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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호] 당신의 이야기가 연극이 될 때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박혁준

 

 

우리 모두는 매일 매일 이야기를 만든다. 작은 일상의 일들도 모두 그 하나하나가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이런 이야기들은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데, 이걸 연극으로 만들어 볼 수 있을까? 우리가 겪는 모든 순간, 생각, 감정들을 가지고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건 과연 가능할까? 그리고 나의 솔직한 이야기를 일면식도 없는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한 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과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더 잘 이해하 고 표현하며 나눌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테아트룸 문디(Theatrum Mundi)"라는 개념은 라틴어로 '세상의 극장'을 의미한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 문학, 예술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 개념은 인간의 삶과 세상을 극장과 연극으로 비유하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 개념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 2막 7장에서 제이키스의 대사를 통해 '이 세상은 연극 무대, 세상 모든 남녀는 단지 배우일 뿐(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이라는 유명한 구절을 통해 인간의 삶을 연극의 한 장면처럼 그려냈다.

  셰익스피어의 세계관에서 '테아트룸 문디'는 인간의 삶이 결국 연극과도 같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우리는 어머니의 자궁에서부터 태어나 죽을 때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그 각각의 역할은 연극의 한 장면처럼 연출되고 펼쳐진다. 즉, 우리는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인생'이라는 연극을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기억 저 너머에 자신만의 소중한 이야기를 소유하고 있다.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특별하고 독특하며, 마치 테아트룸 문디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작품과도 같다. 우리의 이야기는 그 어떤 저명한 작가의 작품보다도 더욱 생생하고 현실적이다. 때로는 흥미진진한 코미디로, 때로는 눈물겨운 비극으로, 때로는 명확한 해결책이 없는 미스터리로 펼쳐진다. 놀랍게도 이 모든 장르가 우리의 삶,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연극의 주인공이다. 우리가 결정하는 선택, 우리가 겪는 시련, 우리가 이뤄내는 성취는 모두 우리의 연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그리고 그 연극은 우리가 표현하는 감정,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통해 더욱 생동감 있게 그려지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연극과 같이 막, 장별로 장면을 바꾸며, 새로운 캐릭터를 소개하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반전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서로 얽히고설킨 채로 우리의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 가며, 우리의 이야기를 쓴다. 우리의 연극은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지금이 연극의 도입 부분이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절정의 단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나를 통해 쓰여지고, 연출되고, 펼쳐진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소중한 이야 기를 찾아가며,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역할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테아트룸 문디'의 본질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의 삶은 결국 연극과도 같다.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연극, 그리고 우리의 삶. 이 세 가지는 모두 한데 얽혀 있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연극의 주인공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이야기 하고 싶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주인공이다.

 

관객의 이야기를 즉석에서 공연으로 만드는 ‘플레이백 시어터’의 국내 공연의 한 장면.                   [출처: 연극공간-해·글항아리 제공]

 

 

  그렇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아마도 나의 이야기로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특히 예술계 종사 자가 아니면 더더욱.

 

  하지만 우리의 이런 욕구와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연극의 장르가 있다. 바로 '플레이백 시어터(Playback Theatre)'다.

  플레이백 시어터는 사람들이 삶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화를 이야기하면 그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극화하는 즉흥 연극의 한 형식이다.1) 즉 관객이 텔러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면, 그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훈련된 배우가 즉석에서 듣고 잠깐의 약속만 정하고 즉흥으로 장면을 연기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첫사랑을 다시 만난 이야기'를 공유한다면, 무대 위에 트레이 닝이 된 배우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즉석에서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장면을 연기해 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자신의 이야기가 연극으로 표현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플레이백 시어터를 통해 우리의 이야기가 연극으로 만들어질 때,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게 되고, 그 이야기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는지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가슴 아픈 사연이나, 위로가 필요한 사연의 경우 플레이백 시어터의 컨덕터(사회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게 도움을 준 텔러를 향해 직접 위로를 해주는 경우도 있고 혹은 공연을 보러온 다른 관객에게 부탁해 텔러를 위로 해주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자신의 상처에 위로가 되는 치유의 기능도 생성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게 되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존중하게 된다. 이런 경험이 모여 우리 사회가 더 따뜻하고 이해관계가 높아지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면, 우리는 플레이백 시어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세상에 공유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이 '연극'처럼 펼쳐지며, 우리의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지는 그 순간, 우리는 진정한 '세상의 연극'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의미는 창조적 과정과 스토리텔링의 핵심에 자리한다. 

목적이자 속성인 것이다. 

자신의 삶 자체, 또는 삶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그저 무작위적이며 혼돈으로 가득찬 상황의 희생자가 아니며, 

비탄과 무의미의 느낌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세계 속에서 

의미 있게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다시, 우리 이야기, 타인의 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답할 수 있는 것이다. 

"맞아요. 그렇습니다. 제게도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요, 저는 이렇게 존재합니다."

 _디나 메츠거, <당신을 위한 글쓰기 Writing for your Life>

 

 

  개인적으로 플레이백 시어터를 좋아한다. 플레이백 시어터는 관객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한 예술이이다. 일반적으로 연극이라고 하면, 보통 배우들이 대본에 따라 연기를 하고, 관객들이 그것을 관람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플래이백 시어터는 일반적인 연극의 공식을 깨뜨린다. 매 공연 관객의 이야기에 따라서 내용과 형식은 달라지고, 기존의 연극과 같은 배우 중심의 예술이 아닌 관객 중심의 예술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 단순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대한 사회적 기능에 집중하게 되는데, 플래이백 시어터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커뮤니티를 묶는 강력한 접착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의 연결과 연대를 느끼게 되며, 이는 우리 커뮤니티의 동질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 할 수 있다. 그래서 플레이백 시어터가 많은 사람들에게 향유되었으면 하는데, 특히 사회적 약자 집단에서 많이 향유되길 소망한다. 또한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공간으로써 많은 사람들과 이슈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찾아가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1) 우리는 모두 이야기에서 태어났다, 조살라스 지음, 허혜경 옮김, 글 항아리, 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