인간과 유사하게 보이는 로봇에 대한 마음지각이 높게 형성되지만, 이와 동시에 심리적 불쾌감을 경험한다면, 이 로봇에 대한 도덕적 처우는 어떻게 될 것인가? 로봇이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지각될수록 로봇을 해치는 행동에 대한 심리적 불편감이 증가할 것인가?

 

로봇에 대한 의인화

 

최근 보급되고 있는 사회적 로봇이 의인화를 유도하는 방식은 인간과 유 사한 외모 또는 로봇의 자율적 행동을 활용한다. 선행연구에서는 이 두 방식이 로봇을 인간과 유사하게 지각하게 하고, 인간-로봇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로봇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게됨을 보고한다(Damiano & Dumouchi, 2018). 그런데 인간과 유사한 외관만을 갖고 있는 로봇이 자율적으로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불쾌한 골짜기(Mori, 1970)와 같이 로봇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지고, 의인화도 잘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로봇이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정서를 경험하도록 해야 로봇에 대한 의인화는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Levillain과 Zibetti(2017)의 연구에서는 로봇뿐만 아니라 다른 대상들(예: 인형, 자동차)도 자율적으로 느끼고 행동하는 것처럼 제시하 면, 의인화가 증가함을 보고하였다. 따라서 대상의 외관과 자율적 정서/행 동 중에서 자율적 정서/행동이 의인화에 더 결정적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의인화가 단순히 대상을 인간과 혼동하여 인간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부터 인간의 고유 속성을 추론하는 것이기 때문에 로봇이 인간처럼 주도적으로 행동하고,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로봇의 마음에 대 한 추론 과정을 유도하여 실제 로봇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음지각이론(Gray & Wegner, 2012)과 의인화이론(Epley et al., 2007)의 차이는 마음지각이론에서는 대상을 범주로 구분하여(예: 인간 vs. 로봇) 대상의 마음을 평가하는 데 비해, 의인화 이론에서는 인간이 아닌 대상의 특정 행동을 통해 대상의 마음을 추론하여 이 대상에게 인간의 속 성을 부여한다는 점이다(Wang et al., 2015). 이 차이는 마음지각에서는 인간이 아닌 대상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하게 될 가능성을 증가시키고(예: 로봇은 인간이 아니면서 감정을 느끼니 이상함), 의인화에서는 대상에 대한 긍정적 평가(예: 로봇의 말하는 행동이 나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 같음) 를 하게 될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예를 들어, Gray와 Wegner(2012)에서는 인간이 아닌 로봇이 인간의 외관과 유사하게 제시될 때 마음지각은 높아졌지만, 이와 동시에 로봇에 대한 심리적 불쾌감이 증가하였다. 이에 비해 Nijssen 외(2019)에서는 로봇의 정서(예: 당황함, 행복감)와 생각(예: 망설임, 심사숙고)을 의인화하여 제시하는 조건에서 의인화되지 않은 로봇의 조건보다 가상의 돌발 사고 상황에서 로봇/인간 중에서 로봇에게 해를 가하려는 경향이 더 낮게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결과들은 의인화가 로봇의 도덕적 지위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간-로봇의 상호작용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줄까?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페터 바이벨(Peter Weibel(1944-2023)의 전시회 (인지행위로서의 예술)가 있었다. 미디어 개념예술작가로 알려진 그는 언어 이론, 수학, 철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이미 1960년대부터 미디어 아트에 인터랙티브 요소를 포함시켰다. “치유”의 주제로 열렸던 이번 전시회는 지금까지 우리가 가졌던 세상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즐거운 자극을 주었다. 오늘 보고 온 그의 여러 작품 중에서 특별히 마음에 담고 온 카메라가 있다. 이 카메라는 특정한 대사를 계속 반복하였다. “나는 자율적인 기계다(Ich bin eine autonome Machine). 나는 노예처럼 일 하지 않을 것이다(Ich will nicht dienen). 나는 내 초점을 자율적으로 조절한다.” 무슨 카메라가 말을 하고, 자율적으로 초점을 조절하냐고, 이 작가가 제정신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인지능력이 어딘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아닌, 비인간대상에게 인간의 속성을 부여하는 의인화에 대해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대체로 부정적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카메라가 말을 하고, 살아서 움직인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인간이 아닌 대상에게 인간의 속성을 부여하고, 대상에 대한 마음지각과 도덕적 처우에 대해 생각해 보는 새로운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다. 정원사로봇은 소녀와 소년에게 왜 꽃을 주었을까? 이것은 이미 프로그램에 계획되어 있던 것일까? 아니면 로봇의 자율적 결정에 의한 것이었을까?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비인간대상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공상 과학적 호기심이 아니라 진지한 학문적, 윤리적 관심을 갖는 우리의 마음이다. 

 

인공지능의 발달과 함께 인간과 유사한 자율적 로봇은 우리의 일상에서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로봇이 인간과 유사한 정서를 경험하는 것으로 인식된다면, 다른 기계적 로봇보다 도덕적 처우에서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 로봇에게 ‘e-인간(전자인간)’으로 서 인간의 지위를 부여하고, 사회에서 한 개인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새로운 규칙이 제정된다면, 다양한 윤리적 갈등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모르는 사람을 위해 내가 잘 아는, 정서를 표현하는 로봇이 희생당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합당한가? 로봇의 지위와 의무는 어느 정도까지가 적절한가? 의인화된 로봇은 로봇에 대한 도덕적 처우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킬까? 인간-로봇의 도덕적 지위의 판단에 새로운 규칙이 적용되고, 인간을 위해 로봇이 희생되어야 하는 윤리적 갈등 상황에서는 다양한 문제를 이해하고, 예측하는 것이 시급하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준다고 한다. 마 찬가지로 비인간대상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은 우리가 외부환경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사고의 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Gray, H. M., Gray, K., &Wegner, D. M. (2007). Dimensions of mind perception. science , 315 (5812), 619-619.

 

Gray, K., &Wegner, D. M. (2012). Morality takes two: Dyadic morality and mind perception.

 

Gray, K., &Schein, C. (2012). Two minds vs. two philosophies: Mind perception defines morality and dissolves the debate between deontology and utilitarianism. Review of Philosophy and Psychology , 3 , 405-423.

 

Gray, K., &Wegner, D. M. (2012). Feeling robots and human zombies: Mind perception and the uncanny valley. Cognition , 125 (1), 125-130.

 

Wang, X., &Krumhuber, E. G. (2018). Mind perception of robots varies with their economic versus social function. Frontiers in psychology , 9 , 1230.

 

Damiano, L., & Dumouchi, P. (2018). Anthropomorphism in Human-Robot Co-evolution. Frontiers inPsychology, 9, 468.

 

Mori, M. (1970). The uncanny valley: the original essay by Masahiro Mori. IEEE Spectrum.

 

Levillain, F., &Zibetti, E. (2017). Behavioral objects: The rise of the evocative machines. Journal of Human-Robot Interaction , 6 (1), 4-24.

 

Epley, N., Waytz, A., &Cacioppo, J. T. (2007). O n s e e i n g h um a n : a t h r e e - f a c t o r t h e o r y o f anthropomorphism. Psychological review , 114 (4), 864.

 

Nijssen, S. R., Muller, B. C., Baaren, R. B. V., &Paulus, M. (2019). Saving the robot or the human? Robots who feel deserve moral care. Social Cognition , 37 (1), 41-S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