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강대대학원

[115호] 서강대와 G20, 그 밀월이 남긴 것 조성호(객원기자) 지난 11월 3일 ‘세상에 한걸음’ 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원회)는 학교 행정팀으로부터 G20과 관련된 학술제는 강의실 대여를 불허하겠다는 연락을 받는다. 학교 행정팀은 “정부의 지침은 따로 없었지만 민감한 사안이라 G20 관련 학술제를 모두 취소 중이어서 학생행사도 안 했으면 한다. 총학의 강의실 대여권으로 대여를 강행한다면 그 권한을 제고해 보겠다”고 말했다. 준비위원회는 로욜라 언덕에 공동 대자보를 붙이고 학교측에 항의했다. 결국 갈등은 ‘G20 정상회의에 맞선 대학생 대안경제 포럼’이라는 제목에서 ‘G20 정상회의에 맞선’이란 문구를 삭제하는 선에서 봉합됐다. 이에 대해 정유성 학생문화처장은 “행정팀이 G20 관련 모든 학술제에 과잉대응을 해 일어난 오해라고 해명했다”라며 “준비위.. 더보기
[115호] 2010년 한국문화탐방 경주 기행 리린 (신문방송학과 중국인 유학생) 경주는 이번이 두 번째지만, 매번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 왔을 때 아직 어학당에 다니고 있었던 저는 공부를 하기보다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를 즐겨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 가봤던 많은 여행지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경주는 그리 특별할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저에게 경주여행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출발 당일, 이른 아침에 학교에 모여야 되는 바람에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자는 둥 마는 둥 지하철을 타고 와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경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났습니다. 다들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라서 버스 안에서도 약간 서먹서먹했지요. 끼리끼리 이야기하다가 학생회장이 자기소개를 제안해서 서로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처.. 더보기
[115호] 대학, 프로젝트의 노예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승리 엄기호(우리신학 연구소 연구위원) 공부의 의미 신학을 공부하는 친구로부터 푸념에 가까운 문자를 받았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이상 재밌지도 않고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심도 깊은 토론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삶에 대한 성찰이 있는 것도 아니라 ‘수다’만 떨다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친구뿐만이 아니다. 주변의 많은 동료와 후배들이 대학원 공부에 대해서 2학기가 넘어가면 돈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한다. 대학원에서, 특히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유의미하게 포착하는 언어를 만드는 일이다. 특히 내가 전공하고 있는 현대문화연구는 아예 학문의 타이틀에 '당대contemporary'라는.. 더보기
[115호] G20이 남긴 것 박권일 (사회학과 석사과정/ '88만원세대' 저자) 이제 되짚어볼 때가 됐다. 서울서 열린 G20 정상회의 말이다. 이명박 정부는 “건국이후 최대의 국가행사”라며 나라 전체를 G20 광풍 속으로 휘몰아쳤고 삼성경제연구소는 이에 발맞춘 듯 경제효과 분석보고서를 내놨다. G20으로 한국이 얻을 직·간접적 경제유발효과가 약 24조 원이라고 한다. 뒤이은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의 보고서는 한 술 더 뜬다. G20의 경제효과가 무려 “450조” 원이란다. 한국의 1년 예산이 약 300조 원이란 점을 떠올리면 이 돈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액수인지 조금 감이 올 것이다. 이런 황당한 액수가 나오는 이유, 그리고 같은 행사를 두고 두 연구기관이 계산한 액수조차 이리도 차이나는 이유는 명확하다. 경제효과 계산이 애초에 자.. 더보기
[115호] G를 쥐라 하지 못하는 더러운 세상: G20 포스터 패러디의 주인공 박정수를 만나다 인터뷰 및 정리 박승일 G20 그래피티 작업이 굉장히 큰 이슈가 됐어요. 신문과 방송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해 좌담회까지 열렸고요. 이러한 반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냥 작업하고 사진 찍어서 트위터에 올릴 생각을 했었어요. 트위터에 올리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했었거든요. 그런데 경찰한테 잡히고 이후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애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사회적 파장이 발생한 거예요. 솔직히 이렇게까지 크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된 것이 더 큰 의미를 불러일으킨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타이밍이 적절했던 것 같아요. 경호법이 11월 1일부로 공표됐는데, 기사가 11월 2일인가에 처음으로 보도 됐거든요. G20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였던 거죠. G20과 관련해 예상됐던 저항, 비판.. 더보기
[115호] 산책자, 이 거리가 낯설다 조성호-(이하 성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어떻게 읽었어? 1930년대 소설치곤 구보 박태원의 도시적 감각이 굉장히 세련되더라고. 정미지(이하 미지)- 지금 우리가 느끼는 거랑 별반 달라 보이지 않던데? 그런데 서울 풍경은 많이 달라졌잖아. 성호- 그렇긴 한데 오늘날의 우리가 당시 경성을 거닐던 구보와 같은 도시적 감각을 여전히 느끼고 있을까? 벌써 70여 년이나 흘렀잖아? 도시풍경이 변한만큼 구보와는 다르게 서울이 느껴질 법도 한데. 미지- 글쎄, 그럼 우선 구보가 처음 산책을 떠났던 곳부터 출발해보자. 여기가 구보의 집이 있던 청계천이지? 성호- 어, 근데 구보가 집을 나선 이유가 재미있었어. 글로 먹고 산다지만 딱 26세의 남자다워. 미지- 구보는 결혼을 재촉하는 어머니 잔소리에 쫓기듯 집을 .. 더보기
[115호] 우리는 오늘, 김수영을 읽는다 이은정(이화여대 강사) 흘깃 바라보기만 해도, 보는 이를 한 순간에 결박시켜버리는 사진이 있다. 푼크툼, 사진의 어떤 의외의 부분이 보는 이의 마음과 머리와 눈을 찌르듯 상흔과 자상을 남기는 순간이다. 김수영의 이 사진이야말로 몇 번을 보아도 생생한 푼크툼, 녹록치 않은 결박을 느끼게 한다. 어떤 이는 이 사진에서 ‘런닝구의 포스’를 발견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영화배우 양조위의 깊고 쓸쓸한 표정을 얘기하기도 하며, 어떤 이는 그 불온한 아우라에 일순 전염되고, 어떤 이는 그 퀭하고 형형한 눈빛에 한참 사로잡혀 있기도 한다. 사진 속의 김수영은 뺨을 괴고 앉아 생각에 골몰한 채 비스듬한 시선으로 묻는다. “나, 너, 우리, 어떻게 살고 있는가?” 김수영은 생전보다 사후에 각인된 시인이다. 1970년대와 .. 더보기
[115호] 죽음을 증언하는 검은 페이지의 삶 이성혁 (문학평론가) 1989년 3월 7일 새벽, 기형도 시인은 종로에 있는 한 삼류 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숨졌다. 만 29세. 그리고 같은 해 5월, 그의 유고 시집인 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곧 기형도를 뒤따라 세상을 떠나게 될, 당대의 평론가 김현이 이 시집에 감동적인 해설을 썼다. 요절한 시인의 시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을 평론가의 해설이 실려 있는 이 시집은 1990년대에 굉장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독재 체제에 항거하는 데 기꺼이 참여했던 1980년대의 시가 대낮의 시라고 한다면, 기형도의 시는 밤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1990년대의 청년들은 에서 어두운 곳에 감추어져 있었던 자신의 검은 자화상을 발견하곤 했다. 입속의 검은 잎, 낯선 나와 마주치기 기형도의 시를 읽어.. 더보기
[115호] 유재하, 주류와 언더 사이에 움튼 위로의 목소리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2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요절가수 고 유재하. 생전의 그는 엄청난 대중적 파급력을 담보했던 인기가수도 자체 후광이 눈을 멀게 하는 미남도 아니었다. 솔직히 단 한 번도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직접 목도한 대중 또한 거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잘 알지도 본적도 없고 더구나 세상을 떠난 지 23년이나 된 가수의 노래가 왜 지금도 많은 영화 속에 삽입되며 존재가치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일까? 23년 전 세상을 떠난 유재하를 지금 우리가 다시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재하는 데뷔음반이 곧 유작앨범이 된 대중가요 사상 유례가 없는 비운의 가수다. 그는 세월이 흐를수록 생존의 아쉬움을 더하는 독특한 가수다. 당시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직접 작사, 작곡, 연주, 노래하는 .. 더보기
[115호]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임종진(사진작가) 올해를 넘기면 어느새 15주기를 맞이한다. 스스로 삶을 거두고 떠난 사람. 그가 없는 빈자리는 기억 저편의 아련함으로 가득 메워졌다. 쌓인 세월만큼 그리 깊어가는 것일까. 여전히 그가 그립다. 15년 전의 과거형으로 기억되지만 그대로 가슴 깊이 남아있는 사람. 김광석. 오늘도 광석이 형이 그립다. 지난 2005년 12월 초순 즈음 어느 늦은 밤. 먼지 냄새가 폴폴 묻어나는 필름을 꺼내 든 순간 예상했던 대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1996년 1월’ 이후 되도록 꺼내려하지 않았던, 일부러 살펴보려 하지도 않았던 그런 필름꾸러미였다. 사진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사진 작업물에 대한 애착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옛 기억이 상념에 허우적댈 것이 뻔했기에 ‘보는’ 것을 자제하려던 것이었다. 남들이 생.. 더보기